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영숙-짠지장사군 상경 20년만에 억만부자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1월28일 14시38분    조회:1055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북경청구식품유한회사 리영숙리사를 만나 

[길림신문 2011-01-28 유경봉 박광익 특약기자]

소학교학력에 짠지장사출신의 한 평범한 조선족녀성이 6만원으로 북경에 진출한지 20년도 안되는 사이에 자신의 탁월한 혜안과 담략으로 자산 2억여원을 가진 갑부로 탈바꿈하는 신화를 창조했다. 그가 바로 북경청구식품(青丘食品)유한회사의 리사 리영숙(李英淑, 56세)이다. 

지난 세기 70년대, 22살에 입당하여 훈춘현의 2명뿐인 녀당원중의 한사람으로 된 리영숙은 훈춘현당위로부터 북경민족대학 등에 추천받았지만 어린 남동생과 두 녀동생, 그들을 보살펴야 하는 장기환자 어머니를 남겨두고 대학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여 그는 고향인 훈춘시 하다문향 신흥촌에서 생산대 부녀대장, 부녀주임, 촌당지부 부서기 등 직무를 맡아하다가 통화미술학교를 졸업한 대졸생 남편을 따라 통화시광무국에 전근했다.

80년대초, 직원과 가족까지 4.6만명이나 되는 대형단위인 광무국에서도 4명 녀당원중의 한사람이였던 리영숙은 60원의 로임을 받았다. 그때 대졸생 남편의 로임이 고작 46원이였다. 하지만 등소평의 개체업 윤허정책에 힘업어 1년넘게 고민하다가 끝내 사직하고 고사리를 캐고 무우를 심어 키우며 통화에서 짠지를 담구어 한근에 50전씩 팔면서 5년을 견지하여 모은 돈으로 1989년에 도문 량수탄광에 이사하여 살림집에 영업집까지 사놓고 상점과 양꼬치집을 꾸렸다. 

2005년 한국 전 대통령 노무현의 초청으로 청와대에 갔다가(앞줄 오른쪽 첫사람)

통주구에 땅 25무 구입 10년사이에 시세가 2억여원으로

1991년에 짠지장사 수입 등으로 마련한 장사밑천 6만원을 지니고 남동생과 함께 상경한 리영숙은 1년 임대비용 2만원을 내고 북경 오두구에 위치한 북경언어학원 부근에 밥상 5개의 자그마한 음식점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이든 손만 대면 잽싸기로 이름난 리영숙은 8개월만에 양꼬치집을 운영, 1년반만에 제2언어학원 부근에 세번째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리영숙은 선후로 서성구, 조양구, 해정구 등 지에 11개 음식점을 운영, 1997년에 최고로 동시에 5개 음식점(총면적 1000평방메터)을 운영하면서 호황기를 맞았다. 하지만 각 음식점마다 주방일군들이 자주 바뀌면서 음식맛도 변하고 《각 음식점마다 맛이 서로 다르다》는 손님들의 불평이 쏟아져나왔다.

하여 주위에서는 한창 돈을 마련해 투자용 주택을 여러채씩 사고있을때 리영숙은 땅사러 북경 교외를 일주했다. 공장을 지어 여러 음식점을 찾는 식객들에게 똑같이 맛좋은 음식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1999년 북경시 통주구의 이장(亦庄)경제개발구에서 4키로메터 떨어진 곳에 100만원을 투자하여 25무의 땅을 사놓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100만원이면 북경 3환이내에서도 집을 여러채 살수 있는 돈이였다. 리영숙은 음식공장 하나를 지을수 있을만큼의 땅만 사놓을수도 있었지만 고집하여 25무를 샀다. 당시 그의 고집은 몇년후 단순한 고집만이 아닌 범상치 않은 《혜안》임을 증명해주었다.

리영숙은 땅을 산후 토지소유증명수속을 밟고 임대를 주기 위해 공장건물들을 지었는데 선후로 도합 1000여만원을 투자했다.

리영숙이 땅을 살때까지만 해도 눈에 띄지도 않는 북경시의 편벽한 교외였던 통주구에 현재 세계 500강 기업중 380여개나 입주하면서 땅값이 《금값》으로 변할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였다. 그가 사놓은 땅과 건물 값은 몇년전에 이미 시세로 2억여원까지 치솟아올랐다.

2006년 북경조선족음력설맞이야회에서 전임 국가민위 리덕수주임을 모시고(왼쪽이 리영숙)

대형음식그룹회사 건설 제2의 기적 창조할터

리영숙은 사놓은 땅우에 여러채의 건물을 짓고 그중 4000평방메터의 건물에 북경청구식품유한회사를 설립, 5개 음식점에 통일로 음식 반성품과 완성품을 공급하다가 몇년동안 일본에 김치를 수출하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음식점들을 팔고 유리수출업체. 쏘파용해면공장, 침대공장, 이불공장 등 여러개의 회사에 공장건물들을 임대주고있다.

현재 그는 해마다 근 300만원이나 되는 공장임대 비용만으로도 고급외제차를 굴리며 두 손자를 키워주며 한적한 만년을 보낼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한가할새가 없다.

일본에서 류학하고 돌아온 아들 김호군에게 회사 리사장직을 맡긴 리영숙은 2010년말, 아들과 함께 일본의 대형 도시락업체들을 여러개 고찰하고 돌아왔다. 그는 일본의 선진적인 기술과 브랜드를 인입하여 1년반사이에 현유의 식품공장 건물에 매일 생산량 3만개, 년 순리윤 2000여만원 규모의 급식도시락 생산판매를 위주로 하는 식품기업으로 발전시키고 고급 전문인재들을 대거 모집하여 몇십년내에 대형식품그룹으로 키워갈 꿈을 키워가고있다.

자신 소유로 된 땅과 공장건물, 자금까지 있는데다 최저 5000명, 최고 3만명씩 직원을 갖고있는 500강기업 380여개나 주변에 있어 판로가 락관적인지라 그는 배포가 두둑하다. 

2010년 월드옥타 북경지회 차세대스쿨에서 김철(왼쪽 첫번째)시인과 함께(오른쪽 세번째가 리영숙)

사회공익사업에도 앞장서

저명한 조선족시인 김철이 회장을 맡고있는 북경고려경제문화연구회에서 부회장, 옥타 북경지회 고문까지 맡고있는 그는 사회공익사업에도 바쁘다.

2002년, 함께 상경하여 간고한 창업의 길에서 동행자였던 남동생이 간경화복수로 세상을 뜨고 이듬해에 어머니까지 사망하자 고향에 산소를 올리게 된 리영숙은 10여만원을 투자하여 고향마을에 문화관을 지어주었다. 그때로부터 이어진 그의 선행은 끊길줄 몰라 이미 불우이웃과 빈곤학생 돕기에 수십만원을 기부했다.

오늘도 리영숙은 수도 북경에서 제2의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 매일 바쁜 일과를 보내고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허상림선생의 연변사랑 연변자랑 연변대학 공학원 제1임원장 허상림선생을 만나 지난 5월 1일, 기자는 연변대학공학원 제 1임원장을 지냈던 허상림선생을(78세)을 인터뷰하였다. 허상림선생은 말초신경염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다보니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집에서 컴퓨터와 마주하고 사이버공간에서 세계를 주유한단다. ...
  • 2012-05-13
  • 연변체육관 관장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 박성웅주임 인터뷰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 박성웅주임. 사람들은 체육복권에 대해 익숙하지만 연변의 체육복권 관리사업을 책임진 박성웅씨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지 못하고있을것이다. 연변에 첫 체육복권이 나타나고 이어 체육복권관리센터가 세워져 지금에 이르기까지 10여년간 ...
  • 2012-05-11
  •     연변제2인민병원 베테랑 간호장 한길숙씨 이야기 해맑은 미소, 상냥한 문안, 열정적인 봉사…사랑이 듬뿍 담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환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21년간 그녀는 고상한 의덕과 숙련된 업무, 앞선 사유로 매 한명의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왔다. 그녀의 간호를 받은 환자들치...
  • 2012-05-10
  • 야외 극한 도전자 “대지의 타향인”- 리근호   -   “중국오토바이려행 1인자” 를 적다     아리랑주간  취재사진 박군걸   글 륙삼   출중한 사람은 늘 평범하게 보인다. 그들은 항상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극도로 평범하게 살면서 출중하다는 성분...
  • 2012-05-09
  • 사 교육이 비교적 체계화되여 교육의 한부분으로 간주되는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 나라는 아직 사교육을 향한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 다. 이런 현황에서 학부모, 학생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주위의 삐딱한 시선을 돌려세운 한 경영인이 있다. 바로 연길시지능양성학 교 교장 최향란씨(36세)이다.   최향란 ...
  • 2012-05-08
  • 중앙민족대학 민족리론 및 민족정책 연구학자 지난 2월, 북경출장길에 우연히 대학시절의 스승이였던 김병호교수를 만나게 되여 옛 스승을 잠간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흑룡강성 연수현태생인 김병호교수는 1974년 중앙민족대학을 졸업한 뒤 모교에 남아 오늘까지...
  • 2012-05-08
  •   최근 중국공산당탄생 90돐 맞이 기념선집《새시기 중국공산당인 우수격언선집》에 연변의 원로작곡가 동희철옹(85세)의 4수의 격언이 등재되였고 편집부로부터 우수격언증서와 메달이 전달되였다. 《명곡앞에서는 총을 든 적들도 무력해진다.》 《총탄은 사람의 육체는 해칠수 있어도 인간의 령혼은 정복할수 없다....
  • 2012-05-08
  •   조선족이 낳은 당대의 저명한 시인 김철선생이 문단에 발을 들여놓던 20세기 50년대 초반, 그가 조선전선에서 돌아와 신문기자로 일할 때였다.서정시 《앵두 네알》을 써서 문단과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고 단시 《지경돌》과 노래 《귀환병과 처녀》(동희철 작곡)가 신춘문예에 입선되여 한창 주목을 받고있을 때였...
  • 2012-05-08
  • 칭다오야베스상무회사 김대수 사장 이야기 신라원 아파트단지 정문에서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는 김대수 사장.         (흑룡강신문=칭다오) 박영만기자= 칭다오시에서 6년동안 한국의 아파트문화보급을 위해 꾸준히 한 우물을 판 한국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인 칭다오야베스상...
  • 2012-05-07
  • 성공 가도 달리는 조선족 3세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리수봉기자 = "재한조선족들의 생활실태를 비교적 전면적이고도 현실적으로 기록해 중국과 한국에 알리려는 목적에서 대림동,가리봉,안산 등 중국인(주로 조선족)집거지역을 답사하게 되였습니다.코리안드림이 시작되여서부터 오늘까지의 전반 과정 역시 우리 ...
  • 2012-05-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