조글로로고
정원수- 더많은 조선족가수 발굴하고싶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4월18일 21시08분    조회:919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북경아가씨”의  작곡가 정원수씨

일전 기자는 심양에서 조선족가수 김월녀를 한국가수계에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한국작곡가 정원수씨(1960)를 만났다. 한 무명 조선족가수의 음반취입을 위해 심양을 방문한 그는 “생각외로 조선족가수들의 음악기초와 자질이 좋았다. 더 많은 조선족가수들을 한국에 데뷔시키고싶다”며 대화를 풀어나갔다. 그는 중국말도 비교적 류창하게 구사하였는데 일찍 중국에서 사업한적 있어서인지 중국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고있었고 리해도 깊었다.

    김월녀를 “북경아가씨”로  일약 성공

정원수씨가 “북경아가씨”를 작곡한것과 김월녀가 이 노래로 한국에 성공적으로 데뷔한데는 그 원인이 있었다.

  지난 1993년 KBS의 “전국은 지금” - 제주도에서 장백산환경캠페인 프로그램을 위해 천진에서 입경한것이 첫 중국행으로 되여 그는 이듬해 대련에서 1호 중한합자 천청궁찬음오락유한회사를 담차게 꾸렸다. 1년뒤 부득이한 원인으로 회사를 정리하게 되였는데 그때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정들었던 한 녀인과 갈라지게 되였다. 눈물범벅이가 된 그녀의 영상과 1년간 추억은 그에게 불쑥 창작충동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기내에서 “북경아가씨”를 작사 작곡하였고 누구를 통해 음반을 취입할가 하다 여러가지 사항으로 이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뒤 1997년 중국록가수 최건씨를 만났다. 여러 한국방송사와 회사들에서 방한공연을 추진하였지만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모두 무산되였다. 그와 만나 이 얘기를 꺼낼때는 벌써 27번째였다. KBS에서도 성사시키지 못한것을 그는 밀어붙이기로 작심했고 최건을 포함한 공연단원들의 출국수속을 마쳤는데도 문화부에서 쉽게 허가를 주지 않았다. 입국하는 날,  그는 미리 공항에  “카메라부대”를 동원하여 입국을 기정사실화시켰고 자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최건의 방한공연을 성사시키는데 성공하였다.

  1998년 북경에서 1년간 체류할 때 한 지인이 조선족가수 김월녀를 추천했다. 그러나 김월녀가 출국중이여서 만나지 못하고 1년뒤 귀국하여 그와 전화를 통했다. 그는 “북경아가씨”를 김월녀에게 주면서 잘 련습하고 자신이 있으면 한국에 나와 음반취입을 하자고 건의하였다. 한달뒤 계획대로 김월녀는 한국에 와서 음반취입을 했고 생각밖으로 노래를 잘 부른 김월녀에게 신심을 갖고 정원수씨는 설운도나 남진 공연때에 가끔 김월녀를 등장시켜 친분을 쌓게 했다. 과거 설운도나 현철의 매니저였고 이때는 남진, 김혜영의 매니저인 그에게는 김월녀를 한국가수계에 띄우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였다. 중국에서도 김월녀의 “북경아가씨”음반이 급속도로 퍼졌고 지어 평양에서도  불리우기 시작했다. 그는 멜로디와 전주, 간주를 모두 중국풍이 짙게 했고 특히 가사에 중국말을 첨가해서 그런것 같다고 그 원인을 이야기했다.

  김월녀를 자기가수로 키우고싶다는 그의 아집은 대단했다. KBS PD와 싸우면서 2002년 재야의 종소리가 울리고 2003년 새해를 알리는 KBS생방송에 첫 스타트로 차이나복을 입은 80명 배우들이 춤추는 가운데 김월녀를 등장시켜 주변으로부터 한국가수를 등장시키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심양에 정원수라이브카페를 만들고싶다

  조선족들이 한국에 속속 밀려들면서 추석이나 설명절때 동포들을 위한 노래자랑이나 위문공연에도 그는 발벗고 나서고있다. 또 누구보다 중국과 조선족사회를 많이 리해하고 재한조선족의 처우를 동정하면서 “신도라지”,  “그리운 내 아들아” 등 노래를 작사, 작곡하였다. 이러한 노래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이국만리 한국에 나와 홀로 지내는 아줌마들이 고향을 그리고 자식들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과 향수를 담은 노래들이다.

  “중국노래들은 음악이나 멜로디가 서정적이거나 시적이지만 한국노래는 비정서적으로 흐르면서 템포가 빠르고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경우가 많다”고 말하는 그는 기회가 되면 심양에 정원수라이브카페를 만들고싶다고 했다. 이를 통해 동북3성에 있는 조선족가수들을 도와주고싶다고. 중한교류에서 한국인들이 더는 실수하지 말고 사기하는 일이 적어졌으면 하는것이 그의 바램이며 문화교류를 통해서 조선족과 한국인간의 반목의 곬을 메워주고싶은것 역시 심양에 정원수라이브카페를 만들려는 또하나의 리유다.

최근에 그는 안산에 있는 조선족기타리스트 허국철의 딸 허여나(21살)의 음반을 중국과 한국에서 준비하고있으며 기회가 닿으면 4, 5월경에 출시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고기뀀, 고수풀과 같은 중국음식을 즐겨먹을 정도로 중국을 좋아한다는 그는 또 한국인들이 즐겨부르는 노래(류덕화의 노래) “심우”,  “달이 내 마음을 대표하네”,  “첨밀밀”의 가사들을 한국말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중이다. 한국에서 음반취입을 하여 한국인들이 더많은 중국노래를 부르게 하고싶다는것이다.

  한국에서 성공한 메니저, 작곡가로 인정받는 그는 금년초에 “최고의 녀자”로 다시 한국가수계에 데뷔하였다. 그가 작곡한 유명한 노래들로는 “최고의 녀자”, “사랑의 포로”,  “첫사랑오빠”, ”빰빠라빠라”, “살짝쿵”, “무궁화꽃이 피였습니다”, “님이 오는 계절”,  “두손 싹싹”,  “미련의 부루스”, “내사랑도 가져가세요”, “슬픈 행복”, “사랑의 폭발”, “북경아가씨”, “신도라지”, “그리운 내아들아”, “국민 여러분”, “뜨거운 사랑”, “돌려주오” 등이 있다.

   “가수와 작곡가는 서로 박자가 맞아야 하지요.. 아무리 좋은 곡이라 하더라도 그 곡을 잘 부를수 있는 가수가 없다면 유명한 곡으로 될수 없지요. 김월녀가 나의 곡을 불러 유명하게 해주었기에 서로 성공할수 있은것이 아니겠어요? 김월녀가 나의 곡을 잘  불러주어 더 고맙습니다. 김월녀와 같은 더많은 동포가수를 발굴하고싶습니다.” 중한 량국간 문화교류에 전도사의 역할을 하고싶다는 정원수씨의 말이다.  

료녕조선문보 오지훈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조국의 창공을 날아예는 매조선족이 낳은 걸출한 비행사 리정규대좌를 찾아서8월 24일,연길시 북산가두 연북소구역 한 아빠트에서 기자는 “고향이 낳은 공군비행사”-리정규(44세)대좌를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다.두 어깨가 떡 벌어지고 검실검실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번듯한 리정규씨는 퍼그나 친절하고 소탈하였...
  • 2009-09-09
  • 민족전통예술사업에 몰붓는 심혈  ―전통음악리론연구원(교수) 김남호선생의 이야기 “지나온 한생을 돌이켜보노라니 만족스럽게 생각되는 일은 별로 없고 그저 후회만 가득 쌓인듯한 느낌이다. 남이 하는 일은 다 하고싶었고 맡은 일이거나 맡겨진 일도 다 잘해보려고 불철주야 바삐 돌아쳤지만 어느 하나 그렇다...
  • 2009-09-09
  • 최건, 조선족, 1961년 8월 2일 출생, 중국에서 처음 록을 선보인 인물로서 "중국 록큰롤의 대부"로 불리운다. 데뷔곡은 1986년의 <아무것도 가진것 없네>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최건의 중국의 음악계에서 점차 퇴출했다. 하지만 2005년 "스크림 레코드(SCREAM-RECORDS)"는 최건에게 경의를 표하...
  • 2009-09-08
  • 한손에 필을, 한손에 총을 든 작가 김학철,그가 력사의 현장에서 만난 슈퍼인물들 김학철은 장개석과 그의 측근실세들인 하응흠(何应钦), 장군(张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특무두목 대립(戴笠), 주은래와 곽말약(郭沫若), 팽덕회와 라서경(罗瑞卿), 김원봉과 김구, 유자명과 석정, 김두봉과 최창익...
  • 2009-09-07
  • ○ 금년 중국경제성장률을 8.4%로 예측○ 연구생 60명 배출 그중 조선족 5명중국경제성장률 목표치 달성할것 해마다 국가에서는 춘계와 추계에 중국경제성장률예측회의를 소집하여 당해와 그 다음해의 중국경제성장률을 예측한다. 길림대학 수량경제연구중심 경제수량분석연구실 주임이며 학술인솔자인 석주선교수는 2002년...
  • 2009-09-04
  • 연변에도 “조본산”이 있다? 구연배우 화룡시문화예술관 최중철부관장의 꿈구연배우 최중철 하면 연변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난 20년간 동북3성의 크고작은 무대는 물론 농한기마다 시골에 다니는 온돌공연으로 특이한 캐릭터를 연출했기때문이다. 최근에는 방송과 TV에 빈번하게 출연하면서 독특...
  • 2009-09-04
  • 민족언어예술을 전파하는 한길에서“말은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고 인격이며 품위입니다”고 입버릇처럼 외우는이가 있다. 바로 조선족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익숙한 원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실 실장이며 화술전문가인 서방흥선생이다.근 36년의 아나운서경력에 아나운서실장으로도 1...
  • 2009-09-04
  • 안국민프로필 1931년 흑룡강성 밀산시 출생. 중국음악가협회 리사. 제3기 연변음악가협회주석단 주석.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1, 2, 3,4기 명예회장 력임. 제2기연변정협위원. 제4, 5기 연변주인대 대표 력임. 독창곡 《연변목가》,《어머니》 무용곡 《물동이춤》,《양돈장의 처녀》 등 음악작품 200여곡 창작, 도합3천여차...
  • 2009-09-02
  • 사법분야서 활약하는 조선족법관ㅡ심양시 10대 우수법관 심양시중급법원 집행국 림창환국장 체구는 크지 않아도 말을 할라치면 쇠소리가 나고 행동거지 또한 록록치 않은 인상을 주는 심양시중급인민법원 집행국 국장 림창환(56)씨, 심양시중급법원의 심판위원회 위원, 당조성원으로 부원장대우를 향수하는 그는 이 법원력사...
  • 2009-08-31
  • 틈새시장을 공략하라 ㅡ단동동패컴퓨터과학기술유한회사 국창욱사장자신의 창업과정을 돌이켜보며 국창욱사장은 조선족대졸생후배들에게 인내력과 끈기를 키우고 창업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하라고 권고하고 싶다고 심중을 밝힌다.  1974년생인 단동동패컴퓨터과학기술유한회사 국창욱사장은 1996년 단동시료동학원...
  • 2009-08-3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