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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사나이 리주용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4월12일 15시16분    조회:7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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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YBTV음력설문예야회 《아리랑대잔치》에서 웃통을 벗어제끼고 장백산천지에서 힘있게 북을 치며 야회의 서막을 열었던 사나이, 1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근육질몸매와 강렬한 눈빛으로 뭇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사나이 리주용은 2010년 YBTV음력설문예야회 《두만강의 새봄》에서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노래 《라이라크 언제면 필가》를 라틴풍격으로 부르며 다시 한번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성공했다. 

연변인민들에게 새롭게 다가온 어쩌면 생소한듯한 리주용이지만 1994년에 라지오방송극 《간도사나이》의 주역을 맡았고 1995년에는 연변TV련속극 《초연속의 수리개》에서 김동범역으로 연기신고식도 올린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인 연예인이다.
어려서부터 예술에 남다른 기질을 보였던 리주용은 6.1유치원에 다닐 때 선전대에 뽑혀 북병창으로 콩클에서 상을 받았다. 중앙소학교를 다닐 때에도 학교선전대에서 노래와 무용을 배우던 리주용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남자가 예술을 하는것이 맘에 걸렸다. 그래서 저절로 선생님한테 신청하여 선전대에서 축구팀으로 옮겼다.      

한창 축구에 재미를 붙여 푹 빠져있을 때 아버지의 후배가 8.1축구팀에서 소년팀을 모집하는데 원 축구선수들의 자제들을 우선적으로 뽑는다며 리주용을 보낼 의향이 있는가고 제의해왔다. 그러나 리주용의 어머니는 한사코 반대해나섰다. 우선은 집 떠나보내는것이 싫었고 다음은 축구선수로 되면 집식구들이 고생할뿐더러 로임이 적고 고생이 많기때문이였다. 아버지가 북경 8.1팀의 주력선수로 활약하였기에 축구선수가족의 힘든 점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던 어머니는 공부도 괜찮게 하는 아들이 공부로 출세하여 편안한 생활을 하기 바랐다. 더구나 학교축구팀에 들어가서부터는 힘들어서인지 저녁식사만 마치면 곯아떨어지는 아들이 진작부터 아니꼬왔던것이다. 큰 팀에서 활약하고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어머니의 거센 반대로 결국 8.1축구소년팀을 포기해야만 했던 리주용은 락심하여 학교축구팀에서도 자원적으로 나왔다.

어머니의 뜻대로 열심히 공부한 리주용은 당시 성적이 우수해야만 갈수 있는 연길시2중에 입학하였다. 중학교에 입학하여서도 축구를 포기한것이 늘 맘에 걸려서인지 마음이 허전하여 공부에 열중하지 않았다. 그러던중 그에게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는데 바로 영화를 보는것이였다. 그는 아침에 영화표를 떼고 영화관에 들어가면 저녁에야 나왔는데 같은 영화를 반복해 보아도 싫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도 크면 영화배우로 되고싶다”는 꿈이 생겼고 또 “앞으로 크면 일본영화 《추격》의 남주인공처럼 남자답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한편으로는 영화배우같은 몸매를 만들려고 강변에 수영하러 다녔는데 추운 겨울에도 견지했다.

이렇게 사춘기시절에 많이 방황하다가 졸업학년에 올라와서야 대학(영화학원)에 붙어야만 배우로 되고싶은 꿈을 이룰수 있겠다는 생각이 벌떡 들었다. 그는 졸업을 몇달 앞두고 본격적으로 학업에 매진하였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대학입학률이 전 주적으로 최고인 연변1중에 입학하였다. 

연변1중에 입학한후 리주용은 자신의 목표인 영화학원에 대한 정보를 많이 수집하였다. 졸업전 그는 가족들 몰래 려비를 마련하여 영화학원의 면접시험을 보러 북경으로 갔다. 그런데 두번째 시험에서 그만 락방되고말았다. 시험요구가 “소품연기를 해보라”였는데 소품은 TV에서만 보아왔지 연기에 대해 배우거나 련습한적이 전혀 없는 그가 합격될리 없었다.

영화배우외에 별로 하고싶은 일이 없었던 리주용은 졸업시험을 친후 대학진학을 포기하면서 입시를 보지 않았다. 

고중을 졸업한후 리주용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모 기업의 보위간사로 취직했다. 그러던 어느날 연변예술학원의 한 교원이 “목청이 좋아 성악을 배우면 좋겠다”고 귀띔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보니 어쩐지 성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였다. 

영화학원시험을 본 경험으로 이번에는 먼저 음악지식에 대해 배우고 시험을 치기로 마음을 먹은 그는 예술단의 림명옥가수로부터 성악지도를 받았다. 4개월정도 배우고 시험을 보았는데 다시 한번 락방되면서 가수의 꿈을 접을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 배운것이 밑거름이 되여 후에 많은 무대에서 프로급실력을 발휘할수 있었다.
1992년 리주용은 북경TV극제작중심에서 련속극을 찍는데 배역을 맡을 의향이 있으면 와보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는 당장에서 사직서를 내고 북경으로 달려갔다. 조금은 비중이 있는 배역을 맡게 되여 한창 좋아하고있는데 그만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서 얼굴을 알릴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였다.

직장을 버리면서까지 선택한 꿈이 깨지자 괜히 가족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 리주용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북경에 남아 안내원( 游) 일을 했다. 안내원수입은 생각보다 높았다. 그는 몇달간 안내원 일을 하여 번 돈으로 갓 중앙민족학원을 졸업한 동창생과 함께 작은 려행사를 꾸렸다. 작은 려행사지만 수입이 꽤 짭짤했다. 어느새 3년이 흘렀다. 리주용은 랭정하게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그는 이전에 분명히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시작한 돈벌이였는데 언제부터인지 마음이 변한 자신을 놀랍게 발견하였다. 그는 금전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꿈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내가 뭘 하려고 태여났지?”하고 회의를 느끼였다. 

마침 연변방송예술단에서 학원모집을 한다는 소식을 접한 리주용은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으로 인차 등록하여 시험을 보았는데 합격되였다. 비록 성우에 대해 배우는 단계였지만 예술에 대해 처음으로 실천해볼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하였다. 처음에 라지오방송극과 TV련속극의 배음에서 단역을 맡던 그는 라지오방송극 《간도사나이》에서는 주역을 맡으면서 개성있는 목소리로 청취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섰다. 이외에도 그는 밤무대에서 사회도 맡고 노래도 하면서 여러면에서 자신의 예술적재능을 키웠다.

그러던중 그에게 오매불망 바라던 배우의 꿈을 실현하게 될 기회가 왔다. 1995년,  그는 연변TV련속극 《초연속의 수리개》를 제작하는데 배우를 공개모집한다는 공시를 보고 바로 응시하였는데 행운스럽게 김동범역이 차례졌다. 언제나 배우의 꿈을 꾸었던 그는 꿈을 실현하게 되였다는 마음에 한껏 부풀었다. 하지만 연기는 그가 꿈꾸어왔던것처럼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그번 촬영에서 그는 돈주고도 사지 못할 좋은 경험을 얻게 되였다.

련속극촬영이 끝난후 외국행을 했던 리주용은 1998년에 연예인기획사를 설립하였다. 그는 팀원들을 전세계한민족한복모델선발대회에 두번 출전시켰는데 “진선미”중 “미”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하였다.

리주용은 2000년에는 국제태권도련맹으로부터 연변대표로 임명되였고 연길시태권도협회 부회장으로 활약하였다. 당시 국제태권도련맹 연변대표처는 국내 유일한 국제태권도련맹 분기구로서 국내에서의 국제태권도 단증발급, 경기조직(출국경기 포함), 회의 등 일체 국제태권도 관련사무를 단독 책임졌다. 국제태권도련맹에서는 도관을 설치하여 학생들을 양성하였는데 그때 최장진학생은 최년소국제태권도련맹1단 보유자로 되며 이름을 날리기도 하였다. 

리주용은 연예인기획사와 태권도협회의 일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생활이 어려운 소년가장이나 소녀가장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아낌없이 보내주었다. 근 10여년간 그는 집이 없는 애들에게 세집을 맡아주고 집세와 학비를 대주면서 학업을 무난히 마칠수 있도록 도와주군 하였다. 현재 그가 돕고있는 애들은 동생의 뒤바라지를 하고있는 자매를 비롯해 3명이 있는데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꼼꼼히 챙겨주고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일을 하면서도 그는 한번도 자신이 도와준 애들을 만나지 않았다. 직접 카드에 입금시켜주던지 아니면 남을 통해서 도와주었다. 그가 이렇게 하는 리유는 아주 간단했다. 도움을 받은 애들이 자신을 도와준 사람한테만 감사하지 말고 세상에 감사하면서 성장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면서 살기를 바라서였다. 말을 들어보면 쉽지만 행동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더우기 10여년을 하루같이 남을 도와주면서 산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리주용은 “남에게 조금 베풀어주면 나에게 오는것이 더 크다. 남한테 주면서 나는 부자가 된 느낌이다. 또한 애들의 밝은 모습을 보면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면서 “힘든 애들을 도와준것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베푸는것이 주위사람들에게도 물들어 따뜻한 세상이 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털어놓는다”고 솔직히 말했다.

2008년말, 리주용은 연변TV음력설문예야회제작을 맡은 박광춘감독으로부터 2009년 음력설문예야회 서막을 여는 큰북을 쳐보지 않겠는가 하는 제의를 받았다. “새해를 알리는 북을 두드려 전국의 방방곡곡에 널린 우리 민족 리산가족들에게 음력설맞이모임이 시작되였음을 알리려는데 리주용이 어울릴것 같았다”고 선정리유를 밝힌 박광춘감독에게 리주용은 뜻깊고 큰 행사에 불러주어서 너무 감사했다. 

불과 몇초밖에 안되는 공연이였지만 리주용은 출연제의를 받아서부터 많이 련습하였다. 심지어 집에서 북을 어찌나 두드렸는지 한건물에서 사는 이웃들이 찾아온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드디여 촬영날이 되였다. 천지까지 장비를 들고 올라가는것이 실로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제작진을 도와서 장비를 들고 올라간 리주용은 북을 칠 때 힘에 부쳤지만 추운 날씨에 웃통까지 벗고 혼신을 다해 북을 두드렸다. 몸놀림 하나하나에 강렬한 눈빛까지 완벽하게 연기해낸 리주용은 방송에서 불과 1분도 되지 않았지만 시청자들에게서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고 많은 호평을 받았다.

천지에서 촬영을 한 며칠후 박광춘감독이 “수고했는데 식사나 같이 하자”고 련락이 왔다. 식사후 노래방에 가자고 해서 즐겁게 놀았다. 이튿날, 박광춘감독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박감독은 “사실 어제 노래방에서 시험을 본것”이라고 말꼭지를 떼고는 “이번 음력설문예야회에 뮤지컬(음악희극)을 계획하고있는데 남자배우를 찾는중이다. 어제 같이 온 분들이 뮤지컬의 씨나리오, 녀배우, 안무, 제작진이다. 돌아가서 토론하였는데 모두 리주용이 남자배우로 가장 알맞다고 하는데 한번 해보지 않겠는가?”고 물었다. 

뮤지컬은 구경만 하였지 한번도 못해본 분야여서 신심이 없었던 리주용은 완곡히 거절하였다. 그러자 박감독은 “이번 뮤지컬의 주제는 리산가족을 통해 나가있는 사람이나 집에 있는 사람이나 같이 있지는 못하지만 공동한 꿈을 위해 분투하고 다시 상봉하는 아름다운 가족애를 그리는것이다. 생활난때문에 림시로 가족을 떠난 리산가족들에게 말못할 사연이 있을수 있고 아픔과 서러움이 있지만 새해를 맞으며 마음의 위로를 주고 희망과 힘을 북돋아주면 좋지 않겠는가?”고 설득했다. 

시청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줄수 있다는 말에 리주용은 출연요청을 받은게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꺼이 출연제의를 받아들였다.
리주용은 한달간의 집중훈련을 통해 연변가무단 전직가수 황매화와 함께 성공적으로 뮤지컬 《그대 없이는》을 연기하였다. 이는 연변에서 처음으로 있은 뮤지컬이였고 특히 전 주적으로 시청률이 가장 높은 음력설문예야회에서의 새로운 도전이였다.
금년에도 음력설문예야회에 초청받은 리주용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노래 《라이라크 언제면 필가》를 라틴풍격으로 부르며 뜨겁고 강렬한 라틴무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이토록 여러가지 쟝르를 무난히 소화하면서 대중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은 리주용은 “앞으로도 우리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줄수 있는 무대에 많이 서고싶다”고 밝혔다.
사랑을 베푸는 행복전도사 리주용의 끊임없는 도전이 대중들에게 많은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줄것을 기대해본다.
                                                         

연변라지오TV신문    최설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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