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채련-"장수망치"로 엮어가는 여생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4월6일 15시41분    조회:779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국제방송 04-05 통신원 박철원]     "내여생 한없이 즐겁습니다. 참말로 행복 합니다,......"
<<중국게이트볼>>라는 잡지를 보면서 새노래 흥얼거리는 로인이 있다. 그가 바로 연길시 녀자게이트볼협회 코치와 지도로 활약하는 올해73세인 리채련이다. 나이는 많지만 너무나도 유명한 게이트볼 "운동원"이여서 국내 게이트볼계는 물론 한국, 일본의 게이트볼친구들까지 "연변의 게이트볼할머니"라면 모두들 엄지를 내민다.

렬사의 후예인 리채련은1957년5월 화룡현에서 현역군인과 결혼한후 은행, 공상국에서 사업하다 퇴직하였는데 젊어서부터 신장결핵으로 고생하 며 휴양생활도 많이 했다. 세자식중 하나가 불구자여서 마음고생도 많았다.

남편은 퇴직한뒤 게이트볼를 특별히 즐겼는데 군사훈련에서 명사수인 그는 게이트볼공다루기도 "명중"이라는 별호까지 가지게 되였고 리채련도 가끔씩 게이트볼장에 나가 구경도 하고 남편응원도 하군 하였다. 1999년 <<3.8>>절날 남편의 권유로 처음 게이트볼채를 들어본 리채련은 그날부터 열심히 배우 면서 공을 다루었다. 드디여 두달배기가 연길시의 명망높은 녀자게이트볼 고수를 꺾는 기적이 나타났다.

리채련의 놀라운 의력과 기교를 보아낸 남편은 너무도 격동되여 열심히 지도하였다. 그런데 고혈압증이 심하던 남편이 과도한 흥분으로 돌연 사망하였다.

허약한 체질에 남편까지 잃은 리채련은 뇌졸증에 걸렸고 다시는 게이트볼장에 나가지 않으리라 작심했다. 병석에 누워있는 기간 그는 남편이 미처 발표하지 못한 유작<<게이트볼코치의 기교>>를 읽고 또 읽으면서 게이트볼에 슴배인 많은 인생철학, 인간성격과 게이트볼기교를 터득하게 되면서 남편이 발굴한 보귀한 경험과 풍격을 실천 재현시키는것으로 남편의 영생을 기리리라 다시 작심하고 1년후 게이트볼채를 짚으며 일어섰다.

약병이 게이트볼채로 바뀌고, 병원이 운동장으로 바뀌다보니 그렇게도 허약하던 신체에 힘이 솟아나게 되였다. 세 자식의 보살핌을 받으며, 남편 의 책이 "가르쳐" 주는대로 열심히치며 게이트볼채가 참말로 "장수망치"임을 체험하게 되였다.

잃어버렸던 건강을 되찾으며 게이트볼장에 "출근"하다보니 실력이 인정 되면서 녀자게이트볼코치를 맡게 되고 경기마다 그의 전략전술이 적중해서 승전고를 올리군 했다.

2001년 처음으로 광동에서 열린 전국경기에 참가하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올해까지 무려26차의 전국 경기대회에 참가하였고, 마카오에서 열린 아시아경기에만도 3차 다녀오고, 일본과 한국에 가서도 경기를 치렀다.

2003년8월의 전국 로년게이트볼대회와 9월의 전국 향진 게이트볼경기에서는 번마다 체육도덕풍격상은 길림 연길팀의 몫이였다.

2010년 51개대가 참가한 "천진은행컵"전국 녀자 게이트볼경기때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의 곡에 마추어 리채련이 인솔하는 길림 연길팀의 춤으로 대회가 시작되였고, 대회집행주석도 리채련이 특별히 선사한 한복차림으로 경기를 지휘하며 전국 각팀과 기념사진을 남겨 <<중국 조선족>>과 <<연변>>을 폭넓게 홍보하면서 도덕풍격상과 3등의 영예를 안아왔다. 리채련은 번마다의 경기때마다 꼭 한복으로 대오를 차려 "이 몇년간 한복이 은을 냈다"며 기꺼이 자랑한다.

국가 게이트볼협회에서는 리채련에게 <<게이트볼 애호가>> 칭호를 수여하였고 게이트볼운동에 관한 정보를 늘 보내주고있다.

게이트볼 채를 다시 쥐면서부터 "몇해전에 사망되였다"고 널리 소문 났던 리채련의 신체에는 기적이 나타났다. 종래로 육류와 물고기를 먹지 못하여 체질이 너무나도 약하던 그가 지금은 감기라곤 모른다. 리채련은 게이트볼를 건강공 장수공이라 한다. 또 문명의 공 행복의 공이라며 우수한 게이트볼운동원이 되려면 먼저 합격된 인간이 되여야 한다고 말한다.

2004년 길림성을 대표하여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지구 경기에 참가하여 매인당2.500원의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할때 생활형편이 어려운 3명의 돈 7.500원을 리채련이 부담했으며, 2005년 한국에 갈때도 리채련은 1만3천원을 더 내였다. 번마다 경기에 나갈때는 민족복장을 꼭 차리고 경제여건이 어려운 사람은 자기가 도와주고 선물용지출은 자기가 전담하다 보니 지금껏 게이트볼를 위해, 연변과 중국조선족홍보를 위해 10여만원의 돈을 썼다.

올해3월30일, 북경에서 열린 "녀성컵"전국 게이트볼 초청경기에도 리채련이 길림성을 대표하여 길림 연길대표팀을 인솔하여 출전하였다. 4명 선수는 비행기도 처음타보고 전국경기에도 처음 나서는 실정이고 리채련 도 처음으로 전국 경기의 지도까지 겸하여 맡았다.

선수들은 산뜻하고 활기 넘치는 한복을 떨쳐입고 가는곳마다에서 조선족자랑 연변자랑으로 피곤할줄 물랐으며 최고문명의 풍격을 자랑해 전국 운동원들을 감동시키면서 49개 팀과 겨루어 4등의 영예와 체육도덕 특별상을 안고 국가급 언론사들의 많은 취재를 받으며 4월2일 개선했다.

리코치는 로년에 다시잡은 이 "장수망치"로 이토록 큰 홍보역활을 할수 있음을 로후의 크나큰 행운이라며 풍요로운 게이트볼생활로 여생을 더 곱게,더 건강하게 빛내가겠다고 힘차게 말한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백청강의 모교를 찾아서   림금산 안해연   우리가 백청강의 모교를 찾아 떠난것은 청강이가 서울에서 열린 MBC 스타오디션'위대한탄생-그랜드파이널'에서드디어1등을따내조선족사회에크나큰센세이숀을일으킨바로나흘후즉5월31일이른아침이였다. “청강이는 조선족의 자존심을 연출했다, 청강이는 ...
  • 2011-07-08
  • 한석윤 퇴직후 사재 털어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설립 한석윤 시인 어린이들과 함께.   (흑룡강신문=연길)약 40년간 조선족 청소년 사업에 몰두한 한 조선족 지성인이 있는데 그가 바로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전임 사장인 한석윤 씨(1943년 출생)이다.   퇴직후에도 지속적으로 청소년사업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 2011-07-08
  •   (흑룡강신문=하얼빈)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도시 연길에서 “코스모(考世茂)”는 조선족전통음식업계의 대표적 브랜드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있다. “코스모”는 대우주라는 뜻의 영음간칭이나 코스모스라는 쑥꽃의 준칭으로 아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조선족민속음식업의 한길을 헤쳐온 &ldq...
  • 2011-07-08
  •   중국농촌개인사이트 CEO 조동철  (흑룡강신문=하얼빈 2011-07-07) 료녕성 심양시의 조동철(34세)은 중국에서 가장 일찍 농민이 구축하고 운영하는 '중국농촌중개인 사이트'를 개설하고 몇년 사이에 일약 농민 CEO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그는 전국적으로 1400여명의 중개인 협력자를 모집했으며 2만...
  • 2011-07-08
  • 성공적인 삶의 길잡이 되여 (사)이주·동포정책연구소 문민 연구위원을 만나 근무중에 있는 문민위원 [길림신문 2011-07-04 전춘봉 특파기자] 재한 조선족 삶의 현장에 관심이 많다보니 자주 관련 사이트를 열어보게 되었는데 문민이란 이름이 자주 눈에 띈다. 어느 한 사이트에서는 《문민의 함께 하는 세상》이라는...
  • 2011-07-07
  • 연변대학교 전임 교장 박문일 [길림신문 2011-07-04 ]나는 위대한 당의 은덕으로 연변대학교의 제1기생으로, 62년의 연변대학교 동반자의 한사람으로 80고개를 눈앞에 두고있는 리직교수이다. 당 창건 90돐을 맞아 학교와 그속에서 걸어온 60년을 돌이켜보면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이 없다》는 우리 중화민족의 애창 대...
  • 2011-07-05
  •   (흑룡강신문=하얼빈 2011-06-30) 박룡수 = 중국의 첫 집체농장으로 알려진 성화집체농장의 개척자 고 리재근(1920- 2006년)은 1949년 입당으로부터 2006년 서거까지 57년 당령. 1951년 첫 집단농장때로부터 1983년까지 장장 33년을 촌지부서기로 사업하면서 많은 영예를 떠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땅과 더...
  • 2011-07-01
  • 영웅적 민족 빛나는 발자취 우리 민족 선배들이 북만땅에 남긴 영광스러운 발자취   (흑룡강신문=하얼빈2011-06-30) 김철진, 김해란 기자 = 당창건 90돐에 즈음하여 북만지역(오늘의 흑룡강성)의 우리 민족 선배들이 당이 령도하는 혁명투쟁에서 남긴 영광스러운 발자취를 더듬어보기 위해 기자는 흑룡강성당사연구소 전...
  • 2011-06-30
  • <!--advertisement code begin--><!--advertisement code end-->   (흑룡강신문=하얼빈2011-06-28) 정봉길기자 = 40여년간 조선어 교육과 연구에 집념해 눈부신 성과를 따낸 이가 있다. 주인공은 전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의 서영섭교수(77세)이다.   서교수는 1957년에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이 대학의 교사...
  • 2011-06-28
  • “글로벌시대 무역정보 빨리 장악하라” [흑룡강신문 2011-06-24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김봉운 연변왕달무역유한공사 총경리의 환동해무역노하우김봉운총경리 프로필 교육배경:  1953년 1월 21일생  1987년 연변조선족자치주 당학교 졸업  1989년 중앙당학교 경제관리학 졸업  2008년 연변과학기술대학...
  • 2011-06-2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