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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년 하동 삼십년 하서
2016년 03월 23일 09시 01분  조회:934  추천:1  작성자: 최세만
30년 하동 30년 하서(三十年河东三十年河西),이 격언의 유래는 이러했다. 옛날, 중국 황하의 물길(河道)은 불 고정했다. 어느 곳은 원래는 강 동쪽에 있었는데, 몇 년 지나서는 강줄기가 바뀌면서 갑자기 강 서쪽으로 변했다. 후에 사람들은 변화무쌍하고 추측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두고, 위의 격언을 빌어 말하기를 좋아했던 것이다.

인생살이, ‘운수’도 정말 그러한 것이다. 인생여정에서 뜰 때도 있고, 내림 질 할 때도 있고, 일어 날 때도 있고, 곤두박질 할 때도 있다.

89년도 ‘대학생 민주운동’ 때 있었던 일이다. 이 운동은 그 해 5월부터 고조를 일으켰다. 신문, 언론방송에서도 대서특필했다. 객관적으로 이번 “절식운동”을 정면으로 평가했다. 그때 나는 학교에서 농망가를 타서 둘째형의 모내기를 도왔다. 저녁에 술을 마시면서 TV를 보면서 학생운동을 예의주시 했다. 그때 둘째 형이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아무리 학생들이 들볶아도 학교 선생들한테는 먹을 알이 없어.”

나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불쾌했다. 당시 농민들의 농사수입은 아주 좋았다. 쥐꼬리마한 월급을 받는 교사들을 우습게 본 것이 사실이었다. 그때 이런 말이 유행했다. ‘수술칼은 쥔 의사가 백정보다 못하고, 대학교수가 길거리에서 차단(茶叶蛋)을 파는 노파보다 못하네.’ 당시 교사나 공무원들의 월수입이 형편 없었고, 공장에서 실직하고, 하강(下岗)노동자가 엄청 많았다. 시초 학생운동은 불 공평한 사회 제도를 개진하고, 민주개혁을 촉진하려는데 있었는데, 후에 ‘다른 마음을 품은 자’들한테 이용되면서 있어서는 안 될 “6.4 천안문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후 수년이 지나면서 농민들의 쌀 가격은 오르지 않고, 쌀 판매난이 어려워지고, 생산자료물가가 껑충 오르기만 하면서 농민들의 생산적극성이 하락했다. 반면 공무원들, 교사들의 봉급이 들입다 오르면서 교원직업을 부러워하기 까지 했다. 30년 하동 30년 하서가 아니라 ‘십년하동 10년 하서’인 격이 되었다.

 개인 운수에서도 참 신통한 일이 있었다. 81년도 겨울, 나하고 한족 대대 민병연장은 공사(公社)서씨란 선전간사를 협조해서 문화대혁명시기의 원가착(冤假错) 락실(落实)에 나섰다. 우리는 21일 동안 외지생활을 하면서, 4개 중점마을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거기에서 우리는 문화대혁명시기 수 십 집의 ‘억울한 사건, 가짜 안건, 틀린 사건’을 해명했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돈을 지급 받게 합의를 보았다. 그때 나는 서 간사한테서 한 공산당원의 고상한 풍격을 보았다. 서 간사는 웅변도 좋았고, 설득력이 있었다. 제대 군인출신인 이 분은 원래 공사 중학 교장, 공사 농업은행 행장도 한 적이 있었다. 21일 조사연구를 하는 동안, 서 간사는 줄곧 팔 굽치와 무릅 굽치를 기운 옷을 입었다. 이 분은 문화혁명시기 부대에서 남처럼 ‘만세구호소리’를 웨치며 열광하지 않았다고 한다.

몇 년 지나 나는 현성에 회의 하러 갔다가 우연히 다리 목에서 서 간사를 만났다. 그때 그는 이미 공사 비서로부터 발탁해서 현위 당안국 국장신분이었다. 깔끔한 중산복 차림한 이 중년 사나이는 참 멋져 보였다.

또 한 사람이 있는데, 이 분은 내가 중학교 다닐 때 교장이었다. 이 교장은 원래 생산 대대 서기였는데 문화혁명 시기 중앙 “붉은기잡지”에  ‘계급투쟁의 장기성, 복잡성, 굴곡성을 인식하자’란 유명한 글을 발표했다. 이 문장은 후에 중소학교 정치 교과서에 까지 올랐다. 그는 중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현의 부 현장 직책도 겸임 했다. 우리가 현 운동회에 참가 할 때면 우리 교장은 주석대위에 떳떳하게 앉아 있었다. 우리 선수단도 부 현장인 교장의 배려를 입어 언제나 주석단 옆에 자리를 정했다. 후에 ‘문화대혁명착오노선’이 시정되면서 이 사람은 어느 한 이름없는 탄광에 내려갔다. 내가 기차역에서 한번 본 일이 있었다. 조금 먼 발치에서 보았는데 그가 입은 옷은 남루했고 얼굴에 수심에 잠긴 듯 했다. 중학교 있을 때 이 분이 우리에게 직접 단과도 강의 한 일이 있었다. 하여 그 모습을 보고 내 마음도 짜르르 해졌다. 이 분 역시 ‘문화혁명의 피해자’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운수는 가늠키 어렵다. 부자운세, 출세벼슬은 본인의 능력, 의지, 자질과 수양에도 있겠지만, 복잡다단한 사회환경요소와 뒤엉키기 때문이다. 하여 가급적으로 좋은 “운수”를 오래 누리자면 덕망 덕목도 쌓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큰 경향’에 항상 명석하고, 머리가 뜨거워 서도 안되고, 무조건 순종해서도 안 된다. 한때 잘 나가고 부유하다고 해서 없는 자를 깔봐서도 안 된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동포타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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