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덕수-길림성가무단 악대 첫 조선족대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3월30일 14시53분    조회:2030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길림신문 2011-03-28 최화 기자]조선족민가 수집에 한몫

- 100여명 제자 양성

현재 몇권밖에 남지 않은것으로 알려진《조선족 민가》, 이 책에는 조선족 민요가 400여곡 수록되여있다. 이중 100여곡의 민요는 길림성가무단 악대 첫 조선족대장이였던 리덕수(79세)가 5명의 조선족음악인들과 함께 농촌 방방곡곡을 누비며 수집, 기록한것이다.

1982년 6월에 출판된 《조선족 민가》에는 로동가요, 서정가요, 아동가요, 서사가요 등 우리 민요들이 기록돼있으며 오늘날도 이 책은 조선족 민요 보급과 관련 연구에 소중한 력사자료로 쓰이고있다.

일전 기자는 리덕수로인을 찾아 우연히 음악의 길에 들어서게 되면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선률에 담게 된 그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밭머리에서 조선족민요 수집

리덕수가 민요를 수집한 때는 길림성가무단에서 사업하던 기간이였다. 1980년대초 연변음악가협회에서 요청해온 민요수집 부탁에 선뜻 응해나선 리덕수는 길림시문화관 등에서 사업하는 조선족예술인들과 함께 농촌으로 내려가 1년동안 민요를 수집하는 작업을 했다.

민요수집작업은 간고했다. 낯선 사람을 세워놓고 난데없이 노래하라고 하면 노래가 나올리 만무했던것이다. 그는《민요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노래가 술술 나오게끔 인도해야 했다》며 낮에는 농민들과 함께 밭으로 내려갔고 밤에는 농민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흘러나오는 민요를 머리속에 기억해두었다가 가사와 곡을 정리했다.

잊혀져가는 조선족 민요 수집 참여를 깊은 긍지로 느끼고있는 리덕수는《민요는 우리 민족의 전통생활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더욱 계승, 발전되였으면 하는》바램을 표시했다.

조선전쟁에 갔다가 우연히 문공대에 뽑혀

일찍 1952년 18세였던 리덕수(화룡출신)는 조선전쟁에 참가, 그 이듬해 부대에서 조직하는 추석날 공연에서 화룡, 룡정, 훈춘 등지에서 온 6명 조선족과 함께 축첩행진곡(祝捷进行曲)을 연주, 마침 공연을 관람하던 동북군구 후근부 정치문공단에서는 그들 6명을《보배》라며 모두 문공단에《모셔》갔다. 그때부터 그는 음악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다.

어릴적부터 팔방미인으로 소문났지만 음악에 관해 계통적인 양성은 받지 못한 리덕수였다. 음악의 길을 걷게 되면서 그는 다른 사람보다 몇배되는 정성을 기울이면서 노력파로 실력을 쌓기 시작했다.

조선전쟁이 끝나자 선후로 통화 38군 문공단, 통화시문화관으로 전근된 리덕수는 그후 길림성가무단의 초청을 받게 되면서 성가무단 악대에 전근해왔다.

1963년 길림성가무단 악대 대장(그때까지 악단이 없고 악대로 존재했음)으로 임명된 리덕수는 단원들을 이끌고 이불짐을 지고 악기를 메고 16년동안 하향공연하러 다녔다. 배를 곯으며 30-40리길을 걸을 때도, 베개도 없이 양우리에서 잘 때도 있었다고 한다.

기교보다는 감정을 강조하는 스승

리덕수의 악기에서는 남이 모방할수 없는 아름다운 선률이 나온다. 그의 명성을 듣고 그를 수소문하며 찾아오는 제자들도 수두룩하다.

쌕스폰(萨克斯), 클라리넷(单簧管)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룰줄 아는 리덕수는 퇴직후 장춘시로인협회 아리랑예술단 단장으로 활약했고 100여명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제자들한테 그는《음악 선률에 담아야 하는것은 단지 곡을 연주하는 방법보다는 그 곡이 내포한 의미를 살리는것이다》며 감정을 담아 부는것이 비법이라고 가르친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심양시영결쿠크도구경영판매부 전복녀경리의 창업이야기 1990년대초기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나가기 위해 갈팡질팡할 때 심양시 황고구 명렴지역의 전복녀(56)씨는 남편과 함께 15평방메터의 영결쿠크도구생산공장을 꾸리고 부지런히 기업을 키워 지금은 여러개의 경영판매부를 가진 경리로 활약하고있다. 영결쿠크도구공장...
  • 2008-04-08
  • 두 발과 오른손까지 잃은 1급장애인 조화녀의 창업담 왕청현 시가지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고있는 조화녀성은 두 발과 오른손을 잃고 왼손밖에 없는 1급장애자이다. 하지만 그녀는 생활에 대한 더없는 열애와 용기, 완강한 의지력과 끈질긴 노력으로 장애자라는 담벽을 뛰여넘고 대학공부까지 마쳤으며 또한 간거한 창업을 ...
  • 2008-04-03
  • 2008년 북경올림픽 성화환영식 및 성화봉송가동식에 이어 우리 나라 31개 성 자치구, 직할시의 113개 도시가 성화봉송행사로 들끓고있는 가운데 연길시지체장애인 협회 회장 정영철﹙49살﹚씨도 우리 주 성화봉송행렬에 참가할 영광스러운 사명을 짊어지게 됐다.어려서 소아마비후유증으로 지체장애자가 된 정...
  • 2008-04-03
  • 룡정시 덕신향 숭민촌 제6촌민소조의 리산옥(48세)녀성은 1998년에 남편과 함께  향공급판매합작사에서 정리실업당하였다. 밭 한뙈기 없이 도시에서 공부하는 딸애와 중학교를 다니는 아들애의 공부 뒤바라지한다는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준엄한 시련이 아닐수 없었다.  손에 쥔 돈도 없는 그녀는 한동...
  • 2008-03-31
  • 【서울=뉴시스】 " 어렸을 적 꿈은 병아리 감별사, 바퀴벌레가 무섭다... " 지난 2월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를 마친 후 '인민 루니', '인간 불도저' 등의 별명으로 한국 축구계를 들썩이게 했던 정대세(24,가와사키 프론탈레)가 솔직담백한 자신의 일상을 공개했다. 정대세의 소속팀인 일본 J-리그 가와사키 프론...
  • 2008-03-29
  •    훈춘시 화원세통경제무역유한회사 총경리 고련숙은 우리 주 대 로씨야무역분야에 녀 강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2003년, 고련숙녀성은 다니던 무역회사가 불경기에 처해 정리실업 할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남들이 현실을 비관할 때 고련숙녀성은 직접 무역회사를 차려보려고 마음을 먹고 대...
  • 2008-03-28
  • ——— 아성직업교육중심 차미자부교장 사업실적 할빈시 아성직업교육중심에는 '벽돌공장'교정을 '화원식'교정으로, 학생을 '못생긴 오리에서 '고니'로 변신하게한 공신이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아성직업교육중심(한족학교) 200여명 교원 가운데 '우뚝' 선 조선족 부교장 차미자씨(46세) 이다. 그가 학교건...
  • 2008-03-25
  • "형님, 제 스윙 좀 봐주십시요"사상 처음 한국프로골프 코리안투어와 중국프로골프 오메가차이나투어가 공동으로 치르는 KEB인비테이셔널골프대회 2라운드가 열리고 있는 21일 중국 상하이 실포트골프장 연습장에서 투박한 북쪽 사투리를 쓰는 한 청년이 눈에 띄였다.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나 자란 조선족 청년 최...
  • 2008-03-23
  • “중국에 사는 소수민족으로서 우리 민족은 중국어도 잘해야 하지만 조선어도 잘 지켜나가야 한다.” 일전 기자는 200명의 방대한 “량회”문건 번역팀을 주야 진두지휘하고있는 중국민족어문번역국(아래 번역국으로 략칭) 오수자국장(57세)을 인터뷰하였다. 1975년 중앙민족대학(전 중앙민족학원)을 졸...
  • 2008-03-21
  • 강철원씨(21)는 중국 조선족이다. 2001년에 귀화한 뒤 국내에서 대전에서 공업고를 졸업한 뒤 올 9월에 중국 10대 명문대 중 하나인 하얼빈공대에 입학할 예정이다. 강철씨(20)는 중학교때 컴퓨터 게임에 빠져 공부와 담을 쌓았지만 뒤늦게 정신 차려(?) 세계 최고의 요리사를 꿈꾼다.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전문계고에서 ...
  • 2008-03-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