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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대사에 나타난 10명의 살인미치광이들은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면서 피빚을 얼마나 졌는지 모른다. 따라서 “백정”이라는 두글자로 그들을 형용하는것이 가장 적절할것이다. 그럼 아래에 력대 10명 살인백정의 “걸작”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철혈백정 백기(白起): 공손계라고도 불리운 백기는 전국시기의 진나라 대장군이였다. 싸움판에서 백기가 어찌나 무자비했던지 6국의 군대들은 백기가 군사를 거느리고 온다는 말만 들어도 혼비백산할 지경이였다. 사서에 기재된데 의하면 당시 다른 나라들에서는 모두 진나라와 싸울 엄두를 못냈다. 사서는 뒤에 주해를 달았는데 그 내용은 진나라에 백기가 있었기때문에 모두들 무서워했다고 밝혔다. 기원전 294년, 백기는 군사를 거느리고 한나라와 위(魏)나라를 치면서 이궐(이궐: 지금의 하남성 락양시 룡문지역)에서 한위련합군을 격파했는데 적군의 수급을 벤것만도 24만개에 달했다. 기원전 278년, 군사를 거느리고 초(楚)나라공략에 나선 백기는 물을 터뜨려 언성(언성: 지금의 하북성 의성 동남쪽)이 잠기게 함으로써 군민사망자수가 수십만명에 이르게 하여 시체가 사처로 물우에서 떠다니게 하였다.
기원전 273년, 백기는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와 연나라의 련합군을 공격, 화양(화양: 지금의 하남성 신정북)에서 조연련합군을 대패시켰는데 그가 벤 수급만도 13만개에 달했다. 후에 백기는 또 조나라장군 가언과 일전을 벌렸는데 물을 리용해 조나라병사 2만명을 익사시켰다. 기원전 264년, 백기는 한나라를 공략하며 한나라 생력군 5만여명의 목을 전부 베였다. 기원전 260년, 조나라와의 장평전투에서 백기는 생포한 조나라군사 40만명을 생매장하고 겨우 240명의 소졸을 돌려보내 소식을 전하게 했다. 이로써 추산으로 도합 100만여명을 살해한 백기는 통계가 불완전한 살인장부를 가지고있다.
량계초의 고증에 따르면 옹근 전국시기에 도합 200만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 절반의 생명을 백기가 죽여버렸다.
잔인한 살인백정(辣手屠夫) 조조(曹操): 조조는 란세의 간웅일뿐만아니라 잔인하기 그지없는 살인백정이였다. 기원 193년, 도겸을 공략할 때 서주대도살을 감행, 기재에 따르면 남녀로소 가리지 않고 10만여명을 살해했을뿐만아니라 개든 닭이든 짐승조차도 가만놔두지 않고 닥치는대로 죽여 도처에 시체가 널린 까닭에 사수하까지 막혀 흐르지 못하는 정도가 되였다. 이밖에 조조는 장막을 치면서 옹성(雍城)토벌을 감행했고 려포를 치면서 팽성(彭城)토벌을 감행했으며 원상을 치면서 업성토벌을 감행하고 오환을 치면서 류성(柳城)토벌을 감행했는데 이르는 곳마다에서 모조리 죽이는 정책을 실시하여 그 수단이 극히 잔인함을 보여주었다.
미치광이살인백정 황소: 당조말년의 농민기의군 수령 황소는 횡포하고 지독하기로 소문났다. 황소는 장안성을 함락한후 사람을 어찌나 많이 죽였는지 시체가 온 거리에 널려있을 정도였다. 후에 관군이 다시 장안성을 수복한후 백성들은 완전히 관군의 립장에 서서 “황소가 사람을 마구 죽여 피가 온 성안에 질벅했다”고 공소했다. 《구당서》의 기재에 따르면 “황소가 군사를 거느리고 진주를 1년간 포위하고있었는데 량초가 다 떨어지자 수백개의 대형 돌절구를 만들어놓고 펀히 살아있는 백성들과 포로들을 남녀로소 구분없이 돌절구에 넣고 찧어서 그 고기를 병사들이 먹게 했다. 진주 4개주의 백성들을 다 잡아먹고나자 황소는 또 하남, 허, 당 등 10개주의 백성들에게도 마수를 뻗쳤다. 황소는 또 광주 대사에서 학살을 감행했는데 아랍 등 무슬린상인들을 20여만명 살해했다. 과연 그 미친듯한 살인행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해지게 하였다.
야만백정 테무진: 테무진이 세운 몽골제국의 패업은 가히 수많은 사람의 백골로 세운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기원 1215년, 테무진은 금나라의 도성 중도(지금의 북경)를 함락했는데 성안의 백성들을 한달동안이나 대도살했다. 당시 100만명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그 재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원 1221년, 테무진은 한차례 서방정벌에서 대도살을 감행했는데 당시 몽골병사 5만명이 매인 평균 24명의 백성을 도살함으로써 도합 12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악의 백정(屠夫之最) 구비라이(忽必烈): 이 원나라의 건립자는 종족멸종의 정책을 시행하여 한족들을 대거 학살했는데 그 사망자는 1800만명이 넘었다. 중국 북방의 90%의 한족평민들은 대부분 그 종족멸종의 참극에 희생양이 되고말았다. 구비라이가 사천에서 대도살을 감행하기전에 300만~2000만명의 인구가 있었는데 도살후 80만명도 남지 않았다. 이 인간성을 상실한 종족멸종행위는 기니스세계기록대전에 수록(1985년)되였다.
랭혈백정(冷血屠夫) 주원장(朱元璋): 이 목동은 황제가 된후 갑자기 마음이 변하여 공신, 조신들을 마구 학살했다. 사서에 기재된데 의하면 호유용, 리선장, 란옥삼 사건에서 도합 10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원장은 재위 30년간 20만명을 살해했는데 공신들은 기본상 다 죽여버렸다. 주원장은 상우춘(常遇春)에게 이쁜 첩을 안겨주었는데 상우춘의 안해가 그 첩의 손목을 잘라버렸다. 이를 알게 된 주원장은 즉시 사람을 보내여 상우춘의 안해를 죽여버리고 그 갈비뼈를 삶아서 상우춘 및 대신들이 식용하게 하였다. 주원장은 또 사람의 가죽을 바르는 형벌을 만들어 잔인한 본색을 세상에 알리였다.
변태백정 주체: 애비 주원장에 비해 주체 역시 살인백정으로 손색이 없었다. 1402년, 그는 친조카 건문제의 황위를 빼앗은후 건문제궁의 녀관, 태감 등 모든 사람들을 다 죽여버렸는데 한번에 1만 4000명이나 학살했다. 그는 또 건문제에게 충성하던 옛신하 방효유 등을 전부 살해했는데 그의 “10족”까지 화를 면치 못했다. 그리고 방효유의 안해 및 그 가족중의 녀자들은 군영에 가두어놓고 병사들이 마음껏 즐기게 했는데 한명의 녀자가 밤낮이 따로 없이 20여명 사내들의 수욕을 만족시켜야 했다. 그러다가 육신이 지쳐서 죽는 녀자는 시체를 가져다 개에게 먹이게 했다. 영락말년, 주체는 또 한번 궁녀, 환관들에 대한 대도살을 감행했는데 이번 대참사에서 살해된 궁녀만도 근 3000명에 달했다. 림종을 앞두고도 학살본성을 잊지 않은 주체는 바로 죽는 날에도 30여명의 궁녀들을 목을 매달아 죽여버림으로써 자기와 함께 묻게 했다. 과연 명실상부한 변태살인백정이였다.
야성백정 장헌충: 명나라말년의 기의군 장령이였던 장헌충은 군사를 거느리고 성도를 함락한후 3일동안의 대학살을 명령했다. 그로서 3일후 대학살을 그만둔후에도 장헌충은 의연히 날마다 100여명씩 살해했다. 그러다가 청나라군이 몰려오자 장헌충은 곧바로 도망쳤다. 바로 대군이 성도에서 도망치기전에 그는 참혹한 “4광정책”을 실시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천인을 모조리 죽이고 일반백성으로부터 군인가족(로약자와 환자, 부상자)에 이르기까지 또 자기 군사들중에 있는 호북병사와 사천병사들 그리고 최초에 자기를 따르며 사선을 넘나들던 친병들까지 모조리 죽여 그 고기를 베여 군량으로 했다. 기재에 따르면 어느날 저녁, 장헌충은 자기가 부르는데 대답하지 않았다는 리유로 명령을 내려 자기의 어린 아들을 죽이고는 이튿날 후회마지 않다가 처첩들을 불러 왜 아들을 구하지 않았느냐고 문책했다.
그리고는 처첩들은 물론 자기 아들을 죽인 도부수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렸다. 장헌충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여러가지로 만들어냈는데 그중에는 백관들앞에서 10마리의 개를 풀어놓아 개가 누구한테 가서 냄새를 맡으면 곧 그를 죽여버렸는데 이것을 가리켜 “천살”이라고 했다. 장헌충은 매번 사람을 죽일 때마다 상세하게 기록해놓았는데 그중에는 사람머리가 몇무지이고 사람의 손이 몇무지이며 사람의 귀가 몇무지라는것까지 다 기록되여있었다. 마성을 함락한후 그는 부녀들의 발을 잘라내여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가장 이뻐하는 첩을 데려다 참관시켰다. 그런데 첩이 웃으면서 “보기는 좋으나 아름다운게 부족해요. 이쁜 발 한쌍이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하자 장헌충은 “너의 발이 제일 예쁘다”며 바로 그 첩의 발을 잘라내여 “발산더미”에 올려놓았다.
흡혈백정(嗜血屠夫) 누르하치: 누르하치는 군사를 거느리고 료동지구를 점령한후 당지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이 바빠 반란이라도 일으킬가봐 료동지구의 빈민들을 모조리 붙잡아다 살해했다. 후에 또 료동의 부자들이 압박에 못이겨 반항할가봐 두려워 료동지구의 부자들도 대부분 다 죽여버렸다. 누르하치는 료동백성 도합 300여만명을 살해했는데 료동지구의 한족들은 기본상 다 화를 면치 못했다. 이는 피를 보기 좋아하는 누르하치의 본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옥백정 다탁: 청나라 예친왕(豫 王)인 다탁은 1645년에 군사를 거느리고 양주를 포위한후 대포를 쏘아 성문을 열고 양주성에 짓쳐들어갔다. 다탁은 련속 10일간 대도살을 감행해 양주백성 80만명을 살해했다. 이로써 번화하던 양주성은 순식간에 인간지옥으로 변했다. 청나라군이 양주백성들을 보는대로 살해하다보니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였는데 어린애들도 재화를 피하지 못했다. 나중에 련못도 피로 물들어 벌겋게 되였는데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다탁이야말로 명실상부한 지옥백정임에 틀림없다.
《신랑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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