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창희-국제항구도시서 우리위상 높여가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2월5일 14시20분    조회:599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공화국창립60돐 기념 특별기획 60주년에 만나본 60인] -기획보도(50)

천진시조선족친목회 리창희회장 만나본다

◆ 건국60주년 열병식에 요청돼 호금도주석의 접견
◆ 련3회 천진시모범단체로 정부와 사회 높은 위상
◆ 100여개 외자기업 유치 1만명 조선족인력 추천
◆ 많은 조선족청년들이 참가해 활력있는 사회단체로


개혁개방이후 대량의 조선족인구가 천진시로 몰려들면서 조선족 젊은이들의 혼인난, 로인생활 무미건조, 우리 말과 글,  우리 민속문화를 잘 모르는 현상들이 잇따라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저 천진시조선족친목회(아래 친목회로 략칭)가 설립됐고 산하 4개 단체가 선후 설립되면서 천진시 조선족들의 문화경제생활이 활발하게 발전해나갔다. 친목회설립은 천진시의 대외경제무역에 활력소를 불어주었을뿐만 아니라 천진시의 조화사회건설에 의바지하였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천진시조선족친목회는 련 3회 《천진시모범단체》 칭호를 수여받았고 친목회창설때부터 부회장으로 있다가 2000년부터 친목회 회장을 맡은 리창희는 두번이나 전국민족단결진보 모범으로  되여 올해 국경 60돐 열병식 천안문관례대에 올라갔으며 호금도주석의 접견을 받고 악수까지 하는 영광을 가졌다. 

지난 11월 7일,  북경 화평구의 한 호텔에서 기자는 사업차 출장중인 리창희회장을 만났다.

50여년동안 천진에서 살아온 리창희인지라  《로천진》이라 부를수 있다.  오래동안 한어를 주로 써온 사람이나 생각밖으로 우리 말을 잘 하시는 편인데  대화중에 한어를 섞지 않았다.  

천진시 경제발전에 효자노릇

1988년 11월 29일에 설립된 천진시조선족친목회는 1993년에 《천진시 사회단체법인등록잠정조례》에 따라 정식으로 법인사회단체로 등록되였으며 초대 회장 박금천에 이어 김한범이 회장을 맡았고 6회부터 8회는 현임 회장 리창희가 맡고있다.

친목회산하에 천진시조선족로인협회(고정회원 500여명), 천진시조선족축구협회(회원 400명좌우) 천진시조선족상회(30명), 천진시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20여명) 등이 있다.

비서장을 포함해 10명 회장단체에 4명 고문, 29명 리사로 지도층이 조직됐다.

1992년 중한수교후 중한경제무역왕래가 빈번해짐에 따라 친목회에서는 《천지경제무역자문회사》를 설립하고  투자유치, 경제무역 중개서비스, 인재추천, 일한 통역 및 번역, 《3자》기업 천진진출 관련수속 등 실무를 취급했다. 회사운영 8년사이에 비교적 좋은 경제적, 사회적 효과성을 보았다.

그 기간 친목회를 통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유치한 기업이 100여개 되며 투자유치 금액은 수억원에 달하고 1만여명 인재를 추천하였으며 한국에 수천명의 연수생을 파견했다.

선후 삼성강녕, 삼성전기기계, 삼성전자, 한국영창피아노그룹 등 한국기업의 천진진출에 큰 힘을 들였으며  수십개의 3자기업 천진진출을 성사시켰다.

이 성과는 친목회 회장단과 리사 등이 친척 또는 초청을 통해 한국, 일본, 미국 등을 방문하면서 상공업분야의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천진의 투자환경을 널리 홍보한 보람이라고 말할수 있다.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한통 또 한통의 편지

《친목회 설립초기 알만한 조선족들을 다 모여봤자 근근히 100명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거리에서나 모 행사때를 막론하고 조선족을 만나기만 하면 주소를 적어놓군 하였습니다.  당시는 전화가 보급되지 않은 때라 우리는 한통 한통의 편지를 띄워 행사소식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많을 때는  3분의 2의 편지가 되돌아왔습니다. 당시 조선족대부분이 고정된 거처가 없고 류동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리창희회장은 친목회 설립초기의 어려움을 토한다.  

리회장에 따르면 매 행사때마다 친목회 회장, 부회장들은 마음에 담긴 편지들을 한통 또 한통 천진시에 널려있는 조선족가정들에 띄웠다. 수년간 드팀없이 견지해온 보람으로 행사참가수가 날로 많아지고 회원수도 늘어났다.

친목회에서는 조선족들의 모임의 장소를 마련하는 외에 젊은이들의 혼인난을 해결해주고  빈곤가정, 빈곤학생 돕기, 로인사망 후사처리 등에도 힘을 기울였다. 

리창희회장은 《현재는 당고구, 무청구, 동려구 3개 친목회 분회(순 로인협회)가 세워지고 산하 4개 협회의 조직이 체계적이고 완벽하게 꾸며졌는지라 전화 한통이면 행사통지가 이루어진다》고 자랑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참가하는 운동회

《문화오락활동이나 운동회를 조직하는것이 단지 먹고놀고 적적함을 달래자는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후세대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계승발전하도록 이들을 이끌며 이들로 하여금 교류를 넓혀 서로 돕고 함께 발전하도록 하는것이 친목회가 해야 할 주요 사무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 이런 주장을 고집하는 리창희회장은 회장단과 리사들의 지지하에 조선족행사에 대한 젊은이들의 대량 참여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친목회에서는 해마다 두가지 큰 행사를 가지는데 하나는 정월 대보름과 추석운동회이다. 이 두가지 행사는 이미 고정된 프로로 천진시조선족들속에 널리 알려져있다.

정월대보름에는 주로 로인들을 주제로 여러 가지 문화오락활동을 조직한다. 추석운동회는 주로 젊은들의 종목을 많이 내와 신생력량을 이끌어낸다.

리창희회장에 따르면 몇년전만 하여도  운동회에 젊은이들을 부르면 운동장에 대부분이 로인들인것을 보고 그냥 돌아가는 상황이 많았다. 어떤 이는 리회장한테 미안해 하며 《로인들이 많은걸 보면 제가 참가할 자리가 아니네요, 저는 그냥 갑니다》하고는 자리를 뜬다 한다.

회장단과 리사들은 젊은들의 동참을 위해 심판원, 도우미 등 일을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이들을 통해 더 많은 청년들을 끌어오도록 했다.  

체육종목배치시에도 상대적으로 젊은이들의 종목을 많이 배치해놓고 구대표팀, 친목회 산하 각 협회 대표팀을 무어 경기를 벌였다.  젊은이들이 적은 팀에 대해서는 단지 로인협회대표팀으로 경기에 참가시키고 구대표팀의 자격을 주지 않았다. 로인들은 구대표팀을 구성하기 위해 자식들을 동원하여 참가시키군 했다.  

리창희회장은 《이러한 조치를 취한데서 금년 9월 13일에 열린 운동회는 사상 최고로 많은 젊은이들이 참가했는데 특히 대학생들이 많아 그야말로 생기가 넘치는 운동회였다》며 《앞으로 추석 운동회는 참가인수가 보다 많고 생기발랄한 청년들이 보다 많은 진정한 체육운동회로 될것이다》고  하며 밝은 전망이라 했다. 


지난 9월 13일에 있은 추석운동회 

새로운 조선족이미지 심어준 친목회

중한수교후 천진시에 많은 조선족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중한경제무역왕래에서 교량역할을 하였을뿐만 아니라 천진시경제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여 천진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지난 세기 90년대부터 전국 각 지역 특히 동북3성에서 천진에 들어온 조선족들은 한국기업의 종업원으로, 자체경영업자로 천진시의 장기거주자로 자리매김하였다.

대량의 조선족진출에 이어 문제점도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극 소수사람들로 인해 조선족들의 이미지에 영향을 끼쳤다. 

리창희회장은 이런 말을 한다. 《간혹 회의참석시에 참석자들 가운데 조선족에 대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조선족인줄을 모르고 조선족들은 돈밖에 모른다는 등 이런저런 말들이 들려오고 또 조선족들에게 사기당한 소수 한국인회사에서는 조선족들을 한명도 고용하지 않겠다고 단념까지 했다.》, 《물론 피차 원인이 있으리라 믿지만 한때 일부 천진사람들한테 조선족들의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던것만은 사실이다》.

친목회 회장단과 리사들은 이러한 국면을 돌려세우고 조선족들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것이 무엇을 하든 꼭 성실하고 열심히 하며 사심이 없이 진정으로 일을 하며 남보다 더 큰 노력을 가해야 한다는것이다.  

친목회의 노력과 사회발전에 따라 조선족들의 종합자질이 점차 높아지면서 천진사람들은 새롭게 조선족들을 인식하게 되였다.

리회장은 《친목회가 조직하는 련환모임이나 체육대회에서 술먹고 싸우는 일이 없이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분위기속에서 모임이 끝납니다. 우리는 또 련환모임때는 기타 소수민족들을 청해 함께 즐거이 보냅니다》며 《친목회가 정부의 인정을 받고 새로 천진사람들의 인가를 얻게 된데는 패성이 없고 단결된 지도층이 있고 천진시민위와 천진시조선족기업인들의 대폭적인 지지가 있기 때문에 또 오늘날의 성과를 거두게 되였습니다》고 긍정적으로 말한다.

알아본데 의하면 천진시에는 1200여만명 인구에 51개 민족이 있다. 천진시조선족친목회는 천진시소수민족을 대표하여 녕하에서 있은 전국소수민족경기대회에 참가했고  2004년부터 2009년 사이에 련 3회 천진시모범단체로 평정받았다.

천진시조선족

리창희회장에 따르면 새중국 창건후 조선족들이 이 곳에서 황무지를 개간하고 벼농사를 해왔다. 특히 항미원조 지원군 통역으로 있었던 흑룡강적 조선족들이 제대되여 천진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조선족들이 좀 있게 되고 그후 전근되여 오는 사람들이 늘면서 조선족인구가 불었다.

1993년 천진시의 통계에 따르면 천진시에 호적이 있는 조선족은 1713명이라 밝혔고 2007년에는 상주 조선족인구는 1만여명, 흑룡강에서 온 조선족들이 비교적 많은 비률을 차지한다.

리회장은 현재 천진에 등록된 한국인이 4만 5000명, 대부분 조선족들이 한국기업에서 근무하고 자식따라 천진에서 살고있는 로인들과 기타 조선족들을 포함하여 천진에 약 5만명 정도의 조선족들이 살고있을것이라 짐작된다고 한다.

현재 천진에 있는 조선족기업은 200여개, 대부분이 제조업에 종사하며 호텔, 음식, 무역, 인테리어, 중개서비스, 골프장 등을 경영한다. 

천진시 조선족종업원중 대학졸업생이 비교적 많은 편이며 거개가 한국기업 또는 기타 기업에서 중견직 등 관리직에서 활약하고있으며 극 소수가 로동자로 근무하고있다.

천진시 조선족들은 중한경제무역, 천진시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있다.  

길림신문    홍옥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장백산 기슭에 뿌리내린 미인송중국전역에 조선민족 문학 알리는 한 상하이지식청년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 = "불의에 물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관용을 베풀면서 살아가고 있는 진설홍 번역가가 돋보인다"라고 연변작가협회 우광훈 작가는 말하면서 "진설홍 번역가는 원작에 가...
  • 2010-03-15
  • 한 녀류작가의 희로애락  연변작가협회 창작실 주임 리혜선에 대한 이야기 련속 두기나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고있는 리혜선씨 1980년대 중반에 단편소설 《눈내리는 새벽길》을 《연변문예》에 발표한것을 계기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고 지난 25년간 부지런히 글농사를 지으면서 볼거리가 있는 작...
  • 2010-03-13
  • “선생님의 들창가 지날 때마다”, 교정은 물론 전국에  널리 울려퍼지는 노래,   40, 50대는 물론 20, 30대들도 많이 불러온 이 노래는 작곡가 동희철선생에 의해 작곡되고 《20세기 중국소년아동 10대가요 》등재되면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것이다.이미 신문에 나갔는데 또 취재를...
  • 2010-03-12
  • 최영원의 《련환화전기관》을 찾아서 ㅡ조선족이 북경에 꾸린 첫 개인박물관3월 7일, 필자는 일요일 휴식을 리용하여 CCTV의 이름난 아나운서이며 저명한 조선족 수장가인 최영원선생의 첫 공익성적인 개인박물관ㅡ《련환화전기관(连环画传奇馆)》을 찾아 떠났다. 비록 붐비는 뻐스와 지하철...
  • 2010-03-10
  • 中에 조선족 문화 알리기 한평생 “이번 中정협서 박물관 건립 제안” 유일한 조선족 정협상무위원 이승숙 씨“조선족박물관 건립을 제안합니다.” 3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 제11기 3차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전국정협)가 열리는 인민대회당 입구에서 만난 이승숙 위원(67·여...
  • 2010-03-10
  • 반금시 제2인민병원 리홍수원장   반금시 사상 첫 조선족석사연구생 도사로 2002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반금시제2인민병원 원장에 선임되며 료녕성 의학계의 주목을 끌었던 리홍수씨는 2006년에 중국의과대학 박사과정을 마쳐 반금시 위생계통의 첫 박사로 되였고 지난해에는 료녕의학원 연구생원의 석사연구생도사로 ...
  • 2010-03-09
  • 조선족금융리재의 든든한 뒤심이 되여―중국은행 민족지행 행장 남해금씨의 이야기《조선족들의 금융거래에 편리를 도모하고 상업수요를 만족시키며 민족경제발전에 저그마한 힘이라도 기여하는것이 저의 리상이였습니다. 마침내 그 리상을 실현할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여 가슴이 뿌듯합니다.》 날마다 수없이 드나드는 조선...
  • 2010-03-08
  • 조선족가요계에 떠오른 새별 ― 연변가무단전직가수 강화의 이야기 우리 민요를 불러 묵직한 상을 수차례 수상한 연변가무단 가수 강화― 어려서부터 음악에 싹수를 보이기 시작한 그는 4살때에 이미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에 접근하였고 소학교에서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되였으며 부모의 지지로 연변대학 예술학원 6년...
  • 2010-02-15
  • 비전을 향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연길시 방생진료소 소장 방산옥 박사에 대한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김해란 기자 = "그는 또 환자들을 방문, 병세를 관찰해 나갔다. 치료효과가 좋은 환자들을 보면서 난치병인 전립선 질병과 골반염증 치료에 대한 희망에 들뜬다. 아울러 전립선 임상과정에서의 전립선액의...
  • 2010-02-11
  • 의술연구와 환자진료에 최선을—연변대학부속병원 소화내과 부주임 임분옥간장, 담낭, 이선, 위장도염증과 궤양, 종양 등 질환을 주로 진단하고 치료하고 있는 연변대학부속병원 소화내과는 높은 의술과 량질봉사로 환자치료에 최선을 다해 사회상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고있다. 여기에는 소화내과 부주임 임분옥박사...
  • 2010-02-1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