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중국조선민족의 정초자- 주덕해 (1)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5월25일 09시21분    조회:895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중국조선민족의
정초자- 주덕해 (1)

  (소설가위인전기주덕해의 이야기 저자)

 

낯선 , 우수리스크에서 태여나다

  주덕해는 1911 3 5 로씨야 원동 연해주 우쑤리스크부근의 도베아라는 산간마을에서 태여났다. 주덕해의 원명은 오기섭(基燮), 원적(原籍) 함경북도 회령군 팔을면 복색동이였다.

오늘의 우수리스크

    늪지대라는 의미를 지닌 우수리스크(Usurisk)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수리스크는 청나라때쌍성자(双城子)”라고도 불렀다. 리유는 곳에 개의 토성이 쌍둥이처럼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성과 남성으로 불리어지던 성은 금나라 시대까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곳은 력대 중국 왕조의 관할에 있었으나 1860중로북경조약 체결의 결과로 짜리 로씨야의 령토가 되였다.

  이곳은 또한 가난에 못이긴 조선의 리재민들의 이주가 시작된 번째 지역이기도 하다.

   19세기 70~80년대를 전후하여 함경북도와 평안 북도로부터 리재민들이 끊임없이 연해주에 밀려들었다. 1902 연해주 관청에 등록한 조선 이주민들은 무려 32400여명에 달하였다. 두만강을 넘은 조선의 가난한 이주민들이 매서운 혹한으로 벼농사가 어려운 지역임에도 벌판을 감싸며 흐르는 수분하의 물을 관개해서 불모의 땅에 벼꽃을 피워 냈다.

   오기섭의 아버지 오우서는 이곳에 먼저 와서 자리잡은 7촌숙부의 알선을 받아서야 도베아촌에 사는 로씨야 인의 밭을 소작으로 받아 부칠수있었다. 타향땅에서 기섭이를 비롯한 아들과 하나 외동딸이 그들 부부의 앞날이였고 희망이였다.

  오기섭이가 8살나던해 이곳에서 10년간 살고있던 부친 오우서가 불행히도 토비들에게 살해되였다. 살길이 막연한 그의 어머니는 고향인 조선 회령군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고향에서도 역시 여의치못하여 이듬해인 1920 2월에 다시한번 일가족을 거느리고 두만강을 건넜다. 오기섭은 어머니와 삼촌을 따라 화룡현 수동촌(룡정시 지신향 승지촌) 와서 정착하였다.

 승지마을 주덕해 고향집 옛터

  승지촌에 정착한 이듬해에 기섭은 어머니의 아량으로 어려운 형편에서도 세살 손우인 형님 기하와 함께 화룡현 공립 14소학교에 입학하였다.

  소년시절을 기섭이는 매우 어려운 환경속에서 보냈다. 아침을 먹으면 저녁끼니가 없는 걱정속에서 어머니가 뜯어온 산나물과 들나물로 보리고개를 넘겼고 엄동설한에도 노닥노닥 기운 홑저고리와 바지에 짚신을 신고 다녔다. 게다가 가정의 일군이였던 둘째삼촌마저 세상뜨면서 생활형편이 극히 어려워 4학년까지 다니고 월사금을 물수 없어 형님에 이어 학업을 그만두어야 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덕해는 형님과 함께 소달구지를 몰고 삯짐실이에 나섰다. 그들은 룡정과 회령사이를 드나들면서 목탄이며 량곡이며 돈냥이 되는것은 닥치는 대로 실었다. 이와중에 공장, 철도, 벌목장, 숯막들을 드나들면서 주덕해는 어디로 가든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득불 일본사람들의 예속밑에 우마와 같은 생활을 하는것을 보게 되였다.

(계속)

 

 김혁 문학블로그: http://khk6699.blog.me


 

"문화시대" 2011 2월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중국 IT산업의 중심, 옌지시에 투자하세요"                         유대진 회장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옌지(延吉)시는 동북아의 중심도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베이징과 연결되는 고속...
  • 2011-07-22
  •                 허형식(1909년~1942년 경상북도 선산군)동지는 1929년 조선에서 흑룡강성 빈현에 이주, 혁명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듬해 5월 1일 중공북만특위가 할빈에서 시위행진을 단행할 때 허형식은 10여명 공청단원을 이끌고 일...
  • 2011-07-20
  • 2001년 4월 중국미용외과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는 동창림선생은 홍콩에서 개최된 국제 미용성형외과 학술세미나에서 "중국 미용성형외과현황과 나의 체득","동씨융비술"이란 테마로 논문을 발표하여 대상을 수상한 적 있다.   그 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세계 유일한 미용성형외과 대가정"이란 칭호를 가지게 된 것이다...
  • 2011-07-20
  • 중국동포축구연합회 곽용호 사무총장 인터뷰 [흑신 07-19]     “흑룡강신문 한국지사의 후원으로 열린 상반기 경기는 규모나 영향력, 전문화 정도에 있어 예년을 훨씬 뛰어넘은 획기적인 발전모습을 보였다.” 중국동포축구연합회 곽용호 사무총장은 상반기 리그전을 끝낸 소감을 이렇게 말...
  • 2011-07-20
  • 46살, 중년 고종훈은 말한다 축구명장 고종훈 재능이 최고의 절정에 오를수 있는 가장 관건적이고 확실한 요인은 결코 기질이 아니라 마음 또는 정신이다. 그 일을 꼭 하고싶다는 강렬한 욕망, 어떤 어려움도 견디여내리라는 강한 의지, 꼭 어떤 경지에 도달하고야말리라는 드팀없는 신념, 이런 내적인 또는 심적인 자기완성...
  • 2011-07-18
  • 중국조선문 3대 언론사 특별기획―중국조선족 기업인(14) 다롄정흥석화유한공사 정만흥 총경리와의 대담   정만흥총경리 프로필   1956년 5월1일,출생   1973년 1월~1978년8월,하향지식청년,공청단서기,생산대장,농전건설병단 부단장(农田建设兵团副团长)   1978년 9월~1982년 7월,지린농업대학 학생회 부...
  • 2011-07-18
  •  ] ◎고향사람 찾아 수륙만리 싱가포르에 한식점 세 개를 세운 김경사장  [길림신문 2011-07-14 김성걸 전춘봉 기자] 인도양의 섬나라 싱가포르에 조선족이 경영하는 음식점이 있다는 소식은 마음의 고삐를 끈질기게 잡아끌었다. 고향이 길림인 김경사장은 어떻게 되여 수천만리 떨어진 이 낯선 고장에 정착...
  • 2011-07-14
  •   인터불고 그룹 권영호회장의 도전과 기부인생 조명   원양 어선 40여 척, 한국과 유럽, 아프리카 20 개 계열사   26년간 국가와 민족, 인종의 차별 없이150억 원 장학금   조선족 기관장, 선장, 항해사 등 수백 명 양성해 중견 역할   중국 교육사업, 중한우호협력 특별기여 2005년 정부 우의상 지난 6월 4일,...
  • 2011-07-14
  •   중국과학원 심양응용생태연구소 김영환부교수   (흑룡강신문=하얼 빈2011-07-13)산과 나무를 하늘처럼 떠받드는 사람, 나무의 “웃는” 소리와 “우는” 소리가 무엇인지 깊은 산속의 작은 풀잎의 스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관찰하고 연구하는 그는 중국과학원 심양응용생태연구소에서 삼림...
  • 2011-07-14
  • 멈추지 않는 녀지서의 새 도전   [인터넷료녕신문 2011-07-08 리덕권 기자]  심양시 심북신구 윤가향 서광촌 박인숙지서의 열망 지난 2000년, 우연히 심양시 심북신구 윤가향 서광촌의 지서로 당선된 박인숙(1960년생)씨를 알게 된 기자는 그녀의 들끓는 사업열에 매료돼 수년간 해마다 서광촌을 한두차례씩...
  • 2011-07-1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