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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민속식품 산업화 규모화 그룹화 발전의 길 모색"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11월11일 10시11분    조회:9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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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김시자
지린성 김시자민속식품유한회사 김시자 이사장을 만나

  김시자(金時子) 프로필

  1956년생

  1972년 9월ㅡ1979년 영길현 삼가자향 화평초등학교 교원

  1980년ㅡ1985년 창춘경제개발구 락동촌 6사 사장

  1986년ㅡ1995년 창춘시춘진식품공장 공장장

  1996년ㅡ2001년 창춘경제기술개발구 민속촌개장집 경리

  2001년 ㅡ현재 지린성 김시자민속식품유한회사 이사장

  직무 및 주요영예

  지린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부이사장

  창춘조선족부녀협회 부회장

  1999년 창춘시인민정부로부터 모범 자영업자 영예 획득

  2000년 창춘시인민정부로부터 선진자영업공상호 영예 획득

  2000년 창춘시민족단결진보 선진개인으로 당선

  2004년 전국소비자만족단위로 평선

  2006년 창춘시 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로부터 감사패 수여받음

 

  "시대의 발전은 정통적인 민속식품제작에 새로운 내포를 부여했다. 천년의 정통적인 수공생산으로부터 현대화, 규모화, 산업화, 그룹화의 방향으로 발전해야만 진정으로 시대의 흐름에 알맞는 민속식품의 새로운 비전을 실현할 수 있다."

  "정통적인 민속식품으로 전국시장 나아가 세계시장을 누비며 김시자민속식품을 광범위한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믿을 수 있는 우리 민족의 브랜드로 부상시킬 것이다."

  요즘 창춘시 구태경제개발구 카룬공업구 북측에 2만 2000평방미터의 땅을 구입하고 2000만위안을 선차적 투자로 1만 2300여제곱미터의 3층 공장건물을 짓느라 팽이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조선족 여성기업인이 있다.

  김시자, 민속식품으로 창업을 시작해서 장장 25년간 창춘시조선족사회에서 김시자라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해온 그녀이다. 조선족사회의 크고 작은 행사에 민속식품을 무료로 증정하는 것은 물론 현지 조선족사회 여러 협회의 활동에도 선금을 선뜻 내놓았다.

  11월 5일 오후, 기자의 인터뷰에 응한 김시자 이사장은 직원이 금방 병원에서 가져와 건네준 중약부터 꿀꺽꿀꺽 마셨다. 2002년 암투병으로 큰 수술을 받고 나서 신체가 많이 허약해진 그는 늘 약을 달고다니는 형편이다. 요즘도 김시자 이사장은 새 공장건물 건설로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다. 한국에서 구입한 2억 4000만원(한화)의 자동화생산라인이 새 공장의 낙성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이렇게 취재까지 한다니 너무 긴장돼요.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자기가 한 일에 비해 너무나 겸손하고 소박한 첫마디였다.

 


김시자민속식품유한회사 가공부 일각.

  곤란에 굴복하지 않는 끈기, 그리고 시장에 대한 예리한 안목

  "1985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고 가장 잊을 수 없는 한해였다." 1985년 락동촌의 논이 기업용도로 변경되면서 농업을 위주로 하던 락동촌 주민들은 시장경제의 물결속으로 사정없이 휘말려들게 된다.

  당시 김시자도 모든 부동산을 팔고 현금 만위안까지 꿔서 친구, 친척들과 함께 베이징, 톈진에 가서 식당을 경영했다. 그러나 낯선 곳인데다 경험도 없다보니 결국에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고향에서 가지고 온 돈도 거덜나고 적당한 항목도 잡지 못한 김시자는 베이징, 톈진 두 도시사이를 전전하면서 길거리에서 김치를 팔기 시작했다. 베이징, 톈진에서의 2년동안은 김시자의 일생에서 제일 어렵고 막막했던 나날이었다고 한다.

  1987년 어린애를 돌보기 위해 창춘으로 돌아온 그녀는 2년동안 김치를 팔아서 모은 돈 2만위안에 락동촌의 담보로 향에서 2만위안의 대출을 받아 춘진식품공장을 꾸렸다. 그것도 첫 시작은 순조로왔지만 1989년 원재료 가격이 상승하면서 공장의 경영이 다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어떻게 하나 공장을 살려야 한다." 김시자는 반년동안의 시장조사를 거쳐 조선족식품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발견하고 조선족이라는 우세를 이용하여 경영항목을 바꿔 김치, 떡 등 민속식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품의 판로가 생각밖으로 좋았고 매일 천여근의 조선족전통떡이 불티나게 팔렸다. 창춘역, 창춘백화점, 국제무역청사, 구아상도, 자동차성 백화점 등 큰 상점에 지정판매점을 개설했고 창춘시 100여개 크고 작은 식당에 공급하기도 했다.

  판로가 열리고 생산이 확대되자 1997년 김시자는 480제곱미터의 3층집을 개조해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그는 해마다 국가에 12만위안의 세금을 납부하고 연속 6년 창춘시정부로부터 모범 자영업자 영예를 수여받았다.

  식품공장을 경영하면서 김시자는 또 창춘시경제기술개발구에 민속촌개장집을 경영했는데 1995년 개업시초에는 10상정도에서 1999년에는 65상으로 발전, 하루에 개를 30~40마리씩 잡을 정도로 손님이 북적거렸다.

  후에 창춘시에도 개장집이 여기저기 많이 서면서 경영상 영향을 받게 되자 김시자는 단연히 개장집을 그만두었다. 이는 김시자민속식품공장의 시초 자본축적에 튼튼한 발판이 됐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한시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아

  김시자 이사장의 책상위에는 항상 "길림신문", "흑룡강신문", "료녕신문" , "장백산", "청년생활" 등 조선문 신문, 잡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일하는 짬짬에도 글을 읽기 좋아한다고 한다. 매일 저녁 책을 보는 것이 이제는 습관처럼 몸에 배였다고 한다.

  김시자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선진기술에 대한 학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01년부터 김시자는 한국에 가서 한국의 선진기술을 학습하기 시작했다. "호사다마"라고 2001년 김시자의 첫 한국행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여행비자 발급이 거부당한 것이다.

  현지에서 김시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길림신문", "장백산"잡지사, 지린성 경제과학기술 진흥총회에서는 연명으로 영사관에 공문을 보내기도 했고 나중에는 김시자가 다년래 수여받은 상장을 한가방 메고 직접 영사관에 찾아가기도 했다.

  김시자의 회사와 사적에 영사관의 담당영사는 "조선족사회에 이렇게 훌륭한 분이 있는 줄 정말 몰랐다. 앞으로 우리 민족사회를 위해 더욱 많은 일을 하기 바란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비자를 발급했다.

  이렇게 한국행이 이루어진 것은 2001년 8월 8일이었다. 그러나 배움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유통기한이 긴 제품을 개발하려고 한국을 찾았는데 그가 시찰한 한국공장이 즉석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여서 그의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이렇게 김시자는 첫 한국행에서 아무런 수확도 못보고 빈손으로 귀국했다.

  두달후 다시 한국으로 떠났을 때도 일주일동안 현지 시찰을 했지만 큰 수확이 없었다. 마지막날 실망에 잠긴 김시자가 안산의 모 슈퍼에 들렸을 때 카운터에 놓인 떡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자세히 보니 떡의 유통기한이 한달이었다. "바로 이거다 싶어." 김시자는 떡을 한박스 사서 중국으로 가져와 유사한 제품을 생산하는데 착수했다.

  12월, 다시 한국행을 택한 김시자는 직접 그 떡공장을 찾아가서 기술을 배우려고 했다. 허나 한국사장은 기술을 배워주려고는 하지 않고 한물간 자기 회사의 중고기계를 김시자에게 팔려했다.

  결국 한국에 있는 친척의 도움으로 서울에서 제일 큰 경창정밀기계공장을 찾게 되었고 그 인연이 오늘까지 지속됐다고 한다. 김시자는 돈 4000만원(한화)을 모아 기계를 구입하고 기술을 배웠다.

  허나 기계를 중국에 들여와서 조립하려고 할 때 또 문제가 생겼다. 한국경창공장은 김시자가 작은 가정식떡집을 경영하는가 해서 가정용 떡기계를 보내왔던 것이다. 이는 공장의 생산수요를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였다.

  이렇게 구입한 기계를 2년동안 쓰고나서 시장전망이 생각보다 좋아 2003년 다시 한국에 가서 1억원(한화)을 들여 떡기계를 구입했다.

 

  "우리 직원들은 한가족이다"

  김시자는 새로 건설중인 공장건물에 작업장, 사무실, 회의실, 활동실외 또 직원들을 위한 가정식숙소도 마련했다. 60제곱미터 안팎의 가족숙소를 11개 만들고 25제곱미터 안팎의 개인숙소를 21개 만들어주었다.

  숙소는 개인집처럼 벽지도 붙이고 아담하게 장식했는데 침대, 옷장, 소파, 주방용품, 태양에너지온수기, 이불 등이 모두 갖추어졌다.

  근일 구태시개발구 사회복무국의 왕영순 국장이 공장건물을 시찰하고 나서 "전 구태시에도 이런 기업이 없다. 조선족여성이 이런 기업을 만들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고 하면서 찬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현재 회사에는 60여명의 직원이 있는데 김사자는 직원들을 자식처럼, 형제처럼 생각하고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해주고 있다.

  "어려울 적마다 항상 귀인들의 도움이 있었다"

  김시자는 "귀인들의 도움이 있어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회사를 오늘까지 경영할 수 있었다"고 늘 말한다.

  창춘조선족부녀협회, 창춘시조선족중학교를 비롯한 창춘시 조선족사회 각계의 지지가 있었기에 어려운 고비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열심히 기업을 운영하는 그녀의 정성은 현지인들은 물론 국내 기타 도시 및 해외 합작파트너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기업을 운영하는 가운데 기술혁신이나 자금조달이 잠시 어려울 때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선뜻 내밀었다.

  "어려울 때 도와준 고마운 분들의 은혜를 꼭 배로 갚겠다." 김시자는 자기를 도와운 고마운 분들을 항상 기억하면서 언제든지 기회만 되면 보답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힘만 된다면 얼마든지 돕고 싶다"

  김시자는 현재 기업경영 외에도 지린성 경제과학기술 진흥총회 부이사장, 창춘조선족부녀협회 부회장으로 활약하면서 기업인으로서 사회적인 환원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다.

  해마다 조선족사회의 크고 작은 행사는 물론 일상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통큰 씀씀이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그녀가 창춘시조선족사회에 기부한 돈과 물건은 30여만위안에 가깝다. 그리고 대리어머니로 활약하면서 불우학생을 돕는데도 힘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기업을 창립할 때는 잘살아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허나 지금은 자기가치를 실현함과 동시에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생각하고 있다. 투입과 생산규모를 확대함과 동시에 재주가 있는 청년들과 경험이 있는 정리실업일꾼, 땅을 잃은 농민들을 받아들여 기업인재를 충실히 하고 안정한 가운데 발전을 도모할 것이라고 한다.”

  김시자는 기업을 장대시켜 사회에 더욱 많은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잘살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길린신문 창춘영 기자


김시자민속식품유한회사의 브랜드 상품들.

  지린성 김시자민속식품유한회사 소개

  지린성 김시자민속식품유한회사는 연구개발, 생산, 판매가 일체화된 다원화 실업회사이다. 1987년에 설립한 창춘시춘진식품공장은 2001년 주식제유한회사로 바뀌었다.

  해마다 500톤의 밀가루제품, 300여톤의 옥수수제품, 1200여톤의 찹쌀제품, 300여톤의 야채제품을 생산한다. 김시자민속식품유한회사 본사 산하에는 상하이제1분회사, 한국민속김치공장, 한국민속떡공장, 옥수수식품가공공장, 한식냉면공장이 있다. 직원이 60여명이고 연 생산액이 2500만위안 안팎이다,

  원 공장부지는 창춘시경제기술개발구에 자리잡고 있다. 2010년 창춘 구태경제개발구 카룬공업북구에 2만 2000평방미터의 공업용지를 구입하고 새 공장건물을 건설 중이다.

  현재 김시자 브랜드의 찹쌀떡, 한식콘후레이크, 한식찰떡파이, 한식전통떡, 한식민속김치, 한식냉면 등 한국특색이 있는 6대 계열 50여가지 식품을 경영하고 있다.

  제품은 동북3성, 베이징, 상하이, 톈진, 훅호트, 타이위안, 지난, 난징, 허페이, 다롄, 우한, 이우, 푸저우, 창사, 꾸이린, 선전, 쿤밍, 꾸이양, 청두, 충칭, 시안, 란저우, 시팅, 스자좡 등 전국 각지로 판매되고 있다.

  금년 11월 15일에 새 공장건물에 입주,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생산에 투입하며 내년에 성대한 개업식을 갖고 정식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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