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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천-신선한 음악을 연출하는 지휘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3월20일 10시25분    조회:6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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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음악을 연출하는 지휘가 
연변가무단 수석지휘가 조예천씨를 만나

 
[길신 김청수기자 03-19] 최근년간 차원이 달라진 연변가무단의 예술공연을 두고 관객들은 경의로움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나젊은 지휘가 조예천씨(35세)의 신선하면서도 력동적인 지휘는 관중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주군 한다.

지휘가로 향한 예술려정

《지휘가는 높은 안목과 깊은 수양이 있어야 한다.》고 조예천씨는 우선 지휘가의 기본자격을 운운한다.

그는 여섯살때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왕청에서 새벽기차를 타고 연길로 와 연변예술학교 강광훈선생님한테 손풍금 배우러 다니며 예술신동으로 성장하였다. 소학교 5학년부터는 천부적재능으로 또 피아노건반을 누르며 예술의 경지로 톺아올라갔다.

1996년 중앙음악학원 피아노학부에 입학하여 2학년생이 되였을즈음, 그는 한 교향음악회를 관람하고 미흡한 연주와 해석에 저도몰래 머리가 갸웃해졌다. 《만약 내가 다시 그 작품을 해석한다면》, 그는 관현악지휘에 도전하고싶어졌던것이다.

당시 중앙음악학원의 유명한 제1대지휘가 서신교수님을 찾아갔을 때 교수님은 아무 말 없이 숙제 하나 달랑 내주었다. 그는 나름의 기량을 펼쳐 《숙제》를 완성해가지고 일주일만에 교수님한테 바쳤다. 《숙제검사》를 하고 그윽한 눈매로 조예천씨를 응시하던 교수님은 그제야 제자로 받아주겠다고 쾌히 응낙을 하는것이였다.

그때로부터 과외로 작곡과 지휘를 동시에 배우면서 그는 《인제야 내 길을 제대로 찾았다》는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단연 피아노학부에서 다시 작곡학부 지휘전업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5년간 위봉교수님을 모시고 모든 정열을 다 바쳐 지휘학과를 전공하였다. 이렇듯 남다른 7년 대학생활로 그는 자신이 나아갈 방향과 목표를 확정하였다.

졸업후 그는 중앙바레무교향악단, 중앙가극원, 중국청년교향악단, 곤명시교향악단 등 교향악단에서 객원지휘를 담당하면서 상승일로 걸어나갔다. 그러던 2003년 그는 또다시 한국 예술종합대학으로 흔연히 석사공부를 떠났다. 《자신을 다방면으로 한차원 높이고 나름의 예술개성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는 한국석사연수생활을 개괄해본다. 즉 조선민족음악과 서방고전음악과의 결합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고싶었던것이다.

그는 연구생공부를 하는 한편 원주시립교향악단과 청소년관현악단의 지휘로 취직생활도 하면서 민족음악예술을 더 깊이 체험하고 자신의 예술추구에 대한 방향을 더욱 명확히 하였다.

민족음악의 교향화- 세계로 가는 길

2007년 8월경 그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에서 계속 여유있는 생활을 할수도 있었고 중국관내의 교향악단들에 가서 높은 대우를 향수받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향은 너를 키워줬고 고향은 너를 수요하고있다.》는 원 연변가무단 박서성단장과 선배님들의 부름에 주저없이 고향 연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는 저의 예술추구가 무엇인가를 잘 알고있습니다. 다년간 외지에서 외국에서 많은것을 배워오면서 교향악은 한 나라, 한 민족, 한 지방의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라는것을 깊이 느끼게 되였습니다. 지금 연변은 교향악단마저 없으니 연변의 민족문화예술이 세계로 나아가기 어려운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바로 제가 할일이 있는것입니다.》

그는 고향에 돌아온 3년간 연변가무단 악대 지휘봉을 잡고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교향악의 리념을 민족음악에 부여시키고 예술성과 관상성에 립각하여 관현악훈련과 종목배치를 하면서 전반 악대의 연주기능을 한차원 높였다. 그리하여 지금 연변가무단 악대연주는 교향악단의 수준에 이르렀고 민족음악예술의 교향화에서 성공의 일로를 걷고있다.

그가 지휘를 맡은 대형가무 《장백산의 아리랑》,《국경 60돐 대형음악회》,3차의 《새봄맞이 음악회》등 연변가무단의 공연은 관중들의 절찬을 받았다. 그는 고유의 민족음악과 고전음악을 결합시켜 민족음악의 교향화에 성공하면 그 자체가 신선한 예술로 되여 세계인을 사로잡게 된다고 주장한다.

《조선족작곡가작품음악회》를 열 예정

허원식 작곡으로 된《사품치는 해란강》(1961년작)은 중앙교향악단에서 지난 10월 공연한 작품이다. 작품의 난이도 크고 높은 기교가 수요되는 작품인지라 예기의 효과를 달성하지 못하였다. 조예천씨는 밤을 패가며 당년의 한 조선족작곡가의 심혈의 흔적을 더듬어가기 시작하였다. 일정한 수개와 조절을 거쳐 그는 이 작품을 2011년 새봄맞이 음악회무대에 올리고 직접 지휘봉을 휘둘렀다.

교향악의 장쾌한 어울림속에 새납이며 새장구 등 민악기의 미묘한 선률을 배합하여 작품의 특색을 살렸는데 공연장은 아주 격정의 도가니속에 빠졋다. 지휘는 작품에 대한 해석이며 연출이라고 한다. 그런 리유에서랄가 같은 작품일지라도 지휘가에 따라 서로 다른 효과를 나타내게 된것이다.

《조선족작곡가들에게 이토록 훌륭한 작품이 있다는것을 저는 최근에야 알았습니다.〈사품치는 해란강〉도 창작 당시는 연주조차 되지 못한 작품이였습니다. 당시 객관환경에서 이처럼 연주조차 되지 못한 조선족작곡가들의 훌륭한 작품을 계속 발굴해 나아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해방후 조선족작곡가들의 작품들로 〈조선족작곡가작품음악회〉를 가질 예산입니다. 우선 그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연주로써 대중들에게 알릴것입니다. 그리고 전 중국, 나아가 세계에 알리고싶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속에서 성부가 분실되거나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음에 오차가 생기면 그 효과가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며 작품의 사료적보존에까지 예민한 관심을 보였다.

나젊은 지휘가의 희망사항

《연변 교향악단의 설립은 절박한 력사적시기에 직면하였습니다. 연변이 전국과 세계와 접목하자면 세계 공통어인 교향악을 앞세워야 합니다. 시대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그 탄생의 기회가 온것입니다.》 그는 교향악단의 설립에 간절한 기대를 걸고있었다.

오케스트라의 자연구조로 보면 근 100대의 악기 선률로 음악장관을 이루게 되여있다. 지휘는 그 악기들의 소리를 일일이 분별하여 음폭과 강약, 속도를 조절하면서 몸동작 하나하나로 조화의 협화음을 이뤄간다. 그러나 현재 가무단악대는 규모적으로도 몇십년전의 실내악대구성에 불과할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예술인재가 결핍하다. 정부적차원으로 인재인입에 각별한 중시를 돌려 인심에 침투되여있는 고향정을 동원하면서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는 인재들을 고향에 불러들이고 그들의 능력을 발휘시키며 또한 전문인재양성에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하고있다.

또 하나의 절절한 희망사항에 그는 열변을 터놓는다. 예술인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수 있는 활동공간, 《장백산처럼 웅장하고 천지처럼 아름다운 음악홀》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였다. 오케스트라의 과학적구도에 따르면 교향악음악홀은 자연공간의 울림으로 되여있다. 그러나 연변의 현실조건에서는 마이크가 없이는 공연조차 불가능하다. 역시 몇십년전의 극장수준에 머물러있으니 타지방의 다공능현대화극장을 돌아볼 때면 어쩔수 없이 한숨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하나의 차원높은 문화예술종합중심은 한 도시의 문명의 상징으로 된다. 세계로 가는 음악홀, 이런 문화공간이 연변에도 하루빨리 마련되여 예술인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치고 시민들이 마음껏 예술향수를 할수 있다면 한 예술인으로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게 될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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