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연변가무단 독창가수 박경숙의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8월27일 09시20분    조회:764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가수꿈을 이룬 시골소녀

우리 맘속의 붉은 태양 조국변강 비춰주니
장백천리 해란강반 붉은기발 물결치네
……

20세기 60년대말부터 연변가무단의 김인숙가수가 가요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를 부르면서 이 노래가 전국에 보급되였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장강남북을 넘나들며 이 노래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고있는 가수가 있으니 그녀가 바로 연변가무단의 국가1급배우 박경숙이다.

30고개를 넘어서야 연변가무단에 입단하였지만 짧디짧은 10년사이에 국가4급배우로부터 1급배우로 성장하고 《길림성 돌출한 공헌이 있는 중청년전업기술인재》로 평의된 박경숙 가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불철주야 뛰여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가수의 꿈을 키우던 나날

장백산아래에 위치한 안도현 삼도향 남도촌에서 6남매중 셋째딸로 태여난 박경숙은 음악에 소질이 있는 아버지와 고모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소학교시절부터 노래를 꽤나 잘 불렀다. 마침 음악교원인 엄영자선생님이 이 특장을 발견하고 학교선전대에 넣어주어 경숙이는 독창은 물론 사회며 연극도 해보면서 향내에서 소문을 놓았다.
18살때 현노래콩클에서 1등을 하고 로수하림업국문공단에 취직한 그녀는 얼마후 장백현에서 연변예술학원에 위탁해 꾸린 중등전문반에 들어갔고 1년후에는 아버지가 부림소를 팔아 마련해준 400원을 가지고 상해음악학원에 응시, 끝내는 입학통지서를 받아안았다.  

그때가 바로 1989년, 경숙이의 막내남동생도 연변농학원에 입학하였는지라 어머니는 가난한 농촌살림에 대학생 둘의 뒤바라지를 해야 할 일이 너무도 한심해서 딸애의 대학진학을 내켜하지 않았다. 이때 이미 결혼을 하고 어린애 둘을 키우면서 빠듯하게 살고있는 큰언니네 부부가 동생의 학비는 자기들이 도맡겠다고 하면서 한학기 비용으로 450원을 쥐여주었다.

20년전이라지만 번화한 상해에서 450원으로 반년을 살아간다는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였다. 할수없이 경숙이는 꼭 필요한 생활용품이나 책을 사는데만 돈을 좀씩 쓰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공부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그러나 상해방언은 한마디도 모르고 한어보통말수준도 형편없는 경숙이가 산설고 물선 고장에서 공부를 한다는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였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이 아무리 곱씹으며 강의를 해도 통 리해를 하지 못하고 숙사에서는 쩍하면 발음을 틀리게 해서 웃음거리를 빚어내고 무대에 올라서서는 전주를 빼먹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이런 일들이 잦아지면서 사상부담이 늘어나서인지 어느날엔가는 그렇게 웅글지던 목소리가 모기소리만큼 가늘어지기까지 했다. 

이런 변화에 주의를 돌린 주척교수(주소연의 제자)는 강의를 할 때면 몇번이고 알아들을 때까지 반복했고 명절이면 집에 데려다 색다른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하면서 상호간의 거리를 줄이기에 최선을 다했다. 경숙이 또한 배움에 게을리 하지 않은 보람으로 얼마후부터는 장학금을 타면서 공부하게 되였다.

그후 경숙이는 노래실력도 제고하고 언니네 부담도 줄여줄겸 방과후면 나이트클럽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서 자력갱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하루수입이 고작해서 10원이고 한주일에 한두번 있을가 말가 하는 일이였지만 학업에는 크게 보탬이 되여더는 돈걱정을 하지 않고 공부를 할수 있게 되였다. 더욱 다행스러운것은 이런 실천을 통해 실력이 제고되여 교내에서 활동이 있을 때면 조선족의 대표로 《새타령》 등 조선말노래를 부르며 재간을 뽐내고 제3차 중국예술가곡콩클에서 2등상을 따내게 된것이였다.

보람찬 노래인생

상해음악학원을 졸업한후 수도강철공사예술단, 연산석유화학예술단 등 단위로 자리를 옮기며 가수로 활약하던 경숙이는 부모님들이 계시는 고향 연변에 나와서 생활해보고싶은 마음에서 연변가무단에 입단할 결심을 굳혔다. 마침 은사인 주척선생님이 동창생인 림성호선생님한테 연줄을 달아주고 림경진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연변가무단에 벨칸토창법가수가 모자란다는 정보까지 알려주었다.

경숙이의 노래를 듣고난 림성호선생님은 음역이 넓고 소리가 깊으면서도 음색이 감미로와 쏘프라노로 성장하기 적격이라고 하면서 3개월간이나 림경진이 부르던 노래를 위주로 입단시험에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결과 경숙이는 1998년에 연변가무단의 입단시험을 순조롭게 통과하고 고향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장끼를 자랑할수 있게 되였다.

무대경험이 결핍해서인지 아니면 상해에서 한어말노래를 많이 부른탓인지 경숙이는 처음에 무대에 올라서면 박자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애를 많이 먹었다. 그러나 선배님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그렇다고 하면서 용기를 안겨주었고 지도부에서도 크고작은 무대에서 단련할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여러가지 연수반이며 콩클에도 부지런히 참가하고 특히 1년 반동안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겸직교원으로 활약하면서 자기를 제고한 경숙이는 2003년부터 련속 4년간 연변가무단의 실무평의에서 1등을 따내였고 입단초기의 국가4급배우로부터 당당한 1급배우로 승진했으며 2008년에는 《길림성 돌출한 공헌이 있는 중청년전업기술인재》로 평의되여 표창을 받았다. 그동안 여러가지 콩클에 참가해서도 어거리대풍을 안아와서 전국공작새컵소수민족성악콩클, 조선 “4?5”국제예술축전, 한몽수교10돐기념문예콩클, 세계한민족전통예술콩클 등 국내외의 행사에서 묵직한 영예를 따내였다.

지금에 와서 경숙이는 한어말노래는 물론 연변노래, 조선노래도 잘 부르는데 몇해전부터는 연변가무단에서 다시 무대에 올린 무용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에서 쏘프라노를 맡고 사처로 불리워다니고있다.

이런 성과를 거둘수 있게 된 비결에 대해 경숙이는 귀인이 너무 많았다고 고백한다.   안도현문화관의 안홍민선생님으로부터 한동안 로수하림업국문공단에 내려와있은 중국인민해방군 총정치부가무단의 창전덕선생님, 연변예술학교와 상해음악학원의 은사님들 그리고 친딸처럼 사랑해주는 림성호선생님…이런 소중한분들이 밀어주었기에 가수 박경숙의 오늘이 있게 되였다는것이다.
 
고마운 부모형제

최근년래 연변TV의 음력설야회, 라지오나 텔레비죤 방송의 매주일가를 통해 청취자, 시청자들과의 만남을 자주 가지는 경숙이는 자기가 여기까지 올수 있게끔 밀어준 1등공신으로는 또 고마운 부모형제들을 빼놓을수 없다고 말한다. 

경숙이의 부모들은 심심산골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6남매를 키워 출세시키느라 별의별 고생을 다하였다.   외할머니까지 모시는 아홉식솔의 대가정을 거느리면서도 아들딸 6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키려고 어머니는 농사일이며 재봉일, 뜨개질까지 닥치는대로 다했고 가정의 대들보를 떠멘 아버지는 언제나 말없이 자식들의 어려움을 헤아려주었다.

사랑에 받들려 자라난 6남매는 지금 모두 떳떳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였는데 그중 5명이 대학이나 중등전문학교를 졸업했고 당년에 아버지의 짐을 덜어드린다며 진학 대신 취직을 선택했던 큰남동생은 몇해전에 출국해서 신근한 로동으로 치부의 단꿈을 무르익히고있다.

지금에 와서도 박경숙은 돈은 비록 없었지만 깨끗한 마음으로 화목하게 살아가면서 5호가정의 영예를 빛내가던 그 시절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터놓았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전까지 1년 반가량 연길에 모셔와 함께 살면서 나름대로 효도를 하느라 했지만 아버지가 60고개를 넘기 바쁘게 하늘나라로 떠나가시는통에 무대에서 공연하는 장면도 보여드리지 못한것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는것이다. 

경숙이의 인생에 크게 도움을 준 가정성원으로는 또 큰언니와 형부를 꼽을수 있다. 처녀시절 촌당지부서기로 사업하면서 농촌문예활동에서도 선줄군으로 활약하던 큰언니는 경숙이에게 있어서 부모처럼 의지해온 미더운 존재였다.   어렸을 때는 녀동생의 손목을 잡고 문화관선생님을 찾아다니면서 노래를 배우도록 해주고 대학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형편에서도 지원의 손길을 보내준 큰언니와 형부에 대해 경숙이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의 타산에 대해 경숙이는 우선은 부단히 진보하는 가수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자기를 갈고 닦으며 그 다음으로는 CD도 만들고 개인음악회도 마련할 구상을 내비치였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콘텐츠 강화.안정적 재정 확보 등에 역점"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2012년 처음 치러지는 재외국민 선거를 앞두고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전경희(51) 호주 동아일보 발행인은 30일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이하 세계한언) 신임 회장...
  • 2010-11-03
  • 《정말 감개무량 합니다!》 저명한 조각가 최수송씨를 만나 [길림신문 2010-11-02 오기활 기자]《두만강조각공원은 민족성이 독특하고 내용이 다양합니다. 연변에 조각공원이 있다는것 자체가 대단합니다. 더구나 연변의 첫 조각공원이 나의 고향 도문에 있으니 더욱 감개무량합니다.》 《반세기만에 꿈이 실현되였습니...
  • 2010-11-02
  • 한중일 근대사를 동아시아 입장에서 재조명합니다" “한나라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입장에서 근현대사를 재검토하려 합니다” 일본 히로시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북경 청화대에 조리연구원으로 있던 김준 박사가 내년부터 부교수로 연변대학 교단에 설 예정이다. 마침 서울대 강연을 위해 한...
  • 2010-11-02
  • 료녕성 안산시 달도만진 김태복진장을 만나본다 8년전, 김태복(남,조선족,51주세)씨가 료녕성 안산시 달도만진 진장으로 부임될 때만도 이 진은 1000여만원이나 되는 빚더미에 짓눌린 가난뱅이 진이였다. 그로부터 3년이란 시간에 빚을 몽땅 청산하고도 5년사이에 년간 재정수입을 1.47억원으로 기적을 창조해《새농촌건설의...
  • 2010-10-27
  • 중화초석양조선족예술단을 이끌고있는 김상규단장 북경 동성구 화평리 교통주민구역 활동실에서 늘 활동하던 북경조선족로인합창단을 최근년래 중화초석양조선족예술단으로 발전시키면서 국내외 이름있는 로인예술단으로 부상시킨 로인이 있는데 그가 바로 김상규단장이다. 일전 기자는 심양에서 김상규단장을 만나 그...
  • 2010-10-26
  • 기능성식품 개발에 박차  청도농업대학 박미자 박사  (흑룡강신문=하얼빈)리수봉 기자= 청도농업대학부교수 겸 중한식품바이오기술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박미자 박사(44세, 연변 화룡 출신, 사진)는 기능성 식품개발에서 두각을 내밀고 있다.   그의 주요 연구방향은 발효 및 발아 기능성식품 개발, 곤충식품 개발...
  • 2010-10-26
  • 흑룡강성 비공유제경제인사 우수 후선인으로조선족기업인 박광종씨  (흑룡강신문=하얼빈)윤선미 기자= 제3차 전성 비공유제경제인사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업건설자평의위원회가 23일 발표한 '제3차 전성 비공유제경제인사' 우수 후선인 30명 중에 조선족 기업인 박광종(사진, 40세, 경안현 출신)씨의 이름도 올랐다.  ...
  • 2010-10-26
  • 연변대학의 대표적인 문학교수 — 김호웅교수가을 치고는 유난히 화창한 날씨를 보였던 10월 21일, 기자는 아침 출근시간에 맟추어 일찌감치 연변대학교로 향했다. 김호웅교수와의 인터뷰가 예정되여있었던것이다.연변대학교 도서관 3층에 자리를 잡은 김호웅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서니 김호웅교수가 사람 좋은 미...
  • 2010-10-26
  • 신용있는 경영인 김명화북경동인당 연변의약상점유한회사 총경리인 김명화씨는 해마다 5000여만원의 판매액을 올리고 100만원에 달하는 세금을 납부하며 100여명 정리실업종업원들을 재취업시키고 50%에 달하는 종업원들을 사회양로보험에 가입시켰다.몇년간 김명화씨는 광범한 종업원들을 인솔하여 창업실천에 적극 투신했...
  • 2010-10-26
  • 나젊은 녀박사 병리학연구정상에 우뚝37살의 젊은 나이에 교수, 박사생지도교수로 발탁된 당찬 녀박사가 있다.   현재 연변대학종양연구센터 주임, 연변대학 기초의학원 병리학과 병리생리학 학과주임을 맡고있는 림정화교수는 2006년 1월, 37살에 교수, 박사생지도교수로 발탁되였고 당시 연변대학에서 가장 나젊은 박...
  • 2010-10-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