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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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원림록화승격공사, 가장 현명한 결책 댓글:  조회:927  추천:0  2022-06-30
요즘 자치주창립 70돐을 맞는 수부 도시 연길의 표정은 더없 이 밝다. 고희의 연변을 더 품위 있고 매력 넘치는 고장으로 업 그레이드시키기 위한 헌례대상공사들이 곳곳에서 기지개를 켜며 축제 초읽기 분위기를 달구고있다.   도시스마트교통의 정착을 념두에 둔 쾌속뻐스(BRT)전용선, 차량의 증가로 몸살을 앓고있는 교통체증을 해소시킬 네곳의 대형지능주차장, “축구고향”의 품위를 격상시킬 아리랑 축구공원 과 연길체육공원, 오랫동안 공백으로 돼있던 시민예술공간을 빛 낼 문화예술궁전(중심), 생태도시로의 부상에 활력을 보탤 부르 하통하도시구간 경관전망대, 쉰여섯동의 아파트건물이 망라된 정품경관거리들이 속속 형체를 드러내면서 수부 도시의 큰 변화 를 예고하고있다.   그런데 필자의 관심사는 다른데 있다. 바로 “원림록화승격” 이다. 웅장하게 일떠서는 콩크리트 건축구조물에 반해 수려하 게 펼쳐지는 원림록화승격공사의 가동은 도시전반에 랑만과 젊 음이 약동하는 원기를 불어넣고있다. 연길시는 거리록화, 공원 경관개조, 주요건축물 주변록화를 위주로 도시구역 전반에서 원 림록화공사를 본격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전 주 도시원림록화 승격공사에 8251만원이 투입 되였다고하니 1억원 고지를 넘기는 것은 시간문제인듯 싶다. 필 자는 이번 자치주 70주년을 계기로 도시원림록화승격을 의사 일정에 놓은 것은 가장 현명한 결책으로 남으리라 믿는다.   원림록화승격공사를 가동시킨 정부의 결책에는 지난 동안 우 리 자신의 그릇된 생태환경의식에 대한 자아성찰의 의미가 담겨 져있으며 우리 고향의 멋진 생태를 복원시킨다는 비장한 각오가 번뜩이고 있다고 생각되여 굉장히 흐뭇한 마음이다.   연길은 지난 세기 50~60년대만 해도 가난의 때를 벗지 못한 궁상이였지만 그 대신 시가지를 관통해 흐르는 부르하통하, 연집강과 더불어 버드나무를 비롯한 수목들이 우거져 좋은 생태골격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느티나무들이 울창한 도심의 서광장, 수양버들 숲과 조화를 이룬 연길늪(청년호), 그리고 그 옆 로타리에 조성된 아담한 원림, 록음방초 우거지고 별의별 희귀동물들이 집합한 연길공원으로 하여 필자의 소시적 연길 인상이 사람과 동물, 자연이 조화공존을 이룬 매혹적인 친환경 도회지였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지사인지도 모르겠다. 자그마한 시가지 안에 이같은 환상적인 록색자연공간이 비치돼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를 어렸을 때는 미처 몰랐다.   30여년전 필자는 자치주당정대표단 성원으로 서북의 어느 사 막지대에 위치한 자매자치주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서북을 다녀온 후 사막화로 황폐한 서북의 모습이 련 며칠간 눈앞에서 어른거리며 연변같은 매력적인 고장은 세상에 없다고 여겨왔 었다. 그런데 얼마전 생태문명과 관련된 자료를 뒤지다가 우연 히 30여년전 다녀왔던 서북의 자치주에서 사막화 피해가 가장 심각했던 어느 현이 몇십년의 피타는 분투를 거쳐 록화피복률을 40%로 끌어올려 “가는 곳마다 풍경이 있는”목표를 달성했다는 정보를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록화피복률 40%라면 연길 시와 동등한 수준이 아닌가? 그것도 사막과 린접한 서부 불모 지대의 현에서 말이다. 솔직히 연길시의 40%록화피복률과는 근 본 차원이 다르다. 연길시의 40%록화피복률에서 실제로 주민 거주지역의 록색공간이 어떠한가는 다 아는 사실이다.   꼭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지난 30여년, 서북사람 들이 사막화에 로출된 불모의 땅에서 렬악한 자연환경에 도전 하여 사막을 록주로 변화시키는 감동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을 때, 남들은 지난 공업화시대에 생매장됐던 하천을 재생, 복원 하는 친환경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때 우리는  연길 생태계를 대변하는 아름다운 연길늪과 그 옆의 로타리원림을 거리낌없이 메꿔버리는 돈끼호떼식 “용맹”을 발휘한 것이다. 따라서 시정부와 복무대루가 철거하면서 복원될 가능성이 열렸 던 도심의 “서광장” 옛터도 그냥 상품경제의 “희생물”로 추락되 고 말았다.   자연은 인간을 떠나서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으나 인간은 자 연을 떠나서 생존불가능하다. 생태문명은 두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자연그대로의 원초적인 생태이고 다른 하나는 인 간이 생태계에 미친 인문적 영향이다. 이 두가지 요소의 원할한 복합에 의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생”이 이루어진다.   자연의 순리에 좇아 인간과 자연의 평형조화관계를 지켜나 가고 있는 진지한 삶의 자세를 필자는 20년전 독일견학시에 눈으로 확인한바 있다. 도시안에 삼림이 우거지고 삼림이 도시 를 둘러싸고 있다. 도로중심에 원림이 가꿔져 있고 시민들의 거 주지와 화원, 잔디는 마음 편하게 조화되여 있다. 독일의 곳곳 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런 경관들은 대자연과 하나로 융합되 고 조화되려는 독일인들의 끈질긴 추구가 잘 구현되여 있었다.   필자가 강습을 받을 때 투숙했던 도 베 를린 도심의 삼림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쎈터정원의 나무숲은 어찌나 무성한지 하늘이 보이지 안을 지경이였고 그윽하고 고요한 수림속 오솔길에서는 다람쥐들이 먹이를 찾아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원시림속에 밀페되여 있는 맑고 푸른 호수는 사 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도심속의 수림이라고 볼 수 없 었다. 이같은 원시림이 베를린 시안에만도 네곳이나 있다고 하였다.   필자는 연변도 인간과 자연의 평형조화관계를 지켜나갈  생태 환경조건이 보완되여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연변인들의 생태 보호의식과 자연과의 공생의식이 미진한데 있다. 원래 있던 도심의 아름다운 늪마저 굴토기로 메꿔버리는 의식으로는 아무 리 좋은 생태환경도 살려나가기 힘들것이다.   최근에 산악인들과 더불어 연길시 주변의 산들을 답사하면서 필자는 침엽수와 활엽수들로 울창한 삼림속에서 산새들의 귀맛 좋은 지저귐을 들으며 이런 삼림 몇곳을 그대로 연길시안의 동 서남북에 이전시키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엉뚱한 궁리를 해본 적이 여러번 있었다. 천진한 생각일가?   나무는 자연계에서 가장 위대한 생태치유능력을 갖고있다. 그 런 의미에서 도시의 원림록화를 극대화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지 향적인 현명한 결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시절 우리의 무모한 개발로 병들고 멍들게 한 산과 들, 도시와 농촌을 원림록화라는 생태치유법으로 원상복귀시키는 것 도 중요하지만 워낙 취약한 도시의 금싸락같은 록색공간을 함부 로 훼손하는 행위는 온 사회의 질책을 받아야 마땅하다. 도시 란개발이 도시외곽의 삼림지대까지 미치게 할것이 아니라 반대 로 남산과 북산의 삼림지대가 파죽지세로 연길시가지를 공략해 들어오도록하여 연길도 “도시안에 삼림이 우거지고 삼림이 도시 를 둘러 싼” 생태도시로의 격상이 가능한 전략적 구상을 출범시 켜야 한다.이번 원림록화승격공사가 그 리허설로 됐으면 좋겠다.     자치주 70돐을 계기로 펼쳐내는 “원림록화승격공사”, 고향 건설에 생기와 활력을 주입시키는 혈맥으로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변일보 2022-06-28  
109    고희 연변의 ‘형태’와 ‘신태’ 댓글:  조회:866  추천:0  2022-06-24
고향 연변이 고희(古稀)를 맞는다. 주덕해 초대 주장이 연길 3만명 군중집회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을 선언한 지 어언 70년이 돼간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니 강산이 일곱번 변한 세월이라 하겠다. 그 오랜 세월 연변은 상전벽해의 큰 변화를 거듭하면서 신주대지에 멋진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한 지역사회의 변화는 대체로 도시형태의 륜곽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고희의 연변을 두고 요즘 수부도시 연길의 ‘형태(形态)’와 ‘신태(神态)’의 력학관계를 자주 떠올려본다. ‘형태’는 자연 그대로의 경관과 인간의 사유로 기획된 건축 구조물의 복합체이고 ‘신태’는 도시가 담고 있는 인간의 정신문화적 넋 으로 리해할 수 있겠다. 연길 도시‘형태’와 문화‘신태’의 내외조화, 도시활력과 문화매력의 강유일체(刚柔一体)는 연길 나아가서 연변의 품위를 판단하는 척도로 된다고 생각한다. 빅토르 유고는 “시간은 건축사이고 인간은 건조자(建造者)이다.”라고 말한다. 연길의 도시발전력사는 이 말을 적중하게 안받침해준다. 동북아복지에 위치해있는 연변은 우월한 지정학적 지리우세에 기대여 70년의 년륜을 새기며 초라하던 수부도시를 ‘형태’와 ‘신태’가 조화를 이루는 조선족집거지구 다문화도시로의 발전과정을 소화해나가고 있다. 자치주와 거의 동갑인 필자는 자치주 창립 초창기 연길시에 하나둘 생겨난 ‘빌딩급’ 건물들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부르하통하의 북쪽 터전에 들어선 자치주당위, 정부초대소와 연변빈관, 연변병원, 연길백화상점 청사와 연변로동자문화궁, 연변교육출판사, 연변사범학교, 연변1중, 연변의학원과 연변위생학교, 연변대학 본관 청사들이 수부도시 연길에 정착하여 자치주 창립 초창기를  연 제1라인의 ‘터주대감’ 빌딩들이였다.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의 많지 않은 자치주 초창기 경전급 건물들을 일별해보면 우리 조상들이 우선시하여 세운 빌딩 거의 다수가 민족교육과 관련된 것임에 가슴이 찡해온다. 조선족 중소학교 교과서와 도서 출판을 감당한 연변교육출판사 건물, 고등교육과 중등전문교육 및 중학교교육을 전담한 연변대학, 연변의학원, 연변사범학교, 연변위생학교, 연변1중 청사들… 50년대 연길은 가난의 때를 벗지 못한 궁상이였지만 그 대신 이 같은 교육문화 전담 건물들이 수부도시의 존엄을 지켜주었다고 생각한다. 초창기 경전급 건물중 일부는 철거되고 일부는 성격이 바뀌였지만 그 당시 연변수부도시의 ‘형태’에는 언녕 우리 지역사회의 매력적인 문화교육풍토의 ‘신태’가 꿈틀거렸음을 직감할 수 있다. 초창기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선대들의 올곧고 집요한 교육문화리념에 머리가 숙여진다. 민족교육과 민족문화는 연변 70년을 굳건히 지켜준 버팀목이였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연변의 자존심은 교육과 문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민족교육과 민족문화의 넋이 빠져버렸을 때 연변을 더는 연변조선족자치주라고 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소견 이다. 때문에 연변의 지명도는 교육문화에 의해 얻어진 것이라 해서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 줄 안다. 자치주 초창기를 장식했던 경전급 교육문화빌딩들은 연변 교육문화 초창기의 찬란한 려명의 소산이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해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교육문화의 귀틀은 자치주 창립과 더불어 형성되면서  그 후의 줄기찬 발전을 예고한 것이다. 지난 80년대 초반 서북의 어느 한 민족자치주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곳 기관의 간부와 담소를 나누다가 화제가 민족교육으로 넘어가면서 필자가 연변은 6개 대학(통합전)과 많은 중등전문학교를 보유하고 있다고 무심히 말했더니 그 간부가 눈을 화등잔처럼 뜨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기들은 중등사범학교 한개가 있는 것을 그냥 자랑스럽게 여겨왔다면서 부러움과 동시에 감탄사를 련발하는 것이였다. 70년이 지난 오늘 연변은 탈태환골의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자치주 초창기 선대들에 의해 뿌리를 내린 경전급 건물들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는 퇴색하지 않고 후대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오늘날 연변대학 초창기 본관청사를 중심으로 드넓게 펼쳐진 통합된 대학원 현대화 교수청사 건물단지가 매력을 뽐낸다. 시 안의 곳곳에서 가장 우아한 건축물이 중소학교청사들이다. 신축된 소년궁은 말 그대로 최상의 ‘궁전’이다. 누가 봐도 교육을 숭상하는 고장의 멋진 풍경선이 아닐 수 없다. 한 도시의 특성이 도시‘형태’와  문화‘신태’에 힘입은 자연스러운 신장으로 이뤄진다고 할 때 연변이 기획하여 펼쳐내는 매 하나의 세기적 공정은 연변의 기질과 정신을 함유하고 탑재한 캐리어로 돼야 한다. 자치주 70돐을 맞으며 벌리는 수많은 대형 공사 가운데 아리랑축구공원과 연길공원 축구광장이 들어있다. 정부가 작심하고 손을 댄 세기적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축구고향’의 미칭에 걸맞는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축구장이라는 ‘형태’에만 집착하지 말고 축구문화의 ‘신태’에 더 신경을 넣었으면 하고 제언하고 싶다. 뽈차기의 대중적 운동을 보편화시킴과 동시에 연변 100여년 축구력사의 우량한 DNA를 전승하기 위한 담체로 연변축구박물관 같은 공간을 아리랑축구공원과 가지런히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 운동이 아니라 연변 ‘축구고향’의 문화로 자리매김하도록 견인하는 기획물의 창출이 요청된다. 고희의 연변, 이제 수부도시 연길은 70년의 건설을 거쳐 도시‘형태’와 문화‘신태’가 두루 조화를 이루는 현대도시로의 ‘입성’을 서두르고있다. 그런데 하나의 유감이 있다. 수차 지적했지만 자치주 수부도시의 도심을 상징하는 핵(核)이 ‘결장’한 문제점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도심이 부재한 도시, 도심은 있는데 핵이 증발된 도시는 넋이 없는 도시와 다를 바 없다. 연변은 길림성 동부의 중심도시,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도시 체통에 걸맞는 연길도심의 ‘대광장’을 기획 출범시켜야 한다. 필자가 6년 전 발표한 의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조선족과 타민족이 피와 땀으로 개척한 100여년의 비장한 력사를 하나의 조각예술품으로 전형화하여 연변사람의 넋, 중국조선족의 ‘핵’이 대대손손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지도록 광장 복판에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여기에 연변개척력사전시관, 조선족민속관, 조선족생활관, 민족단결전시관 같은 문화공간이 속속 안주하면서 우리 문화민족의 자존심을 살리고 연변을 만방에 알리는 문화캐리어 공간이 생겨야 한다.” 21세기에 걸맞는 연변원소의 재정립, 연변정신의 재창출, 다문화 지역사회의 개방성, 다양성, 포용성과 창조성을 간직한 연변 ‘신태’의 부각은 우리 모두의 시대적 책임으로 나서고 있다. 한 지역사회와 도시의 ‘형태’와 ‘신태’는 그 지역과 도시를 이끌어가는 시민형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연변은 한권의 경전책으로 돼야 한다. 100여년 력사가 농축된 한권의 력사전적(典籍)이여야 한다. 연변은 한폭의 대형 전경화로 돼야 한다. 조선족이 타민족과 함께 이루어낸 70년 력사의 장엄한 화폭으로 돼야 한다. 고향 70년, 그 격동의 세월 중심에는 나라의 민족정책이라는 신성불가침한 정신적 기둥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정신적 기둥에 기대여 고향변화를 진두에서 이끌어낸 주덕해를 비롯한 자치주 력대 공신들 충혼의 각고가 빛나고 있다. 이들의 업적은 한마디로 나라의 민족정책을 에누리없이 받들어 자치주를 조선족의 구심점으로, 조선족의 교육문화메카로, 국제사회가 중화민족 공동체하의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전면적으로 료해할 수 있는 ‘활화석’으로 부각시킨 데 있다고 생각한다. 고희의 연변, ‘무병장수’의 어머니 고향이 강건한 굴기로 더 매력적인 래일을 열어가리라 확신한다. 연변일보 2022-06-15
108    [칼럼] ‘온라인 회식쇼’의 의미 (채영춘) 댓글:  조회:822  추천:0  2022-04-22
계정에서 보기 “오랜만에 함께 저녁식사라도 합시다!” “아니? 코로나 땜에 집마당도 못 나가는 시국에 회식이라니?” “꼭 같이 앉아야 회식입니까? 위챗을 통한 영상모임도 있잖아요?” 코로나가 반등하면서 달포 정도 산행이 멈춰져 회원들의 주말만남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 안타까워 산악회 회장이 일전에 내놓은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솔직히 코로나사태에서 세계 정상들의 온라인 회동은 TV에서 가끔 보아왔고 필자 또한 온라인 문화행사에 참석해본 적도 있지만 온라인 회식이라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궁금증과 더불어 기대감이 발동되였다. 산악회 회원들 만장일치의 호응을 얻어 그날 저녁 6시 정각 산악회 온라인 회식쇼가 리허설 없이 열리였다. 휴대폰에 신호가 들어오면서 위챗화면에는 즐거운 표정이 담긴 참가회원들의 얼굴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한세트의 영상모자이크가 짜여졌다. 모두들 손을 흔들고 환성을 터뜨리며 반갑다는 제스처를 해보인다. 각자의 앞에 놓인 간소하지만 깔끔한 음식메뉴들이 눈을 간지럽힌다. 회식자리인 만큼 가벼운 음료도 빠질 수 없다. 모두는 유치원생처럼 들뜬 기분으로 포즈를 잡는다 휴대폰 렌즈 각도를 조절한다 하면서 한바탕 수선을 떨었다. 물론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생방송에 출연하는 것 같은 요상한 기분마저 슬며시 갈마든다. 회장의 유머러스한 인사말에 이어 회원 모두는 자기들 공간에서 가지각색의 컵을 쳐들고 일제히 건배를 웨치며 기분 좋게 컵을 비운다. 참 희한한 광경이라는 느낌이 든다. 가택격리의 심각한 상황에 자그마한 휴대폰 하나가 련결고리가 되여 집단소통의 생방송 라이브 같은 멋진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자체에 모두들 고맙고 신기할 따름이다. 비록 온라인 시스템을 통한 언어교류라 발음과 입놀림 모양이 조금씩 어긋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게 뭔 대수랴! 문안인사를 나눌라, 작금의 전염병 방역을 피력할라, 우크라이나사태를 론할라, 국가 남자축구를 꼬집을라… 그 와중에도 표정관리에 신경 쓸라 하면서 분주한 가운데 처음의 어느 정도 경직됐던 분위기가 슬슬 풀리면서 회식자리는 화끈하게 돌아간다. 말이 회식이지 사실은 서로의 얼굴들을 마주한 말잔치였다. 규제를 세운것도 아닌데 동영상에 로출된 상황이라 입은 ‘발언’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식사’는 언감생심 엄두도 못 내다가 회장이 혹간 건배를 제의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하지만 점잖게 컵을 드는 일종의 ‘연기’자리였지만 모두들 흥겹고 즐겁기만 한 눈치였다. 고약한 전염병 때문에 모든 사회적 교제가 단절된 비상사태지만 휴대폰 전자수단을 잘만 리용하면 그런대로 누리고 싶은 건 누리며 살 수 있는 게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모두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일전에 어느 해외등산팀이 해발 6450메터의 쵸몰랑마봉 기지에서 “지구촌 가장 높은 지대의 열린 다과회”를 마련했다는 보도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전염병 때문에 격리된 생활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교류 자리를 더 갈망하게 하였다면서 이 같은 특수한 행사를 기획한 리유를 두고 등산팀장이 한 말이 의미심장하였다- “생활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함께 누리는 것이다.” 전염병사태에서 기획한 ‘온라인 회식쇼’, 그 의미는 아마도 코로나장벽을 넘어 휴대폰 하나로 모두를 즐겁게 하는 집단교류의 멋을 다 함께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타진한 것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어찌 보면 봉금격리 역경에서 전염병에 대한 인간의 건강한 도전을 능동적으로 펼치여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본연의 가치를 창출한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산다는 게 단지 육신적인 생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천적은 인간사회와 격리된 페쇄공간에서 말을 나누고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사회적 기능을 상실당하고 워킹데드나 다름없는 조난당한 동물적인 삶을 지탱하는 것이다. 이번 전염병사태가 인간에게 강요한 봉금격리의 괴로운 나날을 겪으면서 통감한 바이다. 하지만 아무리 최악의 조난사태에서도 반전을 위한 집요함을 잃지 않고 기적을 창조해낼 줄 아는 게 또한 인간이 아니던가? 배가 난파되여 28년간 무인도에 억류되였지만 앵무새를 말친구로 키워내고 또 후에는 야만인 프라이데(금요일)에게 말을 배워주어 대화의 불씨를 지필 수 있은 ‘로빈슨 크루소’,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외딴 섬에 갇혀 4년간 바다물에 떠내려온 배구공에 사람 얼굴을 그려 윌슨이라 이름 짓고 참기 힘든 적막 속에서 소중한 말친구로 둔갑시킨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척 놀랜드’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두 사람을 정신적 죽음에서 살려낸 ‘은인’은 다름아닌 말친구들인 ‘앵무새’, ‘프라이데’, ‘배구공 윌슨’이였다. 실재한 사실을 모티브로 각색한 두 인물한테서 우리는 대화와 교제가 거세된 비인간적 삶을 탈피하기 위한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몸부림과 더불어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심오한 리치를 깨닫게 된다. 전염병과 인간의 공존이 지속되는한 인간의 사회적 삶은 격리, 페쇄와 같은 사태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며 인간의 전통적 문명생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터넷은 인간의 시간이 무작정 조난당하지 않도록 하늘이 내린 방어수단이 아닐가 생각한다. ‘온라인 회식쇼’가 주는 계시이다. “다음에는 온라인 회식쇼가 아닌 온라인 장끼쇼를 해보는 게 어떨가요?” 60분 온라인 회식쇼가 마무리될 무렵 누군가 내놓은 엉뚱한 발상에 모두들 “좋소!”를 련호하면서 컵을 추켜들었다. 멋진 제의다. 자기끼리 즐기는 회식자리도 좋지만 온라인 시스템에 의한 문화적 원소를 적극 개발하여 단순한 대화, 교류의 기능을 초월한 문화콘텐츠 내용물 기획에 더 신경을 넣는다면 이 또한 전염병과 공존하는 특수한 년대 우리 고장의 새로운 민간문화명물로 상시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연변일보 2022.4.20  
107    봉금격리 영탄곡 댓글:  조회:857  추천:0  2022-03-25
봉금격리 영탄곡 채영춘 계정보기 코로나바이러스 범람의 ‘무풍지대’로 알려졌던 연변의 방어관문에 구멍이 뚫렸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무한봉금’사태를 먼산의 불 정도로 대해왔던 연변이 코로나바이러스와 정면대결하는 최전선으로 전환되면서 봉금격리사태를 맞게 되였다. 2년여 사이 전염병 방치에서 ‘예방작전’에 초점을 맞춰왔던 우리 연변이 지금부터는 연변관문을 뚫고 잠복해들어온 전염병의 ‘동선파악’에 집중하면서 그 확산을 막는 쪽으로 전력을 가다듬고 있다. 이번 작전명은 ‘봉금격리’이다. 연변은 전염병 방치 사상초유의 사태에 직면하였다. 지난 2월 하순 첫 확진자가 발견되면서 전격 펼쳐진 연변의 바이러스 동선 추적은 3월로 잡아들면서 도시전면봉금, 시민 자택격리, 가두정지상태 관리모드에 진입하면서 ‘전민전쟁’의 흐름을 타고 있다. 자치주와 각 현, 시 당정의 명석한 지휘와 주민(州民) 모두의 적극 배합으로 연변의 대응작전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요즘 ‘출입통행증’을 휴대하고 연길시의 부분적 거리를 돌아보았다. 평소에 각종 차량으로 붐비고 자동차 경적소리와 인파로 시끌법석하던 거리는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괴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가 연길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부의 단호한 봉금격리조치와 시민들의 성숙된 사회의식이 복합되여 만들어진 미증유의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국민의 생명안전을 념두에 둔 정부의 봉금격리조치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은 긍정적이였고 적극적이였다. 며칠 전 필자는 사회구역 PCR검사(核酸检测) 현장에서 보온병을 들고나온 로년부부를 본 적이 있다. 이른 새벽부터 추위를 무릅쓰고 주민들을 위해 애쓰는 의료진에 따뜻한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어하는 로년부부의 소행, 물론 방호복으로 전신무장한 의료진한테 로년부부가 정성껏 준비해온 커피가 물리적으로는 전달 불가능했지만 커피보다 더 뜨거운 사랑의 리퀘스트로 의료진 모두의  마음속을 따뜻하게 해주었음을 그들의 밝은 표정이 잘 말해주고 있었다. 따라서 주민 모두의 감은의 마음을 잘 대신해준 로년부부에 대한 감사의 뜻이 현장 주민들의 눈빛에서 잘 드러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흉흉한 코로나사태에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인간사랑의 풍경선이였다. 전염병과의 대결에서 인간은 개인적으로 아주 취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뭉쳤을 때 그 힘은 무궁무진하다. 봉금과 격리는 인간의 생명안전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대응수단이다. 이보다 더 능률적이고 유력한 수단이 지금까지는 없다. 우리 나라의 봉금과 격리 대응조치를 두고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는 인권문제로까지 비하시키는 서방 반중국세력의 망동이 저들의 전염병 방치 실패의 수치를 감추기 위한 유치한 핑게에 지나지 않음을 세상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사실 봉금과 격리는 오랜 옛적부터 인간사회가 전염병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로 류전되여 왔으며  비장한 일화를 무수히 낳기도 하였다. 페스트가 유럽전체를 강타하던 1665년, 영국 중부의 남과 북을 잇는 얌 빌리지 마을사람들 앞에는 두가지 선택이 놓여진다. 하나는 마을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에 남는 것이다. 감염지역을 벗어나는 것만이 살길이던 비상사태에서 마을 344명 촌민은 마을에 남는 비장한 선택을 한다. 누가 페스트에 감염됐는지를 가려낼 수 없는 상황에서 감염자가 마을을 떠난다면 도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감염시키면서 페스트를 북으로 확산시킬 것인가? 촌민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남기로 한 리유였다. 촌민들은 마을 입구에 돌벽을 쌓아 북으로 가는 길목을 페쇄해버리며 외부인이 마을로 들어오지도 내부인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는 통보패쪽을 내건다. 그리고는 가택에서 400여일을 자가격리하여 버팀으로써 페스트가 영국 중북부 ‘관문’을 넘어서지 못하게 지켜낸다. 이 눈물겨운 격리대결에서 얌 빌리지 311명 촌민이 목숨을 바친다. 얌 빌리지 마을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행으로 인간은 온역 앞에서 더없이 취약하지만 또 얼마나 강인한가를 세상사람들에게 잘 보여주었다. 따라서 자기보다 남을, 개인보다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적 책임감과 공중도덕의식을 깊이 새기게 하는 영원한 감동의 기념비로 마을 공터에 세워져있으면서 세상사람들을 실시간으로 깨우쳐준다. 물론 오늘날 ‘봉금격리’ 대응조치는 300여년 전 얌 빌리지의 고립무원한 봉금격리와는 질적으로 다르지만 전염병지역을 세상과 격리시켜 바이러스 확산 통로를 막는다는 기본의미는 같다. 오늘 우리는 지난 2년 전 ‘장사의 팔목을 자르는(壮士断腕)’ 결단으로 천만 인구의 도시 무한을 봉금격리를 시켰던 그때와는 다른 상황에서 차분하게 ‘봉금격리’의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전염병은 결코 스쳐가는 악몽이 아니라 인간과 장기공존하는 천적임을 인식하고 장기전에 대비하는 그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전대미문의 ‘봉금격리’ 전역을 치르는 이 생사의 벼랑 끝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 공중도덕의 재건, 타인을 존중하는 사회적 책임감의 육성, 사회 관리, 통제 능력과 공중생활 품질의 향상에 대한 절박감을 다시한번 통감해야 한다. “연변 힘내라!” “우리 함께 이겨내자! 화이팅!”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연변의 가가호호, 남녀로소의 가슴 속에서 긍정적 에너지로 메아리치는 이 격려의 웨침에는 이번 ‘봉금격리’에서 힘내라는 뜻이 내포됐지만 동시에 우리의 생태의식, 도덕의식, 보건의식, 공중의식 재건에서 힘내라는 의미도 담겨져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비장했던 봉금격리대결을 거쳐 새롭게 태여날 우리 고장의 래일을 그려본다. 2022년 전염병과의 특수작전이 후대들에게 좋은 기록으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연변일보
106    연변축구의 재기에 부쳐 댓글:  조회:711  추천:0  2022-02-24
연변축구의 재기에 부쳐 채영춘 “연변팀 제2단계경기서 무패로 시즌 마무리… 출전 첫해 잔 류에 성공” 2021년 12월 7일자 보도기사의 제목이다. 호남 상도팀과의 을급리그 강등조 제6라운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조기 잔류를 확정했던 연변팀이 12월 3일에 펼쳐진 곤명 정화팀과의 최종전에서도 1대1 무승부를 기록하며 제2단계 7 경기 전부 무패로 거뜬하게 시즌 마무리를 하였다. 물론 을급리그 잔류에 그쳤지만 희망을 안겨주는 출발이였다. 연변팀이 해체된 지난 4년동안 까맣게 타있던 마음을 어느 정도 적셔주는 급시우같은 메세지에 필자는 저도 모르게 불끈 주먹을 거머쥐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40일후 자치주 16기인대 1차회의에서 주장 대리 홍경은 를 통해 연변의 자존심을 살리는 중대한 선언을 발표하였다. “전국축구발전중점도시를 건설하며 연변축구를 갑급련맹경기 에 출전시켜 ‘축구의 고향’이란 이름을 재부각하겠습니다.” 연변팀의 을급팀 잔류와 “연변축구를 갑급련맹경기에 출전시 킨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신통히 맞물리는 상황이  40일만 에 벌어진 것이다. 연변축구재기의 청신호가 아닐수 없다. 자치주정부가 연변축구의 동산재기 의지를 불사르며 도전장을 던지고 있을 때 올 음력설날 까타르월드컵 아시아예선 그라운드 에서는 한심한 사태가 터졌다. 국가남자축구팀이 베트남팀과의 원정경기에서 1:3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점수차이로 참패당하면 서 결국 1승2무5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월드컵 아시아예선 문턱도 넘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여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까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에서 드러난 국가남자축구팀의 작태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국가팀을 이처럼 무기력하게 만든 장 본인이 무엇일가 생각해본다. 180여년전 아편전쟁은 영제국주의자들이 “아편”으로 중국인 을 페인으로 만들고 나라를 “동아시아 병다리”로 전락시키려한 지독한 씨나리오였다. 180년이 지난 오늘날 “금원”이라는 현대 판 “아편”의 침습으로 우리 나라 프로축구 생태는 몸살을 앓는 다. 프로축구 그라운드는 어마어마한 몸값을 자랑하는 외국용병 들의 경쟁무대로 되면서 국내 토종선수들은 그들의 둘러리가 되고마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본토선수 발굴과 양성은 “금원”에 의한 외국용병의 “수입”경쟁, 국내선수 몸값 부풀리기 풍조에 밀리우며 해외구락부에 나가 단련하려는 토종선수들이 거의 전무한 악성순환이 지속된다. “금원”의 포로로 결박된 프로 축구선수들은 사지는 멀쩡하나 투혼과 리념이 거세된 워킹데드 같은 존재로 축구생태를 병들게 하고있다. 이번의 “1승 2 무 5 패” 기록은 “금원축구”라는 정신아편이 낳은 필연적비극이다. 도리켜보면 “금원축구”가 4년전 연변축구를 버렸고 오늘날 국가남자축구팀을 좀 먹게 하고있다. “금원”에 의한 병든 축구 생태를 치유하지 않는다면 중국축구는 그냥 “가망이 없는(没戏)” 비극을 번복할 것이다. 베트남전이 있은 뒤 전국의 성난 민심에 축구협회가 국가남자축구단의 년봉을 내린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년봉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긴요한 것은 진정 으로 우리나라 축구생태에 긍정적에너지를 대폭 주입시켜 선수 들의 옳바른 축구리념과 자세를 정착시키는게 급선무로 돼야 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구구하게 “금원축구”를 거론하는 것은 우리 나라 축구 무대에서 “금원축구” 먹구름을 거둬내지 않는다면 연변과 같은 소수민족지구의 축구 동산재기나 권토중래는 지상담병(纸上谈兵)에 머무를 것이며 따라서 4년전의 연변축구단 해체의 비극이 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프로축구시장화생태에서 금원의 중요성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금원축구”로 프로축구의 모든 요소를 대체한다면 어떤 악영향이 초래되는가를 지금까지 우리 나라 프로축구발전생태가 잘 설명해준다. 연변축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 돌출한 사례가 바로 201 4년 연변축구팀이 3부 리그로의 강등(이외의 변화로 잔류)이다. 연변의 자금유치가 그 어느해보다 만족스러웠던 이 해에 연변 축구팀이 3부 리그로 강등된것은 량호한 축구생태환경의 부재 에 있었다. 연변팀의 2014년 강등비극은 우리에게 병든 축구생태는 돈으 로 치유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한 한차례 설득력 있 는 “림상실험”이 아니였는가 생각해본다. 축구하기 좋은 생태가 만들어지면 자신감 넘치는 축구저력이 살아나기 마련이라는 이 도리, 연변은 엄청난 수험료를 치르며 시행착오를 번복하다가 드디여 2014년의 처참한 강등비극을 전기로 축구인식론 비약의 문을 노크하였다. 축구는 연변에서 정치현상이며 연변축구의 운명은 결국 지도 층의 인식에서 매듭지어진다. 정치적현상은 정치적식견과 정치 적혜안으로 풀어야지 스포츠적시각으로 다뤄서는 안된다는 말이 된다. 2015년 연변축구가 3부 리그에서 슈퍼리그로 진출한 반전드라마의 총연출이 당정지도층이였다면 2000년 연변축구의 매각과 2018년 해체드라마도 결국 지도층의 인식으로 빚어진 결과였다. 이제 연변축구는 자치주정부 새 지도층의 선도하에 탈태환골 의 새 장정을 시작한다. 자치주 주장의 연변축구재기선언에 담 긴 세가지 내용의 메세지는 이번 장정의 키워드이다. “전국축구 발전중점도시의 건설”, “연변축구갑급련맹경기출전”, “축구고향 의 재부각”, 전략적의미를 띤 이 세가지 내용의 메세지는 밀접 하게 얽혀 불가분리의 하모니를 이루고있다. “전국축구발전중점 도시의 건설”은 “연변축구갑급련맹경기출전”이라는 엔진의 가동 으로 견인되여야 하며 “축구고향의 재부각”은 “전국축구발전중 점도시의 건설”이라는 강력한 지탱점이 있어야 왕성한 저력을 과시할 수 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할 수 있다. 프로축구생태환경에서 금원경쟁은 여전히 중요한 작용을 하겠으나 결정적인 변수는 될 수 없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 도리는 지난 프로축구 26년 중국축구무대를 풍미하며 위용을 떨쳤던 연변축구팀의 력사에서 잘 드러난다. “금원경쟁”에서 연변축구는 결코 프로축구 “토호” 들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연변축구는 변할수 밖에 없다. 우리만의 축구리념, 전술풍격, 정신투지로 엮어진 “투혼” 과 비대칭전략이라는 연변축구의 위대한 전통으로 “연변축구 갑급련맹경기출전” 입장권을 쟁취하며 “전국축구발전중점도시의 건설”과 “축구고향 재부각”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자치주정부의 결심이 선 이상 연변축구의 변화와 그 변화로 연변축구가 재기할 날은 멀지 않아 올것이다. 연변축구의 재기를 위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해있다. 우선은 자치주 고차원의 연변축구재기를 위한 장, 중, 단기목표 제정과 시행대안의 출범이다. 자치주정부의 통 큰 축구부축정책 의 발족과 중앙, 성의 소수민족축구발전우혜정책의 쟁취, 유능 한 축구경영인재의 발굴과 능률적인 축구발전전문가시스템 가동, 신뢰있는 합작파트너의 선택과 다각적인 축구발전기금 유치, 프 로축구의 맥락을 항구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한 인프라건설과 청 소년후비력량양성체계의 완벽화… 이 모든 프로젝트는 결국 자 치주정부와 관련행정부서 그리고 축구전문가, 나아가서 연변축 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한 인식에서 완성될 것이다. 우수가 방금 지나고 경첩이 당장 눈앞에 다가왔다. 따뜻한 봄 기운이 완연히 느껴진다. 들불이 휩쓸고 지나간 연변프로축구 대지에서 완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재기의 싹”이 돋아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70주년이 되는 올해가 연변축구의 멋진 재기와 도약이 현실화 될 원년의 해로 되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연변일보
105    한 민간단체의 선행에서 느낀다 댓글:  조회:729  추천:0  2022-02-10
한 민간단체의 선행에서 느낀다 채영춘 세전에 한 민간단체의 년중행사에 다녀왔다. 우리 민족 청소년 문화발전을 위해 ‘젊은 엄마’들이 결성한 민간단체의 4돐 기념 모임이였는데 모임규모는 작지만 모임의 포인트와 그 포인트에 접근하고저 설정한 담체들은 가히 수준급이라 할 수 있었다. 우선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과 청소년 미래탐구’라는 거창한 프랑카드가 눈길을 끌었고 열두살 소녀에게 모임의 총사회를 맡긴 것부터 독창적이였다. 우리 민족 후대를 위한 젊은 엄마들의 지극정성과 더불어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맡는다는 ‘이악스런’집념이 회의장 곳곳에서 뿜어져나와 필자는 숙연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모임의 핵심키워드는 포럼이였다.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에 따른 새시대 청소년교육 발전방향과 비전을 전망하며 지식과 인성을 겸비한 창의적인 인재양성의 발전전략탐구’를 취지로 내건 행사포럼은 한마디로 화려한 학술토론의 장이였다. 대학 전임 총장의 멋진 기조강연에 이어 대학의 3명 교수와 몇몇 사회지성인들의 열띤 토론은 오늘날 백년 미증유의 변곡점에서 우리 민족 청소년양성의 세기적 중임을 조선족사회가 함께 떠메고 나가자는 리성의 목소리를 담아낸 절박한 선언 그 자체였다. 포럼에 이어 펼쳐진 청소년 장끼표현무대는 포럼에서 제시한 엄숙한 화제를 재치 있게 받쳐주고 설득력 있게 해독시킨 랑만의 자리였다. 열세살 조선족소년이 조선어, 한어, 영어 세가지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여 연변을 찬미한 랑송표현은 경이로움과 더불어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준 감동의 순간으로서 참석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청소년 양성 관련 민간단체가 학자, 교수들을 초청하여 마련한 수준급 포럼과 조선족어린이의 거침없는 삼중언어 구사의 멋진 무대는 국가 ‘통용언어문자’ 보급을 빌미로 조선언어문자의 배척과 포기를 정당화시키려는 조선족사회의 일부 황당한 처신에 던진 도전장임이 분명했다. 따라서 우리 민족 어린이와 학부모, 민족사회의 동심협력으로 ‘조선어무용론’ 먹구름을 결연히 거둬내고 아름다운 우리 말, 글의 맑은 천지를 되찾는다는 의미심장한 각오가 번뜩이여 모두에게 훈훈함을 안겨주었다.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 구축’이라는 특정된 큰 틀 안에서 우리 민족 후대양성이 봉착한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에 대응한 적절한 해법을 찾으려는 ‘젊은 엄마’들의 가상한 소행이 돋보인다. 우리 민족처럼 자녀교양에 극성인 민족도 드물다. “소 팔아 자식공부 시킨다.”는 조선족의 전통미덕은 1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일제치하의 그 험악했던 세월에도 우리 민족 학부모들의 드높은 향학열이 있었기에 1906년 동북지역에 벌써 470여개소의 조선인사립학교의 탄생이 가 능할 수 있었고 새 중국 탄생 후인 1951년에 연변에서 조선족 적령아동입학률이 96.2%를 차지하면서 연변조선족교육이 전국 소수민족교육에서 제일먼저 소학교교육을 보급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1958년에는 초급 중학교교육이 보급되면서 연변 조선족 청장년문맹이 기본상 퇴치되는 국면을 맞을 수 있었으며 연변이 ‘교육의 고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민족교육의 운명은 결국 민족의 운명과 직결된다. 조선족이 중화민족공동체에서 우수한 민족으로 존속하는 길은 국어인 한어를 다른 소수민족보다 잘할 뿐만 아니라 모어인 조선어를 잘 지켜나가는 데 있다. 이 위업은 우리의 기성세대에 의한 후대교육으로 추진해나가야 한다. 민족 대이동의 격변기에 우리 말, 글과 우리 문화를 전수하는 터전이 유명무실하고 가정에서 우리 말, 글과 우리 문화가 설자리를 잃는다면 조선족 디아스포라는 더 이상 존속 불가능하다. 세계는 물론 우리 나라 타민족 젊은 세대들마저 우리 말, 글 공부와 사용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조선족후대들이 오히려 자기 민족 우세를 포기하고 자기 민족 언어를 외면하면 서 ‘우리 말 벙어리’, ‘우리 글 문맹’이 돼간다면 언젠가 우리 조선족후대들이 타민족 후대들한테서 우리 말을 배우는 21세기 해프닝이 연출될 수 없다고 누가 장담하랴? 일전에 SNS를 통해 화동조선족주말학교 2022년 제1학기 학생/교원 모집 및 개강통지문을 보면서 또 한번 가슴 뭉클했다. 유아반(3세-5세), 초등반(6세 이상), 성인반(18세 이상)을 모집대상으로 한 조선족주말학교가 3월 5일부터 화동전역에서 전면 개강한다는 통지문과 함께 제작된 화동지역 지도에는 상해, 강소, 절강의 광활한 지역에 분포되여있는 조선족주말학교(학구, 분교)가 오각별로 빽빽이 표기되여있었다. 지도 아래에는 주말학교 각 학구, 분교의 학구장, 분교장 및 련락인 련락전화번호가 깨알같이 입력되여있었다. 이 모든 걸 일별하면서 필자는 다시한번 우리 민족의 비범한 향학열의 높은 온도를 체감할 수 있었다. 남방의 깨여있는 조선족지성인들이 팔을 걷고 나서 당지 정부의 지지를 업고 10년간 구축한 조선족주말학교(분교)가 화동대지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확산세를 타고 있는 기꺼운 현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조선족이 중화민족 공동체에서 ‘차별공존과 상호 존중’의 목표 아래 ‘주체의식과 상호 주체에 따른 공동주체성을 확립’하자면 우리 말, 글에 의한 조선족 교육문화의 뿌리를 잊어 서는 안된다는 도리, ‘젊은 엄마’들 민간단체와 화동조선족주말학교가 조선족교육의 메카 연변에 시사하는 진지한 메시지가 아닐가? 올해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70돐이 되는 해이다. 민족 대이동의 격변기에 맞는 자치주 경사의 명절이 민족 다양성과 융합을 전제로 하는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 정립에서의 우리들 자세를 스스로 자성해보는 중대한 시점이 됐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전임 주당위 서기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가장 선명한 특점은 ‘조선족’이라고 하였다. 적절한 개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쌀밥에 된장찌개, 김치를 먹고 민족복장을 하면 조선족이 되는 게 아니다. 우리 말, 글에 의한 조선족 교육문화 의식이 배여있어야 조선족이라 할 수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70돐을 맞아 연변에는 우리 민족 후대양성을 두고 리성적으로 고민하는 ‘젊은 엄마’, ‘젊은 아빠’ 조선족시민단체들이 더많이 속출하고 조선어와 한어를 뛰여나게 구사하는 조선족아이들이 보편화되며 화동을 비롯한 국내조선족산재지역에서는 조선족주말학교가 료원의 불길로 타올랐으면 좋겠다. 적어도 모범자치주라는 연변에서 태여난 우리 민족 후대들이 장차 제 민족어 공부를 멀리했던 그제날 자신을 자책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민간단체의 가상한 소행에서 느낀 바이다. 연변일보 
104    새 TV방송공개홀 가동의 의미 댓글:  조회:751  추천:0  2022-01-27
새 TV방송공개홀 가동의 의미 채영춘 연변라지오TV방송국 새 빌딩 옆에 나란히 신축된 새     TV방송공개홀 청사가 드디어 2022년 TV음력설야회 촬영을 시작으로 화려하게 장을 열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5년만에 사용에 교부된 것이다. 5년간 무겁게 드리웠던 그림자를 거둬내고 힘차게 태동 하는 연변라지오TV새 공개홀의 의미는 크다고 생각한다. 2022년 연변TV음력설문예야회촬영현장으로 기지개를 켠 제1공개홀에서 필자는 “전략자산”이라는 이 어마어마한 용어를 떠올리게 되였다. TV방송공개홀은 영상문화콘텐츠 대형생산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음력설문예야회를 포함한 대형종합야회 프로그램 촬영제작은 이 공간에서 완성된다. 카메라, 등광, 음향, 록 음, LED, 무대미술, 편집제작, 송출 등 TV 모든 장비의 일 체화 투입, 그리고 감독, 연출, 프로듀서의 지휘조정으로 일사불란하게 펼쳐나가는 사회자, 연예인, 스텝과 수백명 관중들의 “협동작전”, 그야말로 항공모함을 방불케하는 전략자산 그 자체이다. 한 지역사회에 영상문화콘텐츠 창출을 위한 전략자산이 갖추어져있다는 것은 굉장한 자랑거리면서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자랑과 부담을 안고 연변TV “항공 모함"은 TV문화의 만경창파를 헤가르며 방향타를 놓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연변TV 40여년 력사는 TV 문화 전략자산의 출범, 발전, 도약의 편년사와 점철돼있다고 할수 있다. 1977년에 고고성을 울린 연변 TV는 2021년까지 쭉 국자가 1558번지 400평 부지면적의 공개홀을 대형 영상프로그램 생산기지로 삼고 연변 나아가서 중국조선족 영상문 화의 기원을 열어왔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400평 공개홀, 이 땅에 태동하여 30여년 세월을 주름잡으며 조선족을 문화빈곤에서 해탈시킨 감로수의 역할, 조선족을 문화정신적으로 결집시킨 성장기의 구심점 역할, 조선족의 글로벌하에서 고향재건의식을 승화시키려는 성숙기의 견인차역할을 감당해온 총37 회 음력설문예야회프로그램은 바로 이 공개홀에서 생산되여  국내외로의 전파신호를 탔다. 어찌 그 뿐이랴. (3부), 최은택 인물탐방특집을 비롯하여 중국CCTV와 합작하여 제작한 수많은 중, 대형 프로그램들, 대외진출 다큐프로그램들은 전 부 이 전략자산에 힘입어 연변 나아가서 중국조선족을 만 방에 널리 알리는 홍보대사로 군림하였다. 하지만 궁색한 자치주살림에서 구축된 400평 공개홀 전략 공간의 전체적성능과 작동은 시작부터 그닥 완벽하지 못했고 삐꺽거리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400평 부지면적의 공개홀에서 200평이 될가말가한 무대 공간은 대형야회프로를 소화하기는 역부족이였고 재정난의 그늘이 드리운 등광 조명장비의 열악함은 수준급 콘텐츠 생산의 발목을 잡고있었다. 무더운 찜통더위에도 소음을 잡을 수 없어 에어콘 작동은 엄두도 못내여 연예인이나 관객들은 장장 몇시간을 땀투성이 되는 고역을 치뤄야 했다. 고정된 분장실도 없어 연예인들은 엄청난 불편을 감내할수 밖에 없었다. 참새는 작아도 오장륙부가 있듯 면적이나 기능이 형편없어도 전략자산임은 분명했고 이 초라한 전략자산으로 몇세대 연변TV인들은 콘텐츠생산에 투혼을 불살랐다. 필자는 지금도 1993년 연변TV사상 첫 생방송대형종합야회 “장 하다, 백두호랑이!”를 성공시킨후 생방송에 투입된 임직원들이 400평 공개홀에서 서로 끌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자축하던 광경을 기억하고있다. 그 자축의 눈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기상황을 무릅쓰고 수준의 전략자산으로 생방송을 이뤄낸 긍지감이  담겨있었다. 이제 400평 공개홀은 인터넷 디지텔시대와 거리가 먼 아놀로그 세월의 고물로 도태되는 운명을 맞고있다. 필자는 2022년 연변음력설야회 촬영현장에서 관청에 들어선 촌닭같은 자신을 발견하면서 행복한 웃음을 머금었다. “모든 장비는 애초에 가장 좋은 것으로 한다”는 라지오TV 방송국 지도부의 미래지향적인 통 큰 배짱이 1100평방메터  의 제1공개홀 곳곳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7메터 높이에 20여메터 깊이를 자랑하는 무대의 천정에는 다용도 복합데릭붐(吊杆)을 비롯한 90여 세트의 고가 등 광계통이 즐비하게 걸려 현대기능을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 다. 무대 량켠에서 호함지게 뿜어져나오는 드라이아이스 (干冰)는 차분하게 무대바닥을 누비고있다. 고공리모트 컨트롤 짐벌(遥控云台)과 여러가지 특수효과장비들이 넓은 공간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승강무대와 신축성스탠드(看台), 등광데릭붐계통, 영상과 가청신호계통, 확성계통, 신호분배와 감시통제계통, LED 스 크린장치계통에만 3400여만원이 투입되였다고 하니 공개홀 규모나 장비, 시설이 국내에서 업종 일류수준을 자랑할만하다. 이 모든 것이 공개홀청사에서 제1공개홀에만 해당한 것 일때 이제 400, 200, 100평방메터 규모의 제2, 제3, 제 4 스튜디오들이 륙속 사용에 교부된다면 대형공개홀청사는 말 그대로 대, 중, 소형 종합문예,사회교육, 뉴스성 각종류형 프로그램 록화제작과 생방송제작기능으로 일체화된 초대형 생산라인의 매력적인 공간으로 되여 조선말영상콘텐츠생산은 획기적인 전환을 맞지 않겠는가? 이 전환은 아마도 연변 조선족자치주 창립 70주년, 중국공산당 제20차 대표대회 개막의 행운스런 해인 2022년이 계기로 될것 같다. 그렇다, 이제 TV방송인들의 다음 숙제는 좋은 프로그램을 후회없이 생산해내는 것이다. 음력설야회무대 아래 위에서 열심히 뛰는 연출, 사회자, 카메라맨, 연예인, 스텝들의 얼굴에서 피여나는 자부감 넘친 웃음을 바라보면서 한때 방송인이였던 필자도 덩달아 흥겨워진다. 이같은 최상의 공개홀을 안겨주고저 로심초사하며 두터운 배려와 화끈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국가와 성, 주 당정에 고맙다. 이제 이 전략자산의 거대한 힘으로 줄기차게 뽑아져나올  중국조선족의 문화콘텐츠가 기대된다. “연변교향음악회를 비롯한 수준급 영상예술무대를 창출할 때가 된것 같습니다!” 연변라지오TV방송국 리호남국장의 자신감 넘치는 말을 들으며 필자는 새 공개홀 콘텐츠생산 시스템과 위성방송과의 멋진 도킹으로 세계를 활보할 조선 말 영상문화의 매너를 슬며시 떠올려본다. 연변일보 
103    도시존엄잡담 댓글:  조회:961  추천:0  2021-12-02
문화칼럼 도시존엄잡담   채영춘     일전에 룡정동산홍색문화원에 다녀왔다.   그제날 영국조계지가 들어앉으며 ‘영국더기’로 불리웠던 동산이다. 1919년의 ‘3.13’반일시위, 1930년의 ‘5.30’폭동 등 중대한 력사사건들이 줄지어 발생하였고 항일저항시인 윤동주의 혼이 서려있는 동산마루에 터를 잡은 홍색문화원을 돌아보면서 필자는 도시의 존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였다.     한 도시의 특성이 생태, 력사, 전통, 문화에 힘입은 자연스러운 신장(伸张)으로 이뤄진다고 할 때 룡정동산홍색문화원은 이 구성요소들을 연변반일투쟁 ‘종가’체통에 걸맞게 결집시킨 멋진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룡정은 중국조선족 반일투쟁 력사의 산증인이다. 조선족의 파란만장한 혁명투쟁사는 20세기 초엽부터 1920년대에 이르는 사이 룡정땅에서 있었던 조선족반일투쟁을 그 서막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위대한 력사문맥은 지금까지 유적지, 옛터와 같은 원초적이고 자연발생적인 그대로 룡정의 곳곳에 흩어져있으면서 력사의 ‘산증인’에만 그치고 ‘종가’의 무거운 존재감에는 못 미치는 아쉬움을 보여온다고 느꼈다. 룡정은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고 력사는 말하고 있었다. 그 력사의 부름에 부응하여 룡정이 드디여 멋진 답안을 내놓았다.   동산홍색문화원은 룡정사람들의 탁월한 혁명유전자 전승리념의 소신으로서 룡정존엄의 값진 심벌로 된다고 생각한다.   공원화된 문화원의 6만 7000평방메터의 멋진 공간에서는 불멸의 룡정 력사가 꿈틀거린다. 룡정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세운 대형의 혁명렬사기념비는 동산문화원을 거느린 거장마냥 문화원 중심에 우뚝 솟아있다. 총길이가 200여메터에 달하는 양각벽화(浮雕)에는 서전서숙, 대성중학교, 명동학교, 3.13반일집회, 민성보, 15만원 탈취거사, 동북군정대학 길림분교 등 룡정에서 벌어진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더불어 김약연, 관준언, 한락연, 정률성, 주덕해 등 기라성 같은 인물형상들이 생동하게 상감(镶嵌)되여있다. 이 모든 구조물들은 소나무와 백양나무로 우거진 동산의 적재적소에서 룡정시가지를 한눈에 조감하면서 찬란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동산홍색문화원의 핵심가치는 무수한 인민영웅들의 영령에 대한 숭엄한 마음의 전달에 있으며 이는 또한 룡정의 존엄을 정중하게 떠받쳐주고 있다.   어떤 나라나 지역이든 가장 추앙받는 대상이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몸바쳐 싸운 인민영웅들이다. 우리 나라 수도의 천안문광장 중심에는 아편전쟁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100여년간 반제반봉건투쟁에서 순직한 여러 민족 혁명선렬들에 대한 추모와 경앙의 뜻을 담은 인민영웅기념비가 국가존엄 1호 물로 우뚝 솟아있다. 로씨야의 수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가장 추앙받는 곳은 2차대전 순국영령들을 기리는 무명렬사묘이다.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우다가 순직한 영령들을 하늘처럼 모시는 자체가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징표이다.   력사를 모르면 자기를 낮추어보게 된다. 망각되고 왜소화되고 외면당했던 민족의 력사가 제대로 정립되여 세상사람들 앞에 떳떳이 모습을 드러내야 민족이 바로서고 나라 근대사도 보다 완벽성을 기할 수 있다. 조선족의 자랑스런 반일투쟁력사를 떠올림에 불편해하거나 눈치 보기에 전전긍긍해서는 안되는 리유이다.   룡정동산홍색문화원이 담아낸 것은 조선족이 기타 민족과 함께 나라와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치른 지난 력사에 대한 불망초심의 정중한 마음이고 부각시킨 것은 룡정의 정신 나아가서 중국조선족의 존엄이 아닌가 생각한다.   동산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모아산이 안겨온다. 모아산건너에는 연변의 수부도시 연길이 있다. 상전벽해의 변화를 거듭하는 중국 유일 조선족자치주 수부도시의 호칭은 많아도 한마디로 귀납하면 조선족의 심장부가 아닐가 생각한다. 조선족 인문풍토의 대표자, 조선족문화의 구심점, 조선족과 여러 민족 다문화 대화합의 정치풍경구, 연길 도시문맥을 형성하는 핵심이다.   도시문맥은 국민의 기질과 정신을 함유하고 있다. 도시문맥이 끊어지면 국민의 기질과 정신이 사라지고 도시의 존엄이 증발돼버린다. 도시의 존엄은 자화자찬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인식되고 평가된다. 심오한 사상적 깊이와 확실한 정신문화 품위에 의한 도시기획이 되여있지 않을 때 결국 도시의 존엄이 거세된 경박한 아마추어공간으로 사람들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솔직히 오늘날 세인들 앞에 펼쳐진 자치주 수부도시의 총체적 모습은 갖춰야 할 체통에 비해볼 때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 심장부에 자치주를 상징하는 핵심구조물이 없다는 점은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넋이 없는 도시의 존엄은 상상 할 수 없다. 연길 심장부에는 상가빌딩이나 약방, 음식점이 아니라 중국조선족체통에 맞는 상징구조물이 정착해야 한다. 조선족과 기타 민족이 피와 땀으로 이 땅을 개척하고 일제에 항쟁하여 이 땅을 지켜왔으며 당의 령도 아래 모범자치주를 건설한 150년의 찬란한 력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구축돼야 한다.   주정무청사 앞에서 결혼기념촬영을 하는 젊은이들을 자주 보아왔다. 그때마다 청사 남쪽의 드넓은 아리랑광장에 눈길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저 광장에 아리랑의 의미를 극대화하고 연변의 존엄을 완벽하게 부각시키는 멋진 구조물을 건설한다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연변조선족자치주 70돐이 다가온다. 연변, 나아가서 중국조선족의 개척의 력사, 항쟁의 력사, 건설의 력사가 형상화된 매력적인 상징구조물이 자치주 수부도시에 우뚝 솟기를 기대해본다. 룡정동산홍색문화원을 돌아보고 느끼는 생각이다.   연변일보
102    가깝고도 먼 곳 댓글:  조회:890  추천:0  2021-11-18
인상 깊은 탐방이였다. 장백조선족자치현,  장백산 만추의 풍경, 압록강의 귀맛 좋은 여울소리가 만들어낸 자연경관이 일품이였다면 장백현성에서 보낸 짧은 시간이 필자에게 준 인문적 인상은 그야말로 심취신미(心醉神迷)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뒤늦게 다녀온 장백 초행길은 필자에게 가슴 뿌듯함과 더불어 새로운 그 무언가를 깨닫게 한 의미 있는 걸음이였다. 말 타고 꽃구경하는 식의 짧은 탐방길이였지만 강한 리듬의 민족 삶이 내재된 생생한 현장을 한눈에 직시할 수 있었고 화끈한 민족의 얼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 가슴이 뭉클했다. 물론 연변처럼 도시 곳곳에서 조선족들이 북 치고 장고 치고 춤추는 시끌법석한 풍경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늑하고 고즈넉한 거리와 이웃 나라 시가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압록강연안의 유원지에는 조선족 삶의 따뜻한 기류가 조용히 팽배하고 있었다. 장백현 경내에 들어서기 바쁘게 조선족의 정취가 도처에서 꿈틀거린다. 조선글로 된 현수막과 포스터, 조선족을 형상화한 각종 조각예술품들, 민족특색이 짙은 조선족기와집들, 깔끔한 도로와 휴식터마다에서 반기는 조선족 상징 조형물들, 거리 곳곳에 비치된 민족건축미를 살린 멋진 공중화장실들… 중한수교 후 연변땅을 처음 밟아본 한국인들의 가슴을 짜릿하게 한 넘버원이 우리 글 간판과 프랑카드였다고 하던 한국 지성인들의 감개무량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장백현에 들어서는 순간 필자 또한 연변땅을 처음 밟았을 때 한국인들의 그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장황한 설명과 안내가 없이 눈에 띄는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촉경생정(触景生情)의 순간이였다. 중국 유일 조선족자치현의 당당한 존재감에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당발해문화, 장백산문화, 압록강문화, 관동문화, 조선족문화 전승집결지인 장백현에서 전 현 인구의 16.7%에 불과한 조선족 동포들은 주체민족답게 한족과 기타 민족과 공동체 삶을 영위하면서 장백현을 ‘전국문화선진현’, ‘전국문명현’으로 부각시켰고 여섯차나 ‘전국민족단결진보 모범집체’ 영예를 안아왔다. 참으로 머리가 숙어지는 장백현의 장거가 아닐 수 없다. 섭섭한 구석도 있었다. 몇몇 당지 조선족과의 만남이 썩 시원찮은 느낌으로 넌지시 맞쳐온 것이다. 조선족음식가게에서 늦은 식사를 하며 느낀 주인 아저씨와 아줌마의 시무룩함과 어색함이 반죽된 애매모호한 표정, 골목에 모여앉은 조선족할머니들의 무뚝뚝한 눈길, 서먹서먹한 접촉에서 필자는 가깝고도 먼 생면부지의 외딴 곳에 온 느낌이 넌지시 갈마들었다. 그 순간 몇년 전 어느 언론지에서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타성의 어느 조선족산재시에 17개 조선족마을을 포섭한 문화예술관이 있는데 관장 한분만 달랑 조선족이란다. 그 관장이 하루는 연변 어느 단체를 찾아와 안타까움을 하소연하며 조선족 인재를 지원해줍시사 하고 간청을 드렸는데 면박을 당하고 쓸쓸히 돌아갔다는 내용이다. 연변이 조선족집거지구라는 단 한가지 믿음에서 찾아왔는데 그 믿음을 접어야 했던 조선족관장이 너무 안스러웠다. 그분이 얼마나 연변에 실망이 컸겠는지는 불보듯 뻔하다. 그때 필자는 라는 칼럼을 본지에 발표하여 연변의 성찰을 촉구했던 적이 있다. 사실 중국 유일 조선족자치주란 타이틀에 의해 연변성채 안에 완벽하게 포진된 조선족의 교육, 문학, 예술, 신문, 출판, 방송, 텔레비죤, 축구 등 문화군단 시스템은 중국조선족문화의 메카와 리더로서의 사명에 걸맞는 차원에서 구축돼온 것이다. 물론 행정구역은 달라도 중국조선족의 구심점이 돼야 할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장백자치현을 비롯한 산재지역 조선족을 어느 정도로 포용했는가를 자성해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지 않을가? 장백현의 음식점가게 주인 내외와 골목 할머니들의 대화와 표정에는 분명 연변사람을 외계인을 대하는 듯한 씁쓸함이 묻어있었다. 연변과 장백현의 뜨아한 관계의 축소판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그런 와중에 마음을 개운하게 한 일이 있었다. 워낙 우리 일행의 가이드를 맡기로 했던 장백현방송국의 친구가 불시에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에서 마련한 조선말아나운서강습반에 참가하면서 우리 탐방에는 약간 차질이 있었지만 연변방송국에서 산재지역 조선말방송인까지 챙기는 책임적 자세는 그런 대로 마음을 후련하게 하였다. 유감스런 일도 있었다. 장백현으로 떠나기 전 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에서 ‘장백에서 백금까지 우리 시가 간다’라는 테마의 창작 탐방행사를 조직했다는 기사를 제목만 읽고 무척 흥분했었다. ‘장백’을 ‘장백현’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사실은 이도백하에서 백금까지인 순수한 연변 경내의 활동이였다. 만약 이 행사가 말 그대로 ‘장백(조선족자치현)’에서 ‘백금’까지를 탐방구간으로 잡고 60여명 연변의 시인, 작가, 가수와 배우들의 활약상이 보여졌더라면 얼마나 멋졌을가? 적어도 장백현에서 대환영붐이 일었을 것이고 그 문화적 여파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조선족 대이동은 연변 뿐만 아니라 장백현을 포함한 조선족 산재지역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다. 연변지역만 념두에 두고 추진해왔던 연변의 수많은 민간문화예술단체들의 문화행사 반경을 적어도 장백현으로 연장시키면 어떨가 생각해본다. 연변의 민간단체들이 더 열린 자세로 주변의 조선족 산재지역 민간단체들과 손잡고 함께 하는 문화의 장을 정례화하는 것은 오늘날 민족 대이동의 시대적 발전에 부합되는 명지한 선택이 아닐가? 집거지역과 산재지역 조선족의 정신문화적 융합만이 중국조선족이 중화민족 공동체에서 응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2년 전 연변TV음력설야회가 두만강, 송화강, 압록강 삼대강의 발원지 장백산천지를 모티브로 조선족의 ‘샘이 깊은 물, 뿌리 깊은 나무’의 생존저력을 확인시키는 데 포인트를 맞춘 세 지역 조선족가수가 열창한 3인창 NTV ! 그 뒤에 이어진 평안도, 경상도, 함북도 태생의 세 지역 조선족들이 ‘한자리’에서 펼친 예능윷놀이 생방송라이브는 집거지구와 산재지구 조선족들을 결집시키는 공감대를 만드는 데 일조한 멋진 시도라고 생각한다.   장백현, 가깝고도 먼곳! 이제 가깝고도 가까운 곳으로 격상시키는 그 비결은 조선족문화의 힘에 의한 소통과 결집에서 찾아야 한다. 그동안의 ‘거리감’을 좁히고 가깝고도 먼곳이 물리적으로도 가깝고 정신문화적으로도 가까운 곳으로 부상할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연변일보 
101    장진호, 위대한 정신의 심벌 댓글:  조회:1147  추천:0  2021-11-08
장진호, 위대한 정신의 심벌 채영춘 .1.   조선전쟁 때 중국인민지원군이 미군을 대패시킨 격전지가 요즘 영화로 각색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제작규모나 촬영시간폭, 동원된 배우진영이나 기술수단 모두에서 우리 나라 영화제작사상 으뜸으로 꼽히는 영화이다. 영화 씨나리오만 5년을 다듬었고 2년여의 촬영 준비과정을 소화하였다. 7만여명의 군중배역, 최대 규모 의 복장과 도구, 군사장비가 투입되였으며 100여킬로메터를 웃도는 전역전술설계를 거쳤다고 한다.   뿌린 만큼 거둔다. 영화는 개봉한지 18일 만에 우리 나라 력대 영화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영화가 바로 《장진호》이다. 영화의 성공비결은“임무가 아닌 사명감을 안고” “중국인민의 위대한 정신구현에 만전을”기한 제작팀의 초심과 노력이 광범한 국민들한테 제대로 녹아들어간 데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어느 언론지를 통해 《장진호》 영화 개봉현장에서 스크린을 향해 정중하게 군례를 올리는 항미원조 로병의 비장한 모습을 보면서 가슴 찡했던 적이 있다. 이는 조선전쟁에서 전사한 19.7만명 지원군 충혼들에게 올리는 군례인 동시에 영구불멸할 ‘중국인민의 위대한 정신’을 우러르는 경례이기도 하며 따라서 《장진호》 제작팀에 드리는 감사의 뜻이기도 하다.       .2.       장진호전투는 중국인민지원군 제9병단이 2주간에 걸쳐 조선 개마고원 장진호일대에서 미국 제10군단을 포위 하여 벌린 대작전이다. 이 작전에서 미군은 1.7만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미군력사에서 류례를 찾기 어려운 참패를 당했다. 당시 미국언론은 장진호전투를 “진주만 피습 이후에 미군이 겪은 최악의 패전”으로 평하였다. 중국인민지원군 사상자도 만여명을 넘으며 특히 동상(冻伤) 등 비전투요인으로 희생된 전사자가 3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중국인민지원군 장병들이 얼마나 렬악한 환경에서 초인간적인 정신으로 미군과 싸웠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진호전투는 미군의 압록강과 두만강 류역으로의 북진을 막고 중국의 관문을 지켜낸 위대한 보가위국의 정의로운 혈전이였으며 이 전역과 더불어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에서 미제에 대항하여 벌린 정의의 전쟁은 결국 미국이 ‘백기’를 들고 정전담판장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장진호》  영화는 우리 국민들한테 71년 전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전쟁이 우리 나라에 어떤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평화에 대해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깊이 생각케 하는 교과서로 되며 위대한 정신의 심벌로 우리 국민을 궐기시키는 촉매제로 될 것이다.       .3.       연변은 두만강을 사이두고 조선반도와 마주하고 있는 변경지역으로서 중국과 조선의 교두보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조선전쟁이 터졌을 때 연변은 미제의 공중폭격에 그대로 로출된 준전선이였다. 화룡의 용화, 숭선을 비롯한 변경마을은 미군폭격기의 피해지역이였다.   만약 중국인민지원군이 미제의 북진을 차단하기 위한 장진호전투를 승리로 이끌지 못했을 경우 미제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거침없이 압록강, 두만강까지 밀고 왔을 것이고 그 후에 어떤 사태가 닥칠런지는 예측 불가했을 수도 있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막대한 희생이 두만강, 압록강 방선을 지켜낸 것이다.   조선전쟁은 연변사람들에게 결코 두만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였다. 연변은 이미 전쟁의 포화에 휘말려있었 던 것이다.   3년 항미원조전쟁에서 연변의 9434명 아들딸들이 지원군에 참군하였고 작전부대를 제외하고도 5740명이 종군공작대, 종군번역, 간호원, 운수대, 담가대, 자동차대에 편입되여 조선전쟁 최전선에서 뛰였으며 10만여명의 민공들이 조선에 나가 교량복구, 도로구축, 방공굴시공 등 공사에 투입되였다.   역시 연변은 로혁명구다웠다. 1950년 겨울부터 1951년봄 사이 연변지구에서 참군 등록한 젊은이는 연변청년 총인수의 65.1%를 차지하였고 조선족청년은 거의 전부가 징집에 응하여 등록하였다. 가렬처절했던 항미원조 전장터에서 연변 여러 민족 인민의 아들딸들 6981명이 희생되였는데 그 가운데 조선족렬사가 98%를 차지한다. 장진호전투에서만 희생된 조선족렬사가 6명이나 된다.   이 가슴 뭉클한 연변의 ‘항미원조 보가위국’ 투쟁력사는 다시한번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라는 연변 상징 아이콘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담체로 된다.   력사는 인간의 기억 우에 시간에 의해 씌여진 전설시라고 한다. 연변의‘항미원조 보가위국’ 투쟁사는 반일 항일전쟁, 해방전쟁 투쟁사와 더불어 연변의 홍색성격을 형성하는 혁명력사 유전자라고 할 수 있다. 이 혁명력사 유전자는 선대들이 후대들에게 남겨준 가장 값진 혁명유산으로서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하는 리유이다.   지금 세계는 백년 미증유의 대격변기에 들어서고 있다. 71년 전 조선전쟁의 포연은 사라졌지만 우리 나라와 미국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동서방 반중국 세력을 대거 규합하여 동해, 대만해협, 남중국해에서 ‘중국위협론’을 고조시키고 중국 ‘핵심리익’에 대한 도발수위를 높히고 있으며 ‘대 중국 제재’에 혈안이 되여 새로운 ‘랭전’기류를 로골적으로 팽배시키고 있다.   오늘의 중국은 71년 전의 가난했던 중국이 아니다. 그 가난했던 시절에 미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세계를 경악케 했던 중국인민의 위대한 정신은 오늘날 강대한 중국이 미국을 괴수로 하는 반중국 세력의 그 어떤 도발망동에 태연히 대처할 수 있는 ‘정신원자탄’으로 거듭날 것이다.   장진호, 위대한 항미원조정신이 보가위국의 관문을 지켜냈고 연변의 자존심을 살려냈다. 장진호는 그 위대한 정신의 심벌로 자리매김하면서 오늘날 매력적인 변강강토를 건설하는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의 정신적 지탱점으로 되고 있다.   장진호, 위대한 정신의 심벌로 이 땅에 영원하리라. 연변일보  
100    신앙과 감당 댓글:  조회:1001  추천:0  2021-07-01
  신앙과 감당 채영춘 1 공화국과 더불어 태여난 우리 세대는 어린시절부터 당과 인민에 충직한 혁명영웅들을 높이 추앙하던 격정의 풍토에서 자라왔다. 그 시절 홍색경전 소설 《붉은 바위》가 필자의 뇌리에 각인시켜준 인물형상 세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손톱눈에 참대바늘을 박아넣는 국민당반동파의 육체적 혹형에도 끄떡없이 조직의 비밀을 지켜낸 강설금이였고 다른 한 사람은 당의 지령에 따라 신분을 감추고 오랜 세월 미치광이로 가장한 채 정신적 시련을 이겨내며 당조직과의 접속을 성사시킨 화자량이였다. 또 한 사람은 혁명을 배반하고 지하당조직을 팔아먹은 무치한 변절자 포지고였다. 애증관이 갓 싹트기 시작하던 어린시절이라 필자의 혁명자에 대한 숭배와 배신자에 대한 경멸은 지극히 단순하였다. 혁명투사들을 만민이 우러르는 영령으로 떠오르게 하고 혁명의 배신자들을 인간쓰레기로 추락되게 한 사상적 원인은 무엇인가를 고민할 나이까지는 아직이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중경의 ‘사재동’, ‘백공관’ 집중영이 일종의 공산당과 국민당반동세력의 대립과 투쟁의 특이한 공간으로 필자 마음속에 자리잡게 된 것은 분명하였다. 인간은 육체와 사상이 복합된 특수한 생명체이다. 육체적으로 인간은 더없이 무력하다. 인간의 이 같은 육체적 한계를 보완해줄 수 있는 변수는 사상적 리념이라 할 수 있다. 십여년 전 퇴직을 앞두고 필자에게 중경땅을 밟아볼 기회가 찾아왔다. 문학작품을 통해 익혔던 ‘사재동’, ‘백공관’의 침침한 사옥, 각종 잔인한 형구와 형틀들로 즐비한 고문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감방 안을 직접 일별하면서 필자는 인간세상과 격리된 첩첩산중에 숨겨져있는 밀페된 암흑의 공간에서 강설금, 화자량과 같은 혁명지사들이 어떠한 정신적 힘에 의해 그 준엄한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안을 열심히 류추해보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신앙의 힘이였다. 당의 위업에 대한 절대적 신앙,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 이를 신봉하는 공산주의자로서 죽음도 초개로 여기는 그 같은 초연한 자세, 바로 그것이였다. 어린시절 소박한 영웅숭배사상에 머물렀던 《붉은 바위》 혁명지사들의 피어린 업적을 ‘신앙’이라는 무형의 힘으로 귀납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단두라도 두렵지 않다.”는 하명한의 유명한 시구로 ‘사재동’, ‘백공관’ 혁명지사들의 정치적 신앙을 나름대로 조명할 수 있는 인식단계를 소화할 수 있어 퇴직을 앞둔 한 공산당원으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2 “영원히 당을 배반하지 않겠다.”  중국공산당 입당선서문 마지막 구절이다. 당에 대한 불충과 배반은 당원의 정치적  신앙에 금이 갔거나 퇴색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신앙은 어떤 경우에도 당원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이다. 우리 주변에는 정치풍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신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당에 대한 신앙을 변치 않은 우수한 당원들이 많다. 먼 실례는 젖혀두고라도 우리 민족문학의 거목인 김학철옹이 바로 당에 대한 신앙을 굽히지 않고 멋진 삶을 살다 간 대표적 위인이 아닐가 생각한다. 1940년 스물네살 나이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김학철옹의 인생길은 험난한 가시밭이였다.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으로 태항산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일제의 포로로 일본 나가사끼형무소에 끌려가 옥고를 치르며 결국 상한 다리를 절단하고 나머지 인생을 협장에 기대여 살아야 하는 불굴의 투사, 하지만 1957년 반동분자로 숙청되는 비극을 겪으면서 10년간 징역살이, 24년간 강제로동의 억울함을 감내하면서도 당에 대한 신앙을 굽히지 않고 결국 1989년 일흔세살 나이에 다시 중국공산당 당적을 회복한다. 맹종과는 담을 쌓고 확실한 정치적 후각에 의해 맹렬하고 지속적으로 회전하는 김학철옹의 정신적 신앙의 프로펠러, 그의 독창적이고 도고한 로공산당원으로서의 자세와 배짱은 후대들에게 신앙이 녹쓸지 않도록 시시각각 자아관리에 힘쓰라는 생동한 인생훈화가 아닐 수 없다. 한 인간의 정치적 신앙은 마음속에 고즈넉이 간직되고 뿌리내린 령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행위를 리성적으로 통제하고 감당하도록 지켜주는 사상보루가 아니겠는가?   3 세계는 지금 백년 미증유의 대격변 길목에 와있다. 건당 100돐을 맞는 중국공산당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준엄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굴기’에 심기가 더없이 불편한 미국은 동서방 반중국세력을 대거 규합하여 이른바 인권문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안전문제를 들먹거리며 ‘중국위협론’을 공공연히 부풀리고 있다. 그 리면에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와 중국공산당 정당체제를 뒤엎으려는 사악한 저의가 깔려있다. 우리의 정치적 신앙이 절대 드놀아서는 안되는 리유이다. 새로운 ‘랭전’기류가 팽배하고 있는 이 시각, 우리 당은 ‘두가지 100년’ 분투목표의 력사적 변곡점에서 ‘코로나19’와의 단계적 승리와 빈곤해탈 난관공략전 승리에 뒤이어 차분하게 향촌진흥전략, 전면적인 초요사회 건설 전략을 풀어나가며 ‘중국꿈’ 실현을 위한 내실을 다지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변은 ‘중국꿈’ 실현과 무관한 별천지가 아니며  연변의 17만 6천명 여러 민족 공산당원들은 이 격변력사의 아웃사이더(局外人) 또는 방관자가 아니라 정치적 신앙과 감당의식이 안받침되고 창의력과 헌신성이 뛰여난 인사이더(局中人), 실천자들이다. ‘연변꿈’은 ‘중국꿈’의 구성부분이다. 새 연변금자탑 내실은 당에 대한 굳은 믿음에 토대한 신앙과 감당의식으로 뭉친 연변사람들의 건강하고 력동적인 움직임으로 다져져야만 그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 연변사회의 반듯한 정신문화풍토가 정착해야 놀라운 경제성장과 기적이 창조될 수 있고 조화롭고 강건한 사회발전의 대세가 안주할 수 있으며 서방 반중국세력에 강경 대응하는 우리 나라 동방교두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대외개방 전초기지로 발돋음한 연변, 전방위적으로 세계 속에 로출돼 있는 연변, 백년 미증유의 대격변시대에 광범한 공산당원들과 여러 민족 인민들은 주당위와 주정부의 령도 아래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신앙을 분명히 하면서 서방의 패권에 자각적으로 대응하는 성숙된 의식으로 우리 당이 제시한 위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변일보 
99    홍색생태문화와 향촌진흥 전략의 ‘이중주’ 댓글:  조회:1169  추천:1  2021-06-03
일전에 홍가(红歌) 탄생 55돐 기념 행사 참가차 화룡 숭선에 다녀왔다. 두만강 여울소리가 고즈넉히 배인 변강 새 농촌 마을의 황홀함이 풍기는 서정,  50여년 전 ‘강물을 가로막아 산에 올린’ 유명한 원봉수로를 따라 줄기차게 흐르는 생명수가 전하는 격정도 매혹적이였지만 군함산풍경구 종합개발로 새롭게 탈바꿈하는 변강 향촌의 생태문명풍경선은 숭선사람들의 리념변화를 실감케 하는 감동현장이였다. 향촌진흥의 어려운 숙제를 풀어가는 숭선사람들의 진지한 자세는 55돐 기념 좌담회 기획에서 잘 드러나고 있었다. “강물을 가로막아 산에 올리네”의 가사원형지라는 점을 십분 살린 이번 좌담회는 변경 향촌의 ‘홍색문화, 농경문화, 두만강문화, 변경문화의 문화적 내포를 더한층 풍부히 한다.’는 구상을 향촌진흥 전략과 접목시키기 위한 멋진 발상의 기획물이였다. 다시말해 ‘홍가 발표 55돐 기념’은 일종의 담체이고 ‘홍색문화, 농경문화, 두만강문화, 변경문화’와 향촌진흥 전략의 도킹을 이루어내기 위한 건언헌책(建言献策)이 실질적 ‘노림수’인 셈이라 할 수 있었다. 막연한 시도처럼 보였지만 뚜렷한 목적성을 띈 확실한 구상이였다. 모임에 초청받고 전국 각지에서 구름처럼 모여온 중앙과 성, 주의 지도자, 전문가, 교수, 민속학자, 화가, 촬영가, 기업가, 언론인 등 유명인사들, 좌담회 주제에 맞춰 알심 들여 준비한 회의 론문집과 깔끔한 회의 사전 준비, 일사불란하게 펼쳐낸 군함산풍경구 개발현장과 두만강류역 답사활동, 진지하고 열렬한 회의 토론분위기는 이번 모임의 취지에 애써 접근하려는 숭선진 활력 넘치는 지도부의 굳은 의지와 기대가 비쳐있었다. 한마디로 향, 진에서 기획하고 추진한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급 행사였다.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홍색문화, 농경문화, 두만강문화, 변경문화’와 향촌진흥 전략의 접목이 미완성숙제로 남는 아쉬움을 주었지만 일단은 이것을 문제화했고 공감대를 이뤘다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 연변의 몇몇 향진을 답사하면서 풍부한 홍색생태자원과 력사유적지자원이 아직까지 답보상태에 있는 지역이 꽤 많은 데 대해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 대신 향, 진 지도부들의 긍정적인 인식 변화 흐름을 감지할 수 있어 기대가 되였다. 그만큼 연변 홍색자원의 어마어마한 저력이 멀지 않아 찬란한 력사, 인문, 자연경관의 파노라마로 펼쳐지면서 홍색관광의 멋진 혁명박물관 문화로 둔갑되리라는 희망으로 한껏 부풀었었다. 숭선의 경우, 이제 우리의 노력으로 군함산풍경구 종합개발 청사진에 동북항일련군 피어린 투쟁의 력사현장인 홍기하항일전적지를 비롯한 혁명전적지 건설이 포진된다면 숭선의 향촌진흥 전략은 홍색관광문화의 견인으로 힘찬 도약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먼 후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에 즈음하여 우리 당 력사를 다시 되새기는 붐이 일면서 우리 주 홍색관광자원 개발이 빛을 보고 있지 않는가? 홍색관광자원 개발은 빈곤퇴치 난관공략의 전면적인 승리와 더불어 서서히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향촌진흥 전략과 멋진 이중주를 이루면서 연변대지에 생기를 부여해주고 있다. 우리 주 대부분 홍색문화자원이 도시가 아닌 농촌에 포진돼있는 점을 감안할 때 연변 향촌진흥 전략이 홍색생태문화를 주축으로 하는 복합형 생태문화의 부상에 힘입어 엄청난 탄력을 받게 되리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 이는 연변 향촌의 독보적인 홍색풍경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풍경선’ 대부분이 문화적 승화를 거치지 못한 원초적인 현상에 머물러있다. 이제 우리는 문화적 시각으로 이 독보적인 홍색생태를 보듬어 ‘마을마다 렬사비’ 풍경선을 엄숙하고 비장한 애국주의 추모공간으로부터 마을마다에서 가장 수려하고 쾌적하며 심신을 도야할 수 있는 경건한 홍색문화 테라스로, 세인들이 우러르며 체험할 수 있는 숭고한 홍색관광문화명소로 격상시켜 진정한 의미에서 홍색유전자의 문화적, 정신적 가치전환을 이끌어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 문화는 일종의 정신가치와 생활방식의 생태공동체로서 루적과 안내를 거쳐 집체인격을 형성하게 된다. 홍색생태문화와 향촌진흥 전략 ‘이중주’에서 가장 절박한 것은 촌민들의 ‘집체인격’이다. 우리 농촌이 빈곤해탈 난관공략을 거쳐 향촌진흥의 원대한 목표로 전환하자면 문화에 의한 촌민 ‘집체인격’을 비껴갈 수 없다는 말이 된다. 홍색생태문화와 향촌진흥 전략의 ‘이중주’를 연주함에 있어서 향, 진과 촌 지도부는 ‘악대지휘’이고 촌민 모두는 ‘악사’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수준급 지휘자라고 해도 ‘집체인격’으로 뭉친 수준급 악사들의 배합이 없다면 ‘이중주’는 불협화음의 초라한 실패작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농촌 공동화(空洞化)는 홍색생태문화와 향촌진흥 전략 ‘이중주’ 야심작 연주에서 비껴갈 수 없는 걸림돌이다. 빈곤해탈 난관공략을 거친 새 농촌의 매력적인 겉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청장년들이 빠져나간 우리 농촌 공동화 실상의 장기화는 우려스럽다. 경작지를 양도받은 타지방 사람들에 의해 향촌진흥 난제를 풀어나간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빈곤해탈 난관공략에서 우리 주는 ‘귀향창업 만인계획’ 프로젝트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새농촌건설의 핵심포인트는 사람이라는 점이 강조된 이 프로젝트가 향촌진흥 전략에서 계속 긍정적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홍색생태문화와 향촌진흥 전략 ‘이중주’를 연주함에 있에서 ‘외출’한 우리 ‘악사’들을 적극 불러들이는 것이 첫 순위로 놓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외로무인원들은 다년간 해외로무에서 돈보다 더 값진 창업 경험과 실적을 축적하였다. 이들은 당연히 연변 농촌진흥의 소중한 전략자산으로서 그들의 ‘원대복귀’는 홍색생태문화와 향촌진흥 전략 ‘이중주’라는 이 세기적 연변 ‘대연주’ 프로그램에서 굉장한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홍색생태문화와 향촌진흥 전략의 ‘이중주’, 그 멋진 서막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 매혹적인 연주로 찬란히 떠오르는 새 연변의 모습이 기대된다. 연변일보 
98    역경에 도전하여 펼쳐낸 <새봄의 축복> 댓글:  조회:1029  추천:0  2021-02-19
역경에 도전하여 펼쳐낸 -2021년 연변TV 음력설문예야회 인상 □ 채영춘 “고화질 초대형 스크린으로 담아낸 미국, 일본, 한국 등 해외의 조선족들이 토로한 새해 소망은 지구촌 조선족들의 한결 같은 념원을 대표하였고 온라인 시청자들과 뜨거운 공감대를 이루어냈다.”   1 코로나와의 대결이 멈추지 않은 역경 속에서 맞은 신축년 음력설, 2021년 2월 12일 저녁 7시 30분, 지구촌 조선족의 기대와 소망을 안고 제37회 연변TV 음력설문예야회가 조선족들의 안방을 찾았다. 전염병 격리와 서로의 거리두기로 뒤숭숭한 상황에 민족 최대의 문예향연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하는 우려와 궁금증이 증폭돼있는 시점에 펼쳐진 음력설야회여서 해내외 조선족사회의 반응은 뜨거웠다. 코로나에 기죽지 않고 음력설 저녁 어김없이 지구촌 조선족 시청자와 함께 한 음력설문예축제는 조선족사회 건재와 활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음력설야회를 동요없이 펼쳐냈다는 자체가 코로나 역경을 이겨내리라는 조선족사회의 도전정신과 자신감을 잘 드러낸 반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코로나사태가 심각한 해외의 조선족들에게 올 연변TV 음력설야회는 심신을 거뜬하게 한 청량제였다. 총 256분이라는 장황한 시간이였음에도 “지루한 감을 전혀느끼지 못했다.”고 해외 조선족들이 입을 모을 수 있은 것은 연변TV 음력설야회가 비상시기 그들의 따뜻한 정신적 안식처로 되였기 때문일 것이다. 2021년 연변TV 음력설문예야회가 특별히 신경을 써 마련한 풍부한 시각향연은 역경을 헤쳐나가는 해내외 조선족사회에 선물한 문화단설기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고 조선족사회는 진정 어린 대형 기획물에 응분의 높은 평가를 주었다.   2 ‘코로나19와의 대결 속에서 해내외 조선족사회를 골고루 포용하고 중국조선족사회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터’— 2021년 연변TV 음력설문예야회 연출제작진이 풀어나가고저 고심한 핵심 키워드였다. 올 음력설야회는 지난해에 이어 이 면에서 보다 성숙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조선족의 감동 한마당을 창출해냄에 있어서 연변이란 제한된 지역이 아닌 중국조선족사회 전반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감대에 시각을 맞춰야 한다. 형식과 내용에 민족적 특성이 풍부하게 담긴 전통적인 노래로 민요를 꼽을 수 있다. 이번 야회에서 스승과 제자들이 열창한 민요련창 , , , , , , 등 조선족들이 익숙한 ‘우리 노래, 고향노래’ 가락으로 조선족들의 마음에 다가갔다면, 가무 은 ‘아리랑으로 하나되는 우리’, ‘이 세상 둘도 없이 아름다운 우리의 영원한 18번 아리랑’으로 조선족 감동의 즉흥쇼 화면을 만들어냈으며, 고향의 사계절 노래— , , , 은 ‘코로나 때문에 고향에 오고 싶어도 오시지 못해 애타하는’ 이역땅 조선족 동포들에게 따뜻한 고향정을 전달해주었다. ‘외로이 타향에서 나그네 신세, 명절마다 집안식구 더욱 그립네.’ 올해에도 산재지역과 해외 조선족사회는 음력설야회가 알심들인 부분이였다. 원정촬영팀이 해림, 대련, 청도, 장춘 등지에서 보내온 산재지역 조선족들의 흥미진진한 설맞이 모습, 향항, 한국, 일본, 브라질 등 나라와 지역에서 조선족가수들이 고향을 그리며 열창한 은 생방송 라이브와 흡사한 방식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조선족의 감동 한마당을 도출해내여 우리 모두에게 중국조선족의 끈질긴 생존저력을 확인시켜주었으며 ‘비록 몸은 서로 떨어져있고 간 곳은 서로 달라도 우리의 마음은 오로지 한곬— 마를 줄 모르는 영원한 정감의 수원지 고향으로 흐르고 있음을’(야회멘트) 심장으로 느끼게 하였다. 해외와 국내 산재지역 조선족들이 고향에 보내온 새해 축복메시지영상과 연변조선족들의 새해 위문인사 장면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조선족의 디아스포라 삶의 현장을 피부로 느낌과 동시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동족동근의 의미를 가슴깊이 새길 수 있었다. 가슴 뭉클한 이 같은 산재지역 설맞이 모습과 이역땅에서 보내온 영상메시지는 국내 그 어느 설맞이문예야회에서도 볼 수 없는 중국조선족만의 삶의 진풍경으로서 지구촌 조선족들을 끈끈이 이어준 사랑의 동아줄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3 연변TV 음력설문예야회는 조선족을 위해 기획되고 조선족과 호흡을 함께 하는 야회 프로그램이다. 때문에 조선족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시청자와 프로그램 제작진간의 량방향 방송형식으로 야회현장감을 최대한 살려 야회무대와 시청자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는 것은 음력설야회가 시청자의 호응을 최대한 이루어내는 관건이라 할 수 있다. 2021년 연변TV 음력설야회가 이 면에서 보여준 시도는 일품이라 할 수 있다. 해외 조선족은 중국조선족의 중요한 구성부분이다. 고화질 초대형 스크린으로 담아낸 미국, 일본, 한국 등 해외의 조선족들이 토로한 새해 소망은 지구촌 조선족들의 한결 같은 념원을 대표하였고 온라인 시청자들과 뜨거운 공감대를 이루어냈다. 연변TV 음력설문예야회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사상 최초의 오디션무대- 는 타이틀 자체 만으로도 음력설야회의 살아숨쉬는 듯한 률동을 느낄 수 있었다. 총 300명 지원자들의 치렬한 예선경쟁을 거쳐 야회 본선 무대를 장식한 최종 12명 진출자들은 그야말로 끼와 열정으로 뭉친 청춘스타들이였고 그들이 선물한 , , , 은 올 음력설야회를 젊음으로 빛나게 하였다. 경쟁에 참여한 지원자나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금까지 음력설야회 무대를 프로연예인들의 전매특허 무대인 줄 알았는데 그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우리도 야회무대에 설 수 있어 영광이라면서 희열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라지오TV방송국의 ‘열린 연출감각’이 일궈낸 참신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4 연변TV 음력설문예야회 무대에 올린 노래와 춤, 기악과 소품, 예능한마당과 영상메시지, 마술과 구기 등 프로그램들은 ‘새봄’의 기운을 빌어 약동하는 현실생활을 무대화하고 장쾌한 예술 감화력으로 시청자들을 결속시키며 개척창조의 용기로 시대적 의미를 도출해내기에 최선을 다하면서 야회의 주제를 웃음과 감동으로 엮어냈다. 다재다난했던 2020년은 연변조선족들이 너나없이 절실한 감수와 경력을 갖게 한 특별한 해이다. 코로나 예방, 통제, 빈곤해탈, 당창건 100돐 특정년도주제를 무대화하기 위한 프로 배치나 멘트(主持词)의 설정에서 새시대 연변의 기상이 야회무대에서 유감없이 흘러넘쳤다. 선명한 시대적 주제를 경직된 구호식이 아닌 센스 있는 예술적 감동으로 담아내기 위한 노력은 음력설야회의 질적인 승화를 부추킨 한차례 성공적 시험으로 이어지게 하였다고 생각한다. ‘새봄’의 이미지에 걸맞게 이번 음력설야회는 출연진 구성에서 강렬한 청춘기백이 약동하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의 신선함을 추구하였다.   연대예술학원 학생들을 주축으로 꾸며진 활기찬 오프닝 무대 중앙음악학원 허창 테너의 과 천진교향 악단 황현순 소프라노의 과 더불어 펼쳐낸 건 당창건 100돐 기념 대형 가무콘서트 원 아리랑그룹 김군룡 가수와 나젊은 12명 댄서들이 만들어낸 가무무대 스승들과 함께 하는 예술학원 제자들의 신들린 듯한 민요련창 코미디맨과 아나운서들 인기폭발의 예능대결 한마당 젊음이 톡톡 튀는 레이저 댄스무대 끼와 열정으로 뭉친 젊은 이들의 무대… 청춘의 활력과 패기가 넘치는 이러한 프로들은 새시대 조선족의 정감과 기질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언어류 프로는 조선족의 현실생활과 관심사를 둘러싸고 감명 깊은 스토리, 해학과 유머가 넘치는 웃음과 사색의 한마당을 만들어냈다. 농촌주재 제1서기와 촌민들의 따뜻한 관계를 감칠맛 나게 다룬 소품 , 코로나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음식점을 화두로 도시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을 보여준 소품 , 젊은 세대와 부모세대의 생활관을 재미있게 엮어낸 소품 , 도시인들의 갈등과 그 해소과정을 통해 조선족들의 진실한 생활태도와 반성자세, 관념변화를 펼쳐보인 소품 , , 등 언어류 프로들은 올 음력설야회에 대한 시청자들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한몫 하였다. 올 음력설야회의 인기프로로 둔갑한 마술공연은 단순한 특기 자랑에 국한하지 않고 공연 전과정에 민족정서가 다분한 음악을 반주로 깔고 남녀 파트너의 화려한 춤을 곁들였으며 구기(口技) 장끼자랑은 전통적인 성대모사의 연기가 아니라 파트너의 주문에 따라 산 좋고 물 맑은 연변산천, 시골농가의 모든 정다운 소리, 의 갖가지 먹거리를 구기로 핍진하게 살려내여 시청자들에게 재치와 놀라움, 즐거움의 무대를 선물하였다. 온라인 시청자와 네티즌들은 올 연변음력설야회가 ‘사상심도(深度), 정감온도(温度), 예술고도(高度)를 겸비한’ 문화성찬이였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5 코로나19는 제37회 연변TV 음력설야회를 문예향연과 더불어 과학기술혁신의 성연으로 되게 하였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의한 과학기술과 예술무대의 융합, 창의력에 의한 야회 내포 의미의 확장은 광범한 관중들이 참신한 기분으로 문예향연장으로 향하도록 안내할 수 있었으며 클라우드 화상채팅플랫폼으로 관중과 연예인 사이에 련결고리를 구축할 수 있었다. 코로나사태로 빚어진 전세계적인 인원 이동제한과 방역, 통제의 온텍트시대에 걸맞게 연변라지오TV방송국 사상 최초로 5G 통신기술에  힘입어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 시청자들과 네트워크화하여 펼쳐낸 랜선시청의 이색적인 풍경, 전통과 현대, 미래를 아우르며 시공간을 뛰여넘는 화려한 무대, 이 모든 변화는 광범한 시청자들에게 있어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올 음력설야회 스튜디오 관중석에 최초로 선보인 100여쪽의 초대형 고화질스크린은 광범한 시청자들이 감각기관 체험을 갱신시키는 파격적인 경이로움을 만끽하게 하였는 바 이는 연변TV 음력설문예야회 관람문화의 새 지평의 도래를 예고하였다. 올 음력설야회는 전반 미디어전파시스템 연장선에서 새 매체 전파의 출현을 이끌어냈는 바 이는 연변라지오TV 방송전파수단의 혁명적 쇄신을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월 12일 저녁 7시 30분, 제37회 연변TV 음력설문예야회 는 연변라지오TV방송국 위성채널, 연변TV 종합채널, 연변라지오TV방송국 사이트, 위챗공식계정, 연변뉴스 애플리케이션, 그리고 중앙TV동영상이동네트워크, 신화사 클라우드,  , 틱톡, 스낵비디오 등 국내 뉴미디어 플랫폼에서 동시 방송되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우리 방송이 아날로그로부터 디지텔, 다매체 인터넷시대로의 전환이 전격적인 흐름을 타고 있는 반증이라 하겠다. 이제 3년 후면 연변TV 음력설문예야회는 오픈 40돐을 맞게 된다. 불혹의 나이에 출범하게 될 연변 TV 음력설문예야회의 매혹적인 향연이 기대된다. 지구촌 조선족사회의 관심과 사랑으로 새롭게 탈바꿈할 중국조선족의 종합문예 브랜드— 연변TV 음력설문예야회의 래일을 축복한다. 연변일보 
97    ‘뿔뿔이’와 ‘풀뿌리’—화동조선족주말학교에서 느낀다 댓글:  조회:1124  추천:1  2021-01-04
‘뿔뿔이’와 ‘풀뿌리’는 어원이나 의미에서 전혀 색다른 단어임에도 쌍둥이처럼 안겨오는 데는 아무래도 우리 민족의 근성과 생태를 떠올리는 그 무언가가 잠재해있는 까닭이 아닐가 싶다. ‘뿔뿔이’의 흩어져떠나간다는 의미와 달리 ‘풀뿌리’는 식물체를 땅에 고착시키고 물과 영양물질을 흡수하여 생장조절 물질과 식물호로몬을 합성하여 번식기능을 수행하는 끈질긴 정착력의 대명사로 인식돼왔다. 그러니까 ‘뿔뿔이’는 떠난다로, ‘풀뿌리’는 고착된다로 완전히 상반되는 뜻을 담고 있다. 전혀 색다른 의미의 단어지만 조선족의 150여년 력사에 신통히 걸맞은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150여년 전, 우리 선인들은 살길을 찾아 ‘뿔뿔이’ 중국땅으로 이주하여 들어와 개척의 첫 괭이를 박으면서 중국조선족의 억센 ‘풀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150년 후, 글로벌시대에 부응한 조선족 후예들은 해외와 국내 여러 지역으로의 ‘뿔뿔이’ 대이동으로 새로운 디아스포라 다문화 삶의 ‘풀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뿔뿔이’와 ‘풀뿌리’ 사이를 합성시키는 련결고리가 민족교육이 아닌가 한다. 다시말해 ‘풀뿌리’를 낯선 땅에 내리기 위한 점착제와 같은 기능이 민족교육의 힘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1906년 중국조선족 근대교육의 효시로 되는 서전서숙을 불씨로 지펴진 근대 민족교육의 불길은 조선족이 뿌리를 내린 동북지역에 470여개의 조선인 사립학교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면서 중국조선족 ‘풀뿌리’ 정착을 위한 정신적 밑거름으로 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조선족의 이동과 정착을 동반한 민족교육 향학열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그 어떤 렬악한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삶의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한 내적 동력이였다. 개혁개방 이래 단일한 동북지역 조선족 거주 구도가 변화돼 국내 연해지역으로 폭넓게 확산세를 타면서 우리 민족 지성인들의 향학열은 국내 심장부에서 새로운 흐름을 탄다. 일전에 필자는 SNS을 통해 화동조선족주말학교의 멋진 활약상을 읽으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세계가 주목하는 국제도시 상해에 보란듯이 오픈한 조선족주말학교가 내건 슬로건이다- “우리 말과 글 배움의 요람, 전통문화 전승의 거점, 글로벌경쟁력 함양의 장, 민족정체성 보전의 보루!” 연해지역 도시의 조선족인구는 급증하고 있지만 민족교육 기관이 거의 없는 이런 도시에서 우리 말, 우리글 이 조선족 어린이들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으며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 ‘우리 말 벙어리’, ‘우리 글 문맹’이 량산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제동을 걸기 위한 대안으로 발족시킨 조선족주말학교이다. “말로만 중요성을 강조하고 리론적 연구에만 그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설립한 상해조선족주말학교가 그 영향력이 확대되여 화동조선족주말학교로 변신하면서 올해로 10년을 맞는다. 그 선두에 복단대학 박창근 교수가 총대를 메고 있다. 뛰어난 지략과 식견, 탁월한 학문적 수양을 겸비한 ‘천재’로 소문난 명문대 교수가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여 여생을 화동지역 조선족 어린이들과 함께 한다는 집념으로 벌리고 있는 거사를 두고 필자는 ‘뿔뿔이’ 흩어져있는 화동지역 조선족들을 민족교육의 힘으로 통합시켜 중국대지에 억센 ‘풀뿌리’로 뿌리를 내리도록 이끄는 21세기 화동의 ‘서전서숙’을 떠올리게 한다. 올해초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할 때에도 화동조선족주말학교는 ‘온라인 수업’ 방식을 도입하여 3월초에 개학개강하였고 6월초부터는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였으며 9월에 시작된 제2학기에는 ‘대면수업’으로 전문 복귀하였다. 코로나 19가 창궐했던 때에도 화동조선족주말학교의 수업은 멈추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2020년의 승자는 코로나가 아니라 우리다!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승리는 우리 민족 차세대, 차차세대의 우리 말과 글 및 전통 문화교육에 대한 의지와 열정, 헌신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하였고 이러한 의지와 열정, 헌신정신의 현실화에 기여한 옳바른 방안, 방법과 방식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화동조선족주말학교 교장 박창근 교수의 자랑찬 독백이다. 연변은 전국의 유일한 조선족자치주로서 나라의 민족자치법과 민족어문 정책의 혜택을 받는 고장이다. 우리 나라의 민족어문 정책은 1954년에 헌법에서 법규로 규정된 이래 현행헌법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 1982년에 제정된 현행헌법은 4차에 걸쳐 일부 수정되기는 했지만 민족어문 정책과 관련된 내용만은 한마디도 수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참으로 좋은 정책을 향유하고 있어 맘만 먹으면 조선족 언어문자와 관련하여 많은 실제적인 일들을 해낼 수 있다. 올해에 필자는 주안의 몇몇 조선족 촌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빈곤해탈 공략전을 거친 시골마을들은 깔끔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반기고 있었다. 하지만 촌의 공중장소와 길 량켠에 세워진 계시판과 표어판, 회의실  안팎에 울긋불긋 도배된 각항 제도, 건강지식을 망라하여 모든 글들은 청일색 한어로 되여있었다. 조선족이 대부분인 촌이라 한어글을 알아보는 촌민들이 극소수에 불과해 아쉬운 점이 많았다. 연변은 조선족자치주이다. 자치주면 응분한 역할을 발휘해야 한다. 중국조선족의 구심점으로서의 책무감을 명기하고 우리 자신의 확실한 ‘풀뿌리’의식으로 ‘뿔뿔이’ 흩어져가는 조선족사회를 정신적으로 융합시키기 위한 반듯한 민족 언어문자 교육 성채의 구축, 우리 연변이 감당해야 한다. 화동조선족주말학교가 주는 계시이다.
96    애국주의 단상 댓글:  조회:1290  추천:0  2020-10-29
[두만강칼럼] 애국주의 단상 채영춘 얼마전에 중국조선어정보처리학회 리사장 현룡운씨가 한국의 한 우리말 우리글 관련 행사에서 ‘화관문화훈장’ 수훈자로 선정되여 포상받았다. 현룡운씨는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알아주는 조선어정보처리 권위자이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조선언어문자의 정보기술국제표준화 교류협력을 위해 조선과 한국을 100여차 방문하고 중국에서만 20여차의 국제학술교류협력회의를 개최하여 1,000여명의 국내외 학자들과 많은 교류를 진행해옴으로써 국내에서는 조선족을 대표한 조선어정보처리 ‘발언인’으로, 국외에서는 중국의 립장을 대표하는 조선어정보처리 ‘대변인’ 역할을 해온 공신이라 할 수 있다. 현룡운씨가 ‘화관문화훈장’ 수훈자로 이름을 올린 것은 개인의 영광이고 중국 조선족의 자랑이면서 나아가서 우리 나라 소수민족정책의 위대성을 구현시킨 애국주의 장거이기도 하다. 오늘날 조선반도의 7,700여만 조선(한국)인을 제외한 700여만(조선족, 고려인 등)이 전세계 백여개 국가에 분포되여 살고 있다. 그런데 백여개 국가에서 민족자치권리를 행사하는 나라는 중국 밖에 없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전세계에서 유일한 조선족자치주이다. 연변대학 최윤갑교수에 이어 현룡운씨가 포상받은 ‘화관문화훈장’ 수훈자의 영예에는 어찌 보면 조선족이 자민족언어문자를 지켜나가도록 베풀고 있는 세계 유일의 우리 나라 소수민족정책에 대한, 우리말과 우리글이 건강하게 전승 발전될 수 있게 마련된 정치문화풍토에 대한 해외의 긍정과 격찬의 뜻이 담겨있다. 우리 나라의 민족어문정책은 1954년도 헌법에서 법규로 규정된이래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단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 1982년에 제정된 현행 헌법도 4차에 거쳐 일부 수정되기는 했어도 민족어문정책과 관련된 내용만은 한마디도 수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 조선족문화의 구심점인 연변조선족자치주가 향유하고 있는 조선언어문자 관련 전략자산은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 같은 언어문자풍토에서 ‘화관문화훈장’ 수훈자가 련이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중국의 민족어문정책에 대해 고마와해야 하며 이 정책을 잘 받들어나가는 것을 민족사명감으로 대해야 한다. 조선족구성원으로서 우리 나라의 일관한 민족정책과 민족어문정책을 모범적으로 관철 집행하고 민족어문사업을 전승 발전시키고 대외에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야말로 애국주의의 전형적인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민족대이동으로 조선족 언어, 문자 관련 분야들이 줄 지어 충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조선족사회 문화교육권이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벌리고 있는 필사적인 노력은 새로운 력사시기 숭고한 애국주의 전형 사례라고 본다. 지금은 민족언어의식의 확고한 정착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할 때이다. 언어의식은 민족구성원들의 민족의식에서 가장 핵심적 요인이다. 중국 조선족이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완벽하게 꽃피워가는 이 자체가 중국 조선족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근거이고 세상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리유이기도 하다. 중앙민족대학 황유복교수는 대학 졸업생 취업이 날따라 힘든 현실에서도 중앙민족대학 조선어학부 졸업생들의 취직률이 계속 100%를 자랑할 수 있는 리유가 우리말과 우리글을 장악한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조선어 무용론’이라는 함정에서 헤여나오지 못하는 조선족학부모들이 심사숙고해야 할 대목이다. 중화민족공동체사회에서 아름다운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고 조선족정체성을 살려나가는 길은 험난하더라도 우리 조선족구성원 모두가 함께 도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에서 조선족이 계속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나는 길이고 여러 민족의 언어평등을 지향하는 우리 나라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가장 실질적인 애국주의 자세이다. 길림신문
95    《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 기획물이 주는 계시 댓글:  조회:1268  추천:0  2020-10-22
《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 기획물이 주는 계시 채영춘 국경절련휴 화룡에서 한창 창작과정을 소화하고 있는 대형 가무극 《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 리허설 회보공연을 관람하였다. 61분 길이로 연출된 공연은 비록 홍보용에 편중했다는 아쉬움을 띠고 있었고 극의 스토리와 흐름, 무대세트와 LED설계에서 아직 서투른 부분들이 더러 눈에 밟혔지만 필자는 공연  내내 감동에서 우러나는 박수갈채를 힘차게 보낼 수 있었다. 재력이 넉넉치 못한 현급에서 980여만원의 거금을 넣어 이 같은 야심작을 기획해냈다는 리유만이 아니였다. 그리고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지 않은 올 6월에 겁없이 가동하여 석달 푼한 사이에 화룡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한 깜짝 선물을 내놓았다는 놀라움 뿐만도 아니였다. 필자의 감동은 이번 공연의 예술감독과 안무를 비롯한 개별적 창작인을 제외한 배우 123명이 말짱 청일색 화룡본토 아마추어들이라는 데 있었다. “동기는 좋은데 시작도 못해보고 요절하지 않을가.”라는 성 문예단체 관계자의 서뿌른 우려를 보기 좋게 뒤집고 감동을 창출할 수 있도록 이끈 ‘주모자’는 화룡시 지도부였다. 없는 살림에 통 크게 ‘작전’을 벌렸을 바 하고는 힘들더라도 화려한 프로진영을 구사할 법도 했건만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화룡표 아마추어군단’으로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고저 한 화룡시 지도부의 뜻은 과연 무엇이였을가? 필자는 이번 화룡시 ‘작전’ 포인트는 《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 가무극의 시작을 발판으로 지난 년대 연변을 풍미했던 화룡의 ‘르네상스’ 재기를 위한 전략적 시도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력사적으로 화룡은 ‘노래와 춤의 고향’ 연변을 부각시키는 데 크게 일조 하면서 연변을 세상에 널리 알린 ‘문화홍보대사’로 유명하였다.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 《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의 경전급 선률과 더불어 형성된 문예 붐은 독무 , 2인무 , 희곡 과 같은 문예콘텐츠를 무더기로 쏟아져나오게 한 계기가 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생활맛이 다분한 예술작품들 대부분이 화룡의 농촌문예선전대에 의해 출산되였다는 점이다. 화룡의 아마추어들이 각색한 예술작품들은 그대로 연변가무단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질적 승화를 거치면서 국내무대에서 그 생명력을 과시하였다. 연변 문예부흥을 이끌어낸 산실은 기층에 뿌리를 내린 대중문예였다. 자치주 범위에서 해마다 열리던 ‘전 주 대중문예콩클’은 각 현, 시 대중문예의 붐을 일상화시킨 활력소로 정착하였다. 그 활력소의 주축은 현급 문공단들이였고 그 밑거름은 농촌문예선전대들이였다. 그 당시 ‘온돌공연’, ‘밭머리공연’, ‘작업현장공연’ 같은 대중과 호흡을 맞춘 문예단체의 기층공연은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 예술감화력은 무궁무진하였다. 물론 이 모든 대환경의 도래는 모주석의 ‘연안문예좌담회석상에서의 연설’ 정신이 실속있게 뿌리를 내린 데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우리 주 대중문예의 선두를 화룡이 지키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였다. 연변은 물론 중앙의 우리 말 방송 아나운서의 절대 대부분이 화룡풍토에서 육성되였는바 화룡은 명실공히 중국조선족화술의 고향이기도 하였다. 어느 때부터였던지 연변의 예술무대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전 주 대중 문예콩클이 사라지고 현급 문공단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면서 아마추어 예술공간도 조용히 휴면기에 들어간 듯했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오늘 화룡의 화려한 진달래국제포럼쎈터 홀에서 필자는 휴면기에 있던 아마추어예술의 분출을 앞둔 멋진 동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룡시는 분명 1968년도 산인 《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의 후광을 빌어 아마추어 배우군단으로 화룡 대중문화의 동산재기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화룡의 이번 ‘아마추어사건’이 연변의 르네상스의 본격적인 부활로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안겨온다. 문학창작의 경우 아마추어작가들의 창작열정은 작가협회 등 관계 부서의 적극적인 포용과 리드로 담보되고 있었다. 필자는 70년대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잡지사가 공동주최한 동북3성 아마추어 소설, 산문창작좌담회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이 같은 회의모임은 자주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아마추어작가들에게는 상당히 도움이 컸던 것 같다. 필자도 그 같은 모임을 거쳐 문학창작의 눈을 떴다고 할 수 있다. 미술창작 분야는 더더욱 인상적이였다. 아마추어 화가들의 활약을 힘있게 견인하는 결정적 시스템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정례화한 전 주 미술작품초고합병평의회(草图观摩会)가 아니였던가 생각한다. 프로급 화백과 아마추어화가들이 함께 하는 이 같은 작품초고평의회가 정규화되면서 아마추어들의 작품 질이 눈에 띄게 올라갔고 전 주 미술창작은 화려한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다. 필자 또한 이 같은 평의회를 거치면서 몇폭의 수상작을 거머쥘 수 있었다. 오늘날 몇몇 사람의 개인미술전시회나 외국과의 합동미술전시회는 눈에 띄지만 그제날 연변 미술창작의 격정시대를 열었던 아마추어 미술작품 초고전시평의회 같은 좋은 플랫폼은 가동이 중지된 지 오래여서 아쉽다. 사회 밑바탕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아마추어 문학예술은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주류사회의 변화를 리드하는 굉장한 저력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아마추어를 거치지 않은 프로나 장인(匠人)이란 없다. 력동적이고 건전한 아마추어 문화풍토의 구축은 인민대중과 맥락을 함께 하는 문화강주(文化强州)의 수준급 도약과 직결되여있다. 화룡 아마추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대형 가무극 《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를 두고 우리 문학예술계의 초심을 생각해본다. 실제행동으로 초심을 실천하려는 용기가 없다면 그거야말로 ‘지상담병 (纸上谈兵)’의 가식일 것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초심을 살려 가담가담 벌리는 문화캠페인들이 너무 보기 좋다. 룡정 윤동주연구회가 아마추어문학인들을 휘동하여 벌리는 항일유적지답사,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의 ‘대목산천 시의 려행’과 같은 문화행사는 기층을 무대로 하고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화룡의 멋진 발상이 침체됐던 아마추어 문화시대를 여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 프로젝트가 우리 주 문예창작의 르네상스를 견인하는 하나의 멋진 부호로 되여주기를 학수 고대한다. 연변일보 
94    도시문명건설 ‘100일 공략’ 잡담 댓글:  조회:1226  추천:0  2020-09-24
“이제야 도시맛이 난다!”   “언녕 이랬으면 좋았을걸!”   요즘 자주 눈에 띄는 시민들의 흐뭇한 표정이다. 누가 봐도 자치주 수부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차도와 인도 사이는 전부 앙증맞은 하얀 철제바자로 깔끔하게 분리되고 잡초로 무성했던 아빠트단지와 도로 사이의 지저분한 공간이 화초가 만발한 화단으로 탈바꿈하고있다. 도시 곳곳에서 낡은 주택단지 개조시공 열기가 뜨겁다. 거리 옆 일부 기관빌딩에서 내건 ‘화장실 대외개방’ 안내 표시판도 오가는 시민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사거리를 중심으로 번화거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교통경찰과 더불어 차량과 행인들의 문명출행 안내로 분주하다.   전국문명도시 건설 100일 공략전이 한창인 연길 현주소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대소사를 ‘인민전쟁’ 성향이 짙은 ‘공략전’ 해법으로 풀어왔던 것 같다. 자본주의제도에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우리만의 제도적 우세가 돋보이는 독특한 풍경이 아닌가 싶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우리 나라는 ‘봉성(封城)격리’라는 통수부의 명령에 좇아 ‘인민전쟁’의 대규모 ‘공략전’으로 전 국민이 일사불란하게 밀고나가 세계가 경탄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공략전’의 위력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전국 농촌에서 한창 뜨겁게 펼쳐지고 있는 ‘빈곤해탈 공략전’이다. ‘빈곤해탈’은 도시인들의 빈곤부축, 빈곤구제를 해법으로 시간과 목표성이 확실한 ‘공략전’ 성격을 띄고 있으며 따라서 엄격한 감독, 검수 기제가 동반되여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군대를 철수하지 않는다.’는 집요함까지 가세되여있다.   이번에 성세호대하게 벌리고 있는 ‘창성(创城)공략전’도 제도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도시풍경선으로서 100일을 기한으로 ‘문명도시건설’ 각항 기준지표를 빠짐없이 현실화시킨다는 목표성을 담고 있다.   모든 사물은 하드웨어(硬件)와 소프트웨어(软件)로 나눠져있다. 우리가 나라의 강력한 제도적 힘과 추진력으로 하나의 ‘고지’ 하드웨어를 ‘공략’할 때 소프트웨어는 팔로스폿(追光灯) 외곽의 어둠 속에 방치되여있다. 하드웨어는 시간을 단위로 한 자금의 집중투입에 의한 ‘공략전’으로 목표달성이 가능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시간과 돈으로 계산 불가능한 장구화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우리는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에 힘입어 물리적 힘으로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확인 가능한 단계적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바이러스와의 ‘장기공존, 장기전쟁’이라는 큰 틀에서 우리는 사회공중도덕의 재건, 타인을 존중하는 사회적 책임감의 육성, 사회관리 통제능력과 공중생활 품질의 향상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차원에서 풀어나가야 하는 무거운 난제임을 절감하게 되였다.   빈곤해탈 공략전도 그렇다. 도시반포라는 하드웨어의 ‘수혈’로 경제 빈곤해탈은 가능하지만 정신 빈곤퇴치가 새농촌건설의 지속적인 충전혈맥으로 돼주어야 하는 것은 장기적인 과제로 남아있다. 밑굽 빠진 항아리에 물붓기식 빈곤구제가 아니라 빈곤촌, 빈곤호에 대한 빈곤해탈 의지부축, 근로치부 지혜부축으로 빈곤해탈이 영구적인 결실로 되게 하자면 소프트웨어의 ‘조혈’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전국문명도시 건설 ‘100일 공략전’도 다를 바 없다. 인력, 물력, 재력투입에 의한 도시 기간시설, 시민 생활환경, 공중서비스 시스템의 탈태환골로 도시 전반 하드웨어 건설의 매력지수를 격상시킨다는 목표는 ‘100일 공략전’으로 풀어갈 수 있지만 량호한 시민사회의 건전한 공중도덕 풍토의 재건은 돈으로, 시간으로 ‘공략’ 불가능하다. 소프트웨어 건설이라는 열쇠로 지도층과 시민들의 정신도덕 함양이라는 ‘감제고지’를 서서히 ‘공략’해야 한다.   문명도시 건설의 주축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량호한 공중도덕 수양을 갖춘 시민사회의 정착으로 구축되는 매력적인 인문풍토야말로 우리가 지향하는 문명도시 근간으로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겉치레에 편중하기보다 내실을 다지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보다 우리 스스로 쾌적한 환경을 향유하기 위해서, 물리적인 동원령에 따른 피동형 참여보다 성숙된 문화자각으로 가꿔지는 도시문명 일상화 풍토…, 정부지도층이나 시민사회 구성원  모두가 문명도시 건설의 옳바른 리념을 갖췄을 때만이 문명도시 건설은 진정한 의미의 서광을 맞을 것이다.   ‘100일 공략전’ 가운데서 눈에 밟히는 일련의 현상은 우리의 문명건설의 사각지대를 간단없이 로출시키고 있다. 필자가 매일 산책하는 짧은 구간에서 목격된 사례만 봐도 그렇다.   부르하통하 북쪽 강변유보도를 따라 설치된 가로등은 몇년 되도록 가로등 구실을 해오지 못하다가 요즘 와서야 가로등을 손보는 일군들이 눈에 띄인다. ‘100일 공략’권에 든 모양이다. 100일 후에는 어찌 될른지?   연길교와 국자교 밑에는 무대세트 같은 멋진 공중화장실이 생겨난 지 몇년 되지만 지금까지 ‘그림 속의 떡’으로 보행자들이 사용 금지되고 있다.   연동교 부근 수면에는 부르하통하를 횡단한 전화선이 축 늘어져 강물 속에 잠겨있은 지 꽤 오래되건만 누구하나 관계하지 않는다. 이제 겨울이 오면 얼음 속에 꽁꽁 얼어붙은 채 뻗어있겠는데 걱정이다.   “강산은 바뀌기 쉬워도 타고난 사람의 본성은 바뀌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문명도시 건설에서 재력과 물력을 투입한 성형수술로 찬란한 외모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오랜 세월을 아우르는 문화루적, 풍속전통, 대환경과 대기후를 거쳐 형성된 국민도덕성은 돈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도시문명 건설에서 정부와 시민사회가 도덕성 수립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리유이다.   2년 전 연길시는 ‘력사문맥 발굴, 연길기억 찾기’ 문화캠페인을 벌린 적이 있다. 시민들이 동참한 이 같은 문화캠페인은 도시문명 건설의 좋은 담체로 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도시 구성원 모두가 자기 삶의 터전에 손님이 아닌 주인공다운 관심을 가졌을 때 문명도시 건설은 새로운 전환을 맞을 것이다. 연변일보 
93    정률성이 온다 댓글:  조회:1564  추천:0  2020-08-27
정률성이 온다 채영춘 정률성이 온다! 의 우렁찬 선률을 타고 중국인민해방군 륙해공군 의장대의 지축을 울리는 발걸음소리와 더불어 우리의 정률성이 오고 있다. 얼마 만이더냐. 34년 전 북경과 연변에서 ‘정률성작품음악회’가 열리면서 이 탁월한 생령과 우리를 잇는 감동의 만남이 이뤄졌지만 무더운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주고는 가뭇없이 사라졌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 정률성은 가지 않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한다고 한다. 일전에 격정으로 넘치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홀에서 자치주 당정과 연변대학은 공동으로 ‘정률성음악연구쎈터’의 출범과 더불어 ‘천자호’ 오리지널 대형 가무극 《정률성》을 무대화한다고 세상에 선언하였다. 가무극 《정률성》은 이미 수차의 수정을 거듭하면서 씨나리오, 음악편곡, 무용창작, 무대 세트설계에서 본격적인 완성단계에 들어섰다. 이에 힘입어 바야흐로 ‘정률성박물관’, ‘정률성음악재단’도 일사불란하게 발족되면서 정률성이 우리와의 동행을 일상화시킨다는 야심찬 기획이 포석으로 깔려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참으로 대서특필할 멋진 발상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정률성, 이름 그대로 그는 음률로 대성하여 섭이, 선성해와 더불어 새 중국 ‘3대 악성(乐圣)’의 한 사람으로 추대되는 걸출한 영재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지금까지 , , 작곡자로서의 음악천재성에 많이 편중하다 보니 가슴 뭉클한 정률성 혁명생애의 눈물겨운 고난의 려정을 외면하고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될 때가 많다. 말하자면 ‘예술가로서의 정률성’에 의해 ‘혁명가로서의 정률성’의 정체가 아쉽게 가리워져있었다는 유감을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천재음악가에 앞서 정률성은 오랜 시련을 이겨낸 걸출한 혁명가이요, 공산주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우수한 공산당원이였으며 불요불굴의 혁명전사였다. 그가 창작한 , , 과 같은 불후의 명곡들은 중국혁명에 대한 뜨거운 격정과 중국인민에 대한 따뜻한 사랑, 혁명성지에 대한 절절한 정감이 그의 음악천재성과 일체화되였기에 중국인민과 중국인민해방군 장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정률성의 파란만장한 혁명경력이 그의 음악을 낳게 한 촉매제로 되였다. 이런 감동적인 실화가 있다. 1977년, 정률성 서거 1주기에 즈음하여 수도에서 개최된 첫 정률성음악회에서 연안시절 정률성의 로전우들로 무어진 60여명 규모의 연안로전사합창단이 정률성이 작곡한 , , 을 불렀는데 무대와 관중석이 모두 눈물바다가 됐다. 합창단이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연안시절 항일군정대학 부교장이였던 라서경(새 중국 창건 후 초대 공안부장, 국무원 부총리, 중앙군위 비서장을 력임)이 휠체어에 앉아 뒤늦게 도착하여 공연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기간에 라서경 부부는 ‘4인무리’에 의해 감옥에 갇혔었는데 서로를 고무격려하며 매일 을 불렀다고 한다. “을 다시 부르면 안되겠습니까?” 라서경의 간절한 청탁에 로전사합창단 성원들은 기꺼이 다시 무대에 올라 라서경과 함께 정률성의 , , 을 불러 또 한번 감동의 장면을 연출하였다. 중국혁명과 호흡을 함께 한 위대한 혁명전사만이 터칠 수 있는 불타는 음악격정의 필연적 소산임을 단적으로 시사한 대목이라 생각한다. 정률성은 중국조선족의 걸출한 아들이다. 연변이 정률성 음악연구와 그의 열렬한 애국심 전승의 종가집으로 돼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조금은 늦었지만 이번에 ‘정률성음악연구쎈터’의 오픈과 《정률성》 가무극의 시동은 그런대로 우리가 정률성정신 전승의 종가집으로 되기 위한 ‘자격’을 인정받는 중대한 움직임이고 향후 발족하게 될 ‘정률성박물관’과 ‘정률성음악재단’은 연변을 우리 나라 정률성연구의 구심점으로 부각시키려는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시도가 꿈틀거려 우리 모두를 흥분시키고 있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담찬 기획이 국내외의 열띤 호응을 얻으리라 기대된다. 이에 앞서 리혜선 작가가 펼쳐낸 《정률성평전》이 조선문과 한어문으로 발행되면서 국내외에서 처음으로 정률성을 완벽하게 조명할 수 있는 문화적 기틀이 마련될 수 있었고 따라서 이렇게 출판발행된 《정률성평전》 조, 한문 도서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어 정률성 붐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놓고 있다는 점이다. 정률성을 기획 조명하고 그의 애국주의 정신의 전승을 일상화시키는 것은 오늘날 중국조선족사회에서 상당히 값진 시대적 과업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선족은 다른 소수민족처럼 민족의 구심점을 이루는 그 어떤 특정된 종교도 없다. 그리고 그 어떤 전통적인 정신적 기둥이나 지향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150여년의 이주력사에서 별처럼 빛나는 걸출한 영걸들이 수많이 배출되였다. “이런 영걸들이야말로 조선족의 사표(师表)이고 정신적 지주나 지향점이 된다. 조선족의 구심점은 바로 이런 영걸들에 있다. 그들의 혼과 정신에 있다.”(우상렬) 영걸이 없는 민족사회는 오아시스가 없는 황량한 사막과 같다. 영걸들은 있는데 재조명되지 못하고 발굴, 복원되지 못했을 때 그것은 없는 거나 진배 없으며 그 책임은 당연히 우리 학계와 문단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조선족 영걸의 삶을 조명하고 복원시 키는 것은 우리 조선족의 삶을 조명하고 복원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개인이 력사적 개인일 때 그 개인의 일대기를 다루는 일은 력사의 주요사건을 조명하는 일이 된다. 정률성의 일대기를 형상화, 무대화, 박물관화 하는 것은 중국조선족사회의 민족적 긍지감을 극대화시키고 우리 민족 선인들의 우수한 DNA를 이어나간다는 깊은 의미가 깔려있다. 특히 글로벌화의 세계적 흐름에 조선족의 대이동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조선족사회가 출렁이고 있는 오늘날 중국조선족의 사표— 정률성을 복원, 부각시키는 것은 우리 민족 정체성을 살리고 21세기 중국조선족의 삶의 자세를 보다 확실시하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정률성은 우리 민족의 걸출한 아들이며 중국인민이 키워낸 자랑스러운 영걸이다. 연변대학 예술학원 《정률성》 가무극 창작간담회에서 정률성의 딸 정소제는 이렇게 토로했다- “정률성은 저의 가정에 국한된 어른이 아닙니다!” 그렇다! 우리는 정률성이라는 중국조선족의 걸출한 아들이 있음에 긍지감을 가져야 하지만 중국조선족이라는 작은 울타리가 아닌 중국 나아가서 세계라는 넓은 공간에서 중국의 정률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연변대학에 뿌리를 내린 ‘정률성음악쎈터’가 이 성스러운 사명을 잘 감당하리라 믿는다. 연변일보 
92    연변축구의 운명변주곡 댓글:  조회:1505  추천:0  2020-07-20
연변프로축구의 영욕으로 얼룩진 64년 궤적을 조감해보면 ‘축구고향’과 걸맞은 결책층의 확실한 축구리념과 용기 있는 리더십만이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찬란한 연변축구 력사의 맥이 끊기지 않게 담보할 수 있는 결정적인 카드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일전에 우연하게 전임 주당위 서기이며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이셨던 리덕수 어르신에게서 36년 전 연변축구의 운명이 판가름 나던 관건적인 시각에 겪었던 회고담을 경청하며 다시한번 지도자와 축구의 력학관계를 가슴깊이 느끼게 되였다. 1984년, “연변축구단이 해체된다.”는 소문이 연변사람들의 마음에 무겁게 드리워져있던 어느 날, 리덕수 주당위 서기 사무실로 성체육운동위원회 주임이 찾아왔다. 성정부 당조회의에서 거론된 연변축구단 해체에 관한 사안을 통보하고저 온 것이였다. “연변축구단 해체”, 소문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였다. 리덕수 서기는그 즉석에서 체육을 주관하는 성정부 류희림 상무부성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워낙 리덕수 서기와 좋은 친분관계를 갖고 있는 류부성장은 대뜸 따뜻하게 안부를 물어왔는데 리덕수 서기는 “성장님이 연변축구단을 해체하고저 어마어마한 결정을 내리시는 판국에 제가 어찌 편안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마음속의 우려를 그대로 내비치며 연변축구를 해체해서는 안되는 리유에 대해 조리 있게 한참을 설명하셨다. 류부성장은 껄껄 웃으시더니 리서기가 연변축구단 해체를 찬성하지 않는다면 성체육위원회 주임을 그 자리에서 돌려보내고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자고 명쾌하게 선을 그었다. 연변축구단은 그 당시 길림성을 대표하여 전국 갑급련맹전에 출전하는 프로팀으로서 성에서는 해마다 500만원을 지원하고 있었다. 리덕수 서기의 강경한 태도로 연변축구단 해체가 무산되면서 연변축구단은 사경에서 구출되였다. 그날로 리덕수 서기는 연변축구단 훈련기지를 찾았다. 연변축구단 해체설에 먹장구름이 드리웠던 연변축구단은 환락의 분위기로 넘쳤다. 그 자리에서 리덕수 서기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내용의 말씀을 하셨다. 연변에는 전국이 알아주는 세떨기 꽃이 있다. 하나는 교육의 꽃 연변대학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의 꽃 연변가무단이며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축구의 꽃 연변축구단이다. 특히 축구는 연변에서 스포츠범주를 벗어나 정치현상으로 부각되여있다. 정치적 현상은 정치적 식견과 정치적 혜안으로 풀어야지 스포츠시각으로 다뤄서는 안된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변축구를 정치적 차원에서 리해하여 연변축구단이라는 이 꽃이 활짝 피여나게 해야 한다. 리덕수 서기의 완벽한 축구리념과 투철한 민족사랑, 그리고 용기 있는 제1지도자의 배짱과 리더십이 성정부  결책층에서 이미 락착된 연변축구 단 해체건을 뒤집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2018년 연변축구단은 또다시 해체설에 올랐다가 결국 ‘귀인’을  만나지 못해 처참한 해체를 당한다. 올해로 연변축구단은 2주기를 맞는다. 연변과 중국조선족사회가 억울함과 비통함으로 오열하던 2년 전의 광경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 해체가 피치 못할 자연발생적인 운명이였다면 그런대로 받아들여졌을지 모르나 인위적인 비극이여서 그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모든 재앙은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것 같지만 기실 인간 자신이 심어놓은 재앙의 불씨가 예고된 참사로 이어진다고 한다. 연변축구단의 해체참사도 사실 지난 동안 ‘부모’ 되는 우리의 잘못된 인식이 반죽, 응고되면서 초래된 것이라고 본다. 특히 2000년에 들어서면서 축구단이 갑A에서 갑B로 강등되였을 때 더 힘을 보태주고 고무격려하여 위기탈출을 시도해야 할 대신 기다렸다는 듯이 구단을 매각해버리는 끔찍한 상황이 ‘축구의 고향’에서 어이없이 벌어졌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다시말해 연변축구단을 천금같은 효자가 아니라 서커스단의 재주군 정도로 여기여 아무때건 “잘나가면 내귀염둥이고 못 나가면 천덕꾸러기로서 버릴 수 있다.”는 ‘포기론’에 토대하고 있다. 이것이 재앙의 불씨를 키우게 한 초유의 위험 징후였고 그 연장선에서 2018년의 ‘해체’사태가 터진 것이다. 2000년의 ‘매각’에서  2018년의 ‘해체’는 ‘제1효자’를 그냥 ‘우환거리’로 보는 시각이 서서히 흐름을 탄 결과의 련속으로서 한마디로 정치적 시각이 완전히 루락된 결재라고 본다. 64년의 우수한 전통을 자랑하는 연변축구단은 그 어려운 여건에서도 오뚜기처럼 완강히 살아버티면서 중국축구의 전설로 존재해왔건만 난데없는 남방의 ‘부덕’이라는 회사에 뒤통수를 가격당하며 결국 구단 해체를 맞게 되였다. 부덕과의 합작은 예고된 불행이였다. 2년이 지났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소재는 반드시 밝혀져야 하며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전국 유일 소수민족구단을 해체에로 몰고 간 ‘부덕’한 장본인으로서의 부덕은 그 륜리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연변축구단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변축구단의 해체가 부덕과의 비틀린 합작에서 비롯됐고 세금체납이 연변축구단 해체와 점철됐어도 결정적 요인은 연변축구단의 존재가치에 대한 연변 ‘모성애’의 증발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말해 우리 ‘부모’들의 정치적 식견과 정치적 혜안이 거세된 결과 그 자체라고 본다. 필자는 그냥 이 말을 고집하고 싶다. 천금 주고 못 바꾸는 내 자식이라면 억울하더라도 일단은 생명위험에 로출된 자식을 구해놓고 볼 일이지 해체까지 가게 내버려서는 안된다는 것. 어찌됐던 프로축구 26년 만에 우리는 연변축구단을 사지에 몰아넣는 뼈아픈 력사를 만들어냈다. 아무리 후회해도 해체된 축구단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두번다시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결책층은 연변축구에 대한 인식에서 루락된 가장 중요한 고리가 무엇인지를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 연변축구단은 해체됐지만 전국 일류의 축구생태, 인문환경, 전국 일류의 천부적인 축구민족의 건재, 전국 일류의 사랑스러운 축구팬 군단을 갖춘 축구고향 연변은 퍼렇게 살아있다. “연변축구는 지금 차거운 한겨울의 추위에 로출돼있다. 하지만 겨울이 왔는데 봄이 멀겠는가? 이제 차거운 한파로 억울하고 비통했던 울화를 식히고 리성을 되찾으면서 밑바닥부터 차분히 점검하여 차곡차곡 쌓아나간다면 화창한 봄이 우리를 맞을 날은 멀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들불이 휩쓸고 지나간 연변프로축구 터전에 완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새롭게 되살아날 연변프로축구의 새싹을 위하여 몸과 마음의 준비를 철저히 해나가자. 연변일보 
91    조선족 인권수호의 쾌거 댓글:  조회:1452  추천:1  2020-07-14
[두만강칼럼] 조선족 인권수호의 쾌거 채영춘 일전에 《환구시보》에 실린 재한 조선족 인권수호 관련 기사를 읽고 흥분되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2017년, 문제의 한국영화 《청년경찰》 제작사를 법정에 내세우며 재한조선족단체가 3년간 벌려온 법정소송이 올해에 재한 조선족들의 승소로 판정된 것이다. 조선족 인권수호의 쾌승이 아닐 수 없다.   재한 조선족들의 집거지 서울대림동을 공포와 범죄의 소굴로 요괴화하고 재한 조선족들을 살인과 장기적출, 마약밀매를 일삼는 깡패무리로 묘사한 영화 《청년경찰》이 개봉하자 마자 재한조선족단체는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기자모임을 소집하고 80만 재한 조선족을 ‘범죄집단’으로, 그들의 거주지를 ‘범죄소굴’로 묘사한 영화제작사의 소행을 준렬히 규탄하면서 영화상영을 즉각 멈출 것을 촉구함과 동시에 한국 법원에 영화제작자들을 고발하였다. 조선족의 권익수호를 위한 재한조선족단체 3년여의 집요한 항쟁으로 한국 법원은 결국 원심을 뒤엎고 2심 판결에서 재한조선족단체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피고석에 오른 《청년경찰》 제작사측은 정식으로 재한 조선족 원고측에 사죄문을 보내왔다.   3년 만에 일궈낸 쾌거이다. 물론 그동안 인터넷 전파를 타고 광범위하게 류포되여있는 조선족폄하바이러스 ‘수배’가 불가능하고 우리 조선족에게 입힌 엄청난 마음의 상처 또한 치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화제작사의 사죄문이 행차 뒤의 나발이지 무슨 보상이 될 것이냐고 할지 모르나 이번 한국 법정이 내린 재한 조선족에 대한 승소판결은 나름 대로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은 분명 재한 조선족 80만의 자존심이 걸린 이국땅 법정대결로서 어느 쪽으로 보더라도 꼭 이겨야만 하는 무거운 한판 승부였다. 한국 어느 주류매체의 말을 빈다면 “한국의 많은 영상물들이 특정된 인간군체를 마구 매도하고 부정적 형상의 갈등요소를 애써 부각시키고 있는 행태가 만연되여있는 현실에서 이번 판결은 증오심리를 조장하는 예술창작에 내린 최초의 법정판결이라는 경고의미를 담고 있다.”   필자는 이번 사건이 삐뚤어진 조선족관 조작자들에게 내린 한국 정의사회의 무자비한 단죄이고 조선족을 타매하고 릉멸하는 것으로 그 어떤 우월감을 과시하는 데 길들여진 일부 한국인들에게는 ‘옐로카드’로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언론자률을 뒤전으로 한 한국의 일부 영화사나 언론사의 오도(误导)로 재한 조선족이 일방적으로 비난과 멸시의 표적으로 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현실이 한편의 영화에 내린 법원판결로 바꿔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사회에 반성과 뉘우침을 촉구하는 긍정적 에너지로 정착할 수 있을 것임은 분명하리라는 생각이다.   모든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재한 조선족은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 인욕부중(忍辱负重)하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지만 조선족의 최저 생존권리를 박탈하고 조선족의 인권을 마구 유린하는 횡포와 만행에 대해서는 단연히 맞서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다면 재한 조선족과 한국사회의 악성순환을 부추기는 결과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재한조선족사회가 산발적이고 감성적인 표출이 아닌 리성적이고 목표성이 뚜렷한 집단적 움직임에 힘 입은 멋진 대응으로 안아온 쾌거였다. 한국사회 정확한 여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기자들 모임의 개최, 법률의 힘으로 조선족 전체를 모독하는 범죄행위를 응징하려는 법정소송자세는 성숙돼가는 재한조선족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한수교가 이루어진 지도 어언 30년에 가까와온다. 그동안 재한조선족사회는 조선족의 권익수호와 조선족이미지 향상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가지고 모색과 실천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한국주류사회와의 접목, 조선족집단의식의 형성을 위해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자본주의체제의 단일민족국가에서 서방 가치관에 물젖어온 한국인들과 사회주의체제에서, 그것도 대부분 농경문화권에서 생활해오던 재한 조선족이 이데올로기와 정체성 면에서의 충돌, 따라서 일부 조선족들의 부정적인 의식과 습성, 불량한 행동이 한국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도외시할 수 없다. “이럴 때마다 재한조선족사회는 보다 적극적이고 자각적인 행동으로 여론을 순화시키고 한국인들의 부정적인 마음을 돌려세우며 재한조선족사회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저 안깐힘을 써왔다. 정부 또는 한국 시민단체와의 다양한 세미나 개최, 언론과 방송을 통해 적극적인 목소리 내기, 지역 경찰청과의 협력으로 외국인 자률방범대를 가동해서 치안유지 및 자각적인 법규 지키기 홍보, 조선족 봉사단의 거리청소나 사랑나눔활동 전개 등이 그러하다.”(리동렬)   필자가 알기로는 현재 100여개의 조선족단체가 한국사회와 재한조선족사회의 맥을 이어놓고 있으며 재한조선족사회를 견인하는 구심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재한조선족사회의 구심점이 형성된다면 80만 재한 조선족에게는 그 누구도 얕볼 수 없는 탄탄한 실력과 지위를 갖춘 ‘재한조선족성채’가 생기는 셈이다. 지금까지 자연 분산적인 소규모단체들을 하나의 체계화된 련합체로 결집시켜 재한 조선족의 권익수호, 이미지 부각 및 각종 위기관리를 빈틈없이 해나가며 재한조선족사회발전의 새로운 비전을 줄기차게 뽑아내는 미래지향적인 재한중국조선족총련합회를 발족시키는 일, 중한수교 30년을 전기로 21세기 중한전략적파트너관계라는 공간에서 이제는 현실화시킬 때가 된 것 같다. 이번 조선족 인권수호의 쾌거를 겪으면서 심심히 느끼는 바이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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