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송해숙-《독서삼매》 최고령수상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12월28일 15시02분    조회:863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조선족의 독서무심에 그만 실망했습니다!》
《독서삼매》 최고령수상자 송해숙인터뷰

[길림신문 2010-12-28 오기활 기자]도문에 《독서삼매(讀書三昧)》하는 70대 녀성이 있다. 독서삼매란 《책읽기에 골몰한다》는 뜻이다.

중국조선족 대문호 김학철선생은 《사람이 늙어가면서 쓰고 버린 건전지 같은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역시 책읽기에 게으르지 말아야겠다. 일본서는 그런 쓸모없는 늙은이를 <조대(粗大)쓰레기>라고 한다. 헌 텔레비나 헌 랭장고 따위의 다루기 힘든 쓰레기라는 뜻이다》며 평생독서를 권장했다.

12월 24일 필자는 도문시신화가 신흥사회구역에 거주한 독서삼매주인공 송해숙(71)을 인터뷰했다. 송녀사는 《제4기 연변독서절 경험교류 및 총결표창대회》에서 《열독양지(閱讀養志)선진》으로 표창을 받은 7명 수상자중 최고령자이다.

《연변녀성》잡지사 허영순주필은 그의 수상이 조선족녀성의 자랑이라며 전문 대표를 수상식에 특파해 송녀사에게 생화묶음을 드렸다.

《연변녀성》잡지사에서 송해숙녀사에게 생화를 드렸다.

《수상자중 단 우리 로친만이 생화묶음을 받다보니 더욱 인기였지요!》

동행했던 령감(박상룡, 75)이 정말 감개무량하더라며 말머리를 챘다.

송해숙은 연길현관개중학고(정동중학) 10기(1955년) 졸업생이다. 학교때 별호는 《작은 고추》, 활달한 성격과 총명한 머리 그리고 춤노래장끼로 전교의 인기를 독차지했었다. 1962년에 도문철도고중을 졸업하고 중앙민족학원에 갈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생활난으로 그만 기회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가정상황이 여하하든 신랑감만은 괜찮다》는 사촌오빠의 설득에 도문서 제일 못산다는 《마선(재봉)집 큰며느리》가 되였다.

사회에 진출한 송해숙은 가두판사처, 한어사범학교 총무과, 도문시정부 재정과, 상장공장, 침직공장 등 단위 재무부문에서 《이공대간(以工代干)》 일군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끝내 공인편제로 1992년에 정년퇴직했다.

송해숙에게는 《저승까지 갖고 간다》는 《제일 중요한 보물》인 싸인노트가 있다.

이 노트는 언니가 그의 초중졸업선물로 80전을 주고 사준것. 그녀는 그 노트에 50여명 사생들로부터 받은 싸인을 지금까지 고스란히 보존하고있다.

사랑스런 제자에게:

꼬마여 철부지인 네가 떠나려는가

내 너를 기쁨안고 보낸다, 잘 가거라.

해숙아 너는 잘 알고 있겠지, 책은 값있는 진주를 건져주는 바다와도 같음을!

책을 사랑하라, 거기서 생활세계를 인식하고 사업방법을 배워

인민과 조국의 충실한 근무자가 되라.

1955년 7월 11일. 안철

안철은 당년 송해숙의 반주임이자 물리교원이였다. 지금 보면 이 부탁이 그녀의 일생을 지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튼 그녀는 사무나 공무가 아무리 바빠도 책과 신문을 멀리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의 독서필기가 이를 증명해 준다.

송해숙의 1년 독서량은 무려 2000만자, 대단한 《책벌레》가 아닐수 없다. 인제는 그의 《독서+필기+행동》으로 이어지는 《삼위일체(三位一體)》가 그의 삶의 전부로 되였다.

책이 그녀의 친구로 되기까지는 《빛뿌리는 발자취》를 읽은 후부터란다.

1996년 어느날 송녀사는 남편(도문시라지오텔레비방송국 전임부주필)과 함께 서점에 가서 이 책을 샀는데 글쎄 그 책속에서 남편의 삼촌(박송파)을 만날줄이야!

박송파는 동북군정대학 졸업생으로서 중국혁명과 조선혁명에 막대한 기여를 한 전설적인 장군이다.

《그때부터 책을 읽고싶은 충동이 더 생겼고 지금은 보지 않으면 안되는 강박감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무려 300만자나 되는 《김학철문집》이나 10권으로 된 《황구연전집》 같은 두툼한 도서는 련며칠 통독해야 시름을 놓는다는 정도로 독서에 빠졌다. 《조남기전》이나 《중국의 별》 《대중화문고 시리즈》 도 물론이다.

더욱 놀라운것은 그의 상당한 기억력이다. 독서필기가 기억력을 충전하는가 본다.

송해숙량주는 공동언어가 많아 서로간에 독후감을 나눌 때가 많다. 그런데 혹시라도 남편의 말에서 약간의 오차가 생겨도 송녀사는 그저 넘길줄 모른다. 서로 콩이니 팥이니 다투다가도 로친이 어느 책 몇페지, 몇번째 줄에 있더라며 독서메모노트만 내보이면 령감은 어쩔수 없이 투항한단다. 그래서 령감은 로친을 《산 전화번호책》, 아니면 《땐노(컴퓨터)》라고 부른다.

독서하고있는 《독서삼매》부부.

지난 여름의 어느날, 필자는 송해숙부부와 함께 연변인민출판사의 편집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한적이 있다. 한참 술잔이 오가는데 송녀사가 취흥을 못말리겠다는듯 문뜩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올해는 백호년인데 로인세계잡지에 실린 석화시인의 백호시를 읊겠습니다》며 장시를 읊기 시작했다. 보지 않고는 작자도 못읊을 장시를 70대할머니가 읊는다며 6쌍의 눈 모두가 동전잎이 되였다.

이어지는 순서로 송녀사가 《문화대혁명》 때 연변의 사망자가 3000 얼마, 상했거나 불구자가 된 사람이 5000 얼마, 피더우(被鬦)받은 사람이 2만 얼마, 련류된 사람이 10만 얼마라고 하는데 중국에 우파모자를 쓴 사람만 해도 55만 2877명이라고 모든 꼬리수자까지 확실하게 말하는것이였다. 그의 싸인노트에는 《반우파투쟁》과 《숙반운동》의 필기도 있었는데 거기에는 반우파투쟁의 성질, 투쟁대상, 당의 정책까지 한글자도 빠짐없이 적혀있다.

송녀사의 독서는 행동과 이어졌다.

《김학철문집》에서 김학철이 부인(김혜원)에게 보낸 편지중 1977년 4월 1일 추리구감옥에서 쓴 《30년전 이달 스무나흘날 대동강반 경제리에서 맺어진 인연은 곡절 많은 삶의 흐름을 이루고...》, 《이른봄 종다리의 희열을, 늦가을 기러기의 적막을 아울러 이 가슴에 안겨주신 이, 조선의 어엿한 딸 혜원녀사께 삼가 이 몇줄 글을 바치옵니다》를 읽으며 《보다가는 울고 가슴을 치는 구절을 노트에 메모했다》며 김학철선생님과 김혜원녀사한테 끌리는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이길수 없었다. 그리하여 생각끝에 두번이나 남편과 함께 김혜원댁을 찾아 김녀사에게 절을 올리고 마사지까지 해드리고서야 마음을 다소 가라앉힐수 있었다. 그리고는 방문기까지 써서 《로인세계》잡지에 보내기도 했다.

《도문이라면 매일 가서 마사지를 해드리겠는데...》 송씨의 안타까움이다.

《장백산》잡지에서 《살아있는 행복》을 읽고 송해숙은 《세상에는 나보다 더 많은 고통과 유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것으로 나를 위안하고 내가 그만큼 남보다 편안하기에 그들을 보듬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좀 불행하더라도 밝고 넓은 마음가짐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있다는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 《남을 원망하기 앞서 자기부터 성찰하라는 대목을 읽고 마음이 찔렸다》면서 《새벽독서외 한직장에서 일하던 어려운 동료들을 찾아가 일손을 돕거나 그들의 딱한 사정을 들어》주는것을 매일 반복되는 코스로 잡았다고 한다.

《남들처럼 먼 유람은 못하지만 이제부터 단거리 유람을 늘 다니며 어머니세대부터 신세를 진 친척이나 고향친지들을 찾아다니며 다시 인연을 맺고 옛날들을 추억하며 정을 주고 받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이는 송녀사의 독후감이자 독서필기이다.

《그런데 기자선생님, 이번 독서절의 테마가 <독서는 연변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는것인데 이번에 보니까 수상자의 거개가 한족분인것을 보고 우리 조선족들의 독서무심에 그만 실망하였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전번에 도문서 경험교류모임에 참가했을 때도 참가자들이 거지반 다 한족이여서 우리 령감이 나를 대신하여 한어로 발언했답니다.》

《이번에 전임 도문시위서기였던 오장숙서기가 나에게 표창장을 발급하면서 <정말 대단합니다>며 치하를 하던데 우리 조선민족이 대단해야 대단한것이지 이 늙은이가 혼자서 대단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정말 대단 합니다!》 (방호범 찍음)

실로 독서삼매 송해숙녀사의 문제관찰과 문제풀이가 다르긴 달랐다.

송녀사의 말에 비춰보면 《소를 팔아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우리 민족, 유치원부터 자식을 한족반에 보내는 우리 민족들, 《나는 조선문신문을 근본 안봅니다》라고 말하는 우리의 어른들이 진정 걱정이다.

《조선족들의 독서무심에 그만 실망했습니다!》

이는 정녕 송해숙녀사 한분만의 실망이나 걱정이 아니라고 짚어진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2월 11일 오전, 2012년 연변TV 양력설특집 촬영차로 연변을 찾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정원수씨를 만났다. 엔티테인먼트 소속 명휘씨(가수)도 동행했다.   정원수 그는 누구인가   정원수씨는 노래 “북경아가씨”, “로무현 추모곡”’등 많은 노래를 작사, 작곡했다.   1960년, 한...
  • 2011-12-12
  • [료녕조선문보 2011-12-09 김룡호기자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25) -대련선성물류 엄광철리사장을 만나다 엄광철(厳光鉄)프로필   1975년 5월 길림성 훈춘시 출생 1995년 7월 연변대학 졸업 1995년 8월-2003년 12월 한국우진글로벌로지스틱스(주)대련사무소 대표 2000년 9월-2002년 12월 청화대학 EMB...
  • 2011-12-09
  • 연변가무단 가수 겸 타악기연주원 김상운의 이야기       둥근 달님이 떠오르면 어머님 얼굴 보고싶소       밝은 별빛이 반짝이면 어머님 말씀 듣고싶소       세월이 흘러흘러서 이 몸은 자랐어도       어머님 무...
  • 2011-12-09
  • 연변대학 예술학원 리훈박사의 이야기       현재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표현학부 주임으로 사업하고있는 리훈은 연박한 지식과 과학적인 방법론, 끈질기게 진리를 탐구하는 정신 그리고 강인한 의력과 분투정신을 가진 학자이다. 그가 박사학위론문으로 내놓은 학술저서 《중국조선족공연단체에...
  • 2011-12-07
  • 새농촌건설에서의 통화현 조선족농촌 현황(2) 지난 세기 50년대 량질입쌀생산으로 주은래총리로부터 상장 수여받아 서선촌 리경수서기. [길림신문 2011-12-06 장춘영 홍옥 기자 ]서선촌은 통화현 강전진의 소속으로서 통화현의 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통화현 소재지인 쾌대무진과 31킬로메터 떨어져 있다. 통...
  • 2011-12-07
  • 료녕성조선족사범학교 박자윤교장   료녕성내에서 유일한 조선족사범전문학교인 료녕성조선족사범학교가 건교 60주년을 눈앞에 두고 교원학력을 대학본과 100%, 석사과정 30%, 박사 및 박사과정 3명, 교수직함 4명을 실현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날로 어려워지고있는 환경조건에서 학교의 발전 전망과 수요에 근거하여...
  • 2011-12-06
  • [인터넷료녕신문 2011-12-06 김룡 호기자]  지난 4월 최무삼(조선족)씨가 심양시군중예술관 신임관장으로 취임하여 예술관은 전례없는 변화와 주렁진 성과를 이룩한것으로 알려졌다.   1956년에 설립된 심양시군중예술관은 정부의 공공문화사업의 직능기관으로, 심양시 800여만 군중을 대상으로 문화사업의 번영을...
  • 2011-12-06
  • 흑룡강성교육학원 김동규씨 흑룡강성 조선어전업 연구원으로  조선어분야서 두터운 실력으로 주렁진 성과   (흑룡강신문=하얼빈2011-12-05) 흑룡강성교육학원의 김동규선생이 조선어전업 연구원(정교수)으로 진급하였다. 이는 흑룡강성 조선어문분야에서 정만석, 류남현에 이어 세번째로 정교수가 출현한것이다.  ...
  • 2011-12-06
  •   중한 수교 20주년 기획-《고마운 한국인들》(1) 40명 중국 선천성심장병어린이들에게 재생의 은혜 베푼 이기영사장 [편집자의 말] 래년은 중한 수교 20주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중국과 한국은 제 분야에서 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현재 중국상주 한국인 60여만명, 중국에 다녀오는 한국인은 해마다 300만명을 초과하...
  • 2011-12-05
  • [길신 2011-12-02 종합]최승희는 서구식 현대적 기법의 춤을 창작, 공연한 최초의 인물로 8.15해방이전의 한국무용계를 주도했다. 1911년 서울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소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두번이나 월반하여 1925년 숙명여자중학교에 입학했다. 숙명여고에 다닐 때 졸업후 동경[東京] 음악학교에 진학할 생각이...
  • 2011-12-0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