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차태선-가슴으로 일하면 동전이 쌓여 산이 된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6월28일 14시32분    조회:831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요즘 같이 교정내 “묻지마폭행”이 빈발하는 세월에 “학생들의 안전은 내가 책임진다”는 사람이 있다. 소문을 듣고 차태선씨(56)를 만났을 때 수더분하고 인자한 모습에 믿음부터 앞섰다.

심양위루스쿨뻐스유한회사 총경리를 맏고있는 그는 여러 차종의 승용차 198대를 움직이고있었다. 동시에 1,500명의 고객을 운송할수 있는 규모급 운송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지만 학생들의 통학을 맡아하는 스쿨뻐스만은 자신이 직접 운전수와 동행하여 매일 호송하고있었다.

2009년 8월부터 심양한국국제학교 학생 20명의 통학운송업무를 시작해서부터 매일 직접 운전수와 함께 학생들을 운송하기 시작, 학생 한명한명씩 손을 잡아 교문에 들여놓고 또 하교길에는 한명한명씩 목적지에 호송하고서야 다른 업무를 보군 했다. 그의 높은 책임감은 한국인 학부모들을 감동시켰고 소문이 퍼지자 심양 서탑조선족소학교의 일부 학부모들도 학생호송업무를 의뢰해왔다.

“서비스는 몸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것입니다. 매 한명의 학생들을 내 자식처럼 생각한다면 절대 등한시할수 없지요.”
차태선씨의 창업일기를 보면 동전 한푼한푼씩 모아온 “수전노”의 창업사였다.

개혁개방초기에는 심양시 심북신구 흥륭태진 건신촌에서 가마니짜기부업을 주도하여 촌에서 집집마다 생산하는 가마니 판매를 책임졌었고 1991년에는 음식점을 경영하다가 1993년 로씨야행에 나섰다. 로씨야 최동단 울라지보스또크로부터 모스크바까지 사이를 일주하며 2년간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 10여만원이 모아지자 귀국, 8개월후 또 한국행에 나섰다.

한국에서 기계설비업체에 출근하면서 한국 전역을 일주한 그는 나중에 한국삼성그룹에 취직하여 표창장까지 받는다. 조선족으로서 국제적인 대그룹 삼성의 표창장을 받기는 그가 처음, 한국인들도 받기 어려운 표창장을 받은 감회를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내일처럼 생각하고 진심으로 한다면 잘해내지 못할리가 없지요.”

2004년 귀국한 그는 외국에서 어렵게 번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왔다.

(모진 수모들 당하며 뼈빠지게 번 돈을 저렇게 써버리고는 또다시 수모를 당하러 가야겠지…)

차태선씨는 그들의 앞날을 보는듯 했다. 그는 한국에서 배운 기술과 모은 자금으로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작심했다.

건축장식업을 해보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하던 그는 어느날 조카를 만난다. 커피자판기업무를 하고있는 조카가 수지가 맡지 않는다며 그만둘 의향을 내비쳤다. 당시 심양시에는 커피자판기업무를 하는 사람이 여럿이였다. 경쟁이 심한데다가 박리여서 젊은 조카의 구미에 맡지 않았던것이다. 차태선씨는 눈이 반짝 빛났다. (열심히 한다면 안될리가 없지.) 그는 즉시 조카의 업무를 인수하고 커피자판기업무에 돌입했다.

커피자판기업무란 자판기를 판매하거나 혹은 자판기를 무료로 임대해주고 커피를 공급하는 사업이였다.

처음에는 그도 고배를 마셔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넓디넓은 심양시 곳곳을 일주하며 고객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커피보다 차를 선호하는 중국인들에게 커피를 권장한다는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래도 인구류동량이 많은 대형 회사들에는 희망이 있어보였다. 심양시내 대형 회사들을 한번 또 한번 찾아갔다. 그의 끈질김에 감복했는지 아니면 그의 성실한 말투와 외모에 끌렸는지 하나 둘 가슴을 열기 시작했다.

마침내 대외무역국, 망통 등 대형 기관과 회사들에 30여개의 자판기를 설치하고 또 성내 각 지역에 30여대의 자판기를 판매하는 실적을 올렸다.
자판기를 설치한 회사들에는 매일마다 순회하면서 커피를 주입하고 자판기에 입력된 동전을 거두어들여야 했다. 심양시 각 지역에 널려있는 이런 회사들을 자전거를 타고 한바퀴 돌고나면 몸은 한겨울에도 땀벌창이 되고 가방에는 20킬로그람이 넘는 동전들이 절렁거리였다.

보잘것없는 동전벌이였지만 보람이 있었다. 매달 몇천원씩 모아지는 돈으로 우선 차 한대를 마련했다. 이렇게 시작된 동전벌이는 운송회사 사장이 된 지금도 쭉 이어지고있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느날 심양한국국제학교에서 근무하는 친구를 통해 학생운송업무를 위탁받은 그는 인터넷에서 스쿨업무 관련 정책을 상세하게 료해했다. 해당 영업집조도 없고 운송력도 없었던 그는 합작경영을 떠올렸다. 하여 심양위루스쿨뻐스회사와의 업무협약도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즉시 10인승 봉고차 한대를 구입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한국국제학교 학생들은 모두 외국학생들로 안전문제를 소홀히 할수 없었다. 그는 매일 친히 학생들을 호송하면서 등교시에는 학생의 손을 교사에게 넘겨주고 하교시에는 학생의 손을 부모의 손에 넘겨주고야 시름을 놓았다. 그의 진심어린 서비스는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져 한달후에는 10인승 봉고차를 19인승으로 바꾸어야 했다.

지금도 매일마다 학생들의 호송시간을 어김없이 지킨 다음에야 다른 업무를 보는 그는 향후 자신만의 스쿨회사 경영이 꿈이란다. 하지만 동전벌이인 커피자판기업무도 버리지 않을 타산이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차태선씨는 불룩한 동전주머니를 들어보이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가슴으로 일하면 동전이 쌓여 산이 되지요!”                                             

인터넷료녕신문 김룡호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백청강의 모교를 찾아서   림금산 안해연   우리가 백청강의 모교를 찾아 떠난것은 청강이가 서울에서 열린 MBC 스타오디션'위대한탄생-그랜드파이널'에서드디어1등을따내조선족사회에크나큰센세이숀을일으킨바로나흘후즉5월31일이른아침이였다. “청강이는 조선족의 자존심을 연출했다, 청강이는 ...
  • 2011-07-08
  • 한석윤 퇴직후 사재 털어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설립 한석윤 시인 어린이들과 함께.   (흑룡강신문=연길)약 40년간 조선족 청소년 사업에 몰두한 한 조선족 지성인이 있는데 그가 바로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전임 사장인 한석윤 씨(1943년 출생)이다.   퇴직후에도 지속적으로 청소년사업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 2011-07-08
  •   (흑룡강신문=하얼빈)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도시 연길에서 “코스모(考世茂)”는 조선족전통음식업계의 대표적 브랜드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있다. “코스모”는 대우주라는 뜻의 영음간칭이나 코스모스라는 쑥꽃의 준칭으로 아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조선족민속음식업의 한길을 헤쳐온 &ldq...
  • 2011-07-08
  •   중국농촌개인사이트 CEO 조동철  (흑룡강신문=하얼빈 2011-07-07) 료녕성 심양시의 조동철(34세)은 중국에서 가장 일찍 농민이 구축하고 운영하는 '중국농촌중개인 사이트'를 개설하고 몇년 사이에 일약 농민 CEO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그는 전국적으로 1400여명의 중개인 협력자를 모집했으며 2만...
  • 2011-07-08
  • 성공적인 삶의 길잡이 되여 (사)이주·동포정책연구소 문민 연구위원을 만나 근무중에 있는 문민위원 [길림신문 2011-07-04 전춘봉 특파기자] 재한 조선족 삶의 현장에 관심이 많다보니 자주 관련 사이트를 열어보게 되었는데 문민이란 이름이 자주 눈에 띈다. 어느 한 사이트에서는 《문민의 함께 하는 세상》이라는...
  • 2011-07-07
  • 연변대학교 전임 교장 박문일 [길림신문 2011-07-04 ]나는 위대한 당의 은덕으로 연변대학교의 제1기생으로, 62년의 연변대학교 동반자의 한사람으로 80고개를 눈앞에 두고있는 리직교수이다. 당 창건 90돐을 맞아 학교와 그속에서 걸어온 60년을 돌이켜보면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이 없다》는 우리 중화민족의 애창 대...
  • 2011-07-05
  •   (흑룡강신문=하얼빈 2011-06-30) 박룡수 = 중국의 첫 집체농장으로 알려진 성화집체농장의 개척자 고 리재근(1920- 2006년)은 1949년 입당으로부터 2006년 서거까지 57년 당령. 1951년 첫 집단농장때로부터 1983년까지 장장 33년을 촌지부서기로 사업하면서 많은 영예를 떠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땅과 더...
  • 2011-07-01
  • 영웅적 민족 빛나는 발자취 우리 민족 선배들이 북만땅에 남긴 영광스러운 발자취   (흑룡강신문=하얼빈2011-06-30) 김철진, 김해란 기자 = 당창건 90돐에 즈음하여 북만지역(오늘의 흑룡강성)의 우리 민족 선배들이 당이 령도하는 혁명투쟁에서 남긴 영광스러운 발자취를 더듬어보기 위해 기자는 흑룡강성당사연구소 전...
  • 2011-06-30
  • <!--advertisement code begin--><!--advertisement code end-->   (흑룡강신문=하얼빈2011-06-28) 정봉길기자 = 40여년간 조선어 교육과 연구에 집념해 눈부신 성과를 따낸 이가 있다. 주인공은 전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의 서영섭교수(77세)이다.   서교수는 1957년에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이 대학의 교사...
  • 2011-06-28
  • “글로벌시대 무역정보 빨리 장악하라” [흑룡강신문 2011-06-24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김봉운 연변왕달무역유한공사 총경리의 환동해무역노하우김봉운총경리 프로필 교육배경:  1953년 1월 21일생  1987년 연변조선족자치주 당학교 졸업  1989년 중앙당학교 경제관리학 졸업  2008년 연변과학기술대학...
  • 2011-06-2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