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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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다정한 안부 댓글:  조회:561  추천:0  2022-01-12
다정한 안부 장연하 새해를 맞아 모두들 서로 문안인사를 전한다. “잘 지내시죠?”, “건강하시죠?” 예전 같으면 새해를 맞아 의례적으로 주고받았던 평범한 인사들이 요즘엔 진심어린 안부로 느껴진다. 코로나19여파로 경제적인 어려움과 건강을 념려해주는 "다정한 안부"로 들리기 때문이다. 코로나19발생 이후 시간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근 2년간 우리는 여느해와 다르게 어수선하고 불안한 시기를 겪고 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긴 줄도 서보았고 재택근무도 경험했다. 식당에서 ‘혼밥’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 되여버렸고 막 소학교에 입학한 한 아이들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신 모니터 앞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방역전문가와 의료인의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 정부의 과단한 결책과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덕에 코로나19발생 초기의 혼돈을 우리는 무사히 지나왔다. 코로나19발생초기 주변 사람들에게 위챗으로 안부인사를 건넸던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에 잘 지내는지, 별일은 없는지, 별일은 없겠지만 힘든 시기를 잘 지내자”는 내용이였다. 코로나19 발생초기에 호기롭게 이 시기를 잘 보내자고 인사를 나누었던 이들은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의 시기가 곧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필자 역시 그랬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끝날 것 같지가 않은 코로나가 이어지는 요즘 일부 서방국가들에는 또다시 변이된 코로나 확진자수가 폭증하고 있고 국내 여러곳에도 확진자수가 늘어나면서 우리의 불안은 다시 커져만 가고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서로의 다정한 안부인사가 더 소중하고 누군가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용기와 힘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 한 매체가 이벤트로 실시한 "한해동안 가장 큰 힘이 되여준 한마디"사연공모에 가장 많이 접수된 말 역시 평범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이였다. 례를 들면 무뚝뚝한 아버지가 어느날 불쑥 다가와 해준 “네가 우리 집의 자랑이다.”란 말과 “겁내지 마, 내가 친구해 줄게.”라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용기를 냈다는 것이다. 또 취직으로 방황할 때 부모님이 해준 “꿈을 버리지 말자. 끝까지 도전하자.”라는 말이 가장 큰 의지가 됐다고 한다. 필자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특별히 엄격한 독특한 분이였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여느 아이들처럼 엄마품속에서 엄살도 부려보고 재롱을 떤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였고 항상 엄마의 존재가 두렵게 느껴져 저만치 거리를 두고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성격의 어머니였지만 우리 4남매의 앞날에 관계되는 중요한 일에 들어가서는 추호의 주저도 없이 우리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고 항상 자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자녀를 끝없이 믿어주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몫까지 대신해 우리 4남매를 끝까지 뒤바라지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필자는 조금만 더 다정한 말로 엄마의 속깊은 사랑을 자녀들에게 표현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군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거나 만나기만 하면 첫마디가 “우리 딸 밥 먹었어?”라는 말이였다. 듣는 순간 코끝이 찡해나고 울컥해지는 것이였다. 무뚝뚝한 어머니의 이 한마디는 큰딸에 대한 가장 큰 ‘관심’이였고 ‘걱정’이였고 ‘배려’였던 것이다. 어머니의 이 말 한마디는 더없이 다정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엄마의 속깊은 사랑으로 고스란히 전해졌고 필자한테는 더없는 용기와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인간은 이렇게 작은 말 한 마디에 울컥하면서도 용기를 내는 작지만 아름다운 존재이다. 코로나19로 지금 인류는 가장 외롭고 고독한 시기를 겪고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외로움은 깊숙히 똬리를 틀고 있다. 일부 서방국가들에는 고립에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년들이 있는가 하면 경범죄를 저지르고 ‘덜 외로운’ 감옥행을 택하는 로인들도 있다고 한다. 외로운 동굴에서 서로를 구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다정함이다. 강해지려면 다정해야 하고 다정해 지려면 부드러워야 한다. 부드러워지기 위해 우리는 더 필사적으로 서로를 ‘감각’하고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농촌에 주재하고 있는 어느 빈곤해탈부축 간부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요즘 연변의 여러 농촌은 이미 빈곤에서 벗어나 촌민들 대부분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을 살고 있다. 하기에 요즘 그들에게 필요한 건 경제적인 도움보다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내는 따뜻한 안부와 작은 보살핌이라고 한다. 특히 젊은 층들이 대부분 밖으로 나가 대부분 60세 로인들이 촌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필요한건 누군가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받고 힘을 낼수 있는 삶의 동력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는 것이다. 얼마전 뉴스에서 봤던 영국빈민가 소학교 교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코로나격리기간에 18킬로그람의 배낭을 앞뒤로 둘러메고 8킬로메터를 걸어 제자 78명에게 점심을 배달한 파울스 선생님, 그가 제자들에게 배달한 것은 간단한 점심식사 한끼가 아니라 고립된 공간에서 혼자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들이 코로나19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내게 하는 생명의 동아줄이였던 것이다.   ‘진화의 생존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라고 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로 힘들고 외로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웃들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적지 않을 것이다. 이웃의 다정한 안부와 다정한 손길이 더없이 필요할 때이다. 새해의 스타트선에서 다시한번 서로의 다정한 안부가 그 어느때보다도 소중함을 실감한다. 연변일보
40    “두가지 부담 경감"후 달라져야 하는 것들 댓글:  조회:632  추천:0  2021-09-13
“두가지 부담 경감"후 달라져야 하는 것들 장연하 새학기가 시작된 요즘 교육부문에서는 련일 ‘두가지 부담 경감”와 관련한 상응한 정책과 정리정돈방안들을 륙속 출범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 교육부는 “두가지 부담 경감”에 대한 감독 지도를 2021년교육감독지도사업의 “1호공사”로 지목하고 층층히 어김없이 실행하고 감독 관리할것을 엄격히 요구하고 있다. “두가지 부담 경감”이라는 것은 의무교육단계 학생들의 숙제부담과 과외양성부담을 덜어준다는 뜻이다. 딱히 어는때 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학부모는 물론 아이들과 교원들까지도  방과후나 주말 휴식일에 아이들을 과외양성기구에  맡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영어, 수학은 물론이고 어문, 작문지도  등 다양한 학원에 다니느라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눈코뜰새없이 바삐 돌아쳐야 했다. 과외양성기구에 보내지 않으면 방과후가 걱정이고 또 수업진도도 차질이 생겨 성적이 떨어질가봐 할수 없이 바싼 비용을 감내하면서도  젊은 학부모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애들을 과외양성기구에 보냈던 것이다. 사교육의 열풍으로 일부 교원들의 덕목도 입방에 올랐다. 학교에서의 수업에서는 충분히 요점을 강의하지 않고 방과후에 지식요점을 전수한다던가, 과외양성기구에 의탁하여  수업진도를 다그친다 던가 등등 으로 학부모들은 더욱 과외양성기구에 열중할수 박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학생들에겐 학교보다 학원이나 과외양성기구의 수업이 더 중요해져 지식을 익이는 곳으로 되였고  학교는 단지 평가의 장이 되여 더욱 사교육을 부추키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을 하나씩 키우는 젊은 부부들의 말을 빈다면 아이를 하나 더 키우다간 아이한테 둘어가는 사교육비용때문에 “도시빈민”으로 전락할 것이란다… 어느 사이 사교육열풍이 우리 사회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간과할수 없는 정도에 이르자 정부는 과감히 “두가지 부담 경감”이라는 해결책을 선두로 다양한 후속조치와 대응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반 사회에 강렬한 반응과 더불어 수많은 학부모들의 호응과 지지를 얻고있다. 그러나 이이러니하게도 아이의 사교육비용때문에 전전긍긍하던 적지 않는 학부모들이 요금 초조와 불안속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직껏 아이가 집에 있을 시간도 없이 학원에 맡겨 놓고 시름 놓고 있던 습관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근심이 앞서는 것이다.  그만큼 “두가지 부담 경감”은 우리 부모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아이와 함께 하면서 아이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줘야 할지 고민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어릴 때부터 아이의 공부와 성장을 위해 부모가 함께 좋은 습관을 키워줄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만큼 부모의 책임과 역할은 더 두드러질수 밖에 없으며 이는 아이의 인생의 첫선생님이라는 부모의 타이틀을 되찾아 오는 길이기도 하다. “두가지 부담 경감’으로 부모의 역할과 책임이 더 막중해 지는 동시에 교원의 자질과 역할도 어느 때보다 더 부각될수 밖에 없다. 우리는 교원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존경한다. 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교사나 교수, 박사와는 질적으로 다른 호칭이다. 선생님은 직업의 명칭도 지위도 아닌 가르침을 주시는 분을 향한 높임말이다. 우리 세대는 선생님으로부터 지식을 배웠고 그 이상의 감동과 삶에 대한 지혜를 배워왔다.  그래서 선생님이 계시는 교육 분야는 여느 분야 못지 않게 고유한 전문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넘어서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학교는 새로운 지혜를 배우고 친구들과 추억을 쌓고 선생님에게 지혜를 배우는 공간으로의 비교할 수 없는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다. 일부 교원들의 덕목이나 행위도 "선생님"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갈 정도로 학부모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교육부는 방과후 교원들의 봉사리념을  “두가지 부담 경감”사업목표를 실혈하는 중요조치로 삼고 모든 학교에서는 교원들이 방과후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고  내용을 풍부히 하고 수준을 향상시키며 학생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흡인할 것을 요구했다. 방과후 봉사에서 교원들은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의 질의응답, 숙제지도를 수시로 해야 하고 또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예, 체육, 로동, 열독, 취미소조 및 동아리활동을 전개하며 학생들의 학습공간을 확장하여 학생들의 부동한 학습수요를 만족시킴으로써 방과후 봉사의 흡인력과 유효성을 증강시켜야 하는 것이다. “두가지 부담 경감”으로 교원들의 사업부담이 증가되고 사업시간도 늘어날수 밖에 없는 점을 감암해 교육부는 교원들에게 ‘탄력출퇴근’을 실행할 수 있고 방과후 봉사에 참여하는 교원들에게는 상응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후속 조치들도 련속 출범하고 있다. 여하튼 요즘 "두가지 부담 경감"으로 새학기를 맞은 교정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서면숙제가 없는 소학교 저급학년은 더 많은 시간을 교정에서 뛰놀며 창의적인 활동에 전념할것이며 시험부담이 감소된 고급학년도 더욱 자유자재로 각자의 흥취와 적성에 따른 자기주도학습에 매진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 가정과 부모들도 달라져야 한다. 인제  여러가지 강력한 규제로 예체능을 제외한  여러 과외학원은 주말, 명절휴식일, 방학에도 보낼수 없게 됐다.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운동하고 책을 읽고   대자연을 찾아 창의정인 사유를 길러주는 등 다양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것이다.   “두가지 부담 경감” 실행, 얼마간은 어렵고 힘들수 있지만 부모, 교원, 학교 3일체의 윤활한 배합과 노력, 정부의 차질없은 정책 실행이 이루어 진다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성장과 더불어 우리들이 기대했던 효과도 몇배로 맞이 할수 있을 것이다. 연변일보 
39    기침례절, 손씻기는 건강을 지키는 기본수칙 댓글:  조회:784  추천:0  2020-12-17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2020년 12월에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며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방역은 더욱 미룰 수 없는 과제이고 더욱 엄격한 관제와 거리두기로 코로나19의 전파를 막아야 한다. 또 이럴 때일수록 나와 우리 모두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수칙을 다시한번 숙지하고 실천해야 한다. 뻔한 잔소리처럼 들려도 할 수 없다. 손씻기와 마스크착용, 기침례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기침례절과 손씻기를 강조해왔으나 큰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침례절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면 침방울과 코물방울이 주변에 퍼지면서 그 안에 포함된 병균도 같이 공기중에 떠돌게 된다. 침과 코물이 잘게 부서지면서 아주 작은 물방울을 형성하는 것을 비말이라고 한다. 비말은 반경 2메터 이내 공중에 잠시 머물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실험에 따르면 재채기로 인한 비말은 9메터까지도 날아갈 수 있다. 또한 비말의 크기가 수분의 증발에 의해 더 작아지고 적절한 환기 시스템을 타면 좀 더 멀리, 좀 더 오래 공중에 머물 수 있다. 최근에 나온 연구 결과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공중에 3시간 정도 머물 수 있다고 한다. 비말이 형성된 공간이 좁고 페쇄적이라면 감염위험은 더해진다. 우리가 경상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기침례절을 잘 지킨다면 바이러스가 주변환경에 퍼지지 않게 하는 것이므로 서로를 위하는 매우 중요한 행위다. 코로나19가 끝난 후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선진 국민의 례절로 자리잡아야 하는 리유다. 다음은 손씻기의 중요성이다. 환자의 기침이나 재채기로부터 나온 바이러스가 수시간 공중을 떠돌다 바닥으로 내려앉으면 각종 생활용품에 묻어 우리의 손으로 옮겨간다. 식탁, 쏘파, 책상, 의자, 문고리 등에 묻어있던 병균은 씻지 않은 손으로 코, 입, 눈을 만질 때 점막을 통해 감염을 일으킨다. 호흡기로 전파되는 감염증인 감기, 독감,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비말이 직접 호흡기로 들어가서 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손에 묻은 바이러스로부터 발생하는 접촉감염도 매우 중요한 감염 기전이다. 1516년 이딸리아 베네치아당국은 유태인들을 칸나레조라는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리고 250년 동안 다른 지역과 분리된 채 살게 했다. 베네치아 칸나레조는 인구밀도가 높았다. 다른 지역의 4배에 달했다. 하지만 여기서 태여난 아이들의 사망률은 신기하게 다른 지역의 절반에 불과했다. 유태인의 생존력은 14세기 중세  때 이미 빛을 발했다. 1346년-1354년 유럽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흑사병이란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무려 2억명, 그러나 유태인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너무 멀쩡하다 보니 “너희들이 흑사병을 퍼뜨린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생존의 힘은 무엇이였을가. 답은 간단했다. 오랜 률법에 따라 생활습관이 된 ‘손씻기’다. 유태인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루에 최소 9, 10번은 손을 씻는다. 유태인의 엄마들은 손을 자주 씻는 것만으로도 아이 배탈의 90%를 감소시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파스퇴르가 세균을 발견하기 훨씬 이전의 얘기다. 게다가 유태인들은 매주 안식일 전에 목욕을 하고 집안을 늘 깨끗하게 청소하는 등 청결을 중시하는 위생수칙을 지켜왔다. 감염을 예방하는 데 손씻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처음부터 상식은 아니였다. 1846년 웽그리아 출신으로 오지리 종합병원의 분만병동에서 근무하던 의사 제멜바이스는 산욕열로 인한 산모의 사망률이 병동별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의과대학생이 실습하는 1분만장의 사망률이 조산사들이 일하는 2분만장보다 훨씬 높았다. 그들이 해부학 실습을 하고 바로 들어와 산모를 접촉해서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손을 염소용액으로 소독하게 했다. 일년 만에 사망률은 18%에서 1%대로 떨어졌다. 안타깝게 그 발견은 의료계 주류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그는 병원에서 쫓겨나 웽그리아로 돌아가야 했다. 그 후 관련 론문을 발표했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몇십년이 지나서야 파스퇴르와 코흐 등이 세균을 동정해내 감염과 련관성이 분명해지면서 재조명됐다. 이렇게 150년 전만 해도 의사들이 보기에 손을 씻는 것은 불필요한 행동이였지만, 지금은 정상행동이다. 그래서 처음 수술실에 들어가는 초보의사가 제일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 손씻는 법이라고 한다. 수술중 감염을 막기 위해 물은 발로 차서 틀고 약이 담긴 솔을 리용해서 손과 팔을 오래 문질러 박박 씻어야 한다. 물기를 닦을 때에도 한번 닿은 천에 또 닿지 않게 요령이 있어야 한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의 손씻기는 강박적일 만큼 철저해야 하고 온전히 새로 배워야 할 절차다. 미증유의 코로나19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향후 또 어떤 바이러스가 인간을 위협할지 그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 때문에 위생에 대한 문화적 정상이 달라질 필요성이 생겼다.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 의사의 손씻기 정도는 아니라 해도 훨씬 적극적인 수준의 손씻기 위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물로 대충 닦으면 안되고 비누를 써서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을 씻는 습관이야말로 감염병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행동이다.   과거 오지리의 의사들이 “뭘 그런걸 해.”라며 제멜바이스를 타박했지만, 지금은 정상행동으로 자리잡았듯이 이미 굳어진 습관을 바꾸기란 어렵다. 경우에 따라 상당한 공포와 강박이 밑바탕에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지금 같은 코로나19에 대한 강한 공포가 역설적으로 도움이 된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강력한 행동의 동기를 부여하고 지금의 위기는 정상의 기준을 재정립하는 좋은 기회이다. 기침례절을 지키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자주 손을 씻는 습관을 일상화하고 청결을 중시하는 위생준칙을 지켜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에 ‘위생’과 ‘건강’이란 단어가 우리 생활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변일보 
38    다시 떠올리는 장인정신 댓글:  조회:850  추천:0  2020-11-19
다시 떠올리는 장인정신 장연하 요즘 우리 나라 대기업의 3년내 리직률이 근 60%를 웃돌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요즘 세대들이 직장을 바꾸는 일을 밥 먹듯이 한다는 이야기다. 필자의 회사만 해도 햇내기 기자라는 모자를 벗기 전에 직장을 그만두는 후배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지인의 딸은 요즘 세번째 직장을 찾고 있다고 한다. 중점대학을 졸업한 뒤 본인의 선택으로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서 차근차근 밟아나가며 실력을 쌓아가겠다고 택한 것이란다. 그런데 근 2년 일하더니 로임이 적다고 나와버렸다. 원래 발전하기 위해 들어간 자리인데 2년 만에 나와버리니 아무런 성과도 없게 된 것이다. 두번째 직장은 취직해서 1년도 안되여  발전이 없다고 그만뒀다고 한다. 요즘엔 정규직에 도전한다고 공부를 한다는데 이러다 뒤처져 일자리만 바꾸다 세월 다 가는거 아닌지 모르겠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한 직장에서 열심히 오래동안 일하겠다는 생각으로 일하라고 귀띔하면 요즘은 일자리를 자주 바꾸는게 대세라며 들은 체도 안한다고 한다. 젊을 때 일자리를 자주 바꾸는 게 대세라고 여기는 요즘 젊은이들은  필자의 세대처럼 한번 직장은 영원한 직장이라는 생각으로 한개 직업에 수십년을 고스란히 바치고 퇴직까지 하는 것은 너무나 촌스럽고 구식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인터넷시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직종들이 수시로 탄생하는 오늘, 여러개 직업을 병행해가면서 일하기도 하는 젊은이들에게 한 직장에서 30여년 넘게 일하다 퇴직한다는 것은 언젠가는 신화 같은 이야기로 남을 것  같기도 하다. 발전하기 위하여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과감히 새로운 직장을 선택하고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 행위는 가히 박수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힘들고 어렵다고, 로임이 적다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구속 받는 것이 싫다고 직장을 바꾸다 보면 언젠간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져 직장만 구하다 내세울것 하나 없이  허송세월할 것이다. 막히는 도로에서 더 빨리 가려고 차선을 자주 바꾸다 보면 어느 순간 나보다 뒤에 있던 차가 내 앞에 와 있던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서있는 차선만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착각, 이것은 우리가 인생에서도 똑같이 경험하는 것이기도하다. 그래서 눈뜨면 새로운 것을 강요하는 요즘 우리는 더욱 한 우물만 파고드는 장인정신을 다시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장인(匠人)은 물건을 만드는 작업 수준이 높은 경지에 이르러 예술가 수준에 도달한 기술자를 가리킨다. 장인정신은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물건을 만드는 것처럼 한가지 기술을 련마하여 그 일에 매우 정통하거나 자기가 하는 일에 전념하는 철저한 직업정신을 의미한다. 즉 무언가를 만들어낼 때 어떠한 편법이나 술수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기술과 노력을 다하여 끝까지 완벽하게 해내려는 정신을 가리킨다. 그래서 장인정신은 무엇이든 끝까지 하려는 자세와 노력이다. 모든 사람이 장인이 될 수는 없지만 장인정신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무엇이든 끝까지 하려는 자세와 노력은 누구든지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모든 것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 장인정신은 결국 꾸준한 ‘노력’이라는 결론으로 도출된다. 2003년에 “북경대학 졸업생이 돼지고기를 팔다.”라는 기사가 전 중국을 도배한 적이 있다. 상위 몇%에 속하는 고등인재가 돼지고기를 파는 가게 주인이라는 소위 최하층 직업을 선택했다는 자체로 돼지고기를 파는 주인공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돼지고기를 파는 가게 주인이 된 륙보헌(陆步轩)도 자기 직업선택이 북경대학이라는 우리 나라 최고 명문대학의 명예에 먹칠하는 게 아닌가 주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세속의 비난과 조롱 속에서 힘들고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로동까지 감수해가면서 자그마한 돼지고기 가게로부터 시작하여 ‘돼지를 도살하는 학교’를 꾸리고 직접 《돼지고기 판매와 경영학》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강의를 시작했으며 자기만의 돼지고기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오늘 륙보헌은 산하에 700여개 돼지고기판매 체인점을 거느린 ‘돼지고기 판매왕’으로 되였고 그의 흑돼지 년판매량은 10억원을 돌파하고  우리 나라 제일의 흑돼지고기 브랜드를 창출해냈다. 돼기고기를 팔아도 우리 나라 최고의 명문 ‘북경대학수준’을 과시한 그의 장인정신은 취업과 창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실어주는 ‘교과서’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젊은 세대들에게 점점 잊혀져가고있는 ‘장인정신’을 다시 일깨워주고 고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장인정신은 ‘프로’를 탄생시키고 이는 개인의 일이 아니라 한 사회의 거름이 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 유명한 테니스 선수 리나가 따낸 세계 테니스 우승은 테니스 불모지인 우리 나라에서 수많은 테니스 꿈나무를 키웠고 우리 나라 녀자배구가 세계우승컵에 이름을 올렸을 때 우리 나라 녀자배구가 부흥된 것과 같은 리치이다. 장인정신을 밑바탕으로 긍정적인 마인드로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해서 살아갈 때 인생의 최상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화려하고 겉치레 체면을 살리는 직종에 열광하기보다는 평범한 직장이라도 정성을 들여 치밀하고 끈기있게 림하는 ‘장인정신’으로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리를 지켜갈 때 자기실현과 사회적 기여로 보람을 느끼고 행복감은 배가 될 것이다. 연변일보 
37    제2의 사춘기 그리고 졸혼 댓글:  조회:1272  추천:0  2019-11-20
“사춘기는 부모에게서 독립하려는 나름의 몸부림이다. 만약 사춘기가 없다면 평생을 데리고 살며 먹여 살려야 할 것이다” 몇년 전 막내아들이 심한 사춘기를 겪으면서 전문의 강의 요청을 받고 간 자리에서 전문의가 한 말이다. 사춘기는 눈도, 몸도 그리고 마음도 사방팔방으로 향하는 시기이다. 사전적 해석에 따르면 12~3세에서 15~6세를 사춘기로 보고 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면서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는 시기이다. 때문에 부모의 구속을 원치 않는다. 자신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괜한 간섭을 한다고 보는 자녀의 인식 때문에 사사건건 충돌이 발생한다. 부모와 자녀, 이성간 교제와 갈등의 시작, 사춘기의 특징이다. 제2의 사춘기, 생소한 용어지만 인간의 수명이 백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제2의 사춘기라는 신조어도 나타났다. 약 50세에서 75세에 이르는 시기에 나타나는 사춘기와 류사한 역동적 심리과정을 의미하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10대의 사춘기는 신체적으로 2차 성장이 나타나는 시기이고 정신적으로 자기의식이 높아가고 성숙기에 접어드는 시기라고 한다면 제2의 사춘기는 지혜와 경험에서 나오는 능력의 시기, 원숙한 사고가 가능한 시기, 무언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꿈을 꾸는 시기라 할 수 있다. 특히 10대 사춘기가 누구나 꿈을 꾸는 시기라고 한다면 제2의 사춘기는 꿈을 꾸는 사람만 꿈이 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 10대의 사춘기가 부모에게서 독립하려는 자녀의 몸부림이라면 제2의 사춘기는 누구로부터의 독립으로 보아야 할가? 성장한 자녀가 그중 한사람이고 할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들은 보편적으로 자신의 꿈보다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례가 많다. 아글타글 뒤바라지하여 대학에 보내고 자녀를 출가시켜놓으면 또 손자, 손녀 양육까지 감당해야 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부모라는 이름 뒤에 자녀를 위한 희생의 그림자가 옥죄고 있다면 부모 자신을 위한 삶을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나이 들었다고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고 성장한 자녀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내적 몸부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2의 사춘기의 독립하고 싶은 두번째 대상은 배우자이다. 몇십년을 함께 살았던 배우자의 간섭과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고 나만의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다. 요즘 황혼리혼 (50대-60대)이 급증하는 원인의 하나이기도 하다. 한 조사기관에서 50~69세 2020명을 대상으로 50세 이후 황혼리혼에 대한 생각을 조사한 결과 근 41%가 황혼리혼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리혼한 전체 부부 가운데 3만 63쌍이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하다 헤여진 경우로 전체 리혼의 1/3을 차지했다. 이른바 ‘황혼리혼’이다. 2010년 처음 3만건을 넘어선 황혼리혼은 해마다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황혼리혼에는 현실적 문제가 뒤따른다. 재산분할이나 미혼 자녀의 출가 같은 일. 이런 문제로 망설이는 이들에게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졸혼(毕婚)’이다. 문자 그대로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이다. 졸혼은 ‘부부가 리혼하지 않으면서 각자 자신의 삶을 즐기며 자유롭게 사는 생활방식’이다.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펴낸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했다. 법적 혼인 상태는 지속하되, 부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생활방식을 가리킨다. 별거하거나 생활공간을 분리하되, 대부분 정기적으로 만나며 관계를 유지한다. 얼마 전 부부간에 금슬이 좋다고 항상 부러움을 샀던 친구를 만났는데 퇴직하고 외국에 나갔다고 했다. 남편과는 ‘졸혼’하고…친구는 헌신적인 내조로 잘 알려져 모든 남편들이 부러워하는 안해였는데 ‘졸혼’이라니! 필자의 친구처럼 요즘 외국에 나가 있는 부부들중에 ‘졸혼’이 많다고 한다. 친구는 “내 인생이 참 괴롭고 고단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집을 나와 나만의 삶을 살고 싶었다”고 했다. 남편과 서로의 남은 인생에 대해 고민한 끝에 리혼하지 않기 위해 졸혼을 택했다고 했다. 친구는 결혼에도 방학이 필요한 것 같다. 졸혼은 어찌보면 잠시 쉬여가는 방학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졸혼은 황혼리혼과는 구별되는 헤여짐의 형태이다. 황혼리혼은 법적으로 남남이 됨으로써 영원한 결별을 뜻하지만 졸혼은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헤여짐이다. 즉 같은 공간에서 같은 생활양식을 영위하지 않지만 엄연히 부부이다. 서로 희망하는 삶을 통제하거나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자기만의 삶에 집중한다. 누구를 위한 희생도 없다. 오로지 자신이 주인공이다. 스스로 위로하고 보상한다. 보다 성숙된 자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에 집중함으로써 자기 만족도를 극대화시키는 삶을 산다. 제2의 사춘기를 겪으면서 결혼과 리혼 사이에 이처럼 부부관계의 새로운 쟝르가 확산되고 있다. 고령화로 결혼기간이 길어질 테니 더 세분화될지도 모르겠다. 부부의 충분한 공감과 합의만 전제된다면… 결혼식 주례사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의 시대는 이제 옛말이 될지도 모른다. 부부관계는 일방적일 수가 없다. 한사람만 잘한다고 해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나란히 앉아 지는 해를 함께 바라보는 랑만적인 그림은 아닐지라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반려자로서의 례우를 받으려면 지금 나를, 나와 내 가족의 관계를 돌이켜 볼 시간이 필요하다. 50대 이후 찾아오는 제2의 사춘기는 삶의 지혜와 경험이 녹아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시도를 꿈꾸는 때인 만큼, 방황하지 않는 제2의 사춘기를 계획할 필요가 있다. 마치 려행계획을 짜듯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생애 2막 인생 스케치, 제2의 사춘기를 멋지게 보낼 수 있는 계획을 짜보는 것은 어떨가? 연변일보 
36    스모그 ,미세먼지 남의 이야기 아니다 댓글:  조회:1180  추천:0  2019-04-11
만물이생동하는 봄을 맞는 다는 것은 늘 축복이였다. 구석구석 쌓인 눈도 녹고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따스하게 내리비친다.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들판에는새싹이 뾰족뾰족 머리를 내밀여 싱그러운 봄의 내음을 풍기도 한다… 그런데 올해 봄은 봄이 봄답지않다… 겨울동안 큰 눈 한번 내리지 않아 작은 바람에도 거리는 온통 먼지투성이다. 거기다가 스모그라는 불청객까지가세하니 우리 이곳을 오염없는 청청지역이라고 자랑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진다. 지난 달 18일부터 며칠간 연길시는 AQI지수가 231을 기록해(AQI지수가 200보다 높으면 중증오염날씨) 중증오염날씨 4급 청색조기경보를 발령할 처지에이르렀고 뿌연 잿빛이 하늘을 뒤덮은 도시는 한치앞도 볼수 없는 유령도시를 방불케 했다. 급기가 정부 해당부문에서는 시민들은 될수록 야외활동을 삼가하고꼭 실외에서 작업해야 하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작업시간을 줄이는 등 필요한 보호조치들을 강구할것을 당부했다. 갑자기 중증오염날씨로 전락한테는 부근 농촌들에서 짚대를 소각한테서 비롯됐다고 하지만 중증오염날씨 발생원인이 간단하게 소각으로 인해 잠시 출몰한 현상은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현재 세계 적지 않은 나라들이 몸살을 앓고있는 대기오염의 주요원인은 다양하다. 석탄화력발전,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와 석탄난방, 산업체 배출가스 등이 진원이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대기오염,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 수는 매년 증가해 연간 7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를 1군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초미세먼지는 미세먼지의 ¼ 크기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먼지로, 기도에서 걸러지지 못하고 대부분 폐포까지침투해 심장질환과 호흡기 질병 등을 일으킨다고 한다. .또 최근에는 미세먼지가 우울증, 불안장애 등 여러 질병을 유발하며, 치매나 자살률 증가에도 영향을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임산부가미세먼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태아의 신체 성장과 뇌 발달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류의 최대의 공공의 적이 되여버린 스모그, 미세먼지 앞에서 세계 여러 나라들이 그 대책마련을 위해 엄청난 인력과 재력을 쏟아붓는 리유이기도 하다. 수년전부터 우리 나라 적지 않는 도시들도 스모그,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으면서 대기오염대책 마련이 정부의 중요한 사업으로 떠올랐다. 북경을 비롯한 대기오염이 도마에 오른 도시들에서는 겨울철 석탄난방과 자동차 배기가스 등으로 심각한 대기오염이 거듭되자 석탄난방을 가스나 전기난방으로 바꾸고 오염배출이 심한 공장을 페쇄했으며 도시곳곳에 전기충전소를 마련해 전기차를 사용하는 것을 격려하고 보조하는 등 다각적 대책을 마련했다. 국가환경부에서는  인공위성을 활용한 대기오염 감시체계인 '천리안(天里眼)계획'을 추진해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지역을 먼저 색출한 뒤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주체를 가려내고 발견된 문제에 대해서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렇게 강력한 미세먼지 저감대책을 펼친 결과 대기질이 최악 수준까지 이르렀던 북경시는 지난 5년 사이에 초미세먼지 농도를 40% 이상 낮추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자치주수부 도시인 연길시도 십여년전부터 겨울철 난방용 보이라를 철거하고 뽀얀 연기를 내뿜던 시내 공공뻐스도 전기차로 바꾸면서 겨울철만 되면 대기오염으로 몸살을 앓았던 상황에서 벗어나 4계절 푸른 하늘을 볼수 있는 청정지역이라고 자부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 봄에 나타난 중증 오염날씨는 우리들에게 스모그, 미세먼지가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실감하게 했다. 스모그, 미세먼지가 그냥 “재난”이라고생각하고 비나 바람만 쳐다보고 마스크 착용이나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콩 심은데 콩 난다고 했다. 문제를 풀려면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수다. 현재 연길시는 매일 수십대가 되는 자가용이 늘어나 언젠가는 도시 전체가 주차장으로 되지 않을가 걱정된다. 이렇게 엄청나게 불어나는 자동차들이 내뿜는 미세먼지는 대기오염의 농도을 갈수록 심하게 만들것이다. 정부에서는 시민들이 대중교통을리용하고 전기자동차 등 친환경출행을 권장하지만 거리에서 전기차충전소 하나 찾아 보기 힘들다. 대기오염을줄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해당부문에서는 검사강도을 높여 짚대, 나무잎, 쓰레기 로천소각을 엄단하고 생산과정에서 대기오염물을 배출하는 기업, 사업단위들에 대한 관리를 엄하게 해야 한다. 경유차를 줄이고 전기동차 사용을 장려하고 보조해 주는 우대정책을 앞세워 도시 어디에서 쉽게전기충전소를 만날수 있는 환경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시민들도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원인을 스스로 최소화하고 과학적 사실과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우리 아이들이 탁한 공기를 마시며 살지 않도록 푸는 하늘 보위전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연변일보 
35    부모인가, 학부모인가? 댓글:  조회:1144  추천:0  2019-02-28
최근 전파를 탄 공익광고이다.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한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가라 한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당신은 부모인가? 학부모인가?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 참된 교육의 시작이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이런 광고까지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요즘 대학입시생을 가진 ‘학부모’가 ‘부모’가 되기란 참으로 어렵다. 어떤 부모가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자녀들에게 멀리 보라, 함께 가라, 꿈을 꾸라고 선뜻 말할 수 있을가?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입시는 치러지고,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여전히 점수와 학교 서렬에 따른 줄서기에 동참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멀리 보라.” 하고 싶어도 “앞만 보라.” 할 수밖에 없다.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니까. 꿈은 자신의 진로이기도 하고, 인생관이나 가치관이기도 하다. 좋은 성적을 얻는 것과 꿈을 이루는 것은 사실 다른데, 우리 부모들은 ‘입시전쟁’과 ‘취업난’이란 살벌한 현실 앞에 대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몰아 붙인다. 그러다 나니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험을 잘 치기 위해 공부하고, 중점고중이나 중점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꿈이 되여버린 아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아들의 꿈이고 리상라고 말할 수 있을가. 유치원에서부터 고중까지 끊임없이 사교육에 매달리고, 대학입학 후에는 일찍부터 취업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사회가 만든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을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그야말로 모범생으로 키워지도록 닥달한다. 그리고 졸업 후 공무원으로, 대(공)기업으로 취직되면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의 인생이 성공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필자도 막내아들이 올해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다. 막내아들이 태여날 때만 해도 우리 부부는 애만은 절대 사교육에 얽매이지 말고 모범생보다는 모험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소학교에 입학하며 학부모라는 딱지가 붙으면서 필자의 이런 생각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여러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에 열중하는다른 애들에 비해 아들애는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을 키우는 데 빠져있다 보니 학습성적은 반급에서 중등수준에 머물러있었다. 그런데 반급의 여러가지 활동들이 성적순으로 많이 진행되자 아들애가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키우다가 나중에 좋은 대학에도 못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 시작했다. 아들애가 중학교에 입학하자 학부모들마다 자녀를 중점고중에 입학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여러 학원으로 전전긍긍하며 살벌하게 공부시키는 현실 앞에서 필자도 아들의 꿈을 위해 아들을 모험생으로 키우려 했던 생각을 아예 집어치우게 되였다. 아들애가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좋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되고싶다.”고 여러번 칭얼거려도 우선 중점고중에 가야 하고 중점대학에 가야 너의 꿈을 이룰수 있다고 못을 박았다. 생각 대로 아들애는 중점고중에 입학했고 우리가 원하는 중점대학에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대학시험을 1년 앞두고 아들애가 반기를 들고 나왔다. “지금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미술공부를 시작해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아들애는 좋은 대학을 가는게 꿈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라며 아버지, 어머니 소원 때문에 자기꿈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순간 필자는 학부모로부터 부모로 돌아와 과연 아들이 무엇을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들애의 꿈이 과연 무엇인지 곰곰히 생객해보았다. 그리고 번듯한 중점대학에 붙어야 한다는 부모의 허영심 때문에 아들애의 꿈을 묵살라버린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웠다. 그때부터 아들애는 자기가 좋아하는 미술공부를 하면서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용케 이겨내며 즐거운 모습으로 지금까지 잘해오고 있다. 아들애는 올해 대학입시에서 좋은 대학에는 가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무척 가슴 설레여 하는 것 같다. 바야흐로 4차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준비된 자(조직)는 기회를 얻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조직)는 도태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아이들은 다가올 이런 변화를 헤쳐나갈 력량을 준비하고 있는가? 취업난은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것은 정책 몇개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사회는 개성 있고, 창조적이고, 도전적이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인재를 원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부모로서 우리 자식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심히 고민해봐야 할 때다. 부모는 더 이상 정비사가 아니라 정원사가 되여야 한다. 학부모가 아닌 부모가 되여 우리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재능이 있는지 찾아주어야 하며 자존감과 자부심을 길러줘야 한다. 학부모로부터 부모로 돌아온 필자도 요즘 막내아들이 학벌과 환경을 뛰여넘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꿈에 도전하며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연변일보
34    풍요 속의 빈곤, ‘행복의 역설’에서 벗어나기 댓글:  조회:1099  추천:0  2018-05-28
요즘 들어 부쩍 떠오르는 말이 있다. ‘풍요속의 빈곤’이란 말이다. 많은 것이 풍요로운데 분명히 뭔가 많이 부족하고 허전하고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현시대를 일컬어 ‘풍요 속 빈곤’의 시대라고 까지 말한다.   풍요라는 말은 흠뻑 많아서 넉넉하다는 것이고 빈곤이라는 말은 가난하여 살기가 어렵다는 것으로 풍요와 빈곤은 상반된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찌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생겼을가.   원래 풍요 속의 빈곤은 경제용어로 부유한 사회가 소비보다 저축을 더 하려는 경향으로 인해 도리여 빈곤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갑자기 풍요로워졌지만 자본가들의 무한 리윤획득에 의해 세계경제는 불균등과 불공정 속에 각종 모순적 요소로 얼룩졌고 이를 보다 못한 세계경제학은 풍요속의 빈곤이란 표현으로 대변하고자 했다. 하지만 6세기가량이 지난 오늘날 사람들은 또다시 풍요 속의 빈곤이란 말을 떠올리고  있으며  이제는 분명  경제학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령역에 이르기까지 그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모든 것이 풍요롭고 넘쳐난다.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하면서도 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만끽하는 듯하다. 신상품은 쉴새없이 쏟아지고 음식도, 상품도 비싸야 잘 팔린다고 한다. 어떤 물건이 급히 필요하거나 여유돈이 있어서는 아니지만 백화점을 기웃거리고 인터넷 쇼핑몰을 둘러보는 일은 최근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퍼진 습관이다. 현대인은 필요를 넘어선 소비를 하는 ‘과소비’사회에서 살고 있다.   옛날에는 동네에 전화기 한대만 갖고 썼는데 오늘은 누구나 손에 휴대폰을 갖고 다닌다.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모양이 구식이라고 싫증내고 새것을 바꾸기도 한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연길시 거리에는 자가용차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는데 요즘은 골목마다, 거리마다 자동차들로 붐벼 온 도시가 주차창을 방불케 한다.  얼마나 풍요로워졌는가?   옛날에는 개눈깔 사탕 하나만 있어도 고무신 한컬레만 있어도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요즘에는 집을 새로 바꾸고 자동차를 새로 사도 행복하지가 않다. 좋은 것을 갖고도 자기가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면 즐겁지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부족하다고 싶으면 스스로 빈곤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상대적 빈곤이라고도 한다.   왜 우리는 엄청 더 잘 살게 되고 물질적인 면에서도 엄청나게 발전했음에도 삶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풍요 속의 빈곤을 느끼게 되는 걸가…   아무리 식량을 많이 쌓아놓아도 만족할 줄을 모르며 항상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애쓰던 초기 인간은 살아남고 번식하여 그들의 유전자를 우리에게 물려준 결과 우리는 불만족이라는 DNA를 가지고 태여난 것이다. 성공하거나 소득이 높은 사람들의 신체는 다른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인 코티솔을 더 많이 분비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과거에는 평범한 사람은 부자가 어떻게 생활하는 지 알 수가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고급잡지나 인터넷을 통해 부자들이 사는 집, 몰고 디니는 차를  비롯해 모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모르는 것이 약이고 아는 것이 병이라던가. 화려한 삶을 보여주는 부자들의 삶은 보통 사람들이 소유하는 것을 하찮게 보이도록 불안을 유도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웃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허세를 부리는 ‘관계 불안’ 또한 사람들이 자신을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 또 다른 리유다.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대부분 사람들은 ‘내 집이 우리 가족에게 적당한가?’ 하는 생각을 접고, ‘내 집이 이웃집보다 더 좋은가?’를 많이 따진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네가 가진 것에 감사하라.’는 문화가 형성되여있는 아일랜드는 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이나 스위스의 절반 이하지만 행복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순위에 올라있다는 사실은 행복의 본질에 대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찌보면 풍요 속의 빈곤은 모든 사람이 느끼는 시대의 최대 ‘선물’이기도 하다. 고 대화 없이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무엇을 찾고 있는 부부의 모습에서 지난 세기 30년대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의 후속편을 보는 듯하다.   새삼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것 같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손익불변의 법칙은 어느 시대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며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 어느 한 구석에 또다른  빈곤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먹거리, 좋은 차, 좋은 집에 살면 뭣하겠는가.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가벼이 여기며 풍요 속의 빈곤을 자초하고 있다면 영원히 ‘행복의 역설’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풍요 속의 빈곤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현대병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행복은 바이올린처럼 련습을 통해야 가능해진다.”라는 영국의 평론가 존 러벅의 말처럼 행복은 삶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도리와 배려라는걸 마음속에 잘 간직해야 할 것 같다. 연변일보 
33    “밥상머리”교육 왜 필요한가 댓글:  조회:1137  추천:0  2017-12-06
한달전 호남성의 한 중학교에서 16살되는 고중생이 반주임을 칼로 찍어 숨지게 한 끔직한 일이 발생했다. 반주임이 내준 과제를 하기 싫다고 반주임과 언쟁하다가 앙심을 먹고 반주임사무실로 찾아가 지니고 있던 작은 칼로 선생님을 수십번이나 찔러 숨지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더욱 경약하고 충격을 느끼는것은 반주임을 살해한 학생이 반급에서 학습성적이 1등인 “모험생”이라는 사실이다. 공부를 잘하여 가정의 자랑거리였고 반주임의 총애도 받았던 학생이 어찌 이런 끔직한 일을 저지르는 “악마”가 되리라 생각이나 했을가.   이번 사건으로 다시한번 청소년들에 대한 인성교육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오로지 입시와 취업을 위한 공부, 과도한 경쟁과 성적지상주의로 인한 스트레스, 자기중심적 사고, 집단 놀이문화 상실, 특히 가정교육의 실종으로 적지 않는 아이들은 심리적 갈등뿐만 아니라 가치관의 혼돈을 겪으며 교사와의 갈등 부모와의 갈등으로 삐둘어진 인격의 소유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현대사회 속에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요즘 그 어느때보다도 청소년에 대한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속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인성교육이란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 감정과 행동을 더 좋은 가치로 향상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인성교육을 심성(心性)교육, 성품(性品)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인성은 아이들이 혼자서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찌보면 제대로 된 인성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아야 한다. 인성교육의 핵심은 부모의 일관되고 지속적인 태도와 모범 적인 행동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가정교육의 실종이 우리 아이들의 인성을 삐뚤어지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아닐가 생각한다. 가정에 자녀가 하나 둘밖에 없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기대감도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나친 출세지향주의는 자식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의 진학과 출세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던지면서도 정작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인성교육은 학교 교육에만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에서의 인성교육이 뿌리채 흔들리면서 최근에는 청소년의 인성회복을 위한 대안으로서 가정에서 밥상머리교육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밥상머리 교육은 모든 가정교육의 기초이자 아이에게 정말 소중한 인성교육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지금 부모세대라면 어릴 적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던 둥그런 밥상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어릴 적 제 시간에 밥상 앞에 앉으면서 시간의 중요성을 배웠고,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례절을 배웠다..그리고 부모는 최근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말씀 해주면서 잘된 점은 배워야 한다고 했고, 잘못된 점은 배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이뿐만 아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잘하고 있는 점은 알아 칭찬해 주고 잘못된 점은 바로잡아주는 한편, 어려운 점은 가족이 모두 고민하는 자리가 바로 밥상 앞이 아니였던가 싶다.짧은 식사시간이지만 이 자리를 통해 내가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자리가 된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는 것은 똑 같다.그러나 요즘 적지 않는 가정에서는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함께할 시간도 별로 없다. 부모는 부모대로 삶의 현장에서, 아이는 아이대로 학교에서 학원 등으로 바쁘다. 각자 바쁘다는 핑게로 아침을 거르기 일쑤고, 각자 자기 시간에 맞추어 후다닥 밥을 먹고 나간다. 저녁식사 시간도 제각각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급식을 하며 방과 후에는 학원을 전전하며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이렇다 보니 자녀들이 밥상에서 부모와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고 부모와 식사를 함께 하면서 나눌 수 있었던 대화가 단절되면서 아이들은 가족이 아닌 친구나 게임 그리고 미디어를 더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바른 인성을 통해 건전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나서야 한다. 시험성적만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고 자식들을 우리 체면을 세워주는 도구로,자랑거리로 만드는”못된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과의 소통으로 아이 마음을 읽어주고 리래해주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여야 한다.부모로서 내 아이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얼마만큼 내 아이를 알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가족 식사자리에서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대화를 통해 따뜻한 가족 사랑도 만들어가고 아이들과 학교생활,교우관계,취미활동,학업이야기,이성문제 등등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밥상에 둘러앉아 가족과 함께하며 힘든 일 기쁜 일을 나누고 위로받을 때 아이는 행복할 것이며 세상을 알아가는 힘과 지혜가 생길 것이다.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힘, 힘들고 부정적인 상황에서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빠지지 않는 자제력과 인내심은 밥상머리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부터 내아이를 위해 엄마정성이 듬뿍 배인 음식을 마주하고 "밥상머리"교육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가? 연변일보 2017.12.6
32    결혼식 "음악회" 댓글:  조회:917  추천:0  2017-10-12
가을은 결혼의 시즌인지  국경절 련휴기간 례식장마다 하객들로 붐비였다. 필자가 결혼식을 할때만 해도 신랑이 신부집으로 와서 한복 입고 너울 쓴 신부를 신랑집으로 데리고 와서 신랑집에서 큰상도 받고 찬치를 벌려 손님들도 대접하고 했었는데 언제부터 결혼례식장이 들어서면서 그 모습들이 많이 달라졌다. 량가어머니 입장부터 신랑입장, 신부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친정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한다. 례식장에서 량가 부모님한테 인사드리고 큰상도 받고…여하튼 요즘 우리 조선족의 견혼식의례는  전통과 서구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형태라고도 할수 있다.약혼식과 함, 이바지 등이 전통혼례에 뿌리를 두었다면 례식장에서 이루어지는 결혼식과 신혼려행은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아 랑만적 사랑과 개인주이적인 의미를 표상한다. 결혼식이란 두사람이 인제는 부부의 연을 맺고  서로를 믿고  살아가겠다는 평생의 약속을 하는 자리이다. 사랑하는 두사람이 량가부모와 “주위사람들”앞에서 백년기약하고 평생의 약속을 하는 자리이기에 결혼식은 신랑 신부 두사람과 량가부모님들의  친척 ,친우, 가까운 지인들의 축복과 축하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혼례문화는 주체도 절차도 이중적이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인데 어떤 결혼식에 가보면 결혼식의 주체가 누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결혼당사자들보다 혼주라 불리는 부모가 결혼식의 주인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냈던 축의금을 돌려받은 많은 하객이 몰리는 성대한 결혼식을 하다보니 결혼식장의 의미는 새 출발, 축하의 장소라기보다 혼잡하기 이를데 없는 북새통이다. 간혹 길가에서 인사나 하는 사이인데 결혼청첩장을 받았으니 할수 없이 결혼식장에 가서 눈도장 한 번 찍고, 축의금 봉투 내고, 밥이나 한 술 얻어먹고 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결혼은 당사자만이 아니고 량가의 결합이기도 하기 때문에 화려하고 멋지게 치르고 싶고 량가 부모님 립장에서는 우리 자식 이렇게 잘 키워서 시집 장가 보낸다고 자랑하고도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너무 심하고 형식적인게 많다면 결혼식은 새 가정의 탄생을 알리는 축하례식이 아니라 어른들의 체면을 살려주거나, 집안의 세를 과시하거나, 혹은 우리도 이런 결혼식을 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허례허식으로 보일수 밖에 없으며  결국 민폐가 되는 것이다. 요즘 결혼식은  례식장에서 모든것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다보니 자연히 결혼식의 분위기는 사회자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혼식 사회자는 상담을 통하여 신랑신부가 원하는 스타일로 맞추어 진행해야 하는데 어떤 사회자는 늘 천편일률로 하기 때문에 결혼례식장에서 신랑신부만 바뀌였지 판박이 결혼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어떤 결혼식에 가보면 사회자가 신랑 신부에게 부모와 친척 친지들이 모인 례식자리에서 도에 지나치는 애정표현을 요구하는가 하면  신부 만세를  부르라는 둥   별의별 기상천외한 상황이 다 연출되기도 한다. 신성한 결혼식은 사회자의 수준미달과 수양차이로 평생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요즘  어떤 결혼청첩장을 받으면 불쾌할 때도 간혹 있지만 가끔 정말 반가운 청첩장도 있다. 그 가정과 친분이 두텁고 특히 결혼하는 젊은이를 잘 알고 있는 경우에는 오히려 그 결혼식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얼마전 너무나 인상깊은 한 선배님 아드님 결혼식에 간적이 있었다. 신랑신부의 친척 친우 그리고 량가부모님의 지인들이 참가한 결혼식은 차분한 아나운서 스타일의 사회자의 진행으로 검소하지만 훈훈하게 치러졌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축하공연이였는데 주내 수준급 가수들을 모시고 다양한 음악 장르들로 신랑신부의 결혼을 축하하는 모습은 모든 하객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한쌍의 부부의 탄생을 축복했다. 함께 결혼식에 참여했던  한 선배님이 참 멋진 “결혼식 음악회”라고 찬탄하기도 했다. 천편일률적일것 같은 결혼례식장에서의 결혼식, 잘 계획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소박하지만 축복이 가득찬 결혼식, 주위사람들의 기억속에 남는 아름다운 결혼식으로 오래 기억되여 새부부의 행복을 기원할 것이다. 지난 겨울 친구의 딸 결혼식에 갔다가 결혼식장 입구에 놓인 액자에서 조부모가 축사 격으로 쓴 3행시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량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 잊지 말게 하시고, 지혜 속의 생활은 검소하게 그리고 생각은 고상하게 하여 겸손으로 타의 모범이 되게 하시며, 미소 가득한 이 가정이 많은 자손과 함께 기쁨이 넘치는 축제의 집 되게 기도합니다.” 검소하고 훈훈하게 치러진 결혼식에서 본 이 3행시는 인간의 아름답고 긍정적인 유산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통해 전수되어간다는 진리를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외치는 것 같았다. 연변일보 2017-10-11
31    퇴직과 로년은 다르다 댓글:  조회:1014  추천:0  2017-08-04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기간이 정해져 있다. 현직에서 더 일을 하고싶지만 자의튼 타의든 그만둬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우리 나라의 경우 남성의 법정퇴직년령은 60세, 녀성은 간부직일 경우 55세, 그외 육체로동자 등은 50세이다. 최근에는 이를 연장하려는 움직임도 보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있어 퇴직과 로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여기에는 재벌의 회장과 로숙자의 차이도 없다. 사람은 그게 누구든 늙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하늘은 모든 사람들에게 엄격하게 공평하다. 은퇴와 퇴직 로년은 모두가 그 일생에서 만나는 공통된 매듭이다.   특히 일반인들보다 “높은 자리”에서 일하다 퇴임하고 퇴직한 사람들에게 있어 퇴직후의 생활은  익숙함을 버리고 낯선 삶을 시작하는것으로 상당한 적응이 필요한것이다.   서류복사는 물론이고 컴퓨터, 은행, 병원, 우체국 등 리용은 당연히 본인이 기꺼이 해야 한다. 퇴직후의 낯선 삶은 새로운 스트레스로 다가와 때론 몸도 마음도 지키기 어려워 진다. 사소한 병에도 잘 걸리고 별것도 아닌 일에 섭섭해 하며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삶으로 빠져 든다. 홀로 하는 등산도 건강을 위한다고 하지만 때로는 세상과 나를 격리시키는 목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높은 자리”에 있다가 퇴직한 사람들의 꿈은 “유턴”이라고 한다. 좋았던 옛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유턴 신호는 다시 나오지 않는다.머뭇거리다 추돌을 당하느니 일단 인생의 판이 바뀌였음을 인정하고 총착역을 향해 직진해야 하는것이다. 직진하다 보면 새로운 풍경을 접하는 기쁨도 있고 지금까지는 전혀 다른 자기만의 새 삶을 살수가 있으며 여직껏 느껴보지 못했던 희열도 맛볼수가 있을 것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지인은 현직에서 요직으로 일하다 퇴직한 후 더 왕성하고 활발한 활동으로 업계의 존중은 물론 더 폭 넓은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분의 이야기대로 라면 퇴직은 곧 “늘 휴가중”이라는 뜻으로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일을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마음껏 하는”것이라고 한다. 현직에 있을 때에는 카리스마가 넘치던 그분은 퇴직후에도 지키는 카리스마는 독약이라며 유모아적이고 푸근한 이미지로 후배들과 마주 앉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리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창작은 손으로 하는 것이라며 글을 직접 손으로 쓴 다음 컴퓨터로 정리하는 그는 때론 단어하나 때문에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한다며  넓고 깊은 독서량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지금처럼 글을 쓰지는 못할것이라고 한다.   그분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그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들을 마음껏 하면서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분을 보면서 퇴직은 곧 로년이 아니고 뒷짐지고 물러서서 바라볼 나이가 아니라 뭔가 찾아서 움직이는 나이이고 생산적인 삶의 지속이라는 느낌을 받군 한다.   언젠가 어느 95세 로인의 고백을 읽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고 60세에 당당히 퇴직할수 있었습니다. 그런 지금 95번째 생일에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나는 퇴직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덤이다 그런 생각으로  무려 35년이나 살았습니다. 만일 내가 퇴직을 할 때 앞으로 35년을 더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였습니다. 나는 지금 95세이지만 앞으로 10년,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리유는 단 한가지…10년후에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퇴직을 앞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고 마음에 와 닿은 말이다. 지금은 생활환경이 개선되여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고 따라서 퇴직후에도 20년 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장수의 시대”이기도 하다. 수십년전까지만 해도 퇴직과 로년이 같은 맥락이였다면 지금은 퇴직과 로년의 의미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 대비 역시 전혀 다른 발상과 방법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인생을 이모작 하라”는 말도 나온다. 퇴직을 하고 살아야 하는 기간이 길어졌고 평생 건강을 잘 관리한 이들은 퇴직후에도 웬만한 젊은이 못지 않은 체력을 유지할수 있기에 인생을 두번 살수 있다는 것이다.   인제 우리 모두가 인생 이모작을 설계해야 만 한다. 퇴직후 그 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것인가는 실로 중요한 숙제가 아닐수 없다. 연변일보 2017-8-2
30    운전자의 인격과 매너 댓글:  조회:1169  추천:0  2017-04-27
요즘 우리 나라는 자동차시대에 산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도시의 자동차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있다.  연길시만 지난 3월 말까지 등록된 자동차보유량이 26만 7340대에  달하고 지금도 매일 25대좌우씩 늘어나고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도시전체가 주창으로 변해버리지 않을가 걱정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던 지난날에는 각 단위의 울안 한켠에는 자전거가 즐비하게 늘어서있었는데 지금은  자가용차가 온 울안에 주차되여 있어 숨쉴공간마저 사라지는 느낌이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던 그시기에 어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승용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날이 오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때는 “외국에서는 18세이상이면 누구나 운전면허증을 따낼수 있다, 차는 살수 있어도 집은 살수 없다”고 하던 누군가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우리가 그런 세상을 눈으로 보게 됐다. 10여년전까해도 자동차운전자 대부분이 남성이였다면 지금은 녀성운전자도 엄청 증가해 사처에서 녀성초보운전자라는 딱지가 붙은 차량들을 심심찮게 볼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폭주하는 차동차숫자에 비해 사람들의 운전매너는 점점 반비례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운전경력이 10여년이 훨씬 넘는 필자지만 요즘은 자주 자동차 운전하기가 무섭고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꽉 막힌 도로에서 누구도 양보하려 하지 않고 틈만 있으며 지시등도 켜지 않고 무작정 들이 밀고 …앞 차와의 간격을 유지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며  신호등을 켜지 않고 갑자기 차선을 변경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운전은 사람이 자동차라는 기계를 움직여 이동하는 행위인 만큼 운전자의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도로를 달리는 차를 보고는 “인격이 다닌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배려와 매너가 없는 리기주의적인  사람은 운전할때에도   한눈에 알아볼수 있다. 비좁은 1차선 2차선도로에서도 전화를 하지 않으면 옆사람과 잡담을 하면서  “나 이길 전세냈다”하는 식으로 운전 하다보니   차흐름이 끊기고 뒤에 숱한 차들이 정체되게 된다. 도심의 십자로에서 붉은 등이 푸른등으로 바뀔때에도 나만 지나가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굼벵이 운전을 하다보니 10여대가 통과해야 할 차들이 절반도 통과하지 못하고 정체될수 밖에 없다. 이에 화가 난  뒤 차들은 경적을 울려대며  서로 폭언을  던지고 난폭 운전도 일삼아 때론 접촉사고까지 불러오기도 한다... 자가용시대에 살고있는 현대인들에게 자동차는 신발보다 중요하다고 할수 있다.외출에 있어 신발보다 더 중요한 생필품이 됐다는 뜻이다. 잇 따라 운전 또한 빠뜨릴수 없은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생각이 옷을 입고 대중앞에 나타나는것을 언어라 표현한다면 인품, 인격을 싣고 대중속에 연출하는것을 운전이라 할수 있는것이다.그래서 운전면허증은 비교적 취득하기 쉽지만 그 어느 자격증보다 매우 중요하고 인격을 나타내는 자격증이라고 볼수 있다. 운전을 하기 위해 리론과 실기 같은 시험을 치르지만 운전매너는 개개인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만큼 각기 다르다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악한 행동을 일삼으면서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덕을 행하면서도 공을 감추려는 자가 있는 등 대인관계에 대한 매너가 다 다르듯 운전 습관도 매너도 다르다는 것이다. 운전은 자신의 인품과, 인격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나쁜 운전 습관은 남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주기도 하고 때로는 본인은 물론 남의 인생에까지 치명타를 입히는 흉기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자칫 방심했다가는 자신과 타인의 생명까지도 빼앗거나 평생을 후회할 끔찍한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운전에서 방향지시등을 켜는 것은 내가 나아갈 방향을 다른 운전자에게 알리기 위함이지만 나아가 '실례한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불이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배려의 마음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인격이다. 자동차를 자기 얼굴로 생각하고 양보,배려, 사과하는 운전매너를 실천한다면 우리에게도 안전하고 즐거운 교통문화가 자리잡을 것이다. 연변일보 2017-4-26
29    스마트폰 역설에서 벗어나기 댓글:  조회:1114  추천:0  2017-03-31
얼마전 식당에서 본 모습이다.  서너살도 안되여보이는 녀자아이는 떼질 한번 안쓰고 앞에 놓여있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얌전하게 자기 앞에 놓여진 음식을 먹고있었고 엄마도 한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스캔하고 한손으로는 자기앞에 놓여진 음식에 부지런히 저가락질 하고있었다. 모녀는 각자 자기 스마트폰에 매료되여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말도 별로 없었다.그런데 요즘 이와 비슷한 모습을 흔하게 만날수 있어 더 충격적이였다.며칠전 아빠트정원에서 유모차를 탄 아이가 깔깔 웃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저 엄마 참 대단하다, 어떻게 꼬마를 저렇게 웃길 수 있을까. 신기해서 가까이 가봤더니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이렇게 어른들부터 아이들, 지어 영유아에 이르기까지 스마트폰에 푹 빠져있다고 해고 과언이 아이다.커피숍에서 만난 젊은 연인은 커피를 시켜놓고 마주 앉아서 스마트폰에 머리를 파묻혀있고 지인들과 모여도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모습 찾아보기 힘들고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에 열중인 모습들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은 옆에 있는 친구와도 위챗을 한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이모티콘’이 없서서… 다양한 표정을 나타내는 이모티콘들이 아니면 의사 전달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로 생각하는것이다. 이렇게 스마트폰은 제일 가까운 가족, 친구,동료들과의 대화를 단절시키고  우리의 모든 모습을 바꿔놓고있다. 인간사이의 소통을 효율적으로 하고 인간에게 편리를 가져다 주려고 만든 스마트폰이 오히려 인간 사이의 진정한 대화나 만남을 방해하고 있고 인간에게 엄청난 페해를 가져다주고있는것이다. 스마트폰의 역설이다. 요즘 엄마들은 스마트폰이 어린아이에게 좋지 않을거라는 생각은 어느정도 하고있으면서도 아이가 칭얼거리거나 아이가 귀찮게 할때면  아이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준다 스마트폰만한 육아도우미가 없으니까… 또 일부 부모들은 아이가 복잡하고 어려운 스마트폰을 척척 다룰 줄 알고 심지어는 어플리케이션을 깔고 조작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걸 보면 "우리 아이가 IT 신동인가" 하며 신통해 하고 기특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렇게 모르는 사이 아이들은  부모가 스스로 파놓은 스마트폰중독의 늪에 빠져들어가고 있는것이다. 일찍 미국 보스턴대 연구팀은 생후 30개월 이후 유아가 스마트폰에 노출되면 뇌 손상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동안 뇌 촬영을 했더니 유아의 뇌가 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발견했다며 생후 30개월 이하 유아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자주 쓰는 것은 뇌 발달을 저해하고 뇌 발달에 장애를 준다고 경고했다. 소학교교사들에 따르면 실제로 태여나서부터 스마트폰에 노출된 아이는 크면서 그 영향이 고스란히 나타나고있다고 한다.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언어표현능력이 떨어지고 손놀림에 정교함이 점점 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책읽기도 싫어 하고 생각하기도 싫어한다고 한다. 요즘 연길시 여러 병원 물리치료실에는  목디스크, 허리 이상으로 치료받으로 오는 중학교,고중 학생들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이런 병들은 대부문 스마트폰사용때문에 오는 경우라니 아픈걸 몰라야 할 사춘기때 스마트폰때문에 말이 안되는 일이 일어나고있는것이다. 그래서 유럽에는  10세 미만에게는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사용이  법으로 금지되여 있다. 일본도 소학교학생들은 스마트폰을 쓰지 못하게 할뿐만 아니라   아예 휴대폰을 쓰지 못하게 하고있다. 대만에서는 2세 미만 영유아에 대해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등 전자제품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최근 통과시켰고 여기에 더해 18세 미만 청소년들에게도 "합당하지 않은 시간 동안" 디지털 매체를 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법을 어길 경우 부모에게 5만 딸라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있다. 우리도  인제 스마트폰사용에 대해 전사회가 새롭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다. 스마트폰에 아이들이 최대한 늦게 접하도록 노력하고 어린시절에는 책을 읽고 신체활동을 하는 경험을 먼저 맛보게 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것이다. 청소년시기는 자아가 형성돼가는 시기로서 교육이 필요하고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주내 여러 학교들에서 아이들이 과당시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하고 또 일부 소학교들에서 아이들에게 매일 30분씩 책을 읽도록  임무를 주는것은 스마트폰역설에서 벗어날수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수 없다. 연길시 어느 유명 레스통랑에서는 식사하러 오는 모든 손님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 레스토랑 특색메뉴를 공자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벌려 인기를 끌고있다. 이 레스토랑처럼 사회여러 분야에서도 스마트폰이 편리한 도구이기는 하지만 현명하게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메세지를 담은 다양한 공익활동들을 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모범이 되여 특정한 시간을 정해두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온가족이 스마트폰과 멀어지는 련습을 해야 하는것이다. 어린아이들이 스마트폰보다 몸을 뒹굴면서 노는 것이나 부모와 함께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듯이, 어른들도 마음으로 이어지는 소통을 경험한다면 스마트폰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을것이고 내아이도 스마트중독의 늪으로 빠지지 않도록 잘 인도해갈수 있을것이다. 우리가 스마트폰 역설에서 벗어날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연변일보 2017년 3월 29일
28    연변으로 오세요! 댓글:  조회:13895  추천:0  2017-02-08
2년전 우리 나라 호남성 녕향현에 살고있는 한 평범한 농민이 한국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한국 조선일보에 전면광고를 낸적이 있다.   향하광(64세)이라고 부르는 이 농민은 자기 돈 23만원(한화 4000만원)을 들여 한국 조선일보 B4면에 “아름다운 중국에는 장가계도 있고 녕향도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녕향의 대형지도가 들어간 전면광고를 게재했다. 향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일보가 한국에서 발행부수가 많고 영향력이 크다는 이야기를 듣고 광고를 내기로 했다”며 “한국관광객들이 장가계만 가지 말고 우리 마을도 찾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녕향은 장가계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으며 온천과 표류할수 있는 아름다운 계곡 등 관광명소로 유명하기도 하다. 농사를 지으면서 민박집을 운영하고있는 향씨는 어렵게 살다가 민박을 하면서 살림이 풀렸다며 “고향을 위해 뭔가 하고싶었다”고 했다. 광고비 23만원을 마련하려고 그는 자기의 1년 수입을 탈탈 털었고 세 아들도 비용의 일부를 댔다고 했다. 광고문구도 그가 직접 만든것이였다.   광고가 나간후 한국의 수많은 려행사들이 녕향관광과 관련한 문의를 했고 우리 나라 신경보, 환구시보, 호남일보 등 주요매체들도 일제히 향씨의 이번 광고게재를 크게 보도했다. 우리 나라에서 개인이 고향마을을 위해 자비로 외국매체에 광고를 낸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기때문이였다. 우리 나라 대표적인 포털사이트 바이두에는 향씨의 이번 광고게재를 보도한 관련 기사가 무려 2만 3000여건이나 올랐고 녕향을 취재하기 위한 국내 매체들의 발걸음도 줄을 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 녕향은 한해에 수천만명의 해내외 관광객이 몰려드는 우리 나라 관광명소로 이름을 떨치고있다.   한 평범한 농민이 자기 고향을 홍보하기 위해 생각한 독창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 1년 수입 전부를 외국매체 1회 광고비에 쏟아부었다는 그의 헌신적이고 담대한 결책에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을수 없다. 웬지 남의 일 같지가 않으면서 우리 이곳에는 왜 향씨와 같은 사람이 없을가 부럽기도 하다.   우리 이곳과 3시간 거리에 있는 장백산은 4계절 수많은 해내외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데 비해 우리 연변, 연길은 아직도 해외는 물론 국내의 수많은 관광객들도 모르고있다. 그나마 연변축구의 궐기로 연변의 지명도가 올라가기도 했지만 우리 나라 13억 인구중에 연변, 연길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가? 우리 연변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지역특정과 풍성하고 독특한 조선족음식, 우리만의 색갈이 다분한 따뜻한 풍토인정 그리고 요즘 궐기하고있는 겨울철 빙설관광 등으로 충분히 관광객들을 매료시킬수 있다. 특히 올해부터 정부가 추진하고있는 연룡도신구 건설은 해란호풍경구종합개발, 마반촌산성국가고고발굴, 동성용진 국가급특색진 건설과 월청진 마패특색민속촌 건설에서 실질적 진전을 이룩하면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연변 관광브랜드를 구축하게 될것이다.   문제는 이런 관광브랜드를 어떻게 대내외에 널리 홍보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연변, 연길을 알게 하고 찾아오게 하는가 하는것이다. 어찌보면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봉사업을 발전시키는것도 중요하지만 "연변"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게 먼저이기도 하다. 다양한 홍보물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요즘, 우리에게도 향하광농민처럼 내 고향 연변을 홍보할수 있는 “한방”은 없을가?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일것 같다. 연변일보 2017-2-7
27    나이값 하기 댓글:  조회:1423  추천:0  2017-01-05
2017년 문턱에 들어서면서 또 나이 한살이 올라붙는다…인젠 나이를 말하고싶지 않는 나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이를 확인하고싶지 않는 나이가 돼버렸다. 기억이 예전같지 않고 순발력이 떨어지고 눈이 침침하고 책을 보려면 꼭 안경을 배동해야 하고…내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세월의 흔적은 고스란히 나의 몸에 수많은 징표들을 남기고있다…   특히 요즘에는 나이를 먹어 늙어간다는것을 실감할 때가 많다. 생각이 많아지고 간단히 해도 될 말을 길게 하게 되고 행동 하나, 말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던 젊은 날에 비해 지금의 나는 먼저 고민하고 한참 망설임 끝에야 실행하고있다.   간혹 회사의 젊은 후배들과 어울리다 보면 나는 그들한테서 몇십년전의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변해버린 지금의 내 모습에 의식은 점점 아득한 유년의 강가를 서성이듯 아련한 향수에 대한 그리움으로 목말라 하기도 한다.   나는 술자리에서 기분이 좋아지면 지나간 이야기에 열을 쏟고있는데 젊은 후배는 래일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 하고있다. 내가 이야기하려는 화제를 여러 각도에서 정리해서 이렇게 말할가 저렇게 말할가 망설이는동안 젊은 후배는 자기 아는만큼을 금방 이야기 해버린다.   나는 노래방에서 몇년째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젊은 후배는 지금 류행되고있는 최신노래만 부른다.   젊은 후배와 이야기하다보면 어느새 나는 가르치려고 하고있고 나자신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고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웬지 남을 의식하는 례의를 갖추게 되는것 같고 나의 모습을 치장하는 장식이 많아지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화장품도 많이 좋아지고 성형,미용도 엄청 발달해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워졌다. 50대인데도 30대 40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50대, 60대에도 나이는 수자에 불과하다며 날씬한 몸매를 만드느라 여러가지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면서 외모를 가꾸는데 많은 사간과 노력을 경주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주변에는 얼굴과 몸매는  어려보여도 나이를 어디로 먹었냐, 나이값을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생물학적으로 늙어가는것은 현대과학기술이나 운동 등으로 잡아볼수있지만 정신적으로 늙어가는것은 어쩔수 없기때문이다.   “내가 몇년만 더 젊었다면…”하는 말을 항상 무슨 과제처럼 입에 달고다니는 이런 사람들은 나이먹어감에 따라 트집과 아집만 늘어나고 사람과 세상이 못마땅하여 불평과 불만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옛날이야기를 자주하면서 후배들에게 예전의 생활습관을 강요하려들고 “내가 한창 잘나갈 때 개는 형편없었는데 운이 참 좋아”하며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격의 행동들로 자신이 어는새 추한 모습으로 늙어가고있음을 모르고있다. 그래서인지 이런 사람들곁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고 회사에서 때론 사회에서 고독하게 성쌓고 남은 돌로 외면당하기도 하는것이다.   반면 얼굴에는 주름이 깊에 패이고 머리엔 흰서리가 내렸어도 생각이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람들도 있다. 주름이 있기때문에 더 선명한 미소와 넌짓이 후배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눈빛, 어느때든 분위기에 맞는 적절한 조언과 긍정적인 발상, 후배들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나이차이를 별로 느끼지 않고 나이를 먹는다는것이 결코 슬픈 일만이 아닌 축복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나이를 먹고 로화가 시작되여 늙어가면서 마음이 많이 약해지고 작은 말에도 상처를 쉽게 받고 상대를 리해하기 보다는 리해받기를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베풀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베품받기를 원하고 존대받을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존대받기를 원하는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나이는 수자로 먹는것이 아니라 숫자의 크기만큼 마음도 도량도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대우받고 인정받고 싶으면 마음의 향기와 인품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삶을 살아야 할것이다. 이런 삶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되는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성찰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변화시킬 때만이 가능한것이다.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것은 거울에 비친 나자신만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남에게로 시선을 돌려 자신의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줄우 있을때 비로서 참 곱게 늙어간다, 참 잘 살았다 라는 평가를 받을수 있는것이다.   나이 값을 한다는것은 세월에 대한 책임일지도 모른다. 나이 어린 사람들이 나이값하라는 말을 절대 흘려들어서는 안된다. 듣는 순간 무려하다고 생각하기전에 자신의 행동과 말을 돌아봐야 할것이다. 올해에는 주름살을 없애 젊어보인다는 말을 듣기보다 생각부터 다림질하고 구겨지고 더러워진 낡은 사고방식도 깨끗이 세탁해 주위로부터 나이값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연변일보 2017-1-4
26    "굿가이 콤플렉스" 댓글:  조회:1872  추천:0  2015-07-09
"부하직원들에게 자극을 주지 못하는 상사는 리더가 아니다. 당근도 주고 채찍질도 하고 도 하면서 자극을 주는 책임자야 말로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리더가 아닌가 싶다." 오래동안 한회사에서 일반 직원으로 부터 시작해 한발자국 한발자국 열심히 실적을 쌓아가며 회사의 중견으로 일해왔던 친구가 드디여 회사의 주요 책임자로 발탁됐다. 그런데 회사의 주요 책임자로 발탁되고나서 그에게는 밤잠을 설치게 하는 고민이 있었는데 바로 아래 사람들과의 인관관계였다. 오래동안 친구로 동사자로 가깝게 지냈던 선배나 후배들이 사업에 태만하고 제대로 일을 해나가지 못해도 딱 꼬집어 지적하기 어렵단다. 책임자가 되더니 갑자기 변했다는 말을 들을 가 걱정되기도 하고 지금껏 잘 쌓아온 회사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깨질가 두려워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선 이런 책임자의 심리를 "굿가이 콤플렉스"라고 하기도 한다. 즉 좋은 사람이 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때문에 상대의 마음에 거슬릴만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것을 말한다. 이런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들이 하냥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바로 "좋은게 좋은거다"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이런 "굿가이 콤플렉스"에 걸린 책임자들을 종종 볼수가 있다. 이런 책임자들이 부하직원과의 갈등 상황과 마주했을 때 하는 행동은 "무시"이다. 상대를 무시하는게 아니라 갈등이 없다고 생각하는것이다. 아래 사람들에 대해 불만은 있는데 말은 하지 않고 나를 골치 아프게 하는 상대를 외면해 버리는것이다. 그런데 이런 책임자에 밑에서 일하는 부하직원들은 잠시는 "사람 좋은 지도자"를 만나 편하고 좋을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는 불행하다는것을 뒤늦게 깨닫게 될것이다. 왜냐하면 오래동안 이런 책임자밑에서 일하다보면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결국 사람은 자극을 통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사람좋은 책임자"밑에서 일하다 보면 나의 강점이 무엇인지, 나의 약점은 무엇인지 알수도 없고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그냥 그렇게 두리뭉실하게 별 변화없이 흘러가고 말것이다. 나에게 쓴소리 한마디 안하고 나의 약점도 그냥 "무시"하는 책임자아래서 몇년을 함께 일하다보면 딱히 무엇을 배울수도 없고 눈에 띄이는 성장도 할수 없다. 마치 부모의 무관심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훌륭하게 성장할수 없는 리치와 같은 것이다. 필자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갓 사회에 발을 들여났을 때만 해도 회사마다 "호랑이 상사" "엄한 선배"들이 많아 자기 앞의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눈물이 찔끔 나도록 "욕"도 먹고 자존심이 밑바닥 날 정도로 혼나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그런 상사, 선배가 너무 밉고 싫어 회사를 당장 그만 두고싶다는 생각도 종종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른뒤 제일 고맙고 감사하고 잊지 못할 분들이 그런 "호랑이 상사","엄한 선배"들이라는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런 상사와 선배들 아래에서 일할 때 자극도 많이 받고 오기도 생겨 더 열심히 일했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획기적인 성장을 했던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쓴소리"를 하고 "채찍"을 안기고 "자극"을 주는 "호랑이 상사", "엄한 선배"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있다. 해마다 있는 지도자평의에서 "호랑이 상사", "엄한 선배"는 자칫 "인간관계가 좋지 않다"는 평을 받을수도 있다는 우려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어떤 회사의 책임자들은 아래 사람들에게 시켜 골치 아플것 같은 일은 아예 자신이 직접 떠메고 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은 편하겠지만 철인이 아닌 이상 언제까지 모든 일을 자신이 다 할수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부하직원들이다. 이런 책임자와 일하는 부하직원은 더없이 편할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몸"만 편하고 머리는 그냥 제자리 걸음을 할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개성과 강점, 창의성마저 잃어버리고 뒤늦은 후회로 몸살을 앓을것이다. 유럽국가들에서는 리더십의 첫째가는 덕목을 "무조건적인 솔직함"으로 꼽고있다. 비록 내가 인기를 잃더라도, 나의 지시로 인해 부서간의 갈등이 생길지라도 리더라면 할말은 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부하직원들에게 자극을 주지 못하는 상사는 리더가 아니다. 그냥 같은 직장에 다니는 형, 누나, 오빠, 언니일 뿐이다.부하직원들에게 당근도 주면서 채찍질도 하고 "쓴소리"도 하면서 자극을 주는 책임자야 말로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리더가 아닌가 싶다. 연변일보 2015-7-8  
25    "우리 말을 잘 할수 없어서 부끄럽습니다" 댓글:  조회:4127  추천:73  2009-09-23
"우리 말을 잘 할수 없어서 부끄럽습니다"장연하 연변일보 기자이는 얼마전 개최된 제5회 두만강상담회에 참석하려 대만에서 왔던  한 한인 상공인이 연길시시장 조철학을 만나고 한 이야기다.  너무나도 류창하게 우리 말을 잘 하는 조철학시장을 보고 그분은 심히 부끄러운 마음을 느꼈던 모양이다. 이에 조철학시장은 "자기 민족언어를 모르면 부끄러운 일이지요."하고 웃으면서 답하였다.  일본에서  태여났고 또  일본에서 기업을 하다가  후에는 대만에 와서 기업을 하면서 현재 대만 INKE(한민족 글로벌 벤처 네트워크)회장직을 맡고있는 그분은 자기 민족의 언어와 문자를 잘 알지 못하는 부끄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미봉하고저  아이들만은  어릴때부터 모두  한인학교에 보내여 우리 글과 말을 가르쳤다고 한다. 우리 주위에도 조철학시장처럼  중요한 공식장소에서도 류창하게 우리말을 구사하고 또 자주 우리 말 연설을 하는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반드시 우리말을 해야할 장소에서  감사하고 고마운 인사마저도  제대로 발음할줄 몰라  쩔쩔 매는 우리 민족간부들도 수두룩하다.  이러한 간부들은 우리 말을 잘 못하고 우리 글을 잘 모르는것을 별로 개이치 않고 부끄러운 마음도 전혀 없는것이다.중공중앙 정치국 위원이며  국무원 부총리인 장덕강은 일찍 우리 주 당위서기로 임직하던 시기 중요한 공식장소에는 꼭 연설 첫마디 인사를 조선말로 하였으며 어느 해 3.8부녀절 경축대회 축하발언은 근 30분간 류창한 우리 말로 구사하여 대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감탄케하였다. 그만큼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의 조선언어문자의  중요성과 민족성을 그는 실제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일깨워주었던것이다. 현대 사회는 지구촌의 시대이다. 운송, 통신 수단의 발달덕분에 사람들은 쉽게 해외려행도 할 수 있고 아주 먼 나라 사람과 전화연락을 할수 있으며 경제문화적인 교류도 여러 나라와 쉽게 할수 있다. 하여 요즘  많은 지도간부들도 짬짬이 시간을 짜내여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배우고있는데  소수민족간부들은 우선 본 민족의 언어와 문자를  잘 배우고 능란하게 구사하는것이 곧바로 그 자신만의 경쟁력이 될수 있고 우세가 될수 있으며  백성들의 신뢰를 얻을수 있는 버팀목이 될수도 있는것이다.소수민족자치주에서의 소수민족언어와 문자는 곧바로  그 민족의 문화의 본질이고 우수성이며  특색이고  무궁한 매력이기도 한것이다. 소수민족자치주에서 사업하는 소수민족간부들은 우선 한어와 한어말을 능란하게 구사할수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자기민족 언어와 문자도 소홀히 하지 말고  우리 말이 필요한 중요한 공식장소에서는 꼭 우리말을 구사할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연길에서 사업하는 우리 민족간부들이 중요한 대회나 공식석상에서 소수민족복장을 입고  자치주수부도시로서의 민족특색을 살리고 농후한 민족분위기를 형성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아름답고 우아한 우리 말과 글을 능란하게 구사하고 사용함으로서 대내외 손님들에게 우리 민족의 문화 정취를 느끼도록 하는것이 우리만의 갖고있는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민족브랜드가 아닐가 생각한다.
24    몸도 마음도 백성들속에 머물러야 댓글:  조회:2462  추천:63  2009-07-09
지난 5월부터  연길시당위와 정부에서는 부국급이상 지도일군의 사업내용과 시간에 대해 규정을 짓고 지도간부의 매월 사무실에서 사무보는 시간이 20%를 초과해서는 안된다고 명확히 요구하였다.연길시에서 이렇게 지도일군들의 사업내용과 시간에 대해 명확한 요구를 제기한것은 곧바로 기층에 내려가 조사연구하고  감독,독촉검사하며  밖에 나가 투자유치하고 자금을 쟁취함으로서 실제적인 일을 하고 효과를 따내는 사업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한  유력한 조치인것이다.기실 우리의 많은 지도일군들은 현대시설이 구전한 사무실에서  전화, 컴퓨터, 에어콘 등 편리한 사업환경의 세례를  받으며 사계절의 변화도 느끼지 못한채  문건을 시달하고 회보를 듣고 회의를 소집하면서 “분망한”하루하루를 보내고있는것이다. 이러다 보니 종종 제정하는 일부 정책들은 민심을 충분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기층의 의견과 건의를 제때에 수렴하지 못하여 예기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있는것이다.연길시에서 지도일군들의 매월 사무실에서 사무보는 시간을 2 0%를 초과하지 못한다고 규정한후 지난 한달동안 지도일군들이 기층군중과의 교류가 빈번해졌고 사업방식도 현저한 전변을 가져왔다. 하여 지도일군들의 기관사무처리률이 46.6%로부터 14.4%로 내려갔고 현지사무, 업무조달, 사업연구와 감독조사는 많아져 원래의 15%로부터 47.7%로 올랐다. 백성들의 말대로라면 여직껏 본적없던 지도간부를 논밭에서 만날수 있었고 공장에서 만난수 있었으며 가두의 작은 골목에서 만날수 있게 되여 일을 해결받기 쉬워졌다는 것이다.그러나 일부 지도일군들은 기층에 내려가지만  말타고 꾳구경하듯 둘러보고 회보를 듣고 융숭한 접대까지 받으면서 오히려 기층에 부담만 가해주고있는것이다. 특히 연길시 모단위 3명책임자는 기층에 내려가 조사연구, 업무협조를 한다는 명의로 진달래식당을 수차례 “방문”하였지만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도리여 기업에 부담을 주었는데  당과 정부의 형상에 먹칠하는 이러한 현상은  인차 시당위에 반영되여 통보비판을 받았다.형식적이고 관료적인 “현지사무”는  오히려 기층에 부담을 주고 군중의 염오를 사게 되는것이다. 몸만 기층에 있고 백성들속에 있을 뿐만아니라 마음도 기층에 가있고 백성들속에 머물러야 하는것이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리고 백성들의  질고를 헤아린 훌륭한 정책들을 제정하여 진정 인민의 공복으로 거듭날것이다.연길시지도일군들이 사무실을 떠나 기층에 내려가는 거동이 부디 형식만이 아닌 실제효익을 앞세운 리상적인 효과를 달성하기를 바란다
23    모아산 개발하지 않는것이 곧 개발이다 댓글:  조회:3022  추천:42  2009-06-17
15일에 있는 주도시전망계획위원회 제2차회의 에서 리룡희주장은 모아산은 연길시 시민들의 휴가를 즐기는 장소이기에 모아산의 생태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서는 더는 모아산주변의 음식업종대상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결정은 참으로 연길시 시민들들뿐만 아니라 연변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찬성하고 기뻐할 결정이기도 하다. 모아산, 뾰족산, 마반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부르하통하가 도심을 적시며 흐르는 연길시는 천혜의 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무성한 수림을 거느린 모아산과 같은 명산을 끼고사는 연길시 시민들은 참으로 축복받은 사람들인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아산이 모아산삼림공원 1기 2기공사를 거치면서 인공산의 흔적을 남기고있어 웬지 마음이 개운치 못하다. 물론 거액을 투자하여 건설한 모아산삼림공원 1기 2기공상의 완공으로 모아산을 찾는 시민들에게 보다 아늑하고 안전한 휴가장소를 마련해준것은 사실이다. 모사산의 주차장건설은 많은 등산객들에게 편리를 주고있으며    널판자로 된 등산길이 개설되면서 로약자들이나 어린이들도 모아산에 오를수 있게 되였다 또    산속에 마련된 휴식용걸상에 앉아 사람들은  편안히 자연의 정취를 감수할수도 있게 된것이다. 그러나  모아산의 화강암 대리석포장도로와 콩크리트길은 지금도 많은 시민들의 불평을 자아내고있는것이다. 모아산을 찾는 시민들은 콩크리트길보다 풀도 자라고 개미도 오가고 다람쥐도 넘나들고 소나무잎도 깔린  숲속의 흙길을 선호하고 있는것이다.모아산은 삼림공원이라는 생태자체가 경관인것이고 매력인것이다.. 그래서 수림속은 걸음마다 경관인데  별도로 하는 경관건설이나 개발이 오히려  모아산 생태계를 파괴하여 그 자체의 매력을  잃을 수도 있는것이다. 모아산에는 전망계획을 세우지 않는것이 좋은 전망계획일수 있고 건축물건설계획을 세우지 않는것이 좋은 건설계획인것이다.  인공적인것이 아닌 자연자체로서의 모안산이야 말로 연길의 명물이고 브랜드인것이다.연룡도일체화포럼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어떤 곳은 개발하지 않는것이 개발이다. 연길의 명물인 모아산은 순수자연과 벗할수 있는 청정지역으로 남는것이 곧바로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시민휴식과 관광의 매력포인트로 될것이다. 모아산주변에 음식업종대상에 대한 허가도 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이에 힘입어 정부 차원에서 모아산을 개발제한구역으로 제정하여 연길의 재현불능의 유일한 수림인 모아산이 자손후대로  생태가 훼손되지 않은 명산으로 남기를 바란다.
22    친구의 일침 댓글:  조회:2587  추천:47  2009-05-19
나에게는 선배이면서 자매같기도 한  친구가 있다.   비오는 오후나 눈내리는 밤에 흙이 게발린 신을 끌고 그의 집에 가도 허물없는 친구이다. 남편과 한바탕 다투고 무작정 집을 나와버리면 저도모르게 그녀의 집으로 발길을 돌릴수 있는 그런 친구이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것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도 잘 어울릴수 있는가며 리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기야 나와 그 친구는 너무나도 다른 스타일이니 말이다. 내가  무엇이나 사람들앞에서 맺고 끊고하는 딱딱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그 친구는  소리없이 일을 마무리하고도 사람들앞에 내색하지 않은 따뜻한 사고방식을 가지고있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고 사람사귀기를 좋하하는 나에 비해 그 친구는 사람사귀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하냥 말이 많은 나에 비해 그는 언제나 조용히 나의 말을 방청하는  편이다. 데면데면한 내가 불물을 가리지 않고 일을 벌려 놓으면 그 친구는 소리없이 뒤거두매를 해주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전화번호 생일들을 기억못했을때 그녀와 물으면 전혀 오차가 없다. 우리는 서로 아끼고 념려해주면서 서로 부러워하지도 또 꼬물만치의 허물로 질투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친구와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은 아주 많이 다르지만 서로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함께 기뻐하고 서로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서로 위로가 돼준다.  조용하고 별로 말하기도 좋아하지 않는 친구지만 그 친구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용서하지 않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간혹 내가 허영심에 들떠 교만해지고 남을 깔보려는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그는 시간이 얼만큼 지나면 자동적으로 울리는 자명종마냥 나한테 경종을 울린다 "잘난체 하지 말라. 남의 칭찬을 너무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지금 꽃을 던지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돌을 던질지 모를 일이다" 단잠에 푹 빠졌을때 자명종의  알람소리는 5분이라도 더 자고싶은 욕망에는 지극히 성가시고 짜증나는 소리이다. 따라서 때로는 자명종을 던져버리거나 이불속에  처넣어버리고 몇시간이고 내처 잠을 잘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잠은 실컷 잘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늘 해야 할 모든 일들을 그르치고 말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자명종존재같은 친구의 일침을 그냥 흘러보낼수가 없다. 때론 한마디씩 하는 친구의 일침은 나의 정곡을 찔러 아프기도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도 나는 솔직히 말해서 친구의 일침을 좋아한다. 때론  좋은 나의 기분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듣기 싫어하는척 하지만 친구의 충고는 나의 편협한 생각을 좀더 넓게 해주고  많은것을 배우고 깨닫게 한다.  솔직히 나는 친구라는 사람들끼리 서로 비위를 맞추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꼬락서니는 보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친구라기보다 꼭 마치 무슨 공범자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의 앞에서 "막돼먹은"  나의 모든 모습을 낱낱이 "공개"하고 '회보"하면서 친구가 나의 정신상태를 파악하고 그 급소에 침을 놓아줄것을 바란다.  그 침이 비록 무섭고 아프기도 하지만  그 침을 통해 나는 굽혀있던 마음이 펴지고 불구와 같은 마음이 다시 건전해짐을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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