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박창송-장애 딛고 10여년 달려온 창업의 길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5월31일 19시34분    조회:914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1급 지체장애인 박창송(35세)씨가  훈춘에 “창명컴퓨터봉사부”를 꾸린지도 어언 10여년이 된다.

박창송씨는 선천적인 연골병으로 두다리가 마비되면서 9살에야 겨우 소학교에 입학, 학습성적이 줄곧 앞자리를 차지하였지만 6학년때 병이 더 악화되여 더는 학교에 다닐수 없었다.그때로부터 그는 병마와 싸우는 한편 굳센 의력으로 자습의 길을 선택하여 초중과목과 고중과목을 다 떼였다. 1997년부터 주해동방과학기술대학 통신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기도 했다.

1996년,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간후 동생이 대학에 입학하였는데 어머니 혼자 힘으로 뒤바라지하기 어려웠다.이런 형편에서 그는 친척, 친구들에게서 돈을 꾸어 2년 동안 식품가게를 경영, 하지만 동생의 학잡비를 이어대기가 여간만 어렵지 않았다.

그는 1998년, 시장애자련합회에서 경영하는 립원컴퓨터쎈터에서 4개월 동안 컴퓨터 지식과 기술을 배웠는데 학습성적이 뛰여나 지도교원으로 남게되였다. 3개월 동안의 실천을 통하여 컴퓨터양성쎈터를 꾸리려는 의지를 굳히게 된 그는 낡은 “586”컴퓨터 한대를 얻어놓고 2명의 학생을 받아들이고 오전에 한사람, 오후에 한사람씩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2001년 여름방학때에는 컴퓨터 5대를 사놓고 13명의 학생을 받아들이고 컴퓨터지식을 전수하였다. 2003년 6월에는 시장애자련합회와 김계화, 리철씨의 도움으로 10대의 컴퓨터를 더 사놓았다. 그후 130평방메터 되는 교실과 사무실도 마련하였다. 컴퓨터도 35대로 늘어났으며 교원도 4명으로 늘어났다.“아름다운 래일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창명컴퓨터양성쎈터”를 설립. 복사기, 타자기, 스캔(扫苗器)  등 교수시설도 갖추었다.

동시에 간단한 사무용 소프트웨어로부터 평면설계, 광고설계, 장식설계,영화텔레비후기제작, 하드웨어수리 등 내용을 배워주는 한편 컴퓨터수리와 복사, 스캔, 팩스 등 봉사업무도 시작했다. 평소 30여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방학이면 50여명의 중소학생을 가르치고 또 저녁에는 사무원들을 대상하여 학습반도 꾸렸다.

10여년간의 노력을 거쳐 지금은 2층(1층 컴퓨터상점, 2층 컴퓨터교실)으로 된 영업실과 25만원 상당의 고정자산을 갖춘 회사로 발전했다. 10여년동안에 “창명컴퓨터양성쎈터”를 졸업한 학생은 3000여명이 되는데 그들은 전국 각지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있다. 적지 않은 학생들은 국외에 진출하여 컴퓨터회사에 출근하기도 한다.

열심히 창업해 성공한 그는 현재 불우이웃 돕기와 사회환원에 적극 나서고있다. 그는 극빈호자녀와 장애인들에게 학비를 15% 감면해주고있다. 연변텔레비죤의 “사랑으로 가는 길” 특집프로를 통해 3명의 장애자가정을 도와주었으며 생활난에 허덕이는 빈곤호와 장애인가정에 입쌀, 콩기름, 부식물 등을 보내주는 자선활동도 적극 벌렸다. 그는 2004년과 2005년 련속 시와 주 장애자련합회의 선진일군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리철억기자 정창선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변농악무》와 나의 아버지 하태일 50년대 흥겨운 농악무의 한장면, 앞줄 꽹과리를 손에 들고 앉은 자세로 춤추는 사람이 하태일선생 《연변농악무》는 그 화려하고 다채로운 예술형태로 공연에서 마지막 종목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관중들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력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있다. 우...
  • 2012-08-05
  • 금융위기 실패 딛고 선 조선족사나이 편집/기자: [ 김웅견습기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2-08-03 09:56:38 ] 클릭: [ ] -연변가신경제무역유한회사 최중철사장을 찾아 최중철(35살)이 연길시 애단로 흠전빌딩에서 한국KCC금강화학공업 장판무역을 시작한것은 2010년 3월이다. KCC 장판은 친환경재료로 제...
  • 2012-08-03
  • -중국프로축구 최년소감독 북경팔희팀 최은랑씨를 만나   19세기 50년대로부터 “축구의 고향”으로 불린 연변은 수많은 축구인재들이 용솟음쳐나왔지만 대다수가 선수로서만 꽃을 피운 축구인들이였다.   특히 1992년 중국축구 프로리그가 개시되면서부터 연변팀 이외의 타팀에서 고삐를 잡은 조선족...
  • 2012-08-02
  • 건군절을 며칠 앞두고 필자는 중국인민해방군 공군대좌 리광남을 만나 함께 식사하고 주숙하는 기회를 만났다. 리광남은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장비부 고급공정사, 전문기술대좌다  리광남(1950년출생)은 1970년에 참군, 1995년 대좌계급을 수여받았다. 그는 선후로 과학연구항목 수십건을 완수하여 1, 2, 3등 공을 각각...
  • 2012-07-30
  • 김숙자 재한동포총연합회 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 "조선족 동포들은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20년 동안 묵묵히 했어요. 한중 수교 후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는데, 앞으론 눈치 덜 보고 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내 최대의 조선족 동포단체 재한동포총연합회가 재한다문화총연합회로...
  • 2012-07-27
  • 연변일보   암을 선고받고도 자기의 일터를 꿋꿋이 지켜온 녀성이 있다. 딸로서 엄마로서 또한 수감인원들의 “큰언니”로서 병마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씩씩하고 충실하게 보내는 그가 바로 돈화시간수소의 유일한 녀경찰 김해옥(46세)씨이다. 수감인원 관리사업에 몸 잠가온 9년간 그녀는 녀성 특유의 섬세...
  • 2012-07-27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 3세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한국 증권업계 전산(컴퓨터 관련)인력가운데 유일한 중국인으로 조선족 김성희(33)씨가 현재 대우증권에서 근무하고있다.   최근 몇년 한국증시에 상장하는 중국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한국금융의 중심지 서울 여의도에 중국인 전문인력도 증가하는 추세다.   ...
  • 2012-07-26
  •   -서예학박사 조선족 서영근교수의 잊지못할 “통신학습”   지난 20세기 90년대초 한글서예로는 불모지대와 다름없는 연변에 서예에 심취해서 침식을 잊은 20대의 청년이 있었다. 굶주린 사람이 빵을 먹듯 서예에 대한 집착과 여러 대회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되는 등 천부적인 소질로 주위의 이목을...
  • 2012-07-26
  • http://hljxinwen.dbw.cn   2012-07-25 10:16:43             흑룡강성 할빈적 권기민 미국 하버드대 연구원으로 임용   (흑룡강신문=하얼빈) 정봉길 기자 김세영 견습기자 = 흑룡강성 할빈적 권기민(조선족,28세)씨가 올해 미국 하버드대학 물리학부 광학전공 박사과정을 마치고 하버드대...
  • 2012-07-25
  •   공식석상에서 늘 빛갈고운 한복차림이였던것과는 대조적으로 인터뷰시 검은색 블라우스를 입은 함순녀(48세)한테서는 차분한 카리스마가 풍겼다. 현재 연변가무단 부단장이자 연변무용가협회 주석인 함순녀는 오로...
  • 2012-07-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