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진정한 부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7월14일 14시26분    조회:928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권영호

  인터불고 그룹 권영호회장의 도전과 기부인생 조명

  원양 어선 40여 척, 한국과 유럽, 아프리카 20 개 계열사

  26년간 국가와 민족, 인종의 차별 없이150억 원 장학금

  조선족 기관장, 선장, 항해사 등 수백 명 양성해 중견 역할

  중국 교육사업, 중한우호협력 특별기여 2005년 정부 우의상


지난 6월 4일, 특별행차로 매하구시의 ’선원마을’에 들어선 권회장은 촌민들과 함께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길림신문 제공

  (흑룡강신문=서울2011-07-13) 김명환 라춘봉특파원 = 20대 열혈의 나이에 바다와 인연을 맺어서부터 파란만장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연 매출 1조원이란 신화를 창조한 노인이 계신다.

  지난 6월 23일 오후2시 30분경, KBS 1‘글로벌 성공시대’-다큐멘터리프로(재방송)에 등장한 주인공-인터불고(IB)그룹의 권영호 회장(70).

  허리에 밧줄을 동이고 험난한 갑판작업을 시작으로 천신만고의 여정에 축적한 부를 지역과 사회에 아낌없이 환원하는 기부정신, 그리고 중국 동포에 대한 끈끈한 애정에 기자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7월1일(금) 오후, 고려대학 인촌기념관에서 권회장의 유럽기업가 대상 수상식이 끝난 후 캠퍼스내의 자그마한 커피숍에서 소중한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3천 만원 폐선 한 척으로 도전의 스타트

  인생의 ‘고래희’를 맞아 머리에 흰 서리가 내려앉은 권회장은 첫 인상에 글로벌 그룹의 총수가 아니라 차분한 이웃집 아저씨가 같은 느낌이었다.

  경북의 울진 죽변에서 태어난 권회장은 평생 어부로 일하던 아버지가 일찍 세상 뜬 후 철이 들면서 장차 자기도 바다에서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하였다.

  1966년, 원양어선의 기관장으로 출발하여 수년간 지중해, 대서양, 태평양의 거친 파도를 종횡무진 가르다가 1971년 모 원양 회사의 스페인 주재원으로 기용되어 근 10년 동안 근무하였다.

  1979년 그는 부두에서 우연히 일본 회사의 폐선직전 어선 한 척을 발견하고 무작정 인수협상에 들어갔다. 주변에서 모두 ‘수명이 끝난 배’라고 말려 나섰지만 권회장은 직성대로 밀어 부쳐 그 동안 착실히 모은 3천 만원을 털어 배를 사서 수개 월에 정비를 마쳤다. 바다를 향한 새로운 도전의 각오를 다진 그는 퇴사하고 인터불고(Inter-burgo, 스페인어-뜻과 마음을 함께 하는 화목한 마을)란 수산회사를 설립했다.

  자기어선으로 첫 출항에서 달포 남짓한 기간 30만 달러의 어획고를 올리자 권회장의 자신감은 더해갔고 스페인에서의 호황은 계속되었다. 


권 회장과 포즈를 취한 이룡춘 씨. 3형제 중 선장 2명, 기관장 1명이 배출되었다며 권 회장은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한다./길림신문 제공

  하지만 카나리아 황금어장은 다년간 일본, 구 소련과 연안국들이 무차별 경쟁으로 뛰어들다 보니  점차 고갈상태에 들어가 일취월장하던 사업은 82년 들어 주춤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고, 또 오랜 내전이 진행 중이던 아프리카 남부의 앙골라 어장에 눈길을 돌렸다.

  모두들 엄청난 모험이라고,지어는 ‘미친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험이 큰 만큼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권회장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본사를 스페인에 둔 권회장은 마침내 앙골라에서의 어업권을 획득하였다.

  살벌한 내전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언어와 문화의 벽을 힘겹게 넘어 사업을 펼쳐가며 수익이 늘어가자 권회장은 무엇보다 베풀기에 앞장을 섰다. 앙골라 국민 중 그가 잡은 물고기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장학금지원, 가난구제도 꾸준히 해나갔다. 나중엔 남녀노소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숭앙하는 인물로 되었다.

  어느 해 앙골라 해군에서 인수한 호텔을 수리하던 중 직원의 실수로 권회장의 손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손가락 세 마디를 잃었다.

  권회장이 그 대가로 받은 보험금을 전부 현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한 사연은 지금까지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수십 척 원양어선이 아프리카 북부 모로코에서 맨 남단의 남아공까지 방대한 진을 치고 조업하며 권회장은 앙골라의 ‘선박 왕’이란 명성을 날리었으며, 아낌없는 선행으로 대통령 그리고 장, 차관에 이르기까지 좋은 인연이 맺어지며 점차 조선업, 건설업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수구초심, 그리고 국경을 넘은 장학사업

  해외에서 돈을 벌게 되자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으로 머리를 돌린다는 말)이 발동한 권회장은 85년 3천억 원을 한국으로 반입하여, 그 돈을 다시는 반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사업을 펼치었다.

  특급호텔, 스페인 문화원, 골프장, 리조트, 냉동창고, 건설을 포함해 국내 여러 지역에 활발한 투자를 벌여가며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에 일조했다.

  지난 수십 년간 하루에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거의 없고 새벽 1시~2시에 눈을 붙이기도 예사였으며 자신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28시간이라고 말하였다.

  '열정은 천재의 기능보다 낫다, 열정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삶은 권회장은 초인적인 의지력으로 촌음을 아껴 열정을 불태우다 보니 한국에서의 사업도 순항을 탔다.


7월1일 오후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유럽기업가 대상 수상 후 기자와 함께

     회사의 수익창출과 더불어 스스로 사회환원이란 과제를 안고 이를 실천해나가는 것이 권영호회장의 꿈이자 삶의 신조였다.

  "가난해서 공부를 하지 못하는 학생은 없어야 한다."고 항상 말하는 그는 자신의 행동으로 이를 실천해 나갔다.

  86년 재단법인 동영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지역민과 형편이 어려운 계열사 직원의 자녀를 위해 해마다 수억 원이 들어가는 장학 사업을 이어갔다.

  중한수교 이후 국경을 넘은 장학사업도 날개를 돋치었다.

  1994~1995년 연변과기대 170여명 조선족학생에게 4만 달러의 장학금을 지원하였다.

  1999년 800만 달러 투자하여 길림대학 동영학원(지상17층)을 설립하고 해마다 길림대 500명 학생에게 10만 달러 장학금을 지원하였다.

  2002년엔 200만 달러를 투자해 냉동창고에 가공시설을 갖춘 ‘길대동영녹색식품유한공사’를 설립하여 수익 전액을 길림대 장학사업과 교육 발전에 돌리는 조건으로 회사를 학교에 기증하였다.

  중국의 교육사업과 중한우호협력 증진에 특별기여로 권회장은 2005년 9월 북경에서 중국 정부의 최고상인 ‘우의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길림성 정부의 우의상을 수상했다.

  2008년 11월 권회장은 경북 칠곡군 소재 개인소유의 43만 4547㎡(74만평,시가 200억 원대 추정)임야를 계명대학에 조건 없이 기증했다.

  인터불고 그룹의 대구특급호텔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및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 본부 호텔로 세계적 유명세를 떨쳤고, 2011년 8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본부로 지정되어 다시 한번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이 역시 권회장의 지역사회발전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 향상에 일조한 괄목의 공헌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6년간 권회장은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종을 떠나 연 1만 5,000여명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연 150억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였다.

  원양 어선 40여 척, 한국과 중국,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 20여 개 계열사를 두고 냉동, 유통, 골프장, 조선, 무역, 건설 등 다양하게 사업영역을 확장해 가며 유럽 최고의 한상  (韓商)으로 정평이 났고, 사회에 통 큰 기부를 서슴지 않는 회장이지만 자신에 대해선 ‘자린 고비’란 ‘미명’이 따를 만틈 인색하였다.

  평생 술, 담배는 맛을 모르며 살아왔고 지금도 운전기사, 수행비서 없이 국산 소형차 프라이드를 손수 몰고 다닌다.

  와이셔츠는 깃이 낡아 헤어지도록 입고, 구두는 돈을 내고 닦는 법을 모르며 평생 내조 역을 맡아 손발이 되어준 아내도 시간적으로 돌볼 여유가 적어 항상 미안할 뿐이라고 한다.

  ‘스페인-서울 항공권을 예로 들면 1등석은 9300달러,3등석은 750달러입니다.가격차가 12배 넘는데 3등석을 타고 그 돈을 절약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쓰여진다고 생각하면, 육체는 다소 피곤할지라도 정신적으로 크나큰 보람을 느끼게 되지요.’

  지난 30여 년간 서울-스페인은 물론 여타 나라도 수없이 나들었지만 그룹의 총수답지 않게 1~2등 석은 아예 외면했다는 권회장의 얘기다.

  ‘어차피 인생은 번 돈을 두고 가는 법이다. 잘 살아야 100년인데 어려운 사람과 서로 나누다 가야지...’

  소박하지만 탈속한 달인의 내심 경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부라는 것이 정말 부럽습니다. 자신을 풍요롭게 하고 남을 풍요롭게 하고, 종국엔 세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회장님은 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진정한 부자입니다."

  권회장의 선행에 감동하여 남긴 한 네티즌의 글이다.

  "조선족동포, 사랑합니다"

  "한국에선 저희가 조선족동포와 가장 먼저 인연을 맺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교 전인 지난 90년 말부터 우리는 길림성의 매하구, 연변 등지서 조선족 선원을 모집하기 시작하여 한 해에 1,000명 넘길 때도 있었습니다."

  조선족동포를 언급하자 권회장은 흥분에 젖은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한국의 모든 원양회사에선 조선족은 한국인과 동등한 근로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여 일반 선원으로만 채용했다. 하지만 권회장은 이런 관례를 타파하고 일찍 길림성 매하구조선족중학교(고중)에 선장, 기관장반을 개설하여 체계적인 교육을 시킨 다음 이들을 등용하였다.

  "그 동안 제도와 이념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을 뿐 근면하고 총명한 점에선 조선족도 한국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2000년 이후 한국 내 취업기회가 늘어 일반 선원은 대부분 배를 떠났지만 저희 산업현장에는 아직도 수백 명 조선족이 기관장, 선장, 고급선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족선원을 대거 채용하면서 권회장은 이들 가족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1996년 20만 달러를 투입하여 매하구시에 조선족 선원가족 그리고 노약자 진료를 우선하는 비영리 동영병원을 건설하여 기증하였다.

  1997년, 원근에 ‘선원마을’ 로 소문난 유하현 동흥촌에 수재가 들자 권회장은 농로수선, 수리시설 보강에 쓰라고 10여 만 위안 지원하였다.


요즘 사정상 국내 매체의 인터뷰는 거의 사절하고 있지만 조선족 동포들이 애독한다는 흑룡강신문의 요청은 흔쾌히 응낙했다.

  장춘, 매하구시에 선후 여러 차 선원과 가족을 불러 연회를 베풀고 노래자랑을 펼치며 이들의 심신노고를 무마하고 풀어주었다.

  "그 동안 우리 회사는 조선족이라고 차별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 내가 사회에 많이 기부할 수 있게 된 것도 조선족들의 노력과 갈라놓을 수 없지요. 현재 대구의 우리 호텔에도 조선족직원이 10여명 되는데 모두 능력에 따라 한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한 핏줄인 동포를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안아주고 믿어주고 키워주면 조선족도 얼마든지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조선족 동포를 사랑합니다."

  권회장의 폐부에서 우러나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조선족과 애환을 같이 했던 20여 년 세월을 더없이 소중하게 여긴다고 터놓았다. 선원들이 중국에서 아파트를 사고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보는 모습을 보면 권회장은 그만큼 기쁜 일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조선족동포가 불이익을 당하는 일을 목격하면 참지 못하고 만사불구 도와 나선다는 권회장이다.

  "한국에 온 조선족 가운데 열심히 일하여 돈을 모으는 사람이 많지만 버는 족족 쓰다 보니10년이 되도록 주머니가 텅 빈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고국이 나한테 뭘 해주겠는가를 바라지만 말고, 스스로 꿈을 안고 일하며 또 노하우를 축적하여 직급도, 봉급도 올라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번 돈을 밑천으로 장차 중국에 돌아가서도 자그마한 사업부터 시작하여 무슨 일이든 꼭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글로벌그룹의 존경 받는 총수로, 국경을 넘어 기부선행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한 권영호 회장은 50만 재한 조선족 동포들에게 끈끈한 애정이 담긴 부탁의 말씀을 남겼다.


수수한 경비원 아저씨 같은 권영호회장

  권영호 회장 프로필

  1941년 경북 울진 죽변 출생

  1980년 인터불고 수산회사 설립

  1984년 대한민국 산업표창상 수상

  1986년 재단법인 동영장학재단 설립

  1992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수상

  1999년 길림대학 경제학박사

  2002년 길림대학 동영학원 설립

  2003년 스페인 국민훈장 수상

  2005년 중국정부 우의상 수상

  2006년 길림성정부 우의상

  2007년 대한민국 금탑산업훈장 수상

  2009년 대한적십자 중앙위원

  2011년 유럽기업가 대상 수상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진달래랭면 총경리 허미화 향후에도 서비스업으로 성공할터 청도시성양구에는 많은 한식점과 조선족음식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은 택시기사들마저 알아주는 명소로 되였다. 길림성돈화시 역전 앞에서 랭면집을 경영했던 엄마 지부전의 영향으로 허미화(79년생)총경리는 어려서부터 음식업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갖게 되였...
  • 2011-11-01
  • 청도국기외국어학교 김진숙교장 을 제창 조선족학생 학잡비 60%면제 해마다 천여명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청독국기외국어학교의 김진숙교장(1958년생)이  민족교육과 민족문화를 지키려는 일념으로 한국어를 무료로 보급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청도국기외국어학교는 미국적 대만인이 꾸리는 큰 재단산하...
  • 2011-11-01
  • 11월2일 연길서 20주년 기념식 가져 제17회 백두아동문학상 및 제14회 샛별소년문학상 제7회 백두어린이 글짓기상 , 제3회 두만강 꼬마작가상 시상도 김철수 박사.   (흑룡강신문=연길2011-10-28)한국의 저명한 아동문학가 김철수 박사(한국월간아동문학 발행인)의 지극한 조선족동포사랑운동이 20년을 하루같이 계속되고...
  • 2011-10-28
  • [길림신문 2011-10-28  장춘영 기자]  조선족의 전통복식문화를 리드해가는 연길시성월민족복장공장 공장장 최월옥 최월옥(崔月玉)프로필 1947년 8월 룡정 동불사 출생 1967년-1984년 룡정현 동불사진 동불남촌 부녀대장, 부녀주임 1984년-1990년 연길시서시장 개체호, 북청당지부 선전위원 1991년-현재 연길시...
  • 2011-10-28
  • [인터넷료녕신문 2011-10-25 김룡호 기자]연예계의 조선족기인 김성일씨 일전에 있은 무순시조선족문화관성립 60주년 기념공연에서 기상천외의 공연종목이 펼쳐져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한 사람이 있다. 사진필림, 비닐호스, 치약껍질, 빈 약병, 톱 등 도무지 악기라고 할수 없는 물건들로 아리랑, 도라지 등 여러가지 곡을...
  • 2011-10-26
  • 도전하는 녀성이 아름답다     [인터넷료녕신문 2011-10-25  리덕권기자  ]심양사범대학 고등직업기술학원 공공관리학부 선우옥련부교수 46세 나이에 신형열점학과 규제경제학(規制經濟學) 박사학위를 따낸 심양사범대학 고등직업기술학원 공공관리학부 선우옥련부교수(1964년생)는 도전정신...
  • 2011-10-25
  • [길림신문 2011-10-21 오기활 기자]리덕수주임 오기철에게 '고향을 열애하고 열심히 자선한다'는 친필제사를   항상 농민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왕청현 배초구진 봉림촌 오기철촌장 몇해전만도《부담촌》의 모자를 쓰고 합병설에까지 올랐던 왕청현 배초구진 봉림촌이 탈태환골하고 한창 궐기하고있다. 봉림...
  • 2011-10-24
  • [인터넷료녕신문 2011-10-21 리덕권기자 ]ㅡ토지보상정책 활용해 엄청난 재부 이룩해가는 정수봉씨의 노하우 심양시 우홍구 대흥조선족향(현 대흥가두판사처) 흥성촌(원 부강촌)태생인 정수봉(1967년생)씨는 6남매의 외아들로 아버지가 로동능력을 상실한 장기환자여서 고생스레 자라나며 가문을 일떠세워야겠다는 책임...
  • 2011-10-21
  •  재외동포재단 신임이사장 김경근 인터뷰    김경근(59) 재외동포재단 신임 이사장은 '소통'과 '차세대'에 방점을 두고 동포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17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재단 내부는 물론 700만 재외동포와 소통하는 이사장이 될 것"이라...
  • 2011-10-18
  • 세계경제인대회 준비하는 옥타 말레이시아 지회     “동남아의 허브인 말레이시아는 특성상 컨벤션이 자주 열리는 편이죠. 하지만 이번처럼 규모가 큰 행사는 처음이예요. 말레이시아 내에서도 관심들이 아주 높습니다” 이순구 말레이시아 지회장은 세계경제인대회 준비가 한창인 지난 28일 재외동포...
  • 2011-10-1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