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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산골에 넘치는 사랑
2009년 04월 08일 09시 37분  조회:3780  추천:0  작성자: 人和

2008년 4월 2일, 호남성 침주시 북호구 영춘향 재수구촌에 살고있는 류문영은 골치아픈 문제에 봉착했다. 아들 류시중이 며칠후에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던것이다. 아들이 결혼하는것은 원래 기쁜 일이였지만 류문영에게는 골치아픈 일이 아닐수 없었다.


류시중은 호남학원 계산기학부 2학년생이였다. 방금 대학입학통지서를 받았을 때 어머니가 앓아서 1만원을 쓰고 2000여원의 빚까지 지는 바람에 류시중은 공부를 그만두고 품팔이를 하여 집살림에 보탤 생각을 했다. 그때 이 정황을 알게 된 그의 고중동창생이며 친구인 황은화가 발벗고 나서서 그를 도와주었다. 그녀는 직업전문학교에 갈 기회를 포기하고 광주의 어느 전자공장에 들어가 품팔이를 하면서 그의 대학공부뒤바라지를 해주었다. 그때로부터 두 사람의 감정은 신속히 발전하여 서로 떨어질수 없는 사이가 되였다.


2007년 8월, 황은화는 몸에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서 병원에 가서 검사해봤더니 급성림파세포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류시중은 즉시 대학공부를 그만두고 품팔이를 하면서 입원치료를 받고있는 황은화를 돌봐주었다. 녀자친구가 학교에 돌아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치료를 거부하겠다고 핍박했지만 류시중은 고집스레 자기의 선택을 견지하면서 하늘을 감동시켜 녀자친구의 젊은 생명을 구할수 있기만을 고대했다. 소식을 들은 류시중의 아버지 류문영과 어머니 왕초래는 침주시로 달려와서 아들더러 대학으로 돌아가라고 권고했다.


“널 대학공부시키는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네 공부뒤바라지를 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돼지를 길렀고 얼마나 많은 닭알을 팔았는지 아느냐?  우리 촌에서 어쩌다 너같은 대학생이 나왔는데 너는 이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걸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대학을 졸업하고 이곳에 취업하면 이후 대대손손 가난한 산골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될게 아니겠냐?  넌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아름다운 미래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류시중은 실망하여 한숨을 쉬는 부모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도 그런 도리를 압니다. 그러나 은화가 없었다면 난 대학문에도 들어갈 기회가 없었을것입니다. 은화가 날 위해 힘든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수도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을 희생하면서 나를 대학에 가게 한 녀자친구가 병원의 침대에 누워 죽기를 기다리고있는데 내가 어찌 마음놓고 공부할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남의 은혜를 입었으면 꼭 보답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왕초래는 화가 나고 조급해서 비자루로 아들을 때리려고 했다. 류문영은 막아나서면서 “시중의 말에도 도리가 있소. 우리가 시중을 핍박하여 대학교에 가게 한다고 해도 이 아이의 마음은 은화한테 가있을것이니깐 이 아이의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는것이 좋겠소”라고 말했다.


2008년 3월말, 황은화의 병세는 악화되였다. 의사는 골수이식수술을 하든지 환자가 이루고싶어하는 마지막 소원을 이루게 해주든지 빨리 선택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류시중은 급해났다. 골수도 찾기 어렵지만 40만원에 달하는 수술비용을 마련한다는것도 오르지 못할 큰 산을 바라보는것과 같았다.류시중은 두 사람이 나란히 손을 잡고 혼인의 전당으로 걸어들어가는것이 은화의 마음속의 가장 간절한 소원일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그녀에게 유일하게 해줄수 있는것은 그녀에게 혼례복을 입혀 아름다운 신부로 되게 해주는것이야.)


병상에 누운 황은화는 머리가 빠지고 얼굴이 부었는데 혈색이라곤 보아낼수 없었다. 황은화의 병문안을 왔던 류문영은 그녀의 가엾은 모습을 보고 그날밤으로 아들을 데리고 황은화의 부모를 찾아가서 결혼날자를 잡았다.


2008년 4월 8일 오전 11시 30분, 침주시 북호구 영춘향 재수구촌의 농가에서 류시중과 황은화의 간단한 결혼식이 거행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사람들은 일하던 맵시로 류씨네 집마당에 모여들어 신랑신부를 축하해주었다.

 

주례자가 류시중을 보고 “신랑은 정말로 중병환자를 안해로 맞아들이기를 원합니까? 만약 신부의 병이 치료될수 없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묻자 류시중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종래로 은화의 병이 치료될수 없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나의 가장 큰 소망은 은화의 병이 하루 속히 낫는것입니다. 나는 우리의 사랑이 하늘을 감동시키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될 때까지 한평생을 함께 살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주례자가 또 류문영을 보고 “아들이 대학공부를 포기하고 중병환자를 안해로 맞아들이는것을 동의합니까?”라고 묻자 류문영은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은화는 시중의 은인이고 시중이 또한 생명처럼 사랑하고있는것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오늘부터 은화는 우리 가족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결혼후 황은화의 건강상태는 괜찮아 매일 시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할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몸보신하라고 닭곰을 해주었지만 며느리는 한술도 먹지 않고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드렸다. 그러나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6월 26일 오전,황은화는 갑자기 방바닥에 쓰려졌는데 코와 입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류시중은 결혼식때 부조로 받았던 5000원과 3000원의 저금을 몽땅 찾아가지고 안해를 데리고 침주시제1인민병원으로 갔다. 검사결과를 본 의사는 매우 놀라면서 “환자의 정황이 아주 나쁩니다. 골수이식수술을 하지 않으면 3~4개월밖에 더 살지 못합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급해난 류시중은 사처로 뛰여다니면서 백혈병치료에 대한 정보를 수소문했다.


2008년 7월 3일, 류시중은 안해를 데리고 광주시중산대학부속제2병원에 가서 검사했는데 역시 3개월밖에 더 살수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5일후 황은화의 세 언니와 동생이 와서 골수를 검사받았는데 셋째언니 황동화의 골수가 황은화의 골수와 딱 맞았다. 하지만 이미 13만원이나 써버린 빈민산골의 가정에서 이제 골수이식에 수요될 비용 40만원을 모은다는것은 천방야담이나 다름없었다.
재수구촌은 매인당 년평균수입이 3000원도 되지 않았다. 류문영은 가까운 사람들을 모두 집에 청해놓고 며느리의 정황을 말하면서 도움을 청했다. 황은화의 처지를 동정한 마을사람들과 친척들은 집을 저당잡히고 대부금을 맡아서 2만 5000원, 3만원, 3만5000원, 5만원씩 지원했고 그외 사처로 다니면서 1만원, 2만원씩 꾼 돈을 모으니 5일만에 40여만원이 되였다.


한달남짓한 강화화학치료를 받은 황은화는 골수이식을 받을 준비가 되였다.


 2008년 10월 8일, 황은화는 무균창에 들어가 소독처리를 받았다. 그와 동시에 황동화도 병원에 들어가 100리터의 조혈간세포를 기증했다.2008년 10월 10일 10시 30분, 이식수술이 시작되였다. 1시간 30분후 황동화의 조혈간세포가 성공적으로 황은화의 체내에 주입되였다. 두주일이 지난후 황은화의 조혈기능은 성공적으로 회복되였다. 보통병실로 들어가 두주일동안의 재활치료를 받은 황은화는 퇴원하여 집에 돌아가 료양할수 있게 되였다. 이 기간의 치료비는 53만여원에 달했는데 이는 가난하지만 선량한 사람들이 창조한 생명의 기적이였다.


11월 15일 오후 5시, 류시중은 안해를 부축하여 침주시에 있는 집으로 데리고왔다. 이 기쁜 소식을 들은 전 촌의 남녀로소들은 모두 동구밖에 모여와 폭죽을 터뜨리면서 그들을 맞이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준 마을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황은화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집에 돌아온 황은화는 남편의 품에 얼굴을 묻고 대성통곡했다.


“시중씨, 난 마을사람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었어요. 이렇게 많은 대부금을 우리가 어떻게 다 갚겠어요? 어느 친척이 못갚으면 집을 내줘야 하는데 우린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그 말을 들은 친척들은 “대부금은 근심하지 마오. 우리는 꼭 품팔이를 하여 갚을거요. 우리의 소원은 은화의 건강이 빨리 회복되는것이요.”라고 그녀를 위로해주었고 류시중도 “우린 이미 엄청난 기적을 창조했는데 이만큼한 대부금을 갚지 못할가봐 근심할게 뭐요?”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지자 침주시공청단위원회 부서기 왕홍찬은 직접 류시중의 집으로 달려와 1000원을 기부했고 2008년 11월 18일, 침주시공청단위원회에서도 의연금을 모아 보내왔다. 침주시 제1인민병원에 입원한 환자들도 크나큰 고무를 받았다.우리는 이처럼 불가사의한 기적을 창조한 선량한 사람들의 힘에 감동되면서도 그들의 앞으로의 생활을 걱정하지 않을수 없다. 그들이 대부금을 갚지 못할 때 어떻게 할것인가? 더구나 황은화는 계속 매달 1000여원의 비용이 드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들이 대부금을 갚을 희망이 묘망했다. 빈곤한 농민들에게 사랑을 주는것도 중요하지만 의료보장이 있게 하는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겠는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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