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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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간부는 나가고 농민은 들어오라 댓글:  조회:1190  추천:36  2011-06-10
지난해 어느땐가  국무원 부총리 오의가 혈급충병치료예방정황을 고찰하러 호남성의 한 농촌으로 갔을  때의 일이였다. 한패의 군중들이 몰려와 오의에게 정황을 반영하려고 하니 옆에 있던 당지간부들이 나서서 제지시키는것이였다.이것을 보고 몹시 성이 난 오의부총리는 《간부들은 나가고 농민들은 들어오라》고 말하였다.《간부들은 나가고 농민들은 들어오라》 는 이 말에는 깊은 함의가 있다.여기에는 좋은 말만 하는 간부들에 대한 질책이 담겨있을뿐만아니라 관원들이 군중들을 자기 가까이에 오게 함으로써 그들의 진실한 말을 들어보라는 뜻이 담겨있다. 지금 적지 않은 간부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주로 아래 간부들의 보고에 의거하여 백성들의 형편과 사회실태를  판단한다.혹시 기층시찰을 한다해도 경찰차가 앞에서 길을 내고 기층간부들이 옆을 싸돌면서  안내하다나니 최하층 백성들들의 말을 직접 듣지 못한다.인민군중들은 이런 현상에 대하여 크게 실망하고 있다.  며칠전에 광주시의 정협부주석을 위수로 한 한패의 간부들이 군중원성이 높은 도시공공교통의 진실한 정황을 알아보고저 교통고봉기에 일반승객의 신분으로 직접 공기조절기도 없는 1원짜리공공뻐스에 앉아 붐비는 승객들속에서 땀을 흠뻑 흘리면서여러구간을 시찰하였다.아무런 회보를 듣지 않고서도 도시공공교통에 존재하는 갖가지 페단을 직접 장악하였다.제일 적은 원가를 들이고도 제일 진실한 정황을 알아내였다.고찰이라면 흔히 관례로 되다싶이 된 지방관원들의 번다한 영접, 구구한 정황소개....등 순서가 몽땅 없어졌다. 기실 어떤 고찰은 근본 따로 번다하게 시간을 떼내여 할 필요가 없다.특히 자기가 살고있는 도시에 대한 고찰이 더욱 그러하다.우리 연길을 놓고봐도 소형공공뻐스에 몇번 앉아보면 소형공공뻐스의 위험한 《속도경쟁》을  체험해볼수 있고 한낮에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한고패 돌면 먼지상황을 파악할수 있으며 저녁에 강뚝을 따라 한번 산책해보면 부르하통하유보도의 환경오염을 체험해볼수 있을것이다.                                     2005.7.19(宋哲云)
6    <<외국젖소 중국인 알아보다>>를 두고 댓글:  조회:1428  추천:37  2011-06-09
  <<외국젖소 중국인 알아보다>>를 두고                      송철운 론설위원최근에 개최된 북경시 인대회의에서 북경시의 왕기산시장은 모 부문에서 신청한 고찰계획을 <<이런 고찰은 필요없다>>고 막아버리면서  이런 실례를 들었다. <<  중국사람들은 젖소사양업이 발달한 유고슬라비야로 자주 고찰을 간다. 당지의 젖소기지  관원들은 <중국사람들은 학습하기를 좋아 한다. 우리의  젖소도 인젠 중국사람을 알아본다.>고 말하였다.>> 이는 너무 <<부지런하게>> 고찰을 다니는 중국 사람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아니라 할수 없다.          지금 여러가지 이름을 띤 고찰단이  국외고찰 국내고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같은 내용의 고찰을 오늘도 가고 래일도 간다. 물론 필요한 고찰은 남들의 선진경험을 학습하고 안계도 넓힐수 있다. 이런 고찰은 앞으로도 필요하다. 그러나 적지 않은 고찰단은 공가의 돈만 허비했지 효과가 그닥지 않다.    핏뜩 보면  <<중책>>을 걸머지고 열심히 학습하는것 같지만 사실 따져놓고 보면 적지 않은 고찰단은 고찰의 이름을 빌어 관광을 하고 있다. 고찰이라는 이름을 빌어 공금으로 관광을 하는것도 일종의 부패행위이다. 다른 부패와 다르다면  고찰부패는 합법적인 이름을 빌어 사리를 도모한다는것이다. 시장경제시대에 사람들은  경제채산을 더 세심하게 하고 있는바 고찰도 지출과 효익의 비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살림이 구차하다면 이런 장부를 더 따져야 한다. 자기 돈이라면 효과가 그닥지 않은  고찰에 돈을  맹탕 랑비해버릴수 있겠는가?  지금은 정보화시대이다. 적지 않은 정보는 돈을 팔지 않고도 앉은 자리에서 얻을수 있다. 이런 고찰 방법을 제창해야 한다. 꼭 현지고찰을 해야만 외국이나 외지의 경험을 학습할수 있다는것은  시대에 떨어진 소리이다.  문자자료거나 영상자료를 통해 하는 학습이 현지고찰보다 꼭 못한것이  아니다. 어떤 내용은 이미 고찰을 갔다온 <<옆집>>에 가서  <<학습>>해도 효과가 못하다고 할수 없다.         불필요한 고찰단의 출국고찰을 짯짯하게 통제함으로써 <<외국의 젖소까지 중국인을 알아보는>>웃음거리를 극력 피면하기를 기대한다.                                       2006.1.24                            
5    농민공들의 인격 존중해야 댓글:  조회:1097  추천:36  2011-06-09
      모 도시에서는 새로 준공된 도서관의 대리석벽에 이  도서관건설에 참가한 농민공들의 이름을  정중하게 새겨넣었다. 뿐만아니라 이런 농민공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무료로 이 도서관의 책을 볼수 있다고 승낙하였다.  농민공들의 인격에 대한 전대미문의 존중이  아니라 할수 없다.  이것을 통해 이 도시의 품위를 보아낼수 있고  이 도시 시민들의   신사풍도도 보아낼수 있다. 개혁, 개방후, 특히는 최근 10여년래 하나 또 하나의 현대적건축물들이 땅을  차고 일어섰다.  다 알다싶이 이런 건축물들에는 수천수만명의 농민공의 피땀이 깃들어있다. 이들은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제일 어지럽고 위험하고 고된 일터에서 땀을 흘리며 일해왔다. 대부분 농민공들은 일년내내 주야장천 공사장에서 고생해도 설쇠러 집으로 갈 차비도 별로 쥐지 못하였다. 이들을 고용한 사람들이 신용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로임도 지불하지 않았기때문이다. 응당 제때에 지불해야 할 로임도 눈을 질끈 감고 주지 않는 사람들이 농민공들의 다른 인격을 존중할리 만무하다. 착공식에는 이들의 그림자가 있어도 준공개업식에는 이들의 그림자가 별로 없다. 상급으로부터 <<량질건축물상금>>,  <<시공안전상금>>  등 상을 타도 이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온가보총리의 비준지시에 의해 로임체불과 같은 농민공기시문제가 점차 큰 해결을 보고있다. 많은  지방에서는 농민공로임체불해결에 이어 농민공들의 실제문제를 해결하는 여러가지 방법과 조치들을 출범시키고있다. 농민공들의 이름을 건축물벽에 새겨넣는것도 이런 조치의 하나이다. 이는 기꺼운  현상이라고 해야겠다. 농민공들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도시에 들어온 농민공들은 약소군체에 속한다. 이들은  적게 일하고 많이 가지려는 사람들인것이 아니라 자기가 일한것만큼 가지려 하고  또  자기의 최저인격만 존중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도시건설을 위해 묵묵히 공헌하는 이런 약소군체를 존중하는 도시는 품위가 있는 도시이며 이런 약소군체를 포근히 안아주는 도시의 시민은 신사풍도가 있는 시민들이다.              2006.1.23   ( 론설위원)(宋哲云)
4    강바닥사막화 어떻게 막나? 댓글:  조회:1179  추천:33  2011-06-09
2006.3.14연길시의 시민들은 지난해 봄과 그전해 봄에 연길교와 연동교 ,연신교를 휘감으며 불어치던 모래바람을 기억하고있을것이다. 내몽골사막에서 덮쳐오던 황사처럼 부르하통하를 건너다니는 시민들에게 덮쳐든 황사는 바로 부르하통하강바닥을 휩쓸며 불어치는 모래바람이였다. 이런 모래바람은 금년 3월 11일부터  또  불어치기 시작했다. 이는  연길시의 도시건설자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고있다. 부르하통하 강바닥의 모래바람을 어떻게 대처하나? 강바닥의 사막화를 어떻게 막아내나? 하는 문제이다.이는 준엄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물이 적은 도시는 마른 도시나 다름없고  강이 없는 도시는 여윈 도시나 다름없다. 부르하통하를  가로 막아놓은 3개의 언제는 부르하통하의 수면면적을 크게 넓혀 여름,가을의 시용시모를 한결 아름답게 해주었을뿐만아니라 연길시의 공기를 한결 더 습윤하게 , 청신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좋은 일면이 있으면  나쁜 일면도 있기마련이다.또  좋은 일이 지나치면  필연적으로 나쁜 일이 생기게 된다. 부르하통하를 가로막은 세개의 언제는  물을 가두었을뿐만아니라 모래도 가두어놓았다. 건축용으로 쓸수 있는 알모래를 가두어놓았다면 그런대로 다행이라고도 하겠지만 쓸수 없는 흙모래만  잔뜩 침적시켜놓았다. 물을 가두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흙모래가 겨울에 물을 빼니 드러났다. 살짝 얼어붙었던 얼음이 녹아버리자 몽땅 드러났다.풀 한포기,버드나무 한그루 없는 그 모습은 새로 형성된 자그마한 사막이나 다름없다. 선들선들 봄바람에  말랐던 보드라운 흙모래가 거센 봄바람을 만나니 어떻게 되리라는것은 뻔한 일이다.        옛날에 부르하통하 량쪽기슭을  덮었던 무성한 버드나무숲과 풀밭,강바닥에 쭉 깔렸던 조약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다시 떠올렸다 해도 공담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강바닥의 사막화와 봄마다 들씌우는 모래바람을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문제이다.이는 늘쩡늘쩡 해결해도 될 문제가 아니라 시급히 해결해야만 될 문제다. (론설위원)(宋哲云)
3    영웅의 꿈은 없었으나 댓글:  조회:1192  추천:33  2011-06-09
2005.10.17중경시 충현의  황영명은 깊은 산골에서 사는 수수한 농민이다. 생김새도 수수하고 말수도 적어 평소에 사람들의 주의를 전혀 끌지 못하던 황영명이 지난해에 세인을 놀래우는 일을 하였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하루, 애들 마중을  나간 황영명이 개울가에 이르러보니 6명의 아이가 물속에 있었다. 자기의 딸(12살)은  손녀(4살)를 업고 강가와 가까운 돌우에 서있었고  그보다 몇메터 떨어진 강중심의 돌우에는  4명의 아이가 서있었다. 황영명은 딸이 《아버지,아버지 빨리구해주세요!》하며 소리치는것도 마다하고 먼저 다른 집 애들을 한번에 둘씩 몽땅  업어냈다..세번째로 물에 들어가 딸과 손녀를 구하려고 할 때 무정한 홍수는 그들을 삼켜버렸다.  눈물이 없이는 들을수 없는 감동적인 사적이다. 황영명은 영웅이 되려고 생각한 사람이 아니였다. 영웅이 될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도 아니였다. 또 그렇게 하면 영웅이 될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도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영웅이 되였으며《2006년 중국을  감동시킨 사람》으로 되였다. 그는 당원이 되겠다고 입당신청서를 쓴 사람도 아니고 또 입당할 생각을 해본 사람도 아니였다. 그저 누구네 집 애든 상관없이  강복판쪽에 있는 애들을 먼저 구해내고 그다음 강기슭과 가까이 있는 애들을 구해내자는 생각뿐이였다.이렇게 해야 다 구할수 있다는 생각뿐이였다. 어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는 이 모든 애들을 몽땅 구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였다. 인간성이 넘치고 인정미가 넘치는 이 행동으로 하여 그는 남의 집 애들은 구해냈으나 자기의 두 애를  잃었다.   영웅이 될 인물과 영웅이 되지 못할 인물이란 종래로  따로 정해진것이 없다. 별 인상도 없이 어깨로 스치고 지나가는 수수한 3륜차몰이군이거나   외지농민공, 지어 페물수매일군 등을 절대 괄시하지 말라. 문화가 없고 행색이 초라하다고 이들을 절대 업수이 보지 말라. 이들속에서 영웅인물이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랴! (론설위원)  (宋哲云)
2    조물주의걸작 왜 외면되나? 댓글:  조회:1152  추천:30  2011-06-09
2005.10.18지난  9월중순에 두만강발원지를 찾아가다가 화룡 숭선진부근에서  기이한 바위를 구경한적이 있다. 숭선진을 5리가량 앞둔 거리의   도로옆  오른쪽에 있는 이 바위는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라고 할가  녀성외생식기와 매우 비슷하였다.  그런데 도로옆에 있지만 나무숲에 가리워있는데다 또 아무런 표식도 없기에   아쉽게도  대부분 관광객들의 주의를 끌지 못하고있었다.  바위이름도  당지사람들이 우스개로 불러오던 쌍스러운 이름만 있을뿐이였다. 우리를 안내하는 당지의 한 친구가 특히 차를 세우고  알려주는바람에  행운스럽게도 조물주의 이 걸작을 감상하게 되였다. 숭선이라는 말이 나오면 사람들은 군함산과 숭선통상구를  떠올리군 한다. 다른것은 별로 떠올릴것이 없다. 관광객을 끌자면 새로운 관광점을 많이 발굴해야 한다. 어떤 지방에서는 인공으로 만든 바위에도 이름을 달아놓고 이야기거리를 만들어서 관광점을 만들고 어떤 지방에서는 명인이 잠간 앉았던 바위에까지 비석을 세워놓고 관광점으로 만들고있는데 자연의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이 걸작을 앞에 놓고서도 관광점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너무 유감스러운 일이다. 연변에는 유명바위가 적지 않다. 개산툰의 룡바위와 독수리바위, 유수천의 호두바위와 룡바위, 지신의 선바위,  선경대의 선이암과 금구파봉암….이런 바위들은 상술한 지방에 각기 전설적인 색채를 더해주었다. 노력만 좀 하면 숭선의 이 바위도 또 하나의 유명관광점으로 될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우선 우스개로만 불러오던 쌍스러운 이름을 버리고 사람마다 자연스럽게 부를수 있는 이름을 달아주자.  《옥문암》이라고 부르면 어떨가?  다음  그 바위에다  《옥문암》이라는 큰 글자를 새겨놓든지 아니면 글을 새긴 비석을 세워놓으면 어떨가? 그리고 전설을 수집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놓는다. 전설이 없을수 없다. 진짜 관광점이 될것이다. 이외 관광뻐스를 비껴세워놓을수 있게 길을 넓혀놓는다든가  음료가게나 사진가게를 벌려놓는다든가 하면 더 좋다. 그 부근에 자그마한 주차장을 만들어놓으면 더욱 좋고. 관광점이 별거더냐? 이런것이 바로 관광점이지. 《옥문암》이 숭선의 새 관광점으로 자리매김하여 더 많은 관광객들의 발목을 잡기를 기대한다. (宋哲云)
1    도시의 기억을 남겨야 한다 댓글:  조회:1354  추천:34  2011-06-08
          도시의 기억을 남겨야 한다                                 송철운     프랑스 수도 빠리의 중심에는 지금도 돌로 깐 도로가 있다. 중세기에 만든 이 길로 말이 마차를 끌고 딸각거리면서 달린다고 해서 빠리를 락후한 도시라고 할 미련한 사람은 없을것이다. 빠리를 다녀온 관광객들은 마차를 타고 이 도로를 달려보아야 빠리의 력사적맥박을 느껴볼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현대화건설초기에 결책자들은 서울시 옛 성내의 청계천을 메꾸어버리고 그 자리에다 고속도로를 건설하였다. 결과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도시는 점점 더 자체의 문화적내함과 력사적가치를 잃게 되였다.2003년에 서울시정부는 과단하게 청계천의 옛 물길을 다시 회복함으로써 옛 서울의 기억을 되찾았고 서울의 력사적맥박을 되찾았다. 원견과 큰 결심이 없이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였다.     도시의 기억을 꼭 남겨야 한다.이는 도시건설의 결책자들이 꼭 명심해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도시의 기억을 남겨야 한다는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지나간 시대를 떠올릴수 있는 대표적인 거리거나 대표적인 건축물 혹은 공원,호수,언덕,고목 등 대표적인 자연경관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20세기 80년대에 영국황가건축학회의 주석이 중국을 고찰한후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지금 전세계는 공동한 위험에 직면하고있다. 도시가 동일한 모양으로 변하고있다. 이는 아주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도시는 자체의 문화에 력점을 두고 도시의 원래의 특점을 존중해야 한다. 허위적이고도 얕은 표준이나 개념의 홍수에 잠기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도 꼭 이런 위험에 봉착하게 될것인데 전부의 지혜, 통찰력, 결책으로 이를 저지시켜야 한다.”   30년후의 오늘, 의미심장한 이 예언은 불행하게도 우리 나라의 적지 않은 도시현실에 들어맞았다. 개혁개방후 기세충천한 도시건설고조속에서 천년력사를 자랑하던 번양고성의 성벽이 며칠 사이에 평지로 되였다.  청대아편전쟁의 주요전장이였던 정해고성이 “낡은 도시 개조”의 중점대상으로 되여 며칠새에 평지로 되였다. 한치보기의 맹목적인 건설과 개조로 력사의 명맥이 끊어지고있다.우리의 도시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있다.    도시건설은 단순히 철근과 콩크리트,벽돌의 조합이 아니라 일종의 예술창작이다. 이런 도시건축창작은 지금의 우리 세대로부터 시작되는것이 아니라 흔히 도시가 이루어질 때부터 이미 시작된다. 즉 도시는 근근히 건축물의 간단한 집합체인것이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 불어왔고 또 미래로 불어가는 심령의 바람이며 끊임없이 연장되는 한개 민족의 기억의 담체이다. 지형지모, 거주형태, 건축유적, 생태환경, 문화내함, 전통풍모와 인문경관 등은 한개 도시의 불가결의 조성부분이다. 이러루한것이 한개 나라,  민족,  도시의 공동한 인정을 받아 도시기억의 유력한 물증으로 된다.     매 시대는 도시건설가운데서 모두 자기의 흔적을 남긴다. 우리 연길시를 놓고보자. 수변루는 청나라말기의 기억이고 하남다리, 원 주정부청사는 30년대의 기억이며 로동자문화궁, 연변호텔은 새 중국 건설초기인 50년대의 기억이며 백산호텔은 80년대의 기억이다. 그러나 이런 흔적이 근년에 점점 사라져가고있다. 연길의 “명물”로 불리우던 청년호도 지난해에 사라졌다.     도시의 기억을 보존하고 력사의 련속성을 보존하고 인류문명발전의 맥락을 보류하는것은 현대문명발전의 수요이다.이는 현대화도시건설과 절대 모순되지 않는다. 시대의 흔적을 고려하지 않고 말끔히 마스고 허물어버리는 도시건설작법은 후회만 남기게 될것이다. 조상들이 남겨놓은 도시흔적을 아주 말끔히 지워버리는 후손들은 미련한 후손들이다. 몇년후나 몇십년후에 후대들이 거금을 팔면서 원상복구를 할 때에는 미련한짓을 한 선배들을 꼭 원망하게 될것이다.      도시의 기억을 남겨두는 면에서 국외는 물론 국내의 많은 도시들이 우리의 본보기로 될수 있다. 황산시에서는 도시복판에 있는 옛거리(老街)를 그채로 남겨두었다. 황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꼭 다녀오는 곳이다. 이 거리를 돌아보고나면 황산시의 전통적인 풍속,민속 특색을 남김없이 보고 듣고 느낄수 있다.  항주시에서도 서호가의 옛거리(老街)를 보존하고 원 모양대로 복원하였다. 북경시에서는 몇년전에 4000만원을 투입하여 60년대에 경솔하게 허물어버렸던 영정문성루를 다시 복원하였다. 명청시대 도시의 기억을 되찾자고저 한 일이다.산동 곡부의 공림으로 들어가는 500여메터 길이의 “신도” 량옆에는 두아름씩 되는 고목들이 쭉 늘어서있다. 그런데 3000여년의 풍상고초를 겪어오다나니 거진 바싹 말라서 가지는 별반 없고 구새먹은 줄기만 앙상하게 쇠받침대에 의지해서 간신히 서있다.… 푸르싱싱한 나무를 옮겨 심지 않았다고 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이런 곳으로 가면 이런 도시의 옛숨결과 맥박을 느껴볼수 있다.이런것이 바로 관광도시의 매력과 흡인력이다.    물론 연길은 상기의 도시처럼 도시력사가 오래지 않기에 몇천년,몇백년씩 되는 도시건축유적이 있을수 없다.그러나 이는 도시의 기억을 남길 필요가 없는 리유로 될수 없다.력사가 짧은 도시는 력사가 짧은 도시로서의 그 자체의 기억이 있을것이다. 장백산을 내놓고 관광객을 유치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연길 자체의 매력으로 관광객을 흡인해야 될 과제가 우리앞에 놓여있다.도시의 기억을 남겨두는것은 바로 연길 자체의 매력과 흡인력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방면의 하나이다.    도시를 아름답게 하면서도 될수록 도시의 기억을 보존할수 있는 건설방안을 내놓으면 어떨가? 이는 우리의 도시가 몰라보게 변하면서도 또 알아볼수 있게 변하는 비결일것이다.(론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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