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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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식품안전과 신뢰구축 댓글:  조회:3377  추천:1  2013-06-26
한 농민공의 량심사연을 다룬 기사를 읽었다. 불치의 병에 걸린 세살짜리 딸애의 수차의 대수술과 화학약물치료를 위해 전병을 부쳐 팔아서 한푼두푼 애써 모은 돈을 다 털어 지극정성을 하는 농민공, 딸애의 항암치료비용을 대고저 더 성실하게 전병장사에 몰입할뿐 딸애의 생명을 시민들의 리익과 대칭시키는 꼼수를 쓰지 않는다… 갓 부쳐낸 뜨거운 전병을 그대로 비닐봉지에 넣으면 소비자들 몸에 해로울것 같아 식품감독부문에서 허용한 비닐포장봉지지만 아무 망설임 없이 종이포장봉지로 교체한다. 포장지 교체로 열배나 올라간 생산원가를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자신이 묵묵히 감내할뿐 소비자들이 알아달라고 야단법석을 떨지 않는다. 전병 부칠 때 곁들이는 바삭과자도 헐값으로 도매시장에서 들여올수 있지만 안전성이 맘에 걸려 자신이 몸소 튀겨내는 고달픔을 당연지사로 여긴다. 힘들어도 내 소비자는 내가 지킨다는 책임감때문이다. 그만큼 농민공이 부쳐낸 전병은 그 맛이 일품이다. “번 돈이 량심에 찔리지 않을 때만이 그 돈을 맘놓고 쓸수 있다”고 내비치는 농민공의 진솔한 량심선언에 전병가게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농민공의 딸사랑에 대한 련민보다 소비자신뢰를 생명으로 여기는 농민공의 그 “량심”에 시민들이 모든것을 맡기고있는것이라는 북경 어느 골목의 훈훈한 이야기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깨서는 안된다는 선량한 심성, 사랑하는 딸애에 대한 지극정성이 소비자를 아끼는 자신의 일편단심에 금이 가게 하는 리유가 될수 없다는 올곧은 량심,바로 이 선량한 심성, 올곧은 량심으로 부쳐낸 전병의 특유향기가 시민들의 발목을 잡은것이다. 량심은 누군가가 보고있을지 모른다고 타일러주는 마음속의 소리라는 말이 있다. 신뢰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동아줄이다. 그러나 한번 끊어진 신뢰의 동아줄은 도저히 재활이 어렵다. 더구나 시민의 생명건강과 직결되는 음식업소가 “불신”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였을 때 병든 신뢰를 회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몇년전 연길시민들을 경악시켰던 사천신선로 식재료가공 범죄현장 로출과 함께 불거져나온 몇몇 신선로음식업체의 비리가 그 사례로 된다. 신선로음식점을 대상하여 식재료를 납품해오던 범죄의 소굴이 척결됨과 동시에 손님들로 초만원을 이뤘던 몇몇 사천신선로음식점이 영업간판을 내리우고 영업정지 처벌을 받으면서 시안의 모든 사천음식점이 신뢰위기에 몰리게 되였다. 맵고 얼얼한 사천신선로를 선호하는 연변사람들은 된 방망이에 뒤통수를 가격당한 느낌이였다. 무릇 사천신선로를 먹었던 시민들은 요강뚜껑으로 물을 떠마신 그 맹랑한 기분에서 한동안 헤여나올수 없었다. 몇년이 지난 지금 화제의 그 사천신선로음식점은 업소명칭을 쇄신하고 품질약속을 위한 이벤트를 열심히 벌리면서 시민들의 신뢰를 되찾으려 애쓰지만 그제날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는 썰렁한 풍경이다. 엄청난 우롱을 당한 연변사람들이 두번 다시 속지 않는다는 반목의 표시이다. 신뢰라는 넋이 빠져나간 허전한 공간이 다시 그제날의 모양새로 환원할수 있을가? 신뢰는 소비자의 차분한 직접체험을 거친 마음의 천평으로 무겁게 얻어지는 것이지 결코 업체의 요란한 자기홍보나 거창한 광고효과에서 파생되여나온것이 아니다. 소비자들의 관심사는 자신이 향수하려는 음식물 품질에 대한 확실한 믿음의 정보이지 잔뜩 부풀어진 업소의 현란한 업적이 아니다. 자신이 잠시 손해를 입더라도 이에 련련하지 않고 오로지 고객의 마음에 신뢰의 뿌리를 내리게 한다는 깨끗한 량심으로 정성껏 만들어낸 음식물자체가 미사려구로 부풀어진 광고보다 훨씬 효력적이며 무서운 경쟁력을 갖는다는 점, 이런 량심에 기대여 구축한 신뢰의 피라미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도리를 전병가게의 농민공아저씨를 포함한 우리 주변의 많은 창업인들이 생생하게 보여주고있다. 일전에 주당위에서는 “인간근본, 생명최상, 안전제일”의 리념을 포인트로 사회 전반의 안전생산 조사정돈 카드를 내들었다. 여기에는 당연히 한순간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음식업체의 신뢰성 점검이 포함돼있어야 할줄 안다. 관광성수기를 맞아 더 바빠질 우리의 음식업체들이 연변을 찾는 세계인들에게 따뜻한 향수의 공간을, 편안하고 아늑한 쉼터를 제공해주는것이야말로 연변에 대한 세계의 신뢰도를 업그레드시키는 “넘버원”으로 될수 있기때문이다. 연변일보 6월 26일자
27    다문화가족론 댓글:  조회:3849  추천:2  2013-06-05
일전에 한 조선족 지인의 아들혼례식에 다녀온적이 있다. 그날 혼례식 포인트는 “한족며느리 맞기”였다. 결사반대했던 혼인이였는데 예비신부의 갈고닦은 조선족례의범절수준과 완벽한 조선말구사실력에 높은 점수를 줄수밖에 없었고 결국 지인내외가 내 언제 그랬냐싶게 한족며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됐다는것이다. 상당히 인상적인 혼례식이였다. 조선족의 뺨을 칠 정도의 류창한 조선말로 혼인서약을 맹세하는 한족신부의 자태도 일품이지만 우아한 한복차림을 한 한족신부의 어머니가 조선족신랑의 어머니와 조선족춤으로 자연스레 엮이면서 화기애애하게 혼례식절차를 밟아나가는 장면은 하객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하나의 진풍경이였다. 조선족문화에 입문하고저 한족며느리는 물론 그 부모들이 얼마나 땀동이를 쏟았을지를 엿볼수 있는 대목이였다. 세월의 변화가 느껴진다. 지난 70년대까지만 해도 세간에서 충격적인 이슈로 말밥에 올랐던 조선족과 타민족사이의 혼인이 오늘날 그 당사자는 물론 가족이나 세간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수 있는 혼인문화로 서서히 정착해가고있는 사실에 놀랍다. 그날 례식장에서 내가 앉은 좌석만 봐도 그렇다. 아홉명 조선족하객가운데 아직 자식들이 미혼인 나를 포함한 세명은 이미 한족며느리를 맞아들인 다섯명 경력자들의 “포위”속에 “약소군체”로 자리매김한 상황이였으니 말이다. 우리의 주관념원과는 상관없이 조선족정체성의 존속과 발전은 오늘날 글로벌시대의 도래와 함께 다원공존이라는 변화의 흐름을 타게 되였다. 소박한 민족공동체의 단일화 생태공간에서 전통적 민족의식에 국한된 삶을 살아온 조선족에게 먼 장래의 가능성으로 들먹거려졌던 다문화가족현상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서고있는것이다. 변화된 환경은 변화된 의식을 낳기마련이다. 민족의 운명,민족의 미래와 같은 거창한 표현은 이제 더는 지난세월 페쇄된 생존공간에서 인식되던 그같은 획일적인 사유의 꼬리표가 될수 없음을 분명히 시사하고있다. 여러 민족 공존공생의 다원화 생태는 우리로 하여금 조선족과 기타 민족이 사회갈등과 인정세태,물질적 삶과 정신적 추구, 환희와 번뇌, 리상과 곤혹 등 면에서 운명을 함께 하는 공동체로 되고있음을 깨닫게 하고있다. 열린 민족주의리론의 시각에서 력사를 돌이켜볼 때 순수한 민족이란 없다.인류의 력사는 이민의 력사이며 타민족과의 융합의 력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방된 글로벌화 환경에서 보다 긍정적인 자세로 조선족과 타민족의 혼인을 인식하며 이런 혼인이 조선족사회발전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조선족의 타민족며느리, 타민족사위는 다원공존생태환경의 필연적 산물로서 그들 대부분이 본문의 서두에 언급한 “한족며느리”처럼 조선족례의범절과 조선말구사실력을 포함한 조선족문화의 입문에서 뼈를 깎는 각고로 조선족사회 구성원으로 될 “자격”을 당당하게 따낸이들이라고 알고있다. 오늘날 이같은 상황은 300여년전 하북성 청룡 등지에 이민하여 조선족언어, 문자, 력사, 풍속을 깡그리 망각하면서 만족, 한족속에 녹아든 “박씨성”조선족들의 통혼실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조선족문화가 뿌리 깊은 나무,샘이 깊은 물로 이 땅에 건재할 때 청룡 "박씨성"조선족의 그런 비극은 두번 다시 없을것이다. 조선족의 대이동이 전격화되면서 조선족 미풍량속을 비롯한 조선족문화의 전승과 발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있을 때 중한수교에 의한 두 나라 문화교류의 장이 열리면서 조선족사회발전의 중요한 변수로 되고있어 고무적이다. 한류의 물살을 타고 우리 나라에서 200개에 달하는 대학교가 한국어강좌를 설치하여 타민족이 우리 말 언어와 문화로의 접근에 푸른등을 켜주고있다. 현재 연변대학만 보더라도 260여명의 한족학생이 우리 말 배우기에 전념하고있다. 이들 다수가 어릴 때부터 조선족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는 점이 주목된다. 따라서 이들이 조선족의 며느리감, 사위감 후비력량으로 될 확률이 높다는 점에 대해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것이다. 우리 민족 언어를 완벽하게 익히고 우리 민족 미풍량속을 환히 꿰뚫고있으며 우리 민족 문화에 흠뻑 도취된 타민족며느리, 타민족사위는 조선족사회의 귀중한 인문자산으로서 21세기 조선족문화교두보에서 특수한 군체로 떠오를것임이 분명하다. 상기한 타민족며느리, 사위감에게 높은 점수를 주려 하는것이 오늘날 조선족 부모들의 마음일것이다. 타민족의 우수한 며느리, 사위들의 조선족사회가맹에 힘입은 이같은 민족동화가 조선족의 밝은 미래와 점철되는 오작교가 될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연변일보 5일자
26    관행론 댓글:  조회:4306  추천:61  2012-12-19
고려 제25대 충렬왕때 최석이라는 청렴한 관리가 있었다. 순천부의 부사로 임관해있으면서 최석은 매사에 공명정대함을 원칙으로 하여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선정을 베풀어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3년후 최석은 영전되여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당시 순천부에서는 사또가 임무를 마치고 그곳을 떠날 때 좋은 말 여덟필을 주어보내는 풍속이 있었다. 그런데 관속이 골라준 말에 짐을 싣고 순천부를 떠나 서울의 본가에 도착한 최석은 말에서 짐을 부리고나서 말이 할 일은 끝났으니 말을 끌고 돌아가라고 한다. 마부가 황급히 이 말들은 이제 사또의 소유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순천부에 부임했던 사또들이 모두 여덟필씩 말을 가져간 관행이 있으니 그 관행을 깨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이 말을 듣던 최석은 준렬히 마부를 꾸짖는다—그건 잘못된 관행이다. 관청의 소유물을 누가, 무슨 권리로 구관에게 함부로 준단 말이냐? 최석의 단호함에 여덟필의 말과 오는 도중에 낳은 망아지까지 모두 순천부로 보내진다. 감복한 순천부의 백성들은 관행을 깬 최석의 청렴함과 공덕을 높이 칭송하여 팔마비(八马碑)라는 비를 세웠다고 한다. 예전부터 관례에 따라 행하여지는 일을 관행이라 일컫는다. 세상인심은 무릇 관행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대체로 받아들여지는쪽으로 가닥을 잡게 되여있다. 순천부의 오랜 관행으로 되여있는 여덟필의 말을 최석이 자기 소유로 하여 가진들 누가 시비 걸 일은 없다. 하지만 그가 잘못 된 관행을 깼기에 순천부에는 맑은 정치가 안주하고 관청과 백성이 가까와질수 있는 새로운 관행이 설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 면면에서 볼수 있는 수많은 관행은 그 표현형태여부를 떠나 오랜 봉건력사에서 유래되여온것이라 할수 있다. 몇천년을 내려오면서 정권교체가 수없이 이루어지고 국가제도가 천지개벽의 변화를 안아왔지만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보다 색다른 형태로 포장되면서 일종의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잡고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떤 관행이든 일단 도를 넘어 당과 정부의 이미지를 더럽히고 백성의 근본리익에 심각한 해를 입히며 사회풍조에 악영향을 끼칠 때 이런 관행은 척결해야 마땅하다. 당중앙 새 지도부가 한달 남짓한 사이에 차례로 깨고있는 관행은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을것이다— 11월 15일,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모습을 드러낸 자리에서 습근평 당총서기는 “빈말과 상투적인 말”을 자제한 20분간의 신선한 취임연설로 부드러운 인간매력을 과시한다. 11월 26일과 30일 리극강부총리와 왕기산 규률검사위원회 서기는 두 좌담회에서 각각 회의참석자들에게 준비한 발언원고를 읽지 말고 중점문제만 내놓고 토론하자면서 새로운 회의풍조 정착을 예고한다. 12월 7일부터 11일까지 습근평 당총서기의 광동사업고찰시 도로차단이 전혀 없고 차대는 공공뻐스, 택시, 자가용과 병행하여 질주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심수 련화산공원에서 등소평조각상에 헌화할 때도 양탄자를 펴지 않고 삼엄한 안전경호도 없이 총서기와 군중들이 자유자재하게 서로 악수를 나누며 면담하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져 백성들의 갈채를 받는다. 웃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다. 그런데 웃물이 맑아도 아래물이 오염에 로출되여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사례를 우리는 가끔 보아왔다. 때문에 우만 쳐다보지 말고 스스로의 정화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아래물도 웃물의 원천적인 맑음을 이어내려가면서 량성순환을 할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필자는 일전에 최국철작가가 쓴 “주덕해평전”을 읽으면서 “웃물과 아래물”의 력학관계를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주덕해는 웃물의 맑음으로 아래물의 정화를 이끌어내는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평전”에는 간부와 군중이 주덕해를 극찬한 이런 말이 있다… “주덕해서기는 하향하면서도 판공실에서 절대로 자신의 행차를 당지 정부에 알리지 못하게 했고 접대하지 못하게 비밀리에 행차하군 했소.” “주덕해서기는 무슨 일이든지 앞장서서 벌려놓고 제기되는 무수한 곤난을 제때에 잘 해결해주었지만 경축장소에 나서기 싫어했고 경축연설도 많이 피했소.” “주덕해는 시골에 내려오면 절대루 색다른 음식을 못하게 하고 숙주집 식구들과 한밥상에서 식사했수다.” “조선족의 모든 삶의 씨앗을 뿌린 사람”, 연변 초대 주장 주덕해의 삶은 연변의 새세대 지도자들이 대를 이어 전승해야 할 소중한 정신유산으로, 기관작풍의 관행으로 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길 서북쪽 송림속에 우뚝 솟은 주덕해기념비는 이 지역 틀린 관행의 척결과 옳은 관행의 안주를 위한 튼튼한 수호신으로 되리라 생각한다.
25    명인효과개발론 댓글:  조회:4103  추천:102  2012-11-28
노벨문학상 수상자 막언을 둘러싼 “경제문화개발”붐이 뜨겁다. 막언 작품의 저작권을 소유하고있는 출판사는 그의 작품 추가인쇄로 행복한 "비명"이 끊이지 않고 막언의 계약회사는 시장출하기획으로 눈코뜰새 없다. 막언문학과 전혀 상관없는 “막언티셔츠”, “막언마크컵”, “막언양복”, “막언고향 흙으로 빚은 호랑이 조형물”등 상품들도 우후죽순마냥 튀여나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가운데 막언의 고향에 “붉은 수수문화”관광코스를 개척하고 막언의 생가주변에 막언문화체험구와 “붉은 수수문화”레저구를 앉힐 프로젝트가 당지 정부에 의해 검토되고 있다고 하니 은근히 기대되는 마음이다. 워낙 소문없던 도회지가 막언이라는 명인에 의해 부글부글 끓고 있다. 그야말로 명인효과를 실감케 한다.  물론 막언문학의 정신재부와 작품문화원소를 무시한 엉뚱한 개발로 “막언효과”가 굴절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있다. 명인후광으로 개발대상의 가치성을 증폭시키고저 하는 현상은 오늘날 별로 놀랄 일도 아닌 자연스런 개발문화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지난 1990년대 초 “위대한 수령”의 고향 소산 모가만촌을 방문했을 때 이런 광경을 목격했던적이 있다. 길옆 음식가게 앞에 할머니 한분이 좌정해있었는데 그옆에 30여년전 모가만을 찾아 고향사람들과 담소하는 모택동주석의 사진액자가 놓여있었다. 그러고 보니 모주석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사람들속에 아이를 안고 활짝 웃는 젊은 아줌마가 바로 지금의 할머니고 이 가게가 그 당시 수령이 들렀던 사진속의 농가였다. 수령과 함께 하는 사진액자를 달랑 놓고 앉아 관광객 유치를 하고 있는 할머니의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참 기막힌 아이디어라는 생각을 필자는 그때 처음 해보았다. 그 어떤 요란한 매체홍보나 전단지 배포도 없이 다만 끊임없이 모여오는 관광객 흐름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도미노현상을 할머니는 재치있게 활용하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그 모가만 음식가게가 지난해 북상하여 연길도심의 신라월드빌딩에까지 보란듯이 입주했다는 사실이다. 신주 곳곳에 메아리 친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라는 연변노래에서 계시를 받은 모가만 할머니가 수령에 대한 연변사람들의 신격화 심리를 “동방홍”의 고향에 접목시킨 또 하나의 걸작이 아닌가 한다. 명인에 대한 국민들의 열광적인 우상화, 신격화 집착심리는 “명인순풍”에 “장사 돛”을 달려는 산채(山寨)의식발효의 온상으로 되기에 안성맞춤인것 같다. 사람들의 팽창된 명인숭배심리가 테라스로 되여 명인이 태여난 곳, 명인이 활동했던 곳, 명인이 관심했던 일, 심지어 명인과 함께 했던 사람이 개발포인트로 화끈하게 작용하는것이다. 막언이 태여난 고장의 특정적인 지역향토풍경을 되살려 “붉은 수수문화”관광코스를 개발하려는 막언고향사람들의 구상이나 수령의 후광을 업고 재치있게 만들어낸 모가만 할머니의 관광객 유치전략은 이같은 맥락에서 파생되여 나왔다고 생각한다. 지역마다 자체의 명인 브랜드가 있지만 명인에 대한 개발초점을 어디에다 어떻게 맞추냐에 따라 명인효과는 부동한 양상으로 나타날수 있다. 연변은 풍부한 명인자원을 확보하고있는 천혜의 고장이지만 오래동안 이 지역의 특수성에 의해 명인들이 베일에 가려져있거나 문자기재화수준에 머물러있었던게 사실이다. 두만강 개발개방이 고조되면서 비로소 우리 민족, 우리 지역 명인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명인효과개발”루트에 들어가고있지만 솔직히 명인의 문화적 깊이에 대한 인식과 발굴에서 청정점수(蜻蜓点水)식 겉치레나 빈약한 소개에 머무르는 유감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애국관원 오록정, 중국의 피카소 한락연, 저항시인 윤동주 그밖에 연변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있는 많은 명인들의 사상과 리념은 오늘날 우리가 연변을 사랑의 향토로 잘 지켜나가고 매력적인 고장으로 잘 건설해야 하는 정치 문화적 도리를 제시해주고있는 소중한 자원이다. 명인이 나서 자라고 활동했던 지역을 잘 보전하고 포장하는것은 력사문화에 대한 존중이며 우리가 여기에 모여사는 리유이기도 하다고 저명한 학자 여추우가 일찍 연변의 어느 포럼에서 지적한바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경제와 정치 리유는 쉽게 찾으면서 문화리유를 찾기 힘들어하는데 명인이 나서 자란 곳이 문화리유를 찾을수 있는 최우선 선별지가 될수 있다는게 학계의 중론으로 되고있다. 사실 세계 여러 곳의 도시경관은 명인의 생가와 활동지로 하여 유명세를 타고있으며 명인의 생가와 유적을 통해 그 지역 문화부호에 대한 리해를 깊게 할수 있는것이다. 연룡도일체화, 장길도선도구 건설이라는 이 웅대한 건설프로젝트에 “명인효과개발”이라는 참신한 내용을 유기적으로 복합시킨킴으로써 연변의 문화속성이 보다 확실시될수 있지 않을 가? 아마추어나 장관의지가 아니라 국내외 저명한 문화학자, 도시문화기획인들의 걸출한 사유에 힘입어 명인효과 개발과 지역사회 발전의 련결고리를 찾아내여 명인들의 거룩한 정신문화재부의 넋이 연변 곳곳에 침투되고 세상에 그 매력을 과시하게 하는일, 바로 우리 세대가 해야 할 몫이다.
24    《아리랑주간》심열의견 댓글:  조회:4936  추천:2  2012-11-01
《아리랑주간》심열의견     (2012.6.4 — 8.12)       채 영 춘     (길림성 조선문 간행물 심열소조 조장,원 연변주위선전부 부부장)        본 의견은 올 6월 4일부터 8월 12일 사이에 간행된 《아리랑주간》지의 선제내용을 심열대상으로하여 작성한것이다. 업종신문으로서《아리랑주간》지는 라지오영화텔레비죤방송분야에만 국한하지 않고 조선족문화전반에 얼굴을 돌리여 중국조선족 나아가 재한조선족사회의 이슈로 되고있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간지의 특색을 살리고저 최선을 다하였다. 1. 사회적 책무감으로 조선족사회의 중대사를 폭넓게 다뤄 주간지의 품위를 높히였다 6월부터 8월초순사이에 발간된 총10호의 주간지 1면의 톱으로 다룬 내용선제를 살펴보면 1)연변의 대외개방과 선도구전망계획요강실시와 관련된 보도 6월4일부 주간지 1면은 “훈춘국제합작시범구 가동”이라는 큼직한 제목으로 중국두만강지역국제합작시범구가동 및 중점대상시공의식 뉴스를 현장사진과 더불어 대서특필하였다. 보도는 시범구의 건설면적, 건설내용, 시범구의 전망과 함께 장안순서기의 중요연설을 간추려 발췌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선도구전망계획요강실시 진척에 대해 통속적으로 알려주고 연변대외개방의 밝은 미래를 제시해주었다. 2) 자치주 60돐맞이 초읽기와 관련된 보도 편집부는 7월18일 부 주간지 1면 “중앙급 매체 기자들 연변서 열띤 취재경쟁”이란 제목의 보도를 그 시작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경축 노래에 첫삽 떴다”(7월23일), “ ‘중국광채사업연변행’성과괄목”(7월30일), “어화둥둥 우리 춤사위에 어깨춤이 들썽”(8월 6일)등 60돐 맞이 초읽기 보도들을 1면 사진화면과 겯들여 륙속 다루어 주간지 독자들에게 경축분위기를 선물하기 위해 애썼다. 3) 민족문화교육문제점 및 대안과 관련된 보도 6월 11일 부 주간지 1면은 “ ‘동풍공정’ 조선족 빠져 중앙보충 노력 약속”의 제목으로 조선족출판이 국가 “동풍공정”에서 루락되였다가 다시 보충편입될 중대사항에 대해 제시하였고 6월 18일 1면에는 “조선어 수험생고갈은 련쇄반응결과”라는 제목으로 우리 민족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분석하였으며 7월 2일 1면과 7월 9일 1면은 선후하여 “날아라 아리랑”, “조선족가수 백청강 첫앨범”등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우리 민족의 자랑인 아리랑그룹과 백청강의 활약상을 펼쳐보여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4) 재한 조선족의 생존실태와 관련된 보도 6월 25일부 주간지 1면은 한국화성공장 폭발현장 사진을 겯들여 “한국화성공장 폭발, 조선족1명 실종 추정”이라는 제목의 재난보도를 다루어 재한 조선족의 생존상황에 대한 깊은 관심과 주간지의 사회적 책임감을 구현시켰다. 2.인성화 보도를 애써 부각시키면서 아리랑 뉴스의 “인간본위”리념을 잘 구현하였다. 1) 시정보도를 짧고 구체화하면서 독자들의 알권리에 맥락을 두는 노력이 돋보인다. 례하면, “훈춘 국제합작시범구 가동” 보도는 총600여자의 짧은 편폭에 독자들이 관심하는 시범구 면적, 건설내역, 전망 등이 알기 쉽게 밝혀져 있다. “중앙급 매체 기자들 연변서 열띤 취재 경쟁”보도는 중앙급 매체 기자들이 중국조선족전통사물놀이 북잡이 대표주자 진경수를 찾아 취재하는 장면을 생동한 화면과 짧은 사진설명으로 구체화하였다. 2) 인물보도에 력점을 두어 연변제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조선족리더들을 기사화하였다. 《뉴스포커스》는 주간지 인물보도의 테라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간지는 10호에 나누어《뉴스포커스》전문란을 통해 조철우, 전승철, 임금화, 전규상, 김명순, 임선희, 허덕환, 안승룡, 리향란, 조미화 등 10명의 조선족 주역들의 업적을 열정껏 보도하였다. 3) 재한 조선족에 대한 배려가 큰 비중으로 다뤄지고 있다. 주간지는 재한 조선족의 생존실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히고 있다. 6월 25일 1면에서 한국화성공장폭발로 조선족이 실종된 보도를 크게 다룸과 동시에《뉴스포커스》를 통해 7월 16일에는 “조선족 한국입국거부속출 ‘불체’증가 우려”라는 제목으로 , 《재한조선족》전문란을 통해 7월 23일에는 “재한 조선족 사망…보상금 고작 한화 천만원”등 기사들을 내보내 재한 조선족들에 대한 높은 책임감을 과시하였다. 4) 생활서비스보도를 일반화하고 있다. 주간지는 “멋”, “맛”, “가정”, “건강”, “로인”, “쉼터”, “생활백과”등 다양한 코너를 설치하여 시민생활의 질적향상을 위한 가이드역할을 잘하고 있다. 3. 언론의 강도를 높혀 조선족사회진맥과 여론안내에서 높은 문화자각을 보여주고 있다. 1) 《여론》전문판면으로 조선족사회여론고지구축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매호마다 펼쳐낸 《여론》전문란은 언론인, 교원, 기, 학자들의 칼럼으로  고향비전론, 지도자민생론, 민족언어순결론, 조선족교육일몰론, 도시오염론, 스스로 죽이기론, 녀남평등론, 조선족비전론 등에 대해 일가견을 내놓아 정확한 여론안내에 일조하였다. 2) “조선족사회현상투시”코너를 설치하여 조선족사회 쟁점으로 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 “수술칼”을 들이댔다. 주간지는《초점》면에 “조선족사회현상투시”라는 “수술대”를 설치 하여 “조선족가정의 잠재적 위기 현상 진맥해본다”(7월 16일), “변상적인 ‘로년활동실’…가면을 벗어라”(7월2일), “출국조선족의 소비변화에 따른 가치변화의 위기 현상”(7월23일), “중국내 조선족 183만명…20년새 4.6%감소”(7월 30일), “조선족 부모자녀사이 교류장애 심각해”(8월 6일)등 우리 사회의 병집으로 되고 있는 문제에 과감히 “수술칼”을 들이 대고 있다. 3) 주간지와 영상매체, 조글로 인터넷의 접목으로 언론의 부가가치 창출을 이끌어내고 있다. 주간지는《조글로 포럼》이라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전파기제의 도입으로 언론사와 독자, 네티즌들의 끈끈한 배합과 참여분위기를 형성하여 시민사회 여론감독루트의 구축에 일조하고 있다. 《금주추천칼럼》으로 조글로사이트 클릭률을 유도하고 조글로 포럼에 실린 네티즌들의 글로 독자들의 자유분방한 토론의 한마당을 펼치여 주간지에 활력을 주입하고 있다. “ ‘한국계 중국인’선택 타당치 못하다”, “다른 누가 아닌 우리가 해야 한다”, “과연 누가 인권을 짓밟는가?” “ ‘시라지 3형제’그리고…”, “변론해 봅시다”, “공등증”, “없는 자가 너덜대기는”등 토론은 전통언론지와 현대매체의 접목가능성, 창의성을 보여주고 있는 실천의 장으로 되고있다. 4. 조선족 문화의 고양과 전승을 주간지의 제1책무로 내세워 문화사절의 기능수행에 진력하였다. 주간지는 라지오 영화텔레비죤방송문화전파자와 파수군으로서의 사명을 우선시하면서 조선족문화 전반에 대한 조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매호마다의《연예판》,《프로안내》에 의한 TV시청안내자역할에 충실하면서《책》코너를 통한 출판서점가의 새책소개 정기화, 《글마당》코너의 “문학닷컴”을 통한 조선족작가작품일별은 주간지의 문화기능 수행에서 한몫을 하 고있다. 특히 《문화스페셜》특집판을 통해 매회마다 기획된 “아리랑이 만난 사람”코너는 우리민족 TV영화인, 성우, 소설가, 시인, 연극인, 화술인, 서예인 대학원장, 프로축구감독들이 큰 편폭으로 기사화되여 나감으로써 조선족 문화의 고양과 전승을 위한 문화언론지로서의 책무를 잘 해냈다. 5. 다양한 형식과 아이디어로 독자들의 주의력을 이끌어내고 문화정보의 전파를 활성화하였다. 주간지의 미니코너 “경제문화인 리더스”, “사회문화인 리더스”는 우리민족 경제문화인 , 사회문화인들에 대한 소개를 그들의 근간 행보와 결부시켜 일목료연하게 뉴스화함으로써 동태성 짧은 편폭에 많은 메세지를 담기 위한 시도가 돋보였다. “100자 뉴스”, “행사소식”, “국제,국내단신”은 모두 100자에 못미치는 초미형 소식들로 이루어진 뉴스광장으로서 제한된 주간지 뉴스면 공간을 최대한 독자들의 기억에 남게 활용하려는 창의적 자세가 느껴진다. “독자마당”은 독자들이 긴장했던 일상을 잠시 접고 느긋한 마음으로 쾌락을 즐기게 하려는 주간지와 독자지간의 오작교로 되고 있다. 문제점과 건의: “아리랑주간”은 연변중심의 중국조선족 독자들을 구독대상으로 하는 방송영상문화권에 토대한 조선족사회 문화전문지로 알고 있다. 때문에 늘 연변조선족중심의 본토화, 영상문화위주의 문화전문지를《아리랑주간》의 좌표로 내세워야 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때《아리랑주간》의 아래와 같은 문제점은 경계하거나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연변은 중국조선족의 집거지구이고 조선족문화의 근거지이다. 10호를 두루 살펴보면 연변에 대한 보도가 부실하다. 조선족산재지역을 골고루 념두에 두는것은 리해되지만 연변이라는 골격이 서지 못하면 본토화라는 핵이 빠져나간 전문지로 될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조글로의 축소판으로 돼서는 안된다. 뉴스코너들을 보면 연변에서 크게 운운되고 사회여론의 중심에 있는 뉴스들, 국내외에 소문이 파다한 문화사건들에 대한 집중조명이 허약하거나 창백하다. 2) 연예스포츠판에서의 주역은 마땅히 연변위주의 중국조선족연예인, 스포츠인으로 되여야 한다. 연예스포츠면이 반도인들에 대한 보도와 소개에 편중한다는 느낌이다. 례하면 6월 11일자 “연예”면은 도합 5명의 연예인을 소개했는데 3명이 한국인(김남주, 신현준, 김연아)이고 2명이 우리 나라 연예인(장만옥, 아리랑그룹)이다. 7월 16일자 “스포츠”면은 도합 3건의 스포츠뉴스를 다뤘는데 2건이 한국(박지성, 최나연)이다. 주간지는 중한연예스포츠인 비률을 잘 통제하며 반도인을  우리 나라(연변)인 소개와 구별화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을 우리 나라(연변)인 다루듯 하는것은 언론사의 립지와 관계되는 원칙문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3) 문화스페셜, 연예스포츠코너에 등장된 인물 선제와 기획에서 눈높이를 “중국조선족문화정상”에 맞추고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문화인들을 기획하고 담는 것을 우선시하면서 신진 발굴도 병진시켜야 한다. 문화주간지의 품위와 련관되기 때문이다. 이면에서  그 어떤 보도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4) 경제인, 기업인들은 주간지 운영의 중요한 에너지이지만 그렇다고 보도력점을 너무 편중하다보면 독자들의 오해를 살 소지가 많아진다. 주간지의 전반케스를 보면 문화주간지라기 보다 경제인주간지 혹은 경제정보통쪽이 가깝다는 느낌을 줄때가 있다. 5)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자체의 기획과 보도를 우선시한다는 노력을 계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뉴스원의 발굴에서  인터넷 다운로드와 국내외간행물 발췌에 주로 의존하는 경향을 극복해야 한다. 연길에서 있은 회의, 행사보도를 흑룡강신문, 길림신문의 보도로 대체하는 것은 주간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수 있다. 주간지와 조글로의 접목은 바람직하고 창의적인 요소가 많다. 하지만 주간지가 조글로 네티즌들의 려과되지 않은 댓글마당이 돼서는 안된다. “주간지 포럼”에서는 연변 나아가서 중국조선족사회에 큰 화제로 되는 여건들에 주목하며 네티즌들의 댓글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안내할 필요가 있다. 6) 주간지이기에 시간성에서 다른 매체와 겨룰수는 없더라도 좋기는 가장 가까운 시간대에 발생한 사건을 취급하며 뉴스보도의 다섯가지 요소를 고수하도록 해야 한다. 이상의 심열의견이 두달 사이에 간행된 10호 주간지를 대상으로 한것이므로 전면적일수는 없다. 참고로 삼기 바란다.   2012년 10월 30일  
23    조어도사태와 “간도문제”조작극 댓글:  조회:4464  추천:4  2012-10-17
“임자 없는 무인도”,  일본 노다정부가 조어도를 “일본 고유의 령토”라고 억지 부리는 리유다. 번지 있는 남의 집에 란폭하게 뛰여들어 “먼저 차지하는게 임자”라는 식으로 조어도점령을 합법화하려는 날강도론리는 이렇게 파생되여 나왔고 드디어 “정부매입”의 황당한 촌극으로 각색된다. 일본력사학자들 마저 조어도가 14세기초에  중국관할범위에 있었음을 시인하면서 “임자 없는 땅”이라고 망언하는 일본정부의 늦은 “발견”을 비난하고있다.   필자는 일전에 조어도사태와 관련하여 일본이 거의 같은 력사시기에 조작했던 “간도문제”해당자료를 들춰보면서 일본이 남의 령토를 갈취할 때마다 써왔던 그 철면피한 날강도수법의 류사성, 그리고 사건조작의 간교함을 새삼스럽게 인식할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일로전쟁후  조선에서 일본의 식민통치를 확보하는 요충지로, 우리 나라 동북침략의 교두보로 연변에 눈독을 들이게 되면서 연변과 일본과의 40여년 악연이 시작된다.  일본이 “간도”문제를 조작하고 개입하기 위해 찾은 구실은 이른바 “간도한민(조선족)보호”와 “간도귀속문제”였다. “일한협약”에 의해 조선을 저들의 “보호국”으로 만든 일본은 한술 더 떠 “간도한민보호”권리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조선족 관할권 확보에 집착하면서 연변개입의 틈새를 노렸다. 드디어 불평등한 중일 “간도조약”에서 취득한 령사재판권으로 일본은 “간도”개입의 구실을 만들고 남의 령역에서 활개칠수 있는 지탱점을 얻게 된다. 조어도문제도 그렇다. 일본은 워낙 1895년 불평등한 “마관조약”에 의해 강점했던 조어도를 2차대전후 “포즈담공보”에 따라  우리 나라에 돌려야 했건만“임자 없는 땅”이라며 쇼를 한것이다. 조어도사태나 “간도문제”에서 일본의 롱간에 리용된 카드는 중일불평등조약이였다. 조어도는 “마관조약”에 의해 갈취당한것이고  연변은 “간도조약”에 의해 개입구실이 조작된것이다. 일본 한 우익세력의 보스는 일본이 그 당시 “간도문제”에 고심했던것은 “로씨야 복수전”에 대처하고 중국동북을 강점하려는 침략정책의 수요에서였지 결코 한민들을 보호하려거나 간도땅의 귀속문제 같은 것이 아니였다고 토로한바 있다. 이렇게 되면 그 답이 나온다. “간도문제”교섭, “간도조약”체결은 일본의 연변침략을 위한 사전준비이고 “간도출병”이야말로 “막판에 탄로난 계략(图穷匕首见)”이라 할수 있다. “간도출병”의 구실은 “훈춘사건”이다. 일본이 흑룡강지역의 토비들을 매수하고 첩자를 침투시켜 토비들이 일본령사분관을 습격하게 한 이른바 “훈춘사건”은 일본의 “간도출병”에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오래동안 조선의 “보호국”이라는 명색으로 알심 들여 “간도문제”를 조작해온 일본, 그런데 “취옹지의부재주(醉翁之意不在酒)”, 그 속셈은 “간도출병”에  있었던것이다. 일본의 “간도출병”은 연변 “경신년 대토벌”로 이어진다. 연변의 여러 민족 민중 2780여명을 학살하고 329채의 민가를 소각하고 41개소의 학교를 페허로 만든 “경신년대토벌”은 세상을 경악케 한다. “간도출병”은 중국에 대한 일제의 한차례 계획된 군사침략행동이고 중국의 주권을 짓밟고 중국령토를 침범한 도발행위였다. 그렇다면  조어도사태를 조작하는 일본의 속셈은 무엇일가? 우리 나라 군사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지리전략적으로 만약 조어도가 일본에 귀속되면 일본은 조어도를 원심으로 확보한12해리(14,224메터) 반경권안을 전부 손아귀에 넣게 된다. 따라서  조어도사태를 발판으로  2차대전후의 국제질서에 도전하게 될것이다. “간도출병”과 “ 조어도매입”, 부동한 력사시기 일본에 의해 조작된 동일한  판본의 침략도발행위로써 모두 그 어떤 새로운 모략의 시작으로 풀이된다. 일제의 “간도문제”조작으로부터 패망에 이르는 40여년간 연변은 엄청난 피의 대가를 치렀다. 2천여명의 항일렬사를 낳은 연변조선족은 이 성스런 땅에서 모든 시련을 이겨내며 일제와의 항쟁에서 연변을 지켜낸 자랑스런 민족이며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라는 연변의 독특한 영웅서사시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일제와의 악연으로 점철된 연변땅은 40여년간의 수난과 투쟁으로 얼룩진 천연혁명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연변의 이르는 곳마다에 산재해있는 일제의 침략유적지, 반일독립운동사적지, 반일무장단체활동기지, 초기공산주의운동사적지, 항일유격투쟁유적지와 전적지는 지난 세월의 산증인으로서 우리가 두번 다시 수난의 불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귀띔하는 거울로 된다. 일제가 패망한지도 68년, 하지만 일본은 종래로 저들의 침략력사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한적이 없다. “경신년 참안지”, “해란강참안지”를 찾아 연변의 무고한 백성들에게 저지른 천인공노할 죄장을 속죄한 일본의 정계인사는 단 한명도 없다. 아직 일제식민지 때의 그 아픈 상처를 지우지 못한 연변조선족과 기타민족에게는 조어도사태가 먼 바다의 자그마한 섬이야기가 아닐것이다. 두 번 다시 일본이 동해바다를 건너와 남의 땅을 넘보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것이 우리의 마음이지만 대방의 사전에 “반성”이라는 두 글자가 빠져있을 때 문제는 달라진다. 오늘은 조어도사건, 래일은 또 간도사건을 터뜨릴지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는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라는 이 연변의 유명한  인문풍경선을 영원히 퇴색하지 않는 혁명유산으로 길이길이 보전하고 가꿔나가야 하는 그 절박성에 대해 국제정치풍운의 시각에서 새롭게 업그레드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22    인성화배려가 절실한 연길동물원 댓글:  조회:4084  추천:8  2012-09-26
인터넷을 통해 입수한 소식이다. 길림시 어느 동물원에서 사자, 호랑이, 늑대, 표범, 타조 등 수십종의 멸종위기동물들을 정기건강검진 “대우자”로 지정했다는 훈훈한 내용이다. 이날 건강검진에서 치아교정수술과 백내장제거수술을 받은 “동물환자”들도 있어 동물들에게는 그야말로 인성화혜택을 톡톡히 입은 “감격의 하루”였다고 한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관계를 확인시켜준 사례라고 하겠다. 동물들한테 정기건강검진을 실시한다는 자체는 그만큼 동물들의 면역력관리가 중요시되면서 동물서식질의 개선이 정상화궤도에 올랐다는 징표로 풀이 된다. 동물들한테는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불신감을 해소하는 계기로, 인간들한테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인간지본(以人为本)”이라는 폭넓은 차원에서 재인식할수 있는 마당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우리 인간이 한편으로는 동물의 서식지를 마구 파괴하고 동물을 무차별 포획하여 멸종위기로 몰고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동물에 대한 건강검진, 서식에 대한 개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대안마련 등 “병 주고 약 주는” 노력으로 고민하는 모양새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동물부락이 인간사회와 공존해야 하는 오늘의 형태에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길림시 모 동물원의 인성화배려를 떠올리면서 필자는 일전에 연길공원안에 있는 60년 력사를 담은 동물원을 맘먹고 자세히 돌아본적이 있다. 따지고보면 거의 50년만의 답사여서 그 감회가 깊었다. 동화 같은 동년시절의 호기심과 신비함, 상상력과 지식성의 산실로 마음 깊이 각인돼있던 연길공원 동물원이 필자에게 준 인상은 한마디로  “레미제라블(비참한 세계)” 이라 할수 있었다. 사실 연변을 대표하는 유일한 동물원이지만 연길동물원은 길림시동물원에 비해 그 규모나 내용 면에서 엄청난 대조를 이루고있었다. 연길동물원이 32종 동물품종(지난 년대 70여종 될 때도 있었다), 300여마리의 동물물량을 확보하고있다면 길림시동물원은 570여종의 동물품종, 7000여마리의 동물물량을 포섭하고있다. 문제는 단순한 수적으로의 렬세뿐이 아니다. 본문 앞에서 언급했듯이 길림시의 동물원이 동물건강검진을 정기화하는 높은 차원의 동물건강관리시스템구축에 신경을 쏟고있을 때 연길동물원은 동물들의 때시걱때문에 전전긍긍하고있다. 매일 소모하는 32종, 300여마리 동물의 사료구입비용 2000여원(육식동물 하루평균 식사소비가 700여원)을 이어댈수 없어 굶어죽거나 병들어 죽는 동물들이 속출하고있으며 현재 반년 사료비용 30여만원을 체불한 딱한 상황이다. 길림시동물원의 동물가족들이 “초요사회”혜택을 누리고있을 때 연길동물원의 동물가족들은 “빈곤의 수렁”에서 헤여나오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겪고있다. 그뿐이 아니다. 수십년간 도시변두리에 위치해있던 연길공원이 도시개발의 흐름속에 도심번화가와 시민주택단지 사이에 끼우게 되면서 철책과 담벽이 철거되고 동물원은 어쩔수 없이 이중삼중의 엄청난 소음과 불안한 환경에 그대로 로출되게 되였다. 지난 50년대의 그 조용하면서도 아늑하고 신비감이 감돌던 연길공원 동물원이 아니였다.  아이들의 놀이공원에서 간단없이 울려오는 시끌벅적한 소음, 타성서커스단과 이동동물관 업주들의 관객유치목적으로 터쳐내는 거대한 음향폭발음,  싸구려 로점매대들에서 서로 뒤질세라 뽑아내는 요란한 노래소리, 거기에 공원주변의 대통로로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경적소리…, 우리 동물부락의 불쌍한 동물들은 이 “혹독한 형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상업화, 개방화에 따른 연길공원의 변화에 전률하고 있는 동물원은 완전히 초토화, 복새판 그 자체였다. 사실 아무리 좋은 동물원이래도 동물들에게는 고통스러울뿐이다. 저들의 생태조건과 너무나 다른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동물들은 마치 정신병으로 허덕이는 사람과 다를바 없다는게 동물학계의 연구결과에서 나왔다. 하물며 서식조건이 빵점인 경우 동물들의 스트레스는 한계를 넘어 완전히 붕괴직전까지 갈수 있다.  광주의 어느 동물원에서 14년만에 태여난 새끼호랑이가 어미에게 잡아먹힌 사건이 있었다.  주변의 소음에 스트레스를 받은것이 원인이였다고 한다. 동물원의 동물은 새끼를 낳아도 거의 돌보지 않아 사육사의 손에 키워진다고 하니 모성의 상실은 동물원 동물들의 가장 극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것이 아니겠는가? 동물은 수억년동안 이어온 자연진화의 결과이며 그 조건을 인간이 좌지우지할수 없다는 사실에 수긍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어느 한 나무우에 새둥지가 틀어져있는 경우 그 나무주변 200메터 구간에 있는 나무를 찍지 못한다는 법률조항이 있다. 독일인들의 동물보호의식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사례라 하겠다. 필자는 지금도 우리 동물원의 그 눈빛이 애처롭다 못해 서글퍼보이기까지 하던 산중왕 호랑이의 피곤한 면상, 창공을 가르던 날개를 접고 좁디좁은 철창안에서 종종걸음으로 조금씩 이동하던 독수리들의 신경질적인 란투극, 관객들이 아무리 소란을 떨고 돌을 던져도 아무런 반응도 없이 초점을 잃은 눈으로 먼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사자의 측은한 자세, 축 늘어져있다가도 자동차경적소리나 주변에서 굉장한 소음이 터질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경계태세를 취하던 표범의 경직된 표정, 철창안에서 반복적인 배회동작을 하다가도 자기 몸을 물어 뜯으며 자해행위를 하던 늑대의 초췌한 몰골이 무시로 눈에 맞혀온다. 운영자금이 판판 부족한 현실이 동물원 동물들을 오늘의 처지에 놓이게 만든 원인이지만 동물원 동물에 대한 우리의 삐뚠 시각이 그 원인을 낳은 결과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길림성동부 중심도시로 부상하는 연길의 생태계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환경친화적 도시일 때 그 매력이 과시된다. 그런데 자연과 어우러지는 친환경생태계에는 인간만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조성하여놓은 동물부락이 엄연히 존재하고있음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연길동물원은 연길생태계의 중요한 구성고리이고 매력 연길, 생태연길의 산 증인이다.  연길동물원은 연변지역의 생태문화를 정확히 평가하고 조감할수 있는 체온계로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연길동물원은 연변의 발전과 함께 해야 한다. 연길동물원이 연변발전의 외곽으로 밀려난다면 “풍요롭고 개방되고 생태적이고 조화롭고 행복한 연변”을 건설한다는 목표실현에서 완벽성을 기할수 없다고 느낀다. 때문에 도시화개발, 사회복지시설건설, 문화단지구축, 록지록화조성과 더불어 연길동물원에 대한 “빈곤구축”도 연변건설의 루트에 당당하게 편입됐으면 하는 바람이 묘연한 희망사항으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연변은 동물원을 포용할수 있는 천혜의 자원을 갖고있는 생태지역이다. 모아산국립삼림공원은 연길,  룡정을 있는 천연삼림지대로서 연길동물원 동물들의 서식지로는 둘도 없는 명당이다.  삼림생태자원과 동물, 인간의 조화와 공존이 과학적으로 잘 기획된 연길야생동물원청사진을 제시할 때가 된듯하다. 연변은 동물의 품종을 늘일수 있는 지역특점도 있다. 로씨야, 조선, 한국 등 주변국가 친선자매도시와의 상호협조, 근해주 해양성기후에 알맞는 해양동물의 유치 등에서 연변 야생동물원은 부흥을 맞을수 있지 않을가? 동물원 동물의 건강관리시스템 운영에서 대학교와의 긴밀한 합작, 국내외 친선도시동물원과의 밀접한 기술 교류와 협력, 동물관련 보호협회 등 시민단체의 발족으로 전환되는 시민들의 동물보호의식, 장백산자연보호구와 림업분야와의 호조호혜관계의 정립 등은 모두 동물원의 부흥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것이다. 연길동물원 동물들의 서식지가 력사적인 대전환을 맞으며 오늘의 32종 동물품종이 300여종, 3000여종으로 늘어나고 빈곤과 스트레스로 말이 아니던 우리 동물부락의 동물가족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환골탈태하면서 연변사람들의 인성화배려에 “감격”해하는 동물부락의 그런 화창한 날이 꼭 오리라는 바람을 가져본다. 중국조선족의 유일한 집거지구의 수부도시, 길림성 동부중심도시, 길림성 유일의 백강(百强) 현급도시, 연길에 그 좌표와 문화,  생태특점, 각종 영예월계관에 어울리고 인성화배려가 다분한 인간과 동물의 조화공존의 록색지대—중국연길야생동물원이 찬란하게 솟아나리라는 기대가 절대 허황한 꿈이 아니기를 빈다.
21    숨쉬는 연변의 느낌공간 만들기 댓글:  조회:10398  추천:5  2012-08-22
연변에 아주 근사한 미술전당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기는 십여년전 빠리의 루브르궁을 다녀오면서였다. 물론 루브르궁과 같은 어마어마한 미술궁전을 념두에 두고 품어온 그 생각 자체가 주제넘고 허무하기 짝이 없는것인지는 몰라도 연변이란 이 생생한 삶의 터전의 어제, 오늘, 래일을 시각예술화할수 있는 느낌의 공간구축은 막연하지만 한번 기대해볼만한 일이 아닐가 하는 생각은 버리지 못했다.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기대감이 그 어떤 사명감으로 교체되면서 실현가능성에 힘을 실을수 있었던것은 일전에 룡가미원이라는 산장에 있는 미술관을 보고난 뒤부터였다. 화백인 산장주인이 손수 설계하여 만든 소박한 목조미술관 실내의 작은 공간에서는 류실됐던 연변 부분적화가들의 유화작품 수십점이 산장주인에게 “입양”되여 차분하게 복원작업을 거치면서 재생되고있었다. 어떤 작품은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원로화백을 산장에 모셔와 힘들게 부활시킨것이라 한다. 시골의 번지 없는 미술관, 그 형태가 인상적이였지만 요란법석을 떨지 않으면서 조용히 단행되고있는 연변미술문화재 살리기 작업현장이 주는 감동은 더 충격적이였다. 행정부문이나 미술가협회가 아닌 한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추진되고있는 이 장면을 보면서 산장주인의 고마운 소행에 머리가 숙어지는 한편 이걸 미술계의 문화책임론에 대한 짜릿한 도전으로 받들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규모의 여하를 떠나 산장의 미술관은 필자에게 아주 엄청난것을 시사하고있었다. 미술관은 한 지역사회를 형상적으로 조감할수 있는 사전이라 할수 있다. 력사와 현실, 자연과 사회, 인문과 과학 등 우리가 겪었고 인식한 모든 추억과 리념이 조형예술의 핍진감과 감화력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대인과 차세대에게 대대손손 다가서는 곳이 미술관이라 알고있다. 연변의 경우 150년의 조선족이주력사와 오늘날 조선족 삶의 현장을 성찰할수 있는 신성한 느낌의 예술공간 구축은 연변주민들의 행복지수에서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뿐만아니라 연변을 세상에 알리는 능률적인 홍보캐리어로 자리매김할수 있는것이다. 수준급 미술전당의 구축은 문화행정부문에서 담당해야지만 미술전당이 담을 내용물의 기획과 출시는 미술계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건국이래 연변의 몇세대 화가들에 의해 창작된 연변조선족의 생활풍토를 제재로 한 작품들은 대부분 류실된 상황이다. 매 한 력사시기의 흔적을 력력히 담고있는 이런 작품들을 찾아내고 복원시키는 일은 그 어떤 개인이 아니라 미술계가 전담해야 마땅하다. 미술계는 위기감과 책무감을 느껴야 한다. 빠리 루브르궁에서 막연하게 느껴왔던 기대가 연변시골의 한 이름 없는 미술관에서 추상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다가오는것 같은 그런 느낌에 필자는 지금도 흥분하고있다. 따라서 민족멋과 현대멋이 잘 어울려진 고대광실이 “연변미술전당”이라는 금빛현판을 번쩍이며 신기루처럼 나타나는것 같은 환영에 사로잡혀 연변미술전당, 그 느낌의 공간내부를 슬쩍 떠올려본다… “력사관”은 미술궁의 핵심관이다. 눈물젖은 두만강을 건너 허허 넓은 만주벌판에 개간의 첫 괭이를 박던 연변조선족 이주력사의 시작으로부터 공화국 창건까지의 파란만장했던 세월이 살아숨쉬는 형상화폭으로 펼쳐진다. 룡정 “3.13”반일시위운동의 도도한 흐름이 밀려온다. 일제의 “경신년대토벌”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조선족 반일무장부대의 봉오동, 청산리 대첩의 함성이 메아리친다. 그밖에 동만, 남만, 북만의 조선족항일무장투쟁의 비장한 전투화면들, 일제의 패망과 동북근거지 창설, 토비숙청, 토지개혁, 참군참전, 전국해방전쟁에서 조선족인민들의 피어린 업적이 조형예술의 매력으로 재생되여있다. “현대관”은 연변조선족과 기타민족의 삶이 진실하게 부각돼있는 관이다. 건국이래 오늘까지의 자치주성장궤적이 사실주의창작기법에 의해 생동하게 형상화되여있다. 주덕해의 자치주창립선언을 시작으로 60년간 이 땅에서 벌어졌던 희로애락의 인간사가 감동과 비운의 화폭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주는 곳이다. 여기에는 인심을 고무하는 화폭이 있는가 하면 대약진, 문화대혁명과 같은 비극의 년대도 형상화되여 사람들에게 사색의 순간을 만들어준다. “생태관”은 연변의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중심으로 우리 삶의 자연풍토를 운치 있게 펼쳐보인 자연 그대로의 축소판이다. 장백산, 두만강, 해란강, 세전이벌, 평강벌, 삼국접경지를 비롯하여 연변의 “팔산일수반초반푼전(八山一水半草半分田)”의 자연환경은 물론이고 우리의 옛 추억을 되살리는 초가집, 우사칸, 건조실, 시내물, 황소와 달구지, 꿀꿀이와 멍멍이들도 우리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친선관”은 연변국제예술교류의 화끈한 산실로서 “중조미술전”, “중한미술전”, “중로미술전”을 비롯하여 환태평양연안국과의 미술교류전이 활발히 이어지는 마당이 될것이다. 국내 유명예술인들은 물론 해외 예술가들의 명작을 통해 지구촌의 인정세태를 엿볼수 있고 만국 예술인들과의 합작교류를 뜨겁게 달구면서 연변이 동북아 예술교류의 구심점으로 거듭날수 있는 들창으로 된다… 연변문화 대발전, 대번영의 징표로 될수 있는 연변미술전당, 한번 멋지게 기획해보자. 10년, 20년 후에도 후회 없는 명품브랜드건물로 거듭나고 “입주”하는 미술작품도 동북아 눈높이에서 수준급명작들로 포진시켜 세계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연변미술가협회는 예술인들의 격정, 리념, 수준을 제대로 담아 천자호 미술관프로젝트를 출범시켜야 한다. 미래 지향적인 탁월한 문화리념과 사로가 안받침된 뛰여난 창의력과 순발력이 꿈틀거리는 미술전당프로젝트에 의해 류실되고 행방이 묘연하던 연변 력대 화가들의 경전작품들이 속속 복원되여 빛을 보며 연변이 배출한 해내외에 산재해있는 프로급화가들이 구름처럼 모여와 미술전당에 포진될 내용물창작에 동참하는 그런 기꺼운 결실에 의해 숨쉬는 연변의 느낌공간이 우뚝 솟을 날이 멀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져본다.
20    엉뚱함의 매력 댓글:  조회:4149  추천:5  2012-05-09
엉뚱함, 사전의 해석에 따르면 분수에 지나치거나 뜻밖인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세월은 흘러도 그냥 상식적이고 분수에 맞는 일들에 익숙해져있는게 세상인심인것 같다. 하지만 자고로 세상은 엉뚱함에 의해 바꿔지고 미래가 열리는게 아니던가? 오늘날 우리 나라 개혁개방 자체는 그제날 좌적이고 페쇄적인 체제에 대한 계승이 아니라 반동이고 따라서 옛날 그 체제의 관성으로 볼 때 엉뚱함이 아니겠는가? 이 “엉뚱함”으로 저질러지는 우리 나라의 위대한 변혁공간에서 참으로 믿기 어려운 “엉뚱함”이 무더기로 생성하고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생각을 접을수 없다. 강소 화서촌이 저지른 두건의 엉뚱함만 봐도 그렇다. 재작년 9000만원을 들여 미국과 유럽에서 헬기 두대를 구입하여 공중관광프로젝트를 개발한데 이어 촌에 항공회사를 차린다는 엉뚱함, 그리고 지난해에는 촌민들이 30억원을 모금하여 화서촌에 328메터 높이의 국내 최대의 전문술집을 신축해낸 엉뚱함, 누가 들어도 입이 딱 벌어지게 하는 엉뚱한 특대이슈가 아닌가? 화서촌이 저지른 이 두가지 엉뚱함은 땅이나 뚜져먹는게 농부의 천직이라 여겨왔던 옛 관념에 대한 무자비한 반란이며 돈을 쓰려면 도시에 가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도시인들이 시골에 와 소비하도록 하는 “시골안의 도시”발상에 힘입은 대담한 반전의 걸작이라고 할수 있다. 재작년 봄철, 필자는 심수에 갔다가 또 다른 류형의 엉뚱함에 홀딱 사로잡혔던적이 있다. —물고기포획이 생계수단의 전부였던 작은 어촌마을 심수 대분촌(大芬村)이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유화도매시장, 세계의 이목을 끄는 유화촌(油画村)으로 변신하다! 이거야말로 마술사의 “깜짝쇼”같은 탈바꿈이 아닌가? 이는 단순히 도시화흐름에 편승하여 전통적인 시골농촌을 현대화도회지로 전환시킨 그런 차원의 변화가 아니라 어촌을 통채로 캔퍼스화하여 유럽 르네상스시대의 사람들도 혀를 찰 21세기 창의적예술도시의 창출이라는 그런 성격의 엉둥함이랄가? 필자는 이날 남방의 대분촌이라는 시골마을에서 관청에 들어선 촌닭이 된 초라한 느낌을 뼈저리게 통감하였다. 단지 유화촌거리 곳곳에 세워져있는 비너스, 다윗, 다빈치의 조각상과 어렵지 않게 만날수 있는 모나리자의 미소, 고흐의 해바라기 그리고 거리 량켠 가게마다에 즐비하게 내걸린 세계명화들이 발산하는 이국적인 예술정취때문만은 아니였다. 우선은 유화촌의 방대한 화가진영과 이 진영을 리드해나가는 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에 기가 질렸다. 필자가 이곳에 도착하기 며칠전 대분유화촌의 천여명 화가들은 질서정연하게 광장에 진을 치고 앉아 상해엑스포 개막을 축하하는 유화캠페인을 성대히 벌렸다고 한다.서방나라의 광장들에서 화가들이 자기 기호에 알맞는 회구를 리용하여 시민과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고 돈을 받는 장면은 가끔 보아왔지만 대분유화촌처럼 천여명이라는 대병력이 투입되여 만들어진 초대형의 유화사생 진풍경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다. 거기다 행사에 참여한 천여명 화가는 대분유화촌에서 활약하는 8000여명 화가와 화공들을 대표하여 나왔다고 하니 더욱 기가 질렸다. 이 화가군체를 움직이는 조직이 대분유화촌 미술가협회, 미술산업협회 등 군중단체였다. 다음은 유화촌의 엄청난 작품물량의 생산과 거래에 기가 질렸다. 대분유화촌의 700여개 화랑과 작업실에서 뽑아져나오는 년간 600만폭의 유화작품이 800여개의 가게들에서 판매돼나가 년간 1억원 이상의 수출액을 올린다. 그 물량은 전세계 유화작품의 60%가 이곳에서 거래된다는 이야기다.(세계유화시장의 80%가 중국에서 거래되며 그중 대분유화촌이 60%를 차지한다.) 300명 원주민이 어업위주로 살아가던 그 삶을 확 바꿔놓은 힘은 무엇일가? 자그마한 어촌이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유화촌으로 변신한 비결은 무엇일가? 유화촌입구에 세상을 우러러 선언한 대분촌의 슬로건이 해답의 열쇠인것 같다. “예술과 시장 이곳에서 접목되고 재능과 재부 이곳에서 전환된다” 대분촌의 엉뚱함은 심수사람들의 글로벌사고와 본토화실천의 환상적인 궁합에서 비롯된것이였음을 잘 시사하고있다. 그래서 심수 대분촌의 엉뚱함은 매력적이다. 필자는 그날 대분유화촌에서 반나절이란 짧은 순간을 지체했지만 시간으로 도무지 계산이 불가능한 짜릿한 충격을 받았다. 지리적으로 대분유화촌은 세계유화생산류통기지로 변신할만한 필연적인 고리가 없다. 환경적으로도 어촌이 유화촌으로 전환할수 있는 그 어떤 특별한 우세도 갖춘게 아니다.하지만 심수사람들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엉뚱함을 저지른것이다. 대분유화촌을 떠올리면서 필자는 우리 연변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연변은 지리적으로 세계미술작품생산류통기지로는 적격인 동북아복지, 삼국접경지대에 놓여있다. 유화의 성지라 할수 있는 로씨야, 조선화의 발원지인 조선, 중국화의 발원지인 중국, 그밖에도 서방 각 미술류파의 회화영향이 잘 섭취된 한국과 일본이 지척에 있다. 생태적으로 연변은 문화가 꽤 발달돼있고 구쏘련의 영향으로 유화창작토대가 잘 갖춰진 지역이며 자체의 미술가협회, 대학교 미술학원, 군중예술관, 문화관과 같은 운영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져있다. 보다 중요한것은 두만강국제협력개발붐이 장길도선도구건설이라는 세기적 프로젝트에 힘입어 점차 뜨거워지고있다는 점이다.연변미술가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어느 면으로나 보더라도 연변이 심수의 대분촌보다 조건이 우월하다고 할수 있다. 관건은 사람이다. 맘만 먹으면 해낼수 있는 여건이 다 갖춰져있기때문이다. 최근 들어 자치주 당정도 두만강국제협력개발에서 미술가들이 자기의 재능을  남김없이 과시하기를 기대하고있다. 그 사례로 150년 조선족이민사를 골자로 한 연변중대혁명력사제재 미술작품창작프로젝트와 관광기념공예품세트제작프로젝트를 들수 있다. 당정의 결심이 미술가들에게는 단비라고 할수 있다. 필자는 이 일로 미술계 지인들과 몇차례 만남을 가진적이 있다. 결국 일은 좋은데 힘들다는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생각을 접게 되였다. 필자는 지금도 이 일을 가석하게 생각한다.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주저앉은것이다. 대분촌의 경우라면 어떻게 됐을가? 대분유화촌이 엉뚱함을 저지르면서 한가지 분명한것은 세상사람들에게 미술가들의 존재의미와 로동가치를 확실히 보여주었고 미술가들을 밀페된 공간에서 자아도취에 빠지게 한것이 아니라 대중과 호흡을 맞추는데 주력하도록 리드하였다는 점이다. 국내외의 미술가들을 유화촌에 결집시킬수 있는 대분촌미술가협회의 파워는 바로 여기서 구현되였다. 오늘날 우리 연변미술계에는 참으로 엉뚱함을 한번 저지려보려는 그런 욕망과 용기가 요청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어진 넓은 시공간에서 미술가의 존재가치를 부각시킨다는 몸가짐만 확실히 서고 부여된 미술가의 높은 책무감으로 대중의 향상되는 심미수요에 적극 부응한다는 일욕심만 똑바로 서고 연변을 동북아지역 화가들을 불러모을수 있는 구심점으로 되게 하려는 미래지향적인 소망만 튼튼히 선다면 천지개벽의 엉뚱함이 연변에도 저지러지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하늘은 늘 자신을 돕는자를 꼭 도와주게 돼있기때문이다. 강소 화서촌이 축적된 막강한 재부의 힘으로 저지르는 상상키 어려운 엉뚱함을 우리가 흉내낼수 없지만 심수 대분촌이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유화촌으로 변신된 그 엉뚱함은 연변도 한번 실천해봄직하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저지른다고 다되는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잠재력을 써먹어보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하며 무위도식하면서 처참히 앉아 무너지기보다 엉뚱함을 한번 저지러보려는 모험정신을 후회없이 발산함이 요청되는 그런 격정의 시대가 아닌가? 중국조선족의 150년 이주력사의 장쾌한 흐름이 연변미술가협회의 리드로 국내외 화가들의 동참에 힘입어 완벽하게 재현되는 극치의 엉뚱함이 연변땅에 저질러졌으면 하는 소망과 더불어 연변이 동북아 또는 환태평양미술작품생산류통기지로 서서히 부상되였으면 하는 바람이 엉뚱한 망상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19    토막살인, 결코 먼산의 불 아니다 댓글:  조회:5169  추천:32  2012-04-18
요즈음 한국 수원에서 20대 한국녀성을 토막살인한 참사가 중국조선족(내몽골 호적)범인에 의해 감행되여 한국사회와 더불어 재한조선족 사회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있다. 이 사건으로 늦장 대응을 한 한국경찰이 비난을 받고 경찰총수가 사퇴하는 상황까지 빚어지고있다. 살인범죄자는 마땅한 법적징벌을 받겠지만 이번 사건의 불똥이 재한조선족사회에 튀지 않을가 념려되는 마음을 접을수 없다.  워낙 중국조선족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던져왔던 한국사회가 이번 사건으로 중국조선족에 대한 거부감이 더 깊어질것임은 당연하다.  한국 어느 매스컴에 따르면 조선족에 대해 부정적시각을 가졌던 한국인이 47%로부터 이번 사건이 터진후 70%로 급증하였다고 한다. 물론 이 통계수치의 권위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의문이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시사한다. 거기에다 일부 한국언론들이 성난 민심을 오도하는쪽으로 몰고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비난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일부 네티즌들이 그 무슨 중국동포추방운동까지 들먹이는 헤프닝까지 벌려 대단히 실망스러운 마음이다. 오늘날 세계는 더불어사는 글로벌시대에 들어섰다. 전통적인 단일국민구조의 페쇄적인 삶은 서로 다른 문화배경을 가진 다국국민이 어울려 사는 다원화삶으로 전환되면서 동정과 리해, 포용과 배려가 불가피하게 되였다.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불문곡직하고 그 사람 소속나라 국민군체가 함께 곤장세례를 당하고 추방받아야 하는 식의 론리는 먼 옛날에나 있었음직한 이야기다. 도리는 그런데 실제상황은 흔이 다르다. 일은 개별적 불량배가 저질러놓고 수모는 결국 수십만 재한조선족들이 음으로 양으로 당해야 하는 억울한 상황이 실질적으로 빚어질가봐 심히 우려된다. 재한연변조선족근로자들 대부분이 그 어떤 사전교육도 받지 못한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출국했고 이런 문제점들이 오늘날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각종 사고위험과 피해위협에 철저히 로출된 표적으로 될수밖에 없는 약소군체임을 필자는 일찍 본지 칼럼판을 통해 지적한바 있다. 연변의 재한조선족근로자들이 한국에서 눈을 펀이 뜨고 각종 사기피해와 인명사고를 고스란히 당할 때의  반응도 이번 참사처럼 충격적이였으면, 재한조선족이 한국 경제발전과 사회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임을 삼척동자도 잘 아는 현실이다.  조선족에 대한 배려와 포용이 실질적으로 이뤄진다면 조선족이 한국사회에서의 적응이 훨씬 원활해질것이고 많은 불협화음도 미연에 막을수 있는줄 안다. 이번 사건은 결코 먼 산의 불이 아니다. 가해자가 내몽골이든, 기타 산재지구이든가를 떠나서 한국인들한테는 중국동포로 각인돼있고 따라서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연변조선족을 망라한 재한중국조선족사회가무차별 비난을 받게 돼있다. 연변과 상관없다고 할수 없다.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주정부 한국주재 대표처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중한수교 20년, 그동안 재한조선족사회는 제나름대로 조선족의 권익수호와 조선족이미지향상이라는 무거운 화제를 가지고 모색과 실천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한국주류사회와의 접목, 조선족집단의식의 형성을 위해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30여개에 달하는 재한조선족민간단체들의 출범이 그 사례로 된다. 더욱 고무적인것은  수천명에 이르는 조선족 기업인, 학자, 류학생들로 이루어진 조선족엘리트군체가  재한조선족사회를 견인하는 구심점으로 점차 부상되고있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상당히 성공한 인사로서 한국정치권에서도 알아주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재한조선족의 구심점이 형성된다면 20만 연변조선족을 망라한 50만 재한조선족에게는 그 누구도 얕볼수 없는 탄탄한 실력과 지위를 갖춘  재한조선족타운이 생기는셈이다. 30여개 민간단체 또는 계속 출범하게 될 단체의 법인들을 구성원으로 한 회장단의 탄생, 지금까지 자연분산적인 소규모단체들을 하나의 련합체로 결집시켜 재한조선족사회의 권익수호, 이미지부각 및 각종  위기관리를 빈틈없이 해나가며  재한조선족사회발전의 새로운 비전을 줄기차게 뽑아내는 미래지향적인 재한중국조선족 총련합회를 발족시키는 일, 이는 중한수교 20년을 전기로 21세기 중한전략적파트너관계라는 공간에서 이제는 추진할 때가 된것 같다.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의 연변 20여만 재한조선족이 향후 계속 늘어날 추세를 감안할 때,  연변의 외향성경제발전에서 한국이 계속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특수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재한연변조선족사회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주정부 한국주재 대표처와 같이 브레인역할을 잘할수 있는 해외사무기구가 있다. 따라서 한국의 관련 기구와도 우리 나라 다른 지역이 비길수 없는 량호한 협력관계가 이루어져있다고 알고있다. 재한중국조선족사회를 리드하는 총련합회와 같은 단체를 출범시키는 과정에서 우리는  핵심뉴대역할을 응분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원참사는 한 개별적조선족에 의해 빚어진 돌발적사건이지만 아무튼 재한조선족사회의 구성원한테서 생겼으니 재한조선족사회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수는 없다. 수원사건을 계기로 보다 랭철하고 리성적으로 재한조선족사회의 발전궤도를 고민하면서 건전한 재한조선족사회를 만들기 위한 소명과 의무를 분명히 하는 장기적인 노력에 의해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변화가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는 방대한 재한조선족 구성원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그 어떤 힘이 요청된다. 재한중국조선족총련합회라는 화토불을 지필 때가 된듯싶다. 결코 우리와 무관한 먼 곳의 화토불이 아니다. 우리도 함께 동참하여 이 화토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해야 한다.
18    주당위 서기의 “문화행보” 댓글:  조회:4897  추천:4  2012-03-28
조짐이 좋다. 기대해도 좋을것 같은 그런 예감이랄가. 주당위 서기 장안순이 전국인대 대표총회에서의 범상치 않은 행보가 무언가를 강력하게 시사하고있다는 느낌이다. 전국인대 대표신분으로 상경하기에 앞서 장안순서기가 주신문출판국 국장을 불러 국가”동풍”출판프로젝트와 관련한 여건을 자세하게 알아보더라는 그 메시지를 그냥 무심하게 대했던것 같다.  그런데 장안순서기의 이번 상경이 “문화행보”(文化之旅)의 짙은 색채를 띠고있음이 점차 그 륜곽을 드러내게 되였다. 길림대표단 대 매체 개방일에는 40여개 매체기자들에게 “문화발전으로 민족의 발전을 추진하며 문화의 번영으로 민족의 번영을 이룩한다”는 확실한 문화리념을 드러냈는가 하면 《중국문화보》의 단독인터뷰에서는 문화민생으로 조화로운 연변사회 구축에 일조한다는 문화적 책무를 내비쳤으며 오방국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을 모신 길림대표단 회의석상에서는 많은 화제를 제쳐놓고 연변조선족출판을 국가 “동풍”출판프로젝트에 편입시키며 민족문화부축 강도를 더한층 높여야 할 절박성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한 지역사회의 수장보다도 문화를 주관하는 지도자로 착각할 소지가 다분히 풍기는 그런 행보를 작정하고 시도한것이다. 민족문화는 연변의 영원한 버팀목이라 할수 있다. 어찌 보면 연변의 자존심은 문화가 아닌가 생각한다.때문에 민족문화의 넋이 빠져나간 연변은 더는 연변이라고 할수 없다는게 필자의 소견이다. 연변의 지명도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에 의해서 얻어진것이라 해서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당위 서기의 문화행보는 그 의미가 크다. 지난 세기 40년대 후반, 50년대 초반에 벌써 신문사, 출판사, 잡지사, 방송국, 가무단, 문련, 작가협회, 대학교, 축구단과 같은 굵직굵직한 단체들로 문화기반을 닦은 지역은 아무리 훑어도 연변을 제외한 국내의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연변문화의 초창기는 찬란하였다.  지금 봐도 연변 민족문화의 귀틀은 그때 이미 형성됐다고 할수 있다. 지난 세기 80년대 초반,  자치주 친선대표단 일원으로 자매자치주인 신강 이리까자흐자치주를 방문했을 때 하루는 까자흐자치주기관의 일군과 담소를 나눈적이 있었다. 화제가 문화교육으로 넘어가면서 연변이 6개 대학교와 많은 중등전문학교를 보유하고있다는 내 말에 까자흐일군은 눈을 화등잔처럼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더니 자기들은 중등사범학교 한개가 있는것을 그냥 자랑스레 여겨왔다면서 금시 풀이 죽어하는것이였다. 그때만 해도 이리까자흐자치주는 경제력에서 연변을 훨씬 릉가한 부유한 고장이였지만 까자흐일군은 별로 우월감을 느끼는 눈치가 아닌것 같았다. 그날 나는 저도 모르게 목에 힘을 줄수 있었으며 우리에게 문화자존심을 심어준 조상들에 대한 고마움을 가슴 뭉클하게 느낄수 있었다. 강산을 세우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 있다. 연변의 민족문화강산을 지키고저 우리는 리념으로부터 실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수험료”를 많이 지불한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문화대재난의 “쓰나미”가 온 나라를 휩쓸었던 10년 문화대혁명과 같은 광란의 년대는 두번 다시 없겠지만 만약 우리가 자기 좌표를 잘못 인식한다면 결국 틀린 리념의 포로가 될수 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난 세기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초반에 시장경제하의 민족문화출로라는 겪어본적 없는 소용돌이속에서 치렀던 곤욕이 그 사례로 된다. 민족문화의 시장화를 주제로 하는 어느 회보회의석상에서 민족문화의 특수성을 들먹이며 연변가무단의 시장화를 자제하고 연변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공익성 공연에 얼굴을 돌리게 하는 방향문제를 가지고 회보발언을 했다가 나는 그 자리에서 한바탕 면박을 당했던 일이 있다. 하기는 “시장(市场)은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그 당시의 류행어가 “시장은 민족문화의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랭혹한 말로 비화되여있던 시기였으니 그럴만도 했고 나 또한 면박을 당하면서도 억울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후 남방에 문화개혁고찰을 내려가있던 정부관계자가 전화로 한 말이 나를 크게 자극시켰다 —남방은 아직 문화개혁이 초읽기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우리가 너무 빨리 나가는것 같다. 중국개혁개방의 선두를 달리는 남방연해도시가 문화개혁에 신중성을 기할 때 변강소수민족자치주가 “모범”을 보이고있다고 생각하니 허구픈 웃음이 나왔다. 결국 그후 당 17차 대표대회가 문화에 대한 과학적인 정의를 내리면서 우리는 비로소 시장경제하에서 민족문화의 대안에 대한 인식을 실사구시적으로 정리할수 있었다. 올 3월 21일자 《인민일보》는 “사회주의문화건설을 적극 추진할데 대해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글에서 “문화를 통털어 산업으로 만들어 ‘문화산업화’하지 말아야 하며 문화를 모두 시장에 넘겨 ‘문화시장화’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였다. “조선족자치주”,  이는 나라에서 연변에 부여한 “특수카드”로서 지난 계획경제시대나 지금의 시장경제년대를 막론하고 모두 “통용”되는 “상방보검(尚方宝剑)”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발전해도 “연변조선족자치주”라는 립지가 동요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는 조선족이 중국에서 기타 민족과 더불어 공동발전, 공동번영을 기할수 있는 정치적토대이고 문화자존심을 지킬수 있는 대전제이기때문이다. 연변에 내려진 국가의 “특수카드”혜택을 충분히 향수하는것은 조선족과 기타 민족의 정치적권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전통은 당중앙의 시종일관한 소수민족정책 그리고 초대 자치주 주당위 서기 주덕해로부터 시작된 력대 지도자들의 중앙으로 이어진 끈끈한 “문화행보”에 의해서만이 오늘까지 전승돼오면서 연변의 문화자각으로 승화되고 문화자존심으로 지켜질수 있었다. 오늘날 문화의 대발전, 대번영이 시대의 거센 흐름으로 도래하고있다. 경제에 의한 문화발전보다 문화에 의한 경제와 사회 발전이 강조돼야 하는 시점에서 연변민족문화의 새로운 부활을 위해 국가에서 부여한 “특수카드”를 잘 리용한다면 장안순서기가 내세운 “문화발전으로 민족의 발전을 추진하고 문화의 번영으로 민족의 번영을 이룩한다”는 목표는 확실한 전환점을 맞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의 방침, 로선이 확정된후 지역사회 발전에서 제1인자의 사유와 용단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다른 소수민족지역과 차별되는 연변의 지정학적 “특수성”은 연변이 중앙과 성의 “특수한” 관심과 배려를 받게 되여있다. 연변의 60년 발전력사가 제시한 경험이다. 지난 동안 나라에서 하사한 “특수카드”의 마력에 힘입은 자치주 주요지도자들의 리지적인 행보에 의해 연변은 일련의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였다. 국가 “서신” 방송프로젝트 편입에 의한 연변위성방송의 출범은 이 면에서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장안순서기의 “문화행보”는 좋은 조짐이고 따라서 긍정적인 결실을 안아올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17    중한수교 20년과 연변의 로무송출 댓글:  조회:4239  추천:3  2012-02-29
중한수교 20년이 된다. 중국과 한국 두 나라 사이 전략적 파트너관계가 연변땅에 몰고온 변화의 바람은 전방위적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의 변방에서 눈길을 끌지 못했던 연변이 중한수교의 흐름을 타면서 마침내 두만강국제협력의 활주로, 대외개방의 교두보로 떠오르게 되였다. 올해로 자치주 창립 60돐 맞는 연변, 이 60년에서 연변의 천지개벽 변화를 기록한 년륜이 중한수교 20년과 맞먹는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절묘하다는 느낌을 접을수 없다. 개혁개방전까지만 해도 연변조선족에게 한국은 까마득하게 먼 “달나라” 같은 존재였다. 랭전시기의 “남조선”으로부터 한강기적을 일궈낸 “아시아의 작은 룡”으로 인식되고 드디여 중한수교를 거치며 대한민국으로 받아드려지기까지 우리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리념변화를 겪었다. 중한수교와 더불어 “불공대천의 적대국”이 전략적파트너로 변신하면서 한국은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그처럼 멀리 느껴졌던 한국이 지척에 다가오자 기다렸다는듯 연변조선족 로무대군이 보뚝 터진 물처럼 호탕하게 한국으로 진출하는 그 거창한 역전드라마가 펼쳐졌다. 중한수교가 이루어진 1992년 우리 나라와 수교한 나라는 10여개나 되지만 연변조선족과 관련되는 국교정상화는 단연 중한수교 뿐이였다. 동북아의 중심 및 조선반도와 중국의 변연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구라는 연변의 지정학적특점은 나라 개혁개방의 거센 흐름, 중한수교의 천재일우 변화와 복합되면서 마침내 연변발전에서 득천독후(得天独厚)의 립지를 구축할수 있게 되였다. 오늘날 중한수교의 물살을 타고 한국으로 진출한 20여만 연변조선족은 연변지역경제구조의 전례없는 변화로 연변외향성 경제발전의 힘찬 도약을 이끌어낸 요소로 되고있다. 중한수교 20년을 반추하면서 연변은 중한 전략적파트너관계라는 큰 테두리안에서 보다 리성적이면서도 랭철한 사유,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21세기 연변외향성 경제발전의  새 장을 열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산업발전과 물류의 흐름이 제한돼있는 지리적, 변계성 특징에서 볼 때 로무송출경제는 연변의 중요한 발전전략으로 자리매김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연변의 외향성 경제발전에서 한국이 계속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금 한국에서 생활하고있는 140만 외국인가운데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이 79%로 가장 많다.  몇년간 재한 외국인은 증가세를 보이고있는데 그 심층 원인은 한국사회 출산률의 지속적인 하락과 더불어 로령화의 템포가 빨라지면서 초래한 한국로동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50년 한국의 로년인구 비례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38.2%를 기록할것으로 전망되고있다. 다시 말해 40년 후 한국이 엄중한 로력 결핍으로 몸살을 앓게 되며 자연히 해외 청장년 로동생산력의 대량 류입으로 이어지리라는 판단이다. 한국 어느 권위성 기구는  향후 10년 또는 15년 사이에 한국이 200여만명의 아시아계 로력을 흡수해야 할 긴요성에 대해 조언하고있다. 지금까지 연변의 로무송출은 대부분 개인적인 취업열기로 유지돼왔다.  연변에서 국외로 나간 로무인력에서 정부부문의 계통적연수를 받고나간 사람은 빙산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대다수 로무인력이 그 어떤 사전교육도 받지 못한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출국한것이다. 이같은 문제점들은 오늘날 재한 조선족근로자들이 연변의 재부창조에서 일익을 감당하고있는 소중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한국사회에서 각종 사고위험과 피해위협에 철저히 로출된 약소군체로 될수밖에 없는 리유이기도 하다. 로무송출이 안고있는 근로자 기능연수문제, 근로자 결손가정문제 ,근로자 미성년교육문제, 근로자 사기피해문제, 근로자 권익보호문제 등 일련의 현안들에 대한 정부의 보다 과학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이 검토되고 출범돼야 한다. 중한수교 20년 사이, 자치주 당정은  한국의  정부기구와 량호한 협력교류 관계를 맺고있는줄 안다. 이는 오늘날 재한 연변조선족근로자들을 따뜻히 포용하려는 우리 정부의 의도를 능률적으로 풀어나가고 21세기 연변의 외향성 경제발전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입할수 있는 인적자원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재한 조선족근로자들은 한국정부도 포용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재한 조선족이 한국경제발전에서 어떤 존재인가는 한국정부가 너무나 잘 알기때문이다. 재한 연변조선족근로자 사회와의 관계를 정상화, 체계화,  활성화 하는 면에서 주정부 한국주재대표처의 브레인역할이 특별히 요청된다.  최근들어 륙속 출범하고있는 재한 연변인들의 각종 민간단체는 스스로 자신의 권익을 수호하고 조선족의 이미지향상을 위한 구심점으로 되고저 고심하는 재한 연변조선족근로자 사회의 긍정적인 움직임으로써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지가 큰 힘이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로무송출이라는 흐름속에는 문제의 “미꾸라지”들도 섞여있다. 마약, 밀매, 다단계판매, 사기행각 등 비정한 행위로 한국사회에 해를 끼치고 연변, 나아가서 우리 나라의 이미지를 더럽히는 개별적인 조선족 불량배들, 이자들의 직접적인 피해대상은 성실한 로동으로 재부를 창조해가는 재한 연변조선족근로자들이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이 “연변조선족”에 대해 거부적인 감정을 갖고있는것도 상기한 불량배들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재한 조선족을 통털어 “연변조선족”으로 일컽는 한국인들의 비뚠 시각도 문제겠지만 아무튼 우리도 랭철하게 대해야 할 무거운 숙제임이 분명하다. 오랫동안 쌓여온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정적 시각은 재한 연변조선족들의 장기적 노력을 대가로 해야 한다. 연변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정적시각이라는 이 “불”이 어떻게 일어났던간에 진화는 우리의 몫이다. 뒤늦게나마 “상황파악”을 한 한국인들이 송구한 마음으로 우리의 진화작업에 동참하리라는 기대감도 없지 않다.  미래지향적인 시각으로 재한 연변조선족근로자들의 생존환경, 로동현장, 자녀양성 등에 대해 정확히 조명하고 우리 로무송출의 걸림돌들을 제때에 제거해주며 연변조선족에 대한 한국사회의 편견을 일소시키면서  연변외향성 경제발전의 비전을 제시해주는 중심에 우리의 언론이 서주어야 한다. 중한수교 20년을 전기로 재한 연변조선족근로자사회가 중한경제협력과 합작의 중요한 징표로, 연변경제발전의 유력한 방면군으로 우뚝 솟기를 기대한다.
16    해상어업충돌과 우리의 선택 댓글:  조회:4199  추천:1  2012-01-29
우리 나라 어민들과 린접국가와의 빈번한 해상어업충돌이 근간 이슈로 되고있다. 지난해 년말에는 우리 나라 어민과 한국해경들과의 치렬한 몸싸움으로 한국해경 한명이 사망, 한명이 심하게 다치는 비극이 겹치면서 두 나라의 심각한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였다. 우리 나라 어민과 린접국가와의 해상어업충돌, 무엇이 문제인가? 한 권위성 매체의 핵심보도에 따르면 우리 나라 어원의 고갈, 해양의 오염, 어업원가의 급상승이 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변수로 떠오르면서 이들의 해상모험으로 이어지게 하고있다는 지적이다. 세세손손으로 바다에 의지해 살아가는 연해지구 어민들에게 어업은 유일한 생존수단이다. 하지만 우리 어장의 물고기가 바닥나 급기야 어류품종이 많고 시장가치성이 높은 린접국가의 해양을 넘보게 된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불안한 위기상황이 아닐수 없다. 우리 나라 시장의 해산물수요가 어업자원의 지나친 개발을 부추기면서 “략탈식”어로(漁捞)에 의해 근해의 어원이 깡그리 자취를 감춰버리고 따라서 근해의 공업화발전이 당지의 생태환경파괴를 가속화시켜 어류의 생존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해버린것이 그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있다. 중국어업 전체적생태환경의 개조야말로 해상어업충돌을 막을수 있는 근본대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결국 우리는 눈앞의 리익만 챙기면서 무모한 개발과 환경파괴를 자제하지 못한 자신의 행위로 하여 생태계의 보복을 받고있는것이다. 해상어업충돌이 주는 경고메시지에서 우리는 후대에게 물려줄 생태환경보전을 위한 가지속발전의 절박성에 대해 통감해야 한다. 우리 후세들이 지금보다 훨씬 맑고 아늑한 생존환경에서 더없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수 있게 하는것이 나라와 지역사회 경제도약의 궁극적목표일진대 우리의 경제성장이 생태훼손과 환경오염을 그 대가로 한다면 이거야말로 얻는것보다 잃는것이 더 많은 득불상실(得不偿失)이 아니겠는가? 해상어업충돌이 시사하는 교훈이다. 국가환경보호권위기구에 따르면 현재 환경오염으로 빚어진 우리 나라의 경제손실은 이미 그해 국민총생산액의 3% 이상을 릉가하고 도시인구 만명당 6명이 공업화오염으로 사망한다는 집계가 나와 있다. 소름끼치는 이 공포의 수치내면에는 대기와 수질오염, 인간생태환경의 훼손이라는 원흉이 도사리고있다. 경제도약과 국민총생산액 성장이라는 허울을 쓴 이같은 원흉이 존재의 합리성으로 우리의 사유를 혼란스럽게 하면서 우리 후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성종양으로 만연되고있는 현실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된다. 일부 발달한 나라들은 썩 오래전부터 발전도상나라들에서 목재, 석유, 석탄 등을 대량 수입해들여다가 바다속에 저장하여 수십년 또는 수백년후에 나타날 자원고갈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고있다 한다. 물론 이는 후대를 위한 강구책임이 틀림없다. 일회용 위생저가락 수요가 가장 큰 일본이 본국의 목재자원이 아닌 우리 나라 삼림자원에 기대여 버젓이 저가락수요를 만족시키고있는 사실은 뉴스가 아닌지 퍼그나 됐다. 우리 나라의 소중한 자원이 바닥나면서 “중국제조” 수출용 공업품으로 둔갑될 때 서방 발달국들은 물자원을 비롯한 본국의 생태자원소모를 최저한 낮추거나 아예 전혀 소모하지 않는 수준에서 국민총생산액의 높은 성장을 창출해낸다고 알고있다. 우리 나라가 대개발, 대발전의 거센 흐름을 타면서 환경과 생태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되고있을 때 우리 연변이 세인들의 주목을 받는 리유의 하나가 량호한 자연생태환경때문이 아니겠는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연변의 록수청산, 피치 못할 민족의 력사적대이동에서 비롯된 150여년전 우리 조상들의 선택에 감사하고 그후 수십년 대약진, 문화대혁명과 같은 광란의 세월 그리고 시장경제의 준엄한 시련속에서 오늘의 “팔산 일수 반초 반푼전(八山一水半草半分田)의 록색공간을 우리에게 물려주고저 분투해온 력대 연변당정에 고마운 마음이다. 연변은 지금 대도약, 대발전의 고속도로에 들어섰다고들 말한다. 두만강지역국제합작개발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오늘의 시점에서 선도구개발기획프로젝트의 실시를 징표로 연변의 경제, 사회 발전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게 된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떤 개발과 발전도 천혜의 연변생태의 파괴를 대가로 할수는 없다. 우리 조상, 우리 선인들이 물려준 연변의 생태에 지금 우리가 고마와하는것처럼 우리 후대들도 이것을 감수하게 해야 한다. 일전에 개최된 우리 주 제10차 당대회는 “풍요롭고 개방되고 생태적이고 조화롭고 행복한 연변을 건설하는”것을 향후 5년 분투목표로 제시하면서 특히 전국 일류의 생태지역, 쾌적한 거주지 건설을 강조하였는데 대단히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차별, 무절제 개발로 이룩한 경제성장보다 후대들에게 물려준 자연 그대로의 생태보물고가 더 값지고 빛나는 보배라는 리념에 무게를 실어주는 과학적결책이 아닐수 없다. 물론 “전국 일류의 생태지역” 건설이라는 거창한 노력이 “선도구계획”, 연룡도일체화에 따른 연변지역의 대개발붐과의 마찰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결코 만만치 않을것이다. 우리는 그제날 빈곤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오늘날 우리는 자원훼손과 환경파괴 역시 사회주의가 아님을 확실시해야 한다. 조화로운 사회가 횡적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뜻하면서도 종적으로는 또 오늘의 연변과 미래 연변과의 관계, 오늘의 우리와 미래 자손들과의 관계로 정립되기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 일류의 생태지역, 쾌적한 거주지” 건설은 “선도구계획”, 연룡도일체화 프로젝트를 추진함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매김돼야 하며 생태환경에 대한 무모한 유린과 파괴는 연변지역 대개발에서 시종 경계해야 할 적색신호등으로 간주돼야 한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연변 벼농사의 산실인 세전이벌과 평강벌이 연룡도일체화 개발에서 큰 침해를 입지 않고 연변조선족의 자존심으로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 연변 1호강 해란강을 중심으로 주안의 모든 하천, 늪, 습지, 초원들이 두만강개발에서 훼손이 아닌 정비보강을 거쳐 더 멋진 모습으로 태여났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모아산국가삼림공원건설을 주축으로 주안의 도시변두리 산들이 도시화프로젝트 추진에서 인간과의 조화를 잘 보여주는 대자연의 걸작으로 업그레이드 될수 있는 가능성을 떠올려본다. —연길시 남산기슭에 정착하는 중국조선족대형민속문화단지건설을 전기로 주안의 모든 력사유적지와 혁명유적지의 재생, 복원이 문화생태건설코스에 편입되면서 자연과 인문의 멋진 융합이 숨결로 느껴지는 그런 풍경선이 연변 곳곳에 안주하리라는 기대감에 빠져본다. “미래는 현재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영국작가 존슨은 말한다. 우리가 남의 해안, 남의 터전을 넘볼것이 아니라 남이 우리의 터전을 부러운 눈길로 넘보게 되는 그같은 “일류 생태지역”, “쾌적한 거주지‘가 이제 여기 연변땅에 서서히 신기루처럼 떠오르리라는 바람을 가져본다.
15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일 댓글:  조회:3947  추천:1  2011-12-28
일전에 어느 권위성자료에서 흥미있는 내용의 글을 읽은적이 있다. 외국의 한 매스컴 조사기구가 중국, 일본, 한국 세개 나라 1575명 국민을 대상으로 삼국의 국가형상년령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렸는데 중국이 33세, 한국이 36세, 일본이 46세라는 결과로 집계되였다. 놀랍게도 조사에 응한 세 나라 국민 모두가 중국을 가장 젊다고 본것이다. 이 결과는 중국의 경제규모와 발전공간이 아주 넓다는 징표로 풀이된다고 조사기구는 설명하고있지만 그래도 "젊다"는 평가에는 아직 사회적으로 성숙되지 못했고 인문환경에서 허다한 문제점들을 안고있다는것으로 해석되는 소지가 많다. 중앙방송 영어채널의 저명한 프로듀서 양예는 우리 나라가 1류의 경제대국, 2류의 정치심리, 3류의 국민소질로 복합된 슈퍼문화의 성격을 갖고있다고 지적하여 사람들의 깊은 사색을 자아내고있다. 세계가 공인하는 신흥경제대국, 하지만 이에 걸맞지 않은 허약한 공민의식과 국민소질, 이 모순의 해결대안은 아무래도 우리의 문화풍토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 나라의 발전변화는 거족적이다. 특히 지난 70년대말부터의 개혁개방이 일궈낸 가장 큰 변화는 국민의 관념해방과 주제의식의 태동이라 할수 있다. 하지만 강산은 쉽게 바뀌여도 본성은 바꾸기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새 중국의 탄생, 낡은 체제의 타파와 더불어 배제됐어야 할 중화민족의 일부 잠재해있던 렬근성이 오늘날 시장경제의 금전만능 지배와 물욕팽창의 소용돌이속에서 새롭게 둔갑되여 인성의 재영락과 인간의 개성, 독립성과 자주성의 실추를 부추기고있는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 여러 지역에서 련이어 발생하는 시민들의 비도덕행위의 근간인 "구경군의식"만 봐도 그렇다. 일찍 지난 세기 20년대에 로신이 강력히 규탄했던 바로 그 “멍하니 얼빠진 표정”을 하고 빙 둘러서서 일본군이 중국인의 목을 자르는 "끔찍한 광경"을 구경하던 "건강한 몸집"을 한 많은 중국사람들의 "구경군의식"이 정의와 공정을 바라는 현대사회의 곳곳에 도사리고있으면서 사회주의핵심가치관과 대결하는 양상을 보이고있지 않는가? 우리 나라를 포함한 일본, 한국 국민들이 중국의 형상년령을 가장 젊다고 본데 대해 결코 억울한 평가가 아니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국가경제의 급성장이 결코 우수한 국민성의 형성과 절대적인 력학관계를 갖고있는게 아니라는 점이 강조되고있는 시점이다. 시장경제발전과 더불어 불거져나오는 부패현상들, 갑부로 됐지만 정신적으로는 병약하고 사회적책임과 기본량지가 문맹에 가까운 일부 국민의 실태, 타인을 배려할줄 모르고 사회공중도덕과는 담을 쌓고 사는 안하무인격의 비인간적 국민들에 의해 오염되는 사회풍조… , 당의 17기 6차 전원회의가 사회주의핵심가치체계를 문화건설의 령혼으로 제시한 절박성과 깊은 의미가 돋보인다. 연변도 례외일수는 없다. 건강한 시민사회의 확고한 정착으로 많이 척박해져있는 우리의 시민사회문화토양을 비옥하게 걸구어 연변사람의 문화자각이 뿌리를 내리게 하는것이 절박한 과제로 나서고있다. 우리의 시민문화가 물질이나 화페자본보다 더 강대한 힘으로 나타날때만이 연변의 경제발전이 보다 높은 차원의 수준에 이를수 있다는것이 오늘날의 중론으로 되고있는 때 우리는 자못 진지한 자세로 몇세대에 걸쳐 신근한 노력으로 창조한 모든 영예의 가치를 실사구시적으로 반추하는 한편 우리의 차실로 아쉽게 실각된 형상의 재창출에 진력하며 따라서 새로이 쟁취하려는 영예의 진의와 종합지표를 재점검하면서 표상적인것보다 실질적인 내실의 구축에 못을 박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지역 모든 영예의 금자탑 내실은 사회주의핵심가치관에 토대한 건강한 시민사회의 력동적인 움직임으로 다져져야만 그 어떤 시련도 겪어낼수 있다. 시민사회가 건강해야 놀라운 경제성장과 기적이 창조될수 있고 조화롭고 강건한 사회발전의 대세가 안주할수 있다. 연변이 전국민족단결선진집단일수 있는 리유는 화려한 사업보고보다 우리의 건강한 시민생활의 구석구석에서 빛나야 하고 우리 지역이 전국문명도시, 애심도시로 각광받는 리유 또한 도시의 겉치레보다 건강하고 성숙된 시민사회의 이모저모에서 흘러나와야 한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들어나감에 있어서 언론이 주요한 역할을 해야 함은 우리 나라 정치체제가 부여한 미룰수 없는 책무이다. 허약한 시민사회는 언론에 의해 보강되고 성숙된 시민의식, 건강한 시민사회는 언론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추락되는 공중도덕에 대한 날카로운 규탄, 비정적인 사회현상에 안기는 무서운 채찍질, 선량하고 고상한 인격에 대한 따뜻한 포용과 찬미, 건강한 시민사회 만들기를 위한 힘있는 여론조성, 이 모든것은 우리 언론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언론의 힘에 의해 서서히 부각돼가는 건강한 시민사회, 이같은 시민사회에 의해 날따라 성숙돼가는 연변의 형상을 기대해본다. (원 주당위 선전부 부부장)
14    연변축구를 말한다 댓글:  조회:4486  추천:2  2011-11-25
올해 갑급리그시즌에서 내내 축구팬들의 속을 바질바질 끓게 하면서 연변축구는 그런대로 8승5무13패의 성적으로 참가한 14개 팀 가운데서 11번째 순위를 부둥켜안으며 강급문전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갑급리그에서 탈락하면 언제 다시 솟아날지 모를 그 위험천만한 사태가 올해에도 재연되여 우리를 굉장히 괴롭혔다. 갑급리그 탈락을 막고저 연변극성팬들의 응원열기에 맞춰 감독교체, 주장(州长)독려,  자금약속이 이어지면서 가냘픈 숨을 몰아쉬던 연변축구가 다시 환생의 고삐를 잡고 끝내 사선에서 살아나 우리 모두의 숨통을 열어주었다.  대련아르빈이 갑급리그 챔피언을 따낸 기쁨으로 대련사람들이 환호할 때 우리는 갑급리그 14개 팀중 37꼴이라는 가장 많은 실점을 기록하면서 갑급리그 탈락을 막아낸 연변전사들에게 감격해야 했다. 우리에게 챔피언은 잠시 너무 사치한 희망사항이고 그냥 갑급보전만으로 만족할수밖에 없는게 우리의 현주소인듯하다.  이럴 때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무용담일지는 몰라도 지난 세기 60년대 초반 중국축구무대를 마구 휘젓고다니며 호랑이처럼 포효하던 연변축구를 떠올리게 된다. 그때는 참 신바람났었다. 변방에서 눈길을 끌지 못하던 오지의 연변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데는 축구가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셈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냥 연변이 축구를 독주하도록 호락호락 내버려두지 않았다. 시장경제에 돌입하고 축구구락부체제가 들어서면서 연변축구가 점차 삐걱거리기 시작하였다. 돈이 축구발전의 동력으로 자리잡으면서 경제실력을 자랑하는 내지의 축구가 도약할 때 연변은 자기 축구의 기반을 고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지경에까지 몰렸고 지난 세기 90년대 하반기에 들어가면서 끝내 갑A 자리에서 비참하게 탈락하는 고배를 마시게 되였다. 오늘 연변축구는 슈퍼리그가 아닌 갑급리그에서의 탈락을 막기 위해 생사의 박투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까지 오게 되였다.  더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다.  그런대로 올해의 생사고비는 넘겼는데 래년이 문제이고 그 다음이 문제이다.  2012년은 연변사람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의 한해이다. 자치주 60돐 환갑잔치가 지금부터 모두를 들뜨게 하고있다. 이 축제에 효자로 공인받는 축구가 연변사람들이 열광할수 있는 경기결과를 이루어낸다면 그보다 더 값진 선물은 없을것이다. 자치주 주장은 연변축구가 결사의 각오로 배수진을 치고 싸워 명년에는 슈퍼리그 진출목표를 달성하라고 연변축구구락부에 어마어마한 군령을 내렸다. 갑급리그 강급문전에서 겨우 살아난 축구단에 슈퍼리그진출이라니 어찌 보면 허황한 꿈이 아닌가싶다. 물론 올시즌 갑급리그의 성적순위만 가지고는 답이 나올것 같지 않다. 우리 앞에 넘어야 할 적수가 수두룩하니깐. 하지만 그 성적내면을 자세히 조명해보면 희망의 불씨가 확실히 보인다. 우리 나라 갑급리그 참전 14개 팀의 실력격차가 결코 유럽 강호와 아시아 약자팀 사이와 같은 그런 엄청난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시즌을 열면서 우리가 슈퍼리그진출을 목표로 내세울수 있은것도 그같은 안목에서였을것이다. 우리 연변에도 세상이 알아주는 기막힌 축구 관전문화전통이 있다. 지난 세기 80-90년대 연변 홈경기때마다 연길경기장을 꽉 메우며 도미노식 응원열기로 뜨겁던 그 추억들,  입장권을 구할수 없어 경기장 외곽의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관람쇼를 펼치던 극성팬들, 경기결속후 온 시가지가 맥주쇼로 시끌벅적하던 그 풍경들…  이 모든것은 연변축구가 건전하게 성장할수 있는 량호한 생태환경이라 할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때부터였는지 그 관전열기가 식어가고있다. 연변축구의 도약은 량호한 관전문화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우리의 관전문화가 되살아나는 때이자 우리 축구가 부흥하는 때임을 알아야 한다. 연변축구가 전국경기대회에서 제5위를 따내여 연변사람들을 흥분시켰을 때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은 생방송으로 "장하다, 백두호랑이"  대형종합야회를 기획제작하여 축구단과 연변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지게 하고 연변축구로 연변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불씨를 심는데 크게 일조했다. 렬악한 장비로 연변축구단의 홈장 경기 생방송을 이어가면서 연변축구를 부흥시키고저 몰부은 방송매스컴의 노력은 그 당시 연변사람들을 분발시키기에 족했다.  오늘 다매체시대에 들어서면서 연변의 매스컴실력도 많이 보강되였다. 연변축구의 건전한 여론환경을 잘 조성하는것은 연변의 모든 매스컴이 해야 할 몫이다. 우리 축구가 연변의 명함장으로, 연변의 효자로서의 본분을 다할수 있도록 매스컴의 멋진 협동작전이 요청된다. 명년 자치주 60돐에 즈음하여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자치주 주장이 정부차원의 두터운 자금약속을 한것은 단순한 경제후원선을 떠나 연변의 자존심, 연변의 명함장인 축구가 민망하게 밖에 나가 문전걸식하는 일이 없도록 힘들더라도 우리 살림에서 보태주겠다는 정중한 승낙이 아닌가싶어 마음이 더없이 후련하다.  이제 연변축구가 정부의 따뜻한 포용, 연변 200만 가족의 성원에 힘입어 다시 자신감을 되찾고 좋은 플레이를 맘껏 펼쳐 자치주 60돐 축제에 기막힌 선물을 내놓아 연변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만 남은것 같다. 아니,  명년뿐이 아니고 계속 상승선을 그으면서 연변축구가 다시 지난 세기 60년대 그 호랑이의 위용을 되찾아 해해년년 축제분위기를 연출했으면 좋겠다.  
13    옐로카드 댓글:  조회:4256  추천:4  2011-10-26
축구경기에서 가끔 이같은 장면을 목격할수 있다. 선수가 공을 몰고 상대편 문전으로 돌입하는 도중 상대방 선수의 방어에 걸리게 된다. 대방의 페널티 에어리어안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관건적인 프리킥을 이끌어내여 득점을 따내기 위한 속셈으로 선수는 대방이 아무런 반칙도 하지 않았는데 비명을 지르고 죽는 시늉을 하면서 그라운드에서 한바탕 뒹구는 소동을 벌린다. 대방선수를 반칙으로 판정해달라는 교묘한 술책이다. 수만명 축구관중이 지켜보는 현장에서 야비한 연기를 꺼리낌없이 하는 그 선수에게 속아넘어가지 않고 주심은 가차없이 옐로카드를 꺼내든다. 결국 “현란한 연기”로 대방선수에게 옐로카드를 덮어씌워 비정한 득점을 얻어내려던 몰얌체한 선수는 돌을 들어 제발등을 까는 결과를 초래하고만다. 교묘한 위장수법으로 상대방 선수에게 덤터기를 씌우고 자기 리익을 챙기고저 관건적인 포인트에서 만들어낸 이 행위는 주심의 시야를 흐리게 하고 관중을 현혹시키며 경기결과를 그 어떤 함정으로 끌고가려는 성격의 반칙이므로 여기에 옐로카드를 내드는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옐로카드감이 쉽게 눈에 뜨인다.  일전에 필자는 시안의 어느 번화가 교차로에서 아주 희한한 광경을 마주하게 되였다. 길목에 멈춰서있는 택시 바로 앞에 한 중년녀성이 반쯤 누운 자세로 어딘가에 큰소리로 휴대폰을 걸고있었고 그 옆에는 택시기사인듯한 중년남성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있었다. 피해자로 자처하는 그 녀성은 마치 “너 오늘 나한테 잘 걸렸다”는듯한 자못 여유있고 자신만만한 기색으로 택시기사와 자기를 둘러싸고있는 관중들을 보며 제집 안방인양 누워서 지껄이는데 그 꼬락서니는 아무래도 차사고현장이라고는 볼수 없었다. 모여선 관중들의 수근거리는 말을 들으니 택시기사 책임보다도 붉은신호등을 무시하고 도로를 횡단한 중년녀성의 책임이 컸고 그보다도 택시의 급정거로 녀성과 택시의 마찰은 크게 없었는데 녀성이 쓰러지는 연극을 논다는것이다. 녀성이 차앞에서 “쓰러지는”것을 보고 택시기사는 우선 그 어떤 책임론을 떠나 녀성곁으로 다가가 부축해서 일으켜세우며 병원으로 가자고 했으나 녀성이 완강히 거절하면서 저렇게 길바닥에 누워있다는것이다. 관객들은 괜히 이 녀성을 다쳤다가 엉뚱한 덤터기를 쓸가봐 이렇게 구경만 한단다. 누가 봐도 이것은 택시기사에게 책임전가를 시키고 리익을 챙기려는 철면피한 쇼였다. 너무나 어이없었다. 영국의 한 매스컴은 중국사람들은 이제 남을 도와주는것을 락으로 여겨야 하는 그 대가에 대해 계산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고 지적하였다.  동방례의민족의 도덕성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해 다시한번 사색해보게 하는 지적이라고 하겠다.  강소성 어느 도시에서는 길에 넘어진 한 로파가 차를 세우고 자신을 부축하여 일으켜준 고마운 공공뻐스기사를 법정에 기소하고 배상을 요구한 사건이 화제가 되였다. 다행히 공공뻐스에 감시카메라가 부착돼있어 사고발생시의 광경이 완벽하게 록화되였기에 뻐스기사가 억울함을 벗을수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일부 무뢰한들이 조작한 부도덕적인 책임전가행위에 의해 시민사회에서 남을 기꺼이 도와주는것을 락으로 여기는 미풍량속에 금이 가고있다. 어느때부터인지 도움을 준 선량한 이들이 도리여 도움을 받은자의 협박을 당하는 사례가 수두룩이 발생하고있다. 길가에서 사고를 당한 낯선 사람에 대해 선뜻이 도와줄 엄두를 못내고있는 현상이 많아진다. 정체 모를 그 낯선 사람이 위장술을 쓴 무뢰한일 때 잘못 건드렸다가 애매하게 배상비와 입원치료비까지 강요받지 않을가 하는 우려로 도움주기를 꺼리는 상황이 적지 않다.  봉황네트워크가 2만명 네티즌에 대해 조사한데 의하면 7%에 못 미치는 응답자만이 차 운행중 행인과 마찰이 생겼을 때 차를 세우고 구원을 주겠다고 대답했고 응답자의 45%는 아예 못본척하겠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43%는 현장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돼있다면 구원의 손길을 뻗칠 의향이 있다고 태도를 밝혔다.  남을 돕는것을 락으로 여기는 중화민족의 국민성에 비상이 걸렸음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국민의 도덕수준을 만회하고 공중도덕정화를 위한 법률제도적장치를 완벽화하며 사회정의와 공정성을 수호하려는 정부의 일련의 노력은 량호한 문화적자각을 바탕으로 한 시민사회가 동조하였을 때만이 기대한 결실을 거둘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를 하나의 방대한 그라운드로 비유할 때 시민 모두는 이 그라운드를 영위해나가는 선수단이라고 할수 있겠다. 북경 올림픽 주제가가 선양한 조화롭고 다정다감한 "너와 나" 인간관계의 구축은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추진해나가야 할 시대적과제이다. 이에 도전하려는 개별적 무뢰한들의 위장술을 쓴 모든 비정한 행위는 시민사회 “옐로카드”의 단호한 추적으로 설자리를 잃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돼야만 서로 돕고 서로 리해하고 서로 아끼는 핵심공중질서가 시민사회라는 이 “그라운드”에 똑바로 정착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 리조시대 학자 조광조의 말이 떠오른다. “사덕(邪德)과 정의는 공존할수 없다. 비록 정의가 사악을 누를지라도 사악이 정의를 이기는것이 많다. 저 초목을 보라. 잡초와 잡목은 부지런히 베고 김매여 없앨지라도 오히려 무성하지만 란초와 지초 같은 좋은 초목은 비록 심고 가꾸기를 일과로 삼아도 도리여 시들고 약해진다. 사악이 정의를 이기기 쉽고 정의를 보전하기 어려움은 저 초목에 견주어보아도 잘 알수 있는 일이다. ” 성숙된 시민사회의 부상, 사회정의가 시민의식을 주도하는 주류리념으로 확실히 자리잡게 하는 길은 멀고 힘들지만 꼭 풀어가야 할 숙제임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 후대들에게 고스란히 넘어가야 할 사회유산이기때문이다. (원 주당위 선전부 부부장)
12    재한조선족 근로자 민생론 댓글:  조회:4457  추천:4  2011-09-22
며칠전 재한조선족 근로자들의 실태를 다룬 한 해외방송사의 TV스페셜을 본적이 있다. 서울 가리봉지역 연변조선족 로무일군들의 처절한 삶의 현장이 기자인터뷰와 더불어 폭넓게 조명된 영상프로그램이였다. 의지가지없는 이역땅에서 단 하나의 목적—돈을 벌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악착스럽게 로동현장에서 분투하는 조선족근로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부지중 큰일을 위해 치욕을 참고 견딘다는 뜻을 담은 인욕부중(忍辱負重)이라는 한어성구를 떠올리게 되였다. 화면에서 조선족근로자들이 밝힌 재한 핵심적리유는 자식들의 학업비 마련이였고 목표가 달성되면 가차없이 연변으로 돌아간다는것이 공동의 생각이였다. 대다수 재한 연변조선족 근로자들의 마음을 대표한 토로라고 할수 있다. 소 팔아 자식 공부시킨다는 우리 민족의 전통미덕이 당대 해외로무송출을 통한 인욕부중의 헌신성으로 탈바꿈하고있다. 자식의 엄청난 학업비용 장만을 위해 내 한몸 바친다는 비장한 각오로 해외로무송출이라는 길을 선택한것이다. 악착스럽게 피땀으로 번 돈을 자식의 학업비로 연변에 송금할 때처럼 기쁠 때가 없다며 이때만큼은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는 근로자들의 진솔한 독백은 나의 마음을 찌르르하게 하였다. 사실 한국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그 순간부터 재한조선족 근로자들은 사고위험과 피해위험에 철저히 로출된 약소군체일수밖에 없다. 세계적금융위기로 인한 한화가치의 하락에 따른 조선족근로자들의 “로동가치”의 반감(半減), 중국조선족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틀린 인식으로 강화된 한국정부의 불법취업단속 및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멸시와 랭대, 중소기업부도의 증가에 따른 조선족근로자들의 취업난, 조선족근로자에 대한 악덕기업주들의 갖가지 인권유린과 침해행각, 로동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입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의료보험혜택을 받을수 없어 병원치료를 포기할수밖에 없는 조선족근로자들의 처지… 이 모든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재한 조선족근로자들이다.  만약 이들이 고향에 있다면 정부나 사회의 혜택을 받아야 할 구제대상들일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에 손을 내밀지 않고 자신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운명에 도전하고있는것이다. 현재 한국에 있는 조선족은 50여만명으로 집계되고있다. 그가운데 연변조선족이 20여만명을 웃도는바 이들 대부분이 자식들의 학업비용 마련,  살림집개선,  빚더미청산을 목표로 “리산가족”의 아픔을 묵묵히 감내하면서 이역땅의 최하층 삶을 영위해나가고있다. 피와 땀으로 바꾼 이들의 헌신적로동대가에 힘입어 이들은 자신의 경제적목적도 이루고 따라서 연변경제의 새로운 성장점을 형성시키는데서 한몫을 해내고있다. 이들이 최근 몇년간 벌어들인 외화수입은 같은 시기 연변재정수입의 2배에 맞먹는다는 사실은 세인이 다 아는바이다.  재한 연변조선족 근로자들은 사실상 연변경제발전의 독특한 브랜드 창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셈이다. 어디 그뿐이랴,  십여년의 악전고투로 목적을 달성한 이들의 대부분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한국에서 습득한 기술과 지식을 되살리고 그동안 애써 마련한 자금을 창업밑천으로 내놓아 경제업체를 세우고 정부를 도와 수많은 일자리 창출을 추진시켜 연변민영경제의 힘찬 도약에서 일익을 감당하고있는것이다.  몇년간 자치주당정은 줄곧 이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재부가 얼마나 놀라운것인가를 떠올리면서 우리 주 해외로무송출의 중요성을 많이 부각시켜왔다.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대가로 이같은 재부를 창조하는가에 대해서도 더 주목하면서 보다 뜨거운 반응을 보였으면 하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재한 조선족근로자들은 우리 정부의 “해외민생”  배려대상자로 인정받아야 될 충분한 소지가 있다. 이들은 우리 정부의 따뜻한 배려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이역나라 오지에서 갖은 수모와 치욕을 감내하며 고향건설에 동참하며 정부와 더불어 말없이 자녀교육문제를 망라한 민생현안을 풀어나가고있는 연변의 재한 약소군체이기도 하면서 연변건설의 공신들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이들한테 요청되는것은 그 어떤 물질적배려보다도 따뜻한 정신적포용이다. 이들에 대한 격려의 한마디, 사랑의 메시지 한통이 얼마나 엄청난 에너지로 작용하는가를 몇년전 재한 조선족근로자를 위한 위문공연단을 인솔하여 한국에 다녀오면서 절감한바 있다.  지금도 필자는 그날 한국 여러 지역 로동현장에서 구름처럼 위문공연장으로 모여온 우리 동포근로자들의 그 거멓게 그을고 많이 수척해보이던 얼굴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그 밝은 눈빛들을 기억하고있다.  재한 조선족근로자들에게 보내온 한국주재 우리 나라 대사관의 위문메시지를 전달할 때 공연장 구석구석에서 들려오던 감격의 흐느낌소리,  우리 가수들이 열창할 때마다 무대앞으로 달려나와 춤마당을 벌리던 순수하고 소박한 우리 동포근로자들,  스탭의 제지도 무릅쓰고 아예 무대우로 달려올라가 미리 장만해온듯한 돈봉투를 작은 성의로 받아달라며 가수와 밀고 당기던 한 동포근로자,  누가 누구를 위문하는건지 착각이 될 감동의 도가니,  가수들도 울고 근로자들도 울고… “이런 광경은 난생처음 본다”며 공연장의 한국관계자도 눈굽을 찍던 그 장면들을 잊을수 없다.  이역땅에서 모든 서러움과 인고를 말없이 감내하면서 고독하게 로동현장을 주름잡아온 조선족 근로자들에게 이날 위문공연은 돈으로는 도저히 계산이 불가능한 고향의 따뜻한 포용이였다고 그날 재한 조선족근로자들은 입을 모았다. 재한 연변조선족 근로자들은 이역땅 산업현장에서 연변의 재부를 창조하고있는 특수부대이다. 이들이 연변 각급 정부의 배려시야에 들어가야 함은 당연지사인줄 안다. 송년대목마다 이어지는 각급 지도자들의 위문행사케스에 재한 연변조선족 근로자들도 검토돼야 마땅하지 않을가? 연예단체의 국내순회공연과 지방위문공연 코스에 재한 연변조선족 근로자들도 포함시킨다면 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것인가! 연변 여러 보도매체의 경제건설성과보도와 민생보도에 재한 연변조선족 근로자들의 해외산업현장과 생존상황 그리고 이들의 귀국후 창업모습이 더 많이 올랐으면 좋겠다. 연변TV음력설야회를 비롯한 대형종합야외현장 관중석에는 재한 연변조선족 근로자 대표의 좌석도 고려하는게 어떨는지? 주정부 서울주재 대표처는 이 면에서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년간 재한 연변조선족 근로자 단체들이 륙속 설립되여 다양한 행사들이 발족되면서 조선족들의 부응을 얻고있으며 점차 한국조선족사회의 구심점이 되고있어 우리 정부가 재한 연변조선족 근로자와의 련계를 정상화, 체계화 할수 있는 통로로 자리매김하고있다고 알고있다. 뿐만아니라 재한 중국조선족사회의 대변지로 되고있는 보도매체들이 많이 간행되면서 주안의 언론매체들이 재한 연변조선족 근로자 실태를 파악하고 추적보도를 기획함에 있어서 징검다리가 생기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재한 연변조선족 근로자들에게 중국은 조국이고 연변은 고향이다. 그들이 해외에서 늘 조국과 고향의 따뜻한 배려와 정을 마음으로 느낄수 있도록 각급 정부와 관련 단체, 매스컴들이 더 신경을 쓴다면 재한 연변조선족 근로자들의 해외에서의 위상도 더 높아질수 있고 소외된 조선족의 삶의 질도 훨씬 개선될수 있을것이며 연변의 외향성경제발전은 새로운 양상을 보일것이라는게 필자의 소견이다. 오늘도 연길공항 국제선 입구로 새로운 꿈으로 부푼 조선족예비근로자들이 한국행길에 오르고있다. 우리의 정확한 민생관에 힘입어 이들이 한국에서의 어려운 시련을 씩씩하게 이겨내고 활짝 웃으면서 연길행 귀환길에 오르기를 기대해본다.
11    7.23” 참사의 례시가 주는 의미 댓글:  조회:4167  추천:2  2011-08-16
중외를 경악케 한 “7.23” 고속철 특대참사의 원인이 그 륜곽을 드러냈다. 붉은 등이 켜져야 할 구간에서 신호기가 벼락으로 고장이 생겨 푸른 등으로 잘못 켜진것이 고속철의 충돌사고를 불러온 외적요인이라면 사고에서 불거져나온 벼락에 대비한 방지시설의 불능, 충돌을 막기 위한 안전통제시스템의 무력화, 운전사로부터 감시, 통제, 통신, 배치 일군들의 어정쩡한 자세 등 인위적인 문제점들이 사고의 내적요인으로 밝혀졌다. 벼락이라는 천재앞에서 설비품질, 현장통제, 인원자질 이 세개의 방선이 차례로 맥없이 무너진것이다. 결국 이번 참사는 인재(人灾)에서 비롯된것이라는 의혹이 증폭되고있다. 재앙은 예고없이 들이닥치는것 같지만 기실 인간 자신이 심어놓은 재앙의 불씨가 예고된 참사로 이어지는것이 대부분이다. 비행기 터빈의 발명가 팝스·헤인이 제시한 항공령역의 비행안전법칙에 따르면 매 한건의 엄중한 사고내면에는 스물아홉건의 경미한 사고, 삼백여건의 사고징후와 천여건의 표적이 띠지 않는 사고가 잠적해있다고 한다. 이 분석은 비행안전과 사고징후지간의 필연적련계를 확실하게 설명하였으며 모든 사고의 발생은 량의 루적에서 기인되고있음을 강조하고있다. .이번 “7.23” 고속철특대참사는 완전히 제압할수 있는 사고였다. “7.23” 참사와 여러차례 발생한 철도교통사고는 우리가 사고징후와 사고씨앗에 대한 분석과 대처능력이 상당히 문제시되고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있다. 철도뿐이 아니다. 요즘 매스컴을 통해 빈번히 전해지는 여러 류형의 안전사고는 우리에게 너무나 충격적이다. 연변은 이런 위험과 관계없는 “무풍지대”라고 속단할 그 어떤 리유도 없다. “7.23” 고속철참사를 교훈으로 우리도 자신의 안전불감증으로 하여 등한시했거나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고징후와 지금까지는 로출되지 않았지만 어느때 터질지 모르는 잠적사고들에 대한 철저한 원천적 체크와 진단을 실시하는 비상체계에 들어가야 옳은줄 안다. 소 잃기전에 외양간을 잘 손질해서 랑패될게 없다. 대형참사는 늘 우리가 가장 방심했던 부분에서, 아주 미세한 점에서 시작된다는게 지금까지 당하면서 우리가 느낀 도리가 아니던가? 부질없는 걱정인지는 몰라도 걱정도감이 많아서 해로울게 없다는게 내 생각이다. 안전사고의 방선을 구축하는것은 시민모두의 몫이기도 하기때문이다. 매일같이 거쳐지나다니고 또 가장 많이 리용하고 목격하면서 늘 가슴 한구석이 찜찜했던 시민교통안전 관련 건들이다. 개인과 소집단의 경제리익을 챙기고저 려객들이 콩나물처럼 꽉 박아선 상황에서도 계속 려객을 탑승시키고 아찔한 무단질주를 해대는 초답재소형뻐스들, 차 전체를 통째로 광고도배를 어지럽게 하고 차안이나 차외곽 어느 한곳 성한데가 없는 불결한 이 소형뻐스는 총알같이 골목에서 튀여나오는가 하면 차량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묘기》를 부리며 차안의 승객이나 보행자들의 공포의 대상으로 되고있다. 도시미용으로 보나 려객안전으로 보아 대책이 시급하다. 길림성 동부중심도시 부각 또는 국가급위생모범도시쟁취차원에서 미관이 좋은 대형공공뻐스들을 대폭 늘이고 대신 소형뻐스들은 인제 박물관에 들어가야 마땅한줄 안다. 도로횡단에서 인간의 생명안전은 신호등에 달렸다. “7.23”참사도 잘못 켜진 신호등으로 빚어진것이 아니였던가! 하남늪로타리, 국제무역청사 교차로, 연변병원 교차로 등 시안의 많은 교차로를 행인이 횡단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대략 20초 좌우, 심지어 10여초안에 쏜살같이 달려 건너야 하는 교차로도 있다. 횡단도로 량켠에 대기하고있는 기동차들은 신호등불의 교체만 기다리면서 우르렁거리며 당장 내달릴 기세다. 행인들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교차로를 건너야 하며 걸음이 늦거나 늙은이들 같은 경우에는 아예 건너갈 시도도 하지 말아야 한다. 붉은 등을 무시하고 횡단하는 행인들을 무조건 질타할 일만은 아닌것 같다. “차량본위”가 “인간본위”로의 실질적교체가 되지 않는 한 시안의 교차로는 행인들에게 “위험지대”일수밖에 없다. 신호등불교체가 보다 인성화되여 “인간본위”리념에 무게를 실어줬으면 좋겠다. 교차로 신호등불교체시간조절에서 “인간본위”를 출발점으로 하는 동시에 신호등설치가 불가능한 도로구간, 례하면 서시장 서쪽출구와 공원다리구간, 연길백화점과 명주쇼핑쎈터 등 시민과 차량의 마찰이 심각한 구간들에 륙교를 설치하여 보행자와 기동차량을 원천적으로 격리시킴은 어떨는지? 자치주 수부도시로서 륙교가 몇개쯤은 있는것이 격으로 보나 실제상황으로 보나 옳은것 같다. “후공업화시대에 인류는 하나의 ‘위험사회’로 진입하게 되는데 이러한 위험이 많이는 인류 자신에게서 온다”고 독일사회학가 베크가 지적한바 있다. “7.23”특대참사에서 교훈을 섭취하여 연룡도일체화행정에서 부딪치게 될 여러가지 위험요소와 사고징후를 충분히 각오하면서 우리가 만들어낸 위험요소를 제때에 발견하고 통제하는 총명과 슬기를 거듭하는 과정에 우리는 성숙되여갈것이고 우리 사회도 안전한 세상, 편안한 세상, 조화로운 세상으로 성큼 다가설것이라 확신한다.
10    남경 “오동나무사건”(채영춘) 댓글:  조회:4136  추천:63  2011-05-06
남경 “오동나무사건”                                                                        채영춘(연변일보 특약론평원) 얼마전 남경의 “오동나무가 지하철시공공사에 밀리우는”  이슈가 물망에 오르면서 시민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남경시지하철시공방안에 의해 60년 수령(树龄)을 자랑하는 인도의 오동나무 200여그루가 파옮겨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파옮긴 오동나무의 생존률이 남경시민들의 우려를 자아내 결국 “남경오동나무를 살리고 록색장성을 구축하자”는 시민캠페인이 발족하기에 이른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일떠나 옮겨질 위기를 맞게 된 운명의 200여그루 오동나무에 록색테프를 매놓고 오동나무를 결사보호하려는 굳은 의지를 내비친다. “오동나무는 남경의 명함장이다. 왜 오동나무가 지하철시공공사에 양보해야 하느냐?”,  “남경시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 시민들의 반발은 인터넷을 통해 널리 확산되면서 드디여 남경시정부의 적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남경시정부 시장이 나서서 오동나무의 이전을 일단 스톱시키고 충분한 조사와 심의토론을 거쳐 시공방안을 재검토, 최적화하여 파옮겨가는 오동나무의 그루수를 최대한 줄이기로 시민사회에 약속한다. 뒤이어 남경시 지하철공사지휘부는 설계규제를 깨고 지하철역홈넓이의 축소, 출입구수의 삭감 등 실제적인 개선반안을 제시하여 지하철시공이 오동나무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로 합의한다. 남경시 “오동나무사건”은 도시건설에서 보여준 남경시민들의 성숙된 참여의식과 남경시정부의 투명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오동나무와 지하철은 모두 공공리익과 관련되는 대사이다. 두가지 대사가 모순되여 대립과 악화양상을 보였을 때  남경시정부는 시민들의 정서와 의견을 리해하고 수렴하는 열린 자세에 시공방안의 재검토, 재수정, 재창출을 복합시켜 오동나무를 보호하려는 시민들의 마음도 헤아리고 도시현대화도 차질없이 추진시키는 인민정부의 명지한 결책능력과 신뢰감을 보여주었다. 도시화건설에서 주축은 시민이다. 공공리익과 관계되는 정부의 모든 시책은 결과적으로 시민사회에서 검증받기마련이다. 특히 시민들 마음의 고향으로 깊이 각인돼있는 도시의 중대한 상징물의 운명, 도시개발프로젝트의 제정과 실시에서 시민원소를 어느 정도로 수용하느냐가 문제시되고있음을 남경 “오동나무사건”이 확실하게 시사하고있다. 공업화의 산물인 서울 여의도광장의 철거와 록음방초 우거진 여의도공원의 부상, 근대화의 상징인 청계고가도로 철거와 시민들 추억의 산실인 청계천의 복원은 역시 서울시민사회의 력동적인 힘이 저력으로 작용했다고 알고있다. 도시개발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는 세기적공정으로서 력사의 시련을 거치게 된다. 시민들의 정서와 지향이 잘 구현된 대상물들은 두고두고 찬송을 받으며 가령 철거됐어도 꼭 다시 복원되면서 력사에 길이길이 남을것이고 그렇지 못한 대상물들은 두고두고 비난과 외면을 받다가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마련이다.  국내외 많은 사례가 이 점을 증명하고있다. 때문에 정부와 시민사회의 돈독한 뉴대관계의 실질적인 형성으로 도시개발, 도시건설에서 건의와 수렴, 설명과 리해, 감독과 보완이 잘 병행되고 맞물리게 하여 도시화라는 이 초대형 “예술작품”이 멋지게 구상되고 현실화되게 함으로써 우리 후대들에게 값진 도시유산을 넘겨줘야 한다. 남경 “오동나무사건”에서 받은 계시이다. 따라서 연룡도일체화, 길림성동부중심도시부각이라는 세기적숙망이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동조와 지지하에 새로운 전환을 맞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9    [론문] 미적 감각의 형상화에서 본 장홍을의 예술적 추구 댓글:  조회:4880  추천:55  2009-11-16
-《장홍을 화집》의 산수화를 중심으로       생을 마감하기 1년전 장홍을화백은 불치의 병에 시달리면서 170여쪽의 대형화집을 펼쳐내는데 성공하였다. 이 금싸락 같은 작품집에 의해서 우리는 저명한 조선족화가의 진지한 창작대오와 탁월한 미적 감수성, 그리고 그 미적감각을 형상화함에 있어서의 독창적인 표현수법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할수 있게 되였다.     화백의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평생 중국화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사람들이 접수할수 있도록 하려고》(장홍을:《장홍을 화집》)애써 온 화백의 예술적 추구를 피부로 느낄수 있다.     미술은 시각적 조형언어이다. 미술작품이란 화가가 속한 시대나 사회를 살아가면서 느끼고 생각한것들을 표현하는 화가의 발언이라는 시각에서 우리는 화가 자신만의 조형어법을 통해 형상화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할것이라 생각한다. 《중국화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접수할수 있도록》한 장홍을화백의 시각적 조형언어의 특징은 무엇일가? 필자는 《장홍을 화집》에 수록된 산수화 작품을 중심으로 화백의 예술적 추구에 대해 귀납해보고저 한다.     자연의 기(気)와 정신의 기(気)의 혼연일치----그의 작품에서는 호흡하는 자연의 기운이 느껴진다.         자연에 대한 화가의 감수성과 태도 여하에 따라 화가의 그림은 자연과 동떨어진 아름다움만 간직한 평면의 작품으로 될수 있고 또는 살아숨쉬며 충격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내뿜는 조형세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미술작품의 형식은 그 자체로 정당화되는것이 아니라 화가의 정신적인 면을 바탕으로 하여야 하며 이같은 정신적인 것은 작품을 리해하고자하는 관객에게 공감을 줄수 있어야 한다.     독일의 철학가 셸링은, 자연은 그저 모방의 대상일 뿐이라는 당대의 예술론을 비판하면서 예술의 고유성은 모방이 아닌 창조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예술작품은 형태를 넘어서있고 그것은 본질이요 보편자이며 내재하는 자연정신을 보는것이자 그 표현인것이다》     장홍을화백이 우리들 앞에 펼쳐보인 선천의 모습은 우리가 일찍 가까이에서 접하여 익숙했으면서도 등한히 지나쳤던 정경들이다. 이같은 모습을 담은 작품들에는 자연에 대한 그 어떤 과장적인 수식이나 아름다움에만 집착한 다채로운 구도의 설정, 현란한 색상의 사용이 절제되여 있다.     백두산 고원의 미연한 언덕들, 잔설(残雪)로 메워진 백두계곡들, 관목이 우거진 사이로 뻗어나간 외로운 산길,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두만강 어느 구간의 풍경, 심산벽곡의 시내물우에 조용히 놓여있는 외나무다리.      장홍을화백의 작품들은 우리 앞에 정지된 절승경개의 아름다움의 모방이 아니라 우리들이 걷고 숨을 쉬고 어울리는 생명의 공간으로 펼쳐져 있는것이다. 그가 묘사한 자연의 모습들은 혹은 박력있게 혹은 차분히 우리에게 다가온다. 작품의 구도에 집착하지 않고 자연의 어느 일각을 잡히는대로 클로즈업해낸것같은 그의 산수화들은 우리의 시선을 압도하며 숨막히게 다가오는가하면 길게 뻗은 유연하고 리듬있는 터치로 하여 가슴 후련하게 숨이 터쳐나오기도 한다.     대자연에 순응하고 복종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에 따라 가지 않고 자연으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이나 기운에 충실하고저하는 화백의 지적 노력은 장엄하고 다채롭고 아름다운 산천을 그린다기보다 산행을 통해 호흡하는 자연의 기운을, 또 여기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이나 힘을 담고저 애쓴 흔적을 그의 매폭의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수 있다.     두만강 해동(解凍)을 원천으로 탈바꿈시킨《해빙(解冰)》작품을 보면 봄기운을 먹은 성에장이 맥없이 꺼져내려앉는 소리가 귀맛 좋게 들리는것 같고 겨울을 밀어내며 풍기는 비릿한 강물냄새에 코가 벌름거려지는것 같다.     백두산 남쪽비탈에서 스케치하여 작품화시킨 늦가을의 정취가 다분한 《입산(入山)》작품을 보노라니 그 아름드리락락장송에 잠시 기대여 앉아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다리쉼을 하고 싶다. 그리고 소 몰고 입산하는 그 농부와 한담을 나누며 저 산언덕너머로 뻗어나간 오솔길을 따라 산속으로 함께 들어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장홍을화백의 산수화는 《대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회화적인 그 자신의 리상에 따라 재해석되고 있다.》(신항섭:《장홍을화집》서언) 그는 그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어법으로 자연을 묘사하고 있다. 그가 구사하는 조형수법은 동양의 전통적인 산수화기법과 서양의 사실주의 기법을 혼합한 형태 즉, 그 자신의 비유한대로 《햄버거》와 《된장찌개》의 맛이 두루 섞여진 복합물로서 전통적인 수묵산수화의 몰골기법(没骨技法)및 우륵기법(釣勤技法)과는 어느 정도의 구별을 보이고있다. 작품전반에서는 오히려 서구회화표현방식이 더 두드러진 느낌이다. 《하지만 수묵담채라는 전래의 재료가 가지고있는 특성은 고유의 회화양식으로서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서구의 자연주의 양식처럼 자연을  아주 구체적으로 미화하는 가운데 그세부가 여실히 들여다보이는듯한 투명성을 실현하고 있다.》     장홍을화백은 동양화는 기(気)를 론하되 빛을 론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면서 매 한폭의 산수화 작품을 자연의광기(光気), 습기(湿気), 공기(空気), 색기(色気)와 정신의 신기(神気), 력기(力気)와의 혼연일치속에서 완성하려는 시도를 게을르지 않았다.     우리가 늘 접촉하면서도 생소하게 느껴졌던 자연의 힘과 기운을 장홍을의 작품으로 새롭게 접할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형(形)과 신(神)의 겸비함----그는 자연의 내적인 힘을 형상화하기 위한 조형언어표출의 돌파구를 찾고저 고심하였다.     모든 미(美)의 외적 측면 또는 토대는 형태의 (美)이다. 그러나 본질 없는 형태란 존재할수 없으므로 설령 형태만 있다하더라도, 볼수 있거나 지각할수 있는 경우에만 특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화가가 묘사한 그 어떤 사물의 외적 형태미는 기실 화가 자신의 지적인 리해의 결과라고 할수 있다. 화가의 미적 감수성과 지적 리해력에 의해 대자연이 가지고 있는 깊고 깊은 정서가 감지감득되고 리성적인 조형언어의 표출이 가능한것이다.     장홍을의 경우 물론 그는 사실주의 미학에 충실하면서 대자연속에서 스케치해낸 소재를 기본바탕으로 형태미에 대해 묘사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눈에 보이는 표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남다른 미적 감수성은 자연속에서 생활체험을 하며 창작소재를 장악할때 이미 남이 포착하지 못한 대자연의 장엄한 내적 이미지, 형태미의 내면에 잠적해있는 깊은 뿌리를 한꺼번에 취사선택할수 있게 하였다.     그의 그림은 거대하다. 대부분 작품들은 평면공간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화가의 필묵이 골고루 침투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도 솟아날길 없는 거대한 산 속에 갇힌것 같은 환각을 주기도 한다.《백두고원》, 《산길》, 《무언지대》등 백두산 제재의 산수화작품들은 아예 우리들로 하여금 자연앞에서 완전히 압도되는듯한 느낌으로 하여 시야를 어디에다 맞출지 갈팡질팡하게 한다. 살펴보면 결코 단순히 작품구도면에서의 시도에서 이루어진것만은 아님을 느낄수 있다. 그것은 화백이 자기 창작에서 자연의 내적인 신(神)을 찾아내 구체화하는 조형언어표출의 돌파구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40)     무릇 모든 그림은 일반인들이 스쳐버리고 지나쳐버리는 것들에 대해 새로운 주목을 낳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접하는 자연이나 일상사 속의 하나로 지나쳐버리는 것들이 화가의 눈과 붓 아래서 새로운 생명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백두산, 금강산, 한나산, 설악산 등 명산들을 화폭으로 옮긴 것을 적잖게 보아왔다. 이런 명산실경의 형태미에 대해 우리는 익숙할수 있다. 그런데도 장홍을이 제시한 명산들의 이미지는 우리의 일상적인 시각으로는 도저히 함축적으로 요약, 취사, 선택,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때문인가? 《실제로 그의 작업에서 사실적인 묘사력은 인체의 신경세포처럼 아주 섬세한 감각을 지닌다. 오히려 사진보다도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이미지의 선명성이라는 면에서 보더라도 사진보다 앞선다. 남북의 명산을 답사하면서 카메라의 시각이 아닌, 그 자신의 신체적인 감각 및 미적 감수성을 총동원하여 대자연이 가지고있는 그 정서를 감지감득한 결과이다.》(신항섭:《장홍을화짐.서문》)     때문에 장홍을의 산수화에서는 평소 자연의 명산실경보다는 자연에 대한 느낌과 자연에서 올라오는 기(気)를 형상화하기 위한 순발력 있는 붓의 터치들이 눈에 띄이고 있다. 자연과의 즉각적인 교감과 순간적인 스케치에 의존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명산의 구석구석에서 배어 나는 내적기운과 사색적 느낌들을 형태미로 담아내고 있다. 자연을 형(形)과 신(神)이 결집된 하나의 사색의 공간으로 생각하고 자연이 우리의 눈을 위해서만 존재하기보다는 우리의 말과 생각의 실토인 듯이 나타내고 있는것이다.     장홍을화백은 매 한폭의 산수화에서 형(形)의 근사함에 신(神)의 근사함을 내포시키고 형과 신의 겸비함을 재현시키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자연의 신비로운 메아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대자연에 대한 미적 감수성과 인간 삶의 리얼리티에 대한 철학적사고의 결합----그의 조형언어에는 자연과 인간관계의 순수성과 숭고함이 내재되여 있다.     자연은 화가들 앞에 놓여진 영원한 숙제라고 할수 있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빌헬름 보링거는, 인간은 자연을 인간과 대립된것으로 생각할수도 있고 인간자신이 자연의 일부인것으로 생각할수도 있다고 강조하면서 전자의 경우에는 자연을 극복과 정복의 대상으로 삼아 변화하는 자연을 고정된 모습으로 나타내고자 하고 인간나름의 방식으로 소유하고자 하며 후자의 경우에는 자연과의 친화감(親和感)과 공감을 바탕으로 그것에 순응하고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저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장홍을의 작품들은 자연에 대한 화가 나름의 해석보다는 자연과의 공감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산수화에서는 인간의 력사 따위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보인다.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기확인을 거듭할 따름이다. 그의 산수화에서는 인간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대자연의 위대성이 느껴진다.》 (신항섭:《장홍을화집》서문)     장홍을 산수화작품의 일부에서는 인간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대자연의 위대성과 장중함을 안받침해주는 존재로 부각된다.     화백은 위에서 아래를 굽어살펴보는 부감법(俯瞰法)으로 자연전체를 넓게 조망하고 광대하고 장엄한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다. 화폭에 담겨지지 않을듯 거대한 산중턱에 보일락 말락하게 난 산길을 따라 소를 끌고가는 농부의 미세한 움직임, 해동하는 두만강의 거창한 물결을 타고 저멀리 강언덕길을 따라 아득하게 보이는 소달구지와 농부, 강가에 가로놓인 나무다리를 건너 깊은 산속으로 막 사라지는 모녀의 희미한 뒤모습들…     이런 인간등장의 작품들은 우리로 하여금 평온함과 조화롬이라는 자연으로부터의 교훈을 느끼게 하고 있다. 화백은 이것을 자연의 거대한 포용력 또는 자연 앞에서 왜소해 질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 바로 이같은 자연과 인간관계에 대한 상징적 의미의 함축으로 해석하려 한다.     장홍을 화백은 자기의 그림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허물수 없는 대자연의 숭고함을 내재시키고있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순연한 삶의 양태가 얼마나 아름다운것인지 일꺠워줄 정도이다.》(신항섭:《장홍을화집》서문)     장홍을은 화가이기에 앞서 민족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는 지성이다. 본인이 자술한것처럼 《졸업후 고향에 대한 애착이 하도 깊어 큰 도시에서 취직할수 있는 기회를 전부 사절하고》 고향행을 결심하게 되였으며 조선족 그리고 조선족을 위한 그림그리기에 열중해왔다.     중국조선족의 삶은 어떻게 보면 대자연에 순응하고 복종하며 자연과의 조화와 융합을 이루는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을 승화시킨삶이라고도 볼수 있다.     장홍을의 작품에는 우리 조선족의 삶의 리얼리티가 담겨있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지나쳐 버린 익숙한 것들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보여줌으로써 우리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중국조선족의 백년이주사는 피와 땀으로 얼룩진 개척의 력사라고도 할수 있다. 장홍을의 작품에서는 길을 그린 그림들이 《목젖을 메우는 듯한 슬픔같은 어떤 감동을》불러일으키며 특이하게 안겨온다. 그가 그린 길들은 모두가 첩첩심산속의 외로운 오솔길아니면 황야에 어렴풋이 난 달구지길이며 폭설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령길이다. 그 길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선족의 력사상의 그 험난함과 어려움을 상징하는 듯하다. 곧게 뻗은 길이기보다는 구불구불하고 굴곡이 지어져 많은 사연이 담긴 길처럼 묘사되어 있고 그 길의 주인공들이 소박한 형색의 농부가 아니면 소달구지 등이란 것이 더욱더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장홍을 화백의 거폭의 산수화에 왜소하게 자주 등장한 조선족농부와 황소, 그리고 물동이를 이고 가는 녀인, 산향길을 따라 굴러가는 소달구지, 두만강 격류속에 알릴듯말듯보이는 떼목… 이러한 장면은 꿋꿋하게 자기의 전통적 생활양식과 문화를 영위해나가는 중국조선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장중한 대자연의 위용과 일체화시킴으로서 자연과 인간관계의 순수성과 숭고성을 유연하게 전개시키고 있는것이다.     요약하여 말하면 장홍을화백은 자연에 대한 뛰어난 미적 감수성의 형상화 실천을 통해 《중국화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사람들이 접수할수 있게 노력》하는것을 평생의 예술적 추구로 삼고 정열적으로 창작하여 우리 조선족화단은 물론 중국미술사에 중요한 한획을 그었다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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