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모르겠는데, 세기가 바뀔 때마다 인류는 장밋빛 꿈을 꾼다. 19세기 때도 그랬고, 20세기, 21세기도 그랬다. 사람들은 기술의 혁신, 인류의 이성과 양심의 진보라는 기대로 가득 채워진 밀레니엄이란 애드벌룬을 띄웠다. 그러나 이 풍선이 벌집이 되고 피를 쏟아내는 데는 10여 년이면 충분했다. 벌써 3번째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공습하면서 최대한 정밀타격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더라도 민간인 희생이 없지는 않겠고, 더 큰 희생은 전기, 식수, 의료, 생필품의 결핍에 의해서 발생하겠지만, 반세기 전에 도시 상공에 떨어지던 무자비한 공습과 비교하면 놀랍기는 하다. 정밀타격 기술이 발전한 건 인정해야 한다.
과거에 전쟁은 발생 자체를 막아야지,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약탈, 폭력, 무자비한 전쟁범죄를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군용식량이 보급되었지만, 전쟁의 잔인함을 막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전자유도 폭탄, 위성카메라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인류는 이제 전쟁도 야수의 얼굴을 벗고, 폭력의 최소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기대도 무너졌다.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인간의 이기적인 사고이다. 다른 나라 전쟁에는 수십만 명이 죽고 고통을 받아도, 지극히 이상적이거나 이성적인 평가를 내리던 사람이 자기 손가락에 작은 가시만 박혀도 바로 이기적이고 감정적인 인간으로 돌변한다. 가시가 작은 가시가 아니라 폭탄이면 이성의 붕괴는 상상을 초월한다.
팔레스타인에서 우리는 폭탄에 의한 합리의 붕괴를 보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논의는 진영논리와 이념에 의한 지성의 붕괴를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정말 답이 없다.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는 반복되는 비극을 보며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분열은 아직 기회가 있다. 우리 사정과 전쟁 중인 저쪽 상황을 비교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닐까?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인간이 이기심을 버리고, 합리를 붙잡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저곳의 극렬함을 남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