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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일-지역력사의 정립도 민족을 위한 대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4월2일 11시27분    조회:7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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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력사의 정립도 민족을 위한 대사 
ㅡ《환인조선족200년》의 주필 정찬일옹을 만나



[인터넷료녕신문 2011-03-29 김창영 기자]
취재차 환인현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아래 조경협으로 략칭)에 들렸다가 《환인조선족200년》이란 책자를 접하게 되였다. 진귀한 력사사진 100여점에 22만여자로 된 책자는 조선족들이 환인에서 200여년간 생활해온 력정을 이민편, 항일편, 해방편, 건설편, 개혁개방편, 문화교육편, 사회편, 인물편 등 8개 방면으로 상세하게 기록되여있었다. 현조경협 김석관회장을 통해 책자의 주필 정찬일선생을 만나기로 했다.

   정찬일선생이 약속시간대로 현조경협에 오셨는데 8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주 정정했다. 정찬일선생이 아직도 자전거로 바깥세상을 돈다며 김석관회장이 웃으며 소개한다. 우리는 《환인조선족200년》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찬일옹은 《환인조선족 200년》의 집필 배경을 이렇게 소개했다. 2008년 2월, 14명 리퇴직간부들로 구성된 현조선민족사학연구회의 발기로 편집위원회를 내오고 정선생이 주필을 맡고 김명희, 곽송곤, 김내직, 박동진 등 4명과 함께 집필하기로 결정했다. 그중 정선생이 올해 85세로 가장 년세가 많고 김명희선생이 60세로 가장 적은데 이들 5명 집필진의 평균 나이는 72세이다. 리퇴직후 천륜지락만 누려도 부족할 시간을 쪼개여 환인현경내 곳곳을 돌며 자료를 수집하고 집필까지 했다니 참으로 기적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찬일옹은 책자를 출간할수 있는 공로를 이미 타계한 리영훈선생께로 먼저 돌렸다. 리영훈선생은 환인현위생국, 현위 선전부를 거쳐 현민위 부주임으로 사업하다 퇴직하였고 1994년 환인현조선족력사연구회를 설립하고 회장직을 력임, 현조경협 부회장을 겸임하면서 지역사회의 경제문화발전에 일조했고 《환인조선족지》의 집필과 편찬을 도맡아오다싶이했다.

   “리영훈선생은 2005년 병으로 갑작스레 별세하기전까지 수십년간 환인조선족들의 력사자료 수집에 온갖 심혈을 기울여왔습니다. 그가 생전에 수집한 자료들이 없었다면 《환인조선족 200년》 책자 출간은 이처럼 순리로울수 없었을겁니다. 우리는 그의 공로를 잊지 않을겁니다.” 정선생의 진지한 표정에서 그말이 결코 겉치레가 아님을 느꼈다. 

   리영훈선생이 별세하면서 그가 총괄해오던 환인현조선족력사연구회가 마비상태에 빠지자 정선생은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사실 정선생은 리영훈선생의 현민위 선배다. 정선생이 현민위주임 자리에서 퇴직한 다음 리영훈선생이 현민위로 들어갔으니 말이다. 조선민족력사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료동항전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조선족혁명군부사령 박대호의 력사공적》이란 론문을 발표하고 《동북산재지구 조선족간부사》를 집필한 정선생은 2006년에 환인현조선족력사연구회를 재가동시켰다. 리퇴직간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상급부문의 동의를 거쳐 환인현조선민족사학연구회로 개칭하고 회장을 맡았다.

   리영훈선생이 수집한 자료들을 재정리하고 파악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필진들이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소화하는 작업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였다. 그러나 모두가 력사적 사명감을 안고 사재를 털어 환인경내 조선족들이 있는곳이면 하나도 빠치지 않고 답사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부재할 경우 서너차례 찾아가서도 꼭 만났다. 후세에게 남겨줄 민족문화자산인것만큼 자신들의 능력한계내에서 유감이 있으면 안된다는것이 어길수 없는 원칙이였다. 어려움이 컸던만큼 옹근 3년에 걸쳐 마침내 제반 분야를 망라시킨 환인조선족들의 200년 력사를 집대성한 책자의 집필을 마무리지었을 때의 감격과 기쁨은 말로 이루 형용할수 없었다 한다.

  “집필과정에 여러방면의 곡절도 있었습니다. 조선족의 력사인지라 우리 글로 집필하였던거지요. 초고를 완성한 뒤 우리 말보다 한문으로 출간하는것이 더 가치있다는데 의견을 모았고 조선족도 포섭해야 하지만 광범위한 한족들을 상대해 우리 민족력사를 알리는것이 더 큰 의의가 있다고 인식했던겁니다. 지역력사의 정립도 민족을 위한 대사인것만큼 조금도 소홀할수 없지요. 그래서 다시 한문으로  내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잘된 일이였습니다. 번역과정에 많은 자료들을 보충, 수정했으니까요.”  정로인은 이렇게 말하며 일언의 원망없이 번역에 응해준 집필진에 감사를 표했다.

   문제는 출판이였다. 동분서주하며 빌다싶이 하여 겨우 출판비용은 해결했으나 원고를 들고 여러 출판사들을 찾아다니니 원고는 아주 좋다 하면서도 정작 출간에 선뜻 응해주는 출판사가 없었다. 필경 환인조선족의 200년에 걸친 력사사료인지라 민감한 부분도 포함되여있었던것이다. 후에 현위 손욱동서기가 내부발행에 동의하였다. 환인조선족력사를 선전하고 문자기록을 남기는것이 목적이였기에 약간 아쉬움이 있었지만 필진은 내부발행을 하기로 했다.

   금년초 환인현조선족중학교에서 성대한“환인조선족200년”책자 출간식이 있었다. “이제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는 정찬일옹의 환한 얼굴에 우리 민족의 밝은 미래가 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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