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chuichangchun 블로그홈 | 로그인
최장춘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칼럼

생일파티의 곤혹
2017년 08월 21일 15시 23분  조회:1345  추천:0  작성자: 최장춘
연변사람들 술판이 많기로 평판이 나있는 실정이지만 그 와중에도 생일파티는 주변에 소문이 자자하다. 어린애든 성인이든 생일을 서로 다투어 쇠는데 일가친척에 친구들까지 빙 둘러앉으면 웬간한 결혼상을 넘본다.

옛날 가족의 축수를 받으며 조용히 쇠던 로인들의 생일파티가 언제부터인가 돌림식으로 변형되여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면서 명절분위기를 방불케 한다. 어떤 이들은 숱한 손님을 청해놓고 다음 날부터 부조받은 그 ‘ 빚’을 갚느라 때론 하루에 생일집이 두집, 세집 겹쳐 밤중까지 팽이처럼 돌아치며 분주히 보낸다.

생일축하의 말은 둬마디 건성해놓고 사촌 기와집 지어주 듯 한바탕 큰소리 탕탕 치는 대포쟁이들의 잡담이 또한 억이 막힌다. 서로 멋들어지게 살았노라 꼬챙이에 꿰여들고 겨끔내기로 목청을 돋구는 판국이라 말주변이 없고 고지식한 축들은 곁에 앉아 그저 술이나 따라올리는 들러리 신세가 되고 만다.

옛날 범을 때려잡은 무송이 혀를 끌끌 찰 지경이라 사물에 해박한 이들은 입이 쓰거워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끓어번지던 술판이 스산하게 깨지는 일이 비일비재다. 생일파티를 굉장히 차려 인격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요, 간소해서 랑패 보는 일도 별로 없다.

지난날 우리 선조들은 생일이란 개념을 모른 채 세파에 부대끼며 힘들게 살았어도 가정을 책임지는 버팀목의 역할만은 굳건히 지키며 살았다. 생일날자 기억하기 앞서 자신의 신성한 소명을 명기하는 것, 항상 겸손하고 흐틀어지지 않는 자세를 지키는 타입이라면 구태여 생일파티를 위해 여기저기에 구걸하다 싶이 초청장을 보낼 리유가 없을 줄로 안다.

연길에 사는 한 녀인은 일전 남편의 환갑생일날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 갖가지 화초들을 사서 창턱 우에 올려놓고 이 꽃은 남편 꽃이요, 저 꽃은 안해 꽃이요, 파릇한 윤기가 흐르는 애나무는 연해도시에 있는 아들며느리 것이요 하며 재미있게 이름까지 붙여놓고 희망을 부풀렸다. 저녁에는 아들며느리 부쳐온 선물과 료리 두 접시를 차려놓고 케익에 꽂힌 초불을 밝혔다. 그리고 30여년전 처녀총각시절 서로 주고 받던 색바랜 편지들을 펼쳐보며 추억의 기쁨을 나눴다. 아픈 기억이 많을 수록 오늘의 생활이 더없이 소중해 보이는 법이다.
석전갱우 같이 부지런히 억세게 살아온 사람이 고진감래의 느낌과 희열을 숨기고 이슬 맺힌 눈만 슴벅이는 순박한 마음과는 달리 해놓은 일이 별로 없이 소금알을 좀 먹은 것이 큰 자본인양 어깨를 들썩이는 모양새가 어쩐지 어설프게 왜소해 보일 때가 많다.

신비한 판도라 상자마냥 한해에 한번씩 열어보는 생일상자 속에 한쪽은 맨날 빈둥거리며 질탕 먹고 마시며 놀았다는 원성이 가득차 있고 다른 한쪽은 로동의 탐스런운 결실을 칭찬하는 메시지가 듬뿍 차 있다면 제우스의 천평은 과연 어느 쪽에 넉넉한 량심의 무게를 실려줄가.

멋진 삶에는 생일날이 따로 없다. 서로 더 가까이 마주보며 미움을 용서로 바꿔주고 오해를 리해로 풀어주며 우정의 따뜻한 손목을 잡는 날이 진짜 생일날과 같은 기쁨일 진대 정해진 시간에 임무적으로 쇠는 생일은 어쩐지 곤혹스럽다.

하지만 평소 즐거운 일감에 올인하다가 며칠 후 잊혀진 생일날이 깜짝 떠오르는 순간 절로 생기는 말 못할 흐뭇함과 행복감이 이웃에 찐한 향기를 선사한다.

길림신문 2017-8-21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50 옷단장은 인격이고 례절이다 2019-11-20 1 1307
49 건전한 음주문화의 품위 2019-09-24 0 1418
48 참된 우정은 거리감에서 생긴다 2019-07-17 0 1449
47 상업의식이 경쟁력이다 2019-04-11 0 1478
46 땅의 참된 주인들 2019-04-09 0 1743
45 생각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2019-02-14 0 1373
44 걱정도감은 사회 본보기 2019-01-03 0 1457
43 [두만강칼럼] 상술을 바꿔야 운이 트인다 2018-07-24 0 1534
42 상술보다 덕성을 앞세워야 더 커진다 2018-04-20 0 1585
41 넓은 세상과 소통하며 살자 2018-04-12 0 1598
40 옳바른 인생공부 희망을 부른다 2018-03-19 0 1624
39 지금은 빈부격차 줄일 때다 2018-03-08 0 1562
38 참사람 참된 말 2018-01-15 0 1677
37 종자돈에 승부를 걸라 2017-11-28 0 1574
36 자연을 앞세운 명소 끓는다 2017-11-02 0 1555
35 약속은 지켜야 떳떳하다 2017-09-23 0 1581
34 서글픈 효성의 그림자 2017-09-15 0 1660
33 진학축하연청첩장에 ‘NO’라고 말해보자 2017-08-30 0 1713
32 고향의 새 전설 엮을 때가 왔다 2017-08-23 0 1483
31 생일파티의 곤혹 2017-08-21 0 1345
‹처음  이전 1 2 3 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