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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자작시) 땅에 묻어 곰팡낀 잠꼬대
2012년 07월 30일 21시 13분
조회:9614
추천:3
작성자: 최균선
땅에 묻어서 곰팡낀 잠꼬대
밀림의 일기
열여덟살, 덤벙대는 애숭이가
둥글이 등에앉아 화집령넘고
고동하 유서깊은 물결거슬러
밀림아, 내 네품에 들어섰노라
백두의 천고밀림 책에서 읽으며
꿈길에도 찾아오던 너 림해여
항일전의 밀영지는 어디쯤이냐
일제가 략탈한 흔적만 어수선타
내 모르고 왔던들 무슨 대수랴
이제 막사를 짓고 저목장 넓히고
갈래갈래 파리길 가로세로 빼고
하는 일, 일마다 벅차도 해내리라
다시 산을내려 화집령초지에서
맨발로 소먹이 새초를 베여묶고
만두한쪼각이라도 더얻어먹을가
화식칸에 화부도 마다하지 않고
다시 전설의 게굴라즈령을 넘어
독립군들 일본군족친 천수동에서
전화줄거두고 레루장도 메나르며
나는 어섯눈을 떳다, 인생고에…
햇내기 채벌군으로 첫톱을 걸어서
한대, 한그루 거목들을 베여넘기고
짓누르는 목도채 허리펼수 없어도
한바곤, 또 한차 목재를 메여싣고
살을 에이는 눈보라, 눈보라속에서
저목장에《문티》를 쌓아올리면서
목재라 사지판의 진실을 읽으면서
나의 참인생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밤, 토비굴같은 썰렁한 막사에서
호롱불 밝혀놓고 시줄도 엮다가
노그라진 목도군의 꿈도 시리여
밀림의 긴긴 밤이 코를 골고있다.
1960 년 12월 28일
하산도야 (下山倒)
쌰산또ㅡ오ㅡ쌰ㅡ산ㅡ또ㅡ오ㅡ오ㅡ
넘어간다ㅡ너ㅡ머ㅡ어ㅡ간ㅡ다ㅡ아ㅡ
채벌군의 규칙이라 웨쳐야 한다기에
하루 수십백번, 배꺼지게 곱씹는소리
시퍼런 도끼날도 탱탱 튕겨나는
아름드리 쇄스래, 가문비나무에
무릎꿇고 첫톱날을 걸었을 때
자랑찬지, 보람찬지 나는 몰랐다
한대라도 더 큰놈을 베여제끼려
제격인 채벌군이 되여본답시고
맹종에 무지한 열정을 올리며
쓱ㅡ싹…헝헝, 쓱ㅡ싹…헐씨근…
나무들도 당당한 생명인것을
무차별 찍어내고 베여낼 때에
목재생산이라고만 생각하였다.
자연과 략탈의 사이비도 모르고…
채벌군은 생산자냐? 파괴자냐?
저목장에 목재는 산처럼 쌓이고
밀림은 나날이 엉성해 가는데
내손엔 목재돈 두툼이 쥐여질가?
1961년 2월 3일
청송례찬
높은산 거친 바위우에
하늘 찌를듯솟은 락락장송
백설이 흩날려 만건곤하여도
보란듯 거연히 선 송백이여
장하고나, 너의 그 기백에
차마 톱을 걸지 못하겠구나
너를 기리는 마음 약해져서
내 가슴에 뿌리채 옮겨심었다.
1960년 12월 30 일 (첫번째 고동하림장일기)
밤길을 걷다.
최 균 선
밤길에도 심심산속의 밤길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운데
둥글이야, 너도 맥을 놓냐?
이랴, 이눔의 소 어서가자
몇십리나 걸었는지 모르겠구나
가고가도 숙소는 보이지 않고
어둠만이 천고의 밀림을 감싼다
안내할 이도, 길물을 이도 없다
남이랴 북이랴 무작정 걷는길
그냥 갈가? 서성이는 내발길
길아니면 가지말라 하더라만
지금 내가 갈길이 어드메냐?
밤길을 걸어야 할 내운명이라면
동서남북풍처럼 그렇게 가리라
숙명으로 이어진 나의 길이라면
새벽이 내게 손짓하리라 믿으며…
안내자가 없다. 나혼자 걷는다.
산몸뚱이가 걷는게 아니다.
산정신만이 나가는게 아니다.
나를 앞으로 떠미는 무엇이 있다.
1961년.11. 6
사랑의 노을
최 균 선
동산에 고운아침노을은
이내나 정열의 색채라오
그대여, 창문을 여시라
눈부신 황금빛 내사랑
아름차게 받아안으시라.
서산에 물든 저녁노을은
불타는 내정열의 화염이라
그대여, 창문을 닫지마시라
평생을 다함이없을 내사랑
꿈자리 따뜻이 덥혀주리라.
1962년 5월 4일
청명날 소감
쾌청한 날, 하늘은 맑은데
안굽에 찰개논갈다 지쳐서
몇이는 양지쪽에 오구작작
마라초연기로 허기를 달랜다
때에 묘지서 들려오는 넋두리
《애고ㅡ먹을것두 못먹구시리
입을것도 몬닙고 고생고생하다
이렇게 먼저갔으니 난 어쩌우ㅡ》
공연히 기분이 찜찜해지는데
데설궂은 한 친구가 흉내냈다
ㅡ애구, 먹을것도 몬입구스리
입을것두 몬먹구스 난 어찜둥…
누구도 웃지않고 무덤덤하게
담배연기만 풀풀 토해올린다
해는 둥실 중천에 한가로운데
위주머니는 차차 처지는 느낌
배고파 배고픈 이야기들에
먹고파 먹는얘기에 갈앉고
그누가 어디서 잘먹던얘기
비린 비위만 돋구어 싱겁다
해마다 이 논을갈아 벼심고
가을마다 낟알산은 더높은데
어이해 대식품에 매달렸던가
위험한 발상 스톱, 자 갈아보세
위여위여 쨔 ! 황소는 등이휘고
농부들 풍년을 바라 힘을 빼고
남의둥지에 알낳은 뻐구기소리
밭갈이 재촉, 뻑꾹, 뻑뻑꾸ㅡ욱
1962년 4월 5일
둘이만 있으면
세상은 저리 넓어있어도
둘이만 있으면 좁아지고
세상은 시끌벅적하여도
둘이만 있으면 진공상태
몸과 마음 하나로 엉키여
순간도 소중한 그런 사랑
세월이 가도 늙지 않으리
둘이하는 사랑은 하나여!
1962년 8월 5일 (그대에게 주는 편지)
그리워
사랑하는 마음 재가 되여도
말한마디 건네도 못보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소
하늘가 저 멀리
정처없는 쪼각구름에
시든장미같은 그리움 실었소
아, 어느날 그대의 창가에
굵은 비방울 휘뿌리면
시작도 못해본 내사랑이
이리도 아파서
그리움의 눈물이 되여
쏟아지는줄 알아주오
1982년 9월 11일 (님에게준 시)
밀림의 고뇌
날씨 하도 포양하여 꽁무니에 도끼차고 숲속에 가다
겨우내 베여내고 실어내여 엉성해진 숲, 마음도 썰렁,
태고연하던 밀림의 침묵 여기서 깨여지니 처절한가
새봄이 웅덩이라 골짜기라 휘저으며 적설을 녹이니
여기저기 드러난 파괴와 아픔이 아수라장 되였구나
흥심도 없이 내가 베여넘긴 나무는 실려가 없고…
끈끈한 습기속에 탈진한듯 수림은 미동도 없는데
오직 절망적인 하소연과 적막과 공허만 한숨겹다.
목재생산이란게 무어냐? 허울은 좋지만 저보아라
리기에 눈먼 우둔한 파괴가 아니던가? (아차, 실언)
알수 없구나, 생산과 파괴의 오묘한 경제학적원리를
이제 3십년이 지나 심심백두밀림도 결딴나리니…
(아서라, 내같은 하층인이 알게 뭐냐, 잘들 해봐라.)
씁쓸한 허구픔을 앞세우고 더 깊이 멀리 들어가니
들어갈수록 태고적에 우수가 무겁게 숨을 고른다
생각하는 략탈자들의 침해를 받지 않고 아직은
순수의 그것대로 남아있는 밀림의 내연성이,
고목들의 침묵과 사색하는듯 그 자태 처연하다
울울한 밀림이야말로 대자연의 유일한 걸작이고
발길닿지 않은 산이야말로 불후의 기념비인데…
용케도 살아남은 나무들은 무엇을 기다리는듯
그리도 완고하게 그리도 금욕적으로 침묵하며
세월과 더불어 번성의 힘을 키우고 있을가?
그러나 미풍에도 바르르 떠는 사시나무들은
마침내 닥쳐올 종말을 예감하며 말이 없는가
수선떠는 오지랖도 서글퍼서 슬며시 비켜서누나
도끼에 밑둥이 찍히고 톱날에 허리가 동강나고
그리고 산지사방으로 끌려가서 오리오리 찢기리
저들의 운명을 알기에 가문비나무는 눈물을 흘리고
저 봇나무는 늘 창백한 모습으로 서있는게 아니랴!
그래서 더 빽빽히 어깨를 겯고 더 키돋움을 하며
애목들을 품어주는 밀림의 웅숭깊은 넋을 기리노라
밀림아, 청송, 홍송, 가문비 쇄스래 박달나무야, 늬들
오래오랜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모르노라
1963년 2월 29일 두번째로 고동하림장에서
종달이야, 나 좀보자
논갈이에 거품문 소를 세워놓고
잔디푸른 둔덕에 마라초 태울제
푸른 하늘에 종달이 푸른 노래
바람든 총각의 가슴을 헤집누나
볼수도, 잡을수도 없는 봄천사
하늘가 어디쯤에서 우짖느냐
종달새야, 잠간만 날좀 보렴,
자유의 네노래 부러워, 부러워…
너는 알지 못하는 내벗이다
나의 사랑, 나의 희망이요
나의 령혼의 메아리이거늘
자유의 노래를 네나 불러다오
1964년 4월 19일
벼이삭 설레이는 소리
문열면 반가운 벼바다기슭
내집 마당가에 닿아있구나
창턱까지 밀려와 밀려드는
벼이삭설레는 반가운소리
이 밤에도 나를 불러내누나
ㅡ풍년이 들었어요, 올해도
듣기만해도 배불러지는 소리
공연히 잠못이루는 이 한밤
황금이삭 술렁술렁 술렁대네
여름내 주고받고도 다하지 못한
그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리도
보채며 나를 불러내는것이냐?
뼈 쩡쩡 저리는 찬물에 맨발로
랭상모판 고루고 벼씨뿌릴 때
허리휘도록 모짐을 지고갈 때
참으로 말못하고 고달팠니라
넓은들 넘쳐나도록 한가득이
넘실거리는 벼파도 황금물결…
그 어데를 보아도, 둘러보아도
땀으로 가꾼 보람이 화답하는듯,
내사 혼자 차지한 몫이기나 한듯
두렁길을 건정건정 서성거리며
공구량도 여량도 다 바치고나면
올해는 네댓마대 민식을 탈라나
낟알의 무게도 일일이 가늠하며
부푸는 기대감을 이리저리 굴린다
벼농사 뼈농사라 배불리는 생각뿐
포식의 느긋함을 앞당기는 마음뿐
이밤, 종시 잠못드는 내 가슴에
세워지는 계산식이 위험천만해도
알뜰히 세워져 허무하게 무너져도
어쩌랴, 농부의 진실한 소망인것을…
1964년 9월 15일
가자, 새언덕으로!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세월 내리
한밤중에만 쓴 일기ㅡ나의 잠꼬대
잊어버리기 위해 잊지 않으려고
무둑이 쌓인 내과거를 불사른다.
이제 곧 풍운이 휘몰아칠게라고
폭풍에 여기 향촌도 뒤번질게라고
쉬쉬…인심이 뒤숭숭해진 기분에
나 겁쟁이 지레 자기를 태워버린다
한장, 한장, 한책, 한책 찢어발기며
사연은 많아도 시멋없고 구름같은
애달픈 기억들이 연기처럼 타래친다
이제 나 10년 세월을 잃어가고있다.
이링공 디링공하야 살아는 왔어도
이렇다저렇다 할 아무것도 없어서
허무하고 허황하고 맹랑할바에는
차라리 훌훌 불살라버려야 하겠지
하면 너 어이 흐느끼냐? 친구야,
운명이 그대를 희롱할 작정인데
락심은 말자, 락심은 바보라는데
더구나 울지말아야지, 비겁한걸
그래도 그냥 흐느끼냐? 청승맞게
생활의 바다엔 썰물도 있거니와
밀물도 있거늘 변화에 맡기거라
자위를 하고나니 역시 아Q정신
생활은 끝까지 옹호해야 한다면
나서 곧 주어진 운명행진곡인데
10년세월이 공백으로 남더라도
재무지 날려버리고 새언덕으로!
1966년 4월 10일
까치야, 왔니?
눈내리는 첫아침,
너는 왔구나. 부른듯이
눈내리면 네가 얼어죽는다고
엄마는 내어린시절을 속였는데
날찾는듯 반가워 창문을 연다
산너머 님의소식 물고왔니?
이나무 찾아서 깍깍 깍깍
저가지에 깍깍 희소식 토하니?
찾아오는 반가운 나그네도
날아드는 님의소식도 없는
나의집ㅡ라르라의 실락원에
뜻아닌 비보는 천만 아니지?
까치야, 예로부터 너를 일러
소식조라 멋좋게 니르더라만
이아침 네 잦은울음소리에
함박눈만 무덤덤 내리는구나
령너머 마을에도 갔더랬니?
그리운님께 내소식 전했니?
오늘도 일자의 무소식이라
세번 울고가는 네가 미웁구나.
1968년 설날에
민들레야
올해도 수양버들 휘늘어진
해란강반에 봄빛은 무르녹아
길섶에, 논도랑둑 곳곳에
제권리를 찾아 피여난 민들레
노란꽃 황금빛 꽃송이마다
아침이슬 머금고 수집은듯
다소곳이 반겨웃는 민들레
내고향 산천의 귀여운 딸
일찍피는 앉은뱅이 꽃보다
늦어 피는 네모습 어여뻐라
보는이마다 눈길이 달라도
내가슴에 애틋한 정 넘쳐라
여리고 왜소하고 볼품없어도
백화의 가족성원인지 몰라도
꽃나비 꿀벌이 찾는지 몰라도
탐화봉접 없다고 서러워마라
종달새 아름다운 깃을 펄럭이며
아침 저 푸른 하늘에 날아올라
봄을 사랑하는 너의 그 마음을
지종지종 노래하는지 어이알리
민들레야, 내님의 고운별명도
민들레란다, 너처럼 순결하여,
5월의 전야를 수놓아가는 너
봄대지의 어엿한 딸이여라.
무심한 소발굽에 짓밟히여도
나물캐는 아낙들이 도려내도
봄마다 다시 돋는 굴강한 너
흰옷입은 녀인들의 넋이여라
1967년 5월 9
시인이여, 되다가 만…
오, 시인이여, 되다가만
너만이 배척당하는구나
시끌한 사회에, 사람들속에
설자리가 한곳도 없는ㅡ
너, 시인이냐? 라르라여!
너에게서 형제들도 벗들도
그리고 네 목숨이던 애인도
모두가 등돌리고 가버렸다.
고독한 너의 령혼속에는
눈물젖은 심장이 남아도
그나마 찌들린 심장이라
섣부른 붓마저 꺾어버렸지
패기에 넘치던 그 시절에는
향토의 시인이 되리라던 너
생활의 풍랑에 격조도 높여
사랑을, 인생을 읊는다더니
너의 그 불타오르던 시인의
정열은 어디에서 쓰러졌냐?
저 황혼빛 저조의 골짜기에서
침묵도 갈곳몰라 방황하느냐?
아니다!되다가만 시인이지만
죽지않노라, 이렇게는 못죽어
생각하고 또 고민하기 위하여
침묵의 명상속에서 흐느낄뿐
살아갈것이다. 지지리 못나게도
끈끈한 삶의 의욕을 불태우며
언젠가는 붓을 높이 꼬나들고
진실을 위하여 쓰고 쓸것이다.
시인이여, 되다가 말았지만도
너의 고동치는 심장을 위하여
너의 태여나지 못한, 너만의
한많은 노래만은 죽이지 말아라!
1969년 5월 15일
개살구, 호박꽃 해님
개살구도 그냥 살구라구요
시금털털 어른들은 등돌려도
뒤동산에 꽃피여 열매맺으니
개구쟁이들 마구 따더랍니다.
호박꽃도 피는 꽃이라구요
봄마다 울밑에 소담스레 피여
수수해도 꿀벌은 향기를 따라
꿀을 빚습디다. 생활의 꿀도요
호박꽃, 개살구, 저하늘 해님
더불어 하나로 엉킬수 없어도
하냥 따사로워 만물을 보듬으매
개살구 열리고 호박꽃도 피구요
야산에 흔해빠진 개살구같다고
개밥에 도토리신세 보기싫다고
오래도 내내 저어하고 망서리며
애끓이지 마시고 오세요, 내곁에,
호박넝클이 뻗어갈제 뉘가 알리요
울바자에 줄당콩 오롱조롱 열리듯
아들딸을 낳아기르며 우리멋대로
한백년 살자구요, 나의 호박꽃님!
1969년 6월 12일
부리단의 당나귀
세상에 이런 사람 많더라
생활에, 또 자기하는 일에
전혀 결단성없이 주저주저
그도 좋고 저도 좋고 다좋은,
이런 사람을 두고 스콜라철학자
부리단이 말한 당나귀같다 하리
선택할줄몰라 굶어죽은 나귀처럼
사람도 쓰디쓴 참패를 당하거늘…
두어라. 이렇게 말하는 자신도
저 아둔한 당나귀같지 아니한가
가슴아파도 스스로를 조소하는
내가 바로 그 당나귀가 되리라
1969년 9월 18일
사랑의 고개길
오르며 허위허위 20리
내리며 굽이굽이 20리
모아산넘는 고개의 길
내반생에 쭈욱 뻗어있다
청청 푸른 소나무숲속에
다복솔도 다복록 정겨워
님과 함께 슬슬 오르나니
에덴동산의 꽃밭길이런가
한그루 로송아래에 살폿이
두몸이 하나로 붙어앉으니
말한마디에 감탄표 두개여
《송림아! 하냥 좋구나 ! 》
유달리 말을 고르지 않는다
한마디가 열마디로 통하거늘
고운얼굴 살뜰히 읽어가며
넌지시 꼬옥 손을 잡아본다.
밭일에 마디굵어진 손에서
인생의 미더운 길동무임을
다시한번 느끼고 확인하며
송림의 사랑 심장에 새긴다.
1969년 9월 10일
그대여, 바라건대는
꽃가마에 꽃너울쓰고 나풀
색시가 시집을 온다하시고
백마타고 장가를 간다하며
인생의 대사를 니르더라만
내게는 수사법도 못되더라
손잡이뜨락또르도 자격미달
그래서 우리는 두발로 탈탈
고개의 길을 걸어서 내렸다
아무렴, 걸으라는 두발인데
호호백발 되도록 걸읍시다
첫날각시 흙을 밟지 않는다건만
먼지이는 길 각시걸음 집어치고
걸음걸음 코신발로 순정을 재이며
자국자국 송백으로 충정을 새기며
손에 손잡고 걷고걷는 신혼길이여!
그럼요, 서두를 필요가 없겠지요
정다운 까만눈으로 건네는 대답,
그대여, 견디시라, 세상에 끝까지
울퉁불퉁한 길이란 없을것이외다
서러운 신혼길 이리 볼품없지만,
자, 드디어 우리는 함께 걷는구려
희망봉이 우리행복의 정상이라면
사랑의 고개길은 오르는 길일가?
부풀던 가슴에 정열도 차차 식어
《무덤》이라 후회할 내리막일가?
아니, 아닌것을, 적어도 우리만은…
어렵게 시작한 동반자의 길이거늘
내리는 고개길은 내리걸어야겠지만
굽이굽이 멀고 험난할 사랑의 길엔
내내 치닫는 올리막길만 펼쳐지리
1969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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