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조동주-연변형봉시정공정유한회사 총경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12월28일 09시16분    조회:797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고향건설을 사명으로 여기고
[연변일보 2010-12-28 조창호 기자] —연변형봉시정공정유한회사 총경리 조동주씨 고향의 유기입

연변형봉시정공정유한회사 총경리 조동주(42세)는 고향에서 창업하여 고향마을의 유기입쌀산업과 관광산업의 발전을 적극 추진하고있다.

조동주는 화룡시 숭선진 태생이다.  1986년에 인민해방군에 참군하여 1989년에 부대에서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제대한후  주교육국산하의 기관에서 운전기사로 사업하다가 1994년부터는 적을 단위에 남겨두고 하해하여 자주창업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는 선후로 운수업, 석탄도매에 종사하였고 지금은 부동산개발을 위주로 하고있다. 지금 그는 부동산개발회사외에도 1개의 민영양로원, 4개의 관광지를 가지고있는데 고정자산은  3000만원, 올해의 생산액은 5000만원에 달한다.

자주창업에 성공하여 일정한 경제실력이 있게 되자 그가 제일 먼저 생각한것이 고향건설이였다. 조동주는 《고향은 할아버지가 피흘려 지킨 땅이고 아버지가 평생의 심혈을 몰부운 고장이다. 때문에 고향건설에 공헌하는것은 나의 사명이다》고 말하고있다.

조동주의 할아버지 조기률은 일찍 1946년에 참군하여 7년간의 전쟁터에서 피흘려 싸웠고 영급간부로 성장하였으며 선후로 대공 2차, 소공 5차 세우고 많은 훈장을 수여받았다. 가렬처절한 전투에서 한팔을 잃고 2등갑영예군인으로 1952년에 고향에 돌아온 그의 할아아버지는 의연히 고향건설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였었다. 그의 아버지 조만웅은 숭선땅에서 선후로 생산대장, 촌당지부서기, 공사농구공장당지부 서기, 공사공소합작사당지부 서기, 향당위 선전위원, 향당위 부서기, 향인대 주석 등 직무를 력임하면서 평생의 심혈을 숭선땅에 몰부었었다.

조동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이미 고인으로 되였지만 선인들의 뜻을 이어받아 고향을 잘 건설하는것은 자신의 밀어버릴수 없는 사명으로 간주했다.

조동주는 2006년부터 륙속 고향건설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숭선진은 두만강상류의 첫 행정구역으로서 강에 오염이 없고 경내에 공업기업소가 없어 공기오염도 없어 이곳에서 생산하는 입쌀은 말 그대로 생태입쌀이다.  이 우세를 보아낸 조동주는 2006년에 고향에 유기입쌀생산회사를 세웠는데 이미 980만원의 자금을 투입하였다. 그는 한국으로부터 선진 가공설비들을 인입하여 가공의 차원을 높이고 포장도 다양하게 정밀하게 했다.

진지도부와 손잡고 농민들과의 주문농업을 실시하고있으며 생산전, 생산중, 생산후의 전방위적인 봉사를 제공하고있다. 현재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숭선》표 유기입쌀은 시장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고있다.

이 회사의 《숭선》표 유기입쌀은 일전에 해당 부문으로부터 주량질입쌀브랜드제품으로 인정받았다. 이 유기입쌀은 상해, 련운항 등 대도시들에도 널리 판매되고있으며 일전에 있은 상해박람회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유기입쌀회사가 있어 숭선진의 농민들의 수입이 늘언났다.  올해에도 조동주는 농민들에게서 벼킬로그람당 시장가격보다 0.40원 더 비싼가격으로 벼를 사들였다.

조동주는 2006년에 홍기하민속휴가중심을 건립하고 선후로 180만원을 투자하여 기초시설건설을 진행하였다.이 휴가중심에서는 홍기하표류종목을 개발하였는데 표류에 사용하는 고무배만도 22척이나 된다. 장백림해의 심처에서 쏟아져나오는 맑디맑은 홍기하를 표류하면서 량안의 즐비한 괴암괴석과 기야화초들을 만끽하는 이 종목은 갈수록 인기도가 높아지고있는데 올해에만도 연인수로 1만여명의 관광객을 접대하였다.이 휴가중심은 숭선진의  취업에도 큰 역할을 하고있다. 30여명의 당지청년이 홍기하표류에 일군으로 채용되였다.

조동주는 특종동물양식장도 세웠다. 사슴, 삼림돼지, 소를 주로 사양하고있다. 명년에는 280만원을 투자하여 면적이 2000평방메터에 달하는 별장식휴식청사를 홍기하폭포유람지에 건설하려고 이미 기초까지 다 쌓은 상태이다.

조동주는 늘 고향사람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올해 고성촌의 곤난호 모씨네가 새집을 지을 때에도 벽돌, 문틀, 출입문 등 물자를 무료로 제공하였는데 그 가치는 9000여원에 달한다. 지금 그는 2명의 불우한 고향의 아이를 도맡아 키우고있는데 새해에는 2명을 더 도맡을 타산이라 한다. 그리고  올해 《8.15》로인절에도 고성촌의 로인들에게 2000원의 활동경비를 마련해주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2월 11일 오전, 2012년 연변TV 양력설특집 촬영차로 연변을 찾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정원수씨를 만났다. 엔티테인먼트 소속 명휘씨(가수)도 동행했다.   정원수 그는 누구인가   정원수씨는 노래 “북경아가씨”, “로무현 추모곡”’등 많은 노래를 작사, 작곡했다.   1960년, 한...
  • 2011-12-12
  • [료녕조선문보 2011-12-09 김룡호기자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25) -대련선성물류 엄광철리사장을 만나다 엄광철(厳光鉄)프로필   1975년 5월 길림성 훈춘시 출생 1995년 7월 연변대학 졸업 1995년 8월-2003년 12월 한국우진글로벌로지스틱스(주)대련사무소 대표 2000년 9월-2002년 12월 청화대학 EMB...
  • 2011-12-09
  • 연변가무단 가수 겸 타악기연주원 김상운의 이야기       둥근 달님이 떠오르면 어머님 얼굴 보고싶소       밝은 별빛이 반짝이면 어머님 말씀 듣고싶소       세월이 흘러흘러서 이 몸은 자랐어도       어머님 무...
  • 2011-12-09
  • 연변대학 예술학원 리훈박사의 이야기       현재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표현학부 주임으로 사업하고있는 리훈은 연박한 지식과 과학적인 방법론, 끈질기게 진리를 탐구하는 정신 그리고 강인한 의력과 분투정신을 가진 학자이다. 그가 박사학위론문으로 내놓은 학술저서 《중국조선족공연단체에...
  • 2011-12-07
  • 새농촌건설에서의 통화현 조선족농촌 현황(2) 지난 세기 50년대 량질입쌀생산으로 주은래총리로부터 상장 수여받아 서선촌 리경수서기. [길림신문 2011-12-06 장춘영 홍옥 기자 ]서선촌은 통화현 강전진의 소속으로서 통화현의 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통화현 소재지인 쾌대무진과 31킬로메터 떨어져 있다. 통...
  • 2011-12-07
  • 료녕성조선족사범학교 박자윤교장   료녕성내에서 유일한 조선족사범전문학교인 료녕성조선족사범학교가 건교 60주년을 눈앞에 두고 교원학력을 대학본과 100%, 석사과정 30%, 박사 및 박사과정 3명, 교수직함 4명을 실현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날로 어려워지고있는 환경조건에서 학교의 발전 전망과 수요에 근거하여...
  • 2011-12-06
  • [인터넷료녕신문 2011-12-06 김룡 호기자]  지난 4월 최무삼(조선족)씨가 심양시군중예술관 신임관장으로 취임하여 예술관은 전례없는 변화와 주렁진 성과를 이룩한것으로 알려졌다.   1956년에 설립된 심양시군중예술관은 정부의 공공문화사업의 직능기관으로, 심양시 800여만 군중을 대상으로 문화사업의 번영을...
  • 2011-12-06
  • 흑룡강성교육학원 김동규씨 흑룡강성 조선어전업 연구원으로  조선어분야서 두터운 실력으로 주렁진 성과   (흑룡강신문=하얼빈2011-12-05) 흑룡강성교육학원의 김동규선생이 조선어전업 연구원(정교수)으로 진급하였다. 이는 흑룡강성 조선어문분야에서 정만석, 류남현에 이어 세번째로 정교수가 출현한것이다.  ...
  • 2011-12-06
  •   중한 수교 20주년 기획-《고마운 한국인들》(1) 40명 중국 선천성심장병어린이들에게 재생의 은혜 베푼 이기영사장 [편집자의 말] 래년은 중한 수교 20주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중국과 한국은 제 분야에서 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현재 중국상주 한국인 60여만명, 중국에 다녀오는 한국인은 해마다 300만명을 초과하...
  • 2011-12-05
  • [길신 2011-12-02 종합]최승희는 서구식 현대적 기법의 춤을 창작, 공연한 최초의 인물로 8.15해방이전의 한국무용계를 주도했다. 1911년 서울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소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두번이나 월반하여 1925년 숙명여자중학교에 입학했다. 숙명여고에 다닐 때 졸업후 동경[東京] 음악학교에 진학할 생각이...
  • 2011-12-0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