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옥문덕-문등시정부 주한국판사처 수석대표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9월29일 09시44분    조회:907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문등시의 발전과 조선족의 기여
ㅡ문등시인민정부 주한국판사처 수석대표 옥문덕은 말한다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교원가정의 아들로 태여난 옥문덕(37세)은 연변대학 토목건축계를 졸업하고 1996년에 출근하던 건설업체(성7건)를 떠나 단연 문등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당시 건설현장에 나가있던 옥문덕은 연변에 인재초빙을 온 문등시대표단의 면접을 받지 못했었다. 한발 앞서 문등에 간 대학동창이 대학시절 반장으로 있던 옥문덕이 문등에 오면 백퍼센트 캐스팅 될것이라고 해서 내린 결정이였다. 그때에는 단순하게 문등에 오면 한국에 쉽게 출국할수 있을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또 하나의 리유였다. 아들로서 아버지 어머니가 한국 브로커에게 사기당한 몇천원(당시만도 큰돈)의 돈이라도 벌어보려고 벼르던 중이기도 하였다.

부모에게 의뢰하지 않고 떳떳이 자립하고 싶은 마음으로 문등에 달려왔건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반신반의하는 회의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당시 문등의 로임은 아주 낮은 표준이였다. 이런 봉급을 받으며 전도가 양양한 24살의 젊은 대학생이 한개 진에 자리를 잡으려 할가, 이것이 그들이 제일 걱정하는 포인트였다. 그러나 옥문덕은 그들과의 계약기일인 일주일이 되기도 전에 시원하게 응답을 했고 짐을 싸들고 문등에 왔다. 자그마한 진에서 4년간 통역으로 있은 그는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2000년 대외무역국으로 일터를 옮겼고 현재는 문등시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 대외무역국 국장 겸 주한국판사처 수석대표로 되였다.

문등에 자리잡아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문등에는 한국기업체가 350여개로 늘어났다. 불완전한 집계에 따르면 한국인이 2여천명, 조선족이 6여천명으로 집계된다.옥문덕은 만약 언어소통에서 가교역할을 한 조선족들이 없었더라면 한국기업의 문등진출이 이렇게 쾌속적인 발전을 가져오지 못했을것이라고 말한다. 일본기업이 중국에 대거 진출하지 못하는 리유중의 하나가 언어소통이 되지 않는것임을 감안하면 쉽게 리해가 된다.

옥문덕은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간도땅을 개척했던 뿌리 깊은 정신이랄가, 우리 민족은 개척정신이 강한 민족이라며 뿌듯한 긍지감을 낱낱이 드러냈다. 그렇지만 강한만큼 아픔도 많이 겪는 민족이라는것이 옥문덕의 견해다. 집을 떠나 멀리 타향에서 홀로 자기 길을 열어가는 사람은 외로움과 그리움을 겪게 마련이다. 그러나 부모곁에 붙어있을 때보다 더 잘해 나가는것이 우리 민족 젊은이들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울타리를 벗어나 나온 지성인이라면 민족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자기의 주장을 밝혔다.

1998년에 지금의 안해와 만나 2000년 결혼식을 올린 그들 부부는 아직까지 보배둥이가 없다. 그는 사업때문이라고 하였지만 꼭 그런것만은 같지 않았다. 교육에 관한 화제가 거론되자 옥문덕은 외자, 독자, 합자, 합작대기업을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곳에 유치하는것도 교육을 살리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자기견해를 밝힌다.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더위가 점점 북쪽으로 옮겨가기에 원견성 있는 기업인은 미리 북방에 터를 잡을것이라는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런 기회를 틀어쥐고 길림, 심양, 금삼각 등 곳을 확실하게 개방하여 기업을 적극 불러들인다면 관내에서는 투자유치에 필요한 통역마저 점차 불필요해지기에 북방으로 되돌아갈것이다.

국제화시대기에 민족만 너무 고집하는것은 무리겠지만 민족교육은 밀어버릴수 없는 선차적인 과제다. 교육을 떠나서 우리 민족을 운운할수 없다. 만약 연변대학에서 연해 조선족 집거지구에 분교를 세우고 그에 따른 교육시스템을 가동하여 부속고중, 부속중학교, 부속소학교, 부속유아원까지 꾸려놓으면 우리 민족은 자기 기반이 있게 될것이다. 민족 집거지구에 학교를 건립하겠다는것을 그 누구도 막을 이유가 없다. 위해, 연태, 문등에는 정말 필요한것이 민족교육기구 설립이다.

그리고 더구나 한심한것은 아이들이 우리말을 한마디도 번지지 못하는것이다. 자기 민족의 언어를 잃으면 민족성을 잃는다는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니 조선족 부모라면 집에서 애들과 한족말을 하지 말고 우리말로 대화를 나누는것이 바람직할것이다. 말을 알지만 글을 모르면 다음세대에 가서 소리만 남고 글은 잃어지게 되고 그 다음세대에 가서는 아예 말과 글을 다 잃게 될것이다...

만약 옥문덕이 동북의 모 도시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였을가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처럼 전도가 유망한 젊은이를 알아보고 대담하게 밀어주는 문등시정부가 한결 돋보이고 전국현급경제기본경쟁력과 과학발전평가보고에서 14위를 차지한것이 너무나 당연한 느낌이다.

[문등시는 산동반도 동부에 위치한 65만인구를 가진 현급시다. 서로는 연태시 모평구와 유산시, 북으로는 위해시환취구, 동으로는 영성시와 잇닿아있고 남쪽은 황해와 면해있다. 면적은 1645평방키로메터이고 관할구역내에 3개가두, 14개 진과 하나의 성급경제개발구가 있다. 2008년까지 호적등록이 있는 조선족은 470명이다.]

길림신문 김태국 전광훈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백청강의 모교를 찾아서   림금산 안해연   우리가 백청강의 모교를 찾아 떠난것은 청강이가 서울에서 열린 MBC 스타오디션'위대한탄생-그랜드파이널'에서드디어1등을따내조선족사회에크나큰센세이숀을일으킨바로나흘후즉5월31일이른아침이였다. “청강이는 조선족의 자존심을 연출했다, 청강이는 ...
  • 2011-07-08
  • 한석윤 퇴직후 사재 털어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설립 한석윤 시인 어린이들과 함께.   (흑룡강신문=연길)약 40년간 조선족 청소년 사업에 몰두한 한 조선족 지성인이 있는데 그가 바로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전임 사장인 한석윤 씨(1943년 출생)이다.   퇴직후에도 지속적으로 청소년사업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 2011-07-08
  •   (흑룡강신문=하얼빈)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도시 연길에서 “코스모(考世茂)”는 조선족전통음식업계의 대표적 브랜드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있다. “코스모”는 대우주라는 뜻의 영음간칭이나 코스모스라는 쑥꽃의 준칭으로 아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조선족민속음식업의 한길을 헤쳐온 &ldq...
  • 2011-07-08
  •   중국농촌개인사이트 CEO 조동철  (흑룡강신문=하얼빈 2011-07-07) 료녕성 심양시의 조동철(34세)은 중국에서 가장 일찍 농민이 구축하고 운영하는 '중국농촌중개인 사이트'를 개설하고 몇년 사이에 일약 농민 CEO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그는 전국적으로 1400여명의 중개인 협력자를 모집했으며 2만...
  • 2011-07-08
  • 성공적인 삶의 길잡이 되여 (사)이주·동포정책연구소 문민 연구위원을 만나 근무중에 있는 문민위원 [길림신문 2011-07-04 전춘봉 특파기자] 재한 조선족 삶의 현장에 관심이 많다보니 자주 관련 사이트를 열어보게 되었는데 문민이란 이름이 자주 눈에 띈다. 어느 한 사이트에서는 《문민의 함께 하는 세상》이라는...
  • 2011-07-07
  • 연변대학교 전임 교장 박문일 [길림신문 2011-07-04 ]나는 위대한 당의 은덕으로 연변대학교의 제1기생으로, 62년의 연변대학교 동반자의 한사람으로 80고개를 눈앞에 두고있는 리직교수이다. 당 창건 90돐을 맞아 학교와 그속에서 걸어온 60년을 돌이켜보면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이 없다》는 우리 중화민족의 애창 대...
  • 2011-07-05
  •   (흑룡강신문=하얼빈 2011-06-30) 박룡수 = 중국의 첫 집체농장으로 알려진 성화집체농장의 개척자 고 리재근(1920- 2006년)은 1949년 입당으로부터 2006년 서거까지 57년 당령. 1951년 첫 집단농장때로부터 1983년까지 장장 33년을 촌지부서기로 사업하면서 많은 영예를 떠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땅과 더...
  • 2011-07-01
  • 영웅적 민족 빛나는 발자취 우리 민족 선배들이 북만땅에 남긴 영광스러운 발자취   (흑룡강신문=하얼빈2011-06-30) 김철진, 김해란 기자 = 당창건 90돐에 즈음하여 북만지역(오늘의 흑룡강성)의 우리 민족 선배들이 당이 령도하는 혁명투쟁에서 남긴 영광스러운 발자취를 더듬어보기 위해 기자는 흑룡강성당사연구소 전...
  • 2011-06-30
  • <!--advertisement code begin--><!--advertisement code end-->   (흑룡강신문=하얼빈2011-06-28) 정봉길기자 = 40여년간 조선어 교육과 연구에 집념해 눈부신 성과를 따낸 이가 있다. 주인공은 전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의 서영섭교수(77세)이다.   서교수는 1957년에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이 대학의 교사...
  • 2011-06-28
  • “글로벌시대 무역정보 빨리 장악하라” [흑룡강신문 2011-06-24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김봉운 연변왕달무역유한공사 총경리의 환동해무역노하우김봉운총경리 프로필 교육배경:  1953년 1월 21일생  1987년 연변조선족자치주 당학교 졸업  1989년 중앙당학교 경제관리학 졸업  2008년 연변과학기술대학...
  • 2011-06-2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