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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는 왜 그리기 힘들가
2021년 11월 18일 09시 51분  조회:852  추천:0  작성자: 최장춘

일전 한 녀고생이 칠판에 분필로 원을 그리는 7초짜리 영상이 큰 인기몰이가 됐다. 맨손으로 콤파스를 활용한 것처럼 반듯하게 그려낸 영상을 보고 수많은 네티즌들이 잇달아 도전해봤지만 한낱 패러디영상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예로부터 동그라미는 완벽한 소원의 상징으로 인간이 가장 선호하는 대상이였다. 얼핏 보매 그리기 쉬운 것 같으나 막상 손을 대보면 껄끄럽게 토라져 실패작을 내놓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아Q정전>의 아Q가 수인차에 끌려가면서  금방 이름 우에 친 동그라미가 왜 비뚤었는지 몰라 량미간을 찌프리며 집착한 걸 감안하면 필경 동그라미안에도 판도라상자의 비밀이 숨겨져있는 것 같다.

심미학자들은 자연에서 비롯된 원을 인간의 가장 조화로운 감정표식으로 풀이한다. 평면이든 구형이든 원에는 복판을 기점으로 해살같이 뻗어나간 수많은 반경이 꼭 일치해야 하는 법칙이 있다. 다 빈치의 <비트루비우스 인간> 비례에 따르면 인체가 배꼽을 중심으로 활짝 펼친 팔다리의 정점을 련계할 경우 하나의 원이 형성된다. 그 밖에 인간은 정수리부터 손끝발끝까지 지어 온몸에 뒤덮인 땀구멍마저 모두 작은 원형의 모양새를 갖췄으니 원형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 아닌가 싶다.

사회활동에서 사람들은 원을 긍정과 찬성의 부호로 활용하는 한편 이루고 싶은 꿈의 상징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과 추석달에 자신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빌고 또 빌면서 먹는 음식마저 동그란 원소 아니면 월병이다. 그만큼 세상에 흔하디 흔한 동그라미에 차원 높은 이미지를 부여하기까지 넘어야 할 어려운 고비는  물론 육신을 비틀어 짜는 고통도 겪어야 한다. 겉은 동그란 웃음꽃을 피웠어도 속궁리는 앙큼하고 서리발 치는 사람이 있다.

남남으로 태여나 한 교실에서 공부하면 동창생이요, 한 직장에서 근무하면 동료가 되는 건데 늘 주달이 그린 새의 삐딱한 시선으로 배척하고 업신여기는 일을 밥 먹듯 하여 둥그러야 할 인간교제가 이 떨어진 치차처럼 덜컹거린다. 어느 회사의 지도자는 말끝마다 번지르르 화합이요, 단합이요 하지만 회사원들과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점심식사도 직원이 따로, 팀장이 따로, 지도자급이 따로 등급을 매겨 워낙 둥근 밥상이 모가 나서 눈살을 찌프리게 만들었다. 너와 나 합쳐 우리가 될 수 있는 전제조건은 곧 평등이다. 평등이 없으면 대화도 없고 소통도 있을 수 없다.

불신과 믿음, 질투와 사랑이 엉켜붙어 물레방아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삶의 궤적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다듬어내느냐에 따라 자신을 나타내는 무대공간이 크게 둥글어질 수도 있고 볼썽사납게 찌그러질 수도 있는법이다. 인터넷에서 한 심리학 교원이 강의 도중 커다란 동그라미와 불균형 오각별을 칠판에 붙여놓고 그 안에 각각 ‘단합’과 ‘갈등’이란 단어를 적어넣었다. ‘단합’이 적힌 동그라미는 일월의 정기를 품은 듯 밝고 훤한 데 반해 ‘갈등’이 적힌 불균형 오각별은 무작정 키돋움한 나무처럼 들쑥날쑥했다. 재부와 권력, 명예를 삶의 최고목표로 정하고 유아독존을 일관하는 사람의 족적을 살펴본즉 동화 <어부와 금붕어>에서 나오는 욕심쟁이 할망구 같은 궁상맞은 집뜨락의 몰락된 양상을 감추지 못했다. 극단적 자기중심의 욕구가 빚은 결과라고 하겠다.

일본의 요시하라 지로는 일생을 살면서 50년 동안 줄곧 동그라미만 그린 화가이다. 가끔 좁은 생각과 넓은 생각의 차이를 점점이 동그라미로 잘 보여주었는바 원 밖에 다른 원이 겹쳐있고 그외에 또 커다란 원이 감싸안은 그림을 접하는 순간 동그라미마다 하나의 독립적인 세상인 동시에 사슬처럼 련결되여있음을 느낀다. 더우기 첫눈에 안겨오는 동그라미보다 원심력에 의해 형성된 알릴듯 말 듯한 보이드공간을 제꺽 짚는 사람이 대인관계의 전성기를 맞는 확률이 높다.

고대철학자 제논의 말을 빌어 원안의 수치가 고정불변일 때 원 밖의 미지수는 변화무쌍하다. 울타리에 갇혀 살면 고집스워지고 드넓은 세상을 포옹하면 겸허해진다. 비록 왜소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몸은 부대껴 딩굴고 찢어져도 바깥세상과의 교류를 통해 짧은 건 길게, 긴 것은 짧게 하여 유연하고 깔끔한 원형을 닮은 성숙된 자세로 컴백한다. 지구의 모양새가 둥근 것은 함께 오구구 모여서 재밌게 살라는 뜻이지 쩍하면 빚받이군처럼 낯을 찡그리고 내노라 호통치며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시계바늘처럼 각자의 본분을 지키며 경쟁과 협력, 소통과 상생을 결부한 공존공생의 파트너로 거듭날 적엔 작은 점 하나도 진짜 엄청난 스펙트럼을 발산한다.

  원형은 둘이 손가락 걸면 환상의 짝꿍이 되고 서넛이 모이면 황금마차를 이끄는 수레바퀴가 되며 다섯이 어울리면 올림픽성화마냥 지구촌을 잇는 랜드마크가 된다. 관건은 각자 마음에 간직한 그릇의 크기가 어느 만큼인가에 달려있다. 타인을 살피는 눈은 밝은데 자신을 반추해보는 눈은 어둡다. 평소 타인의 이름 앞에 긍정과 칭찬의 동그라미를 선뜻 쳐줄 수 있는 용기와 아량이 부족한 탓에 오늘까지 어쩐지 동그라미를 긋기 무척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멀어진 이웃과 덥석 손을 잡고 벙긋 웃는 사이에 동그라미는 벌써 겨우내 얼어붙은 마음의 강판을 쩡쩡 깨뜨리며 훈훈한 봄기운을 선사한다. 동그라미는 진정 손끝을 떠나 마음속으로 그려내는 눈부신 태양이 아닌가 싶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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