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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옥 - 오또기는 넘어지지 않는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9월28일 09시08분    조회:9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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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상업무역유한회사 김희옥 동사장을 만나

길림성 훈춘 경신에서 태여난 김희옥은 훈춘림업국 경영처 산하의 회사에서 부기원 겸 회계로 일하다가 집식구들이 한사코 반대하는것도 뿌리치고 1993년 29살의 나이로 연태 모 회사의 초빙에 응하여 낯설고 물선 연태땅에 선뜻 발을 들여놓은 도고한 녀성이다.

부동산그룹 측에서 800원의 로임에 아파트를 마련해주기로 계약하고 초빙되였는데 정작 초빙되니 계약을 리행하지 않아 이런 회사에서 절대 근무할수 없다는 오기로 로임 500원에 아파트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다른 부동산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훈춘에 있을때 130원의 로임을 받았던 그녀에게 있어서 아파트와 두둑한 로임봉투는 거대한 유혹이기는 하였지만 처음으로 생경한 기업에 초빙되니 애로가 많았다. 동북인들과 개방도시 사람들의 사유관념부터가 문제였다. 그녀는 고향의 낡은 사고방식을 잘라버리고 연태, 나아가 중국실정에 초점을 맞추자는 결단을 내렸다. 그녀는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상계에서 활약하는 믿음직한 선배들을 찾아가 배우면서 자기사업을 위한 준비작업을 하였다. 낯설고 물선 고장에서 뒤돌아볼수 없는 그녀는 고차원의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동등한 차원에 자신을 올려세우는것이 급선무라는것을 느꼈다. 연태에 발을 들여놓으며 보았던 웨이터 아가씨나 한국인들에게 붙어사는 녀자들에게서 느꼈던 실망이 컸던것도 하나의 원인이였다.


김희옥이 지금도 늘 하는 말이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제일 큰 재산은 사람이다. 어떤 사람을 친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이 바뀐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녀의 말을 빈다면 《녀자에게 얼굴생김도 자본인데 얼굴 잘 생겼나(겸손?), 문화정도가 높냐 이것저것 가진게 없는 녀자》가 거물급들을 사귀는 방법은 오직 진심으로 사귀는 방법밖에 없었다. 김희옥은 부담없이 친할만한 녀자라는 평판이 나돌 정도로 그녀는 거짓과 담을 쌓고 오로지 진실만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2000년 연태시정부가 래산구로 이사를 하자 그녀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자금을 활용해 래산구에 호텔을 임대하고 하루 빨리 개장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초고속 인테리어를 강행하였다. 그러다가 그만 불이 나는통에 모든 꿈이 재더미로 물앉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타격이였다. 그러나 고향에서 데려온 애들이 하나도 상하지 않은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에 아깝지는 않았다. 돈보다 귀중한것이 생명이고 사람이다.


뜻밖의 화재로 빈털털이가 되였지만 그녀는 기죽지 않았다. 연태에서 최고라는 4성급호텔 창융국제호텔을 지을 때, 내가 꼭 여기에 들어갈것이라고 친구와 말해 친구의 허구픈 실소를 자아낸적도 있었다. 허황한 생각같지만 돈 일전 한푼 팔지 않고 들어갈것이라며 그녀는 친구에게 그루를 박았다. 김희옥의 머리속에 생신한 아이디어야말로 재산이였던것이다. 자기말대로 그녀는 자신만의 노하우로 호텔 한국부를 도맡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그때 이미 시작한 태권도 도장을 확장할 꿈을 키웠다.


2004년 다른 부서들의 경영부진으로 하여 호텔경영이 위기에 직면하자 호텔측에서는 겨울에 스팀도 바로 주지 않았다. 이러다가 여태 쌓아온 신용을 잃고 손님마저 죄다 잃을것 같아 5년을 하던 경영을 아쉬운대로 그만두었다. 그녀가 손을 떼자 호텔은 아예 문을 닫았다. 그녀는 자신을 재기시켜준 쓸쓸한 호텔을 쳐다보며 가슴이 쓰리였다. 호텔 동사장이 찾아와 260만원이라는 헐값에 그녀에게 호텔을 임대해주었다. 그녀는 새로 장식을 하고 개업하였다. 장사가 불티나게 잘 되자 동사장이 또 흑심이 생겼던지 임대료를 더 내라며 그녀를 괴롭혔다. 그때는 그녀가 수술을 하고 컨디션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였다. 그녀는 손을 씻기로 작심했다. 그녀가 그 호텔을 뒤로 하고 나왔을 때 그녀에게 남은것은 빚더미뿐이였다.


돈도 벌고 내 민족의 위상을 수립하려는 생각에 그녀는 태권도 도장을 백개로 확장할 계획이였다. 그런데 합작파트너였던 조선측에서 최고로 40명의 사범밖에 보내줄수 없다는 바람에 태권도 도장확장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 참에 그녀는 민족 교육과 문화에 눈길을 돌렸다.


김희옥은 한국 국제사회교육원과 합작하여 연태에 중국총부를 세우고 전문 직원양성, 교육, 훈련을 일체화한 봉페식 훈련원인 NISI기업관리훈련원을 꾸렸다. 지금 롯데같은 그룹의 사원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고 있다. 훈련원 원장직을 맡고 있는 백홍염(조선족 송원태생)양은 연태에 온 지 3년 반쯤 되는 원래 한국말을 한마디 말도 알아듣지 못하던데로부터 지금 불편한대로 우리말 대화를 나눌수 있어 기자를 흐뭇하게 했다.

김희옥은 의식이 일체를 결정한다는 신념을 핵으로 한 NISI기업관리훈련원을 전국적 범위로 확장해가는것이 지금의 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고향에 다녀온 김희옥은 고향의 변모에 기쁨을 금치 못하면서도 깊은 우려를 나타내였다.

《연변에 가면 가슴 아픈것은 한국 가서 벌어온 돈을 마작판에 처넣는거예요. 지금은 시간이 얼마나 아까워요? 할일이 많고도 많은데, 일분일초를 그렇게 랑비할수 있어요? 할 일이 그렇게도 없을가요? 젊은이들이 마작을 논다는게 정말 가슴 아파요. 그걸 어떻게 막을수 없을가요?》

그녀의 량심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절규를 들으며 기자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귀로에 올랐다.

길림신문 김태국 전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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