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최수송- 저명한 조각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11월2일 15시34분    조회:716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정말 감개무량 합니다!》 
저명한 조각가 최수송씨를 만나

[길림신문 2010-11-02 오기활 기자]《두만강조각공원은 민족성이 독특하고 내용이 다양합니다. 연변에 조각공원이 있다는것 자체가 대단합니다. 더구나 연변의 첫 조각공원이 나의 고향 도문에 있으니 더욱 감개무량합니다.》

《반세기만에 꿈이 실현되였습니다. 김기덕시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10월 25일, 풍치좋은 일광산허리에 자리잡은 《두만강조각공원》을 처음 찾은 최수송(崔壽松)씨가 흥에 겨워 하는 말이다.

그가 진정 감개무량할만도 하다. 1965년 8월에 중앙미술학원을 졸업하고 춤과 노래의 고향인 연변에 조각예술을 발전시키겠다는 꿈 하나로 연변에 돌아온 그에게 지금까지 연변이 좀처럼 그의 생각을 따라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준비된 조각가

최수송은 1940년 6월 5일(음력)에 도문에서 태여났다. 글쓰기를 즐기다보니 약처방도 붓으로 쓰는 그의 부친은 수송의 성격을 진맥해 보고 그한테 가업계승을 기탁했다. 아버지는 어린 수송에게 붓글씨를 배워주면서 혹시 그가 왼손으로 발가락을 만지작거려도 《정신을 어디에 파냐?》고 호통을 치면서 아들의 정신집중력을 키워주었다.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수송은 소학교서법경기에서 붓글씨 1등을 따냈다. 붓글쓰를 계기로 하여 최수송은 그림 그리기와 나무깍기에 흥취를 가졌고 장춘조선족중학에 다닐때는 미술써클조 조장을 맡고 담임선생님의 지도하에서 그림그리기와 조각에 입문하였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이면 장춘시소년궁미술반에 다니며 조각을 익혔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1959년, 최수송은 동등한 문화시험외에도 엄격한 조각실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우수한 성적으로 중국미술가의 요람이며 중국미술계의 최고학부인 중앙미술학원조각계에 입학하였다.

6년제인 중앙미술학원 조각계에서 조선족으로는 최수송이 첫 학생이다. 그러니까 중앙미술학원을 나온 조선족조각가로서는 최수송이 제1인자인 셈이다.

스승들 덕분에

최수송은 《나의 오늘은 훌륭한 스승님들 덕분이다》고 늘 말한다.

그의 스승이며 조각계의 주임인 활전우(滑田友)는 프랑스류학생이다. 당년에 그는 자기의 누드작품을 기선으로 중국에 전부 실어왔었다.

그의 스승이며 반주임인 전소무(錢紹武)는 쏘련 레뻰미술대학수석졸업생이다. 이외에도 저명한 서양화가 대택(戴澤), 저명한 중국화가 육홍년 등 명인들이 최수송을 가르쳤다.

최수송은 자기의 계몽선생은 6년간 계속 반주임을 담임한 전소무란다. 전소무의 창작사상과 예술기교는 수송에게 조각가의 정도(正導)를 가르쳐 주었다. 전소무는 조각가, 화가, 평론가, 서예가였다.

그의 친필 붓글은 프랑스대통령(시라크)에게 증송되였다. 인격이 고상하고 학식이 풍부한 전소무는 수송이를 특별히 총애하였는데 수송이가 졸업한 후에도 수송에게 붓글씨편지를 보내왔으며 지금도 수송이를 만날때마다 자기의 누드조각을 선물한다. 1987년에 최수송이 《전국성시조각설계창작자격증서》를 획득하고 중국인민외교학회와 중앙미술학원조각계의 추천과 나라의 파견으로 2년간 일본동경환경조수연구소의 연수생으로 공부할때도 《편벽한 지방에 갔으니 눈을 뜨라》며 진소무가 특별히 추천하였다.

《강한장수에게 약한 병사가 없다》더니

최수송은 자기의 수많은 작품중 《로신상》, 《황우》, 《풍수》, 《농악무》를 대표작이라 한다.

《로신상(魯迅像)》은 《연변조선족자치주도서관》락성을 위해 창작한것이다.

위대한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인 로신은 그가 제일 숭배하는 인물이였다. 그는 일찍부터 로신의 사진과 우표를 수집하면서 로신의 전집을 통독까지하였다. 로신의 《매서운 눈초리로 천부의 손가락을 대하고 머리숙여 유자의 소가 되련다》는 그가 제일 즐기는 명구란다.

《로신상》창작에서 최수송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형식(삼각 피라미드)과 내용을 융합시켰다. 중국의 다른 《로신상》들은 거의 모두가 립상(立像)이 아니면 대나무의자에 앉은 좌상(坐像)인데 최수송은 삼각석조형식을 취하였다.

지난 10월 25일, 최수송은 도문친구 박상룡댁을 방문하며 박상룡이 선물하는 《매서운 눈초리로 천부의 손가락질을 대하고 머리숙여 유자의 소가 되련다》는 친필족자를 받고 평생소장품으로 귀중하게 모시겠다며 기뻐하였다.

《황우(黃牛)》는 화룡시 화룡대교교두에 설립한 4좌상이다. 석재는 산동성에 가서 붉은 화강암으로 선택했다.

《황우》의 신장은 4메터나되는 통돌로 받침석의 길이가 6메터나 된다. 《황우》는 웅장하고 체적감과 공간감이 뛰여났다. 수송이가 황소와 특별이 인연을 맺게 된데는 《문화대혁명》때 농촌서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황소의 우직함과 신근함을 배우고 《머리숙인 유자의 소》를 보고 실감하였다고 한다.

《풍수(豊收)》는 연길시영빈교(迎賓橋)》의 립상인데 역시 재료는 산동에 가서 한백옥으로 선택하였다.

최수송이 주당위당학교 농촌공작대로 룡정과수농장에서 로동을 하던 어느날, 장춘영화촬영소에서 이 농장에서 영화를 찍었는데 아름다운 민족옷차림을 하고 사과배를 따는 조선족처녀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떠오르던 령감을 아름답고 민족성이 깊은 작품으로 창작하였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연길성보호텔의 정영채회장이 1992년 가을에 처음 연변에 왔을때 바로 영빈교의 《풍수》를 보고 《여기가 바로 내가 꿈속에서 찾아 헤매던 고장이구나!》라며 연변진출의 용단을 내렸다고 한다.

일본에서 연수할때 그의 작품 인물추상조각이 도꾜도 기다소노고중(東京都北圓高中)락성식때 입선되였다. 그때 일본동경환경조수연구소디자인실에서 4가지 작품을 추천했는데 최수송의 작품이 선택된것이다.

한국에서 최수송이 창작한 력대대통령흉상작품이 한국인들의 많은 호평을 받았다.

《두만강조각공원》에 가면 령감이 신이 나게 꽹가리를 치고 로친이 흥에 겨워 춤을 추는 《로인무》가 관광객들의 눈길을 모은다.

《로인무》는 최수송의 최근작품이다.

최수송은 《8.15》로인절에서 《로인무》의 창작감각을 찾았다고 한다.

지난 8월 초, 최수송은 《두만강조각공원》에 작품을 내 놓으라는 통지를 받고 다른 사람들의 입선된 작품들을 보니까 우리민족의 예술특색을 살린 조각들이 많기는 한데 거개가 동체기초석립상이였다. 이에 남다른 감각을 찾은 최수송은 전통적전례를 타파하고 원래 두 인물을 한 기초석에 합쳤던 작품초고를 대담히 수개해 별립(別立》을 했더니 동업자들과 권위인물들로부터 《둘 사이에 공간이 있어 작자나 관객에게 추상적인 영상장면을 주며 작자나 관객들에게 친히 동참하는 감각을 준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로인무》를 창작하며 최수송은 작품의 완미성과 진실성을 위해 연변가무단무용배우 두 명을 전문 청해다가 조선춤동작을 표현시켰고 악기 선택도 장구나 북과 같은 큰 악기가 아니라 절주가 분명하고 소리가 쟁쟁하며 성수가 나는 작은 꽹과리를 선택하는것으로 주인공인물을 크게 부상하고 《배경, 색채가 없이 경질성물체로 사람들게 영상을 주는》 조각의 《언어》를 표현시켰다.

시대의 상징

《예술을 뛰여나게 하려면 모주석의 정익구정(精益求精)>정신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등소평은 예술은 <조잡하게 만드는것이 아니다(不能粗製濫造)>고 하였다. 》

이렇게 말하는 최수송은 한마디로 말하면 조각은 《시대의 상징》으로서 파리의 《개선문》, 쏘련의 《로동자와 농민》, 미국의 《자유녀신상》, 중국 천안문광장의 《화표》등은 모두 시대의 상징이란다.

계속하여 최수송은 《저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자기는 돌속에서 갇혀있는 인간을 끄집어 내기 위해 돌을 깍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화폭은 만지지 않으나 조각은 거의 다 만져보는데 그것은 조각에는 난류가 흐르기때문이다》고 말한다.

《조각의 기본은 기본공이다. 기본공이 튼튼해야 개성적인 창작을 마음대로 할수 있다. 아니면 남의 뒤꽁무니만 따르게 된다.》

이런 사연때문으로 최수송은 50년간 남의 뒤꽁무니를 따르지 않았다고 부언한다. 필자는 우리의 연변땅에 중국공업미술학회 고급회원이며 저명한 조각가 최수송이 당당하게 서있는것으로 하여 더욱 자호감을 느낀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孫文 만난 뒤 중국공산당 입당 사해에 도착한 그는 프랑스조계지에 있던 임시정부를 찾아갔다. 하지만 당시 임시정부는 재정형편이 취약해 그의 생계를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는 당시 조선인들이 주로 취직하던 전차회사의 차장노릇을 하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때 그는 어릴 때 잠시 접어두었...
  • 2005-11-04
  • [원제:동포 1.5세 여성 미 해군 부대장 `우뚝'''' ] 미군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인사지원부대(PSA)장이 동포 1.5세 이연미(40. 미국명 앤리 쿠베라) 중령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30일 미주중앙일보에 따르면 5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한 이 중령은 뉴저 지에서 중.고교를 마친 뒤 버지니아대 국제관계학을...
  • 2005-11-04
  • 조국독립을 위해 고향을 떠나다 1898년 중국용정에서 태어난 한낙언은 어릴 적부터 남다르게 그림에 재간이 있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유민이 되어 조국을 떠난 가난한 조선인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체계적인 그림공부를 할 기회를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이었을 것이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에 부친이 병으로 돌아가...
  • 2005-11-03
  • 본사소식(윤선일)" 최근 단동출입경 검험검역국에서 료해한데 따르면 10월에 들어서면서 단동랑두항구로 무연탄을 싣고 입항하는 조선 화물선이 부쩍 늘고 있다. 해당인사의 소개에 의하면 10월부터 겨울 난방기에 들어서고 국내 화력발전소에서 대량의 석탄을 수요로 하며 질 좋은 조선의 무연탄이 중국에서 각광을 받으면...
  • 2005-11-02
  • 흑룡강동원상업무역유한회사 —망규동원화원주점 개업 선언 본사소식( 기자 최계철) 조선족청년기업가 박광종(39세)이 이끄는 흑룡강동원(同源)상업무역유한회사는 상업,무역, 부동산업을 병진시켜 창업 12년만에 총자산 1억 2000만원에 7개 자회사를 둔 그룹으로 급부상했다. 이 회사 산하 흑룡강 망규화원주점이 10월...
  • 2005-11-02
  • 1947년 비행기 추락사고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7년 7월 30일, 실크로드에 세워진 도시 우루무치를 떠나 란저우로 향하던 국민당소속 257호 비행기가 자위관상공에서 악천후를 만나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광활한 중국대륙의 오지에서 일어난 추락 사고는 자칫 긴박한 내전 상황 속에서 중국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영...
  • 2005-11-02
  • 클린턴과 골프 친 뒤 성금 50만불 쾌척 '1,000만달러의 소녀' 미셸 위(위성미)가 지난 31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서던하일랜즈골프클럽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가졌다. 미셸 위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 날 골프 만남은 프로 전향 때 발표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 돕기 성금 5...
  • 2005-11-02
  • 붓으로 새로운 세상을 굼꾸다 총이 아닌 붓으로 새로운 세상을 그려보자고 했다는 한낙연. 최용수교수도 한낙연이 중국에 알려진 것에 비해 정작 조국인 한국에서는 그를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하긴 그런 인물이 어디 한둘이랴. 널리 알려진 스타에만 초점을 맞추는 세상 탓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도...
  • 2005-11-01
  • [원제:홍광정신 실천으로 조선족 명예 찾겠다 ]  “한국정부에 리홍광장군의 명예회복을 수차례 요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반응이 없다.”  지린성 반석시 홍광중 교장을 역임한 이주산(李柱山·72)선생은 오랫동안 항일운동가 리홍광장군을 연구해온 인물. 아마도 중국 동북지방에서 그 만큼 리홍광장군에 대해 잘 알...
  • 2005-10-3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