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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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펌) 북한 응원단 반갑습니다. 댓글:  조회:1818  추천:1  2018-02-17
북한 응원단 ‘반갑습니다’ 설 연휴 첫날 강릉서 깜짝 공연 어디를 가나 '시선강탈'...북한응원단이 떴다 서울의소리 | 입력 : 2018/02/15 [20:04] ▲ 북한응원단 ‘눈을 뗄 수 없는 퍼포먼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찾은 북한 응원단이 15일 오후 강원도 강릉 올림픽파크 내 라이브사이트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 뉴스1   북한 응원단은 색다른 응원 모습으로 평창의 ‘신스틸러’에 등극했다. 언제 어디를 가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경기장 분위기를 띄운다. 단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옆 사람 어깨를 붙잡고 줄줄이 율동을 펼치거나 장구를 어깨에 맨 안무가들이 앞에 나와 흥을 돋우었다.   이렇게 시선을 모으는 평창의 ‘신스틸러’ 북한 응원단이 설 연휴 첫날인 15일 오후 강원도 강릉 올림픽파크 라이브 사이트에서 깜짝 공연을 펼쳤다.     트럼펫, 색소폰, 클라리넷, 플루트 등 악기를 들고 대열을 맞춰 선 나머지 취주악단도 연주 중 어깨춤을 하고 악기를 든 채 박수를 치는 등 율동을 멈추지 않았다.     ‘반갑습니다’에 이어 장중한 느낌의 ‘아리랑’을 비롯해 다양한 노래를 메들리 방식으로 연주한 뒤 북한 가요 ‘다시 만납시다’로 공연을 마무리했고 시민들은 박수로 격려했다. 북한 응원단이 공연한 시간은 약 30분이었다. 트럼펫, 색소폰, 클라리넷, 플루트 등 악기를 들고 대열을 맞춰 선 나머지 취주악단도 연주 중 어깨춤을 하고 악기를 든 채 박수를 치는 등 율동을 멈추지 않았다.   ‘반갑습니다’에 이어 장중한 느낌의 ‘아리랑’을 비롯해 다양한 노래를 메들리 방식으로 연주한 뒤 북한 가요 ‘다시 만납시다’로 공연을 마무리했고 시민들은 박수로 격려했다. 북한 응원단이 공연한 시간은 약 30분이었다. 트럼펫, 색소폰, 클라리넷, 플루트 등 악기를 들고 대열을 맞춰 선 나머지 취주악단도 연주 중 어깨춤을 하고 악기를 든 채 박수를 치는 등 율동을 멈추지 않았다.   ‘반갑습니다’에 이어 장중한 느낌의 ‘아리랑’을 비롯해 다양한 노래를 메들리 방식으로 연주한 뒤 북한 가요 ‘다시 만납시다’로 공연을 마무리했고 시민들은 박수로 격려했다. 북한 응원단이 공연한 시간은 약 30분이었다.          © 한국일보   어디를 가나 '시선강탈'...북한응원단이 떴다   지난 10일 오후 9시 20분에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스위스를 상대로 첫 경기가 펼쳐진 관동 하키센터에 자리 잡았다. 이날 경기는 북측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남측 문재인 대통령 내외,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경기를 관람하는 등 세계인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북한 응원단이 지난 10일 강릉시 관동 하키 센터에서 열린 남북 단일팀-스위스전에서 안무 응원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 가운데 사각형의 경기장 양 옆에 자리한 북한 응원단은 또 한 번 일사불란한 응원을 펼쳤다. 파도타기 같은 북한 특유의 매스게임(집단체조) 응원을 비롯해 가면과 악기 등 소품을 동원한 다양한 응원이 이어졌다. 경기는 0-8로 완패했지만 단일팀의 열세로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도 이들은 쉬지 않고 목청을 높였다. 여러 외신들도 이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 뉴욕타임즈(NYT)는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북한 응원단이었다”고 조명했다. 이어 “응원단은 붉은 응원단복을 입고 끊임없이 미소를 짓는 100명 이상의 젊은 여성들로 구성됐다. 좌석에서 안무를 추고 곡을 연주했으며, 완벽한 형태로 몸을 흔들었다”고 묘사했다.     북한 응원단의 소식을 전하는 워싱턴타임즈 기사 / 워싱턴타임즈 홈페이지 캡처.   또 “한국 사람들은 함께 박수를 치거나 스마트폰을 내밀어 사진을 찍었다”고 이들을 보는 한국인들의 반응을 전했다. 워싱턴타임즈는 “북한 응원단의 응원 모습은 선수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올림픽의 다양한 행사에서 이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는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응원단은 평창올림픽에서 평화의 분위기를돋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 11일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15km+15km 스키애슬론 경기에서는 한국 대표 김은호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훈훈한 장면이 연출됐다. 14일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리그 B조 남북단일팀-일본 경기에서 단일팀이 첫 득점하자 북측 응원단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   © 한국일보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02/13 [20:3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의 응원단이 12일 강릉 오죽헌에서 깜짝 공연을 선보였다. [사진제공-대학생통일응원단]     © 자주시보   북의 응원단이 깜짝 공연을 했다.   북의 응원단은 13일 오전부터 강릉 일대 나들이에 나섰는데, 당시 악기 등을 챙겨서 나가는 모습이 잡혀 깜짝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었다.   먼저 강릉 경포대에 북의 응원단이 도착했으나 응원단은 강릉 바닷가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금새 자리를 떠야 했다. 취재진들 때문에 시야가 가린 것.   응원단은 오후 강릉 오죽헌으로 가서 깜짝 공연을 선보였다.   빨간색 상의와 모자, 하얀색 하의의 의장대 복장을 한 취주악단은 대열을 지어 섰으며 곧 ‘반갑습니다.’로 시작해 ‘아리랑’, ‘옹헤야’, ‘쾌지나칭칭나네’, ‘달려가자 미래로’, ‘통일무지개’, ‘다시 만나요’ 등 30분 정도 연주했다.   사진은 12일부터 북 선수들을 응원하고, 북녘 동포들을 환영하는 활동을 하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의 ‘대학생통일응원단’이 제공해주었다.     ▲ 북 응원단이 13일 강릉 경포대와 오죽헌 등을 돌아보았다. 북 응원단이 밝은 얼굴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제공-대학생통일응원단]     © 자주시보     ▲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드는 북 응원단 [사진제공-대학생통일응원단]     © 자주시보     ▲ 북 응원단 취주악단 모습 , 시민들이 손을 흔들며 환영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학생통일응원단]     © 자주시보     ▲ 북 응원단 취주악단이 오죽헌에거 깜짝공연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학생통일응원단]     © 자주시보     ▲ 북 응원단 의 모습 [사진제공-대학생통일응원단]     © 자주시보     ▲ 강릉 오죽헌에서 북의 응원단이 깜짝 공연을 12일 선보였다. [사진제공-대학생통일응원단]     © 자주시보     ▲ 거의 자신의 몸만한 악기를 연주하는 북의 응원단 [사진제공-대학생통일응원단]     © 자주시보     ▲ 강릉 오죽헌에서 깜짝 공연을 선보인 북 응원단 [사진제공-대학생통일응원단]     © 자주시보     ▲ 강릉 오죽헌에서 깜짝 공연을 선보인 북의 응원단 [사진제공-대학생통일응원단]     © 자주시보     ▲ 북의 응원단이 취주악단의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제공-대학생통일응원단]     © 자주시보     ▲ 강릉 오죽헌에서 깜짝 공연을 선보인 북의 응원단 [사진제공-대학생통일응원단]     © 자주시보     ▲ 북의 응원단이 취주악단의 연주에 맞춰 응원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대학생통일응원단]     © 자주시보                         [올림픽] 악기 챙긴 북한 응원단 송고시간 | 2018-02-17 14:06 (인제=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응원단이 17일 오후 강원도 인제군 인제 스피디움에서 평창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다. 2018.2.17 doo@yna.co.kr (끝) [올림픽] 악기 챙긴 북한 응원단 송고시간 | 2018-02-17 14:06 (인제=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응원단이 17일 오후 강원도 인제군 인제 스피디움에서 평창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다. 2018.2.17 doo@yna.co.kr (끝)   [민족의소리]서울의소리 the voice of seoul 인터넷 신문사업  
20    (교육칼럼) 자질교육에 대한 생각 댓글:  조회:1509  추천:0  2017-01-02
                                                              자질교육에 대한 생각                                                                                                     최 균 선        발전하는 사회, 비약하는 시대와 더불어 우리의 교육은 공리적응시교육으로부터 전방위적 자질교육에로의 전환을 촉구하게 되였는바 천만지당한 시책이라 하겠다. 하지만 자질교육의 진정한 내함은 무엇이며 또 어떻게 실천적으로 구현되여야 하는가? 자질제고를 재이는 눈금자는 어떻게 되여야 하는가 하는 일련의 문제들은 의연히 커다란 갈구리에 걸린채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자질이란 무엇이냐 하는 물음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자질이란 바로 배우는 학생들 개개의 기성지식의 축적, 나아가서는 능력이 아니겠냐고 단마디명창으로 해답 할수 있고 혹자는 자질이란 곧 배움에 대한 학생의 소화능력이라고 쉽게 해석할수도 있다.     사전류에서는 교육면에서의 자질을 타고난 해부생리적특수성의 총체능력심리발전의 전제라고 밝히고있다. 상술한 해석들에 다 도리가 있으나 완전하지 못하다. 이른바 자질이란 일생동안 주ㅡ욱 이어져있고 부단히 준비해가는것, 다가올 학문을 배워낼수 있는 능력이라고 리해하는것이 보다 전면적일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자질교육이란 지식만능, 점수통수가 아니라 장차 각자가 삶의 마당에서 자아를 보다 빛나게 완성해갈수 있도록 온갖 준비를 시키는 지적인것이라 말할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전통관념에서 론하는 자질제고란 곧 학교공부를 념두에 두고 한것으로서 공부란 학교에서만 하는것으로 인정하고있다. 그에 따른 자질제고도 학교에서 배운것이 점수로 통계되여 판정되고 있다하여 학교교육은 훈육(训育)의 틀에서 벗어 나지 못한채 의연히 서책지식의 중점, 점수쟁탈전의《살벌》한 분위속에서 진행되여 진다.     이런 교육관념의 지배하에 있는 우리 교원들이기에 무한한 동경의 세계에서 환상의 금빛나래를 퍼덕이는 어린 생명들을 해종일 콩크리트벽안에 가둬놓고 피로전술을 써왔던것이다. 이리하여 우리 중소학교학생들은《쫓기며 사는 세대》라는 한마디로 개괄할수 있다. 지금은 학부형들마저 이 면에서 변수로 작용하면서 깨뜨릴수 없는 력학관계를 이루어 가지고 자질교육의 전환에 장애를 놀고있으며 자기 아이들을 그냥 응시교육의 철창속에, 점수선의 울타리에 잡아두고있다. 하여 탐욕스러운 부모들의 기대와 요구, 강요와 핍박하에 어린이들은 자기들의 특유의 삶의 권리가 침범당하고 빨리빨리 어른이 되도록 재촉받고있다.     우리 어른들이 우선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개성적으로 자랄수 있도록 교육풍토를 마련해주어 아이들이 자발적인 독특한 삶의 문화를 꽃피워가 도록 왼심을 쓰는것이건만 이것이 잘 안되여가고있다.     우리의 학교들이 좀 더 인간적인, 그리고 다양한 삶의 의미를 터득하는 즐거운 곳이 되여지고 보다 다양성이 허용되는 개성적인격발전의 요람이 되여져야만 자질교육도 공리공담이 되지 않을수 있다. 하긴 그래서《유쾌교육》이 시도되고 일정한 성과도 쌓았지만 근본바탕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역시 그 미운 심험점수에 있다. 즉 자질제고를 가늠하는 재래식눈금자에 혁신이 없이는 안된다는 말이다. 옛전고를 빈다면《관문을 빠져나가기 어려운데 말을 타든 꽃가마에 앉든 다를게 무어냐》하는 말인데 사실 애써 경영한 자질교육을 측정한대야 서면시험(단지 시험지우에 제시교제의 기성지식에서 뽑아낸 제한된 문제, 학생들이 암기한대로 써넣는 답안만으로 확정된 기준)에만 의거한다면, 그리고 점수에 의해 학생자질의 우렬이 판정되고 이 점수제고에 근거하여 교운의 사업실적의 우렬이 판정된다면 소위 자질교육이라는것도 결국은 점수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중소학교교육단계에 공부하는 학과에 전면발전의 각도에서 여러개 과목이 설정되였지만 이 모든 과목을 시험지우에 드러내놓고 평가한다면 역시 높은 점수에《저능아》는 계속 존재할것이다. 자질교육을 론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학생의 옹근 인생행로에 영향줄것인가? 글을 가르침에서 곧 사람을 키운다는 이 숭고한 사명의 내함을 어떻게 진정 외연에로 확장시킬것인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두어야 할것이다.     만약 교원이 교재의 기성지식을 전달하고 시험점수를 매기는 단순한 지식주입자라면, 그리고 자유경쟁시대 학교교육부터 학생들을 경쟁속에 몰아넣는것이 모두의 본의가 아니고 그 어떤 불가항력적인 속박에서온것이라 해서 속수무책으로 방임해둔다면 스승이란 허울뿐이고 그저 로보트식배역만 남게 될것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자질교육은 미시적으로나 거시적으로나간에 교재지식의 완벽한 전수와 피동적접수로써만 완성될수 없다는것, 교재지식권내에서만 체현되는 교원의 단면적교수활동만으로는 이 사회, 이 시대가 수요하는 인재를 길러낼수 없다는것을 누구나 모르지 는 않는다. 그러나 시험지에 1~2점차이가 한 학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때가 비일비재이니 교육의 이률배반현상이라고나 할지, 아무튼 인격을 측정하는 점수를 인간이 고안해냈건만 우리 자신의 세계에 어마어마한 위세로 군림하고있다는것은 슬픈 자아풍자라고 할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것이, 인류문명의 고급단계에서 사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교육에 운명을 기탁해서부터 철저히 점수의 노예로 자라고있고 이는《노예제의 행운가》출세하는 판이니 말이다.     청년기에 겪어야 할 그《흑색 7월(지금은 6월)》을 위하여 소학교때부터 줄곧 펄펄 뛰는 자유적생명들을 줄쳐 앉혀놓고 지식접수기로, 문제풀이 계산기로 굳혀놓고 있다는것이 애들로 놓고 말하면 얼마나 불공평한가를 그래 우리가 모른단 말인가? 지력, 인격발전에 유익한 활동도. 독서도 다 이《공부지장》에 귀속시키는 현대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응당 차례져야 할 자유와 권리를 아무 꺼리낌없이 압살해버리면서 교과서속에서, 숙제더미속에서 어린생명체의《광합작용》의 시간마저 고갈되게 한다.     기나긴 인생항로에서 배워나가는 실효적이고 귀중한 그 모든것이 일일이 점수로만 환산되지 않는다는것을 에디슨, 아인슈타인 등 많은 인류거인들이 증명해주었건만 우리의 학교교육은 어느때까지 점수로만 계산되여야 하는지 묘연하다.     교육이 현사회의 투영, 미래사회의 신념, 그것의 준비단계에서의 최고가치임을 깨우칠 때가 되였다. 황차 우리 나라 교육의 종지가 건전한 인격발전,도덕품성교양을 기본정신으로 하고있는 한 우리 교육이 추구하고 지향해야 할 정신적바탕이 더욱 훌륭해지고 나아가서 사회의 생성과 유지를 위해 공헌해야 한다면 우리가 민족교육을 통해 길러내야 할 높은 자질의 인간상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선 연박한 과학문화지식의 소유자가 되여야 함은 두말할것없다. 따라서 생각하는 따뜻한 사람, 맡은 일을 성심껏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 굳건한 의지를 세우고 신념에 차있는 품위있고 운치있는 사람, 독립자주정신이 갖추어져 뼈대있으면서도 아량이 있고 관용성, 포옹력이 있는 사람, 감정을 느낄줄 알고 느낀것을 적절히 표현할줄 아는 등 높은 자질의 인격자여야 할것이다. 이것을 완성해나갈 때 우리는 자질교육에 헌신했노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지 않을가?     물고기를 주어 살수 있게 하는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도를 가르쳐주는 유태인들의 교육리념을 왜 우리는 실천으로 새겨가지 못할가? ㅡ안타까운 일이다.                                                                                            1995년 4월 
19    한국어고급글짓기 최근 수정보충 댓글:  조회:2934  추천:1  2012-06-18
   졸고 “한국어고급글짓기”를 최근 다시 수정보충했습니다.           참고하십시오.             저자 올림
18    잡문에 대하여 (2) 댓글:  조회:4644  추천:54  2009-02-24
3. 잡문의 문체특징   1)     변론성: 변론성은 잡문이 다른  문학쟝르와 구별되는 현저한 특점이다. 잡문의 임무는 철학적도리와 인생의 도리, 륜리학적인 도리로 진실하고 선량하며 아름다운것을 신장(伸张)하고 허위성과 사회, 인성의 추악성을 편달하고 약지세력을 위해 정의를 발휘하고 사회상의 사악한 기풍을 제압하여 조화사회를 도모한는것이다.     작은것으로 큰것을 보여주기에 투철한 론리, 정확한 판단, 충족한 도리와 증거가 있다. 변론성은 형상성과 유기적으로 결합 되여야 한다. 잡문작자의 최종 목적은 시비를 가르고 잘못된것을 고치도록 진리를 제시하는것이다. 잡문은 사회비판, 문명비판을 그 기본내용으로 하며 강렬한 리성비판정신과 사상적계몽색채를 띠고있다. 예술상에서 보편적으로 설리(说理)적형상화와 서정화 를 추구하며 일반적으로 선명한 풍자성과 유모아적인 희극색채와 기지, 변론성적인 철리적품격을 가지고있다. 2) 전투성: 잡문의 발전각도에서 본다면 정론성과 문예성의 결합이 기중 가장 돌출한 특점이다. 잡문의 정론성, 설리성, 전투성은 민감한 감응과 현실생활중의 비리와 인간의 속물적근성 등을 날카롭게 사정없이 질타하는데서 표현된다. 평화시기에 로신의 잡문에서처럼 생사박투의 전투성은 있을수 없지만 불의와 맞서는 잡문의 전투정신은 의연히 잡문의 기본정신으로 남는다. 전투성과 잡문을 읽는 희열성은 화해롭게 조화되여야 한다. 잡문은《감응의 신경, 공수의 수족》 으로서 독자에게 일종 예술적 향수를 느끼게 해야 하며 웃음속에서 미적정신향수를 느낄수 있게 해야 한다. 3) 풍자, 유모아와 정취성     잡문에서 풍자수법은 살수간(杀手锏)이라 할수 있고 넋이라 할수 있다. 물론 풍자대상에 분별이 있어야 하며 분촌이 있어야 한다. 적아간의 비판과 반비판에서 풍자야말로 투장이고 비수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야유와 해학이 적절하다. 유모아는 잡문에 정취성을 부여하는 유력한 수단이다.    유모아라고 해서 꼭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는것은 아니다. 유모아 에도 웃고나서 뜨거운 눈물을 머금게 되는 심층적인 유모아가 있다. 잡문에서 유모아란 심층의미 에서의 유모아이다. 이런 유모아는 경우에 따라 즉흥적으로 튀여나오는 일반 유모아와는 달리 만들어내는것이 아니라 지혜의 잉여, 사상의 번뜩이는 섬광이다.    말하자면 모종의 사회페단이나 인간의 렬근성 등에서 기인된 비틀린 정서에서 한걸음 물러나 랭철한 안목으로 직시하기에 참지 못한 쓰디쓴 웃음의 소재가 착안 되는것이다. 물론 이런 유모아는 류달리 강한 배짱과 대바른 성품을 가진 지성인에게서만 가능하다.     웃음이 때로 반항의 표시가 되듯이 유모아도 반항적인바 굽어들줄 모르는 정신의 산아인 인류의 유모아는 사회성을 띠게 되고 력사적인것으로 된다. 그러기에 모자를 기우뚱 제껴쓰며 한바탕 웃고나서 곧 잊어버리는 휘파람같은 유모아와 달리 비극성적이며 또 희극성적으로 인간사회의 허위와 비리를 조소, 질타하며 인간의 그 모든 고난과 비애를 웃음의 연기로 타래쳐오르게 한다.    《돈끼호떼를 낳은》쎄르반떼스의 유모아,《죽은 넋》을 낳은 고골리의 유모아. 《카멜레온》낳은 체호브의 유모아, 《아Q정전》 을 낳은 로신의 유모아 그리고 오 헨리, 몰리에르, 챠플린 등 모든 유모아대사들의 걸작들이 전범으로 된다. 그러나 그들은 유모아대사 이기전에 온몸이 눈물에 젖은 선지선각자들이였다.    그들의 유모아가 세인을 포복절도하게 하면서도 나중엔 눈물어린 사색을 안겨주 는것은 그들 자신에게 보통인이 도저히 미칠수 없는 심각한 고통이 있었기때문이다. 하기에 이런 유모아대사들의 날카로 운 필봉은 사회의 암흑면과 일체 허위의 허위적 껍데기를 한겹한겹 벗겨보일수 있었으며 모든 추악한것들을 불사르는 불길이기도 했다.     눈물을 머금게 되는 그런 유모아시대는 영영 지나갔는지는 몰라도 우리 이 시대에도 로신같은 유모아 대사가 의연히 수요된다. 우리의 현실생활에도 웃지도 울지도 못할 유모아소재가 많고도 많기때문이다. 바로 그러기에 잡문에 유모아가 절실하게 수요되는 것이다.     학의 존재가치와 가치실현에서 정취성은 큰 몫을 담당하고있다. 잡문의 정취성은 여러가지 문학인소에서 보장된다. 로신은 늘 핍진한 비유수법, 류비수법을 사용하고, 이야기, 성구, 전고를 적절하게 인용함으로써 글에 생동성과 취미성이 짙게 하여 추상적도리를 형상화하였다. 잡문은 의론성질을 띠고있으나 종국적으로 미적향수를 주는 정취성이 있어야 한다. 잡문의 정취성은 또한 정채로운 의론에서 오며 심오한 도리를 깨우친 감오의 희열에서 확인된다. 잡문의 취미성은 또한 잡문속에 담긴 풍부한 지식성과 그것을 터득한 자아긍정심에서도 올수 있다. 그리고 독자는 비정함과 불의, 악에 대한 작가의 무자비한 비판에 대한 동인(同认)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아울러 사색적인 정취에 푹 빠져들게 된다. 1)     현실성:    잡문은 취재범위가 넓다. 잡문의 내용에 들어가지 않는것이란 없다. 국가대사로부터 시작해서 일상생활속의 사사건건에 이르기까지 다 잡문의 내용이 될수 있다. 가히 력사를 담론할수 있고 현실문제를 론하고 비판할수 있으며 지식을 전수할수도 있고 경험을 소개할수도 있는바 그야말로 천문지리, 일월성진, 철학, 문예 등등 삼라만상에서 불가개발의 금구가 없다. 그만큼 잡문은 그 어느 조대에서든지 현실에 튼튼히 뿌리를 박았기에 현실성은 잡문이 산생되고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된 전제였고 기본특징의 하나였다. 잡문은 형식이 다양하면서도 간편 하기에 현실을 신속하고 진실하게 반영한다. 잡문의 형식은 령활하고 자유로우며 그만큼 다양화할수 있다. 그래서 잡문은 짧고 세련되고 요해 처를 틀어쥐고 결구를 깐지게 짜나간다. 그러나 결코 서정성과 의론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잡문도 문학인만큼 취미성의 결여는 기저로부터 그 가치를 잃게 한다.     이런 특점에서 잡문을 일러 문화전선의 경무기라고 하는것이다. 로신은 소품문이 생존하려면 반드시《비수, 투창이 되여 독자와 함께 한갈래 생존의 혈로를 헤쳐나 갈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잡문이란 이 경무기는 잡문 특유의 비판의 무기이다.     총적으로 잡문은 시, 산문쟝르에서와 같은 그런 함축성, 생동성, 서정성에 형상까지 보이는것이 특점이다. 잡문은 개념, 범주를 사유재료로 하는것이 아니라 직접 인생과 상담하고 인정세계 구석 구석을 파고드는바 인생체험으로부터 일촌불란 지설의 론전이 전개된다.     잡문창작의 예술사유규률로 말하면 잡문은 의론성이 강한 문체이지만 순수 리성사유의 론설문과도 또 다르다. 잡문은 개념, 범주를 사유의 재료로 하는것이 아니라 직접 인생, 인정세계에 마주 하고 세태를 건져올린다. 즉 일체 문학창작과 마찬가지로 풍부한 여러가지 인생경험이 작자의 강렬한 창작욕망을 격발시킨다.     잡문에서는 직관과 경험을 가공하여 개념, 범주로 만들지 않지만 예술상에서 추상의 특징이 표현된다. 그러나 이런 추상은 론리적의미 에서의 추상이 아니라 일부 추상화된 현대예술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체태만상에서 철학적으로 깨닫고 감수하며 나아가서 이미지화하고 상징화, 부호화하여 추상과 구체형상이 유기적으로 통일되게 한다. 잡문이 문학이 되게 하는 리론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4. 잡문의 문학성     잡문의 문학성이란 언어예술의 운용을 강구하는것을 말하는바 주요하게 형상과 서정, 두개방면에서 표현된다. 형상은 그 기지로움으로 독자에게 영향주는바 곧 풍자성과 유모아색채이다. 잡문의 형상은 흔히 류비하고 상징하는것으로 체현된다. 형상화로 말하면 미속에 지혜가 녹아들어야  잡문식대화가 리상적 경지에 이를수 있다. 하기에 잡문가는 우선 사상가가 되여야 하고 연박한 학자가 되여야 하며 문학가가 되여야 한다. 문학성이 배제된 잡문은 한낱 의론문에 그치고만다.     표달방식상 잡문에서도 묘사를 많이 운용하며 서술수단으로 직각화하고 정서화 하며 예술화한다. 이런 의론적언어 역시 실제 생활에서 오기에 생활실감을 잃지 않는 다. 의론된 사리는 직감적인 생활을 거쳤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 뜻을 알게 하고 음미하게 하며 깨닫게 하여 잘 알고있는 경험이지만 그속에서 다시 인생의 오묘한 도리와 정취를 발견하게 한다. 잡문에 형상성이 있는가? 잡문은 일반 정론문과 다르다. 잡문은 론리적력량만 있는것이 아니라 진리성적인 력량도 가지고있다. 잡문 이 문학인만큼 두말할것 없이 예술적언어로 구사하고 형상에 의거하며 기지로운 사색으로 독자에게 영향준다. 자기 관점을 형상적 언어로 표달하는바 훌륭한 잡문은 한잔의 진한 농차처럼 갈한 목을 추겨줄뿐만아니라 그 맛을 오래오래 음미하게 한다.    잘 쓴 잡문에는 당연히 생동한 형상성이 있을뿐만아니라 심지어《전형성》까지 추구한다. 물론 잡문에서 형상성은 서사문학에서의 전형과 다른바 추상화된 현대 예술처럼 추상성과 구체적형상이 통일된것이다. 잡문이 문학의 한 쟝르로 된 이상 응당 표현수법상 에서 될수록 예술수단을 능란하게 총동원해야 한다.     잡문에서 형상성은 주요하게 도리로 설복하는데 이바지하여 생동성과 활발성, 유모아감 등 풍격을 짙게 한다. 어떤 잡문에서는 이미 있는 문학형상, 혹은 력사 인물형상 심지어는 환성적인 이야기속의 형상, 동물등 형상을 빌어서 도리를 피력 하는데 힘있는 도움이 되게 한다. 잡문에서도 극히 정서적이고 심지어 시화된 언어구사도 가능하며 형상성이 있는 묘사와 서술이 필요하다.그리고 생신하고 재치있는 비유, 상징수법, 선의적인 해학, 날카로운 풍자, 은근히 에두르는 완곡법, 기지가 넘치는 유모아 등 모든 수법들을 나름대로 가능한껏 리용할수 있다. 잡문이라해서 그냥 인정사정없이 찌르기만하고 꼬집어야 하는것은 아니다.     잡문에 형상성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문학작품의 형상을 요구할수 없으며 동등하게 론할수는 없다. 잡문에서의 형상은 흔히 비교적 개괄적이고 대략적인것으로서 불완 정하며 세밀하게 부각된 형상이 아니다. 잡문은 천술하려는 도리에 설복력이 더 강하게 하기 위해 극력 형상성을 살리려는것이다.      례하여 잡문의 주제강화의 수요에 의해서 전고, 력사일화, 우화, 성구, 속담, 리언, 격언, 명언같은것을 인용할수 있는데 그것들의 내용과 그속에 담긴 도리는 사람들이 잘 알고있는것이라야 한다. 잡문이 단순히 작자개인의 의론에 머믈게 되면 잡문은 그 교양적 의의를 상실할수밖에 없다.만약 인간의 탐욕성을 타매하는 한편의 잡문을 쓰려한다면 이소프의《욕심많은 개》라든가 《재록신령님과 나무군》같은 우화를 인입할수 있는데 우화에는 해당 주제가 제시되고있다. 송어굽는데 된장칠하듯이 그속에 도리를 제시하느라 필묵을 랑비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우화속에 담긴 도리를 너무나 잘 알기때문이다.     로신은 자기의 잡문에 일화, 전고, 성구, 사실 등을 잘 인용하고 있다. 례하면 잡문 《잊어버리기 위한 기념》에서 《설악전전》에 고승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렬악 한 환경속에서 전전하는 자신의 딱한 처지와 구원의 길이 없는 당시 백색공포의 사회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무슨 해석이 필요하겠는가? 로신의 잡문이 매편마다 취미성이 짙은것은 생활정취와 문학성이 짙기때문이다. 문학이 정치권위에 속박당하고 좌적로선의 지휘봉에 따라 춤출때 대문인이였던 량실추는 더 이를데 없이 사악한 반동문인으로 매장 되여있었지만 그의 잡문도 로신의 잡문처럼 감염력이 있었는바 그의 심각한 사상성외에도 문채가 뛰여났던것이다. 대만 의 지성인 리오의 잡문도 심오한 사상성과 유모아적인 필치로 첨예하고 맵짜다.    잡문은 시대적페단을 꼬집고 인간정신세계의 비리를 편달하는 글이기에 유모아, 풍자수법을 능란하게 써서 문학예술가치를 과시한 다. 때로 만화식소묘도 하며 반어를 사용하여 예술성을 한층 더 높인다. 풍자와 편달은 교묘하게 결합되여야 한다.    서정성: 잡문은 의론이 위주이지만 감정이 풍부하고 다채로운 인간과 대화하므로 대화내용이 정서적이 못된다면 그 대화는 실패하 고 만다. 말하자면 잡문식대화도 정 서적인 대화로 되여야만 자체의 특점을 확보할수 있다.    잡문창작에서 예술형식은 해석법이다. 잡문에서 도리를 말하는 방법으로 흔히 연역법을 쓴다. 작자는 자기의 사상관점으로 사회상의 모종 현상을 분석하고 인간의 비리한 사상의식형태, 사회질서사에서 존재하는 온갖 불합리한 현상에서 사상이나 주장을 얻어내다. 그리고 귀납법, 대비법과 층층히 밀고올라가고 심입하는 방법들을 운용한다. 잡문은 말 그대로 고정적인 격식에 구애되지 않는바 현대잡문 창작에서 개척공간은 무한대하고 그 형식적발굴도 작가나름에 따라 천태만상일수밖에 없다.  
17    잡문에 대하여 (1) 댓글:  조회:4350  추천:40  2009-02-16
                                 잡문에 대하여   잡문을 문학쟝르의 일종으로 공인하면서도 재래의 문학개론에서는 배제되였다. 잡문이란 무엇인가? 잡문을 문학이라는 이 백화원에 한자리 내주고 다른 쟝르와 더불어 영원히 꽃피고 열매맺게 해주어야 하는가? 잡문은 왜 문학이 되여지는가? 잡문의 발전사는 어떠한가 하는 문제들이 이 장절에서 서술된다.       1. 잡문의 기원       중국의 잡문은 그 력사가 유구한바 전국시기의 굴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줄곧 문단에서 질주해 왔다. 선진시기 제자백가의 산문을 잡문이라 하는것이 더 적합하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것은 그것들에 사변(思辨)성이 더 많고 서정성이 적은바 표현에서도 잡문경향이 더 짙기때문이다. 례하면 당대의 한유의 마설(馬說), 류종원의《뱀잡이군의 이야기》등이 유명하다. 잡문은 중국특색의 문학형식으로서《문이재도(文以载道)》라는 중국의 전통적 문학리념을 체현하는바《지식인이 바람소리, 비소리, 글읽는 소리…소리마다 귀에 새기고 가정잡사, 국가대사, 천하만사, 사사건건을 관심하는》중국식인문정회 (情怀) 의 문본반영이고 중국식 특색의《대안(彼岸)식》사회참여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제일 처음《잡문》이란 개념을 제출하고 독립적문체로 자리매김한 사람 은 남조(량)의 문예리론가였던 류협이였다. 그는 유명한 문학리론서인《문심조룡》에서 한장절을 할애하여 전문적으로 잡문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그는 선인들의 잡문창작정황을 총화하고 총괄적으로 잡문이란 명칭을 달았다. 다른 한편 진한시기이래 잡문 3류를 천술하였는데 천옥(泉玉) 《초왕의 물음에 답함(答楚王问)》과매승(枚乘승)의《칠발(七发)》,양웅 (扬雄) 의《련주 (连珠)》 등이 가장 일찍한 대표작들이다. 사실상 선진시기 산문이 흥기할 때 잡문도 뒤따라 출현하였다. 후에 잡문은 날로 새로운 발전을 가져왔는데 당송 8대가에 속한 한유의《잡설 (杂说)》,류종원의《동엽봉제변(桐叶封弟辨)》과 당조말기의 피일휴, 라은의 잡문, 명조 류기의《매감자언 (卖柑者言)》등도 널리 류전된 대표작들이다.     현대잡문은《5.4》신문화운동시기이후 로신에 의해 풍부하게 발전되였고 최고봉에 이르렀다. 로신선생은 전통을 계승하고 집대성화한 잡문의 정초자이다. 그의 잡문은 생동하고 매섭고 유익하여 사람들을 감화시켰는바 그야말로《독자들과 함께 한갈래 생존의 혈로를 헤쳐온》《투창》이였고《비수》였다.     옛사람들이 말한것처럼 문여기인(文如其人)라면 잡문이야말로 더욱 문장이자 그 사람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그만큼 로신문학에서 주요한 성과는 잡문창작에 있다. 가령 잡문이 문학이 아니라면 로신은 그저 정론가로 될뿐 위대한 문학가로서는 손색이 갈것이다. 《5.4》운동이후 많은 혁명가, 사상가, 문학가들이 우수한 잡문 들을 써내였는데 로신은 중국의 걸출한 잡문작가로서 잡문을 고도로 성숙된 경지에로 밀어올렸다. 그외 주작인, 림어당, 구추백, 모순, 곽말약, 서추용, 섬겸노, 하연, 등척, 등 문인 들이 중국의 각 시기 비교적 대표성을 띤 잡문작가들이다.   2. 잡문의 개념문제   잡문이란 무엇인가? 협의적의미에서의 잡문이란 현대산문에서 의론과 비판을 위주로하면서도 문학적의미가 갖추어진 일종 문체로서 수감록, 단평, 잡설, 만담, 한담설화, 풍자소품, 유모아소품, 지식소품, 문예정론 등 문체의 총칭으로 공인되고있다.   그러나 잡문의 개념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이다. 1. 잡문은 문예성론문으로서 산문의 일종이다. 서정과 정론을 결합하며 어떤 틀에 매임이 없이 생활, 사변과 사람들의 사상감정을 신속히 반영하는 특점을 가지고있다. 론리적력량과 전투적격정을 하나로 융화시켜 정채로운 론술론 하여금 형상성을 가지게 한다. 편폭이 짧고 세련되고 명쾌하며 필봉이 예리한것이 특점이며 심각한 사상성과 첨예한 전투성과 설복력을 가지고있다. 중국문학사에서 진보적사상내용과 예술가치가 있는 력대의 수많은 고문들은 저명 한 잡문이였다. 현대에 이르러 로신을 대표로 한 혁명작가들은 잡문이 적들을 폭로하고 타격하는 극히 예리한 투창, 비수로 될것을 제창했다. 한편 인민내부모순과 불량한 경향을 비판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잡문은 주요하게 풍자하고 폭로하지만 새 사상, 새풍격, 새풍모를 찬미할수도 있다.”《문학개론자학보도》 사천성 사회과학원출판사 1984년 8월 출판 한문판 제135페지) 2)“잡문은 의론과 비판을 위주로 하는 잡체문학산문이다. 잡문은 사회에 대한 비판과 문명비판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허위적이고 추악한것들에 대해 폭로하고 비판하는것으로 진,선, 미를 긍정하고 찬미한다. 잡문의 격식과 필법이 풍부하고 다양하며 짧고 령활하다. 예술상에서 의론과 비판에 도리성과 취미성이 있을것을 요구하며 서정과 형상성. 선명한 풍자, 유모아적이고 희극적인 색채가 있을것을 요구한다.《20세기 중국잡문사》 3)“잡문은 산문의 일종으로서 의론을 위주로 하면서 서술속에 서정을 토로하는 문예성론문이다. 짧고 세련되였으며 명쾌하며 양식이 비교적 많다. 이를테면 잡감, 잡담, 필기 등등.(상무인서관 출판《신화사전》2001 년 수정판) 4) “잡문은 산문의 일종으로서 수감식의 잡체문장이다. 일반적으로 짧고 활발하며 예리한것이 특점이다. 내용상서 포섭하지 않는것이 없으며 격식이 풍부하고 다양한바 잡감,잡담, 단평, 수필, 찰기 (札記) 등이다. 중국의 전국시기이래 제자 백가의 저술중에서 이류의 문장들이 아주 많다. 《5.4》이후 로신 등 사람들의 노력하에 직접적으로  사회현실 생활을 반영 하거나 혹은 작자의 사상관점을 표현하는 일종 문예성론문으로 되였다. 잡문은 사상성, 론전성에서 특장을 과시하였으며 예술상에서 언어구사가 놀라웁고 글줄 마다에 정감이 포만되여 있으며 흔히 형상적비유로 사람과 사실을 의론하여 강렬한 진감력이 있다.”(2002년 1월 제1판 상해사서출판사출판《사해(辭海)》) 5) 현대산문의 일종으로서 어느 한 형식에 구속되지 않으며 의론 할수도 있고 서술할수도 할수다. (1979년 상무인서관출판 《현대한 어사전》, 2002년 상무인서관 증보판 《현대한어사전》) 그러나 산문의 개념과 귀속문제에 다른 관점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례하면 상해인민출판사에서 2002년에 출판발행한 리론서인《중국잡문사》제 8페지에는 잡문은 소설, 희곡, 시가, 산문과 같이 문학의 전당에 오른 일종 문학양식으로서 변연 문학이라 말할수 있다고 해석한다. 1998년 개명출판사에 출판한 대학전과소학 교육전업 교재 인《문학개론》 제86, 87 페지에는 잡문과 실화문학을 《교차형》 문학, 혹은《변연형》문학체재라고 규정하면서 문학속성 도 있고 비문학속성도 있다고 해석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정론성질도 있을뿐더러 문학의 특점도 있다는것이다. 보다싶이 해석이 조금씩 다르지만 잡문이 산문류에 속한다는 관점은 공통하다는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잡문에 대하여 새로운 개념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잡문은 사회를 비판하고 문명을 비판 하며 정치를 비판하는 사상정론성 글로서 비판정신은 잡문의 령혼 이고 정치는 잡문의 귀속점이다. 잡문은 형식, 풍격, 문체 등에서 구속을 받지 않으며 령활성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편폭이 짧으며 분석, 사변, 론리 등 문제를 설명할수 있는 일체 수단과 방법 으로 사실을 발가놓으면서 문제의 실질을 해명하며 작자의 사상관점 혹은 정치주장을 천명한다. 여론감독과 사상인도는 그것의 중요한 공능과 력사사명이다. 잡문은 응당 독립적으로 하나의 문체로 부상해야 한다. 만약 잡문을 문학에 귀속시키면 잡문을 압살하는것으로서 잡문으로 하여금 쇠망과 이화에로 나가게 하고 시사평론으로 잡문을 대체해야 한다는 쟁론도 일을킬수 있다. 문학과 잡문은  본질적으로 그 특징이 다르다.   문학은 허구와 상상의 활동으로 선택된 생활경험을 일정한 언어결구속에서 체현하면서 인간 혹은 자기의 생존방식의 모종 발견과 체험을 표달하므로 예술창조 이지만 잡문의 본질적특징은 주요하게 도리를 말하는것으로 작자의 사상관점을 표달한다. 즉 도리를 말하면서 사회비판, 문명비판, 정치비판의 목적에 도달한다. 잡문작자는 어느 한가지 사물, 혹은 사상관점, 의식형태 혹은 어떤 인물의 언행, 어떤 종류의 객관존재(사회제도, 정치질서 등)에 대해 해부하면서 자기의 애증, 찬미나 반대, 평가 등 관점과 견해를 천명하며 그런 관점과 견해를 가지게 된 원인과 후과를 해석한다. 도리를 말하는것은 잡문의 목표이자 과정이다. 그리고 문학과 잡문의 창작과정에서의 사유방식도 다르다. 문학작품에서는 형상부각을 위하여, 독자의 심미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회생활보다 더 높게 재현해야 하며 사회생활에 대한 감성인식을 리성인식의 높이에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나 잡문은 작자의 사유활동이 문학창작과 다른바 작자의 사상관점의 산생과 형성이 감성인식으로부터 리성인식에 이르는 결과이지만 대량적인 감성인식의 기초우에서 추상사유를 거쳐 리성 인식의 고도에 이르게 되는바 개념, 판단과 추리 등 일계렬의 론리사유로써 생활의 본질과 객관규률을 개괄한다. 잡문에서 추상적결과는 예술형상인것이 아니라 리론이다. 잡문에서 작자의 창작동기는 독자에게 직접 제시된다. 작자의 애증,비판, 찬성, 반대, 지지 등 평판은 모두 명확하며 형상과 예술 감염력으로 독자를 감동시키는것이 아니라 충분한 도리로써 독자가 자기의 주장을 접수하게 한다는 등등으로 자기 주장을 천명하고있다.     하다면 잡문이란 무엇인가? 구추백은《로신잡감선집. 서언》에서 잡문은《문예성 론문》이라고 명확히 천명하였다. 이는 아직까지 잡문 개념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 권위성적인 해석으로 되고있다. 잡문이 론문일 때 반드시 사변성과  론리성이 있어야 할것이고 문예가 될 때 응당히 상상력과 예술성의 발휘를 떠날수 없을것이다.
16    정혜의 한 댓글:  조회:4445  추천:36  2008-01-30
정혜의 한                                     최 균 선   1.       정혜는 찌글어진 초가집퇴마루에 나앉아 별무리 쏟아져내리는 밤하늘에 상념을 걸고있다. 시골의 적막을 울어싸는 부엉이의 단조로운 울음을 삼키며 밤은 새벽으로 달리고 초롱초롱한 아기별들은 깜박깜박 조을며 하늘의 수수께끼를 풀고있다. 이제 막 둥글어가는 중순께 달이 설핀 구름속을 달리며 찢어진 웃음을 흐트러뜨리고있다.            정혜는 은하수건너 아득히 먼 별무리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땅꺼지게 한숨을 토했다. (호ㅡ저 창망한 하늘에 나의 별자리는 어디쯤에 있을가?) 별을 바라보는 그의 커다란 눈에 가랑가랑 맺혔던 이슬이 희고 갸름한 볼을 타고내려 고운 턱에서 맴을 돌다가 무릎우에 놓은 손등에 똑똑 떨어졌다. 허지만 작은 가슴에서 고뇌의 연기를 몰몰 피여올리는 불티는 꺼질줄 모른다. 처녀의 순진한 마음으로 무지개같이 고운 꿈 보듬으며 마침내 힘겨운 고중생활을 마치고 푸른 희망이 아지랑이처럼 피여날 새 언덕에로 날오르려고 날개를 파닥이는 스므살 한창나이, 순결무구한 처녀들이면 다 그러하듯 번거로운 학습생활에도 찬란한 해빛이 마음속에 스며들어 꽃들과 속삭이고 꽃들이 전달하는 향기처럼 한없는 희열이 몰래 어렴풋한 행복으로 엉키게 하는 시절이다.  정혜는 야심도 만만치 않았다. 소학교때부터 초중 3년을 줄곧 반급간부로 활약 하였고 공부도 늘 앞자리를 차지했다. 향중학교에 학생들로는 하늘에 별따기같은 지구중점고중에 붙자 더구나 대학가고 연구생공부도 할 작정이여서 일심불란으로 공부하였다. 설사 빌어먹더라도 딸을 대학공부시킨다며 로심초사하는 아버지의 마음 을 헤아려서라도 헛눈 한번 팔지 말아야 했다. 그래서 청춘기의 간질거리는 마음도 리성으로 잠재워두고 책과만 씨름했다. 그런데 한창 마지막 총복습에 눈코뜰새 없는 어느 날 옆자리에 앉은 남자애가 골목을 지키고섰다가 해와 달을 걸고 사랑을 맹세할줄이야. 부끄럽고 당황하고 불안 해서 뿌리치고 달아나긴했지만 그 한밤을 가슴이 떨려서 한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부도 괜찮게 하지 이름이 뜨르르한 스포츠여서 반애들은 물론 졸업학년의 내노라하는 녀자애들이 추구하고있던 백마왕자가 태산같은 사랑의 맹세를 안겨준것이 행운일가? 불행일가? 아무튼 옥녀에게는 치명적인 강타가 아닐수 없었다. 남자애가 지꿎게 달라붙는 바람에 거의 밤마다 미지의 짜릿한 감각을 손짓해보며 신비로운 초련의 황홀경속에서 마음은 소란스러운 흥분으로 뒤범벅이 되여갔고 시간 은 관건적인 많은것들을 등에 업고 소리없이 새여나가버렸다…하지만 자기의 순정을 마치 씹던 껌을 내밷듯하며 다니는 정이 헤픈애들처럼 첫사랑의 미혼탕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모질게 마음먹고 순정의 골방을 꽁꽁 닫아걸었던것이다. 거절해버린 사랑의 반작용이랄가? 그렇게 윽벼르고있던 정법대학엔 5점차이가 나서 못가게 되였지만 1류대학의 통지서는 받아안게 되였다. 이젠 학비만 준비하면 훨훨 날아가게 된다. 하지만 만원이란 그의 가정형편에서는 그야말로 천문수자였다. 정혜는 자칫 대학꿈이 산산히 깨여질수 있다고 생각하니 속절없는 눈물만 샘솟듯 흘러나올뿐이다. 애꿎은 담배만 피우시는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을 보기가 너무 민망해서 대학길을 접어버릴가도 생각해보기도 했다. 금박을 올린 통지서가 그렇게 유혹을 던지고있지만 마음은 종시 질정하지 못한다. 그는 몇백번이나 입술을 깨물었는지 모른다. 그럴때마 다 간다온다없이 가출해버린 어머니가 한없이 밉고 저주스러웠다. …어데서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온 아버지가 여윈 가슴을 탕탕 치며 울먹거린다. 그렇게 패기넘치던 아버지가 이 며칠새에 폴싹 늙었음을 발견하며 정혜는 입술을 깨물었다. 빨간 피가 돋아나고 아팠지만 가슴이 더 아팠다. ㅡ정혜야, 너는 내 희망이고 자랑이였는데 어떡하냐…후유ㅡ그러나 울지마. 네가 울면 이 아버지 가슴에선 열길고드름이 드리우는구나, 내가 끝까지 해볼게 응? 그렇게 무너져내리는 아버지를 보고 아무데도 안가겠으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말해놓고 문을 뛰쳐나온 정혜였다. 여기저기 돈꾸러다니는 아버지의 초췌한 모습을 뒤쫓으며 질정하지 못하다가도 마당앞 백양나무에 까치울면 안타까운 기대와 희망이 꼼지락거리던 가슴이 못견디게 죄여들었다. (아, 딸은 몹쓸 도적이라더니 나야말로 아버지의 마음을 송두리채 훔쳐내고 있구나. 일년학비 만원에 숙사비가 매달 몇백원 그리고…)아름찬 돈계산을 하다가 정혜는 토방에 폭 엎어져 방황하는 자신을 질책하 면서 울고 또 울었다… ㅡ정혜야, 너 또 우느냐? 네에미는 정말 몹쓸년이지, 범도 새끼를 둔 골을 뒤돌아본다는데 제속에서 떨어진 딸도 팽개 치고 어데가서 제좋은 노릇하는지…미워 하고 울어봐야 쓴죽이 밥이 되겠냐? 에구, 가난이 죄로구나. 네애비는 하늘이 무너 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구 하지만 손털고 나앉게 생겼으니 이걸 어쩌누? 흐흑… 락망이 절반, 위안이 절반으로 어루만지는 외할머니의 말도 이 시각, 정혜에게는 멀고 먼 꿈나라에서 들려오는것 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정혜가 눈물로 나날을 보낼 때 그의 아버지 한철이는 속이 재가가 되여 뛰여다녔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외동딸인지라 금이야 옥이야 하던 자신이였다. 대학에 갈수 있는 좋은 머리를 가지고있었지만 한마을애서 자라나 현성고중까지 함께 간 미순이와 사랑에 빠져10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였고 비록 결혼했지만 한평생 풀속에 머리를 틀어박게 되였다. 어떻게 살아가든 사랑만 있다면 행복하다던 미순이가 골안을 휘쓸어간 시내바람에 소리없이 잠적해버리고나니 오직 사랑하는 딸애가 삶의 기둥이였고 전부의 내용이기도 했다. 정혜가 현고중에 붙은 그해 가을 학비마련으로 집안이 부산해지자 가난에 더는 열불나서 못살겠다며 가출해버린 안해가 죽이고싶도록 미웠지만 인물만은 내돌릴만한 자색이였다. 딸도 그런 제에미를 먹고 눈듯이 희한하게 잘 생긴데다가 심성도 참해서 그에게는 곧 목숨같은 존재였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아서 딸년이 드디어 성공하였다. 하지만 학비를 마련할 일이 아득했다. 아글타글 한푼두푼 모아두었던 얼마안되는 돈마저 미친년이 가지고 도망가다보니 빈털털이 신세가 된 한철이였다.   2.   한창 잘 나가고있다는 옛동창에 일루의 희망을 걸고 훈춘까지 찾아갔다가 역시 헛탕치고 돌아온 날 저녁무렵 술을 억병으로 마신 한철이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곧추 뒤산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귀신에게 홀려다니듯 정처없이 숲속길을 방황하며 쓰고 떫고 괴로운 생각을 반추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딸애의 학비를 마련해야 했다. 비록 농토에 묻혀사는 신세였지만 자존심만은  강한 그였다. 그러나 농민의 자존 심따위를 내들 처지가 아니였다. 룡정, 왕청…사돈에 팔촌까지 찾아가볼만한 곳은 다 돌아다녔고 번번히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때마다 배반하고 간 안해를 찾아내여 갈기 갈기 찢어발기고싶었다. 딸만은 어떻게든 대학공부시키자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윤기돌던 입술이 떠올라 더구나 가슴이 뿌직뿌직 찢겼다. 친척도 친구들도 다 귀찮았다. 사랑하는 딸에게 미안했고 가출해버린 안해에게 원한만 사무쳤다. 딸애는 대학에 안간다고는 했지만 말하는 입과 바라보는 그 눈길이 그렇게 다른것을 보며 억장이 무너져내렸다. 무능한 애비때문에 딸애가 앞길이 막막하게 됐다고 생각하니 자기 자신의 존재가치가 너무나 허무했다. 생마늘을 삼킨 듯 쓰라린 가슴에 소외감만 치밀어오르고 소태기름을 삼킨듯 쓰디쓴 고독감에 입맛을 다시면서 누구에게라없이 《뿌드득》이를 갈았다. 이따금 오열과 비슷한 오한이 나기도 했고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무서운 시련을 겪고있었다. 이젠 풀어질대로 풀어진 의식을 오리오리 옥매듭지으면서 새삼스레 자기 앞에 놓인 생사의 갈림길에 두려움과 애석함과 까닭 없는 미움과 증오를 동시에 느끼고있었다. 그렇게 비겁한 자신에 대해 랭소하면서도 자꾸 단침을 삼키게 되고 목이 꺽 메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사람은 남을 저주할 힘이 없을 때 자살한다던가. 미친년 달래캐듯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그는 제일 높은 산봉의 어느 소나무밑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아직 해가 질 저녁무렵이 아니였는데도 숲속은 어둡고 하늘엔 더러워진 천쪼각같은 잔구름들이 누더기럼 널려있었다. 미구에 서서히 석양이 피빛같이 서천을 물들이고있었다. 그러나 한철의 가슴속에서는 방금까지도 설설 끓던 더운 피가 점차 식어가고있었다. 그의 눈은 보기에도 무서우리만큼 침침하고 암담 해있었다. 설사 열개의 해가 다시 떠오른다해도 그의 눈에 빛을 담아주지는 못할것 이다. 마음도 퍼렇게 멍들었고 내노라 하던 칠척사나이 자존도 겨울에 먹자고 소금물에 잠궈둔 늦외처럼 주눅이 들었다. 돈많은자들에게는 만원같은것은 어느 계집의 가슴에 쑤셔넣어도 속을 앓을 돈이 아니지만 그는 무던히도 속을 태웠다.(에익, 망할것! 돈이 뭐게?) 돈은 특수상품이고 일종 부호라고 한다. 모할아버지의 그림이 찍혀있는 매개물, 아니 종이장이지만 귀신 을 석마를 돌리게 할수 있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돈은 창녀이고 악마였다. 그는 지금 만원이 변한 각종 유령들속에서 모지름쓰고있었다. 그것들을 멸시할수 록 가볍게 털어버리려고 애쓸수록 유령들은 그의 신경중추속에서 더 뻔뻔스럽게 더욱 얄궂게 춤을 추었다. 그는 헤여나올길 없는 절망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고 또 한번 몸서리쳤다.고방구석에서 그냥 쿨쩍거리고있을 딸애의 모습이 보이는듯했다. 슬프도록 맑고 아름답고 청청한 목소리를 가진 딸애다. 응석을 부릴때마다 싫지 않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누가 딸애만큼 자기를 실망의 황무지에 주저앉지 않도록 용기를 불러주랴싶었다. 제멋에겨워 노래를 부를때면 맑은 꽃향기를 실은듯 만물이 약동하는 숨결같은 봄바람이 불어오는듯 하였고 먼 바다에서 날아예는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을때처럼 어떤 애수도 안겨주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런 딸애를 보면 안해의 화사한 얼굴과 까르르하고 웃음소리속에서 다 큰 계집 애를 꼭 그러안아주군 했다. 그처럼 그에게 있어서 딸과 가난한 시골살림에 진저리난 다며 지청구를 흘리다가 끝내 도망가버린 안해와 자기가 하나로 융화된 통일체였다. 그래서 더구나 돈은 이 시각, 귀신을 웃길수도 있다는 마력이 아니라 자기의 한 목숨,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는 독한 마라초를 한대 말아 물고 굴뚝같이 진한 연기를 토하다가 엉뚱한 생각이 건가래침과 함께 탁 뱉아졌다. 가난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속담은 가난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라님이 만들어낸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가난구제에 마음을 쓰지 않는 배불뚝이 관료들이나 만든것일수도 있다. 사람이 산다는것은 안해와 자식과 함께 사랑과 희망과 행복을 길게 길게 땋아 내려가는것이 아니랴! 그러나 한줄은 이미 끊어진지 오래고 마지막 그 한줄마저 막 끊어지려고 한다. 그는 생각과 시간이 정지된 표정으로 꼴깍 지고있는 마지막 해 를 넋잃고 바라보았다. 그의 어깨너머로 황혼의 잔영이 슬프게 떨고있었다. 잔광은 란자당해 죽어가는 사람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처럼 숲속을 적시고있 었다. 림종을 맞는 해는 유언도 없이 원통해서 눈을 뜬채 마지막으로 밤의 자객이 찌 른 칼날을 노려보고있었다. 미구에 하늘의 많은 부분을 이미 점령해버린 밤의 왕국에 는 성급한 별들이 반짝거리며 신생의 기쁨을 속삭이고있었지만 그의 눈속에는 그것  들이 그저 애처럽게만 보였다.   그는 얼마후면 싸늘한 시체로 굳어져 그 험한 인간들의 시장에서 기가죽어 돌아 다니지 않게 되고 배신과 허위와 욕망과 실망이 꿈틀대는 더러운 인파속에서 뒤몰리 지 않아도 될것이다. 비장한 결심을 내리고있는 그의 얼굴에 늦가을 빈들녘과도 같은 허무함과 회한의 짙은 그림자가 떨면서 지나갔다. 안주머니에서 흰약병을 꺼낼때는 손이 떨렸지만 입안에 한꺼번에 쏟아넣을 때엔 그렇게도 성급했다. 그리고 싱싱한 멋이 사라져가는 소나무아래 풀밭에 훌렁 드러누워 두눈을 꼭 감았다…… 이튿날도, 그 다음 날도 한철이가 돌아오지 않는데다가 누군가 그날 한철이가 술병을 들고 숲속을 헤매는것을 보았다고해서 옆집 친구는 급기야 파출소에 신고했다. 모두들 간대루야하고 가슴을 조리며 산속을 뒤지다가 저녁무렵에 끝내 찾아냈다. 한철이가 숲속의 소나무아래에 수면제를 먹고 아픈 마음을 영원히 잠재웠던것이다. 한철의 웃옷 안주머니에서 유서가 나졌다. ㅡ사랑하는 내 딸 정혜야. 아주 멀리까지 너의 장래를 마련해주고 오래오래 지켜보며 부녀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게 하려던 이 못난 아버지는 그만 투항하고 간다. 미안하구나. 그러나 아버지구실을 옳게 못하는 주제에 실망어린 네 눈을 어찌 보고 이 세상에 무슨 낯을 들고 다니겠니? 더구나 너의 엄마조차 지켜내지 못했으니 어찌 이 밝은 세상에서 구질구질한 목숨을 살아가겠니? 피아노곡조가 맞지 않을 때 피아니스트를 총살해버리는게 가장 깊은 동정이라면 이 자격이 없는 아버지는 스스로 사라져야 하겠지? 이러는 나를 니엄마는 절대 용서 하지 않겠지만 너만은 리해해다오. 너에 대한 희망은 빵과 같은것이였지, 그런데 한오리 가느다란 그 희망의 줄마저 끊겼으니 나 인젠 빵이 없는 사람이 된거야. 그러니 죽어야 마땅하지 않겠니?……… 정혜는 더 읽어내려갈수가 없었다. (아ㅡ버ㅡ지ㅡ이ㅡ제가 아버지를 해쳤어요. 아ㅡ버ㅡ지ㅡ이ㅡ)하고 실넋해버린 정혜를 보며 도와주지 않은 이웃들의 가슴에서 널장이 떨어졌다. 박정한 친척들도 소식을 듣고 머리를 들지 못했다. 일가친척들 사이에도 인심후한 큰형님이였고 동네 에서 걱정도감이던 한철이는 그렇게 한을 품고 박정한 세상을 버렸다… 한철의 자살사건은 골령을 들썽했다. 농민들의 가슴속에 더구나 실망정서를 지펴올렸던것이다. 급해맞은 현민정부문에서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으로나마 옥녀를 찾아 의연금을 모아줄테니 학교에 가라고 권고했으나 옥녀는 한사코 거절했다. 거절 했다기보다 량심상에서 갈수 없는터였다. 일은 그렇게 흐지부지해졌고 한철의 막무 가내한 죽음은 시간의 흐름에 차차 씻겨가버렸다. 비명에 죽은 아버지의 싸늘한 가슴에 매달려 실성할듯 울어싸면서도 눈물로 결심했었다.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대학공부는 아예 단념해버렸다. 돈이 곧 세계인 이 시대, 어떤 경로를 걷든 돈을 벌어서 어머니에게 복수할 일념에 전률했다. 그는 연길시내를 누비며다니다가 어느 안마원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3   정혜에게는 고달픈 세월이였지만 멋대로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다가 중학교때 유일한 딱친구였던 양미의 권고로 그가 있다는《흥부노래방》에 들어갔다. 손님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도 하고 술을 마셔주며 받는 팁이 웬간히 짭짤했다. 그러나 커다란 돈나무를 잡는게 그의 목표였다. 그러던 어느 날,《신사노래방》아가씨가 부족한데 정혜를 보내라는 전갈이 왔다. 정혜는 여느때처럼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이나 추고 팁을 받고 나오면 되겠지 하고 별생각없이 달려갔다. 살집이 좋고 잘 보양해서 조금 젊어보이긴 해도 지천명도 저믈어가는 한 기름진 남자가 혼자 앉아있다가 정혜가 들어서는것을 보고 반색했다. 속내를 알수 없게 생긴 두눈이 정혜의 가슴을 얼레빗질하고는 곧추 얼굴에 박혔다. 한쌍의 볼우물을 파는 애된 얼굴은 웃지 않아도 마냥 웃는듯했고 총명혜지로 빛나는 한쌍의 커다란 눈은 그렇듯 맑고 그윽했다. 몸에 찰싹 붙는 옷을 입고 다니는 여느 배동아가씨들처럼 요염한 차림도 아니였고 눅거리 귀걸이, 목걸이따위를 걸지 않았지만 현대미도 고전미도 아닌 알수 없는 단아한 모습이 너무나 성감적이여서 침이 꿀꺽 삼켜졌다. 이슬맞은 수국처럼 청신하면서도 섹시한 정혜를《흥부노래방》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이미 첫눈에 점찍어두었던것이다. 그래서 은밀히 뒤조사를 해보았더니 아직 오염되지 않은 동정녀였다. 그래서 오늘 서둘러 이름을 찍어서 불러들인터이다. 어둑시그레한 불빛아래 늙이와 단둘이 앉은 옥녀는 여느 날과 달리 별스레 몸이 으스스해 났다. 다른 사내들은 옆에 앉기 바쁘게 손짓이 건너오고 그런대로 가만이 있으면 들어갈데 안들어갈데를 가리지 않고 집적리는게 보통이였지만 로신사는 시종 점잖은 빼고있었다. 밤이 이슥해서 남자가 자리를 옮겨서 즐겨보지 않겠느냐고 제의 해오자 자기는 아직 그렇게 깊이 들어가서 돈을 벌고싶지 않다고 딱 거절했다. ㅡ미안해요. 전 배동아가씨질은 하지만 그런 일만은… ㅡ응, 그래?! 진탕속에 백합을 보는격이군. 참 유감인데…나 한번 자극을 찾자고 너를 불러온건 아니야, 나를 따르면 정말 좋은 일이 많을텐데…난 네가 그 노래방에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나리꽃이라는걸 알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말야. 하지만 네가 정 아니라면 뭐 할수 없지, 나는  이 바닥에서 한다는 신사야, 아무에게나 내미는것 아니지만 특별히 주는거니까 받아두어, 혹 생각이 돌면 날 찾아와! 곤두선 감정의 줄기를 매몰차게 부러뜨리는 계집애가 귀뺨을 후려치고싶도록 괘씸했지만 마음을 눅잦혔다. (햇병아리같은 계집애가 한창 놀고있네. 어느 안전이라 고…흥,) 늙은 신사의 웃음은 몸깊은 곳에서부터 야릇한 흔들림의 불꽃을 튕겨올리 는것만 같았다. 옥녀는 아직 그의 표정에 관심이 없었지만 얼결에 남자가 내미는 명함장을 받아쥐였다. 어스레한 불빛속에서도 금박을 올린《리승필교수문진》이라는 글자들이 유혹하듯이 확 안겨왔다. 그러나 노복의 눈에는 귀인이 없다던가, 그동안 내노라하는 벼라별 부자들과 부딪쳤던 옥녀로서는 고작해야 진료소따위나 꾸려놓고 허세를 부리는 늙은 령감태기가 대번에 마음이 기울어질만큼 탐탁해 보이지 않았다.     ㅡ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그저 술만 배동하고 노래나 불러들이고 싶어요. ㅡ그래, 나 마구잡이로 놀아대는 그런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니 안심해. 자, 그럼 노해한곡 부탁하지, 아가씨가 제일 잘 하는 노래를 불러봐.  옥녀가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자 남자는 가볍게 박자를 맞추며 흥이나서 연신 감탄성을 올렸다.…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추쳐 야지ㅡ녀자의  웃음이 눈물인줄 그 누가 알랴! 돈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몰라…꼬집어 말할순 없어도 서러운 마음 나도 몰라, 이래서는 안되는줄 알아, 래일이 슬픔인줄 알아… 아름다운 음악이 생활을 장식한다지만 이런 유흥업소에서의 음악은 향락을 자극할뿐이다. 생활자체는 일련의 시끄러운 자질구레한 일과 음모와 궤계로 가득차 있다. 사람의 진정과 품성은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옥녀는 노래에 열중하다보니 남자의 은밀한 손동작은 포착하지 못했다. 련거퍼 몇곡을 부르 고 자리에 돌아온 옥녀는 로신사가 내주는 맥주잔을 받아서 단모금에 마셔버렸다. ㅡ애썼어, 컬컬할텐데 한잔 더 쭈욱 내라구, 응, 그렇게…아가씬 참 여간내기가 아닌데!사람들은 배동아가씨들을 경멸하지만 난 아니야, 사는 방법은 저마끔이니까, 손에 빨깍빨깍하는것이 두툼하게 쥐여졌다. 돈을 손가방에 넣는 그녀의 마음이 이상하게 간지러워났다. 다른 때보다 취기가 급작스레 오르는것일가? 전신이 해나른 해지고 가슴속 어데선가 뜨거운 불덩어리가 굴러다는것 같았다. 그만 가야겠다고 일어섰지만 천정이 빙그르르 돌아가면서 쏘파에 그대로 무너졌다… 그다음 사내가 자기를 부축해서 자가용에 싣는것도 몰랐고 먼길을 들추며 달리는 차안에서 남자의 두툼한 손이 기탄없이 온몸을 만지는것도 몰랐다. 남자가 자기를 어린애처럼 안아다 널직하고 폭신한 침대에 내동댕이치는지도 전혀 모르고 그대로 무방비상태로 곤드라졌다. 로신사는 넥타이를 풀며 옥녀를 내려다 보았다. 이름 그대로 녀자의 얼굴이 너무 순결무구해서 오히려 점직해나는것을 숨길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얼핏 스쳐지나간 량심의 잔부스러기였다. 남자는 자기속에 동물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것이다. 남자는 다 자기 내부에 쥐를 잡아 얼른 먹지 않고 장난을 하는 고양이 심보를 가지고 있고 나비를 유혹해서 그믈로 얽었다가 그 피를 빨아먹는 거미를 가지고있다. 남자는 그런 생각을 하며 비릿하게 웃었다. 쌕쌕 단김을 내뿜는 오똑한 코며 이제 막 피여나려는 봉선화 꽃잎처럼 방싯 벌려진 입술…그 모든것을 이제 여지없이 죽탕져줄판이다. 남자의 거칠고 다급한 손길에 거미줄이 한오리 한오리 끊어져나가고 마침내 브래 지어속에 숨어있던 두개의 붕긋한 유방이 툭 튀여나와 눈이 부시게 했다. 채송화 화판같은 그속에 연보라색의 꽃봉오리가 웅성의 략탈을 기다리고있다. 한마리 싱싱한 물고기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운 녀체의 부드러운 곡선, 미끈하고 탄탄한 허벅지가 곱게 모이는 곳에 무성한 숲이 펼쳐져 있었고 그속에 환락의 샘이 패여있었다. 아직은 덜익은 풋살구일지 몰라도 거기에 미답의 새경험이 있고 자극이 있을것이다. 돈은 여생에 다 쓸수 없을만큼 벌어놓았고 지금도 벌어들이고 있는 그로서는 수많는 녀자들의 몸을 거쳐 젊은 시절에 만끽하지 못한 그 육욕의 향연속에 질탕거리 는 인생지락밖에 더 없었다. 50대는 사랑에는 절름발이라지만 색에 들어가서는 석양 처럼 이글이글 불타오른다는것을 햇병아리같은 녀자애들은 모른다.  한해전 근 3년간 데리고 살던 녀자를 한국의 로신사에게 주어버리고 두루춘풍 식으로 이 계집, 저 계집을 갈아타며 도락을 했지만 이번엔 새큼한 풋살구를 마음껏 깨물며 지구전을 하고싶었다. 마음에 드는 계집애를 찾아내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버젓이 애처로 맞아들일 궁리도 굴리고있던 그였다. 마침내 하늘이 점지해준 햇살구 가 입가에까지 굴러들었으니 이 아니 즐거운가, 이 시각, 아무 방비도없이 드러날대로 드러나 있는 동녀의 라체가 시들어버릴듯 싶던 그의 음욕을 거세차게 불질렀다. 기나긴 겨울밤이 새도록 동녀의 거기를 짓밟아 보고싶었다. 분명 남자의 습격에 겁을 먹고 무감동할지라도 이 로운동가의 광증에 시달리며 몸부림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극적일가? 그래, 남자는 이멋에 사는거야, 방금 먹은《위거》가 은을 내느라고 페니스를 무섭게 솟구치며 돌격을 재촉했다. 사나이의 눈길에 파란 빛이 흘렀다. 그 병적으로 기름이 끓어오르는듯한 눈빛, 쾌락과 욕정으로 잔뜩 흥분되여있는 눈빛, 먹이를 발견했을 때 떠돌이 야생동물의 그런 눈빛, 살아있는 동물의 목숨은 노리지 못하고 이미 죽어가거나 다른 짐승들이 먹다남긴 썩어가는 동물의 시체를 보는 순간 발산하는 그런 더럽고 비속한 동물의 눈빛, 그 눈빛이 지금 막 정혜를 덮치고있었다. 만약 정혜가 맑은 정신으로 그런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면 소름이 끼쳐 비명을 질렀을것이다. 야들야들한 동녀의 촉감이 방불히 전신에 번져오는것 같았다. 침대우에서는 무슨 신사가 없다. 그는 막 발정이 난 늙은 황소가 얌전한 암소를 올라 타듯이 녀자를 마구 덮쳤다. 가슴에 젖무덤이 뭉클 감촉되여왔다… 그때까지 몽롱한 의식속에서 죽은듯이 누워있던 정혜는 받아내기 어려운 육체의 압박감과 란폭한 파괴의 아픔에 어렴풋이 눈을 뜨긴 하였지만 누군가의 얼굴이 환각 처럼 얼른거렸을뿐이다. 모진 아픔에 정신이 번쩍 들었을때는 너무 늦었다. 자신을 짓뭉개고있는 남자를 밀어내려고 힘껏 버둥거리며 몸을 비틀었지만 이미 아무 쓸모없는 저항으로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이윽고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큰 바위밑에 깔린 들꽃처럼 시들해지면서 자신을 서서히 포기해버렸다. 신선한 향기가 흩어지고 숨가쁜 허덕임과 피로만이 남았다. …이른 아침, 남자가 다시 자기 가슴우에 엎어져서 발악을 할 때에는 자신도 이상하리만큼 사이비한 쾌감이 혈관속에 퍼지듯이 전달되면서 멍해있던 그의 정신을 흥분에 떨게 하였다. 목안이 말라들고 전신이 달아오르며 가볍게 떨리더니 후에는 걷잡을수 없이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동시에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산골 짜기에 메아리같은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의 인생에 전환점인 밤이였다. 아버지의 생죽음을 겪고 꿈마저 버려야 했던 그 모든 고통과 소녀궁이 처참히 짓밟힌 그 설음도 시간과 더불어 점점 색바래여갔다. 정혜는 그가 부등켜안으려던 돈나무가 비록 탐탁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무서운 금구도 넘은이상 로신사의 작은 꿀벌로 들어앉기로 작정했다. 늙은 남자의 양배추속같이 희고 살찐 가슴의 무게와 광증을 받아내노라면 이발이 절로 물러날무렵의 둔하게 아프고 근질근질한 상반된 쾌감에도 차차 적응되여갔다. 자기 이름으로 된 아빠트도 생기고 꿈에 그리던 자가용도 굴러들어왔다. 핸들을 연길바닥을 누비노라면 생활의 풍요로움도 만끽하는듯 싶었다. 하는 일이란 화장하고 드라이브삼아 여기저 쇼핑을 다니고 그리고는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자극적인 잡지들을 뒤번지는게 도우미아줌마에게 잔소리나 늘여놓는게 고작이다. 허나 그것도 한동안이였다. 마음은 한말뚝에 곱다라니 매여있다가 눈을 싸매고 석마돌의 주위를 천리를 가듯 가고 또 가는 당나귀가 아니다. 그녀의 생각의 호수에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문턱을 넘으면서도 열두가지 생각을 한다는 녀자들의 본성이 어데가랴, 천진란만하던 학창시절의 고운 꿈은 어데로 갔는가? 비록 좋은 옷으로 몸을 감싸고있었지만 령혼이 이미 도망해버린 빈 육체는 헛간과 다름없었다. 찌들린 생각에 쫓기는 그런 날 밤이면 마음의 서랍들이 위쪽으로부터 차례차례 열리기 시작 하면서 그가 살아온 동안  열어보기조차  무서웠던 그 맨 아래 층서랍이 삐그덕 거리며 열리고 그안에 담겨있던 자신의 내장이, 자기를 육체이게 해준 그 내장들이 소금에 절여지듯이 꿈틀거리였다.                                 4.   ㅡ야, 정혜야, 아예 나와 결혼하자, 나도 이젠 너절한 계집들의 시궁창에 넌덜머 리가 났어. 널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 줄거야! ㅡ할아버지같은 사람에게 감정이 생길수 있을가요? 웃기지마요, 내가 그렇게 된 몸이여서 할수 없이 붙어있는거지 좋아서 그러는줄 알아? 능구렝이같은게… ㅡ이 계집애야, 아바이소리 하지말라구했지? 이제 다시 그렇게 불렀다가는 없을 줄알아, 아저씨라구 불러라, 한국사람들처럼 말이야! 그건 그렇구, 너 아무리 숫처 녀를 내게 바쳤지만 배동아가씨로 굴러 다니지 않았어? 굴러들어오는 복을 차던질 네처지가 아니잖아? ㅡ그래, 두꺼비가 어쩌다 고니고기를 삼켰다칩시다. 그러나 정욕은 사랑이 없어 도 만족되지만 사랑은 정이 없으면 안되는거 몰라요? … ㅡ어허, 이년 봐라. 곱다곱다하니까 꼭두에 올라앉아 똥쌀작정이냐? 응? 이젠 너 뛰여봤자 여래불의 손바닥에서 오줌을 갈기는 손오공만도 못되는 처지야, 허허허… ㅡ그래 말 다했어? 쓴죽이 밥이 안되지만 쉬쉬한 감주를 만들기야 번대머리가 중이 되는것처럼 쉬운 일이 아닐가요? 우리 서로 배짱내기로 놀아봅시다. 누가 더 오래 견디나, ㅡ아니, 아니, 오해하지마, 네기 그런 녀자란 말이 아니야, 내가 한 말을 찾으마. 요귀여운것아, 하긴 네가 내 막내아들과 동갑내기여서 세대차이가 있지만 남자의 애욕은 퇴직하기 싫어하는법이거든. 공자는 일흔두살이나 되는 령감과 열여덟살먹은 녀자애사이에서 만들어졌다지 않아? 그래서 만고성인이 나온거야, 공자의 애비에 비하면 나 아직 청춘인셈이구 넌 공자에미보다 세살이나 더 먹은 녀자지, 으허허허!어때? 우리 아들 하나 낳을가? 연길바닥서 건축왕이라 불리는 그 친구가 비로 나만은 어리지만 열아홉살 어린 부인과 아들을 척 만들어내고 당당하게 살더라. 남들이 뭐라든 우리만 좋으면 되잖아? 싫으면 이 아저씨의 부인이 되겠다는 열여덟살짜리 애들도 한둘이 아니야, 돈에 미친년들이 지금 얼마라구, 한두름이라도 꿸수 있으니까 너 잘 알아서 결정해! 애젊은 녀자애를 별장에 숨겨놓고 밤마다 즐기고있지만 아예 안해로 들여앉히고 싶어 안달이 난 남자가 요즘 바짝 결혼소리를 해온다. 정혜는 숫제 작정하고 나선 이 길이기에 어떤 보람을 가지고 사는건 아니였지만 나이가 너무 차나서 우선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다른 고장도 아닌 손바닥만한 연길에서 령감태기의 아이까지 낳으며 살아갈 용기가 좀체로 나지 않았다. 남녀간의 육체적생활은 감정과 정서의 생활이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의 생활이 정서의 지배를 받는것일가? 감성과 참다운 생활은 더 말할것도 없이 너무나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있다. 참다운 사랑, 참다운 격정, 참다운 슬픔, 참다운 노여움, 참다운 미움, 참다운 한탄을 자신의 육체가 너무도 알고있었다. 이럴줄 알았더면 생생 끓던 그 나이때 남자애가 덤벼치는대로 순정이나 바치고 말았더면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이 나 남겼을걸 하는 쓰거운 회한이 갈마들기도 했다. 자기에게 남아있는것이 무엇인가? 오직 색마에게서 아심아심 짜낸 돈으로 하여 조금이나마 생의 리유를 찾군했다. 생활은 곧잘 사람을 조롱한다. 아니, 자신이 자초 생활을 잘못 리해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마음은 물이 몽땅 새여버린 나무통처럼 텅비여버리고 미구에 깡마르고 터갈라져서 산산히 쪼각나고말것이다.   령감쟁이는 한동한 밤마다 들어붙어서 물고빨며 지랄네굽을 안더니 말대로 고험해 보느라고 그러는지 다른 년들과 운동전을 하느라고 그러는지 오지 않을 때가 잦아졌다. 그런 날엔 밤깊도록 혼자 온갖 지꿎은 생각에 자신을 괴롭히다가도 머리를 세차게 흔들기도 했다. 자신의 망가진 정조처럼 티없이 깨끗하고 성실한 덕성을 간직할 필요는 없다. 미만한 인생의 감정같은것도 자기에게는 영원히 인연이 없는 것이였다. 랑만적인생은 어렸을 때의 어렴풋한 견해였을뿐 이제는 인생이 무엇인지 다 알것같았다.     쓸쓸한 가을바람이 창가를 후려치며 어둠속에서 휘파람을 불어대고있다. 호젓한 앞마당에서 떨어지는 나무잎 하나하나의 소리는 그의 가슴속 깊이에서 지는 청춘의 락엽으로 느껴졌다. 육신이 한대의 양초라면 령혼은 타오르는 불꽃이 아닐가? 령혼은 심지가 박혀있는한 언제까 타올라야 했다. 최후의 한방울이 남을때까지 타올라야 했 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고 돈을 버는것이 지금은 생의 전부의 내용이였다.     문득 얼마전에 있었던 우연한 상봉이 떠오르며 입안이 씁쓸해났다. 그날 집구석 에 쳐박힌지 너무 오랜지라 여기저기 상가들을 돌고나서 친구들도 볼겸해서 노래방에 들렸다. 카운터에서 친구와 이러쿵저렇쿵 지껄이고있는데 한무리 청년남녀들이 들이 닥쳤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낯익은 얼굴들속에 첫사랑의 단꿈을 안겨 주었던 리홍이도 있을줄이야, 방학간에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랑만을 흘리는것이다.     리홍이 이쪽을 건너다 보며 얼굴을 붉히고있다. 두쌍의 눈들이 교차되면서 서로 의 표정을 읽엇다. 흘러간 3년세월이 거두어간 사춘기시절의 흔적과 옛기억의 잔해 들을 서로의 얼굴에서 조금씩 발견해내면서 상대방의 정서와 기분의 미세한 흐름을 저울질했다. 남자애는 그동안 많이도 숙성했다. 얼굴엔 구레나루터가 알리고 키꼴은 더 의젓하게 빠졌는데 행동거지도 무척 듬직해 보였다. 리홍이 먼저 괴로운듯 외면했다. 정혜도 공연히 치솟는 질투심과 환멸감에 얼굴을 홱 돌려버렷다. 더  서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가 친구와 간다는 소리도 없이 돌아서서 출입문을 여는데 귀익은 중음이 뒤통수를 쳤다. ㅡ정혜, 나 좀 보자. ……… ㅡ저기 다방에 가서 좀 얘기해, ㅡ나 너를 몰라. 저리 비켜, 정혜가 매몰차게 내뱉았지만 리홍이는 햇내기가 아니였다. 그는 무작정 정혜의 팔을 잡아쥐고 밖으로 내끌었다. 정혜는 남자의 완력에 의해 묻어갔다기보다 모종의 관성으로 따라갔다. 그들은 길건너 다방에 들어갔다. 복무원아가씨가 보리차를 따라놓고 무엇을 마시겠는가고 물으며 부러운 눈길을 두사람의 얼굴에 박는것이 확연했다. 정혜는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쓰거운 미소를 쫓느라 애썼다. ㅡ나, 널 잊지 않았어, 그런데…네가 대학을 포기할줄은 몰랐어, 물론 너에게 더없이 미안해, 그러나 난 진정이였기에 서로서로 동력을 얻고있다고 생각했어, 사실 난 너때문에 늦공부에 열심했던거야, 물론 너의 집에 생긴 일을 들어서 알고있었지. 근데 네가 노래방에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철저히 실망했어. 넌 이런데 있을 체질이 아니지 않니?     옥녀는 리홍이를 건너다보지도 않고 속으로 말하고있었다. (흥, 낮꿈을 꾸고있네. 야, 너를 몰랐을 때는 내 마음이 조용한 호수처럼 잔잔했어, 비록 더 큰 꿈때문에 네 자존심을 꺾을수밖에 없어지만 너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켜놓고 끝까지 지켜보지도 않은 개구쟁이야, 물결처럼 내 가슴을 헝클어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지? 나만 추억의 오솔길에서 헤매고 다녔고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며 너를 축복한줄 너 알기나 해? 넌 지금 어엿한 대학생이 되였다고 날아갈듯 하겠지만 내가 지금 어떤 녀자가 되였는지 속속들이 안다면 너 나에게 침을 뱉겠지… 나는 말없이 고이 내 상처와 아픔을 지니고있다. 내 입은 부질없는 하소연을 못참고있지만 나는 부끄럽고 무서운 체험을 너에게 말할 힘이 없다…) 리홍이도 생각의 고삐를 다잡고있었다. 사실 어릴 때 멋모르고 한 사랑의 맹세 였지만 대학에 올라와서 그것이 그저 장난이 아니였음을 날이 갈수록 심장으로 절절 하게 느꼈던 그였다. 그만큼 정혜의 조우에 가슴아파했고 자책과 더불어 그리움이 엉켜돌았다. 그의 가슴속에 늘 량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있어 지난날의 행위를 반성하 하게 하였고 그 회상으로 마음이 멍들기도 했다. 결국 운명의 낭떠러지에서 모대기는 첫사랑을 구해주지 못한것을 한탄하였다. 그러나 노래방에서 정혜를 찾을만큼  상상이 나래치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 할말 이 없음을 절감하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언젠가 만나면 허심탄회하게 말할 생각이였다. (정혜야, 어리광대같은 계집애들처럼 망가지지 말고 기다려라, 내가 성공하고나서 널 찾고 지켜줄거니까…)  성공한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때에 비참한 실패자를 만났으니 지꿎은 운명의 희롱인가? 그는 슬며시 정혜를 훔쳐보았다. 소녀시절의 풋병아리같던 애가 이젠 제법 천금녀같이 차리고있다. 불쾌한 마음이 욱 치밀었다. 스믈세살 처녀의 애티는 보이지 않고 어덴가 산전수전 다 겪은 로처녀의 그것과 같은 성숙을 슬프게 바라보며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혜가 어떻게 류행아가씨로 될수 있었는가를 알고싶지도 않았고 또 알았다한들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생각하기도 두려운 어떤 막연한 추측이 그의 마음을 싸늘하게 만들고있었다. 무너진 인생의 페허를 바라보는만큼 마음이 아픈 일은 아마 더 없을것이다.     이들 젊은 또래들은 그 어떤 좋은 일이라도 해낼수 있고 그 어떤 나쁜 일이라도 저지를수 있었다. 때로는 의젓한 대장부로도 되고 때로는 그냥 촐랑대는 까불이들로 된다. 그들은 고중 3년을 다니며 초중생의 유치한 때를 매미가 허울을 벗듯 벗어버 리고 이제 대공을 날아옐 청춘남아로 발돋움한것이다. 그러면서도 저마다 상처입은 가슴과 청춘기의 빈혈증을 가지고있으며 지식의 결여가 처처에서 드러나고 리성적인 판단력이 박약하다. 한편 그 강한 자존심만큼 자비심도 가지고있고 황당한 용기와 교만성을 가지고 있는만큼 사이비한 고결성과 거친 사유도 가지고있다. 리홍이가 바로 지금 이런 상태에서 정혜를 마주하고있는것이였다. 그는 이젠 롱구뽈로 감정이 헤픈 소녀애들의 춘정을 사로잡던 햇내기 고중생이 아니였던것이다.     그는 지금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있었다. (옥녀야, 너의 가슴속에 고이 받들려 있던 그 소중한 령혼이 세월의 풍파속에 지금 어떻게 현연되고있는지 나는 속속들이 모른다. 그러나 그 무엇으로도 지워버릴수 없는 슬픔으로 인생의 오솔길을 걸으면서 통탄하고 있겠지? 그러나 너는 이 세상에서 마땅히 얻을수 있었고 또 얻어야 하였던 소중한것들을 언녕 잃어버렸다는것을 나는 짐작하고있다.     그때 넌 나의 충정을 우습게 여겼기에 련애류행병에 걸린 고중생들이 그 모든 유혹과 자유분방한 환상에 자신을 내던질 때 너만은 사춘기의 간지러운 속삭임도 눈감아버리고 열심히 공부했지? 나 그러는 네가 우러러 보였고 너에게서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나에게 무엇으로 바꿀수 없는, 그리고 누구도 나에게 줄수 없는 지혜를 주리라고 생각하며 너에게 맹세했던거야. 나는 그 맹세를 지켜보며 기다렸어, 그런데 너는 가정비극의 희생양이 되였고 마침내 타락의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바로 그속에서 너는 본심이 꼬드기는 모순된 아픔과 고통과 말못할 슬픔과 고독과 번민을 안고 몸부림쳤다는걸 나는 알고있었다고 솔직히 말해야 하겠다. 나는 너의 집에 불상사를 들어서 알았다. 내 스스로 어떤 미안한 마음이 들면 찾아가고도 싶었다. 그러면서 네가 찾아오는 환상도 해보았어, 지금 너는 그저 자기 운명만 탓하고 자기를 절망의 갑속에 밀어넣은 자신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있지?     정혜야, 이제라도 자신에게서 해탈할수는 없을가? 아, 참으로 가슴아픈 너의 과거이구나. 그때 네가 찾아왔더면 내가 널 어떻게 도와주려고 결심하고 있었어. 나의 아버지가 돈을 잘 버는줄 너도 알고있지 않았니? 이런 이야기가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그때 내 마음은 정말 진정이였어. 믿기지 않겠지만도…     정혜야, 우린 인생길이 갈리였지만 고중시절에 싹튼 그  사랑의 씨앗은 지금도 변함없어, 우리 영원한 친구인거다. 내 말이 우습게 들리지? 나 지망하던 대학에 갔지만 너의 방조를 잊지 않을거야. 나 대학을 졸업하고 어데가든지 너를 생가하면서 네앞길을 축원할거다. 네가 내마음을 받아주든말든…이제 다시 만나면 지금처럼 대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잘있어라. 나는 간다.)     그들은 그렇게 몇마디 나누지 못했고 더구나 옥매듭을 지은채 헤여졌다. 정혜는 끝끝내 눈을 들어 리홍을 바래주지 않았다. 허지만 며칠후 노래방으로 보낸 리홍의 편지를 받아보고 가슴을 치며 울었다. 편지를 읽으면서 그제날의 멋모르고 가슴을 설레였던 야릇한 감정이 사랑의 씨앗이였다는것을 시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배는 이미 강을 건너갔고 막차도 산굽이를 돌아갔다. 그래서 더구나 통곡이 나왔다.     그는 리홍이를 잊어야 했다. 눈에 들어간 티는 비비면 비빌수록 아픈법이다. 더 참을래야 참을수 없을땐 눈까풀을 뒤집어보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정혜는 형언할길 없는 어떤 웨침이 막 터져나오려는걸 가까스로 억눌렀다.(그처럼 가까이 있었던 남자가 막 먼곳으로 떠나가버린다. 이렇게 가면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수도 있지 않을가?) 격정의 회오리바람이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의 쪼각들을 마구 날렸다. 기실 리홍이 비록 담보할수 없었던 시절의 첫사랑이였지만 노래방에서 손님들앞 에서 노래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리홍이를 상대하여 노래한다고 생각할만큼 잊은적이 별로 없었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에는 운명적인 리별이 있기마련이다. 청춘시절, 한때의 추억으로 자기를 위안도 하며 멍이든 가슴을 달래여 왔다고 할가?   5.    정혜는 리홍의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며칠 죽고싶을만큼 고통에 빠져서 물욕도 허여심도 다 죽어버렸다. 이제 새 출발이란 말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궤도에 올라선 기차인만큼 그냥 굴러갈수밖에 없다. 정혜는 리승필과 등기하지 않은 림시부부로 되려고 주판알을 굴렸다. 령감이 들어온 밤, 담판이 시작되였다. ㅡ 나 먼저 물어볼게 있어요. 잠시 결혼은 안되구 동거는 할수 있어요. 그런데 집에 마님은 어쩔텐가요? ㅡ이 바보야, 내가 몇번 말했니? 죽었다구. 내 집에서 살면서 확인해, 다음은 무어냐? ㅡ좋아요, 그건 내눈으로 확인하면 되는거구요. 그리구 일이 잘 풀리면 장차 결혼할런지도 몰라요. 그러나 지금은 안해요. 내요구를 들어주겠다면 아저씨의 림시 안해가 되여주겠지만 안들어 주면 이 지긋지긋한 노릇도 다 때려치우고 제멋대로 살테니까 알아서 처리해요. ㅡ그래 언제 결혼하겠니? 그리고 두가지 조건이란건 무어냐? ㅡ나 공부할래요. 먼저 사립학교에 들어가 복습하고 대학시험을 칠거야요. 내 동무도 3년 사회에서 굴러다니다가 지금 학생이 되였어요, 그앤 돈많은 한국사람의 양딸로 들어갔거든요. 그러니 아저씨도 나를 영원히 가지려거든 양딸로 삼아요. 그래야 공부하는 기간 명분이 서는거야요. ㅡ그 한국령감쟁이 미쳤군그래. 낮에는 양딸이구 밤에는 정부란 말이지? 개들을 웃기고있네. 하긴 좋은 세상이긴 좋은 세상이여, 헛허허… ㅡ뭐가 우스운데요. 지금 양딸이라는 이름을 걸고 네좋고 내좋게 사는 사람이 한 둘인줄 아나요? ㅡ그래 그렇다구 치자. 내가 널 어떻게 믿고 돈을 투자한단말이니? 되지도 않을 소리! 대학을 나오면 나 꼬부랑령감이 다 되는데 네가 포르르 날아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을 할수 있니? ㅡ에이, 바보! 공부해도 당신곁에서 살면 되잖아? 나 외지대학에 가려는것도 아니구 여기 의학원같은델 나오자는거야. 말했잖아 일이 뜻대로 되면 로옹의 젊은 부인이 될수도 있다구, 결혼하고나서 당신 더 늙으면 사업을 이어갈 사람 있어야 되잖아? 아들이 있다지만 의사질을 싫어한다니까 물려줄수도 없고 지금 들어가서 정식부인 되면 그 동갑내기 아들을 어떻게 마주한단말이야? 나 못해! ㅡ하긴 생각이 괜찮은데…그런데 그 자식은 내 아들이 아니야, 녀편네가 돌계집 이여서 얻어다 키운것이야, 내성을 태우고 친자식처럼 곱게 길러주긴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뒤바라지를 해주지만 날 세계헌병인 부쉬보다 더 미워하고있으니까 네가 아이 하나 덜썩 낳아주렴, 으흐흐흐…좋아, 좋아! ㅡ그럼 약속하는거죠? 좋아, 여기 각서를 써요. 나도 당신을 믿지 못하니까. ㅡ요것이 누굴 찜쪄먹으려구? 넌 무얼로 담보하는데? ㅡ아이, 바보, 이미 도장찍었잖아? 며칠후 리승필은 정혜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집안에 들어선 옥녀는 다시 한번 끔쩍 놀랐다. 정부에게 집을 사줄만큼의 부자면 집안이 어떻겠다는것을 짐작은 했지만 궁전처럼 꾸려놓고 살고있었다. 230평방이나 되는 집안이 어찌나 너른지 숨박곡질을 해도 될상싶었다. 생각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녀색에 죽을판 살판하는 이 령감태기가 자기 아니래도 필경 다른 녀자를 안해로 맞아들일것은 뻔했다. 그런 자리를 누구에게 양보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그는 제법 안주인이 된듯이 집안의 가구배치를 제구미에 맞게 다시 할 궁리까지 하였다. 이미 망가진 자기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길이란 령감태기의 정식부인으로 되여 호강하다가 재산을 차지하는것이다. 령감의 씨는 절대 받지 않으리라 작심했다. 자기 아닌 지망자가 없으란 법이 없다. 돈이라면 범벅덩이에 쉬파리처럼 날아드는 웬 미친년에게 빈틈을 줄수도 있다.남의 눈치고 뭐고 아예 척 들어않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하리라고 마음을 다져먹으니 대청같은 온집이 한손에 잡혀든듯 마음이 지레 뿌듯해 났다. 령감에게서 한껏 짜낸다음 다시 작전해도 늦지 않을것이다. 그녀는 청소공들을 불러서 대청소를 했다. 자기 공부방으로 쓸 방은 자기손으로 다시 했다. 화장대를 털어내다가 정교하게 만든 사진첩이 나왔다. 무심히 첫장을 번지던 그의 입에서 비명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더니 이런 해괴 망칙한 일도 다 있던가? 령감의 목을 안고있는 녀자가 너무나 낯이 익었다. 가출해서 잠적해버린 녀자, 평생을 두고 저주하리라던 어머니일줄 꿈에나 생각했던가? 그는 무슨 몹쓸 물건이나 쥔것처럼 사진첩을 와락 팽겨치고 히스테리적으로 발버둥치며 울었다. 비록 자기 딸마저 버린 그 녀자였지만 좋으나 궂으나 낳아주고 십여년을 키워준 하늘같이 생각하던 어머니이다. 아, 돈은 이렇게 두세대의 녀자들을 제마음대로 롱락할수 있는가? 옥녀의 충격적인 심정은 그 어떤 언어로도 표달하지 못할것이다. 그녀의 환멸과 원한과 비분을 형용할 말들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울고난 옥녀는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것을 속으로 헤아리고 있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째야 하는가? 아무리 타락한 자기일지라도 엄마가 섬기던 남자에게 후임으로 들어붙어있을수 없었다. 마음같아선 당장 이 더러운 집에 불이라도 콱 지르고싶었다. 그러나 어데로 갈것인가? 치욕으로 얼룩진 이 도시를 영영 떠나야 하나? 억울함과 모멸감과 증오심과 허탈감에서 전신을 떨던 정혜의 마음에 마침내 독기가 얽히고 서렸다. 복수하는것이였다. 그는 애초에 령감이 골골할때까지 치사하게 붙어살 마음이 없었다. 자기의 색으로 후벼내고 빨아내여 맥살을 완전히 뽑아버리고 야금야금 돈을 챙기는것이였다. 나이로는 비록 망울을 터치지 않은 한떨기 꽃이지만 이미 더러운 쉬파리가 거쳐간 변소옆에 잡초처럼 되여진 자기로서는 도덕이니 량심이니 정조이니 하는것은 이꽃 저꽃에 옮겨 앉으며 허랑하게 놀아대는 나비더러 꿀벌이 되라는것과 같이 우스운 노릇이 아니냐? 저녁에 령감이 들어오자 사진첩을 꺼내놓고 넌지시 넘겨짚어보았다. 녀자문제에 들어가서는 렴치도 없고 수치감도 없이 완연히 늑대가 된 령감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 하였다. 옥녀는 너무나 뻔뻔스러운 상판을 피가 줄줄 흐르게 콱 할퀴어놓고싶은것을  간신히 참았다. 속에서 화산이 터지고 얼굴엔 성에가 불리여있었다. ㅡ그 녀자말이냐? 음, 처음엔 가정부로 들여왔는데 이틀이 넘지 않고 내 이불안 으로 들어오더구나. 연길바닥에서 그렇게 잘 생긴 녀자는 드믈거야, 처음엔 촌티가 흐르고 손도 거칠었지만 차차 때물을 벗으니 절색이더라, 그리구 잠자리에서 사람을 죽여주었지, 아까운 년이긴했지만 너무 앙탈해서 한국의 내 친구에게 시집보내주었어. 왜 질투가 나냐? 너도 원한다면 몇년후 좋은 총각한테 시집보낼수 있어, 돈도 많이 주구…이 사람이 마음은 부처님을 울릴만큼 착하지, 으허허… 정녀는 자기가 필경 사색이 되여지는것을 느끼면서도 코웃음쳤다.(응 그래, 대자대비하신 미륵보살이다. 네가 아무리 지랄발광하지만 언젠가는 내 손에서 숨을 거두게 될거니까 잘해봐 이 색마야,)사실 령감은 정혜를 은근히 무서워했다. 녀자가 일단 자기에게 춘약을 먹이고 간음했다고 고발하는 날엔 설사 감옥은 아니가더래도 세상을 크게 웃길것은 뻔했던것이다. 그래서 잠자리에서 마음대로 주물러대지만 로옹들이 거개 젊은 녀자에게 쥐여살듯 그도 그렇게 쥐여살게 되였다. 옥녀는 령감과 붙어산 엄마의 일을 더 생각하지 않기로 모질게 마음먹고 시치 미를 뚝 땄다. 엄마가 황당하니까  자기같은 황당한 계집애가 생기는것이고 세상이 악착하니 자기도 악착하게 될수밖에 없는것이라고 자신을 변호하였다. 세상이 차츰 개명해지면서 녀자들이 자기에게 붙은것을 제마음대로 써먹지 못하던 우스운 시대도 지나가고 지금은 버젓하게 허가증까지 내고 돈벌이하는것을 더는 단속하지 않는 호시절이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더라. 이미 다 된 밥을 구태여 시래기 넣고 죽으로 만들필요가 있겠는가? (스므살, 순수했던 옥녀는 언녕 죽었다. 이 인생극장에 아닌 보살하는 녀자들이 어디 나혼자뿐이더냐?…)그는 허울만 남은 육신을 끌고있었지만 령혼은 천길나락에 떨어져 몸부림치고있었다. 뻔뻔스러운 자신을 생각하면 통곡이 나올때가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입을 사려물었다. 밤마다 치사하리만큼 집착하다가 지쳐서 뻐드러졌을 때 기름진 배때기에 식칼을 콱 박고 죽어버리고싶은것을 용케도 참아오는터였다.   6.   낮에는 리령감의 양딸이고 밤에는 엄연한 안해이기도 한 동거생활을 한지도 어언 반년이 다 되여 갔다. 하루는 참고서같은것을 찾을가 해서 그동안 한번도 발길을 들여놓지 않던 령감의 귀공자의 방을 열고 들어갔다. 갑부의 귀공자공부방이 다르긴 달랐다. 세상이 어쩌면 이렇게도 불공평할수 있느냐며 한참 저주를 퍼붓다가 책장에서 참고서들을 뽑아냈다. 한아름이나 안고 나오다가 문을 닫는 서슬에 책이 한권 떨어지며 갈피속에 끼였던 사진 한장이 발밑에 떨어졌다. 한남자애의 독사진이였다. 얼결에 사진을 집어든 순간 눈이 굳어졌고 간질이 오는것처럼 사지가 와들와들 떨려났다. 사진속에 남자애는 다른 누가 아니라 리홍이였던것이다. 그 사진은 3년전 자기에게 주었던것과 똑 같은 사진이였다. 옥녀는 그자리에 폴싹 물앉았다. 된 몽둥이에 정수리를 얻어맞은것같기도 하였고 온몸에 피가 싹 빠져버린듯이 꼼짝할수 없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미쳐난 사람 처럼 아츠러운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웃던 그는 마침내 방바닥에 쓰러 져서 아이처럼 엉엉 울어댔다. 그렇게 울다가 울다가 흐리멍텅하게 정신이 든 그는 부랴부랴 트렁크를 챙겼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시였다. 이 집에 한시라도 있을수 없었다. 그슬픈 행운과 은밀한 치부계획도 미련이 없었다.  두개의 트렁크를 들고 나온 그는 택시에 몸을 던졌다. 령감이 맡겨둔 저축통장에 돈을 다 찾아내고 역으로 나갔다. 심양행렬차를 탈수 있었다. 온갖 불행과 수치와 눈물젖은 추억의 땅 연길을 떠나야만 하는 그의 마음은 갈갈이 찢기였고 아리다못해 쓰리고 아프다못해 마비되여버렸다. 초점을 잃은 두눈만 차창에 박혔을뿐이다. 밤차는 어둠을 뚫고 줄기차게 달렸다. 연길에서 멀어질수록 그의 마음은 뒤로뒤 로 밀리는듯 하다가도 다시 끝간데 없는 만주벌판처럼 아득한 천애지각으로 흩어져 갔다. 그는 기차에 올라서야 심양서탑부근에서 돈을 잘 벌고있다던 양미를 생각해냈 다. 그 애는 세상을 굴러다닌 경력이 몇해 앞선 애였다. 일년전 먼저 가면서 일이 여의치 않으면 찾아오라고 주소도 알려주고 핸드폰번호까지 알려주었다. 일이 이지경에 이르렀으니 막사는 길밖에 없었다. 가진것이란 너무나 일찍 시들어버린 육체뿐이다. 심양에서 쉽게 일을 시작했다. 부끄러울 일도 량심을 울일도 없고 장래같은건 더구나 없었다. 래일은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살고볼 일이다. 내대고 보면 이처럼 쉬운 일도 없는것 같았고 아무 재간도 없는 자기로서는 유일한 삶의 도경이라고 자아위아했다. 령혼과 인격을 들이대면서도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잠꼬대같은 신음을 내지르며 교미에 열중한다. 남자의 거세찬 충격력에 유방이 시들하게 춤추고 부단히 진공해오는 그것이 육신을 하수도로 만들고있다. 옥녀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자기학대식으로 자신을 마구 내굴렀지만 음욕에 미친 사내들의 발광에 시달리며 시름시름 죽어 가고있는 청춘과 감정을 슬프게 생각하며 몰래 울때가 많았다. 그런 밤이면 으례히 줄담배를 피워댄다. 홀로 담배를 피우는 녀자는 남자에게 시달린 녀자라던가? 담배끝에 매달린 불꽃의 색갈이 갓피여난 아침꽃의 색갈처럼 싱싱하고 선명하다. 담배불의 두가지 색갈이 지니는 공통점이 알리는듯 싶었다. 그건 분명 생명감이였다. 타오르는 불꽃의 생명감, 그는 담배를 깊이깊이 빨아들였지만 연기는 삼키지 않고 두 눈을 모들떠서 빨갛게 타는 담배불에 슬픈 눈길을 박는다. 그 투명한 밝음과 싱싱한 색갈로 타는 불꽃에서 자기를 읽는다. 불꽃이 타오르는  정열, 타오르는 생명력으로, 자신이 신념하는 세계를 위해 타오르는 자기의 청춘으로 착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불꽃이 다타고나면 무엇이 남을가? 회색재뿐이리라. 그만큼 의 허무가 또 어데있으랴! 녹쓸고 시린 가슴의 항아리에 불덩이를 집어넣어도 싸늘하 기만하다. 칼도마우에 고기는 칼을 두려워하지 않는법이다. 그가 매일같이 하는 일이란 무슨 임무나 집행하듯이 몸을 받쳐올리고 돈을 챙겨넣는 그짓이였다. 자기 가슴을 거쳐가는 수많은 남자들중엔 잘난 남자도 있고 살갑게구는 남자도 있었으며 점잖은 중년사내들도 있었지만 마음은 시종 겨울하늘처럼 음울했다. 서탑부근의 《사업》이 불경기에 처하자 영미를 따라 수천명 조선족녀자애들이 돈을 잘 벌고있다는 수도권 에로 진출했다. 그러나 일에 착수하고보니 가도록 심산이였다. 연변아가씨들에 대한 평판이 일락천장이였던것이다. 오죽하면 눅거리아 아가씨라는 대명사가 붙었겠는가? 자기로 말하면 환멸감같은 말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표현이겠지만 어쨌든 모멸감에 모대기지 않을수 없었다. 다른 애들은 돈도 벌고 새록새록 육욕의 감각을 찾으니 꿩먹고 알먹기가 아니 냐고 너스레떨지만 열물만 올리밀었다. 거짓신음소리를 내면서 허위적인 정서로 하는 그 짓거리는 어디까지나 동물의 그 짓과 다를게 없다. 무슨 떳떳한 직업일군이라도 된듯 북경에 산다는 자호감까지 느끼면서 개선장군처럼 비행기타고 집에 다녀와서는 히히닥거리는것을 볼때마다 자기 스스로 낯가죽이 발가지는것 같았다. 그래도 걸어야 하는 이 인생길이다. 펄펄 날며 살아갈 아버지가 죽었다. 아니, 돈이 사람을 죽였다. 결코 마음속으로나마 자기의 책임을  벗어보려고 짜내는 변명이 아니였다. 일이 이렇게 된바하곤 악바리쓰고 돈을 버는길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기계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옛말이 그른데 없었다. 자기때문에 비운의 함정에 굴러떨어졌다고 생각하며 은근히 그리고있던 녀자애와 이 북경의 뒤골목에서 해후 할줄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연길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 기독교앞 뻐스정류소에서 삼십대중반의 사내가 웬 녀자애를 마구잡이로 끌어내리더니 개패듯 하는것이 눈에 안겨왔다. 녀자애는 벌써 불성모양이 되여있었다. 행객들은 저마끔 눈을 흘기며 지나갔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워낙 성미가 카랑카랑한 그는 무슨 영문인지는 알수없었지만 본능이 발목을 잡았다. 그녀가 슬금슬금 다가서자 사나이가 녀자애를 구석쪽으로 끌고가서 구시렁거렸다. 귀결에 들려오는 말소리가 례사로운 일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ㅡ너 오늘 잘 걸렸다. 어쩌겠니? 파출소에 가겠니? 돈이 없다구? 그럼 다른걸로 배상해야지 이 간나야, ㅡ제가 무얼로 배상한단말인가요? ㅡ히히히, 엉덩이가 이만큼 커가지고 그것두 몰라? 네가 이뻐서 그런거야, 그래 어쩔테야? 날 따라 갈것이냐 아니면… ㅡ아저씨, 나 아저씨호주머니에 손은 넣었지만 아무것도 꺼내지 못했잖아요> 제손을 잡고도 자꾸 돈을 내놓으라면 뭘 내놓으란 말인가요? ㅡ허 이것 그저! 그러게 순순히 날 따라오라하지 않아? 옥녀는 보다못해 사나이를 막아나섰다.     ㅡ그만 때려요. 이 애가 무슨 잘못이 있기에 대낮에 사람을 마구 때리는거예요?     ㅡ넌 누구냐? 한패당이냐? 이계집애가 금방 차안에서 내 돈지갑을 훔쳤단말이야, 같이 주먹맛 보고싶지 않으면 쓸데없는 일에 삐치지 말고 저리 꺼져!     ㅡ얼만데요? 2백원이라구요? 자, 그럼 내가 이 애의 몸을 수색할게요. 만약 돈이 나오지 않으면 구타죄로 경찰에 알릴줄 알아요.     남자는 코웃음치며 그냥 소녀에게 행패질했다. 옥녀는 제꺽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순라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그제야 낌새를 채고 내빼려던 남자는 덜미를 잡혀서 벌벌 떨며 사연을 말했다. 그꼴을 지켜보는 옥녀는 메쓰꺼웠다. 약자와는 한정없이 거들먹거리다가도 자기보다 강한자에게는 그렇게 비굴할수 없는 그런 벌거지같은 남자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그런 구차스러운 생명을 내들고 다니는 남자를 보니 저주와 미움과 용기가 가슴에서 솟구쳤던것이다. 무작정 녀자애를 집에 데려왔다. 얼굴바탕이 이만저만이 아닌 녀자애는 시골 태생이였다. 중학교3학년을 다니다가 부모가 리혼하는 바람에 할머니와 함께 있다가 할머니마저 세상을 뜨고나서 거리의 류랑녀가 된 불쌍한 애였다…그애를 여기 북경에서 다시 만난것이다. 첫눈에 자기와 같은 어였한 배동아가씨가 되여있다는것이 알렸다. 그린듯 가늘면서도 짙고 꼬부장한 눈섭아래 크고 양순한 눈길이 물기를 머금고있었다. 그러나 애된 얼굴에서 이미 청춘의 푸른 잎이 생활의 무정한 된서리에 시들어버리고있음이 력연했다.  《언니!》친혈육을 만난듯 반가워서 펄쩍 뛰던 녀자애의 얼굴은 금시 홍시처럼 빨갛게 상기되였다가 또 해쓱해졌다. 그러나 녀자애의 눈길에는 신뢰, 존경, 감격, 위안, 순종의 빛이 가득차 흐르고있었다. 마침내 꽃술같은 속눈섭이 파르르 떨리며 마주붙자 맑은 이슬이 덧거니 맺거니 하다가 함함한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옥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며 그날처럼 전신을 바르르 떨고있었다. 옥녀는 그애에 게서 자기의 과거를 읽으면서 와락 그러안았다. 그러나 눈물은 없었다. 마음의 샘터가 마르면 눈물도 가뭄이 드는법이다. 시들어버린 생명의 나무가지에 더러워진 령혼의 쪼각들이 넝마처럼 걸려 펄럭일뿐이다. 그렇게 순결하던 시골의 소녀애, 그는 자기때문에 이 길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보다 어리지만 지금은 자기처럼 수없이 많은 남자들에게 짓밟힌 이 애도 이미 녀자가 아니였다. 어느 사람이나 기탄없이 오수를 쏟아붓고 으쓱해서 지페를 버리고는 돌아섰을것이다. 육신을 잃어버린 고달픈 령혼이 혼자 울부짖었을것이고 아무도 마음이 아프게 들어주지 않았을것이다.                                    7.   시골처녀애는 홍희라고 했다. 홍희를 만난 그날 이후 오고갈데 없는 그를 자기가 일하던 노래방에 데리고 가서 잡일을 시키도록 부탁했다. 로임을 잠시 주지 않고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받아주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홍희의 운명은 비틀어졌던것이다. 어느 날 소문이 짜한 화룡 깡패두목이 노래방에 와서 홍희를 독방에 끌어들였다.홍희는 그렇게 열일곱살 애숭이로 당하고 말았던것이다. 그때로부터 홍희는 차차 직업적본능을 터득하기 시작했고 얼마후 그 깡패의 성화를 피해 온다간다는 말이 없이 연길을 떠나버렸던것이다. 그후 심양, 청도등지를 거쳐 청춘의 아름다움을 팔며 살았고 구류소맛도 몇번 보았다고 했다. ㅡ언니, 난 무엇때문에 살아가는지 모르겠어요. 자신이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모를때가 많아요. 내 육신은 찟기고 짓밟혀 누더기가 되였으니…나는 누군가? 나는 어디로 가고있는가? 내가 지금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에 매달려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멍해있을때가 많아요. 언니는요? ㅡ넌 어린 나이에 생각은 나보다 더 심각하구나. 묻지마, 부끄럽구나. ㅡ나의 꿈은 작가가 되는것이였어요. 그러나 지금 내머리속은 가을 벌판처럼 텅텅 비였어요. 내가 지금 알고있는것이란 벌거벗은 남자들과 지페와 부딪치는 술잔 과 으슥한 방과 더러운 침대뿐이예요. 그러나 큰 거리에 나오면 풍요로움과 향락과 안락, 자족에 넘치는 얼굴들, 번창한 거리, 이 모든것은 우리들과는 너무나 인연이 없어요. 나는 흐르는 인파와 네온싸인, 자동차의 물결, 온갖 소음과 웃음소리, 노래 방의 쟈즈곡이 정말 증오스러워요. 그러나 나는 얼굴에 비굴하고 너절한 웃음을 잔뜩  발라가며 살아야 하거든요. 모두 이 짓으로 돈을 모았다지만 그 돈을 제손으로 훌훌 써버릴수 있나요? 피땀에 젖은 돈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의 돈은 무엇에 절은 돈이라 할가요? 그런 돈이라도 언닌 좀 모았나요? 누가 우리 같은 녀자를 안해로 삼겠나요? 장차… ㅡ얘야, 낡은 정조관념에 매달려 자기를 지키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얼룰덜룩하 고 아름다운 꿈으로 살기엔 삶의 길이 너무 울퉁불퉁하다고 생각하면 조금 안심 될거야. 자기를 속이는거지, 속이지 않으면 어쩌니? 가슴이 막 터지는데…난 래일을 생각하지 않아, 래일을 생각하면 컴컴한 동굴속에 콱 떨어져들어간듯한 기분이야, 내 육체가 내것이 아니듯이 내 령혼도 내것이 아니야, 나는 언녕 녀자이기를 때려친 암컷에 불과해. 내가 이 일을 시작한 리유가 돈을 위한것이라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단지 그런것도 아닌것같아. 자신을 속인다는건 언청이 아가리에 콩가 루격이지, 돈을 번다는 목적은 다 한가지겠지만 세상의 모든 처녀들의 우리들처럼 기껏 짓이기우면서도 멸시당하는 구지레한 돈을 벌지는 않지? 양은 산비탈에 내놓 아도 볕에 끄을리지 않고 돼지는 우리안에 갇혀있어도 희여지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니? 아무도 우리를 그냥 이 진탕길에 들어서라고 강요하 않았으니 우리 스스 로 선택을 잘 못한것이 아니겠니? ㅡ하긴 그래요. 여기에 있는 언니들. 아지미들 거개 눈물겨운 사연이 있더라구요. 있잖아요? 집이 동불사에 있다는 미나란 애말이예요. 나와 동갑내기인데 나처럼 연길에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더군요. 처음 싫다는데도 사십먹은 남자가 자기 개다 리들을 시켜서 네각을 붙들게 하고 모두 보는데서 유린당했다지 뭐얘요. 돈을 많이 벌어서 농촌에서 고생하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부잘하는 녀동생을 대학에 보내여 언니구실 잘 하는것이 소원이였다는데… 부모가 다죽고 외삼촌에게 얹혀살다가 열아홉에 시집을 갔다는 룡정의 언니도 정말 불행한 녀자더군요. 남편이란자는 술을 마시고는 못사는게 안해탓이기나 한것 처럼 그냥 두들겨팼다지 않아요? 그래서 리혼하고 선택한 직업이 이 일이라며 그냥 후회하면서도 손을 씻고 나앉지 못하지요. 이제 마흔이 넘게 이짓을 했지만 돈도 못모으고 나이만 잔뜩 먹어서 들어붙는 남자도 없는 순녀아지미도 정말 불쌍하지요. 그아지미를 볼때마다 나의 십년후의 모습이 떠올라서 막 소름이 끼쳐요… ㅡ그러게 말이야. 더 이상 더러워질수 없는 육체를 내대고 교역을 하면서도 우리 모두가 리상적인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려는 꿈을 버리지 않으니 얼마나 우습니? 내가 어떤 리유를 말하듯이 그들 모두에게 자기 나름의 리유들이 있겠지만 그게 타락의 정당한 리유가 못되는거야. 옥녀는 말을 더 이어갈수 없었다. 나어린 홍희의 고뇌의 화로에 자신의 곰팡이 낀 우울증을 말리는것같아서 모닥불을 뒤집어쓴듯이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는 자기 자신을 기만해 왔었다. 악마가 자기의 운명을 비틀어놓았다고 저주하면서 남자들앞 에서 사랑의 천사가 미소하는것처럼 자기를 꾸며왔다. 이제 그 허위적인 사유도 더는 자신을 붙들어줄수 없게 된것이다. ㅡ그 몇분을 위해서 돈을 날리는 남자에게 몇분간을 죽여줍시사하고 몸을 들이대 고나서 돈을 받아쥐는 우리들중에서 어느편이 더 바보스러울가요? 그래도 성문화라는 상표를 붙이니 그런 론리대로 한다면 우리는 현대성문화급선봉이 된셈이지요. 정말 울다가 웃을 표현이지요? 안그래요? 사실 그랬다. 그녀는 남자의 신분이나 생김새,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사생활같은것을 알아둘 필요도 없었다. 그저 화대를 많이 받아낼 궁리가 앞서다보니 다른 계집애들이 말하는것처럼 섹스의 신비감도 없었고 가슴이 뛰는 일도 없었으며 오르가즘같은것은 더구나 있을리 없었다. 한창 젊은 때여서 래일에 아름다운 모든것을 기탁하고 방종의 내리막길로 굴러가지만 언젠가는 몸이 늙고 그러면 이짓도 더 해내지 못하게 되고 한평생 같이 살 남자를 찾을 기회도 잃어버린다는것을 생각하면 정말 세상이 지옥으로 변한다. 휘저어 헤쳐나갈수 없는 어둠, 소리쳐 불러도 물리칠수 없는 적막과 소외, 발로 걷어차 일구어세울수 없는 땅, 끌어내려 갈기갈기 찢어발길수도 없는 하늘…이제 더는 참고 견딜수  없다, 아무것도 참을수 없어…남자들은 좋은 물건들이 아니다. 그들은 라체를 전시하는 녀자가 입으로가 아니라 젖통으로 말하고 미끈한 허벅다리와 그 사이에 숨겨진 삼각 지대로 말하는걸 어떤 자호감으로 착각하는 동물들이다. …그들은 어쩌다 밤일이 일찍 끝나서 숙소에 돌아오는 날엔 그렇게 친자매처럼 한침대에서 딩굴면서 육욕의 략탈에 처녀의 터전이 쑥밭이 된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 하며 남자들을 저주하고 세상을 물어뜯으면서 울고 웃었다. 그들에겐 향수의 감정도 효도의 마음도 이미 너무 색바래여있었다. 이제와서 무엇을 할수 있단 말인가? 산다는것은 아버지유언처럼 세월과 함께 사랑과 희망을 곱게곱게 빚어가는것이련만 그것은 언녕 인연이 없는 꿈이다. 스믈 다섯살, 나이는 아직도 청춘을 지키고있다. 그러나 세월령감에게 속절없이 코를 꿰이여 끌려가며 차차 늙어가고 녀자의 자본인 미색도 바닥이 나서 더는 남자들의 환심을 살일도 없이 천덕꾸러기로 될것이다. 아,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허위적이고 어디까지 진실인가? 이 몇몇해를  다시는 못찾을 청춘과 순결을 탕진했다. 돈을 번다고 출발한 이 길이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였음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처녀들이면 다 갖는 리상과 사랑과 행복과 배우고싶다는 욕망과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싶은 동경이 수많은 사나이들의 란폭한 발설속에서 요절해버리고 빈 껍데기육체에 정신적불구자가 되여진 지금 당장이라도 걷어치운다고 곤백번 다지다가도 그냥 버리지 못하고 관성 처럼 한 방향으로 몸을 내맡기고 있는 자기다. 그러면서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낯모를 남자애들이 자기의 더러운  행각을 꿰뚫 어보고 비웃는듯싶어 고개를 떨구곤 했다. 나무는 껍질로 살고 사람은 얼굴로 산다지 않았던가? 이전에도 이말의 뜻을 전혀 모른것은 아니다. 세상일은 무엇이나 인과보 응의 계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도리도 모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리령감과 뒹굴어먹을 때 그 모든 악과가 자기에게 무엇을 남길것인가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미색으로 바꾸어오는 청춘밥은 한평생 먹을수는 없는것이다. 속절없이 망가 져버린 젊음, 부끄럼없이 내번질 중년, 그 옛날 일본군의 위안부들처럼 생육능력도 없이 찌들어버린 육체를 주체할길 없는 로년, 그리고 드디어 받아안아야 할 허무와 후회, 그리고 죽음…그것은 지금 멋모르고 날뛰는 모든 나어린 매음녀들의 미래이고 귀속이 아니겠는가? 이제 남은 몇십년의 인생길을 사랑해줄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이 헝클어진 자기 그림자와 함께 걸어가야 할 자신을 생각하니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 보이지 않는 충격에 옥녀는 몸서리쳐지고 정신이 아찔해났다. 멋지게 꾸미고 다니던 폭포같이 흘러내린 머리도 되는대로 내버려둔채였고 눈은 초점을 잃고있었다. 모진 세월도 천성적인 그녀의 아름다움을 얼굴과 몸매에서 아직 빼앗아가지 못했지만 순결과 청신함을 잃은 녀자의 아름다움이란 서리내린뒤의 배추밭풍경과 같다고 할가? 스스로 청춘미를 랑비한 자신은 그야말로 무덤속에 유령 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최후의 치명적강타를 안긴것은 홍희와의 기우였다. 재수없던 그날 호텔방에서 한참 교역을 하던중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잡히여 류치장에 갇혔다. 처음 당하는 일도 아니여서 홍희가 벌금돈을 가져오면 곧 풀려날 일이였다. 그런데 심문실에서 정혜는 실성하고 말았다. 심문을 받기시작하는 순간 벼락치듯이 책상을 쾅 치는 소리에 와뜰 놀라서 얼굴을 드는 순간 그만 기절하고만것이다. 그를 심문한 경찰이 어찌하여 리홍이가 된단말인가? 리홍이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식경이나 정혜를 노려보다가 아무말도 없이 나가 버렸다. 하지만 정혜의 맞은켠에 의연히 분노와 실망과 련민의 정으로 범벅이되여진 리홍의 한쌍의 누이 허궁 달려있는것 같았다. 홍희가 벌금을 냈는지 아니면 리홍이가 뒤문을 열어주었는지 아무튼 하루밤 철창속에서 구을다가 풀려나왔다. 그날밤 배불뚝이50대의 사내의 흐릿한 눈길이 그의 라체를 란사할 때 자신이 그 이상으로 비참해질수가 없다고 이를 사려물었다. 그러나 결국 한장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밤을 함께 해주고말았던것이다. 피임투도 거절하고 마구 덤벼치며 개처럼 들어붙던 그 남방사내와 잠자리를 같이한후부터 옥녀는 까닭없이 정신이 흐리멍텅해지면서 열이 나고 온 몸이 참을수 없을정도로 지긋지긋해 났다. 홍희가 그래도 경험이 있어서 동업녀들이 단골로 다니는 어느 개체병원에 끌고가서 검사를 받아보게 했다. 아니나다를가 마침내 걸리고야 만것이다. 정혜는 자신을 철저히 포기한 상태로 육체적고통과 정신적인 허탈속에서 몸부림 쳤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해쓱해 다녔다. 그녀는 지독한 악심을 품고 힘자라는껏 남자들을 끌어들였다. 생각대로 한다면 자기를 짓밟은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전염시켜 고통과 후회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게 하고싶었다. 그는 혼자 중얼거리다 동화속의 마녀처럼 모골이 속연해지도록 깔깔 웃어대기도 했다.(하하하…내가 머저리였어, 누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수 있단말인가? 아니야, 내 자신이 음기에 물젖고 정욕에 습관되여 좋아한게 아니란 말인가? 결국 내게 남은건 자기 멸시와 절망밖에 없어, 헌 발싸개, 공동변소라는 치욕과 세상사람들의 기시만 남았어, 내게 정들었다고 씨벌이던 남자새끼들도 쓴외보듯 할것이다…어어엉, 난 어째? 어떻게 살아야 해?) 그랬다. 그녀가 오늘 받아안은것은 허무. 삶의 커다란 허무와 깊은 한의 구덩이 였다. 거기에 들어섰을 때 이미 삶에 종지부가 찍혀진것과 같다. 그 모든 부산하고 황당했던 수많은 자질구레한 일들이 그를 못견디게 괴롭혔다. 병든 옥녀를  보살펴줄  사람은 어린 홍희뿐이였다. 그가 다시 정혜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진찰시켰더니 정신분렬증이 올 징표란다.     …어느 날 한밤중에 몸을 추스르고 일어선 옥녀는 오래간만에 몸단장을 곱게 하고나서 편지를 썼다.  ㅡ홍이야, 내가 지금 너의 이름을 그 때처럼 떳떳이 부를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가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너의 앞에 쓰디쓴 참회의 눈물을 머금고 이글을 쓴다. 네가 나를 미워하고 경멸해도 사실 난 자기를 깡그리 내버릴만큼 너를 사랑했다. 아니, 이제와서 보면 너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던것인지도 모르겠구나. 그게 어떤것 이였던간에 너는 지금의 나에게 저 《금빛야차》의 남주인공 처럼 분노의 구두발을 안길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될수 있다면 너의 그 모멸에 찬 말과 몰인정한 구두발을 탓하지 않겠다, 다만 나의 어리석음에 풍자적인 의미로 되고 응당한 마침표로 찍혀졌을뿐이라고 생각하고싶다. 너를 사랑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나의 지금의 심정을 너는 영원히 알수 없을것이다. 그 모진 수모도 견뎌내고 눈물도 삼켜온 나이지만 결국 자기학대로 체크할수밖에 없구나. 그 구지레한 인생극장에서 네가 나에게 살아가는 힘을 준다고 생각하며 용케도 버티여왔다. 그러나 그건 오늘에 와서 자기속임이 되였구나. 그러나 나중에 자기마저 기만하며 살아야 하는한 마음이 어떤것인지 넌 알고싶지도 않겠지? 독사의 혀바닥에 발린 침이 독이 있는줄은 누구나 다 알고있을거다. 그러나 난 그것을 마시며 살아왔다. 누구를 위해서였던지 지금와서는 나자신도  잘 모르겠다. 생활의 관성인지, 타성인지도 모르 겠다. 인젠 인생자체를 저주하며 인생을 살만한 리유와 오기마저 없구나. 내게 남은 것은 사랑하지 않는것, 아끼지 않는것뿐이겠지? …자기의 녀성을 싸구려 세방의 시렁우에 얹어놓고 백원짜리지페냄새가 나는 웃음으로 남자들을 꼬시며 하루하루 더 수습할 나위없이 망가져버릴 젊음, 때묻은 양말을 벗듯이 부끄러움모르고 속옷을 벗어부치고  남자의 가슴밑에 드러눕고 거짓 신음을 하고 간드러진 목소리로 달콤한 속삭임으로 음욕을 꼬드기면서 자기의 몸속에 정자를 쏟아넣게 하고 다른 사내가 반복하게 하는 그런 인생을 나는 살아 왔었다. 그렇게 썩은 내청춘의 생명을 누가 되찾아줄수 있겠니? 내가 겪어본 소위 문명한 인간들은 모두 제정신들이 아니다. 돈과 섹스, 이 두가지 광기에 자기를 혹사시키고 있다. 특히 돈이라는 이 광기는 더구나 사람을 경악하게 한다. 녀자는 돈에 웃고 섹스에 흐느끼고… 나는 후회하지만 너무 늦었다. 난 이길을 걷지 말아야 했다. 나에게도 나의 삶의 길이 있었지만 운명은 나를 희롱했다. 나는 불쌍한 녀자야, 나같은 녀자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하다못해 리해하여주고 동정해줄 남자가 있을가?  듀마의 소설 “동백꼿아가씨”를 나는 좋아했다. 비록 내가 그녀처럼 한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한 고상한 기녀는 아니지만 나는 그녀를 숭배했었다. 그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더라. 세상사람들은 해볕을 본 일이 없는 장님이나 자연의 조화된 주악을 못들어본 귀머거리나 마음에 있는 말을 해본 일이 없는 벙어리는 불쌍히 여길줄 알면서도 창피하다는 얼토당토않는 구실을 내걸고 이런 마음의 장님, 령혼의 귀머 거리, 량심의 벙어리는 동정하려하지 않는다. 하여 모진 고통은 불쌍한 그들을 미쳐 버리게 하고 마침내 선한것을 보아낼 능력도, 하느님의 말을 들을 능력도, 사랑이나 신앙의 순결한 말을 운운할 힘마저 다 잃게 한다고… 인생항로의 입구에다 꾸밈없이 두개의 패말을 세워놓고 그 하나에는 《순결의 길》, 다른 하나에는 《타락의 길》이라고 써놓고 선택하게 하는 따위로는 중국대지 에 만연된 매음문제가 해결되는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처럼 환경의 유혹을 받은 녀자들을 두번째 길로부터 첫번째 길로 이끌어주어야 하는것이라고… 나의 그리스 도는 어데 있을가? 네가 바로 내 그리스도가 되여주리라 믿고 이날 이때까지 목숨을 이어온거다. 그러나 인습은 에누리없구나. 그래서 나도 세상을 살고싶지 않다. 가장 완벽하게 이 구지레한 삶의 진탕길에서 빠져나가는 방법, 가장 간결하게 자기를 정리하는 방법은 목숨을 끊어버리는것이겠지? 나는 이 세상을 떠나야 내 령혼이 해탈될것이다. 그래, 세상사람들은 우리 같은 녀자들을 타락녀, 더러운 탕녀라고 침뱉을것이다. 그러나 더럽다는 탕녀들에게 빨려드는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니 웃기지 않니? 확실히 나는 매음으로 살아온 탕녀 이다. 허지만 그렇게 음탕하게 살아오면서도 사랑, 순수의 사랑을 갈망하였다고 말하면 넌 코웃음을 치겠지? 하긴 난 모든 남자들에게 환멸을 느낀지 오래다. 나는 뛸데없는 탕녀다. 그러나 나는 수백명의 남자를 겪으면서 나의 더러워진 이 육체보다 더욱 구지레한 세상을 읽었다. 타락은 그래 녀자들의 전리품이니? 나로서는 음탕한 남자들의 루추한 몰골을 형용할길이 없구나. 그런데 왜 질책은 녀자들의 몫이 되여야 하는지 알수 없구나. 그래 음탕의 표준이 무얼가? 남자들은 거개 색을 좋아할 뿐이지 음탕하지 않다고 나발불고 다니더라. 나는 비록 성적자극속에서 생리적쾌감을 느낄수 없는 병신녀가 되였지만 마음은 그냥 숙녀로 살고있으니 얼마 황당한 녀자이니? 나는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야 하는 가? 욕망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노없는 쪽배가 곧 나의 모습인줄 안다. 나도 한때는 자기만의 성지를 찾으려고 했었다. 예수가 성결한 구원의 손길을 뻗쳐주리라 생각하 며 열심히 기도했다. 나는 예수에게 진심으로 참회하면서 용서를 빌었지만 아무런 감동도 없는것 같더라. 어쩌면 예수님도 이 어지러운 세상을 아예 등져버렸는지… 우매속에서의 몸부림은 피어리고 눈물로 얼룩진 후퇴라는걸 나도 알고있다. 아, 이제 와서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니? 다만 이 세상에서 내 속심을 털어놓을 마지막 친인이 너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반갑지 않을 이 유언을 남기는것 이니 읽지 않아도 괜찮다. 혹시 홍희가 너에게 부쳐주지 않을수도 있고… 인의도덕은 모든 남자들이 입에 걸고 다니는 말이지? 사랑이란 간지러운 단어도 기실 진정한 의미를 담지 못하고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이 세상엔 오직 타락한 동물 의 맹목적이고 야만적인 성폭력만 남은거야. 남자들이 아무때나 음욕이 발작할때에는 인의도덕이란것이 구중천에서 기발처럼 펄럭거릴뿐인거야.  잘 살아라, 난 그냥 사랑하면서 가련다. 속죄가 없는 곳엔 용서도 없겠지? 홍이야!대답하기 싫으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 나는 무조건 너를 사랑하니까…너도 장차 이 음욕의 세상에서 자맥질하지 않는다고 장담못할거다. 안녕을 빈다. 내가 사랑했지만 사랑하지 못한 남자야!   홍희에게: 너에겐 긴말을 하지 않겠다. 너와는 너무나 많은 말을 해왔고 너는 나를 자기처 럼 잘 알고있으니 말이다. 이 될성부르지 못한 언니는 먼저 저 세상으로 가련다. 마지막으로 부끄러운 부탁하나 하자. 내 인생비극을 소설로 써다오. 결코 죽은 후의 변상적기념비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랑도, 도덕도 리기적인 향락의 저울 판에 오르고 성실한 삶의 터전이 날로 황페해가는 현실속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정조도 인간의 존엄도 길가의 구멍가게에서 사서 씹다가 뱉아버리는 눅거리껌처럼 여기고있는 우리 같은 처녀들에게 뒤골목의 비극을 적라라하게 조명해보임으로써 아직 오염되지 않은 처녀들의 인생행로에 어슴프레한 지시등이나마 되게 해주었으면 원이 없겠다…                                    미성   …밤차는 동으로 동으로 숨차게 내달린다. 그녀 자신이 속한 어느 별은 멀고 먼 하늘 어디에 숨어서 반짝이겠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별빛이 비쳐들 자리가 없다. 부끄 러운 몸이지만 아버지, 어머니의 령전에서 한바탕 통곡하며 가슴에 가득 엉킨 오열을 모조리 털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어린 홍희에게 또다시 충격을 주고싶지 않기도해서 서럽고 서러운 치욕의 귀향길에 올랐다. 아버지, 어머니의 체취가 남아있는 철남의 고향집가마목에서 따뜻하게 잠들었다가 유감없이 영별의 길을 떠나고 싶었던것이다. 침대차 맨 꼭대기에 두눈을 꼭 감고 누운 옥녀는 몇시간이고 아무런 미동도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오직 한가지 마음으로 죽음을 손짓하고 있었다. 렬차는 새벽으로 달리고 있다. 차창이 휘붐히 밝아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날이 활짝 밝았다. 이제 동녁에서 아침해가 이글거리며 솟을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의 태양은 바야흐로 생명의 지평선 저쪽으로 지고있다. 누가 켜놓은 록음기에서인지 애틋한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가사를 씹었다. 차표한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 예정된 시간표대로 떠나야 하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렬차에 몸을 실었다./ 사랑했지만 갈길이 달랐다… …손님에게 시달리고 아침 늦게야 숙소로 돌아와서 정혜의 유서를 읽은 홍희는 파출소에 있다는 리홍에게 유서를 부쳐보내고 천방지축 연길려객기에 올랐다. 무서운 예감대로 정혜는 리승필이가 사주었다는 아빠트의 침대우에서 고요히 잠들어있었다. 언제 죽었는지 마냥 평화롭게 잠든 천사의 모습이였다. 홍희는 그렇게 영영 잠들 어버린 그녀를 붙안고 몸부림쳤다. 그 언젠가는 자기도 이렇게 홀로 누워서 영영 잠들어벌수 있을것이다. ㅡ언니야! 바보처럼 이렇게 가면 무엇이 달라지는데. 불쌍한 언니야ㅡ 홍희가 아무리 불러도 한과 서러움으로 질식한 정혜는 대답이 없다. 그가 아무리 그녀의 시체를 실은 밀차를 붙잡고 싱개이질해도 정혜의 령혼은 이미 해탈을 위해 멀리멀리 가버린뒤다. 리홍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나갈때까지 화장터에 보관하라고 당부했다. 한이서린 정혜의 유령이 리홍이가 앉아오는 비행기의 주위에서 맴돌고있을것이다…                              2007년 2 월 28일 수    
15    문간방나그네 댓글:  조회:4442  추천:52  2008-01-30
문간방 나그네                                                                 최 균 선   1. 슬픈 그림자          불야성을 이룬 밤거리.     먹이를 찾아 산지사방으로 헤매는 불개미를 방불케하는 택시들과 자가용들이 큰 거리, 작은 골목들에 바글거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흐르는 자동차무리는 인간들의 욕망을 담은것이 아니랴, 눈이 시도록 내쏘는 헤드라이트불빛은 향락에 곤두선 혈안을 련상시키고 귀따가운 클랙슨소리는 (에라, 비켜라! 아니면 깔아죽일테 다!)하고 위협하는듯 해서 소름이 끼친다.     길가 량켠에 다닥다닥 붙여진 형형색색의 간판들에서 명멸하는 잡스러운 네온싸인은 너무너무 유혹적이다. 가령 도시의 생활권에서 소외된 농촌사람들이 번창가의 이런 풍경을 바라본다면 도시야말로 살맛이 나는 락원이라고 착각할수도 있으리라.     밤은 이제 바야흐로 노그라지려 하건만 잠들줄 모르는 소도시는 흥청거리고있다. 도시에서는 누가 잠들줄 모르는가? 택시 많고 식당 많고 다방 많고 노래방 많고 사우나 많고… 바늘가는데 실이 가듯이 눅거리 배동아가씨 많은것밖에 자랑할것 없이 그저 유흥업만 번창한 소비도시, 누군가는 연길의 밤은 몇시인가를 묻지 말라고 했더라만 세상만사 도는 내속을 겉모습 현란한것으로 가늠할수 있으랴! 빛좋은 개살구라는 말도 있지 아니하던가? 물론 초점이 빗나간 이런 시각은 어디까지나 실락자의 비탈린 마음에서 오는것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도시사람들은 하늘 믿고 땅을 파먹고 사는 촌사람들과는 달라서 사계절을 외면하고도 얼마든지 마음 편히 살아갈수 있지만 대자연은 가차없이 흥망성쇠의 섭리를 시사한다. 계절은 바뀌여 서풍이 쌀쌀한 휘파람을 불며 ≪서리지≫의 명함장을 산에 들에,  마을과  거리들에 날리는 늦가을이다. 풍성하던 수확도 끝나버 려 텅비고 여윈 가을은 한창 생활고에 허덕이는 나의 주인공, 남궁씨같은 사람에겐 서글프고 허무하고 황든 마음이 락옆처럼 정처없이 흩날리는 계절이다.     이 밤, 어느새 또 김이 빠져버린 자전거를 끌고 꿈길을 걸어가듯 지척지척 걸어가는 남궁씨의 어깨는 서리맞은 호박줄기처럼 처져서 그림자마저 후줄근해 보인다. 음울한 눈길로 밤의 향락에 푹 빠져든 락원의 도시를 바라보는 그의 우멍 해진 두눈에서는 분노와 절망에 찬 빛이 번뜩이고있었다. 공연히 심사가 뒤틀린다.     《어서 오세요》라는 호들갑스러운 간판을 내건 식당앞을 지나며 흘끔 눈길을 박으니 커다란 둥글상마다 넘치게 차려놓고 질탕거리는 사람들의 번들거리는 얼굴들이 보란듯이 부러움을 던져준다. 배속에 어디에서 꼬르륵 소리가 요란스럽다. 오늘도 점심을 건너 뛰다보니 텅 빈 위장이 거센 항의를 토해내는것이다. 역시 까풀만 남은 허영의 미성이라 할가? 친구가 저녁을 먹고 가라는것을 밥을 굶고 다니지는 않는다고 사절한것을 후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손이 본능적으로 안주머니에 들어갔다. 빨깍빨깍 하는 백원짜리 다섯장이 마음을 간지른다. (젠장, 참깨들깨 노는데 아주까리는 못논다더냐? 래일은 삼수갑산 가더라 도 띠고리를 확 풀어본다?) 이렇게 비장한 결단을 내리고 언감생심 식당문고리를 척 잡았지만 종시 발을 들여놓을수가 없었다. 돈도 돈이려니와 오늘내로 집세를 못내겠으면 당장 집을 내라던 주인집 아낙네의 눈총이 발목을 잡았기때문이다.           속담에 이르되 이가 너무 많으면 가렵지 않고 빚이 너무 많으면 대수롭지 않다고 고슴도치 외 걸머지듯 잔뜩 빚을 지고 숨어다니는 그는 웬만한 빚재촉에는 코방귀를 뀌며 다니지만도 집세만은 미루고 당기고 할 일이 아니였다. 련며칠을 사타구니에서 비파소리가 나도록 주리팔방했다. 사돈에 팔촌까지도 빼놓지 않고 찾아다녔지만 헛물만 켰다. 궁리하다 못해서 렴치불구하고 또 옛친구를 찾았다. 이번만은 안된 다는것을 동냥아치 떼쓰듯 해서 겨우 짜냈다. 친구가 아니였더면 어쩔번 했는가? (젠장, 떼질이 사촌보다 낫단 말은 참 잘한 말이여.)     남궁씨의 떼질에 녹아난 친구란 몇해전, 거리에서 우연하게 만난 중학교 동창이요 절친하기도 했던 고향친구이다. 모든것을 망각의 이끼속에 묻어버리는 무정세월이 무던히도 많이 흘렀건만 고향친구는 구정이 여일하게 반겼다. 설중송탄 이라 할지? 급시우라 할지? 때마침 잘 만났다. 랭방에서 보름이나 떨다가 석탄 살 돈을 구하려고 나섰던 길이였는데 운수좋게 로임족의 친구를 덜컥 만났으니 바쁘면 비벼댈 언덕이 생겨난것이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끼리라면 으례히 추억의 강을 거슬러 오르며 그립던 회포를 푸는게 상례건만 가련상을 지으며 돈소리부터 꺼내였다 친구는 군말없이 3백원을 척 내주었다. 눈물이 찔끔 나올번했다. 이래서 친구라는 게 좋은게 아니냐?!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이란 그 한순간에 가슴을 치는 감동의 짧은 여울에 불과한것이다. 꼭 갚는다고 약속했던 날자를 이붓애비 제삿날 미루듯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침내는 시간의 희석제에 진했던 감동도 무해지고 정작 돈을 갚을 때는  공돈이 나가는것 같아서 2백원만 돌려주고 수염을 쓱 씻고 말았다. 친구를 꿀떡 같이 빨아먹으려는 친구가 세상에 몹쓸 놈이라는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땀 흘리지 않고 붓대만 놀리는 친구의 한달 수입이 날품을 팔아 호구하는 자기에게  비하면 엄청난 부자인데 (그까짓쯤이야,) 하고 자기를 변명했다.     그러나 오늘, 허울 좋은 우정을 내들고 두번씩이나 돈비라리를  하자니 얼굴이 따가웠다. 렴치를 개에게 떼주지 않고는 도저히 못할 말이다. 손자 밥 떠먹고 천장을 쳐다보는격으로 시치미를 뚝 떼고 제귀에도 비린 소리를 구구하게 엮어댔다.    《어쩌겠니? 내 처지가 정말 딱하지 않니? 오늘내로 갚지 못하면 뛸데없이 한지에 나앉게 되였어, 도와다구! 환난지우라구 어려울 때 돕는게 친구라지 않니? 더군다나 우린 옛날 막역한 사이였지…》               《친구 좋아하구 돌아다니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 너도 알지? 물에 빠지면 주머니밖에 뜰게 없다면서도 무도장출입만은 잘하더구나, 그래, 속상하는데 서방질이나 하자는 심사냐? 너 지금 그게 뭐니? 젊었을 때는 건둥거리며 태평나그네 질 했다더니 세상이 휘딱 바뀐줄도 몰라? 적자생존이야! 흰둥이는 못말린다니까…》                               《야! 너두 반평생을 논밭에서 썩였다면서 촌놈의 고통을 몰라서 훈계냐? 말등공민의 처지를 너만큼은 잊지 않을줄 알았는데…》      《내가 개구리 올챙이 때 생각을 못한다 그 말이지? 동정심이 무얼 해결하는데? 그 문제가 아니지 않니? 문제는 어디에서나 어떻게 사느냐? 하는거다. 너 연길에 들어와서 근 20년을 해내싼게 도대체 뭐니? 하긴 주일마다 머리기름 바르고 폼을 내며 무도장에 다니던 너였으니까 내말이사 개방귀만 하겠지?》             《아니, 너 참 잘났다! 지자는 아는것을 말하고 나같은 촌뚜기는 즐거울것만 생각하는거다. 부귀는 재천이라더라만은. 이럼 됐니?》      《어쭈, 똥싼놈 와달랑 한다더니, 문구가 막 나오구, 그래 롱담 집어치고…내가 몇번이나 말했니? 별로 할 일도 없는 이 시내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지 말구 알맞춤한 과부나 하나 얻어가지고 고향가서 남새 심고 닭이랑 치면서 사는게 그래도 확실한 인생이라구, 잘되는 놈 불알이 아홉쪽이라구 하더라만 행운이란건 달에나 걸려 있는것이 아니겠어? 그래두 향촌엔 아직 풋풋한 인정이 있어 사람사는  냄새가  나더구나. 늘그막 고생은 곁에서도 눈뜨고 못봐내는거다.》             《그래, 나 지금 입이 열개라두 할 말이 없다만 너의 강의고 같은 설교를 듣고 앉을 경황이 없다. 그래, 달라는 동냥은 안주고 자루만 찢겠니? 개똥밭에도 이슬 내릴 날이 있다더라. 너무 그렇게 각박하게 말하지 말아라. 막내 딸이 타이로 갔다. 신세를 고칠날이 있을테니 그때 우리 다시 옛말 하며 술이나 마시자. 오늘은…》         《그래?! 그렇게 됐으면 여북 좋겠니? 오뉴월 쇠불알 떨어지면 구워먹으려고 장작이나 지고 다니렴, 그건 희망사항으로나 적어두고 실제문제를 더 말해야겠다. 아까 너 할말이 없다고 했는데 없는게 아니라 부끄러워 말할수 없다고나 해, 시내에 들어온것부터 당초에 잘못이야, 흔히 도시진출이라는 말을 잘들 쓰더라만 그게 성공해서 재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하는 식후여담이거든, 안그래?》     《………》                                                                                                             《무작정 땅 팔고 집 팔고 솔가하여 시내로 들어와서 무슨 큰 일이나 해낼것처럼 하지만 성공한 사람이 몇이나 되니? 결국은 조선족들이 내버리고 떠난 땅에 한족들이 든든한 벽돌담을 둘러쌓고 아들딸 한구들씩 낳아 키우며 백년대계를 세우고…변명하려고 하지마, 잔뼈가 굳은 고향마저 잃고 부평같은 신세가 되는 사람들이 어찌 너                                                                   혼자이랴만은…제자리를 지켜낼줄 모르는 민족은 희망이 없는 민족이 아니겠니? 물론 너 나에게 다 해당되는 말이지만 말이다.》                                                      《야, 너를 누가 훈장님이 아니랄가봐 정치설교냐? 나 그런데 흥미없다. 지금 내게 급한 정치는 돈이다. 그리구 너는 나를 남이 장보러 간다고 하니 거름지고 나서는 그런 얼뜨기로 아는데 내 비록 밑바닥 인생을 살았지만은 나도 자기 인생에 선택의 권리가 있는거 아니겠니? 이 남궁은 공부는 썩 못했지만 농촌에서 꼬브랑 령감으로 늙어빠질 그런 체격이 아니야, 나 정말 농촌에서 못살겠더라. 하루를 살 아도 문화생활이랑 하다가 죽어야지.》    《…》 《너는 지금 너렁청한 아빠트에서 서재까지 갖추어놓고 컴퓨터로 소설이랑 쓴다고 셈평좋게 말하고 있다만 제길할, 그래 이 시내에서 살 씨종자가 따로 있다더냐? 흥, 모두 얼마나 잘났는데 못나게 놀고 꼴불견이면 너나 없이 촌스럽다느니, 어쩌느니 하고 당나발은 잘들 불더라만 뿌리를 캐고 보면 이 중국땅에서 종조하내비 촌놈이 아닌게 몇놈이 되관대? 산 좋고 물 맑은 내 고향이 그립소, 몾있겠소 하구 무병신음같은 노래를 들을때는 나 원 코가 시굴어서, 농촌이 좋다면 왜 호구떼가지고 가서 사는 놈은 없니?》 마음은 후더웠으나 성깔이 대쪽같고 입이 칼날인 친구가 마구 정통을 찌르니 열집이 벌컥 뒤집혀 련주포를 내쏘았다. 《그래, 씨종자가 따로 없다는 네말은 맞다. 그러나 사람은 다 제설자리, 앉을자리가 있는게 아니겠는가? 아니면 악착스레 모지름을 써서 차지하거나, 그리구 말이야 바른대루 얻어살이를 하는 처지에 무도장이나 다니면서 허줄한 노친네들의 덕에 흥청거리는게 네가 추구하는 문화생활이냐? 문화생활 좋아하구 자빠졌네. 촌년이 늦바람 나면 속곳밑에 단추 단다더니 네가 그꼴이구나…》 《사람은 다 제잘난 멋에 산다구, 남이야 똥뒤간에서 낚시질 하거나 말거나…》 《이제라도 돌아가거라. 도시라는게 꼭 선택된 사람들만 사는건 아니지만 현실은 외면하면 안된다. 중국실정에서는 농민들이 도시에 들어와도 이방인이야, 말하자면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지, 너두 알고 있는 문씨처럼 살면 몰라도…십여년을 하루같이 끈덕지게 자전거수리를 하더니 이젠 집을 두채나 사놓고 살지 않니? 어떤 일을 하는가가 중요한게 아니야, 어디 가서나 자기가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제일 불행한거다. 그리구 존재의 리유마저 없는거구…》   할 말이 없으면 두두벌거리거나 한다고 친구앞에서 철저히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억지로 추켜세우려고 그냥 뻗대였다. 친구가 혹 삐져서 선심을 걷어들이면 어쩌나 싶어 거센 숨을 몰아쉬며 고패치는 감정에 제동을 걸려고 애썼지만 아직 살아있는 오기 하나 믿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그인지라 말문을 닫히지 못했다.  《돼지는 주둥이로 앞만 뚜지고 닭은 발로 뒤만 헤친다고 다들 사는 방법이 있는거다. 하긴 네말처럼 밥줄 한가지 단단히 잡아야 하는건데…젠장, 이제 부러워한들 쓴 죽이 밥이 되겠나? 그나저나 너 피나는데 소금만 뿌리지 말고 내 부탁을 좀… 대신 내 인생체험을 말해줄게, 좋은 소설감이 될게다.》        《자식, 갖잖은 얘기로 빚을 뭉때버리자구? 보자보자 하니 너 정말 렴치가 쇠볼기짝이구나.》                       남궁씨는 자청해 놓고도 자기 행각이 너무 구지레해서 말할가 말가 주저주저하다가 마침내 털어놓았다. 정말 소설인물이나 되는 날엔 더구나 낯을 들고 다닐수 없겠지만 자기 위안삼아 그렇게라도 심리평형을 가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친구는 듣는지 마는지 그저 덤덤한 표정이다. 실망했다. 이미 엎지른 물이 되였지만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랐다. 소위 인생체험이란 한마디로 재무지에 떨어진 두부처럼 덮어도 안되고 불어도 안되는 불결한 정사였으니 말이다.  끝내 돈은 얻어냈지만 마음이 몹시 찜찜했다. 아무튼 고향친구는 행운아라 말할수 있었다. 그때 친구는 홀어머니 손에서 자라서인지 정에 약해있었고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그만큼 의리도 무섭게 지키는 대바른 애였다. 가정형편이 말이 아니여서 늘 점심밥 못싸고 다니던 그에게 남궁씨가 점심밥을 갈라주었다. 아버지가 대대정미소에서 일하다보니 점심밥을 넉넉히 싸가지고 다닐수 있었던것이다. 그때 그 점심밥에 담긴 우정때문에 오늘 처지가 뒤바뀌여도 구정이 여일하게 따스한 마음을 열어주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고마운 친구를 오늘 또 홀려먹은것이다. 이로써 옛우정은 철저히 찢어진것이리라.                                           세상이 정말 좋긴 좋다. 자기처럼 농토에 묻혀 인생을 썩이는줄 알았던 그가, 출신때문에 서른 살 넘도록 장가도 못가고 문화혁명 10년 동안 줄곧 사람대접을 못받으며 산다던 친구가 어디서 어떻게 대운이 텄는지 지금은 사범학원의 부교 수님으로 되여 계신다. 아무튼 고향친구는 행운아라 할수 있다. 파란곡절을 겪은 친구가 잘 떴으면 누구보다 기뻐해야 도리인데 오히려 질투를 느끼는 내 심보는 얼마나 고약하냐? 내사 사촌이 기와집 지어도 배가 아파할 놈이로구나!  사나이들 사이의 참된 우의와 감정은 인격적으로 서로 정복하는 기초우에서 이루어지고 대방에게 한번씩 정복될 때마다 이러한 우의와 감정은 더욱 두터워지고 공고해진다. 이것은 사상에 대한 정복이며 인격과 힘에 대한 정복이다. 그러나 남궁씨는 이런 높은 차원의 우정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있었고 또 알수도 없었다…                 식당앞에 줄느런히 세워진 호화형 승용차들이 가로등 불빛아래 보란듯이 번쩍번쩍 광택을 뿜고있다. 시에미 역정에 개배때기 찬다고 남궁씨는 걸찍한 가래를 탁 뱉고는 밤도깨비 씨나락 까는소리로 (제밀할것, 어떤 놈들은 고급승용차 타고 다니며 질탕거리는데 요놈의 팔자는 어디서부터 배탈렸기에 후반생을 늘 근심과 걱정에 체하여 딸국질 하며 사는거냐?)하고 뇌까렸다.                     못살면 조상을 탓한다고 남궁씨는 이밤도 언녕 백골이 진토가 되였을 부모들을 원망해 본다. 왜 이리도 살고픈 도시에 낳아주시지 못하고 농토에 태줄을 묻어주었단 말인가? 서러운 밤나그네 하늘을 우러러 개탄해도 싸늘한 밤바람만 별들을 스치고 간다. 얼기설기한 전선줄 사이로 보이는 별들이 여름밤 개똥벌레처럼 느껴졌다.   2. 실락원의 밤                                       그는 본능처럼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500원! 갑부들에겐 하루 밤, 술소비로도 어방없지만 그에게는 거금이다. 인격과 량심을 뒤로 돌려놓고 얻은 비정한 돈이지만 우선 바쁜 대목을 열어서 숨이 조금 나온다. 아까 인격을 들먹거렸을 때 인격하나 잘 세웠군, 하고 비양거리던 친구의 말이 아직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었으나 동냥중이 시주의 말씨 탁한걸 나무랄 경황니 있을것인가?  남궁씨는 걸음을 재우쳤다. 빵구난 자전거가 애물이다. 헐다못해 어디 절그럭 거리지 않는데가 없지만 그에게는 항우의 오추마같은 소중한 기물이요 20년 남아 정든 님들을 뒤에 싣고 무도장으로 질주하며 동고동락한 자가용이다. 짐받이에는 그녀들의 체취가 아직 력력하다. 그래서 더구나 못버린다. 다닥다닥 기워도 비단치마 라고 적어도 옛날 영구패다. 대대기업의 회계로 있을 때 마을에서 맨처음 갖추어 선망의 눈길을 받던 력사가 어제런듯 싶다.         간신히 마을에 들어선 그는 집에 들어가 잠간 숨을 돌릴가 하다가 선자리로 주인집 문을 떼였다. 말상같은 아낙네가 아래턱을 잔뜩 빼물고 곱지 않게 할기죽거 린다. 성미같아선 구두발로 콱 내지르고 싶었다. 용케도 쌓아가고 있는 인내의 돌각 담에서 분노가 부서지여 부실부실 떨어졌다. 속으로는 죽일년을 외우면서도 축축한 웃음을 질질 흘리며 너스레 한마당 떨어댔다. 《아주머니, 그렇게 보시지 말고 사람대접 한번 합시다요. 그러지 않아도 약속 대로 여기 400원을 가져와…마침 좋은 친구를 만나서 마련했습지요. 이 남궁이 요새 경기가 좋지 않아서…절대 한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성미지유. 허허…》  이렇게 얼렁뚱땅 삶아놓고 문간방으로 나왔지만 어찌나 추운지 엉뎅이를 붙이고 앉을 생각이 얼른 나지 않는다. 시골에서는 가마는 굶을때 있어도 아궁이는 굶을때가 없다는 말이 통하지만 자기처럼 째지게 가난한 시내살림에는 가마도 아궁이도 굶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래 불맛을 보지 못한 구들은 정수리까지 다 찡 해나도록 랭기를 뽑아올린다. 깔만한것은 죄다 깔고 옷을 입은채로 이불을 덮고 누웠으나 어찌나 떨리는지 잠이란놈도 이 밤은 저만치 물러서서 말똥거리기만 한다. 더는 배겨내지 못하고 일어나 앉았다.               이불을 허리에 둘러쓰고 먹다 남은 술을 입안에 막 쏟아부었지만 오장륙부만 벌컥 뒤집힐뿐 속열이 나지 않는다. 차차 천정에 매달린 25촉짜리 전등이 핑글핑글 돌아갔지만 오한은 여전히 말려지지 않는다.찬술이 오히려 랭기를 청하는가보다.  무슨 수를 대야 했다. 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시내 변두리마을은 칠흑같은 어둠속에 잠들어 있었다. 쓸쓸한 마가을 밤바람만이 잠들줄 모르고 인간세상의 희노애락을 어디론가 실어나른다. 죽은 사람의 얼굴같은 쪼각달은 차거운 빛을 희미하게 뿌려줄뿐 무겁게 드리운 밤의 장막을 꿰뚫지 못하고있다. 총총한 별들도 반주검이 된 달을 옹위하고 눈을 깜박이고있다. 공기는 쌀쌀하고 밤은 쓸쓸하다. 뉘집 허간에 불이라도 콱 질러놓고 쬐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는 도적괭이처럼 살금살금 골목길을 에돌아서 길가 석탄부의 석탄더미에 다가가 잡담제하고 큼직한 석탄덩이를 비닐주머니에 넣어 메고는 날잡아라 장달음을 쳤다. 서둘러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바싹 다가앉으니 숨이 좀 나왔다. (후─ 이제 살았네!) 쌀주머니를 거꾸로 털어 가마에 쏟고 물을 부었다. 단김이 치밀며 가마뚜껑 덜렁거리는 소리가 그렇게 기분좋게 들릴수가 없었다.     밥이 다 되자 찬장을 뒤졌으나 간장뿐이였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다. 아무렴, 배고플 때 먹는 밥이 별식이여늘, 그 많은 밥을 게 눈 감추듯 후딱 먹어버렸다. 누릉지까지 긁어서 말끔히 먹고나서야  똥배가 두둑해졌다. 독한 마라초를 한대 두둑이 말아물고 따뜻해진 가마목에 두다리를 쭉 뻗고 누우니 천석부자가 부럽지 않다. 옳지 않으랴! 세상이 아무리 넓다한들 자기가 눕는 곳은 석자 넓이요 쌀이 만석이라도 하루 먹는것은 세끼다.  배불리고 뜨시한 구들에 누우면 녀자생각이 난다더니 얼마전에 떠나간 오상댁이 못견디게 그리워졌다. 탐탁한 몸집에 바탕이 워낙 좋아서 화장을 요란하게 하지 않아도 눈길을 끌던 얼굴이며 희한하게 호함지고 탄력도 댕댕해서 밤새껏 빨고 주물럭거려도 시들줄 모르던 하얀 젖통이며 녹초 된 그대로 스며들게 하던 그 따습하고 신비하던  미궁이며가 생생히 살아온다. 험악한 인생마당에서 산전수전 다겪은 아낙네답지 않게 심성도 부드러워 정나미 넘치던 오상댁은 그에게 있어서 만년의 삶, 그 자체였던것이다.    그녀는 워낙 연길태생인데 어릴 때 고아로 되다보니 여기저기로 굴러다니며 천덕꾸러기로 자라다가 열여덟살 잡던 해에 오상의 어느 농촌총각에게 시집을 갔단다. 그녀보다 열한살이나 더 먹은 남편은 좀 팔부인데다가 무서운 술고래였단다. 그러다보니 평생을 세끼 밥 먹듯 매타작을 당하며 죽지 못해 살았단다. 그녀로 말하면 인생길이 가도록 심산이였고 고생이 장고생이였다.  쇠똥에 넘어져 개똥에 이부러진다더니 펀펀한 녀자로서 아이도   하나 낳아보지 못했다. 실은 남자탓이였건만 오히려 돌계집이라고 구박당했다. 지지리도 못나게 굴던 남편이 끝내 술잔에 빠져죽어서야 제생각을 굴리며 사는 녀자로 되였으나 생각만 해도 신물나는 재난의 고장에서 옮겨앉을 마음도 없고 또 알맞는 자리도 없고해서 반겨줄 사람 하나 없는 고향이나마 고향을 찾아왔단다. 그러나 나오고 보니 혈혈단신인 그녀에게는 연변도 하냥 타향이였다. 그 동안 인심후덥던 고장에서 경상도아낙이 다 되여진 그녀에게는 인정 하나 야박하기로 이를데 없는 연변이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남궁씨에게는 하늘이 이 불행한 녀자를 점지하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인생살이에는 락제생이였지만 녀자복만은 타고났다고 해야 하리라. 오상댁은 다섯번째로 만난 녀자이다. 그래서 남궁씨는 녀자문제에 들어가서는 줄곧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3. 석양의 로맨스   오상댁은 남궁씨가 가다오다 만난 녀자이긴 해도 진정으로 뜨거운 정애를 쏟아부으며 만년의 행복을 기탁한 녀자였다. 그러나 본처를 잃은후 이러저러하게 인연을 맺은 녀인들과 오래 살지 못한것처럼 오상댁과도 오래 살지 못하고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녀자복은 있되 부나비의 정사같은 그러루한 연분이였던가 보다.  서글픈 이 밤, 그리움속에 불러보아도 오상댁은 올길이 묘연한데 하순달만 뙤창에 매달려 늙은 홀애비가 꼬부리고 누운 처절한 모습을 기웃이 들여다 볼뿐이다. 스스로 취생몽사 속절없는 자기 인생일사가 눈물겨웁도록 애처롭다. 마가을 긴 긴 밤은 지샐줄 모르는데 차거운 베개가에 꿈은 어이 아니오고 구지레한 추억만 감돌아 드는지…  오상댁을 만나던 일이 영화장면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그 날은 무도장도 시들해져서 공원다리께 정자가에 나앉아 소풍겸 사람구경을 하였다. 벼라별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다. 촌에서 들어온 구직자도 있고 실업당하고도 빈둥거리는 유한자도 있다. 퇴직하고 소일하느라 나와앉은 복받은자도 있었고 형형색색의 룸펜들도 있었다. 그네들이 하는 짓거리에서 밑바닥인생의 축도를 보는듯 싶어져 제설음에 몰래 한숨은 삼켰지만 왁자지껄하는 그속에서 무엇을 건져낼 생각은 없고 그저 우울과 고독을 쫓아보내고 싶을뿐이였다.  단벌옷에 넥타이 두개, 알량한 신사이지만 닭무리에 봉황만큼은 이목을 끌수 있었다. 워낙 허리가 늘씬한데다 이목구비가 준수해서 집 한칸 없이 삼륜차나 밟아 근근득실하는 문간방나그네로 볼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젊어서 한때는 소설책이랑  읽어서 아는것도 꽤 있었고 도시물도 먹을만큼 먹어서 행동거지가 점잖았다. 거기에 말주변까지 좋아서 옛날 문구랑 속담이랑 써가며 말할라치면 무도장에서 제노라  코대를 세우는 멋쟁이 노친네들마저 잘 보아줄만큼 인기있었다.          뜨내기 연길사람이 되여서부터 무도귀신이 접했는지 주일날마다 무도장에 가지 않고는 오금이 쑤셔나하는 개근생이요 춤 한가지는 정통해서 춤잘추는 남궁선생이라면 모르는 노친네들이 거의 없다싶이 되여있다. 그만큼 안면도 넓혔고 처세술도 닦았다. 그렇게 미치도록 도시에 정들어서 죽어도 연길귀신이 되려는 그였다. 하건만 도시는 그를 종시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멋쟁이 남궁씨가 뺀 낫자루같이 한가롭게 앉았노라니 흘끔거리는 녀자들이 더러 있었다. 별의별 녀자들이 다있다. 혹 일거리나 있을가 해서 나와앉았다가는 함께 들놀이나 가자고 청하는 나그네가 있으면 기다린듯이 따라가서는 점심 한끼를 얻어먹고 마음이 내키면 아무나 묻어가서 몸을 푸는것도 서슴치않는 나사가 풀린 녀자들이 푸술했다.  남궁씨가 별로 마음이 끌리는 녀자도 없고해서 심드렁해 있는데 멋을 잔뜩 낸 한 사내가 녀자들이 몰켜앉은데로 스적스적 다가오더니 넉살좋게 이기죽거린다.     《아이구, 귀여운 녀사님들 이렇게 멋대가리 없이 앉아있어야 되겠습니까? 저기 공원에 좋은 자리를 마련했는데 가서 즐거운 판을 벌리지 않겠나요? 신사들만 모였는데 순정이 깨질 걱정들랑 마시고 날래들 가보시지유, 공짜로 오찬도 하고 닐리리, 지화자 춤도 한바탕 추면서 이 좋은 날 마음껏 흥청거려 봅시다그려.》 《어찔가? 우리 가볼까? 난 아침도 안먹고 나와서 배가 촐촐한데 술이나 얼근히 먹고 실컷 풀어져 보잔말이, 양?》  모이를 만난 비둘기처럼 구구하던 녀자들이 그 남자를 옹위하고 우르르 가버리자 자리는 휑뎅그레해졌다. 더 앉아있을 멋도 없고해서 일어서려다가 얼결에 저쪽 버드나무 그늘밑에 혼자 외로이 앉아서 시름겨운 얼굴로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요지부동의 녀자에게 눈길이 박혔다. 마치 실넋한 사람같은 그런 모습이 너무나 애절해 보여서 저도 모르게 자꾸 눈길이 끌리던 녀자였다. 그는 담배를 붙여물고 은근히 살펴보았다. 차림새는 깔끔했으나 옷은 류행에 떨어진 한물 낡은것이였다. 첫눈에 벌써 시골에서 금방 올라온 양순하고 어리무던한 녀자라는게 알렸다. 그러나 연지곤지를 찍어바른 양걸쟁이년들처럼 요란스레 멋을 부리고 다니는 무도장의 아낙네들에게서는 느껴볼수 없는 붙임성과 미더움을 안겨주는 무척 참한 중년녀자였다. 마음이 확 끌렸다. 두꺼비 고니고기 먹을 생각을 하는격인줄 알면서도 (제장, 밑져야 본전이지.)하고 마음 다잡고 기름종지를 본 도둑괭이처럼 소리없이 다가갔다. 녀자가 앉은 걸상에 슬쩍 엉뎅이를 붙이며 아닌보살했다. 《여기 함께 앉아도 실례되지야 않겠지요?》 《오고 가는 사람덜이 마음 내키면 다들 앉는뎁쇼, 뭐 지의 혼자 걸상인가유? 어서 앉으이소.》 녀자는 참 별난 나그네가 다 있다고 불길하게 생각했는지 눈길도 돌리지 않고 몸만 약간 도사리면서 이쪽을 조금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찬바람이 쌩-할 정도는 아니였다. 그도 그럴것이, 생면부지의 땅에서 낯선 사람들속에 끼인 녀자들이란 언제나 몸에 화살을 지니고 자신을 방비하는데 이는 녀자들의 본능이다. 녀자들의 그런 자기보호의식을 잘 알고있는지라 그쯤해서 찔끔 놀라 물러설 남궁씨가 아니다. 《아참, 오늘 날씨 하나 사람을 녹여주는구만요. 우리 나이에사  뭐, 소나 말값입니까? 알구 지냅시다. 허허…알구지나면 곧 구면이 되는거지요. 잘 모르긴 하겠지만 고독하신 분같군요. 과부가 과부의 설음을 안다했거니와 동병상린이라는 말두 있지요. 나두 눈물 나게 외로운 사람입니다. 오늘 좋은 만남을 위해 내가 한턱 내지유.》  낯선 남자가 자꾸 지분대도 녀자는 피할 마음은 없는듯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사람은 때로는 머리와 마음이 자가당착에 빠질때가 있다. 이를테면 머리는 생각하는데 마음이 잘 접수하지 않고 반대로 마음은 접수하는데 생각이 그러지 못하게 하는것이다. 남궁씨는 지금 녀자가 가능하게 이런 경우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더구나  은근살짝 달라붙었다. 아닌게 아니라 진퇴유곡에 빠져 허우적이고 있는 녀자는 지금 막 아무에게나 매달려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였다.  그러나 아직 경계심을 채 풀지 못하고 가끔씩 이쪽을 건너다보는 녀자의 색이 바랜 검은 두 눈에서 흘러가버린 세월의 연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찌보면 무언가 호소하는것 같기도 하고 기대하는것 같기도  했다. 남궁씨는 눈썰미가 있었다. 적어도 질색하는 표정은 아니여서 용기가 났다. 풍류에 이골이 튼 남자들은 사냥물을 잘못 보는 경우가 극히 적은 법이다. 앞에서 얘기해서 알겠지만 이 녀자가 바로 훗날에 남궁씨와 동거하게 된 오상댁이다.  고향이라고 허위단심 찾아온 그녀를 옛고향은 처음부터 곤궁속에 빠뜨렸다. 세맡은 집에 도적이 들어서 씻은듯이 털리다보니 오도가도 못하게 된것이다. 녀자가 지금 한창 이겨내기 어려운 어떤 불행속에 허덕이고 있다는것을 구름 낀 얼굴에서 읽어낼수 있었다. 절망의 벼랑끝에 나선 녀자를 구하는데는 따스한 동정의 손길이 첫째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위안해주면서 극히 사소한 일이나마 함께 풀어주려는 성의를 보여주는것이 어두운 마음의 골방을 비춰주는 해볕이 될수도 있다. 일단 녀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려 한다면 시작이 절반이요 그다음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가 없다.     인생도 막 저물어 가는 때에 마지막으로 의지할 든든한 지팽이가 있어야 했다. 이 녀자가 바로 적임자였다. 여태까지는 녀자를 생계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삼아 얻었고 녀자의 등에 엎혀 신세를 톡톡히 지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번만은 아니였다. 진정을 가지고 싶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무슨 말못할 사정이 있는것 같은데 혹시나 제가 도울수도 있지 않을가요? 모두들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 하지 않나요? 말씨를 들어보니 연변사람 아닌것 같구만요. 나는 이 연길 토배기여서 안면도 꽤 넓지요. 이 살판치는 인생마당에서 살다보면 무슨 일인들 없겠습니까? 길이 막힌줄 알고 주저앉았다가 힘을 내고 일어나서 한굽이 돌아서면 또 새마을이 보이는 법이죠.》  시집을 가서 이 날 이때까지 풀밭에 머리를 틀어박고 농사일만 하며 오상을 크게 벗어나보지 못한 순박하고 어질어빠진 녀자이지만   시내의 인정사정 모르고 아무나 밑을수 없다고 마음을 도사리면서도 옷차림이 대처사람 같게 의젓하고 얼굴도 악해보이지 않는 점잖은 남자가 빈말일지라도 가슴 따갑게 해주니 고마웠다. 사람고생을 무척 많이 한 녀자는 이성의 정과 너무 오래 담을 쌓고 있은데다 마음마저 잔뜩 엷어져있었던 탓일가, 남자가 끄는대로 저도모르게 마음의 문도 열어주어서 대화의 계주봉을 자연스럽게 주고받기 시작하였다. 《자, 점심때도 지났는데 우리 이러지 말고 가서 국수나 시원히 합시다. 그러니 어데 식사나 제대로 했겠소? 하늘이 무너져두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힘을 내오. 내가 있지 않소? 하도 어수선한 세상이라 어느 놈을 척척 믿겠소만 나만은 한번 믿어보소. 마음 맞고보면 이제 좋은 일이 생길지 누가 안다오?…》 언제 친했다고 인젠 제법 말투도 막 나온다. 하지만 낯모를 녀자에게 그렇듯 헌거롭게 나오는 유식하고 착한 령감님에게 점점 호감이 갔다. 더구나 며칠내로 좋은 일자리까지 알선해 주겠다는데 어찌 감지덕지하지 않으랴! 남궁씨는 그렇게 오상댁을 알게 되였고  끌다싶이 무도장에 데리고 가서 춤을 배워주면서 녀자의 마음까지 멋들어지게 리드해갔다. 샨데리야가 도깨비불처럼 껌벅이고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음악이 흐르는 무도홀에 난생 처음으로 나선 그녀는 그저 마음이 황홀하기만 했다. 은근하게 살짝 그러안고 차근하게도 배워주는 남자에게 거의 매달리다싶이 하면서 녀자는 몽경속에 잠겨들었다. 녀자의 마음이 잡혀진것을 확신한 남궁씨는 주머니를 싹 털어서 저녁까지 먹여주고 택시로 집에까지 바래주었다. 남궁씨가 장담하던대로 정말 사범학교 학생식당에 화식원자리를 마련해주자 녀자의 마음은 완전히 사로잡혔다. 믿고 살만한 남자라고 마음 지어먹었다. 나이가 엄청 틀리긴하지만 그리 늙어보이지 않고 아직 멋이 있었다. 아무튼 깨진 남비에 꿰맨 뚜껑이 아니냐? 죽어간 남편과는 질적으로 다른 남자여서 나이가 많다해도 오히려 마음고생 하지 않고 살수 있으면 더 무엇을 바라랴! 그랬다. 남편과 하루도 오손도손 재미나게 살아보지 못하고 그저 학대받고 살다보니 남자란 모두 우악스럽고 무섭다는 느낌밖에 없던 그녀는 나이 많은 남자가 매사에 자상하고 아량을 보여주어서 남자의 품이 얼마나 좋은가를 가슴으로 느꼈다. 령감과 동거하고 나서야 남녀가 한이불속에서 붙어잔다는것이 또 얼마나 달착지근한 일인가도 피부로 절감했다. 처음엔 그저 쉬쉬해진 령감이여서 성생활같은건 바라지도 않았다. 더구나 원래 남편에게서 그짓에 신물이 났던 그녀는 차라리 잘되였다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남자가 그녀의 녹쓸어버린 녀성까지 찾아줄줄이야! 령감은 오상댁을 탈바꿈시켰다. 녀자를 다루는 솜씨가 어찌나 좋았던지 아이를 한번 낳아보지 못한 그녀는 거의 밤마다 끈덕지게 탐닉해 들어오는 남성의 열기를 화끈하게 받아주며 단가마에 언빨래 녹듯이 녹아버리곤 했다. 그녀에게는 먼 장래같은건 아직 꿈밖의 일이였다. 이대로가 그냥 좋았다. 아무튼 둘이는 금슬이 찰떡같아서 서로 극진했다. 남궁씨는 녀자에게 완전히 엎어졌다.요행 얻은 학교의 야경군자리도 좀 하다가 때려치웠다. 젊은 안해와 밤을 함께 하지 못하는 일도 마음에 걸렸고 주일마다 자랑스러운 안해를 데리고 무도장에 드나들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보다는 야경으로 받는 300원으로는 시내살림을 하기가 턱없었다. 그렇다고 달리 돈을 벌 재간도 없었지만도.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늦깎이 삼륜차부이다. 잘만 하면 한달에 그 잘난 야경돈 두세배는 번다고들 했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줄 알지만 젊은 안해를 위해서라면 이제부터라도 진일, 마른 일 가릴것 없이 닥치는대로 할 작정이다. 창피할것도 없다. 이판사판이다. 그런데 삼륜차몰이도 제마음대로 하는것이 아니였다. 끼리끼리 제무리가 있고 지반이 있었다. 며칠은 멋도 모르고 아무데나 섰다가 그 길거리를 먼저 차지하고 있던 패들이 어데서 빌어먹던 령감태기가 함부로 끼여드는가고 행패질했다. 젊은 놈들에게 괄세받는것이 분해 몇마디 맞섰다가 하마트면 뭇매를 맞을번 했다. 그 다음부터는 아예 서산 갈가마귀 게발 물어던진듯 외톨이로 외진 골목만 찾아서 일감을 이삭주이 하였다. 비 오나 바람이 부나 그냥 나갔다. 날씨궂은 날엔 젊은패들이 뉘집 처마밑에서 트럼프나 치면서 노라리를 피우기에 일거리가 잘 차례졌다. 어떤 달엔 수입이 꽤 짭짤했다. 그렇게 발벗고 나서서 아글타글하는데 어느 날 녀자가 오상에 가서 뒤처리를 해놓고 오겠다며 떠났다. 갈때는 곧 돌아오마 하고 가더니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오상댁은 감감무소식이다. 처음부터 마음에 신발을 신고 있은 녀자였다면 남자의 마음속에 들어올 때도 그 신발을 벗지 않았을것이다. 그래서 나갈 때 찍은 그 발자국이 더 크고 뚜렷한지도 모른다. 아, 참으로 믿을수 없는것이 녀자들의 마음이던가?   4.랑만의 한페지                남궁씨도 젊어서는 꽤 잘 떠서 나갔다. 사람은 때론 살던 고장을 떠나면 운명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남궁씨가 중학을 졸업하던해 조상 3대로 살아오던 모아산아래 룡암을 떠나 연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광흥촌에 이주하였다. 그것은 운명의 대전환점이였다. 때마침  생산대에 회계질 할 사람이 없던차에 남궁씨가 움안에서 떡함지를 받은격으로 이사초년부터 벼슬하게 된것이다.    그때로부터 고양이 손도 빌려쓴다는 모내기철에도 자대나 돌리며 건둥거렸고 대채를 따라배우느라 밤낮으로 사원들을 몰아치던 그런 비상시국에도 목도채에 어깨가 부어난 일도 없었다. 학교때 수학을 잘했던 그는 햇내기 회계였지만 여러가지 장부를 깨끗하고 잽싸게 해제껴서 어느 해보다 총결도 일찌기 지었다. 그래서 온마을에 입을 둔 사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은근히 따르는 처녀들도 많아서 노상 어깨힘 팍팍 주며 다녔다. 몇해후, 남궁씨는 대대기업회계로 발탁되였다. 장가도 잘 들어서 가근방에 소문난 미인을 안해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미인은 예로부터  다병하다던가, 녀자는 첫아이를 낳은후 얻은 병이 고질이 되였는지  평생 앓음자랑을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만은 잘도 낳아서 보리밭무우 뽑듯이 내리내리 딸만 넷을 쏟아냈다. 벌금을 하더라도 아들 하나만 낳아주었으면 고마우련만 지레 겁이 나서 절육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남궁씨의 일신상 문제는 잘 풀려나가는 셈이였다. 입당도 어렵잖게 척 하고 얼마후엔 공사신용사 회계로 승진하였다. 승승장구 하려는판에 지랄같은 문화혁명이 발발했다. 그는 인생의 전성기라도 맞은듯 열성을 불태웠다. 판단이 빠르고 당차고 말도 청산류수인지라 인차 대대반란단 두목이 되여 서기고 주임이고 다 밀어내고 전대대를 호령질했다. 제노라 떵떵거리며 사노라니 정말 청운의 길이 무궁하게 열리는듯 싶었다.     그러다가 후에 차차 혁명형세가 우습게 번져지자 역시 판단력이 강했던 그인지라 일찌감치 손을 씻고 나앉고 그냥 대대기업에 둥지를 틀었다. 그때 만약 끝까지 개잡은 포수마냥  우줄렁거리기나 했더면   운동이 무해지고 나서 크게 곤욕을 치를번했다. 하도 출신이 좋았던 덕분에 당에서 제명당하고 말았을뿐이다. 그는 때때로 기억의 골방 깊숙이 묻어둔 영광의 력사를 돌이키면서 혼자 씁쓸히 입을 다셨다.      하긴 남궁씨의 운은 이미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할가 넷이나 되는 딸들을 키우느라 진이 다 빠져버린 안해는 약탕관에 진저리를 치다가 한창 나이에 그만 불귀객이 되고말았다. 옛말에 중년상처에 대들보 부러진다고 했다. 남궁씨의 후반생은 안해의 죽음으로부터 망태기가 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회계질 30년에 크게 사복을 채운건 없지만도 이런저런 먹을알은     있어서 남들보다 살림이 퍽 윤택했다. 그러나 안해가 오래 살지도 못하면서 남겨준 빚더미는 지고 일어설수 없도록 무거웠다. 금슬좋던 안해마저 없는 집에 마음이 붙을리 없다. 애들을 로모에게 맡겨두고 부업대를 따라 시내에 들어와 몇년을 얼렁뚱땅 굴러먹었다. 하지만  벌어먹고 살만한 아무 재간도 배운것이 없었다. 숙달한것이라면 다만 멋진 춤자세뿐이다. 자신이 아무런 재간도 없는것을 깨달은 사람은 행복하다지만 남궁씨에게는 그런 행복감도 있을리 없었다. 도거리농사가 시작되면서부터 호시절은 철저히 끝났다. 할 일이 더 없게 된 부업대가 절로 해산되였던것이다. 남들은 제밭을 가지고 농사짓게 되였다고 신명났지만 의기저상한 사람은 남궁씨다. 알건달 반평생에 농사일 깜깜부지라 밭갈이는 무엇으로 해야 할지? 륙상모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 농약은 어떤것을 쓰는지 백사가 다 막막했다.  첫해에 큰 사위의 지시를 받으며 농사라고 얼추 지어보았으나 그만이 유독 흉작이여서 마을에 두고두고 웃음거리만 남겼다. 농사를 지어먹고 산다는것 자체가 자기에게는 가망이 없는 허무한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아예 해마다 먹을 량식마대나 받기로 하고 논과 밭을 사위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한해 농사지은것을 밑천으로 북대촌에다 세집살림을 차렸다. 죽으나 사나 연길시내 귀신이 될 작정이였다.  먹을것이 있겠다 집이 있겠다 무슨 걱정이냐? 매일 무도장에나 다니며 건둥거렸다. 가지고 온 돈이 거지반 거덜이 나서야 일자리를 찾아나섰다. 산입에 거미줄치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한국사람이 공원에다 썰매장을 꾸려놓고 고용군을 쓰게 되여 거기서 일년사철을 집을 지켜주며 밥통을 얻었다. 먹고 자는 문제가 해결되자 주일마다 무도장에 나갔다.  운수 좋으면 엎어져도 팥죽함지에 코 빠진다고 꿩먹고 알먹기인 춤짝을 만났다. 얼굴이 감실감실하고 몸집이 암팡진 사십대 중반의 녀자는 서시장에서 초기부터 옷장사를 하여 먹고 살만큼 돈을 벌어둔 덕분에 이젠 이생을 향수한다며 몸을 내번지는 판이였다. 인물체격이 남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게 생겨서인지 령감쟁이들에게조차 소박을 당하던 자기를 그렇듯 곱게 보아주고 살뜰히도 대해주는 남자를 진정 고맙게 생각한 그녀는 철철이 옷도 사주고 집세도 보태주고 석탄을 사주기도 하면서 있는 정, 없는 정 폭폭 쏟아주었다. 남편이 장기 당뇨병환자여서 생과부나 다름없이 남모를 속을 곪아오다가 급기야는 남궁씨에게서 이성지합의 색다른 맛까지 보게 되자 늦바람에 곱새를 벗기게 된것이다. 복받은 남궁씨는 금노다지를 만났다고 웃음주머니를 흔들며 살았다. 그들은 부부처럼 장백산에도 오르고 경박호에 두 얼굴을 비쳐보기도 하면서 젊은 시절에 못다했던 랑만에 한껏 젖어들었다. 녀자는 환장을 해도 단단히 환장했다. 중이 고기맛 들이면 절에 빈대가 안남는다고 녀자가 그격이였다. 앓는 남편을 주원시켜버리고   호리원을 붙여놓은 그녀는 새남자와 그림자처럼 붙어다녔다. 열에 뜬 녀자를 안고 뒹굴때마다 세상에 이런 녀자도 있나싶어 매양  낮꿈을 꾸는것 같았다. 누구야 죽어가든 말든 살맛이 부쩍 났다. 이불속에서 죽자살자 할 때면 녀자는 눈길이 몽롱해져서 못하는 말이 없었다. 남편은 젊어서도 약골이라 한번도 자기를 만족시켜준 때가 없었노라고, 남자가 이렇게 좋을줄은 몰랐노라고 하면서 이제 혼자나면 같이 살겠노라 감질이 나서 몸을 떤다. 뚝배기보다 장맛이 났다고 녀자의 찰찰 넘치는 애교가 사람을 녹작지근하게 만들었다. 《여보, 나 정말 나쁜년이죠? 에이, 나 몰라,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든거야! 딸 하나 있는데 한국에 아주 시집을 갔어요. 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신세가 된단 말임다. 알겠슴다. 우리 어쩜 이렇게 늦게 만났지요? 우리 뿌리빠지게 진짜 사랑을 해봅시다. 예?!》  남궁씨는 그러는 녀자를 소용돌이치는 감동으로 포근히 감싸안고 밤새도록 보듬으며 혀를 깨물어 맹세했다. 그에게는 머리베여 메투리 삼아주어도 백골난망이 녀자였다. (우리 영원히 사랑합시다. 응?)  …그녀의 남편이 드디어 죽었다. 이제 《들깨! 문열어라!》하고 소리치면 전설속에 보배굴이 열리듯 행복의 보금자리가 바로 눈앞에 열리고 있는것이다. 그가 한창 달걀가리를 가리고 있는데 하루는 웬 젊은 녀자 둘이 찾아왔다. 그중 한녀자의 생김새가 어쩐지 심상찮은 예감을 안겨주었다. 아니나 다를가, 한국에 시집갔다는 딸이였다.  《아바이, 우리가 누군지 알만한가요? 어쩜 그리두 양심이라군 없나요? 한쪽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불쌍한 우리 아버지를 죽게한 살인자가 아바임다. 우리 가만 있을줄 압니까? 어디 두구 보기쇼.》     젊은 녀자가 입에서 뱀이 나오는지 구렝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막 행패부렸으나 사랑을 훔친 도적인 자기로서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죽여줍시사,) 하고 듣고만 있었다. 계집들이 짖어대는 소리는 귀청은 아프나 사람을 상하게 하지는 못한다. 무는 개는 짖지 않는 법이니까. 그런 으름장같은건 꿈에 네뚜리로 치더라도 태산같이   믿던 기둥이 부러지는듯 해서 눈앞이 캄캄해 났다.  사실 말이지 그 녀자의 보살핌이 없다면  어찌 살랴싶다. 밥상이 들어와서야 숟가락이 없어서는 안된다는걸 알았다면 얼마나 싱거운 사람이랴만 인생의 페허에 어쩌다 흥부박이 터져서 생계를 걱정할것 없이 무도장에나 다니며 만년을 늘어지게 살줄 알았는데 닭 쫓던 개 울 쳐다보는격이 되지 않았는가? 그렇게 벙어리 랭가슴을 앓고있는데 녀자에게서 꼭 만나자는 기별이 왔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렬녀춘향의 송죽같은 절개로 일부종사 님만  모시겠다고 만나자는줄 알았더니 웬걸, 딸을 따라서 한국에 나가게 되였다는 청천벽력이다.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나 아무튼  복바가지가 영영 깨여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같이 살자고 백두산 바위에 맹세까지 써놓고 이렇게 허무하게 갈라질줄은 저도 몰랐어유, 하루밤 자도 만리성을 쌓는다는데 일년남아 정을 통한 당신인데… 어쩌겠 슴까? 우리 이승의 인연이 여기서 끊어졌다고 여기고 좋게 갈라지자요. 이래저래 내가 나쁜 녀자가 되였지 뭡니까? 정말 가슴이 막 아픔니다. 내가 안심이 안되는건 남궁동무가 일자리도 없이 고생할 일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녀자가 하는 말은 어떤 돈 많은 과부가 있다는것이였다. 기분이 잡쳤지만 그 성의만은 눈물이 나게 고마웠다. 얼굴이 박색인 녀자는 모두 마음이 고운법인가, 참으로 정으로 빚어진 녀자였다.     《말은 고맙지만 내가 어찌 사랑하던 복희를 당장 잊고 다른 녀자를 만난다는 말이요? 나 이래도 진정한 남자란 말이요. 당신없이 나 못산단 말이요. 복희 가지 마오. 응?》  《나두 그걸 알기에 이렇게까지 나오는게 아임까? 당신의 말에 나두 눈물이 나옴다.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 잘 생각해 보세요. 그럼 내 말은 해놓고 가겠습니다. 내가 떠난후 인차 잊지 마요. 당신 오늘 밤 마지막으로 뜨겁게 사랑해주시겠죠?》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가 해볕처럼 따스하게 육신에 스며들면서 속으로부터 불기둥이 일어섰다. 누가 애욕은 젊은이들에게만 있다고 하는가? 언제나 그러하듯이 녀자가 남자의 그것이 맹렬히 돌진하도록 몸을 활짝 열어준다. 그들은 서로를 파고들며 행복의 마지막 순간을 영원으로 새기려는듯 애를 썼다. 감정이 절정에 다달으며 작은 방을 흔드는 녀자의 앓음소리는 한번 또 한번 남궁씨의 가슴에 오래오래 메아리쳤다. 녀자의 젖가슴은 남궁씨의 눈물로 즐벅하였다.  녀자는 그렇게 떠났다.남궁씨에게 있어서 그녀는 애인이기보다 은인이였다. 무도팬으로서 자기의 황금시절은 이미 지났다고 단정한 그는 은퇴하기로 마음먹고 곧 락향하였다. 그러나 이미 골수에 배긴 무도병을 지어먹은 마음으로 고친다는것은 생판 거짓말이다. 큰 딸네 가을걷이를 거들어주고 탈곡이 끝나자 마음이 알쏭달쏭 해진 남궁씨는 량식마대를 얻어가지고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연줄을 달아서 어느 보이라실에서 림시 일자리를 겨우 얻었지만   겨울을 채 나지도 못하고 멋없이 밀려났다. 힘을 못쓰는 폐물이라고 쑥덕거리던 동사자들의 등살에 못배기고 제쪽지에 물러났다. 나이가 원쑤였다.이젠 정말 갈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동면하는 곰처럼 집에만 박혀있을수 없었다. 겨울은 그를 위해 선심을 쓰지 않았다. 추위와 고독과 무위도식의 허무감이 못살게 굴었다. 해동이 되여봤대야 살길이 나지는건 아니였지만 무작정 새봄이 기다려졌다. 철이 들자 망녕드는가 아니면 망녕들자 철드는가? 그는 갑자기 인생이 무서워졌다. 외로운  밤마다 고달프기만한 자기 인생에 수수칼을 대며 가슴이 아파 울었다.  한달가도 그리 좋아하는 똥빼주 한병 시름놓고 사마시지 못하고 맨날 밥 한주걱에 딸집에서 가져온 김치나 널면서 산다는것이 막연한 일이였다. 생각다 못해 그녀가 소개하던 앉을뱅이 과부집에 찾아가서 면접시험을 받아보기로 작심했다. 그는 마치 첫선보러 가는 총각처럼 양복에 넥타이랑 매고 과부네집 문을 어줍게 노크했다. 왕후의 앞에 나선 노복처럼 얼굴을 붉히며 찾아온 사연을 아뢰고 처분을 기다리며 넌지시 건너다 보니 듣던바와는 다르게 끄는데가 있었다. 집안에 고히 들어앉아서 영양만 섭취해서인지 과히 밉지는 않은 얼굴이 보얗게 피여있었고 가로퍼진 유들유들한 몸뚱아리는 말 그대로 비게덩이였다. 내의가 담방 터질듯이 흉측스럽게 부풀어 오른 젖통은 보기만 해도 숨이 가쁘다. 어쩐지 몽니사나워보이는 녀자의 모습에서 생고기맛을 단단히 볼것같았다. 녀자는 선천적인 앉을뱅이는 아니였다. 골좌골신경통이 심해서 거동이 몹시 불편하다고 했다. 좋은 약은 다 써보았으나 움직이기 싫어해서 이미 나사가 녹이 쓸어버린 모양이였다. 어쨌거나  굶은 개 언똥을 마다하랴! 녀자가 좋다면 들어붙어 볼판이다. 녀자는 처음엔 나이가 많다고 시들해하다가 아직 낏낏해 보였던지 수락 했다. 그러나 조건부적이였다. 《우리 집에 부부처럼 같이 살기는 하지만 등기랑하고 사는 정식남편은 아니니까 경제권같은것을 아예 넘써보지 말아야 해요. 세집이 많은데 집들을 잘 관리하고 집세랑 제때에 받아들이는것이 그쪽에서 할 일입니다. 딸이 하나 있는데 장춘에서 공부하기에 집안일이랑도 다 해야 합니다. 생각이 있으면 오늘 당장 들어와도 됩니다. 다른건 차차 살면서 말하지요.》   5. 더부살이      이리하여 남궁씨는 남편도 아니요 머슴도 아니요 가옥관리원도 아닌 우스운 존재로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낮에는 집안팎의 마른 일 궂은 일 다해야 하는 녀자의 몸종이였지만 밤에는 엄연히 남편구실을 할수 있었다. 녀자는 사십대에 이르면 승냥이가 된다더니 끼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하지가 마비된것도 아니데다 살집까지 좋아서 어찌나 남색을 탐하는지 놀라웠다. 처음엔 (오냐, 이년! 덤벼라 돈도 안드는 서방질이야 못해줄가부냐?)하고 야성껏 짓뭉개주었다. 녀자는 남편이 죽은후 남자 맛을 못봤는지 좋아서 야단이다.     하긴 마나님처럼 자기를 부려먹는 년을 밤이라야 죽이고 살리고 할수 있다는 반발심으로 몸을 혹사시킬때도 있고 또 더없이 풍만한 육체에 마음껏 야성을 휘두를수도 있다는 웅성의 야욕으로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처음 몇달이였다. 녀자는 낮에는 자빠져 낮잠을 자고 밤이 되면 진드기처럼 들어붙어 진이 다빠지도록 물고늘어지는데는 장수가 없었다. 이불밑에서는 그토록 지저분하게 굴다가도 아침에 깨여나면 또 하루 잔소리의 일과가 시작되는데 진짜 마녀로 되였다.     그런건 그저 씨암캐가 캥캥 거리거니 하고 마이동풍으로 여기면  되는데 이건 아주 인격마저 상실당하고 살아야 하는데는 눈물이 나게 슬픈 일이 아닐수 없다. 처음부터 금주령이 내려서 술맛을 못본지가 얼마인지 모른다. 담배돈도 싸우듯 해서야 근들이 초담배를 얼마간씩 사서 피울수 있었다.      남자가 집안을 맴돌며 일하자면 끝이 없는 노릇이다. 때시걱을 시중들어야 했고 장을 보아와야 했다. 시시껄렁하게 녀자의 팬티마저 씻어야 하는 고역이 진저리 처져서 한두마디 구시렁거리면 입버릇처럼 축객령이다. 실은 남자가 차차 밤일에 게으름을 피워서 불만이던차  녀자는 심술이 나있었다. 그러면 남궁씨도 배장을 부려 등을 돌리고 자는날엔 더구나 날벼락이다. 《뭘 잘하는게 있다구 잔소리야? 잔소리는, 제구실도 못하면서 뉘덕에 더운밥 쳐먹는데? 싫으면 왜 나가지 못해? 공먹고 공입으니까  너무 좋아서 흥타령이냐? 무슨 렬감태기가 그렇게 생겨먹었어…》  녀편네는 이젠  말도 마구 해댄다. 참고 참았던 분노가 화산처럼 터졌다. 욕이라면 뉘게 짝지지 않는 그도 맞불질 하면 볼만했다. 《야, 주리를 틀어도 씨원찮을 개쌍년아! 그 주동이는 그래  입이 아니고 똥구녕 이냐? 그 더러운 돈이 좀 있다고 사람을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거냐? 이 발정난 씨암퇘지같은 년아, 밑구녕에 남포나 콱 터칠라, 에익, 씨팔 개년아, 제살이 아프면 남의 살도 아픈줄 아는게 사람이지 네년도 다 계집이냐? 이년!》  녀자도 걸작이다. 《에라, 이 무랄같은 놈팽이야, 네 아가리는 대체 뭐냐? 누운소 똥나오듯 더러운 말은 다 네입에서 나오는게 아니냐? 뭐, 발정난 뭬라구? 옳다. 어디 해봐! 해보래두, 맥살두 못추는 늙은 수캐같은게 나발불구 있네. 바가지에 물 떠놓고 좀 들여다 봐! 빌어먹는 주제에 매화타령하구 자빠졌네. 오구가구 할데 없다구 하길래 받아주었더니 에구,내가 눈이 멀었지, 나 못살아, 못산다구 …》  녀자는 이렇게 소뿔이 빠지게 싸우고는 하루 넘기지 못하고 언제 싸웠냐는듯 콩마대같이 육중한 몸뚱이로 남자를 올라타고 앉아서는  씩씩거린다. 그럴 때는 정말 울지도 웃지도 못한다. 남녀가 기분나면 무슨 지랄인들 못하랴만 년이 하는 짓거리가 흉측하기만 하다. 어떤 날엔 마음먹고 잘 해주면 녀자는 속밸이라도 빼줄듯 능청을 떤다. (아! 너무너무 좋다잉, 나 이러다가 령감을 진짜 사랑하게되면 어쩌지? 령감님 정말 대단해 그냥 이렇게 해줄거지? 으응,) 이럴때면 남궁씨는 환각에 빠진다. 벼르던 말을 꺼낸다. 《여보, 나두 당신이 섹시해서 정말 좋아, 우리 이렇게 명분없이 살게 아니라 버젓이 등기랑 하구 보란듯이 살아보자구.》  그러나 또 오산이다. 녀자는 한창 열을 올리던 정사도 네미 덜머리다. 송충이를 떨어버리듯 남자를 밀쳐내고 홱 돌아눕는다. 《아이고, 원통해 죽겠네. 조상에는 정신이 없고 팥죽에만 정신을 판다더니 그 판에도 제좋은 개꿈을 꾸면서 씩씩 거렸구나.》  재산문제에 들어서는 금빛야차이다. 싱거워진 남궁씨가 녀자에게 며칠 동안 등한하게 굴면 남자가 무슨 앙탈이냐고 길길이 뛰면서 먹지 못해 몸살한다. 세상에 음부가 있다는 말은 많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이렇게 밑창도 없이 빨아들이는 줄기찬 년과 닥들릴줄은  꿈에도 몰랐다. 재미난 곳에 범이 나온다고 녀자를 너무 좋아하 다가 업보를 받는것일가? 누가 들으면 흥타령 한다고 할지도 모르나 그는 확실히 녀자에게서 공개할수 없는 징벌을 받고있는것이다.  녀자의 죽은 남편이란자는 촌에서 서기질하며 어떻게 꿍꿍이속을 챙겼는지 집을 열두채나 지어 세를 주었는데 거기서 들어오는 수입이 여차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자가 너무 탐욕스럽더니 일찌기 염라왕이 잡아갔다고 욕을 하지만 남궁씨는 아무튼 난놈이라고 여겼다. 남이야 뭐라든 년을 삶아내여 합법적인 남편이 되여야 했다. 이런 노다지를 놓쳐버리면 자기는 바보가 아닐수 없다. 그러나 기회가 생길때마다 은근히 말을 붙칠라치면 귀신의 옆구리를 째고 간이라도 빼먹을 녀자는 천정에 올라가 붙는다.  《내 말 귀구녕에 잘 쑤셔넣으라구요. 구렁이 담넘어가도 기와장 깬다고 그따위 다라운 속창을 내가 모를라구? 흥, 정말  그럴궁리면 당장 꺼져버리든지,》  녀자는 매몰차게 잘라버린다. 짜내봐야 더러운 피 한방울 안나올 지독한 년에게 더 바랄것 무엇이랴! 물도 못건너고 배만 번지는 짓을 계속할 리유가 없다. 가마니속에서 썩어가는 농어가 냄새를 풍기듯이 자기에 대한 소문이 마을에 더럽게 퍼지고 있는것도 모른체 하는 리유가 무엇이였던가? 중이 절 싫으면 떠나야지 하면서도 당장 나갈 처지가 안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있다. 그들은 점점 버성기 다가 마침내 소닭보듯 하면서 한자리에 들지 않았다. 그런 소박을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녀자는 그래서 또 잡아먹지 못해 이를 갈았다. 종기는 곪기면 터지기 마련이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장춘에서 공부한다던 딸이 왔던것이다. 공부합네 하고 그 동안 돈이나 축내며 제좋은 멋에 놀아나던 딸년이 제에미가 군서방을 해서 산다는것을 알면서도 눈감아준것은 에미에게 보모를 붙이기보다 돈을 절약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정작 집에 돌아와 생뚱같은 령감과 한집을  쓰고 살면서 조석으로 얼굴을 마주한다는것도 께름직했지만 그보다는 수월찮다는 령감쟁이가 언제 재산을 축낼지도 몰라 겁이났다. 그래서 령감을 쫓아내려고 작심했다. 눈치를 보니 엄마도 령감을 미워하는것 같았다. 모녀는 합의를 보았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졌다고나 할가, 드디어 축객령이 내렸다. 새파란 계집애가 제에미를 똑 닮아서 짜던 베도 싹둑 베여버릴 만큼 독했다. 《아바이, 이젠 우리 집에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엄마는 내가 돌보면 됩니다. 지금 당장 나가주세요. 그 동안 수고한것도 있지만 우리 엄마가 아바이를 불쌍하게 여겨서 거두어준것이면 서로 신세를 진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딸년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격이요 속살 섞으며 좋을때는 죽자살자 히던 에미년도 언제 네떡 나 먹었나? 하는식으로 얼굴 한번 쳐다보지도 않는다. 언젠가는 나가야 할 집이라고 생각은 포개두고 있었지만 가라는 소리가 죽으라는 소리보다 더 섧다고 정작 가차없이 축객령을 받으니 다리맥이 탁 풀렸다. 당장 먹고 살만한 돈 얼마간이라도 달라고 비난사정을 했더니 힝, 하고 코방귀를 뀐다.   에라, 가는년이 보리방아 찧고 가랴, 체면이고 사정이고 볼것이 무어냐? 하고 대판 시비를 걸었다. 하루 종일 재무지에 도리깨판을 벌렸으나 해결난것은 없었다. 비법동거여서 어데 가서 해볼데도 없는 노릇이였다. 결국 동네를 웃긴것뿐이다. (사람이 아무리 못나기로니 신수가 멀쩡해서 저렇게야 살리…)하고 빈정거리는 소리가 뒤통수를 쳤지만 할말이 없었다.   제가 원해서 호박쓰고 돼지굴로 들어온것은 사실이나 2년세월도 넘게 남자의 존엄마저 여지없이 짓밟히며 살아온걸 생각하면 스스로 비참해졌다. 허술한 트렁크 하나 달랑 들고 나오다가 그냥 지절대는 에미년의 옆구리를 구두발로 콱 내질렀다. 《아이쿠!》하는 비명과 함께 저만치 힌들 나자빠진 년의 떡판 같은 궁둥이를 몇번 더 차놓고 나오느라니 딸년이 악바리를 쓰는 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갈비뼈가 몇대 부러졌는지도 알바없었다.   6. 늙은 안해를 얻어살다.   그길로 남궁씨는 피신삼아 광흥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 몇해간 마을은 변해도 많이 변해있었다. 100여호 잘 되던 대처마을이 몹시도 헐렁해졌다. 한마을에 무엇보다 사람이 사는 멋을 한가득 안겨주던 소학교마저 황페해져 운동장에 잡초만 무성하다. 골목길에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던 아이들의 재깔대는 웃음소리도 더 들을수 없다.   모든것이 서먹서먹하여 탐탁하게 느껴지는것이란 어느 한가지도 없었다. 어느새 덜썩 커버린 외손녀 외손자녀석도 별로 대견한줄도  모르겠다. 옛날 가깝게 어울려 살던 이웃들도 얼마 남지 않은데다가 그나마도 손님을 보듯해서 마실나갈 멋도 없었다.   마을에 보이는것은 꼬브랑 할망구들과 장가를 못가서 음침해진 얼굴로 당나귀 샌님 쳐다보듯 빤히 쳐다만 볼뿐 인사 한마디 할줄도  모르는 머리 더부룩한 로총각들뿐이다. 안정을 싹 잃은 남궁씨였지만  농사일에도 마음을 붙일수가 없었다. 하동 30년, 하서 30년 살같은 세월에 실려 벌써 지천명의 언덕에 오른지도 반고 개이다.   터밭일에도 일손이 서툴었다. 오래동안 건사하지 않아서 거의나 허물어져가는 옛집에 손을 좀 대보려해도 평생 도끼자루 하나 제대로 깎아보지 못한 그인지라 엄두를 못내고 벼르기만 하다가 광풍이 대작하고 소낙비가 억수로 퍼붓던 어느 날 밤, 집은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다행히 그 날 딸집에서 잤은니말이지 비명에 갈번했다. 아버지가 손수 지어놓고 아들딸 줄느런히 키우며 잘 살아가라던 옛보금자리가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져 빈터만 남기게 되였다. 끔찍이도 사랑했던 안해와 희로애락을 반죽해가며 오손도손 살아온 사랑의 집이 이젠 허무한 추억속에 아픔으로만 남게 되였으니 그 비여가는 마음을 무엇으로 채울소냐? 이제 내게 남아있는것이란 과연 무엇인가? 남궁씨는 가슴을 치며 꺼이꺼이 통곡했다. 사람들은 뼈빠지게 땅과 씨름해야 별로 남는게 없다고 한집,두집 자꾸 떠나간다. 이러다간 마을이 통채로 흘러가버리게 아니냐며 남은  사람들이 개탄하지만 누가 막아낼것인가? 남궁씨는 이래저래 더구나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죽기는 섧지 않으나 늙기가 서럽다더라. 그는 자기의 그 좋은 춤재간이 세월속에 시드는것이 애석하여 잔뜩 멋내고 시내로 춤추러 다니기 시작했다. 옛글귀에 꽃은 늙어도 뿌리는 늙지 않고 사람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늙은이가 머리가 희여지지 않은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말하자면 늙은이는 늙은이다운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중늙은이가 다 된 장인이 갖잖게 자전거 타고 휘파람 불며 무도장을 쫓아다니는 꼴을 곱지 않게 보던 큰사위는 드디어 녀편네가 뭐라하던 드러내놓고 박대하기 시작했다. 성미 하나 괴짜인 남궁씨는 화가 나서 마을에 빈집에 딴살림을 차렸다. 자고로 홀아비집에 이가 서말이라고 했거니와 거의 날마다 무도장에서 해를 보내는 그가 살아가는 꼴은 말이 아니였다. 제딴엔 아무리 때시걱을 잘 챙겨먹는다 해도 보톨이 생활이라 기름기가 돌리 만무하였다. 큰딸도 처음엔 가슴이 아파서 눈치껏 보살펴 주더니 차차 발길이 뜸해졌다. 그래서 또 노여웠다. 그는 속절없이 농촌의 로옹이 다되여가는 자기 모습이 한스러워 어떻게 하면 이 지겨운 곳을 영영 떠나버릴가 뇌즙을 짜냈다. 역시 놀고 먹을 팔자도망은 못하는지 그 동안 징수된 땅값을 촌에서 나누어주어 한밑천 잡게 되였다. 그는 해동이 되기를 기다려내지 못하고 정든 연길에 다시 살림을 차리기로 자정했다. 미우나 고우나 역시 옛날 세집아줌마를 찾아가니 마침 집이 비여있는데가 남궁씨가 맞돈을 척 내는바람에 쉽게 들수 있었다. 마주대하기도 싫어하던 큰사위가 미운놈 떡하나 더 준다는 심사인지 간단한 살림도구에 쌀마대를 실어다주어서 얼추 안돈이 된 셈이다. 그는 시내에 재진출한것을 기념할겸 단골로 다니던 초두부집  녀편네를 찾아갔다. 한동안 살뜰한 속정을 나누었던 주인아줌마가 반겨내달았다. 그녀와 한잔 두잔 나누며 한가슴 회포를 풀다가 아예  들어붙어 한껏 놀아주었다.  이틑날, 남궁씨가 오래 발길을 끊었던 중로년무도장에 들어서니 안면이 있는 아낙네들이 반갑다고 야단들이다. 그도 그럴것이. 많은 아낙들이 그에게서 춤을 배웠 던것이다. 무도장이야말로 남궁씨를 잘 알아주는 유일한 곳이다. 자기의 존재의 의미를 자긍할수가 있어서 어깨가 올라갔다. 그러나 취옹의 마음 술에 있지 않거늘 그의 궁리는 딴데 있었다. 어제밤, 옛정을 뜨겁게 달구는 남궁씨의 가슴밑에서 녹아 난 초두부집 아낙네가 살길을 암시해주었던것이다.   목표물을 인차 찾아냈다. 칠십도 넘은 할미였다. 로년성비대증이 와서 뒤주같은 몸을 겨우 운신하련만은 마음이 낡지 않아서 무도장에 나와앉은 모양인데 누구하나 청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음이 몹시도 상해있으련만 그냥 기다리고 있는 자세가 측은했다. 사냥개가 메추리 냄새를 맡듯이 그 모든것을 포착한 남궁씨가 할머니에게 례절스럽게 춤을 청했다. 반색해서 사쁜 일어선다. 드디어 할머니에게 무도신의 사도 가 오신것이다.   할머니는 춤을 잘 추지 못했다. 그러나 남궁씨가 하도 재치있게 이끄는 바람에 빙글빙글 잘도 어울려 돌아갔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 생각하든 그날부터 남궁씨는 할머니의 춤짝이 되여 돌아갔다. 몹시도 즐거워진 할머니는 매일이다싶이 남자에게 점심도 사주고 담배랑도 사다주었다. 점잖고 례절바른 남궁씨를 곱게 보게 된 할머니는 차차 못하는 말이 없게 되였다.   아들은 미국서 박사공부를 하고 딸년이 하나 있는데 리혼을 당해 혼자살면서 외국을 나들며 무슨 장사를 하다보니 일년가야 얼굴 한번 보기가 어렵단다. 자기는 오랜 고혈압환자여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하면서 눈물을 짰다. 자기도 옛날엔 서시장에서 매대를 맡아서 돈은 먹고 살만큼 벌었지만은 지금은 외롭고 적막해서 무도장에나 나와 소일한다고 했다. 마음이 맑고 착한 살람이나 만나 말동무도 하면서 지냈으면 좋으련만 마음에 딱 드는 사람을 못보았다고 한숨을 쉬면서 넌지시 남궁씨를 떠보기도 했다. 나이 많은 령감은 오히려 시중이나 들게생겼으니 싫다는것이였다.     녀자들속에서 자맥질해온 남궁씨가 할머니의 말속에 말이 있는줄 어찌 모르랴! 행복의 문이 저절로 열리려고 한다. 의뭉스런 할머니는 말하지 않지만 저금한 돈이 루만금이고 부동산만 해도 여나문곳이나 된다는것을 초두부집아낙이 말해주어서 잘 알고있는 그다. 남궁씨는 그래서 더욱 할머니를 극진하게 뫼셨다. 초두부집녀자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즐겁게 해준다는것을 전제조건으로 중매를 부탁했다.     번대머리가 중이 되는격이요 상점에 가서 모자 사기이다. 마침내  할머니네 으리으리한 아빠트에 정정당당하게 입주했다.구태어 신분을 따질것도 없었다. 등긁개면 어떻고 호리원이면 어떻고 잠자리동무면 어떠냐? 세끼밥 걱정없고 폭신한 침대가 있어서 좋기만 하다. 귀신이 다되여진 할머니에게 충성하면서 쥐가 몃을 내듯이 후무려넣을수만 있다면 못할것도 없는 벼슬이다. 게다가 집세받으러 다닐때엔 엄연히 령감행세를 할수 있었다. 아마 남궁씨같은 사람을 두고 돼지임자보다 돼지몰이가 더 센체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남궁씨는 꿈을 잘못 꾸었다. 할머니는 돈계산에 들어서는 정말 귀신을 뺨치게 머리가 잘 돌았던것이다. 워낙 죽은 령감에게서 구두쇠정신을 물려받은 할머니는 떠돌이 새령감에게 재권을 넘겨줄 리유가 없었다. 수많은 돈이 눈앞에서 빨깍거리긴 하였지만 마음대로 만질수도 없었다. 할머니 모르게 현금이 나드는법이 없었다. 언젠가 할머니는 자기의 재산은 아무도 모르고 집안에 어느 벽만이 안다고  자랑삼아 말하는것을 들었을뿐이다.         그야말로 눈에는 돈풍년이지만 손에는 늘 흉년이였다. 남궁씨의 성스러운 사명이라면 할머니를 모시고 무도장에 나가고 들어와서는 이것저것 시중을 들고 밤이면 바람벽같은 할머니의 등을 긁어드리며 어린애처럼 여기저기를 어루만져주 는것이다. 그런데 경악하지 않을수 없는 일이 생겼다. 흔히 늙은 남자가 썩 젊은 녀자와 살아가면 차차 적응성이 산생되면서 젊어진다고 하지만 할머니가 회춘하는 모양인지 때때로 성교를 요구해오는것이였다. 남궁씨가 롱담으로 넘겨버리려면 대단히 노짜가 드신다.   시들어빠진 가을 가지같이 아무 탄력도 느낄수 없는 육체에 그저 발설할수 있다는 그 조건으로 할머니를 녀자라고 생각하기엔 자신이 너무 야비했다. 생각이 정 날때면 초두부집에 가서 검데데한 아낙의 몸을 짓이겨주고는 오지만 할머니와는 어떻게 생각해도 그냥 맹물에 차돌을 삶아 마시는 느낌이다. 어떤 날에는 대방이야 누구든 야성 하나만 앞세우고 씨근대며 자신이 이 부자할머니의 당당한 남자라는 실감을 가져보기도 하지만 끝내고 나서는 부끄러운 허탈감과 더불어 자기가 가련 할만큼 처참하게 생각되여 얼굴이 붉어지군 한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늙어서 언녕 저세상 사람이 되여버린지도 오랜 큰누님보다 도 몇살 이상인 녀자를 올라탈 때 꼭 마치 불륜을 범하는것 같은 죄의식을 물리칠수 없다는점이다. 그리고 할머니 무슨 심사로 그러는지 잘 몰라도《동무》가 어쩌니 할 때면 마치도 벌레를 씹는듯한 느낌이였고 자기도《여보》하는 말이 어망결에 나갈때에는 저절로 닭살이 돋는것 같다. 그래서 할머니라고 불러보면 스스로도 어색한데 본인은 더구나 질색해 한다. 또 누님이라 부르면 생소해서 싫단다. 거리에 나서면 뭇눈길엔 필경 착한 남동생으로 보련만…   아무튼 남궁씨는 이 집에서 자기의 신분이 무엇인지 저로서도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믿을수 없게 되면 철저히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거나 무너져버린 때가 아니랴 싶었다. 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확실하게 믿을수 있는 보장된 잠자리와 세끼밥에 자신을 내맡길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그저 오래 살았다는 그것밖에 남은것이 그보다 더 가련한 인생이 없으리라.     남궁씨가 젊어서는 웃으며 살았다고 하자. 그러면서도 가끔씩은 울기도 했다면 그저 비통이 없는 눈물을 흘렸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눈물이 없는 비통을 겪고있는것이다. 눈물어린 눈길로는 자기가 갈길을 똑바로 볼수 없다는 말도 있거니와 하루밤 통곡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론하지 말라고도 했다, 아마 그래서 남궁씨는 이미 망가진 인생을 슬퍼하기도 하고 후회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격에 맞지 않게 자기 가슴에 안겨 골골하는 녀자를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 볼때마다 허무한 생각에 시달리며 잠못이룬다. 그러한 밤이면 대답이 궁한 자기를 불러낸다. 남궁지예, 남궁지예야! (그는 원래 성이 남궁이고 이름은 지예이다. 그런것을 남들이 잘 기억도 못하거니와 쪽바리들 이름같다고 누구에게 자기를 소개할때면 그저 남궁이라 했다.) 너는 결국 이런 배역을 놀자고 부득부득 향촌을 떠나려고 했더냐? 결국 이 도시가 너에게 안겨준것이 무엇이냐? 너는 지금 무엇이 되여있냐? 중도 개도 아니다. 도시는 도시사람들에게는 락원일테지만 너는 풍년거지 의 팔자밖에 더 되였냐? 도시엔 얼굴밖에  없다. 그래서 풍년거지가 더 섧다는거다. 하건만 너는 그냥  도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있다…     남궁씨는 술생각이 부쩍 났다. 단오날, 남편의 산소에 성묘하러 갔다가 남겨온 술이 있을것이다. 할망구는 고기를 만졌던 손을 국솥에 씻을만큼 다라운 깍쟁이다. 설명절에도 고기 한점 없는 감자채 하나  달랑 해놓고 설을 쇴다는 로친네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마음이 내켜 담배돈을 좀 주고는 내내 배를 앓는다. 그래도 앉을뱅이 병신년과  달리 마음은 지독하지 않아서 마음고생이 그리 없다. 가만히 주방에 나가서 한잔 두잔, 강술을 기울이노라니 잡초들만 무성했던 마음밭에 생각의 이랑들이 깊숙이 패여간다. 인생살이 반이 지나서야 그것이 무엇인 가를 조금 알게 된다던 유식한 고향친구가 하던 말이 이제야 새겨진다. 현실에서 꿈을 덜어내면 사람은 금수로 남고 현실에 꿈을 더하면 또 심통(心痛)이 따르게 된다고, 현실에 꿈을 더하고 거기에 유모아까지 더하면 지혜가 생긴다고 했다.하면 내게도 꿈은 있었으니 내가 금수는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면 다 가질  꿈을 가졌는데 무엇이 잘못되였다는거냐? 그래, 이 지예(智銳)에게 없는것은 유모아인가? 유모아란 무슨 빌어먹을것이냐? 에익, 더러운 이 놈의 인생을 어떳게 살아간단 말인가? 생각을 안주로 삼으니 술이 맹물같은가, (잔들어 슬픔을 달래려니 더욱 슬프고 칼들어 물을 베니 물은 더구나 줄기차더라) 생각은 다시 귀여운 마나님에게 돌려진다. 이미 얻은 교훈이 있어서 등기따위는  감히 꺼내지도 못한다. 어느 벽속에 넣었다는 수십만원의 저금통장을 그려보면 속창이 곪아터질것 같다. 담방이라도 물항아리 같은 노덕을 창문으로 들어내는 장면을 환상해보다가는 몸서리쳤다.  되지도 않을 일, 아무쪼록 할머니께서 북망산에 늦게 입적하도록 잘 받들어 모셔야 한다. 할매가 불귀객이 되는 날엔 끈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는 날이요 다시 고생문이 열리는 날이다. 《여보! 부인, 우리 부인님은 부디 삼천갑자 동방삭처럼 장수해야 할텐데…나 부인이 아니면 못사는데유 제발 돈을 아끼지 말구 좋은 약 쓰면서 건강해야 해오, 응? 》하고 벽을 두드려 대들보 울리듯이 속심을 휘저어보면 할먼니의 말씀은 매양 확실하게 나오신다. 《여보, 좀 속창이 들여다보이게 놀지마시우, 내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 싸우지 말구 오순도순 좋은 부부로 있읍시다. 내게는 지금 먼데 자식들보다 곁에 있는 령감님이 중합니다요. 나를 잘 대해주면 복을 받을거유. 내죽은 다음에도 자식 새끼들이 영 모른다고는 안할터이니 그리아시우. 유산상속이야 있겠수만 생활비 넉넉히 남기라구 유언을 써둘가 하는데유. 》  남궁씨는 할머니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체하면서 정성을 다해 모셨다. 칼도마우에 고기는 주인이 베기에 달린것인데 급급하게 서둘러봐야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밖에 더 있으랴, 안아달라면 얼싸 안아주고 등을 긁어달라면 살뜰히 긁어주고 애무해 달라면 어린애를 보듬듯 보듬어주었다. 흥이 나서 교합을 요구하면 금이 간 질항아리 다루듯 자근자근 눌러준다. 세괃게 버둥거리다가 혈압이나 올라가서 그채로 굳어질지도 모른다. 여북하면 고혈압환자는 된똥을 누지말라 하겠는가? 정말 그러는 날엔 장강물에도 씻을수 없는 덜러운 루명을 쓰고 개죽음을 당할수도 있는것이다.  녀자가 이만한 나이면 거개 색욕이 싹 간다는데 이 년은 자기를 그냥 녀자로 여기니 야단이다. 자희태후가 로망이 나서 죽을때까지 남색을 탐했다더니 이녁이 그런 끼가 있는게 아니냐? 옥체를 위하여 자리를 가르자고 하면 할머니는 징징거리며 아니란다.  비극은 끝내 일어나고야 말았다. 초겨울, 아직 스팀을 돌릴때가 아니여서 밤이면 이불안은 썰렁하다. 할머니는 전기료금이 아까워서 전기요도 좀해서는 아니 쓴다. 대신 남자의 체온으로 추위를 말리기 좋아했다. 그날도 할머니는 령감의 품속에서 꿈지럭거리더니 마침내 그 지겨운 유희를 놀아달란다. 매번 할머니의 높은 배우에 오를때면 조심스럽고 께림직했으나 변이 나려고 그랬는지 남궁씨는 반발적으로 야욕이 불뚝했다.  (어디 실컷 군을 떼보이소,) 하고 분풀이하듯 마구 들쑤셔놓으니 제법 앓음 소리를 냈다. 눈을 딱 감고 대구 굴러대다가 느낌이 별로 안좋아서 내려다보니 낯색이 말이 아니다. 또 혈압이 문젠가? 대뜸  머리칼이 쭈볏해졌다.제풀에 굴러떨 어져 불을 켰다. 급히 약을 찾아 입에 넣어주었으나 받아먹지 못했다. 그제야 고압전기에 감전된듯 온몸을 푸들푸들 떨면서 둔중한  몸을 겨우 뒤번져서 대충 속옷을 입혀놓고 불러댔다. 《여보, 여- 어보오》응기가 없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서 전화를 생각했다. 《여, 여-보시우, 여기, 여기에 고 고혈압환자가…》  잠시후 구급차가 득달했으나 할머니는 그냥 기절한채로 담가에 들려나갔다. 남궁씨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따라갔다. 의사는 뇌출혈이 왔다고 한다. 구급을 거쳐 숨을 쉬는가 싶더니 의연히 중태에 빠져서 눈을 꼭 감고있다. 징조가 심상찮았다. 처음 딸년인지 하는 녀자에게  련락을 했더니 평소에는 대갈쪽도 내밀지 않던 년이 《아이고, 우리 엄마야!》하며 병실에 들어서더니 울고불고 법석을 피워댔다. 낯도 코도 보지 못한 어중이 떠중이 친척들이 무슨 먹을알이나 생긴듯이 우르르 몰려왔다. 명색이 그래도 할머니와 한이불 덮고 자던 령감인데 원두한이 쓴 외 보듯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상가집 개신세만도 못했다. 억이 막혔다. 상가집개라면 하다못해 어느 놈의 발길에 채우기라도 하련만 이건 그냥 무시이다. (제밀헐, 이것 들이 무슨 낌새를 맡은건가? 어허, 복창이 터진다.) 할머니는 그렇게 잠만 자다가 나흘만에 유언 한마디 남기지 않고 그냥 가셨다. 향년 76세이다. 아들놈은 전화를 받고도 오지 않아서 장례식은 구멍이 펑 뚫린채 조촐하게 끝났다. 연길바닥에서 유명짜한 부자노친으로 말하면 너무나 아쉬운 서천길이다. 먼 발치에서 령구를 바라보느라니 눈물이 쏟아졌다. 어째서 흘리는 눈물인지 해석할수는  없었다. 비록 지저분한 인연이였지만 속살을 섞은 남녀의 정이였음은 사실이다. 가슴이 아팠다. 이 때의 그의 마음은 순수 한 인간에 대한 련민의 정이기도 하였을것이다. 아무튼 순발성뇌익혈로 사망진단이 나와서 다행이다. 내친김에 사정이나 훌 해버렸더면 어쩔번했는가? 섹스과잉충격으로 사망했다면 기네스북에라도 오를번했으 니 말이다. 그는 또 한번 씁쓸한 웃음을 짓씹었다. 자기 조소인지도 모른다. 수림이 황페하면 원숭떼도 흩어지기 마련이다. 남궁씨도 이 집에 남아있을 리유가 없다. 2년남아 로부인을 모시고 시름걱정없이 살던 실락원을 떠나야 했다. 딸의 눈총속에서 낡은 빼크에 입던 옷가지랑 구겨넣으면서 속으로 수판을 튕겼다. 며칠전, 밀린 집세를 3일내로 꼭 갚겠다는 약속을 받아둔것이 두세집 되였다. 그것만 받아챙기면 허리를 좀 펼수 있었다. (이년, 그렇게 눈을 밝혀도 그것까지야 네가 알겠느냐? 물이 흐린김에 미꾸라지를 잡는다더라.) 《잠간만요, 우리 엄마의 덕분에 호의호식하고서도 인정머리 없이 그냥 그렇게 훌 가버리면 됨까? 유서는 여기 있지만 여사여사하다고 알려줄거 알려주고 가는게 도리가 아임까? 여기 집조 열세개 있는데 어디어디에 있고 집세를 받은 정황은 어떤지 솔직하게 알려주쇼.》  참새 방아간 지난격이 되였다. 이렇게 된바하고는 차라리 마음이 밝은 사람 으로나 보여서 수고비나 가질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분명 집이 열네채인데 하나는 어데갔지? 하나하나 대조해 보니 과연 발전촌에 창고가 달린 40여평 되는 벽돌집의 집조가 없었다. 그러나 내색을 내지 않았다. 할머니가 하나 잃어버렸나? 아닐텐데…》  그날 밤, 눅거리 려관에서 뜬 눈으로 새우고 이틑날 약속대로 딸을 뒤에 달고 돌아다니며 세집을 인수시켰다. 물론 발전촌에 집은 시치미를 뗐다. 적어도 얼마간은 주인행세를 하면서 집세를 챙기거나 잘되면 아예 제집처럼 차지할수도 있을지 모른다. 혹시 가옥소유증이 나지여 사달이 생기더라도 그때는 꿩구워먹은 자리일게다. 할머니가 일체 재산문제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나 극비에 부치고있은것을 그는 잘 알고있었기에 가능성이 충분했다. 범의 코등에 돈이라도 떼먹고 볼판이다. 어쨌거나 죽은 할머니에게 고사라도 지내주고 싶었다.  소뿔은 단김에 빼라고 얼리고 닥치고 아웅다웅해서 일년분 세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갑부나 된듯 속이 든든해 났다. (그래, 내게도 이제 자그마한 돈나무가 생긴거다. 으하… …) 급히 먹는 밥에 목이 메는법, 언엿을 녹여먹듯 녹여먹으리라. 그는 집을 차지하는 문제는 천천히 도모하려고 작심했다.  허송세월은 빠르기도 했다. 또 집세를 받을때가 되였다. 그런데 자기보다 낯가죽이 더 두터운 작자가 그저 부드럽게 말해서는 제때에 집세를 안내는것이 두통거리였다. 정 각박하게 굴면 할머니를 찾아가 사정한다는데는 손을 들지 않을수 없다. 벙어리 랭가슴 앓듯이 해도 막나오면 안된다. 개를 쫓아도 도망길을 내놓고 쫓으랬거늘.  이 절도 못믿고 저 절도 못믿는격이 되였다. 울며겨자먹기로 아래돌 빼여 웃돌 괴이고 웃돌 빼여 아래돌 괴이는식으로 둘러맞추며 놈을 구슬려서 받아내는게 상책 이건만 지금 세월에 돈꾸기도 조련치 않은 일이다. 여기서 코방먹고 저기서 무안당하고는 말세의 삭막한 인심을 개탄했지만 당장 급한 돈이 나올일은 아니였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것이 만만한 고향친구다. 아저씨, 아저씨하며 짐을 지운다지 않는가, 한번이면 어떻고 두번이면 어떠랴, 벌건손을 내미는 순간에는 낯이 뜨겁 겠지만 돈을 받아쥐고 돌아서면 네미덜멀 같은거다. 이렇게 작정한 그였기에 앞에서 얘기한것처럼 고향친구를 또 한번 골탕먹인것이다…   7. 떠도는 넋      하루는 주인집 아낙네가 문을 빠끔히 열고 개에게 돌을 던지듯이 난데없는 편지 한통을 던져주었다. 얼결에 주어드니 오상이란 글자가 첫눈에 안겨왔다. (에라, 요 괘씸한 년아! 이제야 만장지서를 보내면 어쩐단 말이냐? ) 제성미처럼 글씨가 어찌나 깨알같은지 돋보기 없이 한글자도 볼수 없었다. 얼핏 나지지 않는 돋보기를 찾느라고 방안을 휘딱 뒤번졌다. 돋보기를 찾아서 꼈으나 눈앞이 자꾸 흐리마리해져서 글이 아른거린다. 《안녕하십니껴?(허, 안녕이 다 어데가 말라죽었다구, 이제와서 안녕이야? 사나이 벌판같은 가슴에다 모닥불을 지펴놓고 그렇게 훌쩍 가버린년 얌치 한번 뺨치겠네.) 증말 미안하게 되였시요. 지가 떠날 때는 싸게싸게 돌아온다꼬 약속해 놓고도 오늘까지 몬가게 된데는 그럴만한 사정도 있었지만 사실언 지가 생각을 고쳐묵은 거라요.  지도 그동안 몸과 마음 다바쳐가면서 키운 정인데 그렇게 얼러덩 잊을라구요. 맨날 맨날 생각은 하디요. (이 년아, 생각에서 사랑이 나온다냐?) 남선상님, 우리 두사람의 감정도 젊은애들 지덜찌리 하는  말처럼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지유. 한분 맺은 사랑은 잊어뿌릴수 없는 정이라고 하지만 어떤 사랑은 잊어버려야 한다는걸 이분에 잘 배워 알았다구요. (이젠 사랑하는 님자는 영영 생략하구 사람을 간지르구 있네.) 하룻밤 풋사랑도 만리성을 쌓는닥하는데 그동안 당신과 나눈 정은 얼마일가유? 지도 마음이 괴롭다구요. 한 녀자로서 감정맹키로 소중한게 없는줄을 지도  잘 알것지만 어짜겠습니까?  촌기집이 무슨 큰 소원얼랑 가지고 있것냐만 사람얼 세워놓고 코 베여묵을 연길서는 몬산다하는 말 아임니껴? 자기 앞날얼 빤히 내다 봄스롬도 그냥 그렇게 살수는 없디요. 지도 불쌍한 목숨이지만 차차 지내봉께로 남선상님도 남자로서는 너무너무 비참합디다. 불쌍하다는 지마음이 당신과 인연얼 맺게했는지 모르디요. 옛날 책에서 본말인데 동정의 달걀에서 여러번 사랑의 암탉이 기여나왔다고 하데요. 증말 재미있고 우스운 말이제?  지가 다 파묵은 김치독같은 과부이지만도 난생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한 남자가 당신이였응께로 소녀의 순정을 바치는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 살락고 했는데…지금도 밤에는 당신 생각하디요. 당신의 거친숨쏘리가 금새 들리는것도 같구먼요. 아마도 일쯕 무너져서 엄청 슬픈 내 가슴속에 골방 하나 딱 차지하고 기신가봐유. 따뜻했던 정이 그냥 그기서 숨을 쉬고있대요.  …하지만 워쨌거나 지는 다시는 안갈락고 마음 도사려 묵었응께  기다리지마요. 시내는 우리 같은 촌사람덜이 기를 펴고 살만한 곳이 몬되더랑께요. 그때는 혼자서 농사짓기가 하도 막막해서 그리했지만 지금은 아뇨. 도시사람 그즈덜찌리 잘 살라고 하이소. 지는 시내에서 쪼깨 살아봤지만도 알것 다 알것구만이라. 그땜시 인심사나운 연변이 질색이 난다하는 내 말이 아임껴? 쇠불알도 익어서 떨어질 뉴월염천에 땀벌창이 되여 삼륜차 밟던 선상님의 모습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던 지였지만 지금 워째야 쓸란지 모르겠어유. 지의 소박한 소원언 그게 아니였는데…당신이 살았다는 광흥에 가든지 오상에 오든지 함께 농새지으며 살자고 해도 무도장에 마음이 홀딱 반한 당신을 도무지 알수가 없드라요. 여봇시오, 벌어묵고 살만한 제직업도 없는 연길바닥에 미련 두지 말고요 제고장에 가서 살아유. 노루는 노루찌리 살고 돼지가 돼지를 고와한닥하지 아니 합디꺄? 이 거북뎅이넌 다른 욕심이 없응께로 좋은 녀자 하나 골라잡아서 싸게싸게 고향가이소. 나넌 평생 그짓말 할줄 몰라유. 나는 선상님이 처음엔 월급받고 사는줄로 알았지만…다시는 당신의 그런 불성모양은 몬보아낸다고요. 나땜시 쓸데없 이 너무 속을 태우는것 같아서 이렇게 되는 말 안되는 말로 편지를 쓰는게라요. 그럼 이만 쓰겠어유. 만년을 잘 보내시라고요. 》 편지를 읽는동안 내내 얼굴이 모닥불을 뒤집어쓴듯 화끈거렸고 눈앞이 흐리마 리해졌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순박한줄로만 알았던  오상댁이 그렇게 주견이 굵고 생각이 깊은 녀자일줄 몰랐다. 꼭 맞는 말을 하고있다. 돌이켜보면 친구는 두주먹 불끈 쥐고 피땀을 흘리며 달려왔을 힘겨운 인생길을 자기는 늙은 소가 헌수레를 몰고 이리저리 임의로 끌고다니듯 아무런 보람도 없이 허비하였다. 그는 지금껏 허영의 가면구속에 깊이 숨어있던 진정한 자기를  불러내여 대화를 했다. 남궁지예야, 남궁지예! 너는 자기를 너무나 몰랐다. 이 날, 이 때까지 운명만 탓하며 자기를 방종에 밀어넣고 망녕된 편안타령이나 부르면서 헛된 욕망을 부풀렸 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너의 로맨틱한 환상속에 너자신이 썩었을뿐 만아니라 나중엔 소중한 친구마저 기편했다. 너야말로 인생의 수레바퀴를 산으로 올리굴려야 할 처지였지만도 가마목에 고양이를 부러워했다. 인생현장은 워낙 소녀들의 미련처럼 아름다운것만도 아니고 사막처럼 삭막한것만도 아니다, 꽃피고 산새 우는 봄도 있거니와 땀 흘리는 여름날 도 있으며 풍년가을도 있고 눈보라치는 겨울도 있기마련이다. 그러나 너는 안개속을 헤매였고 늘 화간에 허랑한 나비처럼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살았다… 불현듯 마음을 푸근하게 하던 오상댁의 경상도 사투리가 귀전을 울렸다. 아무도  이녀자만큼  쑥밭이 되여진 인생의 황무지에서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불러내줄 녀자가 없다는것을 다시 한번 가슴 쩌릿하게  느꼈다. 비록 오상댁의 일생에 거북살이 뻗혔 다지만 숙명적으로 남편 하나 잘 만났더라도 녀자의 구실을 알뜰히 해나가며 제나름 의 인생을 맛이나게 살았을것이다.     로신선생은 중국의 남자들은 원래는 거반 성현이 될수 있었는데 가석하게도 녀자들이 망쳐놓았다고 했지만 남궁씨는 현대에 와서는 자기처럼 망석중이가 된 남자들이 너무 많기에 얼마나 많은 오상댁이 나오는지 모른다고 반성해본다.     오상댁과 갓동거해서 깨알이 쏟아질때이다. 어느 날, 무도장에서 돌아오다가 친구를 만나서 새 안해라고 인사시키고 제가 한턱 낸다며 음식점에 청했다. 오상댁이 돈도 없이 흰소리 친다고 크고 검은 눈을 흘겼지만 한눈을 찔끔해 보였다. 성황 당옆에서 귀신을 쫓을때에는  신통력이 나는법이다. 잘만 하면  먹고싶다는것을 공짜 로 먹여줄수도 있는데 오상댁은 멋도 모르고 침통부터 빼든다. 아까부터 국수 한그릇씩 사먹자는것을 못사주어서 미안하던차에 수를 쓴것이다. 결국 사람좋은 친구가 제가 결산한다고 할 때 그는 못이기는체 하면서 쾌재를 불렀다. 허나 그 모든것을 오상댁은 곱지 않게 보았다. 그제야 남궁씨는 《아차!》했다. 비록 남의 불에 게를 굽듯이 생색 한번 멋지게 냈지만 그만 본의 아니게 녀자에게 비교의 기회를 만들어준것이다. 무릇 어떠한 비교이든 부부사이에 불화의 씨가 되는것이다. 하긴 오상댁이 어떤 훌륭한 남자인들 못보았으련만 구체적 대상을 코앞에 갖다댄다는것은 벌써 다른 문제이다. 아닌게 아니라 오상댁은 은근히 친구를 거들면서 자기를 우습게 보는 같기도했고 진실하지 못하다고 비하하는것 같기도 했다. 공연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었다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편지를 몇번이고 읽었다.눈 한번 못붙이고 오열을 토하다가  마침내 비장한 결심을 내리고 벌떡 일어났다. 늦게라도 자기 인생을 정리해야 했다. 행장을 꾸리려고 옷가지를 챙기다가 그만 귀신에게 쓸개를 빼앗긴듯 한동안 넋을 잃고 앉았다. 아까워 무도장에 갈 때나 꺼내입던 가죽잠바에서 문제의 그 가옥소유증이 불쑥 나진것이다. 정신이 황홀해졌다. 손가락을 깨물었다, 꿈이 아니였다. 신들린 무당년처럼 한참이나 팔을 허우적거려도 보고 시설질도 했다. 이윽고 제정신이 든 그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되여 집조가 잠바의 안주머니속에 들어있을가? 줄담배를 태우노라니 기억의 쪽문이 빠끔 열리였다. 집터가 명당이라는 점쟁이의 말을 믿고 사두었다는 발전의 집이 무슨 수속이 잘못되여서 그걸 해결하느라 집조를 넣고 다니다가 그냥 잊은채 있은게 분명했다. 구천에 할머니귀신이 통곡을 해도 한두번이 아니게 통곡할 일이 아니랴! 그는 가슴을 탁탁 쳤다.(얼씨구, 닐니리야, 행운이란 달에나 걸려있다더니 친구야, 이것 좀 봐라! 오는 이 남궁씨에게 복떡이 뚝 떨어졌다. 고물이 묻은채 말이다.) 엉뚱한 궁리가 나래폈다. (니기미 씨팔것, 범의 코등에 돈이라도 떼먹으랬다.) 마음이 고무풍선처럼 잔뜩 부푼 그였지만 사유는 시종 팽이처럼 돌았다. 지금 들어있는 령감에게 밀린 집세를 재촉하면서 할머니가 병이 나서 입원하다보니 집을 곧 처리해야겠다고 넌지시 침을 놓으니 자기가 산다고 안달이다. 남궁씨는 웃었다. 구멍에 든 뱀이 짧은지 긴지 네가 알턱이 있냐? 맞돈을 내면 밀린 두달 집세를 면제한다고 했더니 어리숙한 령감쟁이가 정말 며칠후에 돈을 마련했다. 집조를 넘겨주며 매매수속은 할머니가 출원한후에 곧 한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고 5만원이나 되는 뭉치돈을 척 내주었다.   돈을 받아챙기고 돌아서려니 다리가 떨려서 도무지 걸음이 되지 않았다. 겨우 집에 돌아왔으나 누가 당장 쳐들어와 덜미를 잡는것 같아서 밥도 먹을수 없었다. 옷을 입은채로 밤을 패다가 새벽녘에 도적놈처럼 세집을 빠져나왔다. 종당에는 야밤도주의 길에 오르게된 남궁씨, 세상은 비록 넓어도 오라는곳 없다. 짐승은 모르나마 사람은 못잊을것 고향이련만 고향에 가고싶지도  않고 또 갈수도 없이 떠도는 넋, 이제 어디로 흘러갈런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큰길가에 나와서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있던 그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빛도 없는 회색하늘과 려명전의 어둠이 아직 그대로 엎드려있는 땅사이에 조그마한 점으로 서있는 그는 자신이 너무나도 왜소하고 무력함을 다시 한번 한탄하였다.  플래트홈, 분침을 헤아리며 초조를 달래는데 렬차는 어디쯤에서 늑장을 부리는지 그냥 아니오고 역구내 간선에서 구식기관차가 텅빈 바구니들을 길게 달고 덜커덩 거리며 이리저리 기여다닌다. 남궁씨는 문뜩 자기의 인생렬차도 저 빈바구니들과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여나왔다. 이윽고 북행렬차가 서서히 들어섰다. 돌아오는 기쁨을 앞세우고 내리는 사람들과 떠나는 애석함을 뒤에 두고 렬차에 오르는 사람들로 홈은 소란하다. 남궁씨는 서로 먼저 오르려고 밀고 닥치는 무리들을 흥심없이 지켜보며 뇌까렸다. (그래, 잘들 한다. 어서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편안히 앉아들가거라.) 그는 맨 마지막 사람으로 렬차에 올랐다. 제자리를 급급히 찾을념도 없이 련결차바곤에서 배포유하게 담배를 피워물고 차창을 내다보았다.     굵다란 비방울이 차창을 후려치고있다, 비는 묵은 설음이 터져서 하염없이 울고있는 어느 아낙네의 눈물이련가? 기차는 그냥 떠나야만 하는 숙명이 분한지 씩씩거리며 역구내를 벗어나더니 비속을 꿰질러 돌진을 하면서부터는 단숨을 몰아쉰다.     강건너 저 멀리 거북등같은 북산령이 바라보인다. 무척 사랑했던 안해를 묻은 어디쯤이 보이는듯 싶다. 그리고 그 산아래 광흥마을이 비에 젖어 떨고있었다. 그의 한생과 얽힌 고장이건만 별로 애석함도 없다. 고항을 등진 사람이거늘 미련인들 가당하며 부평같이 떠도는 넋에 향수의 정은 어이 있으리! 그는 타다남은 담배꽁초로 비물에 얼룩진 차창에 락서했다. (잘있거라, 연길아 나는 간다. 잘 살아라!)     문득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던 오상댁의 그 껄끄러운 목소리가 방불히 귀전을 울리는것 같다.(에라, 이 못난 연변문딩아. 내넌 진작 잊어뿌릴락고 하는듸 니넌 워째 부득부득 찾아오요? 이?!)                                               2004  년 4 월 5 일                            《연변문학》2004년 8 기
14    미로의 저쪽 댓글:  조회:3353  추천:51  2008-01-30
미로의 저쪽   최 균 선                         허영심으로 빚어진 비극은 아무도 동정하지 않을것이다.                                                               작자          한수 또 한수의 서정시같은 아름다운 감각을 창출해가면서 둘만의 에덴동산을 답파하던 꿈같은 열련이 식기전에 그들은 영원한 사랑의 사시를 엮기 위해 부부로 되였다. 밀월은 달콤했다. 밀주같이, 하지만 한평생 두고두고 익혀야 할 사랑의 밀주 를 한잔 술처럼 홀짝 마셔버릴줄이야,        화촉동방의 단꿈에서 깨여나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한껏 좁아졌던 둘의 세계가 원래대로 넓어지고 유혹의 망망대해에 거친 파도가 일고 잦으면서 그들의 사랑의 쪽배를 마구 뒤흔들었다. 세계는 그렇듯 눈부시게 유혹적이였지만 자신들에게는  피면할수 없는 생활의 산문이 시작되였음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미 흘러가버 린 랑만은 기나긴 인생려정에서의 한단락의 전주곡에 불과한것이였던가? 사랑책의 부록에 고뇌라는 주해가 씌여지기시작했던것이다.        아무튼 보는 사람마다 미사와 유훈을 천생배필이라 했다. 조물주는 녀자들에게 주기 린색한 아름다움을 미사에게는 넘치게 하사했다. 물기를 머금은 크고 까만 눈동자에선 신비로운 빛이 발산하고있었고 알심들여 조각한듯한 복상스러운 얼굴에 하얀 살결, 동양적인 그것과는 조금 다른 매혹적인 코아래 곱게 자리잡은 입술은 그렇듯 유혹적이였다. 게다가 드높은 가슴아래로 멋지게 곡선을 그으며 내려 간 몸매는 너무너무 섹시하였다.        지금은 요조숙녀에 재자가인이 별로 없지만 유훈이도 훤칠한 체구에 이목구비가 준수한 남자였다. 어찌보면 미남자들에게 흔히 부족한 사나이의 패기같은것이 좀 비여있는것같아 보였지만 미사에겐 그게 오히려 안전감을 주고있었다. 그만큼 유훈이는 심성도 착하고 정직했다. 그러나 그 모든 만족스러운 감각은 곁사람들의 흠모의 눈길을 모으기엔 족했으나 생활에는 별로 도움이 안되는 자본이였다.        유훈은 처삼촌의 덕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시기관에 배치받았고 얼마 안되여 부과장으로 되였다. 그러나 로임은 천원남짓했고 소학교교원인 미사의 로임 8백원을 합해야 2천원이 될가 말가했다. 신혼부부들이 거개 그러하듯 그들은 얼굴을 빛내기 좋아하는 현대파들이였다. 그래서 입은 중등정도가 되지 못했지만 입는데는 누구에 못지 않는 멋쟁이들이였다.        특히 어릴때부터 무남독녀로 곱게 자란 미사는 허영심으로 빚은듯 시샘이 많았고 씀씀이가 헤펐다. 아직 비싼 아빠트에 세를 내고 들어있으면서도 사흘부자질을 하는 그런 타잎이였다. 돈지갑이 비면 미사는 고양이 락태한 모양을 해가지고 네탈내탈하 면서 랑군이 달래면 더구나 울고불고하였다. 사랑이 만든 불만의 녀왕이랄가.        그래도 격정은 아직 사라지지 않아서 날씨 좋은 봄날 저녁이면 손에 손잡고 거리를 거닐기도 했고 야간시장도 돌아다녔다. 이를테면 신혼의 여흥을 식히지 않고 자기들만의 서정시를 쓴다는것이다        어느 날, 신랑을 누가 빼앗아가기라도 하듯이 팔에 매달려 새롱거리던 미사의 얼굴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금발머리에 멋진 안전모를 눌러쓴 아씨가 번쩍번쩍하는 새모터찌클을 질풍같이 몰고 스쳐지나갔던것이다. 그 녀자가 그렇게 부러울수 없었다. “자기야, 이 미사가 모터찌클타고 달리면 방금 지나간 저 녀자보다 열배나 더  멋질거지, 그치? ” “두말하면 잔소리지, 우리 미사가 누구라구!정말 그럴듯 할거야,” “그럼 자기야! 사줄래? 우리 학교에두 모터찌클수가 몇이 된단말이야, 응?” “그래주군 싶은데 어디 쉽게 살수 있나? 2~3백원씩 하면 몰라두, ” “그것봐, 그럴줄 알았다니까, 시골출신의 샌님은 못말려낸다니깐, 이잉, 나 몰라 당신 꼭 사내야 해!” 미사는 대뜸 앵돌아져서 끼였던 팔도 언제 그랬냐싶게 홱 뿌리쳤다. 미사의 응석 은 거의 어린애의 그것이였다. 유훈은 녀자가 허영심이 돋쳐서 그저 해보는 소리로 듣고 좋은 말로 밀막아버릴것을  붙는 불에 키질하듯 추겨놓고는 속을 태우는판이다.  《미사, 우린 신혼부부잖아? 행복한 가정엔 안정이 첫째야, 그리구 건강과 착한 량심을 가지고 살아가면돼. 그만 일에 앵돌아지면 어떡해? 어린애같이…》 그날밤, 미사는 등을 돌리고 잤다. 차차 그렇게 랭전이 잦아지기시작하였다. 그러 던 어느 날, 유훈이 멋진 새오토바이를 교문밖에 세워놓고 미사를 기다렸다. 곱지 않은 눈길로 남편을 일별하던 미사의 얼굴에 갑자기 해님같은 웃음이 비꼈다. 자기가 욕심내던 오토바이를 보았던것이다. 그는 남들이 보건말건 류훈의 목을 그러안고 키스를 해댔다. 미사의 소비욕은 그에 그치지 않았다. 하여 결혼하여 일년 남짓한 사이에 빚이 자꾸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사의 입에서 돈소리가 그칠새 없었다. 그때문에 속을 태우 는 남편을 리해하려는 아량에 앞서 물욕이 광분하는 미사는 밤마다 베개머리에서 가정경제혁신문제를 두고 회의를 열었다. 《자기야, 왜 내말 우습게 들려요? 우리 이렇게는 못살아, 무슨 개혁이 있어야 제…나 선생질 다 때려치우고 일본갈가?》 《안돼,》 《왜ㅡ애?》 《넌 못들었어? 일본에 간 젊은 녀자들이 어떻게 돈을 번다는것을…》 《사람나름이지 뭘?》 《물가에서 놀면서 발이 젖지 않을수 있어? 당신같은 그런 체질의 녀자는 더구나 안돼, 돈이 사람을 따라야지 사람이 돈을 따르면 뒤끝이 좋은법이 없다구.》 《그럼 그따위 돈도 후벼내지 못하는 과장자리 말아치우구 출국해요.》 《싫어, 개도 않먹는 돈때문에 남들에게 기시받고싶지 않아!》 《그럼 어째요? 연변에 조선족남자들은 제가 무능하면서도 자존심만은 강해서 녀편네의 뒤다리만 붙잡고 있는단 말이야, 엥이ㅡ 난 몰라, 》 《이제 단위에서 집을 가지면 알콩달콩 살텐데 뭔 욕심이야? 다른 사람들은 돈이 좋아서 녀자를 내돌리지만 이 유훈은 못해, 녀자의 피땀으로 번돈을 가지고 부자인체 하는 사람들 난 우습더라, 》 《달팽이처럼 집만 쓰고 살면 다야? 아래층 진국장네를 보라구요. 사람이 살면 그렇게 살아야 산다구 할수 있지. 이게 뭐야? 도시빈민같이…》 《이 도시에도 맨밥에 겨우 간장만 먹는 사람두 많아, 내 고향마을에두 가난때를 못벗구 사는 사람들이 얼마라구,》 《모두 취했는데 혼자 깨여서 중국혁명을 할수 있나요? 좀 제노릇 하라요.》 《권력타령을 하다가 감옥타령을 하는치들을 거의 달마다 본다구, 당신두 조심해, 들통난 탐관오리들의 뒤에는 거개 탐내조들이 있다구, 그렇잖아두 사회상에서 교원 들의 형상이 말이 아니야. 반주임하면서 절대 가지지 말아야 할 돈을 욕심내다간 큰 코 다칠줄 알라구.》 유훈은 베개머리금전타령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덕은 쌓은데로 간다더니 학식이 있고 청렴하고 패기 있는 유훈은 재정국국장으로 발탁되였다. 원칙성이 강한 그는 조류에 휘말려들지 않으려고 자기를 다잡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선철을 밟지 않기위해 일체 비정한 거래와 아예 등을 돌리였다. 그래서 그에게서 여러번 코를 떼운 사람들은 유훈의 뒤뜨락에 불을 달기시작했다.  몇년 그렇게 잘나가던 유훈이가 어찌된 영문인지 시에서는 가장 리윤이 나는 늄공장의 공장장으로 좌천했다. 그러나 미사에게는 외려 그게 돈나무를 안은것으로 생각되여 열이 올랐다. 남편과의 입씨름은 입씨름대로 가고 미사는 제받을것을 받아들였다. 한번 동하기 시작한 탐욕이란 도달점이 없는법이다. 그는 받아들일수록 어벌집이 커졌다. 그저 주는것만 어물쩍 받던데로부터 교묘하게 암시할줄도 알게 되였고 은근히 협박할줄도 알았다. 한번은 유훈이가 오래동안 남방출장을 갔다가 돌아와보니 안해가 가정혁명을 완성해 놓고있었다. 결혼할 때 갖추었던 가정비품들은 간곳 없고 죄다 최신고급품 으로 일신해버렸다. 공기조절기며 고급비디오며 외제고급쏘파며… 메추리 냄새를 맡은 사냥개의 눈처럼 이상한 빛을 내뿜는 남편의 눈길에 미사는 가슴이 섬찍해났다. 어정쩡해서있는 남편의 가슴에 안겨들며 미사가 속삭였다. 《여보세요, 류훈은 원양선이고 나 미사는 아늑한 항구이죠? 당신의 사업이 잘 나가는만큼 이 항만을 잘 건설하는게 안해의 사명이 아니겠어요?》 《당신 지금 정신있어? 이렇게 새로 갖추자면 몇만원 가지구는 안되는데 돈이 어데서 난거야?》 《아유, 좀 그만 소나기를 울리라구요. 전국을 주름잡으며 다닌다는 사람이 그렇게 담이 작다구야, 안심하세요. 사랑하는 랑군님!》 《안심하게두 되였네. 그러다가 남편을 잡아먹지 않나 보라구. 젠장!》 《내가 왜 제목숨같은 남편을 잡아요? 리윤이 막 쏟아지는 돈나무를 척 차지하고 앉은 창장이 무슨 걱정인가요?》 《생각이 그 정도야? 그게 국가공장이지 내 공장이야? 공장장이면 공장을 말아 먹는 책임을 진줄로 아는 모양이지? 절은 황페해도 방장은 살진다는 그런 경우는 내게 없을테니까 너무 기대하지 말라구.》 《아이구!주총리가 할 걱정을 하구 계시네요. 남들은 공장을 다말아먹고도 자리만 높아지더군요. 당신도 여차하면 딴데 날아가버리면 되잖아요? 부어놓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마신다구요.》 《허, 그 동안 말을 많이 배웠군, 그게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할 말이요?》 《교원, 교원 하지 말아요. 모두들 턱없이 높이 받들지, 뭐 교원은 탄산까스만 마시고 산소만 내쏘는 신선인줄 아나베. 우리 학교에두 어른신네 마님들이 몇이 있는 데 잘들만 하구 다니드라구요. 그게 다 어디서 온 돈인데?》 《남이야 지옥의 복도를 지나서 천당으로 가든 말든 우리는 우리식으로 사는거야. 그래 무슨 돈으로 이렇게 해놓은거야?》 《나 내몸에 달린것 죄다 팔았어요. 보면 몰라요?》 《그래두 그돈 가지구는 어림도 없을텐데…》 《여보, 나 당신 없으니까 바람이 날번했어요. 얼른 씻고 자자요. 네?》 유훈이가 목욕하고 나오니 실한오리 걸치지 않은 미사가 큰 대자로 침대에 누워 기다리고있었다. 이젠 부끄러움도 밀어부치고 알몸을 자랑하고있는 녀자가 조금은 못 마땅했지만 탄복하지 않을수도 없었다. 안해의 육체는 그렇게 완미했던것이다. 밖에 나돌아다닐때마다 감겨드는 배동아가씨들과 한바탕 뒹굴어볼가 하다가도 안해의 매혹적인 몸을 생각하곤 아예 접버리군 하던 유훈이였다. 그는 먹이를 발견한 호랑이 처럼 미사에게 와락 덮쳐들었다… 미사는 행복한 신음소리로 남자를 취하게 만들고있었다. 마음에 불이 달리면 입에서는 불꽃이 튀기마련이다. 얼마나 아늑한 밤인가!따스하고 폭신한 침대가 울리 는 밤의 교향악은 금전다음의 달착지근한 정신적 육체적인 향수이다. 잠에 곯아떨어 진 안해의 머리밑에 베개를 받쳐주다가 유훈은 신음소리를 냈다. 팔아버렸다던 금은 장신구들이 그대로 있었던것이다. 그는 소태를 씹은듯 입이 쓰거워났다. 그날 밤 유훈은 무서운 악몽에 시달렸다…   2.   세상에 깨지 않는 미몽이 없고 파하지 않는 잔치란 없다. 그것을 뒤늦게야 깨친 미사가 할 일은 이제 무엇인가? 드디어 수뢰죄, 재산래력불명죄로 기소되여 갇히게 된 남편을 볼 때 미사는 통곡하고말았다. 속죄하는 길이란 남편을 구하는길이였다. 누군가 팔방미인 장파를 찾아가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세상이 무너져도 장파란  사람을 다시 보고싶지 않던  미사이다. 장파는 중학교때부터 검질기게 달라붙던 남자 였다. 지방대학을 나왔지만 행운을 타서 지금은 무슨 회사의 경리로서 사회각계에 연줄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미사는 그를 만나기가 죽기보다 싫었지만 다른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찾아가지 않을수 없었다. 장파는 중학교동창에게서 미사가 남편일때문에 찾아갈테니 좀 돌보아주라는 말을 들을 때 코웃음쳤다. 그렇게 매정하게 굴던 녀자가 이제 저절로 자기앞에 무릎을 꿇게 되였으니 세상일이란 참으로 묘하게 얽히지 않는가!(망할년, 어디 두구보자. 네년이 얼마나 도고한지…남이 빨던 사탕알이라도 윽깨여줄테다!) 그렇게 담넘어가는 구렁이처럼 속타산을 마친 장파는 웃는 얼굴로 미사를 반가워 껴안을듯이 열정적으로 맞아주었다. 《참, 유훈이가 그렇게 되다니? 전도유망한 친구였는데, 내 립장에서 된다 안된다 단언할수는 없지만 미사의 부탁이니까 한번 구멍수를 찾아보기요. 돈은 다른 사람에 게는 통할지 모르나 이럴 때 나에게 가져오는게 아니요. 일이 풀린 후에 보기요.》 장파는 미사가 겨우겨우 끌어모은 돈을 내밀었지만 끝까지 받지 않았다. 미끼를 던진것이였다. 그 다음번에 찾아온 미사에게 동침을 놓았다. 《잘 안되겠더구만. 요즘 바람새가 세차서…몇이 손잡고 해야 하는데 법원이나 검찰원친구들이 모두 풍향을 보고 자라목처럼 움츠러뜨린단말이요. 가볍게 판결한 일두 아니구해서…》 《판결이요? 그럼 몇해나 걸릴가요?》 《글쎄, 수목이 적지 않으니 한 십년이 걸릴가?》 미사는 앞이 캄캄해났다. 그녀는 비로소 생리별의 절벽가에서 자기 사랑의 깊이 를 들여다보았고 허영심에 받들린 탐욕이 빚은 비극의 참혹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긴 긴 밤 미사는 후회를 짓씹으며 소리없이 울었다. 잃어버린 사랑을 그리는 녀자의 마음은 거개 아름다운 추억의 꽃다발을 엮는것으로 저려드는 가슴을 달래는법이지만 미사는 그냥 그대로 컴컴한 동굴속을 슬픈 눈물로 채우고있을뿐이였다. 쾌락, 행복이란 그것을 찾는곳에서 오히려 깡그리 잃어버릴수도 있다는것을 그는 왜 몰랐던가? 참으로 꿈은 짧고 후회는 길었다. 하루는 장파가 희소식을 전하겠다며 집에 찾아왔다. 미사는 있는 정성 없는 정성을 다해 장파를 접대하였다. 《그래 정말 방법이 없단 말인가요? 모두 장파씨가 귀신도 무릎을 꿇일만큼 신통력이 있다던데요. 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남편을 구해내야겠어요. 》 《렬녀춘향이가 여기에 있었군, 감동되오. 하긴 이 장파가 살손을 대면 안될것두 없는 일이지만 문제는 미사가 나와 잘 배합하는가 하는것인데…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요. 미사도 잘 짐작하고 있을텐데…》 장파의 눈길은 얇은 옷을 터치고 나올듯이 부푼 젖가슴을 눈빗질하고있었다. 《무엇을 배합한단말인가요?》 《무슨 배합인가구? 이렇게 하는 배합이지,》 장파가 미사를 와락 끌어안으며 씨벌거렸다. 미사는 반항할 힘이 없었다. 남편을 위해서라면 이 승냥이에게 잠시 물어뜯겨야 한다고 마음먹기도 했던 그였다. 남편과 사랑을 나누던 침대에서 미사는 반은 허락 하고 반은 거절하는 모순된 심리속에서 장파게 당했다. 녀자의 정조란 아침이슬이런가, 지나가는 똥파리의 날개짓에도 떨어지고 마는 순결의 꽃이런가, 장파가 련거퍼 달려들자 미사는 죽은듯이 눈을 감고 괴로운 신음소리로 터지는 통곡을 짓눌렀다. 《넌 원래 내가 차지해야 했던 녀자야, 이제 남편을 구하겠으면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란 말이야, 알았지?》 불우할 때는 친구도 없는법이다. 미나가 이런 처지에 빠지고보니 모두가 그녀를 쓴외보듯 했다. 남편을 잡아먹고 바람까지 피운다고 장파가 동네방네 소문을 내버린 것이다. 게는 영원히 똑바로 걷게 할수 없다. 학교때부터 구제불능의 부랑자이던 장파는 미사에게 거마리처럼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었다. 그는 순전히 복수심에서 광분하고있었다. 매번 그에게 릉욕당할 때마다 미사는 오열을 짓씹었지만 물리치지는 못하였다. 자기의 허영심과 탐욕으로 하여 진구렁텅이에 밀어넣은 남편을 자기 육신으로라도 구해놓고 다음 어떻게 하려고 마음먹었다. 오직 사랑하는 남편에게 바쳐야 했던 육체, 오직 그에게 바쳐야 행복했던 육체가 장파의 복수의 칼도마우에서 짓찟길 때 그것이 남편을 위한것이라고만 자신을 위안해야 했다.   3.   몇달후 유훈은 5년징역에 떨어졌다. 장파는 그만큼 된것도 자기가 나서서 힘쓴 덕이라고했다. 남편을 구하지도 못하고 몸만 버린 미사는 장씨가 죽이고싶도록 미웠 지만 어쨌든 좀 덕을 보았다고 생각할수밖에 없었다. 남편을 볼낯이 없었지만 미사는 면회하러 갔다. 그러나 유훈은 만나주지 않았다. 그가 어디서 벌써 알고있었는지 더없이 허전한 마음으로 면회실문을 나서는 미사는 그를 위해 바친 무모한 대가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죽고싶었다. 만약 남편이 자기의 더러운 교역을 알고있다면  절대 자기를 용서할수 없다는것은 알고있지만 그래도 한번이라도 보고싶었다. 남편은 꿈에 찾아와서는 그에게 침을 뱉으며 욕했다. (이 더러운 년아, 내 일체를 망가놓고 무슨 면목으로 날 찾아와? ) 그러나 미사는 찾아가고 또 찾아갔다. 그리고 하루건너 편지를 썼다. 기실 유훈은 안해의 비정한 짓을 모르고있었다. 다만 안해가 너무 탐욕을 부리는바람에 자기마저 끌려들었다고 생각하며 미사를 증오한것이다. 그러나 눈물에 젖은 그녀의 진정이 유훈의 차디차게 얼어붙었던 마음을 감동시켰는지 마침내 편지가 왔다. ㅡ미사, 나 마음 고쳐먹고 생각해보니 미사를 미워할게 아니였소. 내 자신에게 탐욕이 없었다면 미사가 아무리 꼬드겨도 넘어가지 않았을거요. 난 사나이답지 못하 게 당신을 거절했지, 당신을 만나고싶지 않은것은 당신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이 모양 이 꼴이 된 내 모습이 싫었기때문이요. 나는 꿈마다 당신의 얼굴을 본다오…죄는 씻 는것이 아니라 용서되는거라오. 그러니 난 당신을 용서하기로 했소… 남편은 끝까지 좋은 남자였다. 나쁜것은 오직 자기뿐이였다. 남편의 매 한마디가 먹물같이 시커멓던 그녀의 가슴속을 씻어주었고 따스한 사랑의 정이 봄물처럼 흘러들게 했다. 그는 사람들의 눈총보다 자기 량심이 부끄러워 학교를 떠나 직장을 옮겼다. 비록 죄지은 몸이지만 일편단심 남편의 뒤바라지를 하며 기다리다가 실토정을 하고 어데론가 사라져버릴 마음을 다지며 자기를 다잡아가고있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날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쓰고있는데 장파가 귀신같이 새여들어왔다. 그 동안 미사의 열쇠를 훔쳐다 복제해두었던것이다. 《왜 함부로 남의 집에 들어오는거야요?》 미사가 생판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하자 장파가 이죽거렸다.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두번째 남편을 두구? 그 따위 죄수는 감옥에서 썩게 내버려두구 나와 결혼해서 살자구, 당신 내 첫사랑이 아니야?》 《당장 나가지 못해요? 사람을 부를테야!》 《급해 말아, 나가야 할때면 어련히 나가지 않을라구, 자 우리 한판 불이 번쩍 나게 굴러볼까? 미사와 해야 난 군이 뚝 떨어지거던!요며칠 못했더니 하 이것보라구, 막 지랄이 나네.》 《건달새끼!썩 물러가!》 미사는 손에 잡히는대로 아무거나 장파에게 쥐여뿌렸다. 그러나 미사가 아무리 발악해도 장파의 우악지손에 잡혀서 할딱거릴뿐이였다. 그녀는 장파가 그러안는 순간 에 팔을 꽉 물어놓았다. 성이 독같이 난 장파가 미사의 머리를 마구 벽에다 쪼으며 으르렁거렸다. 《망할년, 내손에서 벗어나려구, 멋진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야!넌 영원히 내가 들어가고싶을 때 들어가고 나오고싶을 때 나오는 변소란말이다. 이제와서 정조 를 지킨다구? 개나발같은 소리 하지마.》 장파가 욕지거리를 하며 옷을 벗는 사이에 미사가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강도야ㅡ 사람 살려요!》 장파의 철퇴같은 주먹이 미사의 태양혈을 들이쳤다. 미사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 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장파가 바지를 입고 있었고 자기는 라체로 침대에 눕혀져있었다. 《개같은놈, 널 하늘끝까지 가서 고발할테다!》 《개라고? 쳇 이 개좇을 무척 좋아하던데!내 알려주지, 사실 나 너의 남편을 가볍게 해줄수 있었어. 하지만 이 어른은 생각이 따로 있어서 입한번 뻥긋하지 않았 거든, 난 네년에게서 돈일전 받은 일두 없으니까 무서울것 없어, 네가 원해서 잠간 잠간 놀아준것뿐이야, 안그래!지금은 서로 좋아서 들어붙는것은 그 누구도 관계치않 는줄 몰라? 아직 성차지 않으면 한번 더 굴러줄가?》 워낙 막돼먹기로 이름이 있었던 장파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리 없었다. 개입에서 상아가 나오지 않는법이다. 미사가 아무리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저주했 지만 장파는 오히려 사진기를 꺼내여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있는 알몸을 찰칵찰칵 찍어대며 계속 약을 올려주었다. 《날 원망하지 말아, 이건 너 스스로 보여준것이니까, 이제 맘대로 해보라구 이런 사진은 이미 앨범을 만들만큼 많이 찍어두었으니까. 강간당한 녀자가 자기 라체를 마음대로 산진찍도록 내버려둘수 있어? 네가 번마다 고생한걸 갸륵하게 여기고 곱게 다루는거야, 다음부턴 그러지마, 그러지 않아도 싫증날가 하는데…》 미사는 천만뜻밖이였다. 장파가 그렇게 더러운 심보로 자기 욕심을 채울줄은 정 말 상상도 못했다. 눈에서 불이 일었다. 미사는 알몸이란것도 잊고 번개같이 일어나 사진기를 덮쳤다. 녀자가 그렇게 악착같이 접어들줄 몰랐던 장파는 한동안 당황해났 다. 제정신이 아니게 달려드는 녀자가 아무짓이라도 저지를것 같았다.  《개새끼!》 《뭐? 개새끼? 그 아가릴 좀 찢어놓을가?》 장파가 생각없이 손가락을 미사의 입에 넣고 째는 시늉을 했다. 그 찰나 미사가 장파의 식지를 죽어라고 깨물었다. 으드득!소리가 나며 장파가 돼지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발광했다. 발로 차고 주먹으로 치고해도 미사가 죽기내기로 물고있어 도저히 빼낼수가 없었다. 정신이 아찔해났지만 한손으로 녀자의 머리를 비틀려고 모지름               을 썼다. 허사였다. 죽기로 작정하고 달려든 녀자의 악센 이발은 끝내 장파의 손가락을 물어 끊고말았다.  피가 뚝뚝 흐르는 손을 붙잡고 길길이 뛰던 장파는 녀자의 배를 걷어차고 어마지두에 내뛰였다. 사진기도 땅바닥에 나딩굴었다. 한참만에야 제정신이 든 미사는 입안에 그득 찼던것을 왝 토했다. 장파의 더러운 손가락이였다. 소리없이 울고 울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꺼멓게 죽어간 손가락을 비닐 주머니에 넣어 간수했다. 아까 편지를 쓰면서 맹세하는 말까지 록음하려고 켜두었던 록음기가 그냥 돌고있었다. 장파의 말도 고스란히 록음되여있었다. 장가의 죄증이 자연스럽게얼 손에 들어온 셈이다. 미사는 남편이 감옥에서 나오는 날까지 어떻게든 말썽을 일으키지 말고 참고 견 디려고 장파를 기소하지 않았다. 사람을 불러다 새 열쇠를 바꿔달고 j시에에 있는 작은 삼촌집으로 피신을 갔다. 얼마후 삼촌을 통해서 문화관에 전근까지 했다. 그는 가슴을 치며 깊이 깊이 반성했다. 허영은 명예가 무엇인줄 알려주었고 수치와 굴욕은 순결과 량심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야차같은 장파가 어떻게 낌새를 채고 쩍하면 찾아와서 지분거렸다. 《그래, 어디 덤벼봐라, 개새끼보다 못한 놈!이번엔 손가락이 아니라 그 더러운 것두 썩둑 잘라버릴테니까. 어디 한번 기여들어봐!》 미사가 하도 지독하게 나오는지라 장파는 잠시 물러섰다. 기실 장파는 학교때부 터 실속은 없이 그저 소문만 났지 대방이 목숨을 내걸로 달려들면 늘 가슴이 섬찍해 하는 허울뿐인 돌장비였다. 미사가 진짜 눈에 살기를 띠고 달려들자 장파는 정말 어느 때 그걸 내휘두르다가 독한 년이 썩둑할는지도 모른다고 한동안은 얼씬거리지 않았다. 다만 녀자가 어떻게 자기를 유혹하고 남편까지 망쳤는가를 소문내고 다녔다. 《그래, 좋다!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너의 라체사진들을 이 벽에 붙여놓으면 되겠지? 멋있을거야,》 연거퍼 들이닥치는 육체적고통, 정신적압력, 장씨의 류언비어, 동업자들의 백안 시…미사는 더 배겨내지 못하고 단위에 나가지 않았다.   4.   미사가 견딜래야 견뎌낼수 없는 고통의 바다에서 허덕일 때 또 다시 청천벽력같 이 비보가 날아들었다. 사람의 고통은 씹을수록 더 쓰거운 법이던가. 유훈이가 야외 로동중 탈옥하려는 두 죄범을 제지하려고 막아섰다가 단말마적인 발악을 하는 그자 들의 손에 죽고말았다는것이다. 간신히 기대고있던 정신기둥이 송두리째 뽑혀 버렸다. 까무러쳤다가 깨여난 그녀는 자기가 이 세상에 더 살아남을 리유가 없음을 똑똑히 깨달았다. 결국 남편을 두번 죽인 흉수가 그 자신이였던것이다. 저승에서 남편이 불충한 자기를 용납할지 몰라도 죽어가서 남편의 령혼과 만나는 길밖에 더  없었다. 그는 복수의 길에 올랐다. 남편이 죽은지 얼마되지 않아 미사의 반상적인 행동은 사람들을 오리무중에 빠지 게 했다. 그는 변호사를 찾아다녔고 법원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장파가 낌새를 채고 선손을 썼다. 집에다 감추어둔 유일한 증거물인 록음테프도 잃어지고 사진기도 없어졌다. 장파는 미사를 찾아와 이기죽거렸다, 《미친년, 네가 나와 맞서보려구? 지난 날을 잊고 그래도 나와 결혼해서 새롭게 시작하는게 그래두 좋은 일이야.》 그러나 미사는 참고 견디여나갔다. 그는 몰래 울었다. 몰래 우는 녀자는 복수를 다지는 녀자인것이다. 장파는 쩍 하면 전화를 걸어와서 얼리고 닥치고 위협하며 그를 피를 말려죽일작정이였다. 그러나 미사가 그 모든 말을 록음해둘줄은 몰랐다. 아무튼 기소의 길은 멀었고 굽이가 많았다. 사회의 어중이떠중이들과 휩쓸 려다닐뿐만아니라 사회에 든든한 빽까지 가지고있는 장파같은 악질을 한 섬약한 녀자가이긴다는것은 심히 어려운 싸움이 아닐수 없었다. 미사는 드디어 장파앞에 투항했다. 장파는 미사가 자기에게 속수무책인것을 잘 알고있는지라 녀자의 투항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안해가 한국에 나가 6년이 되도록 돌아올념을 하지 않아서 보톨이로 살고있는 그는 이 기회에 아예 미사와 결혼 할 작정까지 하고있었다. 하지만 자기를 해친 고장을 호의를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것을 장파는 몰랐다. 어느새 또 여름이 되였다. 그동안 미사와 장파의 정염도 달아오를대로 달아올 랐다. 미사가 주동적으로 장파를 찾을때가 많았다. 장파는 통천하를 얻은듯 마음이 둥둥 떠다녔다. 그들은 보란듯이 쇼핑도 함께 했고 식당에도 드나들었다. 서산언덕의 과원에 배꽃이 활짝 피여난 5월의 어느날 그들은 산으로 놀러갔다. 신록이 한창인 오월의 숲속에서의 랑만적인 기분속에 둘은 술판을 벌려놓고 희희 락락거렸다. 《자 술은 그만하구, 야외의 동물운동을 한바탕 벌려볼가? 》 사내의 목소리는 잔뜩 비린내에 절어있었다. 《가질것 다 가지고 그냥 하는 짓인데 뭐가 그리 좋아서 재촉질이야? 저기 시내물에 깨끗이 씻고와요. 나 불결한거 좋아하지 않는거 알지?》 《씨팔것, 이제껏 강간하는식이였잖아? 너와는 해두 해두 싫지 않은게 그 굴진 작업이지, 어서 차비해!오늘은 진짜 순종하는 녀자와 찰떡을 칠판이니까.》 녀자는 계산이 확실하게 공격을 들이대고있지만 남자는 준비가 없이 그저 속만 부쩍 끓이고있다. 벌써부터 아래가 뻐근해난다. 남자가 시내가로 내려간후 미사는 광천수병에 무엇인가 재빨리 쏟아넣고있었다. 사내가 돌아오자 잔을 내밀었다. 《자, 이걸 마셔!힘을 부쩍 쓰게 약을 넣었으니까 수캐처럼 두어시간 해야 돼, 아니면 아예 시작도 말구, 이번엔 내가 씻고 올테니 자리랑 잘 펴놓고 기다려요.》 미사는 장파가 보란듯이 풍만한 엉뎅이를 흔들거리며 시내가로 갔다. 《얼른 왔!나 지금 한창이란말이야,》 그렇게 재촉은 해도 녀자는 어째 돌아오지 않았다. 한달음에 달려가 끄뎅이를 잡 아와야지 하며 일어서려니까 하늘이 핑그르르 돌아갔다. 이윽고 미사가 달려왔다. 《이봐요, 왜 이 모양이야?》 미사가 남자의 뺨을 철썩 철썩 소리나게 때려도 싸이나를 먹은 까투리처럼 고개 를 구겨박고 맥을 못춘다. 미사의 얼굴에 살기가 스쳐지나갔다. 그는 가방에서 가는 나이롱끈을 꺼내여 죽은 돼지같은 장파의 두팔과 다리를 큰대자로 네그루의 소나무에 비끄러매여놓고 아무옷이나 집어 사내의 흉측한 곳에 던졌다. 칼탕쳐도 시원찮을 놈팽이를 어떻게 요정낼것인가를 몇백번이고 생각해온 그녀였 지만 정작 손을 대자니 속부터 메스꺼워나면서 가슴이 팔딱팔딱 뛰였다. 그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슬피게 울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장파의 황겁한 목소리가 뒤덜미를 더럽혔다. 《이ㅡ이게ㅡ에 다 뭐ㅡ하느느 짓ㅡ이야?》 미사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돌아섰다. 《뭐 하느냐구? 그래 이제껏 내가 당했지만 오늘은 내가 널 해주는거야,넌 인간쓰레기도 안되는 썩은 개똥이다!》 미사의 손에  술병과 라이타가 들린것을 본 장파는 대뜸 판이 돌아가는게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가살을 부렸다. 《미사 장난두 너무한데, 이걸 풀어놓고…응? 나 잘못했어, 용서해줘! 응?》 남을 해칠때는 인간이하로 잔인하고 혹독한자들이 일단 자기가 당하게 되면 대번 에 얼이 쑥 빠져나가면서 비굴해지는 법이다. 음흉하기 짝이 없고 악착하기 그지없던 장파가 바로 그런 류형의 사내였다. 일이 글러진줄 알자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장파의 입에 그의 양말짝이 틀어박혔다. 장파는 웃어도 불량해보이는 생김새였다. 미사는 희번덕거리는 눈을 보자 소름이 쭉 끼쳤다. 이런 악당에게 수없이 릉욕당했다고 생각하니 더구나 치가 떨렸다. 녀자의 입에서 《빠드득!》 하고 이발을 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장파는 온몸 에 경련을 일으켰다. 미사는 장파의 사타구니에 덮힌 옷에 술 두병을 다 부었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여 입에 물었다. 장파가 사태가 엄중해짐을 느끼자 죽기내기로 요동쳤지만 사지를 갈라서 묶어놓 은 바람에 꼼짝 달싹할수 없었다. 남자의 눈에 눈물이 질퍽해졌다. 그러나 미사로는 아무런 동정심도 나지 않았다. 남자의 몸에 덮혔던 옷밑으로 더러운 물이 흘러내렸다. 장파가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실수를 하고있는것이다. 미사는 속이 울컥 했다. 미사는 남자의 입에서 양말을 뽑아던졌다. 《미사!날 제발 살려줘, 내게 있는 재산 다 줄게…》 《살려달라구? 그래 아직은 죽이지 않을게, 네놈이 그동안 꾸민 짓을 다 털어놓 으면 살려둘지도 모른다. 내 남편의 억울한 넋도 지금 내 옆에서 통곡하고있어, 이 개새끼만도 못한 놈아!어서 썩 말하지 못하겠니?》 장파가 다시 오줌을 질질 갈기고있었다. 《응, 내ㅡ다 말ㅡ할게… 》 장파의 머리맡에서 록음기가 조용히 돌아가고있었고 미사는 오열을 삼키며 울음 을 씹었다. 알고보니 그 많은 회뢰는 다 장파가 자기 리익을 챙기기 위해 사람을 시켜 보낸것이였고 나중에 고발한것도 장파였다. 그는 그만큼 미사를 가로챈 유훈이 를 잡아먹지 못해 속을 앓았고 미사에게 보복하기 위해 오랬동안 별러왔던것이다… 미나가 라이타를 절컥거렸다. 심지를 잔뜩 돋구어올린 라이타에서 불길이 씨익ㅡ 하고 솟구쳤다 꺼졌다 하였다.. 《살려주!누나, 나 죽을 죄를 졌어, 으흑…》 장파는 진정 울었다. 그렇게 하늘이 낮다고 날뛰던 놈이 덩치값을 못하고 찔찔 우는 꼴이 한심스러웠다. 법도 다스리지 못한다는 악한, 오늘 이 비렬한 인간쓰레기 를 산속에서 청리한다고 생각하니 미칠것만 같았다. 《하하하…》죽음을 각오하고 남 을 사경에 몰아가는 녀자의 웃음은 말그대로 소름이 끼쳤다. 소나무가지에 앉아 시름 없이 울던 산새 한마리가 미사의 살기띤 웃음소리에 놀라 포르르 날아가버렸다. 《사람 살려주우ㅡ엄마야!》 장파의 비명이 더 길게 울리기전에 다시 양말짝이 틀어박혔다. 《뭐? 엄마라구? 이 새끼야, 네같은 놈을 내싼 에미를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 드디어 미사의 손에서 라이타가 켜졌고 뒤미처 장파의 사타구니에 떨어졌다. 도수 높은 백주에 불은 잘 달렸다. 장파의 눈은 보기에도 무섭게 튕겨나올듯 커졌고 네각을 버둥거리는 바람에 묶인부위에서 피가 빨갛게 내배고있었고 장파의 동공이 점점 커가고있었다. 미사는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다.   5.   이튿날, 점심무렵 경찰차가 미사네집에 들이닥쳤다. 이웃집에서 가스냄새가 지독 하게 나서 문을 두드리다 못해 경찰을 불렀던것이다. 경찰들이 문을 마스고 방안에 들어서니 가스냄새가 코를 쿡 찔렀다. 문들을 다 열어젖히며 한동안 벅적을 캐서야 사태를 파악할수 있었다. 침대우에 하얀 소복을 한 녀자가 고요히 누워있었다. 그 모 습은 잠자는 모습 그대로였다. 이미 숨은 끊어져있었다. 머리맡에 몇글자 적힌 종이 한장 놓여있었다. ㅡ신성한 법률도 돈앞에서는 하녀로 되는것을 보고 이렇게 참혹한 짓을 저지르지 않을수 없었다. 이는 법률제재에 앞서 천륜에도 어긋난다는것을 나는 안다. 나는 죽 어서도 저주맞은 녀자가 될것이며 복수의 녀자귀신이 될것이다. 그러나 무고하게 죽은 내 남편의 《죄값》과 맞먹지는 못할것이다. 나는 원래 법률의 공정성을 믿고 그 위력의 덕을 보려고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에게 푸른 등을 켜주지 않았고 나는 코밥만 먹었다. 법률이 나약한 녀자의 켠에 서주었더라도 나는 이렇게 비인간적인 수단으로 비인간을 징벌하지 않았을것 이다. 한 녀자가 복수에서 실패하면 죽음로 호소하고 죽음으로 자기를 지킬수밖에 없다. 용서같은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 어처구니 없는 욕망의 대가를 두 목숨으로 치러야 하는것이 안타까울뿐이다… 유서와 함께 록음테프와 이미 무엇인지 잘 알아볼수 없는 더러운 뼈쪼각과 사진 들이 나왔다. 모두 악연해서 입을 딱 벌렸다. 그러나 이튿날 죽은 녀자가 알려준대로 산속을 뒤지니 더구나 끔직한 일이 기다리고있었다. 생식기가 불에서 데여서 형체가 없이 되였고 무섭게 이그러진 얼굴에서 근육이 푸들거렸지만 두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목에서 고양이 앓는소리같은 괴상한 소리만 새여나왔다…                                            2006년 4 월 25 일           
13    지그재그사랑 댓글:  조회:2850  추천:42  2008-01-30
                              지그재그 사랑           최 균 선          생활은 화강암을 가루로 만들수도 있고 화강암가루를  다시 덩이로 만들수도 있다.   그림움의 저 너머에   박군의 안해 정애는 이번 설에는 꼭 온다던 남편이 어째서 못온다는 편지한장 없고 몇달째 돈도 부쳐오지 않자 더럭 겁이났다. 네번이나 편지를 띄웠건만 한강에 돌던진격이였던것이다. 사랑에는 열도가 시금석이다. 그렇게도 열정적이던 남편이 아무 소식도 없을 때엔 무슨 변고가 생긴게라고 정희는 남모를 속을 태우며 몇백번 이고 눈물을 깨물었다. 안해들은 남편의 체온계이고 애정의 풍운조화에 기상관측기로서 남편이 어디서 무슨 짓을 하는지 어떤 징표와 직감으로도 사태를 파악하는 능수들이다. 정애는 아무 래도 남편이 새 맛에 미친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처럼 자기에게 충성하던 남편 을 의심한다는건 자신에게도 부끄러운 일이였지만 꿈속에는 이런저런 녀자들이 나타 나 그냥 예감이 어지럽혀지군 했던것이 노상 마음에 걸려있었다.        이밤도 정애는 딸애를 재워놓고 밖에 우두커니 서서 별빛이 흐릿한 서쪽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불을 환히 켠 려객기가 요란스럽게 밤하늘을 찢으며 서쪽으로 날아간다, (호ㅡ저 비행기엔 누구들이 앉아갈가?만나러가는 사람들일가?타향천리 떠나가는 사람들일가?) 몇해전까지만해도 비행기는 한다는 어른들이나 경리만 타는줄 알았는데 지금은 돈만 내면 아무나 싣고간다. 남편은 돈이 없어 침대차에도 못가고 경편렬차에 앉아 갔다는 생각이 불쑥 나면서 가슴이 알알했다. (아, 난 이제 어째야 하나?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가?그의 부드럽고 정찬 눈길을 다시 볼수 있을가?)정희는 다섯번째로 쓴 편지를 천천히 찢어 날려보냈다. 밤바람에 나비처럼 날려가는 하얀 종이쪼각들을 바라보며 하늘을 우러러 피터지게 불러보고도 싶건만 하늘은 너무나 광막하였다. 도시는 불야성을 이루고있건만 정애의 마음은 하냥 어둡기만 하였다. 남편이 그동안 돈도 잘 부쳐 생활이 그리 쪼들리지 않게 딸애를 키우면서 안온한 나날을 보냈지만 님없는 밥은 밥도 반, 돌도 반이라더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은 잃은지 오래다. 요새는 더구나 싱숭생숭해서 뜬눈으로 눈물젖은 밤을 밝히기가 일쑤다.     떠나기 전날, 남편은 소리없이 흐느끼는 자기를 온밤 달래였다. 그리고 나중엔 자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래오래 한숨을 태웠다. 마지막 정사도 너무 슴슴하게 끝나버렸다. 그때는 그저 리별이 아쉬워 소리없이 울었지만 지금은 쓰고 떫고 매운 맛이 흙속에 비물이 스며들듯이 가슴이 한없이 쓰리다.  그는 이렇게 될바하곤 차라리 자기나 한국에 나갔을걸, 하고 후회도 해본다. 하긴 한국에 나간 젊은 녀자들치고 짝을 뭇지 않은 녀자가 없고 돈을 잘 벌려면 딴짓을 해야 한다지만 적어도 자기만은 남편에게 충성할것 같았다. 지금은 역어빠진 남자들도 집에 두고간 녀편네들이 왜지밭에서 헤맬가봐 돈도 잘 부쳐주지 않는단다. 이것도 저것도 믿을수 없는 세월, 자기만은 가정파탄의 고배를 마시고싶지 않았다.     딸애를 유치원에 보내고 집에 돌아와 우체함에 편지가 있으면 첫련애편지를 받았을때처럼 가슴이 울렁거렸고 오래 편지가 없으면 대번에 마음이 암담해졌다. 설사 온 하늘에 열개의 해가 빛을 뿌린다해도 그의 눈에 빛을 담아주지 못할것이다. 남편이 멀리 나가있는 자기 또래친구들이 거개 정부를 찾아 고독을 달래고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놀아대지만 정희에게는 남편이 곧 태양같은 존재이다.     정애는 궁리궁리하다가 끝내 딸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두고 박정한 남편을 찾아나섰다. 역시 경편렬차에 앉아가며 지루하기 그지없는 시간을 남편생각으로 한가득 채웠지만 마음은 그냥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드디여 하늘끝같은 산두에 도착한 즉시 정애는 공공전화에 매달렸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심이 가슴을 꽉 메웠다. 아침에 차에서 내렸건만 물어물어《리나광고회사》를 찾았 을때는 어느새 점심무렵이였다.     그녀가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바장바장 건물로 다가서는 찰나에 낯익은 남자가 아주 우아하고 풍류스러운 젊은 녀자와 킬킬거리며 문을 나서고있었다. 뛸데없는 남편이였다. 죽지않고 살아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정애는 와락 달려나가 남편을 부를가 하다가 녀자의 직감이 발목 잡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기가 이렇게 찾아나설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것이 분명했다.     남편은 얼굴을 한번 돌리지 않고 녀자와  쏙닥거렸다. 전선주뒤에 숨다보니 멋진 모자채양밑으로 예쁘게 생긴 옆모습만 보였는데 금발머리에 모델들처럼 한들거리며 걷는 맵시는 영화배우를 련상시켰다.  가슴에서 불길이 치솟는듯싶더니 눈앞이 부옇게 흐리면서 하늘이 핑그르르 돌아갔다. 사람들이 많은 큰길에 쓰러질가봐 두눈을 꼭 감고 한동안 숨을 몰아쉬였다. 점심을 먹을 생각도 물마실 생각도 없이 건물앞 길건너에서 넋을 잃고 앉아있었다.   그녀는 비장한 감각을 오리오리 찢어서 씹고있었다. 마침내 자기가 인생비극의 한막을 지척에 두고 아무소리도 못내고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것에 화났다. 이제 비극의 막이 열릴것을 생각만해도 두려워서 숨이 칵 막힌다. 그 이상을 더 보고싶지 않았지만 자기는 어째서 망부석처럼 굳어져서 그들이 점심을 먹고 다시 건물안으로 들어가는것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하는지 스스로도 알수 없었다. 그녀는 후회도 없지 않았다. 이 두해동안 딸애에게 모든 정력을 쏟으며 가슴속 에덴동산에서 봄노래만 불렀던 자신이 너무 등한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렇게 믿고 기다리던 남편이 여기서 딴 살림을 차리고 멋나게 살고있다는것을 본 그는 딸애라도 데리고와서 아빠를 부르며 매달리게나했을걸 하는 못된 생각도 해보았지만 굿이 끝난뒤 쌍장구치는격이라 그저 쓴웃음을 씹어삼켰다. 모든것이 뒤죽박죽이 되여지는 격변기에 안해가 남편을 곁에 꼭 잡아둔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 남자가 굴레벗은 말처럼 아무 암말과나 흘레를 하는 것을 보고도 너그럽게 보아줄 녀자는 세상에 없을것이다. 그러나 사나이들은 안해 들이 자기들의 소행을 리해하여 줄것을 강요하고있지 않는가?(오, 사랑이여, 온 세상에 넘쳐나라!)가령 온 중국의 남편들이 박군처럼 다 이런 노래를 부른다면 이 세상은 과연 어떤 모양일가? 저녁무렵 그들이 다시 나오자 정애는 결과를 생각할새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뒤쫓았다. 자가용은 별장같은 건물앞에 멈춰섰다. 둘이는 껴안을듯 하며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몇시나 되였는지 마침내 도시에 향락의 밤이 군림하고 휘장으로 가리워졌던 창문이 어둑시그레해졌다. 그는 사태의 진전을 너무나 잘 읽을수 있었다. 사랑하던 남편이 첫사랑이고 부녀애고 다 남천방이 되여있었다. 고급침대에서 다른 녀자와 육욕의 향연을 벌리고있는것이 방불히 보이는것 같아서 온몸이 닭살이 되는것 같았다. 그녀는 야색이 짙어가는 이역만리 낯설은 담장가에서 집잃은 어린애처럼 어쩔줄 모르고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정애는 허수룩한 려관방에서 장밤을 울고나서 새벽에 별장의 문지기에게 편지 한통을 맡기고 역전으로 나왔다. 기차는 산산히 쪼각나고만 그녀의 희망과 기대를 남긴채 서서히 떠났다. 남들이야 어떻게 보든 정애는 련결바곤에서 차창을 마주하고 길잃은 어린애처럼 소리내여 울었다. 그녀는 남편을 원망해야 할지, 녀자를 불여우라고 욕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다만 정성담아 함께 부르던 사랑의 이중창도 언젠가는 이렇게 곡조가 흐트러질수 있다는것과 자신은 운명의 희롱을 받고 있다는것만 명백하였다. 집에 돌아온 정희는 부모들에게 아무 내색도 내지 않고 다시 로무시장에 나섰다…                                        애정3중주   산설고 물 설은 광동성산두시, 박군의 인생길에 대전환을 가져다 준 사연많은 고장이다. 두해전, 박군은 실업의 절망속에서 모대기다 못해 무작정 위해시에 갔다. 거기서 일이 여의치않아 갈팡질팡하다기 상해쪽이나 가면 어떨가해서 남행렬차에 올랐다. 경편차칸인지라 오가잡탕의 차객들로 악마구리끓듯 했다. 잔뜩 풀이 죽은 그는 차창에 얼굴을 구겨박고 끝없이 흘러가는 중원대지에 시큰둥하게 상념의 이랑들을 지어갔다. 그런데 맞은켠에 앉은 번대머리 남방치가 구제비소리같은 방언을 섞어가며 자꾸 말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귀찮아서 알은체하지 않다가 보기보다는 먹물깨나 들고 열력도 많은 친구같아서 동서남북 천하대사를 담론하기 시작했다. 타향에서는 초면이라도 몇마디 주고받고 나면 지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박군은 그가 오지랍넓게 좋은 일자리를 알선해 주겠다고 수선을 떠는바람에 꿈에도 생각지 않던 여기로 오게 된것이였다. 아무데서나 려비를 보충하는것도 랑패 없다싶어서 따라왔더니 교외의 편벽한곳에 있는 세멘트공장이였다. 공소과에 있다는 초면친구가 곁에서 좋은 말을 많이도 했건만 인사를 책임진자가 삐딱하게 나오면서 먼저 세멘트포대를 메여나르는 일이나 해보라는것이였다. 막부득이한 경우엔 지랄외 에 다 하려고 작심한 그였고 담방 어디서 품팔이할 자리도 없는지라 한두달 해보려고 행장을 풀고말았다. 매일 땡볕아래 고역에 시달리고나면 녹초가 되지만 저녁을 대충 에때우고 행인도 많지 않은 큰길에 나앉아 오가는 각일각 드리우는 남방의 어둠을 바라보며 소일했다. 그날은 운명적인 날이였다. 한 젊은 남자가 귀엽게 생긴 녀자애를 데리고 걷고있었다. 불현듯 딸애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짜릿해 났다. 딸년은 제에미보다 자기를 더 따랐다. 떠나던 날, 목에 매달린 딸애가《아빠, 가지마, 아빠, 으응!》하고 떼질써서 진땀을 빼던일이 어제같았다. 실업, 생계의 갈림길, 개도 안먹는 돈은 살뜰했던 부부사이에 가슴찢어지는 리별을 당겨오고야 말았다. 잔뜩 배부른 렬차는 단김을 토하며 어서 가자고 소리소리 지른다. 인생의 플래트홈, 떠나는 남편과 바래는 안해, 착잡하게 얽히는 서로의 눈길과 눈길, 가슴을 저미는 기적소리가 고막을 아프게 찢는다. 그날 눈물이 글썽해 있던 안해와 딸애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무시로 구곡간장에 한이 서리였다.           박군은 저도 모르게 재깔거리며 까치걸음치는 녀자애의 뒤를 어정어정 따라갔다. 그애의 모습에서 마치 딸애를 보는듯 싶었는지 모른다. 큰길을 꺾어드는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호기심에 끌려 사람들 틈새로 들여다보니 길옆 세멘트기둥에 앞머리가 박산난 승용차가 구겨박혔는데 핸들우에 인사불성이 된 젊은 녀자가 엎드려있었다.        모여든 사람들은 수십명이나 되였지만 볼거리나 생긴듯이 고아대기만할뿐 아무도 방도를 댈념이 없었다. 박군은 여기가 연길이 아니라는것도 깜박 잊고 꽥 소리질렀다.        《사람이 이 지경 되였는데 구할생각은 없이 왜들 좋아서 야단이요, 좀 도와주어야지! 》        박군이 분노해서 침방울을 튕기며 소리쳤지만 누구하나 응기 없었다. 오히려 웬 싱거운놈이 흥치를 깨느냐는듯이 불쾌한 기색들이였다. 박군은 목석같은 년놈들을 속으로 욕질해대며 혼자서 안깐힘을 써서 녀자를 택시에 싣고 병원으로 달렸다. 녀자가 구급실로 들어가는것을 본 박군이 할일을 다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의사가 불러세우더니 서명하고 보증금 5천원을 내란다. 자기는 보호자가 아니고 구해줬을뿐이라고 구구히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러구보면 아까 구경군들이 강건너 불구경하듯한 까닭을 알수 있는것 같았다. 긁어 부스럼이라더니 이거야말로 생부스럼이 아닌가! 인류생명의 공정사, 백의천사들도 지금은 돈이 앞서지 않으면 환자에게 저승사자가 다가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박군도 그냥 모르쇠를 댔지만 에라, 불원이면 다른 병원으로 가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배짱이였다. 박군으로서는 생면부지의 녀자이지만 어느 정도 상했는지 모르는 사람을 그저 둘수는 없어서 끝내 서명했다. 뢰봉정신이나 박애주의 같은것을 생각하고 그리한것이 아니다. 인성의 지배에 따랐을뿐이다. 박군은 숙사에 달려와 손에 남아있던 돈에다 석달로임을 합하고 공소과의 친구에게서 꾸고해서 병원으로 줄달음쳤다. 사람이 워낙 직심인데다 후더운 박군은 의사들이 자기를 녀자의 보호인으로 치부하건말건 구급이 끝나서도 차마 못떠나고 침대머리에 앉아 하얗게 그 밤을 샜다.        녀자는 이튿날 늦은 아침 기적같이 혼미상태에서 깨여났다.        《아, 선생님이 어제…절 …》        박군은 마치 무슨 나쁜 일이라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그저 얼굴을 붉히며 알릴듯말듯 미소만 지어보였다.        《고마워요. 이제 제가 나으면 곱절로 보답할게요.》        《아니,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시간을 지체했더면…집에 련락이나 하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시오.》        《예, 여기요, 받는 사람에게 그저 리나가 차사고로 이 병원에 누워있다고만 말하세요. 그럼 수고하세요.》 박군이 전화를 해서 10분도 못미처 한 처녀가 달려왔다. 《그럼 잘 조리하시오. 있다가 짬이 있으면 다시 와보지요.》 기실 와본다는것은 말치례이고 목숨같은 보증금을 받으려는게 본의였다. 박군이 이틀후 병원에 와보니 몇몇 처녀애들에게 둘러싸여있던 녀자는 기다렸다는듯이 두툼한 봉투를 꺼내며 밝게 웃어보였다. 《오셨나요?고마워라. 당신은 제 생명의 은인이예요. 이걸 받으세요. 3만5천인데 3만원은 보상금이예요. 이번은 그저 작은 성의니까 섭섭해마세요. 출원하면…어서 받아요. 네 ?》 박군이 어안이벙벙해 서있으니까 녀자는 말에 동을 달아가며 재촉하였다. 《생명은 돈으로 바꿀수 없지요. 하지만 전말이얘요…》 《아가씨, 나 돈을 받자고 사람구한게 아니니까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받으면 적덕이 못되는거지요. 》 박군은 이렇게 잘라 말하고는 제돈만 꺼내고 봉투를 슬며시 베개가에 놓았다. 《너무 적다고 그러나요? 이제 출원하면 더 드릴께요. 네?!》 녀자가 어떻게 사정해도 박군은 딱 부러지게 거절했다. 《그럼 좋아요. 돈은 기어이 받지 않으시겠다니 잠시 이쯤해 두자요. 대신 제가 출원하면 한끼 대접하지요. 이거야 거절하지 않겠지요. 동리나라고 해요.》 처녀의 눈빛이 하도 간절해서 박군은 얼핏 그녀 손을 쥐였다놓고 병실을 나왔다. 처녀의 따가운 시선이 뒤덜미를 따랐다. 한달, 두달, 박군은 여느때처럼 땀에 젖은 돈을 버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리나인지하는 녀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박군이 거의 잊고 있던 어느 날, 여느때처럼 땀벌창이 되여 자동차에 세메트포대를 싣고있는데 호화승용차 한대가 미끄러지듯 달려오더니 멋쟁이 녀인이 하나 내리는것이였다. 동리나였다. 《선생님, 늦게 찾아뵈여 죄송해요. 출원한지 얼마되지 않구요. 밀린 일을 처리하다보니 이제야 찾아뵈여요. 점심에 우리 식사하면서 얘기 좀 해요. 네?》 녀자는 버릇인지 말끝마다 정끌리는《네》를 붙여왔다. 군말없이 따라나선 박군은 리나가 사주는대로 게걸이감식했다. 배속에 변이 날것같았지만 어쩌다 생긴 진수성찬이라 한껏 먹었다. 《말로는 은혜를 다 갚을수 없어요. 조선족남자들은 마음이 뜨겁고 선량하고 의협심도 강해서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을 잘 도와 나선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요. 그러나 이렇게 오빠같이 좋은 분을 만날줄은 몰랐어요. 그야말로 행운이라고 생각 해요. 아니면  제인생에 주어진 운명적인 기연이겠지요.》 《글쎄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햐겠다는 생각은 사람이면 응당 가져야 하는 최저의 도덕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도 어디 사람마다 다 그런가요. 우리에게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삐치지 말라는 전통관념이 있지요. 죽는사람을  보고도 그냥 구경하지요. 그런데 오빠는 낯모를 저를…》 《렬근성은 어느 민족에게나 다 있거든요. 아무튼 오늘 저녁한끼 대접 잘 받아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여기에 오시게 되였죠?그리고 그런 일을…조선족들이 위해나 청도, 상해나 광주에 많이 찾아들던데 어쩜 여기 산두까지왔죠?혹시 어려운 처지에…말해보세요. 우린 친구하자고 말했잖아요.》 《말하자면 길지요. 우리 거긴 말이 아닙니다. 공장이란 공장은 다 황페해지고 기업은 남에게 먹히우고…사람들은 뿔뿔히 외국에 로무나가고…내가 다니던 통용기계공장도…말하자면 실업대군에 신입생이 된겁니다. 》 《들을라니 조선족들은 여느 소수민족들보다 문화층차가 높고 또 그만큼 연변은 번창하고있다던데요…》 《소문과는 달라요, 소문은 발을 달아주고 화장까지 시키기가 일쑤입니다. 기실 빈껍데기죠. 한창 거품경제에 열이 올라있어 오색령롱할뿐입니다. 》 《아, 그랬군요. 참, 조선족들은 한국문이 금방 열리여 나가면 돈을 잘 벌어들 온다던데요. 왜 한국 안나갔죠?》 《잘 벌어온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게 어떤 돈일줄 누가 알겠습니까?기시와 모욕속에서 건져낸 돈이지요. 녀자들이야 더 말할것 없구요.…이쯤 알아두세요, 》 《동포들이 찾아간 고국이니까 잘 대해줄거 아냐요, 우리네 사람들이 가는 미국이나 카나다 같은 기타 나라들은 어디까지나 이방이니까 사람대접을 아니할수 있지만두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한국에서 이방인입니다. 거지동포가 왔다고 여기는지 막 대하고있어요. 국내에서도 제만 올똘하면 먹고 살도리는 있겠는데 그 잘난 돈때문에 인격을 짓밟혀요?내안해도 실업당했는데 위장결혼 해가지고 나가겠다는걸 막아버렸지요. 위장결혼이란게 어디 있어요? 나 그런걸 미친짓이라고 욕하는 사람이지요. 녀편네를 한국에 내보내고 그렇게 축축하게 번돈을 자랑인듯이 쓰는건 남자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요? 》 《오. 박선생님은 원래 그런 분이군요. 돈을 버는데 인격이나 량심이나 인의가 걸림돌이랍니다. 저 경험해봐서 조금 알아요.》 《그ㅡ래요? 나는 차라리 세멘트포대를 메여나르지 한국인들에게 천대받고는 참아내지 못하는 성미지요. 쓸데없이 긴말해서 미안합니다.…공장에서 무얼 했는가구요?왕금년에 이밥먹던 얘기지만 고등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설계과에 분배받았더 랬습니다. 몇년은 잘나가는가 싶었는데…》 《어ㅡ쩜…저는 첫눈에 벌써 박선생이 그저 떠돌이가 아니란걸 감촉했어요. 이걸 잠간 받아보실래요?전 여기에 괜찮게 나가는 광고공사를 몇개 차리고있어요.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우리 공사에 와서 도와주세요. 제가 간절하게 초빙하는바예요.》 얼결에 명함장을 받아보니《동리나광고회사기획부장 박민》이란 금박입힌 글자가 확 안겨왔다. 박군이 마술사라도 보듯이 데꾼해 있노라니 리나는 미소가 담긴 빛나는 눈길로  해석하고 있었고  그런 눈빛만큼 기대심리가 절절하기도 했다.   지그재그사랑   서른네살을 먹은 박군은 그렇게 기연으로 운명의 전절점에 서게 된것이다. 박군은 우연하게 차례진 이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성심으로 일했고 리다를 위해 열심히 뛰였다. 그의 기발한 창조성과 재능은 리다를 감탄시켰고 그만큼 중용 해주어서 로임도 탐탁했다. 박군은 가난에 쪼들리는 안해에게 달마다 적지 않은 돈을 부칠수 있었다. 녀편 네의 가냘픈 등을 쳐먹으면서도 남자노라고 으르렁대는 그런 남자부스레기들을 우습 게 알고있던 그가 실업당하고나서 집에 붙박혀 무위도식하고 있을때에는 정말 안해를 볼 면목이 없었다. 수천명 로동자들이 있는 공장에서 장미꽃이라던 처녀가 그 많은 열련자들을 마다하고 자기에게 시집온것은 자기의 직심과 후더운 가슴때문이였을것이다. 아니면 곁에서들 남자로서 괜찮게 생겼다고 춰주는 얼굴과 늘씬한 체격때문이였을것이다. 남자가 실속없이 그저 허우대만 덜썩 커서 무얼 한단말인가, 그래서 더구나 자신의 무위무능이 부끄러웠던것이다. 박군은 공장에서 소문난 애처가였다. 사람 하나만 믿는다는 안해를 실망시켜서는 안될일이였다. 이제 하늘에서 떨어진듯 대운이 터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체신을 세울수 있게된것이 무엇보다 가슴 뿌듯했다. 자기의 살이 찢기고 뼈가 휘여도 가족 들을 가난에 허덕이게 할수는 없다고 늘 뼈물던 그였다. 그는 이젠 딸애의 장래를 위해서 무언가 할수 있게되였다는 자부심을 안고 사랑도 그리움도 일속에 묻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이런 우연성이 가져온 행운의 일면 만 보고 그것이 나중에 자신의 특이한 운명으로 되여 안해에게 불행을 안겨줄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박군이 밤늦도록 새항목설계에 몰두하는데 언녕 퇴근한줄로 여겼던 리나가 바람처럼 새여들어왔다. 《너무 무리하게 하지 말아요. 식사도 제때에 하지 않고 혹사하다가 병나면 난 어떡해요? 자, 여기 밤참 가져왔어요.》 박군은 사흘굶은 사람처럼 가져온 밥과 채를 게눈감추듯 싹쓸이 해버렸다. 박군 이 어찌나 음식을 맛나게 먹어대는지 리나는 자기도 함께 먹고싶은 생각이 나서 까르르 웃어버렸다. 리나는 남자가 걸탐스레 먹는것이 재미있었겠지만 사실 박군은 한푼이라도 절약하려고 끼니를 건너뛸때가 푸술했다. 《동경리, 돌아가시죠. 난 아직 한시간쯤 더해야 하니까요.》 《경리라고 부르지 말아요. 오빠, 자기 직원이 침식을 잊고 일하는데 제가 어찌 편히 잘수 있겠어요. 오늘은 제가 동무해 드리지요. 혹시 쓸모 있겠는지 아나요?》 리나는 박군에게 정찬 눈길을 보내며 맞은켠 걸상에 앉아서 마치 숙제가 밀려 쩔쩔 매는 어린 아들을 대견스레 지켜보는 어머니같은 그런 눈길로 박군을 어루 쓸었다. 리나는 박군을 바라볼수록 모든 녀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잘 생긴 얼굴처럼 남다른 기품을 가진 남자를 자기앞에 앉혀준 그 소설같은 기이한 인연에 감사했다. 리상가다운 넓고 반듯한 이마, 늘 사색에 잠겨있는듯한 눈과 굳센 의지가 맺힌 입이며가 머리를 잘 쓰고 성격이 강쇠같은 사나이라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잠꼬대하듯 중얼거렸다. (아, 이남자구나!그래 맞다!바로 이 남자다…) 리나는 이 조선족사나이가 진심으로 내준 사례금을 기어코 거절 할 때 벌써 그 덕성에  매료되였던것이다. 이 몇달 드팀없는 그의 인격은 그녀를 사로잡았고 마침내 사업에서는 성공했지만 사랑에는 불행한 서른한살 로처녀를 사랑의 도가니에 푹 빠지게 했다. 리나는 자식까지 있는 유부남을 사랑하게 된 자신이 놀라웠고 도덕과 량심적으로 주저되기도 했지만 박군에 대한 사랑이 날이 갈수록 온 몸을 활활 태우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돈많은 녀자는 안전계수가 높은 남자를 얻기가 힘들다는것을 경험으로 알고있는 리나는 자기의 재산과 돈을 아무 남자에게나 맡길수 없다는 생각이 굳혀 질수록 아무리 몹쓸짓이라도 더없이 믿음직한 이민족남자를 기어이 빼앗아내야겠다는 생각이 굴뚝처럼 일어섰다. 어느새 또 한해가 지나가고 음력설이 돌아왔다. 박군이 집을 떠난지도 어언 두해가 되여왔다. 박군은 이번 음력설에는 백사불구하고 집에 다녀와야겠다고 윽별 렀다. 안해가 보고싶기도 했거니와 더구나 딸애가 보고싶어서 환장할지경이였다. 이런 심리를 언녕 알고있는 리나였지만 또 간청하듯 말했다. 《오빠 마음을 알만해요. 그러나 저도 기실은 너무너무 외로운 녀자이얘요. 저와 함께 여기서 설을 쇠자요. 네?대신 연길언니한테는 제가 돈을 넉넉하게 부쳐 보내 겠어요. 그게 더 돕는게 아냐요?》 박군은 리나의 감정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한순간 흐트러질가봐 늘상 자기를 다잡아오느라 애썼다. 한창 용을 쓸 나이에 금욕한다는건 랑만적이 못된다. 그렇다고 거리에 흔해 빠진 시궁창같은 녀자들과 딩굴고싶지 않았다. 완전히, 그리고 처음부터 도덕적색채를 잃은 성교는 동물의 흘레보다 더 야비한짓이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런 정인군자이던 박군이 지금 애욕의 피리소리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금방 뽑아낸 무우같이 싱싱하고 이들이들한 처녀가 늘 정어린 눈길로 무엇을 바라고 있을 때는 량심을 정염에 구겨박고 마음껏 발설하고 싶었졌다. 자기를 어린애처럼 믿고 따르는 안해에게 미안한 일이였지만 불붙는 웅성을 이겨낼 힘도 없었다. 그런데 리나가 이번에도 함께 춘절을 쇠자고 간청해온다. 그녀의 집에서 설을 함께 쇤다는건 부부처럼 살아야 한다는것을 암시하는것 같아서 지레 가슴이 뛰였다. 박군은 눈이 빠지게 기다릴 안해와 딸을 생각하면서도, 리나의 사랑을 거절해버릴수 없는 자신이 황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떡심좋게 자기를 변호해보기도 했다. 집떠나 오래동안 객지에서 떠도는 나그네치고 누가 동정을 지킨다더냐, 아무도 향락을 막아낼수 없으리라. 성개방이 날로 로골화되고 도시의 가로등밑에서도 빛으로 하여 구속감을 느끼지 않고 성유희가 벌어지고 야색이 몽롱한 곳이면 어데라없이 섹스병이 만연되고있지 않는가, 성은 이미 하나의 눅거리상품으로 팔리고있지 않는가, 그러나 더러운 교역이 아니라 서로가 좋아서 정으로 얽힌다면 그것은 인생의 감미로운 향수가 되는것이다. 그랬다. 리나의 감정은 그런 저층차의 감정유희에 그칠것이 아니였다. 리나가 수요하는것은 그저 웅성이 아니라 령혼과 령혼, 육체와 육체가 하나로 녹아버리는 진정한 사랑이다. 박군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고민했다. 리나의 진정어린 사랑을 구김없는 사랑으로 보답해야 한다면 안해에게 짓는 죄값은 무엇으로 결산해야 하는가? 안해를 버릴수는 없다. 리나의 진정을 기편할수도 없고 더구나 자기 자신을 속일수 없었다.  하다면 나는 어째야 하는가? 박군은 이렇게 오리무중에 헤매다가 심령의 “마지노방선”이 그만 무너져버리여 리나에게 응낙하고 말았다. 집에 못가는 사연은 차차 편지로 알리려고 작심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당신 정말 나의 수호신이야!》 리나가 와락 달려들어 달착지근한 키스벼락을 퍼부으며 어리광을 부렸다. 박군의 두볼에 젊은 녀자의 따뜻하고 탄성이 있는 입술에서 전해오는 감동의 파장이 오래 오래 머믈러있었다. 리나는 아무말 없이 박군의 손을 잡아끌었다. 박군더러 핸들을 잡게하고 자기는  어린애처럼 눈을 감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였다. 리나의 침실을 보고 박군은 웬간히 놀랐다. 그는 딸애가 깊이 잠든후에야 단숨을 죽여가며 운우지정을 나누던 그 허수룩한 나무침대가 생각나서 안해가 더없이 측은 해졌다. 한숨을 쉬는 박군을 야릇한 눈길로 지켜보던 리다가 다가와 살며시 안겨 들었다. 《집생각을 했지요?안해가 아름답다더니 정말 못잊는 모양이네요. 여봐요! 지금 한말뚝에 매여있는 그런 당나귀같은 젊은 남자가 몇이나 있다고 그래요. 정잊지 못하겠으면 하루밤 풋사랑이라도 주세요. 그것으로 저같이 복없는 로처녀는…》 《리나, 나를 리해해주오. 정말 후회하지 않겠소?보다싶이 나에겐 남성 한가지 밖에 없는데 리나는 얼마든지 좋은 남자를 얻어서 아기자기하게…》 《입다물어요. 내 마음을 그리도 몰라주나요?녀자는 한번 멋진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설사 잘못 사랑했다해도 후회하지 않아요. 당신도 나를 알고나면 후회하지는 않을거예요.》 하긴 리나가 박군에게 그저 미모의 녀자만은 아니였다. 녀자나이 서른고개를 넘으면 한철 지난 꽃을 련상하게 되건만 리나는 아직도  생생한 한송이 장미였다. 한창 성숙의 고봉기에 이른지라 몸매는 풍만해졌지만 살결은 맑디 맑았고 소녀들처럼 보드러웠다. 얼굴은 더없이 이쁘지만 요염하지 않고 아무나 범접할수 없음을 나타내는 우아한 기품마저 갖추고있었다. 두 눈은 꿈꾸는 처녀의 그것대로 어찌나 그윽하고 신비로운지 도저히 항거할수 없는 어떤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조금 야비한 말로 날나리허리에 호마궁둥이, 누구보나 웅성이 꿈틀거리게 하는 붕싯한 젖가슴은 무척 탄력이 있어보이고 도도록한 입술에 웃음이 남실 거릴때는 희한하게 매력적이다. 요즘 류행어로 섹시하다고 할지, 거기가 도가니속같이 남자를 몇번이고 녹초를 만들어버릴수도 있겠다는 비린 느낌이 안겨왔다. 박군은 저도 모르게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오래동안 잠자고 있던 화산이 불을 토해내려고 연기부터 뿜어올리듯 박군은 벌써 속으로부터 화염이 끓어번졌다. 리나의 속눈섭도 파르르 떨리는가싶더니 파르스름한 광채가 번뜩거렸다. 자기의 체온으로 녹여주어야 달아 오르기시작하는 안해의 백옥같은 육체가 눈결에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이였다. 굶주린 사나이의 야성이 녀자의 입술을 향해 돌진했다. 정욕이 끓어번지는 마당엔 중간단계란 있을수 없다. 돌진이 아니면 아예 퇴각해버리는것이다. 박군은 덩치 큰 리나를 건뜩 안아 침대에 던졌다. 리나의 몸이 솟구쳐오를 때 꽆사슴을 덮치는 호랑이처럼 덮쳐들어 물고늘어졌다… 리나도 탄성을 올렸다. 로처녀들에게 늦게 찾아든 사랑은 소녀들의 첫사랑과 다르다. 소녀들은 천천히 천천히 열을 올릴수도 있다. 허지만 리나의 사랑은 폭발 적이였다. 그녀는 그동안 밀렸던 정염을 한꺼번에 다 쏟아낼듯이 서둘렀다. 로처녀 들의 가슴에 사랑이 불타오르기는 힘들지만 일단 붙기만 하면 걷잡을수 없이  백열 화되는 법이다.  조폭하리만큼 처녀림을 마구 찍어넘기는 남자의 기세에 리나는 겁먹은듯 몸을 비틀었다. 신음소리도 비탈려있어서 처량했지만 언제 녀자의 그런 사치스러운 표현까지 일일이 보살핀단 말인가, 정복자의 함성이 그 소리를 짓눌러버린다. 숨벅찬 작업이 끝나는가싶다가도 다시 깊고 아늑한 처녀림에서 허둥거리는 박군도 가관이였지만 떳다 갈앉았다 몸을 비틀어대며 기탄없이 괴성을 질러대는 리나의 욕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아름다운 생명속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생명을 깊숙히 개입시키는 남자의 매력, 그것을 너무 늦게 선물받은 자신이 애석해서일가, 녀자의 본능처럼 눈물이 새여나왔다. 질풍노도는 물러가고 항구에 고요와 평화가 깃들었지만 수림은 아직도 설레인다. 지금 세상에서 넋이 없고 량심이 없는 남자들은  자기를 위해 몸까지 바친 녀자를 마치 한물이 가버린 넥타이를 풀어 팽겨치듯 한다. 그러나 리나는 자기가 죽을때까지 사랑하기로 마음 먹은 이 조선족남자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고 믿고있었다. 그날 밤 이후 박군에게는 어느 하나도 버릴수 없는 두가정이 있게되였다. 리나를 발에 걸채일마큼 흔한 정부로 대하기엔 애정이 너무 진지했고 안해 정애를 조강지 처로 생각하기엔 자기가 너무나 무책임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사이비 그대로 유지되여갔다. 정욕은 눈에서 나고 녀자의 허벅지사이에서 꺼져버린다지만 박군은 날이 갈수록 리나의 그 모든것에 깊이 깊이 빠져들어갔다. (아, 남자들이란 얼마나 황당한 동물들이냐?!) 욕정을 억제한다는것은 네굽을 안고 들뛰는 들말을 멈춰세우려하는것처럼 무모 하다. 박군은 그녀의 육체에도 매료되였고 그 많은 재부에도 매료되였다. 자신이 비렬하게 변한것을 뼈저리게 반성해 보다가도 무엇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수 없어 안해에게 편지하지 않은지도 반년이 잘 되였다.     값치를수 없는 사랑   정애의 편지는 이틑날 리나가 먼저 받았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인지라 좀 해서는 속이 떨리지 않던 그녀도 황황해났다. 언젠가는 부딫쳐야 할 녀자였지만 그녀가 선손을 써서 미행하고 별장까지 알아두었으니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고 시앗싸움은 피할수 없이 앞당겨질수밖에 없기때문이였다. 리나는 편지를 박군에 주지 않고 북경민족대학에서 조선어를 전공한 녀자친구 에게 팩스로 보내여 인차 번역해 보내라고 부탁하였다. 이틀후 번역문이 리나의 손에 들어왔다. 번역이 어떻게 되였는지 알수 없지만 그리 길지 않은 편지에 사람의 가슴 을 치는 처절한 사색이 담겨있었다.    사랑했던 연이 아버지에게.     이 편지를 당신의 지척에서 눈물로 쓸줄은 저도 몰랐어요.     저는 이미 모든것을 알고 갑니다. 별장에서 미인과 딴 재미를 보느라고 저와 연이를 싹 잊고 있었군요. 저는 그러줄도 모르고 님찾아 만리길 달려왔으니 닭쫓던 개 울쳐다보듯이란 속담도 이 시각 내 꼬락서니를 표현하기엔 너무 미약해요. 지금은 당신에게 행악질 할 생각이 없어요. 저도 집에 돌아가 많은걸 생각해보고 어떻게 할것인가를 결정하려해요.     당신의 가슴속에 고이 받들려있다는 그 소중한 행복감으로 저는 웃으며 살아왔고 그 행복은 세월이 가도 색바랠줄 모르리라는 굳은 믿음속에서 당신을 태양처럼 받들어왔어요. 그래서 그 무엇으로도 지워버릴수 없는 순정과 사랑으로 우리의 일생을 저 한끝까지 수놓아가려고 애써왔어요.     이 세상에서 제가 마땅히 얻을수 있고 얻어야 하는 유일한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당신의 변함없는 사랑이였어요. 당신도 유일하게 하나인것이 저에 대한 사랑일것 이라고 믿고있었기에 풍운조화를 예측할길 없는 이 시대의 그 모든 유혹과 자유 분방하는 정열의 속삭임에도 눈감아버리고 있는줄 알았어요. 바람새 세찬데 고요히 서고있을 나무가 어데 있는가고 변명하지 말아요.     연길 촌구석에서 공장과 가정의 울타리속에서 여지껏 살아온 제가 시대의식이 너무 무디였던 탓이였을가요?아니면 제가 원래 너무 아둔했다는것이 이제야 드러 났을가요?지금 이러고있는 당신도 바로 남자의 속성이 꼬드기는 모순된 만족과 그것이 준 아픔과 고통으로 하여 말못하는 슬픔과 번민에 싸여있다는것을 전 잘 알고있어요. 당신은 땅크같은 체대와는 달리 너무 순박했거든요,     당신은 지금 도덕과 량심을 두고 괴로와하면서도 자신을 허위의 갑속에 숨기려 하고있어요. 내가 싫증났던가요?그렇다해도 당신이 그렇게 고와했던 우리 연이마저 그렇게 쉽게 잊어버릴수 있나요? 저와 딸에 대한 사랑보다 정욕이 그렇게 중하 던가요?정말 해탈할수는 없었던건가요?해탈되여 저에게로 돌아오면 도덕의 심판을 내려야 하는지 지금 저로서는 모르겠어요. 아아, 정말 가슴아픈 사연을 당신이 엮을줄은 몰랐어요.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더니 옛말 그른데 없군요.     운명의 신은 늘 하나의 목표를 위해 온 정성을 쏟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우롱하기 좋아한다더니 그런가봐요. 나같은 녀자를 노리고  있다가 당신이 나에게 가장 수요될 때 나의 모든것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지금껏 기다리고있었던가봐요. 아니면 왜 그 행복하던 나날에는 희롱질을 시작하지 않았을가요?그 녀자의 무엇이 당신을 사로잡았는지 저는 알수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아요. 확실히 그녀자는 아름답고 우아하고 기품이 도도한 귀부인이더군요. 저는 내 동생같은 그 녀자와 다투고싶지도 않아요. 딴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것도 일종의 죄악이니까요. 그러나 중이 몰래 정사를 해도 풍경이야 쳐야할거 아니예요?귀뺨을 맞고서야 저는 사랑자체에는 영원히 잊을수 없는 아픔이 있다는걸 알았어요…     편지를 읽고난 리나는 조금 안심되였다. 박군의 안해가 마구잡이로 나올 녀자가 아니란것을 느꼈기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녀자가 얼마나 남편을 사랑하고 얼마나 잘 어울려 살았을가를 상상해보니 녀자로서 질투심이 불타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그리고 이 사랑싸움이 자신이 생각던것처럼 그리 쉽게 승패가 결판나지 않으리라는 예감도 들면서 우려심이 가슴을 꽉 채웠다. 정애라는 이 조선녀성의 외유내강한 성격과  인격력량에 은근히 기가 질리는것도 사실이였다.   정말이지 편지에 얼마나 감동되였는지 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정애라는 이 현숙한 조선녀인을 동정할번했다. 그녀는 자책감을 숨길수 없어서 며칠간은 핑게를 대고 박군과 한이불에 들지 않았다. 인정에 굶주리며 자라나서 인정사정을 잘 헤아릴줄 아는 리나는 벙어리 랭가슴 앓았다. 그러나 끝내 그런 나약한 마음을 정리해버렸다. 사랑은 끝까지 리기적이 아니던가?지금은 사랑마당도 전쟁판인것이여늘…     리나는 아닌보살하고 박군에게 편지를 보였다. 박군은 깜짝 놀라더니 얼굴이 붉어졌다 검어졌다 하다기 나중에 하얗게 질려서 금방 염병을 앓고난 사람같이 되였다. 속담에 매듭지은자가 그 매듭을 풀어야 한다지만 박군은 자기손으로 맺은 이 감정의 옥매듭을 풀길 없었다. 박군의 잘못인가? 리나의 잘못인가? 안해는 더구나 아무 잘못이 없다. 무엇으로도 갚을수 없는 감정의 빚을 스스로 걸머진것이다. 너무나 고생이 많았던 안해다. 하루아침에 무직업자가 된 안해는 박군보다 더 빨리 운명의 도전에 응해나섰다. 야시장에서 고구마도 구어팔고 옥수수도 구워팔다가 철남야시장에 나앉아 양고기뀀도 구워팔았다. 호사다마라더니 수입이 꽤 짭짤할때에 그만 판이 깨지고 말았다. 밤거리의 삽살개같은 놈팽이들이 안해의 미모에 반해 밤마다 몰려들어서는 술을 처마시고는 돈도 내지 않고 갖잖게 희롱질까지 하려들었다. 해가 비치면 먼지도 반짝인다던가? 박군은 사발과 녀자는 내돌리면 깨지기마련이라며 아예 안해를 집에 눌러앉혔다. 그러나 워낙 일손을 놓지 못하는 성미인 안해는 이렇게 손을 털고 나앉을수 없다며 모자를 푹 눌러쓰고 로무시장에 나가섰다. 청소면 청소, 회칠이면 회칠, 닥치는대로 일하여 푼돈을 벌었다. 그런 조강지처를 배반한 자기다. 애처가가 애정가로 되여버렸 으니 이런 인생풍자극이 또 있는가, 그런 박군을 리나는 말없이 지켜 보았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있던 박군의 눈에서 줄끊어진 구슬처럼 굵다란 눈물이 주르륵  흘러 편지를 적시고있었다. 리나는 못본체 하며 될수록 담담한 목소리로 꼬집었다.     《뭐라고 썼기에 눈물까지 흘리며 그래요?옷고름을 풀어준 안해가 다르긴 다르군요.그래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며칠후, 리나는 박군에게는 광주로 고찰을 간다고 하고는 몰래 북방담판을 떠났다. 비행기는 육체를 싣고 만리고공을 날고있었지만 리나의 마음은 천길나락으로 떨어지고있었다. 연길에 도착했지만 선걸음으로 찾아갈 용기도 없고 얼핏 방도가 나지지 않아 호텔에서 이틀밤이나 꼬박 새웠다. 그랬다. 그녀도 박군을 잃은후의 자기 인생을 더 생각할수 없었지만 남편을 빼앗긴 한 녀인의 심정을 전혀 아랑 곳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리나는 드디어 흐트러진 마음을 단단히 묶어가지고 철남 어디에  있다는 정희 네집을 찾아나섰다. 생각보다 쉽게 찾았고 실망도 그만큼 컸다. 밤새 내린 비에 길은 엉망이였고 구서구석 쓰레기더미에서 파리가 왱댕거렸다. 생각보다 집은 쉽게 찾았지만 기분은 엉망이였다. 리다가 정희네 단층집문을 떼고들어서자 아무 사상 준비도 없었던 정희는 너무 악연해서 한식경이나 빤히 보기만했다. 놀라기는 리나도 마찬가지였다. 방은 알뜰한 녀주인의 손에 기름기돌게 가꾸어져 있었지만 눈에 띄이게 값나갈만한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텔레비도 자그마한 낡은것이였다. 박군이 얼마나 어려운 생활을 했을가를 한눈에 읽을수 있었던것이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솟았다. 호북산골의 오빠네집이 불현듯 떠올랐고 그 어려운속에서 올케의 눈치밥을 먹으며 겨우겨우 중학을 나온 자신의 그때 처경이 생각나서 소리내여 울어버릴것 같았다.     리나가 더구나 생각밖인것은 정애가 칼이나 방치를 찾아들고 자기를 내쫓을줄 알았는데 오히려 례의법도를 잃지 않고 정중하게 대해주는 그 참을성이였다. 모든 남성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을만한 미모와 기품에 리나는 녀성적인 립장에서 모든걸 읽고 리해할수 있을것같았다. 일에 지치고 거칠어지긴했지만 삼십대녀인으로서는 보존하기 어려운 수련꽃같이 하얀 살결밑으로 파란 피줄이 신비하게 보이고 두볼은 아직도 윤기가 흐른다. 그린듯 맵시 있는 코, 산양의 어진 눈을 방불케하는 크고 까만 눈, 길게 자란 속눈섭, 손대지 않은채 곱게 휘여들고있는 눈섭…박군이 못잊어할만도 한 미녀였다. 이윽해서 정신을 차린 정애가 류창한 한어로 말을 건네였다. 《참 먼데서 왔군요. 앉아요. 루추하지만…연이야, 아빠가 일하는 회사의 경리아지미야, 얼른 인사해야지,》 정애가 언제 남편을 빼앗으냐는듯 그렇듯 대범하고 례절바르게 나오자 제쪽에서 오히려 무안을 탄 리나는 몸둘바를 몰라 녀자애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누가 시키 기라도 한것처럼 계집애도 가슴에 착 안겨들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모성애가 가슴을 후벼댔다. 자기를 안은 녀자가 바로 아빠를 빼앗아가려고 왔다는것도 모르는 그 순결무후한 동심에서 리나의 마음은 여지없이 흔들렸고 자기와 나이가 엇비슷한 이 조선족녀인을 조금 두렵게 생각하는 자신이 불만스러웠지만 어쩔수 없었다. 두 녀자는 마침내 조용한 다방을 찾아 마주앉아 사랑빼앗기 담판을 시작했다. 방금까지도 깍듯이 례의를 차리던 정희가 자못 날이 선 얼굴을 해가지고 말문을 열었다. 《동리나라고 했지요?이름도 얼굴처럼 아주 아름답군요. 동리나,  아가씨, 당신 은 이렇게 미인이고 돈도 많은 녀강자인데 어데 가서 그럴듯한 남자를 찾지 못해서 하필이면 이 불행한 녀자의 남편을 가지려해요. 참 알수 없군요. 우리 연이 아버진 남보다 특별 한데가 없는 남자인데 그의 무엇에 반했나요?》 《당신은 그렇게 오래동안 결혼생활을 하고서도 남편의 남다른 매력을 보아내지 못했단말이예요?참 애석하군요.그렇길래…제가 만리길을 달려온건 바로 그 문제를 협상하기 위해서얘요. 언니, 저를 요정이라 욕해도 좋고 박군씨를 배신자라고 욕해도 좋지만 감정문제란 그렇게 그저 함께 살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아가씨가 말하는 감정문제가 어떤것인지를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알건대는 남녀간의 감정이란 록음테프처럼 아무때나 지우고 새로 올리는 그런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고있어요. 그리고 감정은 샘물처럼 절로 솟아나야지 쓰고싶을 때 짜내여 쓰는 치약같은것은 더구나 아니지요?물론 내 남편이 아가씨의 감정을 꽉 쥐여짰는지 아니면 아가씨가 남자의 감정을 짜냈는지 알수 없지만 아무튼 지금 당신들 둘의 감정은 금방 돋아난 여린 싹에 불과하고 저와 연이아빠의 감정은 비바람을 이겨낸 사랑나무로 깊이 뿌리내린거예요.》 《그건 사실일수 있어요. 그러나 조선족이나 한족이나 일부종사라는 전통적인 관념은 상품경제시대에 와서는 너무 무력해요. 렴치없지만 남편을 이젠 놓아주세요. 그이를 위해서는 그게 더 명지하고  더 좋으니까요. 정말 사랑한다면 대방의 행복을 막아나서지 말아야 하지요. 안그래요? 물론 10년을 살아온 정이 깊다는걸 저도 잘 알아요. 제쓰던 몽당비자루도 정작 버리자면 아까운법인데 사랑하던 사람이야 더 이를데있겠어요. 고통스럽기 그지없다는것도 녀지로서 짐작하고있어요.》 《아가씨가 말한것처럼 모든것이 상품화되여진 지금 사랑도 팔고산다는걸 이 촌구석에서 사는 저도 잘 알고있어요. 그러나 남이 이미 가지고있는것을 헐값으로 사려한다면 안되지요. 지금은 제3자 가 오히려 코대를 세우는 세월이지만 리나 아가씨야 이렇게 무지막지 하게 나와서 되겠나요?》 《언니의 마음을 알만하기에 오늘 40만원을 가져왔어요. 이 돈이면 새롭게 시작할수 있을거예요. 연이는 아빠가 그렇게 고와하니까 제가 기르죠. 저도 친딸처럼 사랑해줄거예요…》 잠자코 듣고있던 정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갑자기 얼굴이 홀쪽해지면서 입가에 어떤 결심을 내린듯 집요한 선이 그려지고 있었고 눈섭은 단 한가지 생각에 몰두하는듯 알릴가말가한 이마의 잔주름을 더 깊게 파올리며 활처럼 구부러져갔다. 분을 삭이느라고 가슴츠레해진 눈에서는 종시 참아내지 못하는 슬픔과 실망, 증오의 암담한 빛이 흐르고있었다. 마침내 정애가 탁상을 꽝 치며 발딱 일어섰다. 《동리나아가씨, 똑똑이 들어두세요. 지금 많은 처녀들이 관내에 가서 돈에 넋과 육신을 팔며 조선족녀인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고 돌아다니지만 이 정애는 아무리 돈이 욕심나도 남편까지 팔아먹지는 않아요. 아무리 가난해도 정애는 가난이 들줄 모른다는 말이예요. 이 돈을 거두지 못해요?내가 정말 리혼장에 도장을 찍어주게 되더라도 일전한푼 바라지 않을거예요. 사람을 잘못 보았어요.》 리나가 다른 의미가 아니라고 해석하려했지만 정애는 홱 뿌리치고 뛰쳐나갔다. 그의 입에는 분명 울음이 물려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러나 모든것에 대결하려는 자신의 의지에 사로 잡혀있는 녀자에게 무서운 힘이 있었다. 리나는 허탈감에 넋이 빠진듯 한식경이나 미동도 없이 넋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었다. 복무원아가씨가 와서 어디 아픈가고 물어서야 정신이 펄쩍 들었다. 40만원의 거액앞에서 한점 흔들림이 없이 표연히 돌아서던 정애의 뒤모습에 비하면 자신이 너무나 리기적인 녀자로, 보잘것없는 왜소한 녀자로 느껴졌다. 돈이면 귀신도 울리는 세월에 돈앞에서 웃지 않은 녀자도 있단말인가?그러나 그런 녀인을 오늘 제눈으로 본 리나는 세상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애와 같은 녀인들의 사랑은 돈으로 값매길수 없는것이다. 리나는 박군이 때때로 깊은 한숨을 쉬던 까닭을 잘 알것같았다.   녀자의 마음   정희는 나흘이 넘도록 그가 다시 찾아오지 않자 그냥 돌아간줄로 알고 너무 혹독했다싶었고 밥한끼 먹여보내지 않은 자신이 저으기  후회되였다. 사실 남편이 리나를 구해주었다해도 은정을 모르는 녀자같으면 오늘의 남편이 있을수 없고 자기는 궁지에 빠져 무슨짓을 했을지 모른다. 너무 막막해서 뒤골목의 루추한 려관방에서 아무 남자앞에서나 치마를 벗는 녀자가 어디 한둘인 세상인가?정희의 마음은 사랑의 침략자가 물러갔다는 안도감대신 먹장구름이 드리운 하늘이였다. 그런데 닷새되던 날 어떤 처녀애가 불쑥 찾아들었다.     《누굴? 나를 찾는단 말이요?》 《아, 끝내 찾아냈네. 전 시빈관에 복무원이예요. 제가 맡은 호실에 들어있는 남방에서 왔다는 젊은 한족녀자가 앓아누웠는데 며칠째 일어나지 못해요. 알아보니 연길에 친척도 없고 잘 아는 사람도 없대요. 그저 (쩡아이, 쩡아이,) 하면서  헛소리 하길래 자꾸 캐여물었더니 아주머니를 좀 안다더군요》 정애의 마음은 무어라 말할수 없었다. 자기 생활에서 소설이 엮어지고 있는듯 했다. 그녀는 심한 갈등을 소태처럼 씹으면서도 마침내 시빈관으로 줄달음쳤다. 리나의 얼굴은 말이 아니였다. 잡담제하고 리나를 업어내려 병원으로 호송했다. 의사는 재생장애성빈혈증이여서 수혈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밤낮 간호 해야 된다고 한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때문에 가슴속에 불티가 펄펄 날리는데 담장 밖에서 날아들어온 보따리까지 안았으니 설상가상이랄가, 이 앓는데 뺨까지 얻어 맞는격이랄가,  원쑤같은 리나였지만 정희는 녀자의 마음이 시키는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간호했다. 병이 거의 호전되던 어느 날.  혼자 소풍하러 나갔던 리나가 그만 촉한에 걸렸다. 남방처녀가 바람새 세찬 북방의 봄날씨에 적응되지 못한 탓이란다. 여기 사람같으면 점적주사나 맞으면 되겠지만 귀부인인 리나에게는 치명적인 일격이였다. 일주일새에 두번이나 수혈은 했으나 두번이나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겼다. 정애는 꼬박 사흘을 뜬눈으로 리나를 지켜섰다. 밥을 먹여주고 대소변을 받아냈다. 하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정애는 리나의 병이 돌아서자 안마까지 해주었다. 근육성위축이 올가능성이 있다면서 의사가 특별히 분부한것도 있지만 무의무탁한 타향에 와서 병마에 시달리는 리나가 미운중에도 불쌍해졌던것이다.…날씨가 따스해지자 리나도 퇴원하였다. 부득부득 돌아가겠다는 리나를 억지로 집에 데려다 몸조리를 시켰다. 리나는 호북의 농촌에서 나서 자랐다. 량부모는 어릴때 산홍수에 밀려가고 두 오누이만 살아남았단다. 자기 보다 아홉살우인 오빠의 손에서 자라서 어렵사리 고중을 마쳤지만 대학시험에 락방하고말았다. 그러자 올케가 입하나 줄일타산으로 고개넘어 로총각에게 시집보내려고 설쳐댔다. 리나가 죽어도 안가겠다니 올케가 아침저녁으로 성화를 바쳤다. 암펌같은 올케의 등살에 배기지 못하여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손에는 단돈 일원도 없었다. 벌어서 꼭 갚을테니 뀌여달라고 올케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욕만 즉살나게 먹었다. 울면서 빈손으로 집을 나서서 고개를 넘는데 마음이 고운 오빠가 녀편네 몰래 마을 에서 200원을 얻어다가 손에 쥐여주었다. 그때로부터 리나는 돈을 한보따리 벌기전에는 고향에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고 입술을 옥물었다. 리다의 파란만장한 인생길은 호북의 모든 큰 도시에 이어졌고 나중에는 상해, 광주, 남경 등지로 뻗어갔다. 그사이 겪은 인간고인들 얼마였으며 흘린 눈물인들 얼마였으랴, 더구나 마음고생은 이루다 말할수 없었단다. 개천에서 룡마난다더니 리나는 원래 처녀꼴이 잡히기 시작해서 남자들의 성화에 몸서리쳤다. 그처럼 인물이 동탕했던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이 헤픈 품팔이자매들과는 완전히 다른 인생자세로 험악한 세상에 도전하고 나섰다. 그의 가슴속에는 오직 돈보따리를 안고가서 올케 에게서 받은 온갖 설음을 청산하려는 옥생각뿐이였다, 리나는 고중때 영어 하나는 특장이여서 여느 자매들이 걷는 그런 험악한 길을 걷지 않게 되였다. 그는 여러 광고공사의 복장모델로 전전하는기간에 언젠가는 자기 의 광고공사를 가지고야 말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남모르게 많은것을 배워나 갔다…먹은 마음대로 얼마간 돈을 벌었다. 그는 떠난지 몇년 잘 되는 고향에 갔다. 올케는 지난일은 까맣게 잊은듯 살갑게 굴었다. 소녀시절에 맺힌 한이 쉽게야 풀릴수 있으랴만 오빠를 위해서라도 망각을 앞세워야 했다. 떠날때 올케앞에서 10만 원을 내놓으며 들으라는듯 말했다. 《이 돈은 오빠에게반 지배권이 있어요. 잘 살아요.》 그렇게 떠난후 리나는 고향에 다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후 성공도 하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사랑에는 지각생이 될수밖에 없었다. 한창 꽃피고 잘 나갈때 그녀에게도 백마왕자가 있었다. 남자는 대학을 졸업한 꽤 번듯한 도회지 출신의 남자였다. 그러나 그때까지 너무 순진했던 리나는 피땀으로 번돈을 백마왕자에게 사기당했고 하마트면 정조까지 떼울번했다. 그때로부터 리나는 가슴에 열쇠를 잠그고 남자라면 그저 멀찍이 담벽밖에 세워두었다. 그러나 도처에 득실거리는 잡동사니의 돈많은 사람들과 얼간둥이 쾌락주의자들의 세계에서 자기를 지킨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리나가 스스로 성공했다고 자긍하는 다른 한가지는 용케도 지켜온 순정을 자기가 처음이자 마지 막으로 사랑할 남자에게  바친 그것이였다. 그의 회사에 박군이 첫남자였던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돈은 쌓이고 청춘은 저믈어갔다. 인생에 회의를 느끼며 확 풀어져 버릴가 자포자기하고있을 때 거마 리처럼 붙어서 피를 빨아 먹으려는 놈팽이가 또 한놈 나타났다. 그날도 그자에게 속히워 야외에 나갔다가 겨우 빠져 제정신없이 차를 몰다보니 길가의 세멘트기둥을 들이박았던것이다… 정애는 리다의 인생담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리나가 말을 잘 해서가 아니였다. 정애는 그만큼 정에 약해있었고 녀자의 마음에 자신을 맡기고있었다. 종족이 다르고 민족이 달라도 녀자의 마음이란 거의 공통한것이 아니랴, 정애는 원한을 가슴깊이 묻어버리고 따나기전까지는 친동생처럼 돌봐주었다. 가는정 오는정은 두 심장에 아름다운 인간애의 한페지를 수놓았다. 리나는 곤히 잠든 정애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때이른 잔주름이 눈가와 귀밑에 슬며시 기여들고 있었다. 리다는 참지 못하고 정희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살며시 갖다대 였다. 넓은 인간세상에 무슨 기괴망칙한 일인들 없으랴,  인생이란 겉보기엔 엄숙한것 같지만 베일을 걷고 들여다보면 우리가 상상할수조차 없는 희비극이 다 그안에 있지 않던가? 인생은 유희이고 유희인것만큼  그대로 지그재그인것이다. 하늘에 태양은 하나다. 그러나 만물을 비춘다. 그래서 태양은 아름드리 나무의 태양도 되고 작은 산꽃의 태양도 되여지는것이며 꽃나비의 태양도 되고 소똥구리의 태양도 된다. 두 녀자에게 있어서 태양같은 존재인 박군은 어느 누구에게도 그늘을 던져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할것이지만 사랑에는 이르지 못할 두가지가 있으니 곧 영원함과 완성인것이다. 생활도 1원 1차방정식만이 아니라 2원2차, 3차방정식이 될수 있다.우주공간에는 수많은 미지수가 있다. 그만큼 해(解)도 많다는것을 우리는 절감하고있다. 인생과 사랑은 동의어이다. 인생의 비밀은 사랑의 비밀이기도 하다. 인생의 수수께끼는 사랑의 수수께끼가 아닌가? 사랑에는 오직 한가지가 있지만 그 부본은 천만가지이며 천층만층이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수밖에 없다. 며칠후 리나는 작별을 고했다. 이 세상에서 권력을 나누어 가질수 없는것처럼 사랑도 나누어가질수 없는것이다. 리나는 가방을 들고 문턱을 넘으려다가 털썩 무릎 을 꿇었다. 《워더 호제제야! 당신은 제가 한평생 보답해야 할 생명의 은인이예요. 그리고 박민씨도…언니에게 머리조아려 감사드려요. 언니, 용서를 빌어요… 》 정애는 리나를 일으켜세워야 하는지 같이 울어줘야 할지 알수 없었다…리나가 떠난후 연이에게 잠자리를 펴주던 정희는 베개밑에서 커다란 돈묶을 발견했다. 정애는 더 생각할것도 없이 그 돈을 리나앞으로 부쳐보냈다. 10여일이 지나 남편이 돌아왔다. 금이 실린 사랑의 거울앞에 선 정희였지만 남편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러나 한없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남편이 보지않는 곳에서 울고 또 울었다. 그처럼 가슴이 쓰라린것은 이미 쏟아준 마음을 되돌릴수 없기때문이였다. 수은은 일단 꽉 그러쥐려하면 새여나가고 만다. 사랑은 자주적이 면서도 개연성도 고유하고있다. 그녀로서는 그런 사랑의 심오한 도리는 알수 없지만 자기가 콩팔칠팔하며 이미 굳어진 과거를 가루낸다한들 무엇이 달라지며 차례질것이 무엇인가? 정희는 그래서 담담하게 나왔는지 모른다. 남자는 잊고 녀자는 삭인다. 남편은 잊고있는지 몰라도 정애는 사랑과 배신, 분노와 복수, 고통과 번민 그 모든것을 샘솟는 눈물로 삭이였다. 순종하는 녀자는 소리없이 울고 복수를 다지는 녀자는 몰래운다. 그러나 정애는 그게 아니였다. 그러 면 도대체 무엇인가? 박군은 그것이 더 궁금했고 일종의 압박감까지 느꼈다.  음력설이 돌아왔다. 리나가  50만원을 부쳐보냈다. 친동생이 보내는 돈처럼 생각하고 이번만은 거절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편지도 따로 보내왔다. 《언니, 제가 또 죄를 졌어요. 저 임신했어요, 박군씨의 아이예요. 해산달이 박두해와요. 박군씨를 나무람하지 마세요. 사랑이란 이렇까지 리기적일가요? 저는 박군씨의 아이를 언녕 가지고 싶었어요. 전 이 아이를 곱게곱게 기르며 살작정이예요. 이제 내게 남은 행복이란 이 안타까운 사랑의 씨앗뿐이예요. 부디 제삶의 기둥인 아이를 저주하지 말아주세요. 아이의 이름을 동박민이라고 다는걸 허락해 주세요…》 정희는 짐작하고 있던 일이라 펄쩍 뛰지 않았다. 아직 움도 트지않은 씨앗을 파헤칠만큼 자신은 독하지도 못하거니와 결혼도 못한 리나자신이 아이를 기르겠 다는데 어쩔수도 없었다. 남자들은 거두어들이지도 않을 소위 사랑의 씨앗을 사대 주오대양에 제멋대로 뿌리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던가?   2001년 9 월 12일                
12    잃어버린 봄날 댓글:  조회:3619  추천:35  2008-01-30
잃어버린 봄날은 오는가.                                                                               최 균 선                                               ㅡ청춘은 창졸한 마음으로 써내려가는 인생의 제2막이다ㅡ   마침내 꿈이 이루어졌다. 연변1중의 입학통지서가 날아온것이다. 마적달중학교를 나와서 지구중점고중에 붙는다는것은 천국의 꿈이였다. 아버지는 그 우악진 손으로 내 어깨를 쥐여박고는 와락 끌어안았다. 《장하다. 아들아! 너는 나의 꿈도 이루었다. 자식, 정말 잘했어!》 마을사람들은 개천에서 룡이 났다고 놀라움을 한가득 모았고 학교에서는 미래의 북경대학생이 나왔다며 전례에 없었던 특별히 의연금을 모아주기도 했다. 마침내 개학날이 되였다. 나는 만리창공을 주름잡는 초고속비행기에나 오르는듯 한껏 들뜬 마음을 뻐스에 실었다. 어머니는 속도를 내는 뻐스에 매달리기라도 할듯이 따라오며 손을 흔드시였다. 눈굽이 젖어들었다. 다심하시던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꼭 명패대학에 가고 박사도 되리라고 윽별렀다. 무연한 훈춘벌은 뒤로 흐르고 나래돋힌 희망은 창창한 앞날에로 질주하였다 8월의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고 차창으로 흘러드는 벼향기는 더없이 향긋했다. 나는 건너편 차창가에 붙어앉아 창밖에 넋을 놓고있는 장미의 옆모습을 슬며시 훔쳐보았다. 그도 마음이 웬간히 들떠있다는것을 읽을수 있었다. 장미는 한마을에서 태여나 유치원도 함께 다닌 소꿉친구였고 소학교에서도 한책상에 앉은 짝꿍이였다. 이성의 계선이 야릇하게 금그어지는 초중에 올라와서도 부반장을 한 장미는 앉은석동 반장인 나와는 자별나서 쉬쉬한 염문까지 날지경이였다. 등교도 함께 하고 고개를 넘는 굽이굽이 하학길도 함께 긴 그림자를 끌며 걸었다. 내가 있는 곳에 장미가 있었고 장미가 있는 곳에 나의 눈길이 박혀있었다. 그러면서 도 얼마나 다투었는지 모르고 얼마나 화해의 웃음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만큼 둘의 가슴에 우정의 무지개다리가 곱게 튼튼히 걸쳐져있었다. 그래서 장미가 이번에 나를 젖히고 마적달중학교의 녀자장원이 되였지만 질투비슷한 감정커녕 내일처럼 기뻐하며 우리 사이에만 있을수 있는 축하를 주고받았다. 장미가 내게 달아준 별명은 흰둥이였고 내가 그에 붙여준 별명은 가시였다. 그애 는 그 빨갛고 죄꼬만 입을 꼭 다물고 있기를 좋아했지만 일단 앵돌아진다 하면 그야 말로 가시돋힌 말로 콕콕 찔러대기를 서슴치 않았다. 나는 말로써 그애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내가 사내애로써 우습게도 그애를 조금 무서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가 무작정 좋았고 많은 일에서 즐겁게 져주었다. 마을에 실없는 아줌마들은 드러내놓고 천생배필이라고 엄마에게 롱을 걸기도 했다.  장미는 자기에게 박힌 집요한 눈길을 의식했던지 내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얼굴 에 패인 보조개에 미소가 남실거렸고 크고 까만 눈에는 아름다운 동경에 빠진 소녀에게만 있을수 있는 꽃물결이 얼른거리고 있었다. 장미의 웃는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나의 마음속에 여지껏 느껴보지 못한 아리숭하고 미묘한 잔물결이 일었다. 례의 장미 특유의 눈이 말하고있었다. 《흰둥이, 너 지금 속이 빈 고무풍선이 되여있지? 조심해, 놓치기만 하면 다시 잡지 못하고 마는거야》 나의 눈길이 전파를 날린다. 《가시야, 이제 너의 그 가시를 내가 싹 뽑아버릴거다, 그냥 져줄수 없어…누가 더 높은 리상의 고봉에 오르는가는 저기 연변1중에서 시작되는거다…》 잔뜩 열기띤 눈길속에서 전파가 오가는 새에 뻐스는 훈춘시내를 벗어나는듯 싶더니 어느새 초모령을 톺느라 부릉릉거렸다. 약골인 장미아버지가 멀미가 나는지 딸을 밀어내고 차창에 머리를 내밀자 장미는 코를 싸쥐고 나의 아버지를 쫓아내고 내 곁에 나비처럼 날아앉았다. 말동무가 없던차 잘 되였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가시야, 너 집에다 가시를 싹 빼놓고 와야하는데, 연길시내애들 늬 그 가시를 받아주지 않을걸,》 《정말 흰둥이가 아니라 할가봐 걱정이니? 시내애들 눈이 네개라니? 뭐라드라, 서울이 무섭다니까 어디서부터 긴다고 했던가?》 《나와도 더는 가시를 내들지마, 어쨌든 나는 그냥 찔리지만 않을테니, 알았지?》 《애, 천룡아, 너 이름이 정말 아깝다야, 네가 정말 머저리룡은 아니니? 학교가서 촌티나게 기죽지 말아라. 누가 뭐라든 우리 훈춘을 웃기는 일이 없이 공부 잘해야 해, 선생님도 열당부했잖아?》 ……………… 드디어 동경의 땅 연길에 들어섰다. 넓다란 거리가 미여지게 북적거리는 인파를 바라보는 나의 가슴은 울렁거렸다. 이제 3년 지나면 나도 시내빠이가 될것이다. 아무 렴, 내가 누군데 이 작은 연길바닥에서 또 한번 솟구쳐 하늘을 날게 될것이다. 뻐스 에서 내려 연변1중으로 오는 동안 산골에서 잔뼈를 굳힌 시골내기로서는 연길의 거리가 그야말로 다른 세계가 아닐수 없었다. 즐비한 고층건물들과 번창한 거리도 황홀했거니와 내 꿈이 피여날 연변1중의 웅장한 청사에는 더구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버지와 함께 재무과에 가서 돈을 물고 숙사를 찾아 나의 침대에 간단한 생활비 품과 옷가지서껀 넣은 허수룩한 가방을 던져버린후 내가 편입된 반을 찾아갔다. 주내 각곳에서 온 아이들은 서로 서먹서먹해 하면서도 은근히 의기양양한 모습들이였다. 원래 시골내기라서 수집은 나는 꾸어온 보리자루처럼 한켠에 말없이 서서 아이들의 옷차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촌학교들에서 왔음직한 친구들도 많았지만 나보다는 다 시내티가 나는 옷들을 떨쳐입고 폼을 내고있었다.        나의 눈길은 어느새 장미를 찾고있었다. 녀자애들의 본성이 그래서인가 푸접이 없기로 락제생인 장미가 어느새 몇몇 애들과 면목을 터놓았는지 소근대고있었다. 워낙 타고난 미모를 등대는판인지 전혀 주접이 들어있는 모양이 아니였다. 하긴 아무 리 눈빗질해도 우리 반에서는 물론 웅기중기 모여선 녀자애들속에서도 한눈에 띄일만 큼의 얼굴들이 보이지 않았다. 장미는 그렇게 삐여진데가 있는 녀자애였던가?          다른 녀자애들은 깔깔대며 자기반에 속한 남자애들속에 백마왕자라도 있나해서 렴탐하듯 가끔씩 이쪽에 눈길을 흘렸지만 장미는 아예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본성 그대로 잔뜩 도고해있는 자세였다. 그만큼 내 눈길이 장미를 놓치지 않고있었다. 장미 가 내 눈길을 의식하지 못했을리 없었다. 처음으로 장미와 눈길 한번 마주치지 못하 는것이 얼마나 속이 뒤집히는 일인지 절실히 느꼈다.     마적달에 있을때도 늘 깔끔하게 입고다녀서 멋쟁이란 놀림을 받은 장미였지만 오늘따라 장미는 시내녀자애들에게 조금도 짝지지 않은 차림새였다. 한쌍의 볼우물이 움씰거릴때마다 웃는듯한 얼굴인데다가 티없이 맑고 애티나는 한쌍의 커다란 눈은 어글어글하여 웬간히 차려입어도 돋보이게 생겨먹은 그애는 다른 녀자애들처럼 곡선 미를 뽐내려고 몸에 찰싹 붙은 옷을 입지 않았지만 녀자애들이 질투할만도 한 미끈한 체격때문에 더구나 이목을 끌었다. 내곁에 남자애들의 눈길이 녀자애들쪽으로 모아 지고 있었는데 분명 장미에게 초점이 박히는것이 분명했다. 까닭모를 질투심 비슷한 감정이 나를 휩쌌다.        그렇게 동경하던 연변의 최고 고중에 왔으니 마음인들 평온하랴, 오늘따라 장미 의 얼굴은 유난히 환하였다. 어느때보다 정기넘치는 눈은 자주 깜박거렸고 긴 속눈섭에는 호기심과 내심으로부터 분출하는 환희와 무엇인가 다짐하는듯 결연한 빛이 매달려있었다. 나는 갑자기 전문 장미를 연구하는듯한 느낌이 들면서 점직 해졌다.     나도 새옷을 입고 멋을 낸다고 했지만 다른 애들에 비하면 관청에 잡혀온 촌닭의 꼴이였다. 나는 저도모르게 찝질한 감정에 사로잡혀 의기소침해졌다. 장기병자인 어머니가 일을 못하다보니 아버지 혼자서 밭일을 하는 우리 집은 마을에서도 가장 어렵게 사는 집이였다. 개학첫날부터 나의  자존심이 별스럽게 비틀어졌다. 아버지가 곤백번 잘하라고 이런저런 당부를 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지경이였지만 내귀에는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슴속에는 허영심만 가득차서 고무풍선처럼 높이 날고있었다. 그것이 나를 천길나락으로 밀어뜨릴것이라는것을 내가 어찌 생각 이나 했으랴, 허영심은 긍지가 아니라 오히려 비굴의 표식이요 보기에 광채로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한송이 꽃과 같다는것, 그리고 허영심으로 빚어진 불행과 슬픔은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다는것을 알게 된것은 모진 세파를 겪고난후였다. 비교의 대문을 열면 불만이 기다리고 자족의 대문을 열면 행복이 들어오는 법이 다. 하건만 개학이 되여 한달후부터 나는 이런저런 구실을 대여 집에서 돈을 가져와 서는 류행멋을 피우기시작했다. 수요가 아니라 허영으로 과소비하는 자신이 스스로 자기의 전도를 저당잡히고 있다는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무시로 변하는 내 욕망의 체구에 알맞는 화려한 외투는 있을수 없었다. 만약 내가 좀더 머리가 명석한 놈이였다면 공부를 잘하는것으로 심리평형을 찾고 자기를 단속했을것이며 훌륭한 학생이 될수도 있었고 좋은 대학에도 갈수 있었을것이다. 장미도 일년이 못넘어 많이도 변했다. 워낙 시내아이들에 있을수 없는 대자연이 하사한 미의 바탕이 훌륭했던 그애는 학교의 꽃으로 되여 같은 녀자애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였고 멋쟁이 남자애들에게는 선망의 백조공주가 되였다. 2학년에 올라와서 나는 떄이르게 사랑병까지 앓게 되였다. 어떠한 리유도 수요하지 않는 감정이 있다면 바로 장미에 대한 내 사랑의 감정일것이다. 그런데 나의 고백에 경미는 놀라웁게도 사람을 시까스르는듯한 대답을 던졌다. 우리는 드디 어 마적달의 본새로 티각태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아도 한번 너를 혼내워줄 생각하고 있었어. 너 지금 제정신이리라고 생각하고있니? 네가 지금 어떤 모양이 되였는지 마음의 거울에 비춰봐라. 사람이 그게 뭐니? 넌 흰둥이긴 했어도 순박한 멋도 있었는데 지금은 마적달의 천룡이가 아니야, 개학날 늬아버지가 점심도 안자시고 그냥 돌아가겠다는것을 울아버지가 억지 로 끌고 가서 국수를 대접했대. 왜 그랬는지 알기나 해? 후에 아버지에게서 그 말을 듣고 내가 다 가슴이 알찐해났어, 그리고 바보처럼 놀아대는 네가 더없이 미웠다. 그런 아버지를… 얘, 나 너와 더 할말이 없어졌다구. 난 너에게 더는 흥미없어, 자꾸 해석하지도 말고 같은 맹세를 반복하지도 말아, 우리의 우정선은 애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는한 연장될수 있을지 몰라, 나를 잘 알기에 사랑하게 되였다고 말할수 있지만 사랑하기에 더 알게 되였다고 말하지 말아라,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네가 배반을 식은죽먹듯 할지 누가 알아? 부모님의 기대도 꺼리낌없이 저버리는 네가 남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장담할수 있어?    네가 이제라도 환골탈태하면 몰라도 알락달락한 궁리를 싹 접어라. 난 열번 죽어도 꼭 일류대학에 갈 작정이니까…우리 함께 좋은 대학에 가자던 약속은 안했던 거로 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는 말인데 네가 영탁이를 질투하고 그와 겨루느라고 엉망을 캐는데 나 참 우습더라. 왜 남자새끼들은 다 그모양이니? 난 아무에게도 관심 없으니 공연히 저혼자 씩씩거리지 말고 이제라도 졸업증이라도 타기에 노력해… 》 장미가 연해연방 기관총질을 쏴대였지만 나는 헛총질 한번 못해보고 부옇게 몰리다가 매몰차게 돌아서는 장미의 뒤모습에 자격지심만 매달았다. 나는 장미의 매섭고 거짓없는 질타을 듣고 또 고민에 빠졌다. 물론 사랑은 시작부터 필연적이 아니기에 론리적으로 발전할수도 없지만 더구나 참을수 없는것은 나의 천사를 먼저 챌수도 있는 라이벌이 눈앞에서 도시출신의 우월성을 뽐내며 거들먹거리는것이였다. 그애는 시의 어느 령도어른의 귀공자인데다 생기기도 기생서방처럼 밴질밴질하게 생겼다. 그러나 그가 누구의 아들이건 얼마나 잘생겼건간에 나는 절대로 내 녀자를 빼앗길수 없었다. 권력을 나누어가질수 없듯이 사랑도 절대 나누어 가질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장미가 보아주든 말든 황소와 배때기 크기를 자랑한 개구리처럼 어리석게도 나의 라이벌과 옷차림이며 사나이 풍도랑 비기느라 안간힘을 썼다. 나는 귀신에게 홀린듯 고급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며 인터넷방에 드나들고 친구들에게 한턱 내기도 하여서 학교에서 아주 의리가 돈독하고 흉금도 넓은 친구로 소문나있었다. 우리 짝패들은 쩍하면 학교에 나가지 않고 록상청에도 가고 당구실에서 시간을 소모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학습성적이 말이 아니였다.    고중2학년이 끝날때까지 나의 이름은 58명중에서 거꾸로 3등이였다. 아버지가 성적표를 보자고 하면 이핑게 저핑게 대면서 용케도 피해갔다. 방학에도 집에 가지 않고 PC방에 사정하다싶이 하여 심부름군으로 일하면서 어중이떠중이들과 몰려 다녔다. 나는 때때로 아버지가 뼈빠지게 농사지어 쌀을 판돈을 겨우겨우 부친다는것을 생각하며 량심을 붙안고 괴로워도 해보았지만 이제 돌아서려면 너무 멀리 왔다고 아 예 체념해버리고 알건달학생으로 나굴렀다. 집에서 후무려내온 돈으로는 친구들과 어 울려 멋을 내기에는 판부족이였다. 나는 뺑덕에미처럼 이애저애에게서 돈을 꾸기시작 했는데 웃돌 빼서 아랫돌 괴우는식으로 맞추어가다보니 3학년에 올라갈 무렵에는 내 힘으로는 도무지 내릴수 없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학교에 나가면 빚군들이 에워싸는 바람에 며칠이고 숙사에 돌아가지도 않고 거리 의 삽살개들의 집에서 얻어먹고 자고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나의 주머니가 텅텅 비 게되자 그렇게 의기충천하던 거리의 친구들도 차츰 백안시하기 시작했다. 먹어라 써라하는 가운데서 맺은 우정은 한가닥 실개천처럼 인차 물이 마르고 더러운 바닥이 드러났다. 드디어 친구들이 문전박대하다가 아예 문전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나는 그제야 허위적인 우정에 환멸감을 느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대학입시가 눈앞에 다가왔지만 나에게는 강건너 불이난 집을 보는듯 했다. 나는 졸업증만 가지면 아버지더러 빚을 내서 일본류학수속을 할 작정이였던것이다. 그러나 우선 다른 애들에게서 꾼돈을 물어주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씻은듯이 싹쓸이해 온 집에서 더 우려낼 기름이 없는줄 알면서도 손을 내밀수 없었다.     평범한 감각은 좀체로 우리들을 나쁜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잘못은 유혹과 추구의 날개밑에 숨어있다. 큰 실수는 굵은 바줄처럼 여러갈래의 섬유로 만들 어진것이다. 그것은 내가 늘 기억하고있던 명구들이였지만 지금의 나에게 다 개나발 같은 소리밖에 더 안되였다.        며칠 밤을 궁리하다가 일확천금하는 길밖에 없다고 작심했다. 기회를 보아서 다른 반 애들의 침실에서 값진것을 후무려내는것이였다. 마침 기회가 왔다. 여느 때처럼 제일 마지막으로 침실을 나오다가 함께 잘 어울려다니던 아래학년의 담배 친구가 들어있는 침실문이 빼끔히 열려져있는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아닌보살하고 그애 이름을 불렀다.        ㅡ철주야. 안에 있니?        대답이 없었다. 하건만 혹시 빈침실에 슬쩍 후무릴 값진것이 없나해서 대범하게 문을 열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여기저기 눈빗질하다가 아래층침대의 베게밑에서 핸 드폰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꿈쩍 놀라서 식은 땀을 뺐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번개같 은 생각이 손을 뻗치게 했다. 삼성패 한국핸드폰이였다. 나는 담방이라도 덜미를 잡힐 것같아 후들거리는 다리로 침실문을 나섰다. 층계를 내리려고 발을 내디디려는데 복도 귀퉁에 있는 위생실에서 한 아이가 나오더니 휘파람을 불며 침실로 들어가는것 이 곁눈에도 보였다. 그 침실이였다.        나는 층계를 세계단씩 뛰여내려 숙사를 빠져나온후 교실로 향하지 않고 교문밖에 서 택시를 불러탔다. 시내의 핸드폰중고품매대에가서 별로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2천원에 팔았다. 한국핸드폰이 금방 사용되기 시작한 때이고 워낙 새것이여서 생각 밖에 그만큼이래도 받을수 있었다. 나는 뛸듯이 기뻤다. 이젠 빚을 다 물고도 친구 들과 한상 퍼지게 차려먹을수 있게된것이다. 그러나 좋은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학교보위과선생님이 나를 불러 조용한 칸에 데리고 들어가더니 다짜고짜 주먹닥질해댔다. 도적이 제발 저리다고 지은 죄가 있는 나인지라 찍소리 못하고 다듬이질 당했고 낱낱이 이실직고했다. 하지만 돈은 이미 빚으로 거진 나갔고 식당놀이까지 하다보니 주머니속엔 잔돈밖에 안남았다. 숙사의 특대절도안건은 이렇게 인차 들통이 났고 처벌이 곧 내려졌다.        학적제명에 핸드폰값 3천백원을 배상하고 벌금 5백원까지 내야 했다. 눈앞이 캄캄한데 부모가 직접와서 도장을 찍고 결산해야 한다는것이다. 소낙비가 억수로 쏟 아지는데도 아버지가 달려왔다. 나에게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고난 아버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질렸다. 그 큰 주먹을 들어서 한주먹에 내골을 박살내려고 입술을 앙당그 려물던 아버지는 한동안 노려보기만 하다가 맥없이 주먹을 내리웠다. 얼굴에 얼기설 기 얽힌 밭고랑같은 주름살에 눈물이 덧거니 맺거니하였다. 땅꺼지게 내쉬는 한숨은 예리한 비수마냥 내 가슴에 박혔다.        아버지는 너무 억이막혀 말문이 닫겼는지 아무 말도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마라초를 말았다. 그러는 아버지의 모습을 곁눈질하면서도 나는 앞으로의 머나먼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았고 천문수자같은 빚을 아버지가 어떻게 갚고 어머니 병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며 온집이 어떻게 살아갈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았다. 담배연기에 사래들면서도 연거퍼 두대나 태우고난 아버지는 내 팔을 세괃게 잡아쥐고 교장실로 향했다.        아버지는 교장선생님을 보자 다짜고짜 무릎을 털썩 꿇는것이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보기 부끄럽습니다. 다 제가 아비구실을 잘하지 못하고 교육 을 잘하지 못한 탓입니다. 학교에서의 처리는 다 지당합니다. 구류소에 집어넣지 않은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 난데없이 뛰여든 사람이 잡담제하고 무릎부터 꿇고 눈물범벅이 되여 사정하는것 을 어정쩡해서 바라보던 교장선생은 그제야 갈피를 잡았는지 아버지를 부추겨세우며 핀잔조로 말했다. 《이게 무슨 행동입니까? 어느때라고…참, 할말이 있으면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 해도 되는데 이렇게 사람을 난처하게 굴다니요? 》 《아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벌금은 얼마라도 내겠습니다. 배상도 하구요. 다만 저 애에게 고중졸업증만은 내주시여 살길을 틔워주십시오. 예? 제가 이렇게 무릎꿇고 빌겠습니다. 》 사십이 갓넘은 젊은 교장앞에서 50대 중반인 아버지가 무릎을 꿇은채 일어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이 아픈지 쓰린지도 몰랐다. 후에 안일이지만 아버지는 집에서 기르던 암소와 송아지까지 다팔아서 빚을 갚고 졸업증만 가지면 다른 현의 어느 고중에 재학시켜서라도 대학시험을 치게 하려고 작심했던것이다. 아버지로서는 내가 죽이고싶도록 미웠겠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학교에서 쫓겨나게 할수 없었던것이다. 나는 시골중학교때까지는 아버지의 자랑이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기보다 퍽 아래인 교장선생에게 말끝마다 님자를 개여올리면서 손이야발이야 빌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굶어죽어도 자기가 못한 대학공부를 아들에게 시킨다고 뼈무르던 아버지의 마음이지 이미 타락할대로 타락한 구제불능의 탕아로 된 나는 배움의 성당 에 들어설 마음이 꼬물만치도 없었다. 아버지가 고중졸업증을 가지기나 했는지 어쨌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먼저 학교를 나와 무작정 역전으로 가는 뻐스에 넋을 잃은 몸을 실었다. 고향마을에 돌아갈 용기가 없었던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내 척추가 끊어날것이고 불효막대한 놈이라고 욕하며 튕길 침방울이 나를 익사시킬것만 같았던것이다.  단돈 몇원밖에 없는 나는 연길에서 안도까지 가는 표를 끊어가지고 심양행렬차에 가만히 올랐다. 어릴때부터 나를 무척 귀여워해주시던 이모에게 가서 잠시 숨어있을 작정이였다. 그러나 나는 어떤 수를 쓰든 렬차원들의 눈을 피해 끝까지 가야할 내 신세가 한심했다… 운수좋게 심양역을 무사히 빠져나오긴 했지만 어데로 가서 이모의 집을 찾아야 할지 막연했다. 밤새도록 찾고 이튿날 점심때까지 찾아서 겨우 초인종을 누르니 낯 선 녀인이 나와서 얼마전에 새 아빠트로 이사갔다고 했다. 그야말로 인생고가 시작될 판이였다. 련사흘 공지란 공지를 다 찾아다니며 일거리를 얻으려 했으나 어데서 굴러온 놈이냐고 욕만 먹고말았다. 하얀 얼굴에 갱핏한 내 체구가 그들의 마음에 탐탁하게 여겨지지 않을수도 있었고 원체 조직적으로 도급맡은 일에 나같이 중뿔나게 찾아든 놈을 받아들일수 없다는것을 나는 후에야 알았다. 아무값도 가지 않은 내 눈물이 그제야 지난 3년간의 악몽을 씻어주었다. 나는 주린배를 안고 대합실구석에 쭈크리고 앉아 뼈저리게 느꼈다. 응당 지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나이에 사악의 잡초만 키웠을뿐만아니라 옹근 봄을 잃어버린것이다. 몸에 지녔던 돈이 거덜나고 진짜 알거지가 된 나는 후들거거리는 다리를 끌며 지향없이 걷고 걸었다. 발자국마다에 회한이 고이였는지도 모른다. 심양시 제일중이라고 요란한 간판을 건 으리으리한 교문앞을 지나며 보느라니 대 도시아이들답게 청신하게 차려입은 남녀애들이 웃고떠들며 들락날락하였다. 나는 다시 한번 복속에서 복을 모르고 허송한 나의 봄날을 생각하였다. 한번 가버린 봄이 이제 다시 못올줄 알면서도 가슴을 어루쓸는 나자신이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같이 여겨졌고 인간쓰레기같았다. 나는 자존심은 살아서 어느 식당에 들어가 남이 먹다 남은 음식찌끼라도 얻어먹 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냥 빈속으로 돌아다니다가 해질녘 역으로 나가는 길도 잃고 해서 채소도매시장안으로 들어갔다. 장사군들이 다 가고 날이 어두우면 생고구마쪼각 이라도 얻을수 있을가 해서였다. 잔뜩 굶주린 사람에게는 점심때가 따로 없고 목이 몹시 갈하였을 때 마시는 물에서 확실히 어떤 맛을 느낄수 있는법이다. 날은 차차 어두워졌다. 여기저기 어둠을 헤치며 다니던 나는 더는 지탱하지 못하 고 쓰러졌다. 배고픔과 비바람에 열이 올랐던모양이다. 내 젊은 목숨이 이렇게 낯선 거리바닥에서 허무하게 끝나는가싶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점점 의식을 잃어버렸다. 이튿날 내가 깨여났을때는 어둑시그레한 곳에 누워있는것을 발견했다. 나는 놀라운 눈길로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구석쪽에 남새가 무져있는것을 보아 남새창고 같았다. 그제야 보니 침대란 두개 긴 걸상우에 널판지 몇잎을 편것이였고 거적을 두벌 깔고있었다. 침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람통으로 만든 난로가 있었고 난로우에 놓인 자그마한 납가마에선 무엇인가 끓고있었다. 내가 깨여난것을 보자 나보다 두어살 이상이 돼보이는 청년이 사람좋게 벌씬 웃어보였다. 《아, 마침내 깨여났구나. 》 말을 마치자 가마안에서 죽같은것을 사발에 퍼담아들고 침대가로 다가오더니 친절하게 말했다. 《보아하니 며칠 굶은것같군. 먼저 이 죽으로 위를 다스리라구.》 학교에 있을때 같으면 더러워서 구역질했을 나였지만 여윈개 언똥을 가리랴! 사흘이나 굶은 놈에게 체면이 있을리 없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도 생략해버리고 입천장이 데는줄도 모르고 련거퍼 세사발이나 마셔버렸다. 천하일미는 진수성찬에 있는것이 아니라 허기진 배에 있다는 말의 의미를 체험으로 새기는 판이였다. 그러는 내 꼴이 기막혔던지 청년이 껄껄 웃었다. 더운죽이 들어간 위에서 사지에 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쎄쎄닌!)하고 뒤늦은 인사치례를 했다. 말이 끝나 자 이 며칠 죽도록 고생한 일이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황소울음이 터졌다. 청년이 담배를 권하며 한식경이나 안위해서야 나는 겨우 울음을 그쳤다. 청년은 내가 순서없이 엮어대는 말을 묵묵히 듣고나서 깊은 한숨을 토하더니 차지도 덥지도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구만, 허 이거 나와같은 룸펜이 이 심양거리에 또 한명 나타났군그래. 그런 데 장차 어떻게 할 작정인가?》 내가 그저 머리만 절레절레 흔들자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조선족이지? 나 이름은 왕명이구, 산동 량산박부근에서 왔어. 이제 직접 체험하고 보니 절실하게 느껴지겠지? 기실 우리는 잘못 판단했기에 버리지 말아야 할 길을 다 가지 못하고 한걸음이 천고의 한이 될 그 길을 걸은거라구  그 길은 가면 갈수록 비탈지고 험난해지면서 낭떠러지로 뻗어간 길이야, 안그래? 》 나는 그의 《우리》란 말에 신경이 살려졌다. 《방금 우리라구 했지? 그럼 형님도 나와같은 경력을 겪었단 말이요?》 《그래 맞다구, 나도…내가 저지른 착오는 더구나 황당하고 대가가 침중했어, 내가 한쪽다리를 절게 된것은 무리싸움에서 칼에 찍힌후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고 신경이 좀 잘못된 탓이라네. 게다가 나에게 맞은 애의 집에서 무리지어와서 우리 집을 박산냈어. 어머니는 분김에 강에 뛰여들어 죽고말았어, 내가 어머니를 죽인거지,   아버지는 낫을 들고 나를 찍어죽인다고 길길이 뛰였어, 나는 별로 살고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본능적인 공포심에서 집을 뛰쳐나왔지, 그리구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집에 돌아가지 못했어. 아버지가 농사지어서 고중까지 보내주었는데 보답은커녕 이렇게 속만 태워주니 내사 불효막심한 개놈이지. 난 밤마다 혼자 생각하면 정말 한심하네. 도무지 자신을 용서할수 없는 죄인이 된 오늘 내가 계속 살아야 하는가를 의심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네.》 그는 말을 채마치지 못하고 두손으로 더부룩한 머리칼을 마구 잡아뜯으며 오열을 토하였다. 나는 다리꺾어진 노루가 한굴에 모인다더니 세상에 이런 공교로운 만남도 다 있냐싶으면서 그를 와락 그러안고 함께 꺼이꺼이 울었다. 그날부터 나는 왕명을 형님이라 부르면서 함께 남새장사를 시작했다. 매일 꼭두 새벽에 일어나서 삼륜차를 몰고 먼곳의 시교에 가서 직접 밭에서 남새를 넘겨다가는 아침시장에서 팔았다. 우리는 힘은 넘치고있으니까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뛰였으며 남보다 눅게 팔았다. 그러다보니 너른 마당쓸기를 하면서 많은 단골까지 만들어 놓았다. 비록 일은 고되였지만 하루 순리윤이 몇십원씩 되였다. 게다가 잘곳이 있고 먹을것이 있어서 힘드는줄 몰랐다. 월말이 되여 결산해보니 돈이 적지 않았다. 집세 물세를 다 떼고도 두어달 지나서  한사람앞에 천원이 차례졌다. 나는 똑같이 가질수 없다며 견결히 사양했다. 그러나 그 의 고집은 나보다 더 검질겼다. 《더 말 말게!동생, 과거는 과거로 굳어져있게 내버려두자구. 응? 우리가 비록 오 다가다 만난 친구이긴 해도 의기상투하지 않았어? 이렇게 제힘으로 돈을 벌어서 먹고 잘수 있으니 우리도 구제불능아는 아닌것같아, 하하하…》 말을 마친 그는 백원짜리 한장만 꺼내여 안주머니에 넣더니 어디로 나갈 차비를 했다. 《형, 어데로 가려구?》 《나 벌써 3년동안 집에 안갔다구. 집에서는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있 지, 늦게라도 효성을 조금 할가구 우정국에 갔다오겠네.》 그렇게 말하는 왕명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고있었다. 얼굴은 더없이 비통한 모습이여서 보기조차 민망했다. 나도 온밤 잠들수 없었다. 정말 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사는지… 어머닌 병이 더 위중해졌을것이다. 나는 악몽같던 지난날을 돌이키며 눈물을 삼켰다. 그러면서 묘망하고 또 도피 할수도 없는 나의 인생행로를 생각하며 오래도록 울었다. 그래 한번 실족했다해서 이제 금방 시작된 인생행로의 끝까지 유감과 참회를 가지고 가야한단 말인가? 내 청춘을 그냥 이렇게 남새시장과 시교를 전전하면서 썩여야 한단말인가? 나는 고통 속에서 자기를 반성했고 후회속에서 자신을 해부하였다. 자기 청춘과 래일을 가지고 장난질한 나를 진짜 현대머저리라고 해야하리라 담방이라도 차표를 사가지고 고향으로 달려가고싶었지만 참았다. 이미 늦어진 길을 다그쳤대야 지금 곧 남들을 따라잡을수도 없는바하고 조금이라도 돈을 모으고 싶었다. 그날 밤, 나의 심사를 손금보듯 꿰뚫어보는 왕형이 연신 맥주병을 따며 일장 설교를 토해냈다. 《동생, 내말을 잘 들으라구, 내가 동생처럼 길가에 쓰러졌다가 한 마음씨 고운 젊은 중에게 구원받아 절에 가서 한달동안 몸조리 할 때 그 박식한 중이 나에게 하던 말이야, 절망이란 의지박약자의 결론이야, 오직 한가지 상황에서만 절망은 돌이킬수 없이 철저한데 바로 사형집행서를 받는것이라는거야, 목숨이 붙어있으면 곧 희망이 있게 된다. 희망은 생명이고 생명도 역시 희망이다. 사람은 죽었지만 희망은 떠돈다. 절망하지 말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하지 않는가?   절망은 우둔한자의 리유일뿐이다. 절망이 한걸음 나서면 자멸이요 돌아서면 무서운 악을 낳는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뒤를 돌아볼줄 모른다. 사나운 운명이 지꿎게 뒤따라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세상에는 절망에 빠질 처지가 있는것이 아니라 처지에 절망하는 사람이 있을뿐이다. 설혹 너의 형편이 절망하지 않을수 없더라도 절망은 하지 말라. 이미 끝장난듯 싶어도 결국은 또 새힘이 생겨나 기마련이다…》 마디마디 페부를 찌르고 힘을 주는 말이였다. 나는 살아갈 용기를 찾았다.왕형과 나는 제각기 3륜차를 몰고 남새를 실어다 팔았을뿐만아니라 낮결이면 페품수구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공동체》는 의좋게 꾸려졌으며 우정은 생사지교로 더 극진하게 되였다. 나는 서점에 가서 고중교과서들을 한벌 사다놓고 저녁이면 왕형 에게 물어가며 늦깎이 고중공부를 했다. 왕형은 워낙 특별히 머리가 좋아서 그번 싸움만 아니였더면 제남대학에라도 갈 우수생이였다는것이 과목마다에서 알렸다. 왕형은 부지런도 했거니와 장사리속도 나보다 몇배 나았다. 그러나 돈을 더 많이 가지려는 티도 없이 제친동생처럼 생각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강개하게 나오는 왕명 을 보며  량산박호한들중 누구의 후예가 아닌가고 생각했고 우스개삼아 캐여묻기도  하였다. 왕명은 그저 웃어넘겼지만 산동사람들의 전통인 무술 몇가지는 좀 익힌게 있다면서 쯤이나면 가르쳐준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서 무술을 채배우지 못하고 이듬해 그와 갈라지지 않을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늦기전에 학업에 달라붙어야 할것같았다. 내 생각을 말하 자 왕명은 친동생과 갈라지는듯 애석해서 눈물까지 지으면서도 극구 잡아두지는 않았 다. 내가 그만한 돈이면 연변에 나가서 어느 사립학교같은데 들어가 일년 다니고 대 학시험을 칠수  있지 않는가고 권유했지만 그는 상한 다리를 쳐들어보이며 허구프게 웃었다. 《아무튼 나는 포기했어, 너나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라구, 약속하는거야. 응? 내가 종종 전화할테니까, 이 량산박형을 잊지말라구, 우리 중국말에 집에서는 부모에게 의지하고 타향에서는 친구에게 의거한다는 말이 있지, 내가 이제 남새 점이나 꾸리고 돈벌이 되면 동생의 학비도 보태줄지 모른다구, 하하하…》 말만 들어도 고마웠다. 우리는 플래트홈에서 계집애들처럼 서로 부등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영원한 형제지정을 맹세했다. 《동생, 같은 돌에 두번 걸려 넘어진다는것은 세상에 웃음거리가 되는거야, 명심하라구! 응?》 점차 속도를 내는 렬차를 따라오며 손저어주는 왕명의 사나이다운 모습을 나는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넣었다. 후회는 인생에 대한 가장 좋은 해석이 된다고, 누가 말했던가. 차창가에 머리를 구겨박고 석별의 정과 쓰라린 후회를 씹노라니 어느새 차창에 어스름이 깃드는듯싶더니 칠백리료동벌이 완전히 어둠속에 잠겼다. 인생은 응당 잘못을 범해야 한다. 잘못은 견식을 늘여주기때문이라는 말을 믿어야 할지 나는 알수 없다. 기차는 숨가쁘게 씩씩거리며 밤을 누비며 나갔다. 아니 새벽을 향하여 달려간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동안 왕형은 많이도 속삭였다. 꿈이 있는 사람은 모두 희망의 협곡에서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지난날 너에게는 깜박이는 불빛이 있었고 오늘날 너에게는 타오 르는 불빛이 있다, 그리고 미래에는 너의 운명과 인생길을 비추는 광명이 있을것 이다. 희망이 도망치더라도 용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희망은 때때로 우리를 속이 지만 용기는 힘의 입김이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무엇이냐? 가냘픈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같고 위태로운 가는 거미줄과도 같다. 희망은 잔디풀처럼 날때부터 떨지만 그래도 생명의 령혼이고 마음의 등대이고 성공의 향도자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에게 있어서 희망이란 한잔의 술, 마시기도전에 쏟혀버린 쓴 술이였다. 내 인생의 려정에 다시 해가 솟을 래일! 막연한 느낌속에도 젊은 패기는 뜨거운 피속에서 고패치였다… 아아, 잃어버린 봄은 과연 오는가?!!                                        2006 년 6 월 20 일  
11    직업수요 댓글:  조회:3604  추천:23  2008-01-30
단편소설                           직업수요   최 균 선     그들이 신혼려행에서 돌아온지 며칠 안되여 하루는 배우처럼 아름다운 한 낯모를  아가씨가 찾아왔다.     《안녕하세요?천수만씨 맞습니까? 신혼을 축하합니다. 》     둘은 느닷없는 미인의 출현으로 어안이벙벙해서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만 누구시지요? 전혀 안면이 없는데요. 그리고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집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요?》 《호호호…이상하게 볼것은 없구요. 전 MHK보험공사에서 왔는데 리나라고 불러 요. 우리는 전문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이 있지요. 그건 중요하지 않구요. 제가 찾아온 사연은 다름이 아니예요. 우리 공사에서는 현시대 리혼률이 급증하는 심각한 사회 현상을 연구하고 분석한 기초상에서 현대혼인보험항목을 새로 개발했어요. 매년 일정한 결혼보험비를 내고 보험기가 찰땔까지 혼인이 여전히 유지되고있으면 굉장한 보험금을 내드리지요. 당신들은…》     성미가 급하고 입이 날카로운 색씨가 더 듣지 않아도 다 알도리가 있다는듯 리나의 구구한 설명을 중둥무이해버렸다.     《아가씨, 보험대상을 잘못 골랐네요. 우린 아무 보험도 안해요. 누가 그런 달콤 한 말에 넘어갈라구요. 미안하지만 어서 딴데로 가보세요. 》     내밷듯 하는 신부의 말에 찬바람이 쌩 돌았지만 리나는 직업본능으로 생글생글 웃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해 왔다.     《하선녀씨지요? 축하해요. 새신부께서는 자기의 혼인에 왜 신심이 없는가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쉬 싹 날리게, 자기 사랑에 신심이 없으면 결혼식을 올렸겠나요?아이, 기분잡쳐!》     《신랑되시는분은 자신있으세요?》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세마디 하면 숨이찬 일이구요.》 신랑이 뭉툭하게 내뱉았다. 리나는 여전히 그 매혹적인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참 좋아요, 그럼 저의 설명을 끝까지 들어보시고 마음대로 하세요. 우리 공사의 결혼보험은요 금방 결혼한 이들로 말하면 장래에 대한 자아승낙이지요. 자기의 가장 보귀한것을 보험하는것은 이미 그것의 존재의 가치에 대한 증명이 아닐가요? 두분이 지금 가장 수요하는것은 영원한 사랑이지요? 아닌가요?》 《하긴 그렇지요. 그런데…》 신부가 조금 누구러진 태도로 동감을 표시하였다. 《아가씨. 우리 보험공사는 종이장을 담보로 한 첫해의 결혼생활로부터 시작해 서 은혼, 금혼년에 이르기까지 부동한 년한으로 단계를 나누어 보험하는데 시간이 길수록 내는 보험비가 많고 그에 따라서 장래에 탈 보험액도 높습니다.》 《아가씨, 그럼 우리같은 형편에서 어떤 종류의 보험에 참가하면 좋을가요?》 신랑이 부쩍 구미가 동한듯이 다가섰다. 《두분이 다 로임족이라니 수입정황을 고려해서 잠시 10년보험에 참가하는것이 합당할것같아요.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요? 그리구 한사람의 결혼 생활에서 첫십년이 관건이거든요. 왜냐하면 남녀의 나이가 그때가면 30대 말기여서 감정위기가 올때거든요. 우리가 조사한데 의하면 이나이에 혼인위가 가장 심각한 때였어요. 그러니 그것을 담보해두면 사랑도 원만하게 지켜갈수 있고 부자도 될수 있고. 이런 꿩먹고 알먹고 둥지털어 불때기가 어데 있나요? 》     《잠간, 그러니까10년후에 얼마나 탈수 있을가요?》 색씨도 그제야 호기심이 동해서 다그쳐 문의했다.     《백만원입니다!》     《와아!》신랑신부는 와락 그러안고 환성을 올렸다. 백만원이 당장 자기들으 손에 쥐여지는것 같았던것이다. 리나가 그 장면을 보고 돌아서서 미묘하게 웃었다.     그들은 저금했던 돈에다 부조로 들어왔다며 두집 부모들이 준 돈을 합쳐 보험에 들었다. 리나가 그들을 대신해서 열정적으로 모든 수속을 마치고 여러가지 증건들을 가져다주었다. 이제 남은것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림을 해나가고 어떠한 풍파든지 참고견디며10년을  버티는것뿐이였다.     《다시 만나요. 그럼 행복하기를 빌어요.》     8년세월이 지루하게도 흘렀다. 마주누우면 천하에 더 없이 친밀한 사이지만 돌아누우면 남남이라고 부부간에 갈등인들 왜 없었으랴! 늘 빠듯한 살림이라 누구의 탓도 아니건만 돈때문에 자주 다투기도 했고 여러번 리혼의 낭떠러지에 나설번했던 그들이였다. 《여보, 우리 귀신에게 홀린건 아니겠지요? 이게 무슨 사는멋인지 나 정말 모르겠어요. 남들이 다 입는 류행복 한벌도 사입지 못하고 식당놀이도 몇번 해보지도 못하고…아이, 나 이렇게는 못살아, 못살아…》 《젠장 자다가 봉창두드리구 자빠졌네. 밤길을 걷지 않는자는 새벽의 서광을 맞이하지 못하는거야, 그리구 꽃잎지는 현실을 참안낼수 없다면 가을의 황금열매도 딸생각을 말아야 하는거라구,》 《에구, 그 잘난 개똥철학을 걷어장지라구요. 우리 미라에게 언제 그럴싸한 새옷 한벌 사준적이 있나요? 그냥 큰집에 애화가 입던 퇴물림이나 가져다 입히구. 우리가 저애에게 죄를 짓고살아간다구요.》 이렇게 네탈내탈 다툴때마다 없는 살림에 와당탕 퉁탕소리와 함께 세간살이만 축이났다. 대전은 언제나 일찍 휴전을 선포했고 얼마동안은 평화적외교로 가정난을 풀어나가려 왼심을 썼다. 역시 그 고마운100만원으로 서로를 억제시키고 찬란한 래일을 기약해 마음에 없는 위로도 하면서 용케도 위기를 모면해왔다. 하루는 보험공사의 리나가 천수만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공사의 사업일정에 근거 하여 그동안의 가정정황을 료해하려 한다는것이였다. 특히 세대주인 남편의 소개를 근거로 하기에 단둘이 만나는게 좋겠다고 그루를 박아왔다. 그들은 다정한 련인처럼 아늑한 다방에 마주앉았다. 십년세월이 흘러갔건만 리나는 더욱 원숙해진 느낌이 안겨올뿐 여전히 아침에 핀 들장미처럼 싱싱하고 아름다웠다. 수만씨는 그동안 모진  탈망살이에 빠져 시들어버리고 중년녀인이 되여가면서부터 잔뜩 뚱뚱해진 안해의 모습이 얼핏 떠올랐다. 그의 눈길은 탄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리나의 몸을 빗질했다.        《부인께서는 잘 있는가요?》     《고맙습니다. 잘 있다고 보아야겠죠. 우리는 아무튼 다른 가정들처럼 평온하게 살아가고있습니다. 아이도 하나만 낳아 기르고…》     《오, 그래요? 참 다행이네요. 리혼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그토록 튼튼히 사랑을 지켜왔다니 천수만씨는 정말 멋진 남자이군요. 정말 부러워요. 난 천선생같은 남자를 만나지 못하다보니 이렇게 그냥 로처녀를 지키고있다나요. 설마 그 백만원이 혼인의 튼튼한 뉴대로 된건 아니겠지요? 》     《아니, 그 백만원이 작은 바람에도 끊길듯 끊길듯하던 거미줄같은 인연을 간신히 지탱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해마다 그 정기적인 보험금을 제때에 내기 위해서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시금 털털한 신혼생활을 해왔습니다. 딸년도 남의 애들보다 잘 입히지 못하고…그러나 끝내 우리는 견디여냈습니다. 이제 일년하고도 8개월만…우리는 몇백몇천 밤을 앞날을 설계하며 울고 웃었는지 모릅니다. 별장도 짓고 자가용도 최고급으로 갖추고 딸애가 크면 프랑스류학도 보내야 하지요.》     《아! 그래요? 실례했어요. 그러니까 당신들은 그 보험금때문에 서로의 심장을 속여가면서 무덤같은 결혼생활을 유지해왔다는거죠. 아이 가긍해라. 눈이 빠지게 손가락을 꼽아가며 기한이 차기를 기다려왔다는 얘기가 되는군요. 여보세요. 참으로  인생이란 얼마나 불공평해요? 사랑을 희생시키며 성이 나도 내뿜지 못하고 힘겨워도 말내지 못하고 유리그릇을 다루듯이 가정을 영위해왔겠으니 한창 나이에 꽃펴야 할 랑만인들 있었겠나요. 정말 눈물겨워요. 애초에…제가 두분께 정말로 못할짓을 강요 했나봐요. 용서하세요. 저도 제가 한 일을 슬프게 생각할 때가 많아요…아, 돈이란 다 무엇인가요? 돈때문에 당신의 청춘을 묻어버리게 했으니, 일본의 한 공사직원은 돈의 허무를 느끼고 쇠돈을 한주머니나 거리에 휘뿌렸다지 뭐얘요, 그리고 로씨아의 한 신수리쟁이는 루불이 똥값으로 떨어질때에 엽전을 철대신 녀자들의 구두뒤축에  박아주었다고해요. 정말 허무하지요? 지금 당신에게 백만원이 아니라 천만원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어요? 당신처럼 멋진 남자가 돈에 웃고 사랑에 울고…》     말을 마친 리나는 이쪽으로 나비처럼 날아서 건너오더니 천수만의 목을 꼭 끌어 안고 눈물이 가랑가랑 맺힌 눈으로 정차게 눈을 들여다보면서 마치 자기의 잘못을 육체로 사죄하기라도 하듯이 몸을 맡겨왔다.     《리나아가씨, 이게 무슨 짓인가요? 커피에도 취하는건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천수만은 막무가내로 자기 가슴을 파고든 리나의 나긋한 허리를 끊어지라고 감아안았다. 어찌나 꽉 껴안았던지 리나의 젖가슴에서 느껴오는 말랑말랑한 감각까지 확실하게 전달되여왔다. 리나가 살며시 얼굴을 들며 향그러운 입김이 풍기는 고운 입술을 솟구쳐왔다. 천수만은 참지 못하고 녀자의 입술에 심혼을 융화시켜버렸다. 그렇게 둘이는 늦게 만난 한을 열렬한 키스로 보듬었다.     《천수만씨! 나 솔직히 말하면 당신을 처음 보던 그날 홀딱 반했어요. 그날 이후 부터 어떤 남자든지 내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십년을 찾아헤맸지만 찾지 못했어요. 당신은 나쁜 사람, 왜 이제야 내곁에 나타났나요? 내 처녀를 늙혀버린 장본인이예요. 이제부터라도 이 리나를 사랑해줄거지? 응?!》     《리나, 정말그랬다면 나 미안해, 나도 원래는 리나같은 미인을 만나서 한평생 행복하게 살려고했는데…괜찮아, 지각한 사랑이 더 뜨겁게 달아오를수 있어…》     평범하지 않은 데이트후 천수만은 정신이 허궁 떠다녔다. 집에 들어가서도 더는 참을성이 있는 남편이 아니였고 자상한 아빠가 아니였다. 리나와의 밀회는 점점 잦아졌고 마지막 처녀궁에 돌입하지 않았을뿐 그이상 더 깊이 들어갈수 없이 죽자 살자하는 열련에 빠져버렸던것이다.  반년이 지난 어는 날 천수만은 나래라도 돋힌듯 리나를 찾아갔다. 죽어도 리혼은 안한다는 안해를 그냥 개패듯해서 겨우 리혼소송장 에 도장을 찍게 했던것이다.     《리나! 나 끝내 리혼하고야 말았어, 야! 검질긴년이라구야, 아! 내청춘, 내 사랑을 끝내 찾았어, 자, 이젠 이 우주공간에 우리 둘뿐이야, 안그래? 나 보험금보다 리나를 얻게 된것이 통천하를 얻은듯이 기쁘단말이야! 사랑해! 리나!》     《아이, 그게 정말이예요? 거짓말하는거 아니죠? 야ㅡ참 너무 잘됐다아ㅡ그래 그걸보라요. 남자란 강하게 나와야 녀자가 물러간다구 했잖아? 애썼네 잠간만,》     리나는 남자에게 키스를 퍼붓고는 어데론지 부리나케 달려갔다. 얼마후 천수만의 핸드폰이 울렸다. 보험공사의 결재부분의 경리가 걸어온 전화였다. 전화내용인즉 이미 당신들의 리혼이 엄연한 현실로 되여있으니 예비로 내주려던 보험금은 규정에 따라 취소한다는것이였다. 그리고 나머지 수속은 다른 사람이 다 해줄것이니 시름 놓고 돌아가서 제 볼일을 보라는것이였다. 세상에 이런 날벼락도 다있는가? 천정이 핑그르르 돌더니 밟고선 땅이 천길나락으로 꺼져들어갔다. 그러나 청천벽력이라도 이 렇게 쓰러질수는 없다고 강심을 먹고 벌떡 일어나서 칸칸의 문들을 벼락치듯 와당탕 퉁탕 열어제꼈다. 아무도 응기해주는 사람이 없이 도깨비나 만난듯 피해달아났다     《리나! 리나! 어데 있는거야, 응 말해보라구,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감투끈 인지 말해보란말이야!》 마침내 구석진칸에서 웬 남자와 포옹하고있는 리나를 발견했다. 눈에 불이 번쩍 일었다. 모든것이 명백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어리숙한 질문이 튀여나갔다.     《야, 이 요귀같은년아, 그래 우리들의 일은 어떻게 하지??》     리나는 조금 당황한듯 하다가 남자가 눈짓으로 안심하라고 하자 대뜸 침착해지며 차분하게 대답을 던져왔다.     《미안해요, 그리고 리해하여 주세요. 어쩌겠어요. 직업의 수요였거든요.》     《뭐? 뭐ㅡ어ㅡ라ㅡ구우?! 지ㅡ익ㅡ업수요라구???!》 천수만은 뒤말을 꼬지 못하고 폭 꼬꾸라졌다. 귀속에서 그저 웅웅 하는 소리만 들려오다가 그나마도 곧 잠잠해졌다…                                                   2004년 9 월 23 일
10    울고있는 가슴 댓글:  조회:3661  추천:34  2008-01-30
         누구의 가슴에나 다 자기파멸의 씨앗이 묻혀있다.인간은 저도 몰래 늘 그것과 싸우며 산다. 하지만 때론… 아,경종으로 울려주는—   초련의 비극     제일 마지막으로 지원서를 바치고 나오던 정남이는 층계 모퉁이에서 현희와 마주쳤다.        《어데다 썼니?》            《…》 《나한테두 비밀이니?》 《넌?》정남이가 되물었다.《음…난 정법이다.》 《한길이구나!》정남이의 단마디 명창이였다. 《그래?! 우린 또 북경에서 겨뤄보게 되였구나 호—》        현희의 눈가에 진지하면서도 살가운 웃음이 따스하게 비꼈다. 청춘의 순진함과 아름다움에서 오는 랑만이 차분 하면서도 그나 이 처녀애들에게는 희한한 리지감도 담뿍 가지고있어서 한결 돋 보이는 현희의 모습을 눈빗질하며 정남이는 까닭없이 얼굴을 붉 혔다. 이때 층계구석에서 불쑥 뛰여나온 민우가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바르며 무슨 짓꺼리를 할듯 하더니 그 두터운 입을 오무 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 곡조는 《또 만났네》였다. 민우는 어느 돈많은 고급관리의 독자였는데 학교내 일등 멋쟁이였고 성미도 끄신끄신해서 학급애들이 은근히 경계하는 인물이다.하건만 그는 한창 현희에게 쥬피터의 화살을 날리느라   속이 바싹 달아있었다.그런데 현희가 거들떠보지 않는 바람에 잔뜩 심통이 틀어져있었다.현희가 시골뜨기 정남에게 각별히 친 하게 구는것을 볼 때마다 정남이가 때려죽이고싶도록 밉게 보였다 (자식, 그 잘난 공부? 흥 어데 두고보자!)하면서 윽별렀 다. 정남이가 사색적이라면 민우는 행동하는 성급한 타잎이다.        3년전 정남이가 이 학교에 올 때는 솔직하고 순박한 웃음이 환한 시골의 학생이였다.시내에서 굴러먹은 처녀애들의 눈에는 한낱 먼지투성의 면양에 속해있었다.하지만 천박한 볼모의 땅에  서 자라던 나무가 비옥한 땅에 옮겨지면 대뜸 무성해지는것처럼 그의 타고난 총명과 지혜는 은을 내였고 검질긴 학구심은 각 학과에서 재능을 뽐내여 선생님들의 애대를 받게 되였다.        현희는 학습위원이였다.그들은 학습에서 서로 경쟁자였으  나 한편 그로해서 서로 자석처럼 끌리기도 했다.그야말로 속담 에 무심히 심어놓은 버들이 무성하듯이 그들의 우정은 깊어만 갔다.민우가 거마리처럼 달려들어도 현희에게 몇번이고 거절당 하기만 했다.그래서 그 원한이 정남에게 쏟아졌다.        현희는 각박한 인정의 도시문명권내에서 자라난 어느 높은 관리의 천금녀였지만 다감하고 령리한 처녀애였다.그래서 늘 허 술한 옷차림에 때론 식권마저 떨어져서 쩔쩔매는 정남이를 사려 깊은 누나같은 그런 따스함으로 교묘하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 주군하였다.        십팔구세의 젊은이들은 흔히 햄리트식의 기질이 있다.정남 이는 학습위원인 현희의 난제를 묵묵히 해결해주는것으로 현희의 우정을 보답하였다.하여 그들은 함께 리상의 고봉에 오르자는 묵결을 금빛철탑처럼 튼튼히 쌓아올렸다.        스므살 꽃나이에 열정의 연소와 격정의 소용돌이속에서 감정 상에서의 은밀한 활동이 누군들 없으랴만 정남이는 그 성결하고 소중한 우의에 만족해하고 고이 키워야 했다.하건만 생명의 번영기에 들어선 그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짜릿한 고독과 불만에 빠져들면서 하나의 생뚱같은 문제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삶의 뜻이란 대관절 무엇인가? 생활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질 때만이 지식도,과학도 의미가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자기의 삶에 어떤 뜻이 담겨지기 시작했다고 느꼈다.그것은 바로 현희의 꿈 꾸는듯한 고운 눈이였고 이슬 머금은 꽃망울같은 기막히게 유혹 적인 입이였다.     그는 밤마다 로맨틱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늘 슈제 트만 있고 렵기적인 크라이막스가 없는 꿈이였다.남몰래 쉬는 한숨은 참을수록 깊어만 갔고 훔쳐보는 눈길을 숨길수록 마음은 더구나 슬쓸해졌다.학습열정이 점점 식어간다.다만 무의미하고 생명없는 활자들사이에서 온통 웃고 손짓하는 현희의 모습뿐이다. 이렇듯 방황하는 열정을 아는듯 모르는듯 현희는 현희대로 리상의 철탑을 굳히기에 여념이 없다.현희의 눈은 많은것을 말 하는것 같기도 하고 또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것 같기도 했다. 하여 도무지 속내를 알길없는 현희의 눈길앞에서 늘 주눅이 들어했고 예리한 수십쌍의 눈길앞에서 현희를 딱하게 굴 때가 드문해졌다.그때면 현희의 눈길은 각별히 사리 깊어지고 엄엄 해져서 많은 사연을 묵살하고있었다.     《너,무슨 엉둥한 궁리냐? 그러면 못써,바보!》현희는 눈으로 곧 자기의 의사를 전달할줄 아는 교묘한 처녀였다.        정남이의 가슴속에 몰래 새겨지고있는 그 신비로운 비밀 부호를 빤히 꿰뚫고있는 민우는 분통이 터졌고 거의 로골적으로 악의를 드러냈다.(흥,함께 쌍쌍이 날아 보자구? 어디 보자!) 이렇게 윽벼르면서 정남이를 못살게 굴었고 협박했다.그때마다 늘 당하는것은 정남이였다.민우에게는 시내에 깡패친구들이 많았던것이다. 정남이는 비굴을 꿀꺽 삼키고 《내가 졌다.이러면 안되 니?》하고 빌기도 했건만 《촌닭같은 새끼,혼났단말이지? 하하…임마!》하고 민우가 앙탈한다.정남이 는 쫑대없는 사내애가 아니였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저 동한말의 한신처럼 굴욕을 참으리라 자기를 단속했다.장차《해서》같은 명관이 되여 사회의 모든 탐관오리들과 민우같은 사회망나니들을 신성한 법으로 쓸어버리리라 혀를 깨물었다.그런줄 모르고 민우는 더욱 녕악하게 굴었다. 정남이의 얼굴은 늘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현희앞에서 그꼴을 보이고있어야 하는 자신이 미웠고 죽기보다 더 괴로웠다. 정남이는 그 몇번이나 어금이가 부서지 도록 이를 갈았는지 모른다.그러나 굴욕도 유분수고 인내성도 한도가 있다.그는 작은 식도를 품에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고중마감학년에 젊은이인 정남이도 다른 모든 청년들처럼 두개 심리극단을 고유하고있었다. 이를테면 그 어떤 좋은 일도 해낼수 있고 그 어떤 나쁜 일도 해낼수 있다.제법 운치있는 지 성인인 동시에 패덕할수도 있다.강한 자존심이 있는가 하면 처녀애들같은 유연성도 가지고있다.호언장담하고 교만한 그만큼 리성이 부족하며 황당하고 무분별한 만용이 싹트는 고결성을 무시하기가 례사다.그러면서도 스스로 어른이 되였다고 자처 한다.사실상 3년쯤 지난 그 뒤에야 어른이 되면서도 말이다. 이렇듯 성숙과 미성숙의 교차점에서 생기지 말아야 할 인생비극 이 생겨나는 법이다.        젊음을 도취시키는 화창한 봄날이다.티없이 맑은 하늘, 생  기에 넘쳐 설레이는 산천, 유쾌한 방랑적인 봄바람은 이산저산 아지랑이를 몰고다니며 마음을 간지른다.        졸업을 앞두고 학급에서 련환모임삼아 들놀이를 가자고 의논이 모아졌다.머리 가 잔뜩 부풀고 조롱속에 갇힌 새들의 신세였던 그들은 일요일에 먼 산으로 떠났 다.그들은 푸른 새옷단장 서둘러대는 봄날의 동산에서 마음껏 청춘의 열기를 뿜어 올렸다. 춤도 진하고 노래도 시들해져서야 그들은 노을을 안고 산을 내렸다.        그런데 속이 앙큼한 처내애들의 작간이였던지 어찌해서 정남이와 현희가 뒤에 떨어지게 되였다.산기슭 내가에서 현희가 발이 아프다며 주저앉았다.정남이는 그옆에 우두커니 섰다. 맑진 개울물이 바위를 안고 돌며 조잘거렸고 내둑에 실버들 은 어느새 오동통한 《애기》들을 업었다.늦잠꾸러기 향나무는 왜 이제야 깨웠 느냐고 봄바람을 나무리며 서둘러 첫잎을 피우고 있었다… 침묵,침묵…현희가 묻는듯한 눈길로 정남이를 한동안 지켜 볼뿐이다.(너 엉뚱한 궁리에 미래를 말아먹고있지? 바보, 지금 도…정신차려 얘!) 정남이는 멋적어진 눈길을 슬며시 돌리며 앞서 걸었다.이윽해서 현희가 물었다. 《너 애정의 상사정리란 책을 본적있니?》 《보지 못했어? 왜?》 《거기에서 이런것을 베꼈는데 너절로 뜻을 새겨 봐.》하면서 현희가 종이쪽지를 내밀었다.거기엔《Aaabdeeg iiiiiiiinnootuuwxy》라는 자모가 한줄 씌여져 있었다.수수께끼같은 그것을 터득할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정남이는 수긍했다. 《그래, 나도 알구있어.》        산굽이를 에도는 다복솔숲을 지나려는데 난데없는 불량한 눈길의 청년 둘이 앞을 턱 막아나섰다.        《무, 무슨 일이요?》 정남의 긴장한 목소리.        《네가 정남이냐? 보면 몰라.네 미인을 빌려왔지 헤헤… 이런 촌닭과 련애할바엔 우리 어른들과 한번 뒹굴어보는게 어때? 응,미인아가씨!》그중 키큰자가 손을 현희의 얼굴에 갖다대인다. 정남이가 탁 쳐버리며 오돌차게 나섰다.        《어쩌자는거요.》        《이새끼,죽고싶어 몸살이냐? 썩 비켜!》        말과 함께 주먹이 날아들었다.《현희 뛰여라!》 정남이가 얻어맞으며 쫓아가 려는 놈팽이의 다리를 걸었다.뒤에서 정남이의 비명이 울렸지만 현희는 본능적으로 달음질쳤다.정남이가 피못속에 쓰러졌을 때 앞에 간 친구들이 달려왔다.그 뒤엔 민우도 건정건정 뛰여오고있었다.형세가 틀린줄 알자 두놈은 숲속으로 내뺐 다.민우가 눈으로는 쾌재를 부르면서 정남이를 부축하는체 한다. 《어느 지독한 놈의 새끼들이 우리 대학생을 이렇게 죽탕쳤을가?》 그러는 민우의 얼굴을 현수가 무섭게 노려보고있다.        며칠후,정남이가 병원에서 출원하는날,정남이의 시골내기 친구들이 민우를 으슥한 골목으로 끌어냈다.민우는 죽도록 얻어맞고 자기의 깡패들을 휘동하여 보복전을 벌렸다.이러기로 수삼차,마침내 학교에서 알게 되였다.정남이랑 비록 퇴학은 맞지 않았지만 무시험입학자격을 떼우고말았다.현희는 아예 학교로 나오지 않고 집에서 복습하였다.        정남이의 약속된 미래에 회색구름이 짙게 떠돌기 시작했다. 이미 뒤떨어진 공부일지라도 정남이는 모지름을 썼다.시험을 한 주일 앞둔 일요일날이였다. 정남이가 혼자 교실에서 책을 펴놓고있는데 뜻밖에도 현희가 찾아왔다.정남이는 속으로 현희에게 미안했던지라 진심으로 수 학난제를 설명해주었다.이때 어느새 들어왔는지 민우가 다가오더니 정남이의 복습제강을 갈갈이 찢어갈기며 이죽거렸다.        《흥,깨알이 쏟아지는데 어부님들! 이 산골메뚜기야,자존심이 무척 상하시거든 덤비여보시지?》 현희 앞에서까지 모욕을 참을수는 없었다.        《좋다! 너같은 사회망종은 죽여치우겠다.》 정남이가 말리는 현희를 뿌리치고 쥉쥉 나간다.민우가 걸상을 들어뿌렸 다.정남이도 걸상을 들었다가 바들바들 떨고있는 현희를 일별하고는 밖으로 내뛰였다.        《서라! 뺑소니치려구!》 민우가 쫓아왔다.교문쪽으로 나가는데 민우의 맹장인 조철이가 마침 마주 왔다.정남이가 본능적으로 품속의 칼을 뽑아들었다.달려오던 민우가 가슴을 붙안으며《악!》하고 비명을 지르 더니 팽그르르 돌아갔다.겁결에 내뛰는 조철의 엉덩이에도 칼이 푹 박혔다나왔다.        《아— 저새끼 저렇게 지독하게 나—올—줄—을…》 민우가 흰자위를 번득거리다가 피못속에 엎어졌다.        피가 랑자한 정남이가 말뚝처럼 굳어져 버렸다… ※      ※      ※        중죄수 감방,피골이 상접한 정남이가 실성한듯 말없이 울 고있다.현수가 편지를 보내와서 소식을 들었던것이다.현희는 결국 락방하고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정신병원에 들어갔단다. 그날 수인차에 오를 때 단풍나무뒤에서 눈물짓던 현희의 모습이 가슴을 찢는다.        정남이는 현희가 준 수수께끼를 풀었다.그러나 비극은 이미 모든것을 훼멸시킨 것이다.그 자모를 애써 조합해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더듬어냈다. 《WoaiYoune ituilidebaiaiXixy》이였다.        정남이의 창백한 두볼에 두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쓰디쓴 참회의 열물이였다.그러나 그것은 뼈아픈 정서를 말 해줄뿐이였다.        아,내구력의 비극이여, 슬픈 청춘이여, 울고있는 가슴!   1993 년 12 월 23 일  
9    노크소리 댓글:  조회:3672  추천:34  2008-01-30
단편소설   노크소리                          최 균 선   《똑 똑 똑…》 노크소리가 들려온다. 오후에도 벌써 세번째인 노크소리이 다. (누굴가? 혹시나 이번엔 아들놈이라두…)창모는 저도 모르게 막연한 기대의 눈길을 출입문에 박았다. 진종일 덤덤한 기색으로 그림책을 번지고있던 애젊은 경찰이 문을 여는순간, 창모씨는 스르르 머리를 돌려 맞은켠 침대를 바라본다. 선망과 부러움으로 가득찬 눈길에 질투 비슷한 마음까지 곁들려있었다. 역시 오늘래일 하는 중환자인 김선생의 제자들이 왔던것이다. 창모는 신경질적으로 두눈을 꼭 감아버렸다.(끝내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구나. 눈귀에서 흘러내린 찝질한것이 마른 입술을 축축히 적셔주었다. 하긴 죄지은 몸으로 병치료를 받고있는 자기를 누가 찾아주랴싶어지며 허구픈 한숨이 나오다가도 노크 소리만 나면 자연 되살아나는 마음인것을 어쩌랴! 자유로왔던 영화의 시절에 그렇듯 범상하게 들어오던 노크소리, 반가운 약속을 앞세운것이 아니라면 못내 심드렁해지고 때론 짜증도 내던 노크소리가 지금은 무슨 복음처럼 느껴지는 외로운 존재가 되였으니 화복의 무상함을 깊이 알겠다. 창모에게 있어서는 노크소리가 남달리 각별하였다. 첫째로는 인생의 파산을 선고하던 치명적인 경종이였고 다음으로는 지금의 처지를 더욱 암담하게 하는 숙명의 종소리이기도 했다. 창모는 워낙 시특산물공사의 공소과장인데 모험가의 천당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루만금의 벼락거부였다. 현대화한 개인 저택에다 전화까지 놓고 오래전부터 배맞아 돌던 나젊은 미인까지 안해로 맞아들여서 달콤 살짝 멋들어지게 살던 사람이였다. 그러나 옛말 그른데 없이 부귀영화 일장춘몽이라 그의 행운도 주일배(酒一杯) 로 되고말았다. 경제범들을 잡아내는 운동이 들이닥친것이다. 하여 처음엔 탄 입술을  감빨고 그 유용성을 찾아내고 그다음 편안을 바라고 그후엔 쾌락으로 재미를 보고 그때로부터 사치에 방탕해지고 결국에는 미쳐서 신세를 망쳐먹은 이른바 흥망성쇠의 자연규률에 좇아 불치의 사회병자로 전락된것이다. 재래로 마음의 바탕이 밝으면 칠야에도 푸른 하늘이 있고 생각머리가 어두우면 백일하에도 도깨비가 나타난다고 했거늘 바로 그맘때부터 창모는 노크소리만 나면 저절로 신경이 도사려지는 버릇이 생겨났던것이니 불운의 그 밤, 최후의 노크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덜컹 했다. 그때 저녁상에 방금 마주앉았는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에크, 이번엔…》 시위소리에 놀란 새처럼 황황해서 넥타이를 바로잡으며 대기하고있는데 안해 애금이가 열어주는 넓다란 문으로 기름진 배때기부터 들이미는 사람이 공사의 부경리 이자 함께 몃을 내던 짝패인 백치수인지라 창모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며 식은땀을 닦았다. 《여보게, 바람새 제법 세차졌는데 주의하라구. 자네 이번 관을 무사히 넘겨야 하는건데…혹시 자네가 몇년(궈테)신셀 지더라두말이야 형제들의 낯을 지켜야 하네. 알겠나? 뒤처리는 내가 맡겠네. 나온후에두 절대 푸대접하지 않을테니까…》 지겨운 붕어눈을 데룩거리며 발뺌부터 하는 백씨에게 웬간히 골났지만 그럴 계제도 못되여서 울며겨자먹기다. 《하기사 드러난 목표가 내니까요. 안심하라구요. 이 창모두 칠척장한입니다.》 《음. 친구답소. 마디지구만. 자네 집걱정을랑 말게. 내가 어련히 돌보지 않을 라구. 흠흠…》 백치수는 예상밖으로 강개하게 나오는 창모의 가슴을 툭툭 쳐주고는 공연히 건가래를 톺으며 애젊은 녀주인의 얼굴을 빨아 넘길듯 바라본다. 애금이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바래러 나갔다가  한식경이나 지나서 무어라 종알대며 들어왔다. 저녁도 끝나고 밤도 이슥했는데 또 노크소리가 울렸다. 침대우에서 담배를 태우던 창모는 불에 덴듯 발딱 일어나 앉았다. 《어이, 애금이 나가보라구, 젠장 이거야 부산스러워 살겠나, 원. 나 없다 구해.》 속은 잔뜩 얼어있으면서도 호기를 뽑는 남편의 얼굴을 핼끔 쳐다보던 애금의 입가에 찬웃음이 얼핏 건너갔다. 《애이, 시끄러워. 또 누구야?!》 허리를 배틀며 현관으로 나가던 애금이가 환성을 지른다. 《어머, 현선생님이네요. 아이유, 어떻게 이 밤중에…자, 어서요.》 《안됐어요. 참 고봉이 아버지 계세요?》 들어보니 소학교 5학년에 다니는 아들애의 담임선생이였다. 《안계시는데요. 무슨 급한 용무라두…저에게 말씀하면 안되겠어요?》 《안될거 없어요. 저 말하자면 고봉이 학습때문에…요즈음 걔가 성적이 말이 아니예요. 원인은 많지만 오늘 그걸 따지자고 온게 아니라 긴히 토론할 일이 있어 서요.》 《네, 말씀하세요. 혹 반에 무슨 경제난이라두…》 《그런게 아니라 고봉일 우리 집에 며칠 붙박아두고 복습시키려구요. 우리 민이두 있구 하니.》 《아아, 참 고마운 말씀이네요. 그런데 꼭 오늘부터라야 하나요?》 《그래요. 이제 사흘후면 중간시험이 있으니까요.》 《어쩔가? 애아버지두 없는데…저 그럼 걱정 끼치겠어요. 요즘 집도 부산하구 하니까요.》 안해의 독단에 창모는 밸이 꼬였지만 그에 앞서 어떤 감격에 가슴이 그들먹 해졌다.(참, 별난게 교원들이지…특수재료로 만들어진 인간들이야!)평시엔 늘 하찮게 보아오던 교원들에게 준비없던 꽃다발을 엮어올리는 창모의 얼굴이 저으기 뜨거워 났다. 그는 자기 아들에게 커다란 기대까지 걸고있는터지만 정 안되면 돈에 싸서라도 류학문에 밀어넣을 숨은 속셈도 있는지라 현선생에게 감사할만도 했다. 그레서 현선생과 아들애를 바래고 들어오는 안해에게 치하까지 해주었다. 《인제야 누가 오지 않겠지?》하는 위구심을 안은채 창모는 안해를 잡아끌었다. 이때 또 갑자기 현관문을 세괃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하는 례절스러운 노크가 아니라 마구 탕탕 쳐대는 소리였다. 그들은 몸을 오싹 떨었다. 역시 애금이가 바들바들 떨며 문을 열었다. 어지러운 구두발소리가 곧추 내정돌입이다. 《당신, 고창모요? 당신 체포되였소!》 딛고선 땅이 천길만길 꺼져들어가는듯했다. 발칵 뒤집히는 방안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창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나깨나 닭알가리를 쌓아보던 안락궁. 정든 안해와 귀여운 아들을 떠나 끌려가야만 하는 창모의 가슴은 오리오리 찢기였다. 그런데 울며불며 야단칠줄 알았던 안해가 그저 침대에 폭 엎어져 우는지 흐느끼는지 어깨만 달싹이고있었다. 창모는 머리를 푹 떨구었다. 심문실에서 창모는 자기가 말한대로 《의리》를 지켰다. 여러 달을 끌어오다가 급기야 유기형 5년을 받고 복역을 시작했다. 안해가 첫면회를 왔다. 난생처음 면회실에 들어선 창모는 대뜸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까까숭이 대가리를 주억거리며 중언부언하는 남편앞에서 말없이 흐느끼는 젊은 색시가 있는가하면 파파늙은 에미가 넋을 잃자 제가슴을 쾅쾅 짓찧는 중년 나이의 도깨비상도 있었다. 면회실은 온통 흐느낌소리와 눈물과 탄식소리로 꽉 찼다. 창모도 안해와 마주앉았다. 혈색좋던 남편의 꺼칠해진 얼굴을 가끔 건너다보며 장탄식만 하던 안해가 나직히 하소연했다. 《당신이 이 지경되니 얼싸한 친구들이 범벅덩이에 쉬파리처럼 달려들었어요. 무슨놈의 빚이 그리 많은지…지어 내 몸까지…흑, 흑…》 면회온 사람답지 않게 짙은 화장을 한 안해의 요염한 얼굴이 보기싫게 이즈러 진다. 《참, 피천 한푼 없는 알거지가 되였으니 난 어떻게 살아요? 흑, 이럴줄이나 알았더면…》 따스한 말 한마디 없이 돈소리부터 하는 안해의 얄망궂은 입술을 얼없이 바라 보던 창모는 그저 허구픈 한숨만 나왔다.(저치가 그래 무엇을 보고 내게 왔던가…) 《울긴? 그래 백씨는??》 애금인 머리를 살짝 숙이고 외고개질했다. (제밀헐, 개같은놈의새끼, 헝, 정 그렇다면 너두…)성이  독같이 난 창모의 눈에서 불이 흘렀다. 《집은?》 《몰수래요. 잠시 그냥 있어요.》 《세면실 수도꼭지…타일…》 경찰이 이쪽으로 오자 말이 끊어졌다. 그러나 애금의 얼굴에 희색이 돌며 눈이 반짝했다. 창모는 깔끔하게 생긴것처럼 밸도 열두굽이를 가진 앙큼한 사내였다. 역은 토끼 굴세개를 판다고 그는 언녕 준비가 되여있었다. (흥, 싹 털어가도 내 속에 곱이야…) 창모는 마음이 든든해서 감방으로 돌아왔다. 두번째 면회날이다. 첫번에 왔을 때보다 안해는 더구나 상심해서 쿨쩍거린다. 《아이, 귀신이나…어떻게 알고 그들이 선손을…》 애금이는 한푼도 없다는 뜻으로 손을 살래살래 저었다. 창모는 끔쩍 놀랐다. (에익, 내가 도청기가 장치되여있다는것을 예상 못했을가? 참으로 방아간을 지난 참새격이군.)그는 신경질적으 로 사위를 둘러보았다. 《며칠전, 고봉이가 철봉에서 떨어져 팔을 접질렀어요. 다행히두 현선생이 치료비랑 내서…호—언제 갚겠는지? 생각다못해 개인식당에…흑…》 《아니, 당신이?! 그 어지러운 일을…》 창모는 호강시키겠다고 장담하고 꾀여온 안해가 불쌍해졌다. 그는 안심하라는듯 정겹게 바라보며 입을 별스레 쭝긋거렸다. 남편의 추들추들한 입술을 도정신해 바라보던 애금이도 같은 모양새로 되새기자 창모가 눈을 끔쩍했다. 이런 무성담화는 얼마전까지도 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쾌락이였다. (이번에야 귀신도 울고 갈테지…)창모는 비록 《령어》의 몸이 되였지만 남편 으로서의 책임을 다할수 있다는 생각으로 찢기고 얼룩진 마음을 깁고 기웠다. 그런데 세번째 면회일엔 애금이가 더구나 험악해진 얼굴을 들고왔다. 《어찌된 영문이요?!》 《이번에도 내 먼저 그들이…일전도…》 역시 눈길로 주고받는 무성의 담화였다.(아이구, 하느님 맙시사. 록상기까지 장치하다니?)창모의 가슴은 살점을 뜯기우는듯 아파났다. 두번에 8천원이란 돈을 훌쩍 떼웠으니말이다. 안해가 어느새 가버렸는지. 또 자기가 어떻게 면회실을 나왔는지도 몰랐다. 그는 장밤 한탄과 자탄으로 보냈다. 새벽녘에 꿈을 꾸었다. 요행 탈옥한 그가 안해와 아들을 데리고 천애지각에로 달아나는 꿈이였다. 물론 그 최후의 비밀을 파내가지고 떠났다… 안해가 왔다간지 얼마 안되는 어느날 감외로동을 하러 죄인들과 함께 대문을 나설 때 감옥장이 그를 불러냈다. 《107호, 날따라 사무실로 오시오.》 창모는 속이 꿈틀했다. 불길한 예감에 다리가 후둘거렸다. (혹시 그 비밀이 라두…)이렇게 속궁리에 똥집을 태우며 사무실에 들어서니 천만뜻밖에도 현선생이 맞아주었다. 《아니, 현선생님이 어떻게요?》 《몸이랑 건강한지요?》 현선생의 례의적인 문안이였다. 《창모, 앉아도 되오. 저 현선생, 그럼 구속받지 말고 이야기하시오. 난 일이 바빠서…》 감옥장이 나가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창모는 혹 아들에게나 안해에게 무슨 변고라두 생긴가싶어 속이 떨렸다. 《일이 무척 고달프겠지요?》 《아니요. 참 우리 고봉인…돌봐주어서 은혜태산같습니다.》 《웬 말입니까? 교원의 직책인데요. 고봉인 총명해서 공불 잘해요. 몸도 탈없 구요.》 《?!》 《오늘 털어놓고 말하지만 그날 내가 고봉일 데려간건 공부때문이 아니였 습니다.》 《아니? 그럼?!》 《난 고봉 아버지가 조만간 체포된다는걸 알고있었지요. 만약 그 장면을 본다면 어떻게 될가요? 어린 심령에 받는 상처는 너무도 깊을거예요. 그리고 그애의 인격 발전에 영향을 끼칠거구요. 그래서 그앨 회피시킨겁니다.》 창모는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자기가 퍼그나 깔보아오던 《훈장님》들의 고매한 덕성에 진정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수 없었다. 《오늘 이건 말하자고 온건 아닙니다. 당신은 자기 아들에게도 씻지 못할 죄를 지었어요. 정녕 자식을 사랑했다면 무엇을 해주려고 생각할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 할수 있는 인간으로 키워야 했지요. 그런데…》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갇히고 보니…모든건 그 애를 위해서 한건 데… 후유ㅡ》 창모씨는 그저 무릎만 쓸고 앉았다. 《벽돌담과 철창이 감옥을 만드는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감옥을 만든다고 말해야 옳을거얘요. 깨뜨릴수도 벗어날수도 없는 영원의 감옥말입니다. 그리고 흔히 들 죄를 씻는다고 하는데 사실 죄는 취소되는게 아니라 용서된다고 해야 할겁니다. 그렇다면 고봉이가 자기 아버지를 어느만큼 용서할가요? 정말 몸서리칠 일입니다.》 《내 말을 무슨 도덕가의 완성된 설교라고 여기지 마세요. 그저 고봉이가 불쌍 하지요. 나는 한 아이어머니로서 하는 말입니다.》 《예?! 저의 처가 어떻게 되였습니까?》 《아니, 무사해요. 사람이 감정과 본성만 따른다면야…》 현선생은 뒤말을 후무려버리고 어조를 바꾸어 화재를 돌리였다. 《이제 내 이야기를 듣고 보면 아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될겁니다.》 창모가 체포된 이튿날 저녁이였다. 현선생의 아들 최민과 함께 숙제를 하던 고봉이가 그만 빌려쓰던 자동연필을 망가뜨렸다. 최민이가 성이나 씩씩거리며 물어내라고 야단냈다. 《체, 그잘난걸 가지구. 이제 울아버지가 출장갔다 올때 더 멋진걸 사주면 되잖아, 씨ㅡ》 《너의 아버지가 돌아온다구. 감옥에 간게…흥.》 역시 아이들 입이란 영영 잠글수 없는 문이였다. 제 어머니가 그렇게 만당부 했건만 어망결에 비밀을 게워놓은것이다. 최민이가 혀를 내밀었을 때는 늦었다. 《너, 임마, 뭐라구? 다시 말해!》 《이걸 놔! 난 거짓말 안해, 너절로 물어보렴.》 고봉이는《와—》하고 울면서 집으로 뛰여갔다. 밤도 깊지 않았는데 불이 꺼져 있었다. 그는 목에 걸린 열쇠로 문을 열고 곧장 어머니 방으로 뛰여들었다. 《엄마! 불켜.》 느닷없이 들이닥친 아들애때문에 초풍하도록 놀란 애금이는 기겁했다. 《쉿, 조용해!》 남자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얘요? 아버지!?》 《애새끼두, 아버지가 아니구 누구겐? 출장 가려다가 돌아오셨다.》 《거짓말, 내 다 알아, 아버지 감옥갔다며?! 씨ㅡ》 《낮게 말해. 누가 그러던?》 《최민이가 알려줬어, 아버진 무슨 경제범이라구. 엄마, 정말이야?!》 애금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짐짓 태연한체 했다. 《응, 정말이다.》 《건데 왜 집에 있어요?》 《너의 아버진 네가 너무 보구파서 도망쳐왔단다.》 애금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였다. 《정말 나쁜 사람이야, 엄마, 공안국에 보고했어?!》 《이 바보야, 아버진 다 너를 위해서 그런거다. 래일 감옥에 돌아간다구 했어. 이게 다 너를 위한게 아니냐? 됐다. 어서 네 방에 가서 자거라.》 고봉인 갑자기 아버지가 측은해져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얘, 비밀이 탄로나면 안돼, 알겠니?》 《나 아버지 볼래.》 《아버진 너무 지쳤다. 너 훌륭한 아들이지, 응? 그럼 어서 가자거라.》 고봉이는 더 군말없이 제방에 갔다. 그는 자기 아버지를 아주 높이 보고있었으며 무척 따랐던것이다. 이튿날 어머니방에는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새벽에 감옥으로 돌아갔단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후였다. 현선생은 어문시간에《나의 아버지》란 제목으로 글짓기를 시켰다. 고봉이는 울상이 되여 연필만 깨물었다. 감옥에 간 아버지를 무엇을 자랑한단말인가? 그러나 그처럼 사랑해주던 일들은 잊을수 없었다. 아버지가 그날 밤 도망쳐온것도 다 자기를 사랑해서가 아닌가?… 마침내 그는 곧이 곧대로 써내려갔다. 아이들 작문을 검사하던 현선생은 깜짝 놀랐다.(고봉이 아버지가 정말 탈옥 했을가? 아니 그럴리가…그러면 고봉이 어머니와 같이 자던 그 사내는??) 이렇게 여러가지로 의문을 굴리던 현선생은 유관부문에 알리기로 작심했다. 한편 창모를 만나볼 필요를 느꼈다. 애금이가 며칠이 지나도록 아이차중을 하지 않는 까닭을 깨닫게 되자 현선생은 무섭게 비틀려가는 인정에 망연자실해졌고 무의무탁하게 된 고봉이의 일에 마음이 쓰리였다. 그는 감옥당국과 협상하여 면회를 허락받았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현선생의 뒤말이였다. 실성한 사람처럼 굳어져있던 창모는 뼈갈리는듯한 신음소리 를 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우리 고봉일… 욱우—우》 창모는 오열에 떨며 뛰쳐나갔다. 그는 백치수의 비릿한 낮짝을 노려보며 으드득 어금이를 갈았다… 창모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엎어진자의 정수리에 오줌을 내갈린자가 백치수 라면<성황당>의 제물이 된것은 결국 창모였다. 세번째 면회를 하고 온 그날 밤에도 애금이는 남편의 체온이 식지도 않은 침대위 에서 백치수의 시큼한 털부숭이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재깔거렸다. 《정말 가산석밑에서 5천원 찾아냈어요. 난 또 금목걸이 살테야, 네?! 으응, 깍쟁이. 이게 뉘해야, 싫어, 싫어, 늙다리같은게. 저리 비켜요.》 《헤헤헤, 요귀염둥이야. 내 말을 들으라구. 난 죽도록 애금일 사랑해.》 《흥, 그래서요?》 《볼장 다 봤지, 창모가…흠, 헌데 그눔 어쨌든 도회지참새거든. 8천밖에 숨겨둘리 없어. 꼭 더 있어. 애금이 그걸 후벼내란말이야.》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야!》 《그걸 챈 다음. 그를…그리구 나와 함께 살자구, 응! 그잔 평생 옥밥이나 먹으라지.》 《아이, 정말 량심없네. 난 몰라, 난 리혼할테야.》 《쯧쯧, 이봐, 지금 당장 리혼하면 안돼. 늘어지게 붙으란 말이야. 아이두 거두는척하면서…정이야 나와 나누면 되잖아. 그 돈 다 줄게.》 《아이 정말?! 거짓말하면 난 싫어.》 《흠, 인젠 알겠지? 아—함 졸린다. 자, 인젠 즐겨보자구, 응?》 네번째 면회날이다. 안해를 바라보는 창모의 볼따귀는 무섭게 실룩거렸다. 볼이 풀무질하는 그만큼 속에서는 모닥불이 탔다.(에익,저 갈보년을…내가 미쳐서…)그는 단매에 쳐죽이 고 싶었지만 군자의 복수 10년을 가도 늦지 않다고 눌러 생각하고있었다. 하긴 현선생이 찾아왔던 그날, 광증이 날 정도로 신경이 뒤번져서 감옥장의 사무실까지 달려갔던 그다.그러나 정작 노크하려고 손을 들던 그는 돌아서고야 말았다. 후반생을 기탁할 거금에 대한 미련도 미련이려니와 고봉일 생각해서라도 잠시는 애금이를 붙잡아두어야 했다.그러자면 애금이를 기름내 맡고 맴도는 고양이로 만들어야 했다.그러니 죽어도 최후의 비밀은 털어놓을수 없었다. 더구나 가형을 받을 일이 두려웠다. 한편 그처럼 사랑하던 자기 안해를 슬쩍 가로타고 앉은 백치수를 당장 골탕먹 이고싶었지만 그자에게 꼬리잡힌것도 있고 또 련루되는것도 있으니 입을 막아두는 것도 상책이였다.벌써 전에 사통하고 다녔을 애금이를 그자의 품에 밀어넣어주고 억울 함을 짓삼키고있다가 나가는 날이면 그자의 대가리도 돌려놓고 그년도 찢어놓 으리라 윽벼르며 참을 <인>자를 백번도 넘게 외워댔던 그다. 면회가 거의 끝날 때 애금이 입에서 모래알같이 깔깔한 말들이 튀여나왔다. 《난, 인제 더 못살겠어요. 매미신세가 되여 북풍을 마시고 살겠어요? 아예 리혼하자요. 난 못기다려요…》 녹쓸은 철판처럼 변해가는 얼굴로 침묵만 잡고있던 남편에게서 쪽지가 날아오자 애금이는 더 종알거리지 않았다. 쪽지를 쥔 손이 바르르 떨렸다. 일루의 희망이 싸늘한 가슴에 한가닥 온기를 불어넣었다. 《하루밤 정이 만리성을 쌓는다는데 나를 너무 괴롭히지 말구려. 기다려야 했다는 생각을 가질 날 꼭 있을거요. 내 장담하지. 비록 난 자식은 아니지만 인정을 베풀어주오.》 《내가 너무 애달파서 한 말이니…부디 몸조심하세요. 또 오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가슴이 어떠했는가는 귀신과 그 자신이나 알것이다. 그녀 는 감옥담장을 벗어나자 쪽지를 펼쳤다. 《애금이, 후반생을 늘어지게 살도록 해줄게, 날 믿소, 리혼하면 통곡할 때 있을거요. 그러나 지금은 비밀을 말할수 없소. 고봉일 부탁하오. 복을 기다리오…》 애금이는 쪽지를 갈기갈기 찢어 물웅뎅이에 처넣었다. 밤. 《그래 무슨 소득이 있소?》 《흥, 기다리면 복이 있다나요.》 《것보라구, 무엇이 있길래 큰소린거야.》 백치수의 속에서 랭혹한 일만 구렝이가 꿈지럭거리고 있었다… 그뒤, 애금이도 창모도 서로 속는줄 알면서도 그냥 끈질긴 교역을 벌려왔다… 어언 3년 세월이 흘러갔다. 창모는 기다림과 그리움에 기갈이 들었다. 인젠 어엿한 중학생이 되였을 아들을 그는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애가 소학교에 다닐 때 현선생은 의식적으로 면회를 시키지 않는다고 량해를 바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말은 드러내놓고 하지 않았지만 고봉이가 집에 마음붙이지 못하고 밖에서 헤매돌 때가 많아서 무척 애먹고있다는 사실을 짐작하였다. 후에 풍편으로 들은 말이지만 한번은 밤중에도 집에 들지 않는 고봉이를 찾아헤매다가 하마트면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을번했다는것이였다. 그러는 현선생에게 창모는 세상에 나가는 날 꼭 은혜를 갚는다고 속다짐하고있었다. 이 시각도 창모는 침대우에 게나른해 누워서 속썩은 한숨만을 태워야 하는 자기 처경에 넌덜머리났다. 그저 가슴이 터지도록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무엇이든 북북 찢어버리고싶었다. (아, 황페해진 자기 마음밭에서 절망과 치욕만을 거둬들이는 인생이란 얼마나 비참하고 허무한가…) 인간은 자기에게 현명함보다 어리석음이 더 많다는것을 문득 깨달을 때 더없는 절망의 심연에 빠지게 된다. 바로 창모가 이런 경지에서 참회를 부등킨채 몸부림치고 있었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봄볕은 그렇듯 다정스러웠다. 적막과 고독과 비애를 반죽하던 창모는 문득 가슴뿌듯이 안겨지는 감격을 느꼈다. 그것은 곧 생의 희열이였다. 자각한 생의 희열은 그보다 더 크낙했다.(재부, 명예는 얻는것이지만 인격은 주는것에 있는것이요.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창모, 당신은 비로소 살기 시작하는것이요…)심장의 골방에서 경종을 울리고있었다… 《똑 똑 똑.》 조심스러운 노크소리가 창모의 일만잡념을 한줄에 쭈욱 꿰여들고 신경우에 곤두섰다. 커다란 꽃묶음을 든 끼끗한 사내 애가 들어왔다. 《선생님—》 사내애의 목메인 부름소리에는 그렇듯 절절한 정이 어려 있었다. 그린듯 조용히 누워있던 김선생이 간신히 머리를 돌려본다. 《오, 고봉이구만. 반갑소. 어서 앉소.》 김선생의 말소리는 그처럼 가냘팠지만 창모는 천둥소리에 놀란 사람처럼 벌컥 일어섰다.(고봉이라구?) 눈길은 어느새 사내애의 뒤모습을 얼싸 껴안았다.(아, 옳구나! 고봉아 ㅡ)창모는 입을 벌렸지만 웬일인지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죄인으 로서 아무와도 말하지 못한다는 그 규정에 억눌려서가 아니였다. 목이 꺽 메여올랐 던것이다. 심장만이 무섭게 세차게 박동했다. 혈관속에 더운 피가 부자지정을 호소하며 용용 고패쳤다. 《선생님, 선생님이 지도하신 저의 작문이 1등상을 탔습니다. 정수가 2등, 영희가 3등…여기 증서까지 가져왔습니다.》 김선생은 몹시 격동된듯 앙상한 손으로 증서를 오래오래 쓰다듬었다. 《훌륭한 작문이였지! 음, 좋소. 좀 있다가 나에게 읽어주오. 그런데 먼저…고봉이, 동문 아마 생명의 변두리에 나선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했지? 나를 자세히 관찰하고 구두로 외모묘사를 해보오.》 한마디 한마디 힘겹게 짜내는 김선생의 얼굴에 땀발이 섰다. 《선생님, 그런 말을 하지 마세요. 그리구 전 감히 그렇게 할수…흑 흑…》 고봉이는 비는듯 애절하게 속살거리며 자기 스승의 여윈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고봉학생, 이 좋은 기회를…어서, 혹시…나의 마지막 작문지도일수도 있소.》 아들애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절절하게 부탁하는 김선생을 바라보는 창모는 마치 화성인이라도 보는듯한 심정이였다.(역시 선생들이란…고봉인 중학에 가서도 좋은 스승을 만났구나. 내 이 아버지는…) 고봉이가 주먹으로 쓱쓱 눈물을 씻더니 띠염띠염 말하기 시작하는것이였다. 《선생님의 모습은 한백옥으로 쪼아부각한듯 고결하고 숭엄한 후광에 싸여있다. 그야말로 인류령혼의 공정사의 조각상이랄가? 옥석과 하나로 일체를 이루고있는 선생님의 모습 전체에는 그렇듯 사람을 감동시키는 신비로운 빛이 각광되여있다. 움푹 꺼져들어간 눈확속에는 깊이를 알수 없는 그윽한 호수가 자리잡고있다. 아, 그 호수에는 얼마나 많은 보물과 사랑과 잔정이 깃들어있는것일가? 선생님의 생명의 원천이 마치 한쌍의 눈에 뿌리내리고있는것 같다. 그러나 이 시각, 그처럼 그윽하고 신비롭던 호수에 점점 엷은 안개가 서리며 몽롱해간다. 흐—흑…엉—》 하냥 울먹거리던 사내애의 목소리가 끝내는 울음으로 번져갔다. 하건만 김선생은 온 마음을 다해 듣고있는듯 조용하였다. 창모의 눈굽에도 이슬이 맺혔다. 소학교 코흘리개를 저렇듯 훌륭한 작문소질을 갖춘 중학생으로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심혈과 사랑을 몰부었으랴싶어지며 가슴은 무한정 감격으로 들먹이였다. 결코 아들의 눈부신 발전에서 오는 고마움과 감격 에서만이 아니였다. 그자신도 《선생님!》하고 불러보고싶은 성스러운 부름이였다. 이윽하여 울음을 그친 고봉이가 작문책을 펼쳐들었다. 역시 그 스승에 그 제자였다. 제목이 《첫 미소》였다. 그는 천천히 작문을 읽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첫 미소는 나에게 너무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김선생님은 허물없는 친구처럼 그리도 뜨겁게 포옹해주셨다. 그후에도…》 갑자기 고봉이가 읽기를 뚝 그쳤다. 뒤이어 《선생님——!》하는 애처로운 부르짖음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창모는 나중에야 어떻게 처벌받든 제꺽 김선생의 침대가로 뛰여갔다. 김선생은 마치 사색하며 듣기라도 하는듯 아무 반응이 없었다.《아차!》 김선생의 손이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의사와 간호원들이 달려왔다. 방안의 공기는 삽시에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다만 고봉이의 울음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마구 혀벼댔다. 《선생님, 돌아가선 안돼요. 선생님! 훌륭하신 나의 선생님—저의 작문을…엉엉…》 제법 어른같이 넋두리하며 우는 고봉의 울음소리는 그처럼 애달프게 들렸다. 이윽고 고봉이가 울음을 그치더니 가져온 꽃다발을 천천히 헤치는것이였다. 그의 크고 검은 눈에서는 줄끊어진 구슬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굴러내리였다. 한가지 또 한가지 스승의 유체우에 고이 얹어놓은 꽃은 모두 마흔다섯가지였다. 전반의 마흔다섯개의 마음의 꽃이였으리라. 꽃송이마다에 아들애의 맑은 눈물이 아롱져있음을 창모도 보았다. 그것은 눈물이 아니라 깨끗하고 충성스러운 심령세계에서 휘뿌려진 진주라고 생각되였다. 그러나 나중엔 어느것이 눈물이고 어느것이 진주인지 가려볼수 없었다. 창모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였던것이다. 오직 꽃떨기속에 고요히 누워있는 김선생의 모습이 불타는 석양속에서 더욱 숭엄하게 안겨올뿐이였다. 대리석같이 창백한 김선생의 얼굴에는 그자신만이 지을수 있는 독특하고 성결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이승의 문턱을 넘으면서 조용히 남긴 최후의 미소, 그 미소는 자기 제자에게 남긴 그렇듯 성스럽고 다함없는 축복이며 미래에로 부쳐보내는 한 평범한 원예사의 령혼의 빛발이였다. 창모는 말못할 그 무엇이 명치끝을 치받는것 같아서 숨쉬기 조차 가빠났다. (아아, 나는 어떠한 사람이냐?) 김선생의 싸늘하게 식어가는 유체앞에서 묵도하듯 숙연히 서있던 그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아들아! 내다. 너의…》 순간, 가늠할길 없는 한쌍의 눈이 가슴이 서늘하게 마주쳐 왔다. 그 눈길에는 분노도 놀라움도 아닌 빛이 어려있었다. 염오의 빛같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환희의 빛도 아니였다. 그것은 한없는 비애와 추모의 정이였다… 마침내 고봉은 얼굴을 홱 돌리더니 어린애같이 《와 —》하고 울음을 터치며 총알같이 병실을 뛰쳐나갔다. 창모는 자기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심한 허탈상태가 욱 몰려왔다.(과연 내가 얻은것은 무엇이고 잃은것은 무엇이 였던가?) 이튿날아침. 창모는 경찰을 불렀다. 《무슨 일이요?》 《전, 전 오늘 출원하겠습니다.》 의사의 조언을 받은 경찰이 더 치료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창모는 기어이 감방으로 돌아오고말았다. 그날 저녁. 식사시간이 끝나자 창모는 허락을 받고 감옥의 지도원을 찾아 사무실로 곧추 걸어갔다. 사무실앞에서 한동안 주춤거리다가 드디여 옷매무시를 다듬었다. 비록 훌렁한 죄수복이지만 단추도 꼭꼭 채우고 먼지도 말끔히 털어버렸다. 고동치는 심장의 울림에 받들려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가슴속에 되맞히며 메아리치는 노크소리는 창모의 마음을 경건하게 울려주었다. 너무도 어두웠던 자기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는 신호소리는 그렇듯 확신에 차있었 다. 《똑 똑 똑! …》   천지 1991년4월호  
8    은녀의 서울행각 댓글:  조회:4307  추천:63  2008-01-30
은녀의 서울행각   최 균 선   1   마침내 그녀의 황금몽에 나래가 돋쳤다. 향항ㅡ서울행 려객기가 푸른 하늘에 날아올랐던것이다. 손만 내밀면 잡힐듯 꽃구름이 눈결에 스쳐지난다. 향항의 거리도 삽시에 보잘것없는 흑점이 되여 사라진다. 발밑에 펼펴진 망망대해를 굽어보노라니 세상은 이처럼 드넓고 지구가 정말 둥글다는 느낌이 새롭게 감촉된다. 고도를 한껏 높인 비행기의 귀맛좋은 동음이 마치 자장가처럼 졸음을 몰아오건만 그녀의 눈은 외려 또랑또랑해진다. 이겋게 바다를 날아넘는 꿈을 몇번이나 꾸었던가. 그런데 오늘 그 꿈이 현실에로 날고있으니 어찌 격동되지 않으랴! 다만 함께 떠나주지 않은 남편을 생각하니 알찌근한 마음이 무겁게 처진다. 《…한국에는 뭐 돈나무가 자라는줄 아오? 달리깨비 춤추니까 베졸뱅이도 우쭐거린다더니 공연히 덩둘해서…》 《말 바른대로 역빠른 사람들은 돈만 잘 벌어옵디다. 늦장에 망둥이 날지 어찌 알겠어요?》 《쳇, 좋은 소리만 받아넣었군. 그 한국치들이 드러내놓고 라고 깔본다는걸 못들었소? 갈라면 혼자 가라구.》 《제 피땀을 흘려 번다면 걸릴게 뭐얘요? 그저 눈 딱 감고 몇달을…》 《그래 이국 공사장에 가서 쿠리질하며 짓밟힐 나던가? 까짓것들…》 《흥, 어느 중학교선생은 죽은 사람을 메여날라 돈만 탁탁이 벌었다더군요.》 《에익, 축축한 더러운 돈.》 남편은 홱 손을 내젓고 돌아앉았다. 《글쎄 지금 세월에 지식이 몇푼이 되고 인격이 몇근이나 되는가요?》 남편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마른 작대기처럼 딱딱 부러지는 남편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설전을 그만두었다. 쉬가 틀려서 괜히 자기마저 못가게 하면 야단인것이다. 그녀는 침대우에 벌렁 나누어 천정만 쳐다보는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살뜰한 정을 쏟았다. 《여보세요, 진짜 성난거예요? 글쎄 봐요. 저혼자 잘살자구하는 궁린가요? 로임은 눈섭같고 물가는 수염같은데 어찌 살아요? 얼렁뚱땅 제노릇 잘 하는 사람들은 사는듯이 뽐내는데 우리라구 왜 버둥거려보지 못한단말인가요?》 하건만 남편은 묵묵무답이다. 안해의 말이 무리가 아니였던것이다. 확실히 눈섭은 자랄줄 모르고 수염만 자란다. 엄혹한 이 경쟁속에서 붕재라는 사나이는 너무나 무력하다. 주어진 밥통에 매달려 애일배일하는 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바로 자신이라 생각할 때 가슴에는 말못할 그 무엇이 구렝이처럼 꿈틀거렸다. 술집같은데서 노래 한가락 얼추 불러도 백원도 더 받는데 끙끙거리며 소설 한편 써봐야 그저 그랬다. (에익, 될대로 되라지…) 그는 아예 눈을 딱 감아버렸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성스러운 사랑의 꽃무늬로 날따라 윤기를 잃어가는 생활을 알뜰히도 수놓아가며 붕재와 함께라면 한가지 천만을 짜더라도 보람있는 삶이라고 만족하면서 부지런히 살아왔다. 하긴 남편이 끼끗한 체격에 말쑥하게 생긴 미남이고 게다가 고등교육을 받은 문화인이여서 그녀는 자기들의 사랑의 세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의 바다라고 여겼다. 그런데 문뜩 꿈에서 깨고보니 그들은 바다의 여울에서 자맥질한데 불과했다. 부족한것이 너무 많았고 그만큼 부러운것도 많았다. 남편이 마음 풀어놓고 글을 쓸 서재는커녕 일년치고 두어번씩은《유격전》을 하는 세방살이 신세였다. 더구나 사랑의 경쟁자였던 천금이가 무엇이든 잘 물어들이는 남편을 얻어서 내노라 우쭐거릴 때는 제풀에 왼발 그르고 침도 뱉아보지만 그렇다고 금전의 위력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붕재도 물론 그 무슨 보람있고 정서적인 감각이요 리해요 순수애정이요 하는 색바랜 랑만에 절은 등신은 아니였다. 그라고 왜 잘살아보고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안해가 추구하는 목표와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른것이라고 확신하는터였다. 그렇다고 안해를 마구 나무랄것도 못되였다. 꽃바람이 세차게 불어치는데 나풀거리지 않을 꽃잎이 어데있으랴! 상품경제의 물결속에서 도시사람들은 거개가 다 이렇게 저렇게 탐닉하면서 살찌여가건만 유독 자기가 속한 부류의 사람들만 너무도 여위여 있었다. 돈벌이에 대해 덮어놓고 도덕적안광으로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또 온갖 비리적의식 속에 묻혀사는것도 인간이라는것을 너무도 잘 아는 그였다. 중학교때 공부에는 쩔쩔매던 친구들이 어찌어찌해서 한자리했거나 한밑천 단단히 잡고서 보란듯이 사는것을 보면 도대체 인간의 옳은 구실이란 무엇인지. 지식의 가치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무튼 한몫 잡은자는 수완있고 똑똑한 인격자이고 제구실을 착실히 하는 사내로 치부되고 반대로 못잡은자는 그가 학자이든 작가이든 옹졸하고 가련하고 너절한 인간으로 멸시받는 현실인것만은 틀림없었다. 생각이 예까지 미치면 그는 그만 주눅이 들고 헤여나올수 없는 비애에 빠지고만다. 자기들만이 느끼는 애정생활의 작은 오아시스에서 현처량모의 역을 진심으로 지칠줄 모르고 맡아해오던 안해였다. 안해는 녀인들이면 다 갖는것이 아닌 특유의 매력과 미모를 타고났다. 허지만 안해는 그 천성의 아름다움에 후광을 씌워주어야 할 남편을 만나지 못하였고 또 녀인의 그 본능적욕구를 과시하며 살지 못하는것으로 해서 그처럼 속상해하는것이다. 안해가 이런 보배를 갖고있는 한 만약 무엇인가 하려고만 마음먹는다면 꼭 해낼수 있고 또 바라는 모든것을 얻고야말것이라고 궁리를 외곬으로 몰아도 보았다. 남녀의 순결한 사랑에만 몰두하다가 문득 가장 실혜적이고 실제적인 금전의 유혹에 말려들어 향락속에 자기를 매몰시킨 녀자가 적단말인가? 생활의 감탕물은 도처에서 범람하고있다. 그런데 안해도 마침내 시대의 풍운에 눈을 번쩍 뜨게 된것이다. 하여 한국에 가서 돈벌이를 하겠단다. 결국 안해의 《모험》에 수긍하고말았지만 괴상한 잡념과 황당한 예감들이 구데기마냥 그의 마음속에서 꿈지락거리며 번거로움을 자아내게 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마다 자신이 생각의 벽돌을 거꾸로 쌓아올린다고 비웃고 후회했지만 자기의 인격과 존엄의 담장이 이미 내부로부터 무너지고있음이 절감돼 더없이 불쾌해졌다. 그는 안해의 얼굴을 얼없이 바라보다가는 복숭아냄새같이 향그러운 입김이 새여나오는 탐스러운 입에 말못하는 그 모든 집념을 격정과 함께 쏟아부었다. 《여보, 난 당신없이 하루도 못살것 같애.》 《아이 싱겁쟁이, 누가 뭐 영영 가나요! 그러게 함께 가서 벌자요 네? 저도 어쩐지…》 그녀가 남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글쎄말이요. 남도 다 건져먹은판에…모두들 약장사는 잘 안된다는데 그러다가 강도 못건너고 배만 번질지두 몰라…》 《그것봐요. 그러길래 중국의 지식분자들은 나라에서 주는 밥이 없으면 그저 나앉아 굶을수밖에 없어요. 시대가 달아졌다구요.》 《그래 당신은 인격은 구겨박아고 돈만 나오면 다란말이요? 에, 그저 그 돈이 더러워서…》 《여보세요. 글방샌님, 코를 싸쥐면서도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 변소지요. 돈도 마찬가지래요. 잘 살수만 있다면야…》 《여보, 그렇게 돈냄새만 켜고 다니다간 어느 낚시에 걸리지 않나 보라구 젠장,》 《아니?! 당신?》 《돈 나오는 모퉁이가 죽는 모퉁이라구 그저 조심하라는 말 이요. 성내긴?》 《왜 그런 불길한 소릴 해요? 절 믿지못해하는거 아녜요? 양은 암만 볕에 내놓아도 끄을지 않는다지 않아요. 사랑하는이, 시름놓아도 좋아요…》 하긴 그렇다. 굴속에 저장해둔 고구마도 속이 썩으면 야단인것이다. 다 사람 나름에 달린것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붕재는 안해의 출국을 수락하였고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돈을 꾸어들였다. 헤여지기 전날 밤까지 그들 부부는 치부경을 읽으며 옥신각신하기도 하고 한숨도 쉬다가는 련련한 정에 못이겨 엉켜돌기도 하면서 밤을 패였다. 떠나는 날, 그녀는 석연한 얼굴루 손저어 바래는 남편의 영준한 모습을 가슴깊이 새겼다. 가슴에는 아쉽고 떫고 맵싸한 느낌이 번져놓은 밭이랑에 비물이 스며들듯 흘러들었다.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2   마음의 밀물이 들이닥친 여백에는 썰물뒤의 우울과 불안이 자리잡기 마련이다. 희망이 차린 약속없는《만찬》에로 날아가던 그녀의 격동되였던 심정도 서울비행장 착륙과 더불어 홀로 이국땅에 왔다는 느낌이 현실적으로 안겨오자 근심과 걱정이 푹푹 묻어나왔다. 그 불안과 초조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초청장을 보내준 먼 일가친척되는 사람이 비행장에 나와있지 않았다. 그녀는 당황해났다. 광장에 홀로 남은 그녀가 갈팡질팡하고있는데 갑자기 등뒤에서 웬 남성의 바스음성이 들려왔다. 《아가씨, 아마도 딱한 사정 있는것같군요. 마중하기로 약속한 친척 안나왔나요?》 그녀가 깜짝 놀라 돌아서보니 우람진 체대의 한국사나이였다. 구운빵을 련상시키는 부둥부둥한 얼굴, 부른 배와 유들유들한 목…향항에서 서울까지 내내 통로 저쪽에 앉아서 말을 건네여오던 중년사나이였다. 《아, 네. 긴장해할 필요 없어요. 한 비행기를 타고 온 이국동포였으니 혹시 도움을 줄수 있을가 해서죠. 실례입니다만…》 《허허, 무척 경계하시는군. 절 믿어두 돼요. 나쁜사람 아니니께, 밤두 깊어가는데 우선 저의 차로 호텔까지 모셔다 드리는게 어때요?》 그녀는 좀 무섬증이 났지만 아무렴 잡아야 먹을가 생각하고는 한번 신세지기로 마음먹었다. 사나이의 행동은 무척 점잖았다. 하이야에 앉은 그녀의 마음은 뒤숭숭했 지만 자동차는 미끄러지듯 기분좋게 서울거리를 질주했다. 눈결에 흘러가는 밤거리는 어느 영화에서 본 도꾜의 거리처럼 불야성을 이루고있었다. 아찔하게 높이 솟은 건물마다에서 꿈결같은 기분을 자아내는 불빛이 쏟아져나왔다. 온갖 색체와 빛으로 황홀경을 이룬 거리마다에서 네온싸인들이 앞다투어 껌벅거리고있었다. 사나이가 느닷없이 말을 건네였다. 《연변은 저의 아버지의 고향이지요. 저도 무척 정이 가는 곳이구요. 일전에 한번 다녀왔어요. 하니께 우린 또 한고향사람이라 할수 있는거죠.》 그년는 약간 몸을 움직여보이는것으로 《아, 그러세요》하는 례의적인 대답을 대신했다. 숱진 눈섭아래 별스레 자주 껌벅이는 풍류스러운 방울눈과 멋진 구레나룻이 어쩐지 경계심을 돋구어주었다. 《서울에 살밭은 친척이 없고보면 좀 어려울걸요. 작년과도 달라졌지요. 자, 이건 저의 명함장인데 받아두세요. 개의치 않는다면 전 도와줄 용의가 있는거니까.》 사나이는 그녀의 무릎에 명함장을 슬쩍 놓아주었다.《서울 ××은행총재 함달진》이라는 금빛글자들이 눈결에 비쳐왔다. 그래봐서 그런지 돈내가 물씬 풍겨오는듯싶었다. 《이거 실롑니다만 아가씨 성함을 알아볼 영광을 주시겠어요? 네에, 남은녀라구요. 고운 이름인데요. 참 여기서 내립시다. 값싸고도 괜찮게 깨끗한 호텔이지요.》 호텔에 들어선 함씨는 그녀가 어쩡쩡해 서있는새에 방 하나를 잡아주었다. 《얼마간의 주숙비랑 회계맞추어 두었으니 걱정마세요. 전…자 그럼 안녕. 후일 필요하다면 회사에 전화걸어요.》 각별히 친절을 베푸는 이 낯모를 한국사나이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어쩔지 망서리는중에 사나이는 사람좋게 벌씬 웃어보이고는 훌쩍 나가버렸다. 그녀는 침대가에 앉아 망연한 생각에 잠겼다. 박정한 일가 친척의 랭대에서 자기 행동의 반경을 구하면서 메마른 이국의 인정세계가 꿰뚫어보였다. 허구픈 한숨과 함께 삽시에 려로의 피곤이 욱 몰려왔다. 서울에서 꾸는 첫꿈은 별로 뒤숭숭했다. 이튿날, 그녀는 중국사람들이 약을 판다는 지하철로에도 나가보고 덕수궁어구며 파고다공원에도 쫓아가서 살펴보았다. 아닌게아니라 간곳마다 약광고를 목에 걸었거나 손에 든 동포들이 안달복달하고있었다. 점잖은 옷차림의 남자신사들도 푸술히 보였는데 개중에는 대학교선생들도 있다한다. 얼굴들에 초조하고 피로하고 망연자실해 하는 표정이 어려있었는데 맘에 없는 친절이 메마른 웃음을 게바르고있었다. 어떤 녀자들은 아양을 떨고 가살을 피우며 솜씨를 펴는데 그야말로 놀라울지경이다. 그녀는 벌써부터 자신이 없어졌다. 그녀는 이것저것 탐문하느라고 해종일 거리바닥에서 헤매다가 늦어서야 호텔방에 돌아왔다. 그녀는 사맥이 나른했다. 먼저 다녀간 친구의 연줄로 먼 일가친척을 등대고 출국수속을 하느라 이 사람 저 사람의 염낭에 숱한 지페뭉치를 밀어넣었고 약품구입을 하느라 높은 리식의 변돈을 맡아온 그녀에게 있어서는 앞길이 경악할 지경으로 암담했다. 약품을 팔아서 횡재를 한다는건 욕망뿐이였고 더구나 일확천금을 번다는건 비탈에서 바퀴를 굴리기보다 더 어렵다는것이 확연해졌다.그녀는 불도 켜지 않은채 창가에 우두커니 앉아 잠들줄 모르는 서울의 밤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다음날부터 그녀는 서울거리를 누비면서 억지도 쓰고 열도 올리면서 판매의 혈전을 벌려나갔다. 며칠새에 그녀는 거짓말도 제법 배워냈다. 아무리 해야 세금을 물지 않는 거짓말인데야 못할게 무어랴싶었다. 그러나 억지도 한두번이고 거짓도 그저 거기에 머물렀다. 어떤 사나이들은 그녀의 미모를 탐내여 은근히 낚시를 던질가 하면서 애도 먹였다. 그녀는 때론 자기가 걷지 말아야 할 길을 걸었다고 후회도 해보았다. 그럴즈음에 일가 친척의 아들된다는 사람이 찾아왔다. 30대의 젊은이였는데 그만 외지에 다녀오다보니 영접도 못하고 미처 돌보아드리지도 못했노라며 인정스럽게 굴었다. 그는 약을 팔지 못해 안달아하는 그녀의 사정을 몹시 동정하더니 도와주겠노라고 선뜻 나섰다. 이튿날 그 친척은 부산, 대구쪽으로 나가면 한 보름쯤 걸려 해결될것이라며 시름놓고 기다리라 했다. 한창 궁지에 빠져서 속에 재가 들어앉던 그녀에게 있어서는 난파선에 구호배가 아닐수 없었다. 그녀는 일이 여차여차하게 풀리여 인차 돌아갈수 있다는 편지까지 써놓고 며칠간은 유한마담이 되여 서울구경을 하며 견문도 꽤 넓혀갔다. 그런데 약속한 보름이 지났건만 웬걸, 젊은이는 얼굴 한짝 내밀지 않는다. 하루 또 하루, 일각이 삼추같이 기다렸으나 함흥차사였다. 그제야 그는 일이 상서롭지 못함을 느꼈다. 협잡을 든것이였다! 일시에 하늘이 무너져내린듯 앞이 캄캄해났다. 그녀는 끝내 자리에 앓아누웠다. 그동안 밀린 주숙비도 은근히 재촉이 났다. 다행히도 호텔주인이 인정사정 알아주는 녀자여서 턱없이 맥을 버리지 말고 식당같은데나 나가 얼마간이라도 벌라고 충고했다. 막다른 지경에 이른 그녀는 이튿날부터 식당의 사발씻는 일에 나섰다. 수입이 괜찮았으나 일이 분주스럽기가 말이 아니였다. 늦게까지 밤일을 하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우면 누구의 탓이기나 한것처럼 설음이 왈칵 쏟아졌다.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그럭저럭 한달을 채우고나니 얼마간의 돈이 쥐여졌다. 그는 고역으로 바꿔온 지페를 손에 꼭 쥐여보았다. 마음속에 각오했던것이여선지 서글픈 편안감과 함께 새 힘이 솟는듯했다.(이를 악물고 벌어야지. 쉽사리 돈을 벌자고 궁리한 내가 어리석지. 벌자! 쓰러지는한이 있더라도 벌고 또 벌자.)이렇게 마음을 다져먹고는 이튿날 다시 일하러 다녔다. 그러다가 섬약한 체질이 배겨내지 못하여 그만 졸도하고야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에 누워있었다. 식당주인이 그녀를 가긍히 여겨 병원에 실어오고 치료비까지 담당했다고 간호원이 알려주었다. 며칠후 식당에 나가니 주인은 은근히 친절을 보이며 접대원 노릇을 하란다. 일은 가볍고 깨끗했으나 주정뱅이들의 성화에 등골이 근지러운 일이 많아졌 다. 어느날 저녁무렵 한 중년 사나이가 조용히 들어와 구석쪽에 앉더니 별로 음식을 청하지도 않고 그녀를 유심히 살펴보고있었다. 《참, 은녀씨 여기서 만날줄은 생각밖입니다. 반가와요. 나 함달진! 알아보셨죠 허허…》 걸걸한 웃음이 호방했다. 《어머, 함선생이시군요. 신셀 많이 져놓구두 인사도 변변히 드리지 못해서…》 《노, 노, 신세라니요. 동포의 응당한 인정에 불과한걸요. 좀 앉아봐요. 얘기도 나눌겸.》 말끝에 고급음료를 청해 그녀에게 건네여주는 그의 눈가에 정이 찰찰 흐른다. 《은녀씨, 은녀씨같은 미인아씨가 이런데서 고역을 치르다니요. 참 격에 맞지 않는데요. 어떻게 된 일이죠? 그간 사정말해줄수 없나요?》 은녀는 웬일인지 함씨에게 일종의 믿음이 가면서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함씨는 측은해하면서 혀를 찼다. 《거참 량심 개주어버린놈팽이군. 너무 속상해말아요. 나 그만한 연줄이 있으니까요. 어떻게 난국을 타개하도록 힘써봅시다요.》 그녀는 이 인정스러운 사나이의 가식이 없는 동정심을 믿고싶었다. 함씨는 말을 절제하는듯하면서도 교묘하게 대화의 계주봉을 그녀에게 건네였다. 녀자들이 흔히 생활에서 범하는 착오는 거개 생각해야 할 곳에서는 느끼고 느껴야 할 곳에서는 생각하는데서 생긴다며 떠나올무렵 뒤를 눌러 말하던 남편의 얼굴이 피끗 떠올랐지만 이런 장소에서 이런 때에 그녀는 느껴야 할지, 생각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한것은 함씨가 또 절절하게 관심을 주고 실제적인 문제를 담당해나서고 있기때문이였다. 《은녀씨, 돈 벌바하곤 돈을 갑절 받는 카라QK로 나가봐요. 내가 알선해 드릴테니》 《제가요? 고맙긴 한데 어찌…좀 생각해보겠어요.》 말은 사양하는듯했지만 마음은 벌써 움직이고있었다. 더구나 세상없이 친절하게 굴던 50대의 주인이 점점 눈길이 가슴을 딛고 올라서며 먹지 못해 냠냠거리는 꼴이 언제든 재국을 칠것 같았던것이다. 게다가 돈을 갑절로 준다지 않는가? 함씨는 깍듯이 인사하고는 갔다. 차안에서 함씨는 바래러 문어귀까지 나온 그녀를 보면서 빙긋이 웃었다. 며칠후 그녀는 일자리를 옮기였다. 일은 한결 쉬웠다. 미인의 매력이 각별해서 영업이 별로 흥성한다며 주인도 벙글써 해졌다. 하지만 살이 떨리고 얼굴이 뜨거워 지는 일이 매일같이 생겼다. 그녀는 밤마다 잠들지 못하였다. 비록 가난하나마 진정어린 웃음과 눈빛으로 생활의 꽃밭을 가꾸어가던 나날의 가치와 의미를 갈수록 뼈저리게 느꼈다. 당장 이라도 내 고향, 내 집, 내 남편의 품속에서 인생의 단꿀을 빚어가며 살고싶었다. 이렇게 남모르게 삼키는 수모의 눈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헹구면서도 한숨속에 황금몽을 불태웠고 그러다가는 또 그냥 뻗쳐나갔다. 짜내고 후벼내고 끌어모으는것이 장땅이라고 자신을 달래였다. 인간에게서 진실로 뽐낼수 있는것이 돈밖에 또 있는 가? 돈을 번다는것은 수완과 재간에 달린것이고 의지의 대결이라고 강심을 먹었다. 이제 와서 돈은 그녀의 삶의 의미였고 전부의 추구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것이 타락과 허무를 말해주기는 했지만 금전은 확실히 마술이였고 최고의 자아승리이기도 했다.    3   좋은 소식이 먹이를 먹는 동안 나쁜 소식은 역마를 타고 간다고 그녀의 서울행각에 구접지레한 풍문이 대륙에 전해졌다. 그 역마는 함씨를 바래러 식당에서 나온 그녀를 알아본 천금이였다. 내막이야 여하하든 자기의《백마왕자》를 손쉽게 앗아낸 은녀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였던것이다. 이 소식에 붕재는 돈이고 나발이고 즉각 돌아오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나 은녀는 돌아갈수 없었다. 남편에게 사실을 이실직고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것이다. 아무튼 남편에게 아직까지 미안한 일은 아니했으니 언젠가는 리해할 날이 있으리라고 마음을 눅잦혔다. 하루는 함씨에게서 좋은 소식이 있으니 한번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함씨의 사무실이야말로 하나의 궁전이였다. 《저 딴 용건이 아니구요. 부탁대루 그 사기군놈을 나포했다는거예요. 제따위가…헌데 약값 절반나마 삼키지 않았겠어요. 참, 한국을 망신시킨놈이야!》 그녀는 얼결에 발딱 일어섰다. 실말인지 모략인지 알바없지만 충격파는 컸다. 그뒤 함씨의 말은 더구나 초풍할 지경이였다. 《너무 긴장해말아요. 에, 이건 우리 지성인들의 망신이기도 한데. 이렇거죠. 나머지 액수는 이 함모가 맡지요. 자, 이걸 받아요.》 그녀는 너무도 의외여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여 우두커니 앉았다. 《고국에 와 봉변당해서 참 가슴아파요. 저쪽에서 변돈을 맡았다니까 얼마나 속탔겠어요. 내가 딸라루 태환시켜줄테이니깐 얼른 부쳐보내두룩 해요. 그래야 시름놓고 일을 하든지 하잖 아요.》 그녀로서는 감격하지 않을수 없었다. 함씨는 사람좋게 웃어뵈였다. 《고만한걸 가지구 그럴거 없어요. 까짓것 새발에 피니까. 헌데 하나 부탁해두 좋을가요. 음, 물론 거절하질 않기를 바래 요.》 그녀는 공연히 긴장해있는데 함씨는 여유작작하게 차물을 마시며 그녀에게도 건네주었다. 《인제 은녀씨두 한시름 덜었으니께루 기분도 돌릴겸 고국땅 여게저게를 한번 밟아봐요. 사에 녀비서랑 함께 나가니까 오해를 가질거 없어요. 허허…그리구 한번 돌아보느라면 혹시 무슨 좋은 일이라두 생길거 아니요. 비용은 다 내가 안는 거예요.》 그녀가 어찌 거절할수 있으랴. 감사란 곧 보답하려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여기는 지리산 풍경구이다. 련산련봉이 유구한 세월의 침묵속에 온갖 번잡한 속세의 생활을 등지고 대자연의 고즈넉한 묵상에 잠겨있다. 골골이 길이 뻗었고 어데가나 흙길이란 보이지 않는다. 골령의 여기저기에 보이는 새 마을에 여러 색갈의 기와를 떠인 주택들은 동화세계를 련상시킨다. 함씨의 말에 의하면 돈많은 부옹들과 유한마담들의 피서지라 한다. 하지만 녀비서는 눈이 맞아 배를 맞추려는 바람둥이들이 찾아와서 정사를 나누는 곳이라고 속살거렸다. 그녀는 솔깃해진 호기심에 앞서 음식업같은것을 시작하면 수지가 맞아떨어질것 이라는 기발한 착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함씨에게 속타산을 내비쳤더니 껄껄 웃으며 대찬성이였다. 참으로 기업가의 총명을 가졌다면서 자금까지 대주겠노라고 적극 나섰다. 드디여 그녀는 땡잡을수 있는 행업을 시작하였다. 한국음식에 대국의 음식문화를 결합시켜놓으니 수입이 가관이다. 게다가 무슨 바람둥이들이 그리도 많은지 손님은 쉬임없이 찾아든다. 형제지간 부모자식간에도 밥값을 치르고 받는다는 깍쟁이 량반들이 녀자들의 치마속에는 황금을 만재한 기선이라도 들이 밀듯이 호기를 뽑다보니 불어날것은 그녀의 옆채기였다. 물론 그녀는 함씨를 미소하는 행복의 사자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또 자신의 넋과 육체를 파먹으려는 악마라고 여기고싶지도 않았다. 성금하고 불같은 정열의 사나이면서도 시간을 초월하는 그 인내성과 불가사의할만치 인간애의 폭을 보여주는 훈훈한 흉금과 생활의 갈림길에서 분명한 선택을 하도록 기다려주는 아량에 마음의 천평이 기울어진탓일수 있었다. 때론 그녀자신이 은인이기도 한 이 부옹의 집요한 공격에 저항할 힘이 없고 언젠가는 자기를 깡그리 내주어야 할것이라는 예감에 몸서리치다가도 자기변호 비슷한 체념속에서 슬픈 쾌감까지 느끼기도 했다. 그녀의 녀성궁전이 철저히 무너진 그날은 오고야말았다. 함씨가 온 그날 저녁 함께 식사를 하는중 하도 권하기에 포도주 한잔을 마신것이 그만… 이튿날 해가 중천에 떠서야 깨여난 그녀는 밤새 벌어졌던 그 끔찍스러운 비밀을 돌이키며 몸서리쳤다. 그녀는 슬피슬피 울었다. 그 소리에 곁에 누운 사나이가 깨여났다. 《이봐요. 나의 새끼양. 울고있는거 아니여? 간밤에 미안했어. 참을수 없었던 거야. 하지만 당신 너무너무 좋았어. 눈물 닦아요. 자, 요렇게. 응?》 《……》 《산다는것이 바로 움직이는것이구 새것을 향해 나아가는것 아니겠어? 이봐 남에게 즐거움을 주고 자기도 받았다면 곧 함께 살수 있는거 아니겠어?》 《위군자! 썩 물러가요. 아, 내가 바보였어요. 흑…》 그러면서도 다시 감겨드는 사내의 팔을 모멸차게 물리치지는 못하였다. 《은녀씬 이 한국서 살려면 탈바꿈해야 돼요.》 하긴 그녀도 여기 실정을 좀 알고있었다. 남자들은 밤새껏 기생년을 끼고  뒹굴다가 집에 오면 안해들은 문책하기는커녕 외려 밤새 무사히 주무셨는가고 깍듯이 인사를 올려야 하는 판이다. 그러니 그 무슨 배반이요 패덕이요 하는 관념을 가지지 않는다. 녀자들은 외도하는 남편이 잘나서 그렇다고 자랑으로까지 느끼면서 참고 묵인한다. 이런 주지육림속에서 굴러먹은 탕아인 함씨로서는 있을법한 이성관이요 뻔뻔스러운 철학이였다. 《만약 사내로 태여났으면 자기의 인생에서 녀자에게 어떤 의미를 제공해주고 좋은 한때를 마련해줄수 있어야 한다구요. 아니면 녀자를 사랑할 자격도 없고 독점할 권리는 더구나 없는거예요. 은녀씨, 나와 결혼해서 한번 호강해봐요.》 철두철미 금전만능에서 인생의 기점을 찾는 향락주의자의 그럴듯한 설교다. 그렇다한들 은녀로서 무엇을 반박할수 있을것 인가. 그녀는 너무도 무력했다.   4   그녀는 마침내 상처입은 철새가 되여 귀향하기로 맘먹었다. 함씨는 물론 이제 첫맛을 들인 이 미인을 놓치고싶지 않았다. 정작 간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까지 생긴듯 영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막무가내였다. 그렇다고 잊을수 없는 그 한때를 제공해준 이국녀자를 섭섭하게 대하고싶지 않았다. 황금의 사슬은 언제나 강철로 만든 사슬보다 더 값진 법이라고 확신하는 그인지라 이 녀자가 이제 곡경을 치르고(이미 잘 짜놓은 그물이 한번 사용되였다.) 오고갈데 없을 때 스스로 품속에 안겨들게 하려면 아낄것 없었다. 황차 녀자편의 친척들중 중국시장의 발판이 될만한 사람들이 있음에랴! 그는 선물도 많이 주었고 딸라도 무드기 안겨주었다. 그리고 결코 몸값이 아니라 사랑의 표시라고 그루를 박는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서투른 서울행각에 인생비극의 도화선을 묻어두고 마침내 귀로에 올랐다. 그녀는 이 땅을 다시 밟게 되였지만 자신이 마치 천국에서 뚝 떨어지기나 한것처럼 보이는것마다 눈이 감겼다. 그러면서도 아지 못할 푸근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모순된 심정이였다. 이러나저러나 여긴 동방화촉의 밤을 밝히고 옷고름을 풀어준 남편과 그 사랑의 금열매인 아들애가 살고있었으니 다시금 태줄을 묻고 키워준 고향의 품에 돌아왔다는 기쁨도 애써 가져보았다.  죄꼬만 세방집에 넘치도록 온갖 잡동사니를 부리웠을 때 동네에서는 눈이 휘둥그래졌고 찬탄과 부러움에 혀를 끌끌찼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이요 개선장군이 된셈이다. 욱 모여들었던 친지들이 입이 함박만해서 헤여지고 아들애마저 외할미집에 보내버린 붕재가 안해를 곁에 불렀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갈려있다. 《그—동안 고—생도 많았지? 그리고 수—고도 많았구.》 죽어가는 사람의 림종유언처럼 힘겹게 짜내는 붕재의 말이다. 혀가 마르고 입술이 타올랐고 울대뼈가 오르내렸다. 점점 쇠빛으로 녹쓸어가는 남편의 얼굴에서 불길한 징조를 읽은 그녀는 불안에 몸을 떨고앉았다. 미구에 청천벽력이 《꽝》 울렸다. 《쌍, 뒈질…이건 무엇이지?》 《뭔데요. 아니 록화테프 아니예요?》 《알고있었던가? 그래 솔직하게 말할테냐?》 예리한 비수마냥 안해의 눈길을 찍어 넘기던 붕재의 눈에 불찌가 탁탁 튕기더니 한국에서 가져온 록화기에 스위치를 찰칵 넣었다. 얼결에 화면을 살피던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너무나도 생생한 그 방안, 그 불빛, 란무하는 라체의 사나이밑에서 신음하는 녀자…하얀 자기의 다리를 오열에 떨며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무지 일어설수가 없다. 화면에서 눈길도 떨어지지 않는다. 생각하는 동물의 야성이 가장 은밀히 진행되는 그것을 지혜로운 향수로 누리고있는 적라라한 활극이 계속되고있었다. 《아—함달진!》 째지는듯한 단말마의 부르짖음이 폭푼전의 침묵을 북 찢었다. 그녀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죽여주세요. 흑,》 붕재의 입안에서 뿌드득 어금이가 갈리는 소리가 저승문을 여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붕재는 리성을 잃지 않은 이 시각에도 이런 비극이 생기게 된 근원을 캐보려 하지 않았고 자기들만의《에덴동산》에 불을 지른 저주맞을 사내에게 보복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직 결과만이 중요하고 실제적인것이였다. 그랬다. 인간은 거개 그 죄에 대해서는 성내지 않고 그것을 범한 죄인에 대해서만 성내고있다. 《에익, 개차반같은…죽여버릴테다 —》 악에 받쳐 무정해진 발길이 사정없이 날아갔다. 가슴에 일격을 받은 그녀가《악!》소리와 함께 육자배기로 엎어졌다. 번뜩이는 식칼을 찾아든 붕재가 안해를 가로타고 앉아 으르렁거렸다. 《눈을 뜨고 나를 보앗! 왜 그랬지?》 《죽여요. 할 말이 없어요.》 그녀스스로 앞가슴을 헤치고 칼을 받으려 하자 붕재자신도 주춤했다. 각일각 박동을 멈출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것이 보였다. 붕재는 두눈을 딱 부릅뜨고 칼쥔 손을 높이 추겨들었다. 순간 얼굴을 덮은 머리칼새로 공포에 떠는 새별이 반짝하다가 스르륵 감겨진다. 눈귀로 두줄기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눈물범벅이 된 붕재의 눈에 해쓱해진 안해의 얼굴이 환영처럼 안겨왔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다가 풀어진 손아귀에서 칼이 뚝 떨어졌다. 그녀의 찢긴 얼굴에서 붉은피가 솟아났다. 그녀는 기절해있었다. 붕재도 심한 허탈상태에 빠져 웃몸을 가누지 못했다. 삶의 허무를 받아들인다 는것은 자기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허무의 총체를 이루는 그 모든 비리하고 너절한 탐욕이 그렇듯 순결무후하던 안해 은녀를 고비사막보다 더 황량한 사랑의 페허우에 산송장이 되여지게 하였으니 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인가. 붕재는 안해없는 수많은 불면의 밤에 불길한 예감과 악몽에 시달리면서 번쩍 스쳐지나는 령감을 잡았다. 그는 소설을 구상했다. 소설에서는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여 인성도 도덕도 인격도 비틀어지는 현실의 한구석을 파헤치고 사랑과 랑만을 거지 발싸개처럼 내던지는 현대인, 특히는 애정을 어느 길가의 구멍가게에서나 사서 씹을수 있는 양껌처럼 여기는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주단우에서만 애욕도 가치를 가진다는 시대착오자들에게 상품경제시대 우리 민족의 문화심리의 완충지대를 조명해 보임으로써 마음가짐을 진실하게 가질줄 아는 인간회복상을 보여주려 했었다. 그랬건만 운명의 장난은 못되여먹었다. 다른 사람들이 소설에서 생활을 읽을 때 붕재 그자신은 자기 생활속에서 소설을 보게 되였으니 생활의 조롱이라 할가. 갑자기 찬물에 뛰여들 때처럼 흑흑 흐느끼던 그의 가슴 속에서 검은 욕구가 치밀어올랐다. 그는 성학대광마냥 예쁜 안해의 얼굴을 꼬집고 할퀴고 치고 박고 하다가는 다시 포옹하며 엉엉 울었다. 그러는새에 안해의 옷은 갈갈이 찢어지고 순백의 육체가 드러났다. 안해의 라체는 말그대로 옥을 다듬어 만든듯 피흘리는 천사의 모습이였도 한폭의 생동한 명화였다. 동실한 어깨아래로 만두빛 두봉우리가 아름답게 솟아있고 다시 유연하게 뻗어내린 곡선미, 비단실이 끌려내린듯이 연한 곡선이 둔부를 풍만하게 그려내려 가면서 정교한 조물주의 걸작을 현시하고있었다. 오직 붕재 자기에게만 속했고 또 속해야 할 결백의 육체가 재무지에 떨어져 털어도 불어도 안되는 두부처럼 더러워졌다. 안해가 참을수 없는 아픔에 애처롭게 비명을 울리며 꿈틀거릴수록 그는 잔인한 쾌감에 전률하면서《하하》웃다가는 멍들고 피투성이 된 몸뚱아리에 얼굴을 파묻으며 꺼이꺼이 울었다. 그렇듯 실성해있던 붕재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육체에서 전해오는 감각에 온 몸의 피가 거꾸로 흘렀다. 그는 방비없이 늘어진 안해를 까뭉개고 파괴하면서 마음속에 엉키고 서린 어혈과 내심의 모든 잡다한 집념들을 덩어리채 쏟아냈다. 그것은 야만이였다. 유린당한 사랑과 다하지 못한 아낌의 불만에서 터지는 광란 그것이였다. 인간의 어떤 정감은 소설언어로는 해석할수 없는것이였다. 그 어떤 추리성부호거나 절묘한 예술기호도 행동하는 인간심리의 페지에 찍히는 감탄표에 비길수 없는것이다. 참으로 그날 밤은 고통의 밤이였다.   5   마가을, 궂은비가 찬기운을 풍기며 구질구질 내린다. 계절의 조화로운 붓끝아래 푸른 단장 뽐내던 나무들이 어느덧 여름옷을 마지막으로 벗기우고있었다. 누렇게 황든 잎새들이 가을의 구슬 픈 조락을 알리는 엽서마냥 바람따라 날린다. 비내리는 밤거리를 한 사나이가 취옹마냥 구부정해서 비틀거리고있다. 이 거리에서 늘 볼수 있는 미친사나이 붕재였다. 쉬얼쉬얼 쭝얼거리다가도 승냥이 울음소리같이 소름끼치는 괴상한 웃음을 터뜨려 길가던 녀인들이 초풍하도록 놀란다. 은녀는 붕재의 성학대에 진저리치다가 집을 뛰쳐나왔다. 얼마후 연변땅에 날아온 함씨와 만났다. 함씨는 이렇게 된바하고는 아예 결혼하자고 나섰다. 그녀 얼굴에 수긍하는듯 야릇한 웃음이 어렸다. 남편 붕재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거라고 짐짓 둘러대고 또 아들애의 장래를 보아 따라갈수 없노라고 잡아떼자 함씨는 례의 금방망이를 내들었다. 은녀는 함씨에게서 될수록 많은 돈을 후려내려 했다. 결코 그것으로 자기의 인생길을 뒤틀어놓은 사나이에게 봉창하려는것이 아니였다. 더러운 돈이나마 남편과 아이를 위해 속죄하고싶었던것이다. 물론 이런 교역을 붕재는 감감 몰랐다.  감정으로 안해를 내쫓고 어리석게 다시 리성으로 찾으려 할 때는 이미 늦었다. 그의 손엔 아들을 부탁하는 편지와 한무더기 돈이 남았다. 그것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허파가 터진듯 앙천대소를 터쳤다. 웃다가는 울고 다시 웃다가는 울고…사래기 들린듯 기침을 하다가 울컥 선지피를 쏟았다. 얼얼해나는 가슴을 부여안고 흐리멍텅 해진 눈으로 돈뭉치를 굽어보던 그는 문을 차고 천방지축 내달렸다. 끝끝내 미쳐버린 것이다. 《은녀ㅡ돌아오우—》 부르는 소리 하늘가에 비껴가건만 대답할 임자는 없었다. 붕재가 안해를 부르며 밤이고 낮이고 헤매일 때 함달진이도 고동을 울리는 선창 가에서 닭쫓던 개 울쳐다보듯 락심한 눈길로 아늑히 넓은 중국대륙의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 쉬고있었다. 함께 따라가겠노라며 행장을 꾸려들고 나섰던 은녀가 부두에 들어설무렵 바늘이 새여나가듯 인파속에 잠겨버렸다. 찾다찾다 그만 실망해버린 함씨는 홀로 배에 오르는수밖에 없었던것이다. 뿡ㅡ려객선이 울리는 고동소리를 은녀는 부두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해변가 어느 으슥한 바위뒤에서 듣고 앉았다. 그녀는 배고동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먼 고향의 하늘가에 눈을 주었다. 하늘에는 외로운 구름이 오락가락 하고있었다. (아, 이제 나에게 무엇이 남았는가. 더 버둑거릴 일도 도망칠 일도 없고 더 사랑할 이도 없게 된 내가슴에서 어떤 빛이 발산할수 있을가?) 바다가에 어느덧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나른한 피로가 스물거리며 아무데서나 잠들고싶은 생각을 보듬어준다. 바다바람이 모래먼지를 몰아다 물결우에 던져넣는다. 온 몸에 무자비하게 채찍이 내려치는것 같은 쩌릿쩌릿한 감각으로 하여 오싹 떨면서 그의 마음이 더는 실패하지 않아도 되고 아글타글하지 않아도 되는 영원한 망각의 해저속으로 향해간다. 《호ㅡ거기엔 껍질만 남게 되는 황금몽때문에 령혼과 육체를 릉욕당하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겠지. 향락도 추구도 일시에 멈춰지고 인간의 모든 행위가 신의 자비로움이 없이도 용서받게 될것이고…》 밤은 각일각 깊어간다. 희고 가늘고 긴 유령이 물결우에서 너울거린다…   《천지》 1992년11월호
7    악의 꽃 댓글:  조회:3813  추천:23  2008-01-30
                 악의 꽃               최 균 선   1   해변가 승지. 구라파식지붕을 한 호화별장의 베란다에 한 미모의 녀인이 서있다. 찬란한 일광아래 굼실거리는 푸른 물결을 바라보고 서있는 그린듯한 자세는 너무너무 멋져보인다. 비록 잠옷차림 그대로이나 보기들물게 아릿다운 얼굴과 동탕한 몸매는 왕자를 만나러 바다에서 헤여나온 전설속의 미인어를 련상시킨다. 미인과 바다경치! 그것은 한폭의 풍경선이였다.     이 녀자의 이름은 함소(含笑)이다. 지금 동거하고있는 사내가 달아준것이다. 그녀가 늘 미소를 머금고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불렀지만 미모의 녀자들이 일단 귀하게 되면 거개 그러하듯 이 녀자에게서는 하냥 도고함과 랭기가 쌩— 풍기고있었다.     나이는 스물다섯. 성감의 극치를 자랑하는 한창때와는 조금 처지게 얼굴이 애되여서 더구나 유혹적이다. 보는 사람이 부담스러울만큼 희한하게 부풀어있는 젖가슴과는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곡선을 그어내린 날씬한 허리, 그 아래 탐스럽게 통통 여물어버린 둔부…어느모로 보나 사내들의 가슴을 녹이고도 남음이 있다.     녀인은 성이 맹가인 싱가포르화교상인의 대륙부인이자 그가 주해에 꾸려놓은 고급화장품상점의 대리경리였다. 그녀가 어데서 왔고 어떤 경로를 거쳐 거부의 보배로 되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녀의 삐여난 용모와 극히 성감적인 몸매가 추천장 일것이라고 추측할뿐이였다.     늦은 아침결, 녀인은 50대 중반의 혈색좋고 끼끗한 신사의 팔을 끼고 멋스러운 포즈로 언덕을 내려 까만색 하이야에로 다가갔다. 마치 황제를 대기하고있는 궁정노복처럼 허리 꺾고 서있던 젊은 사내가 차문을 열어주며 아침인사를 올렸다.     《총재님, 밤새 유쾌하셨습니까!》 《음, 고맙네. 나야 늘 유쾌하지. 앗하하…》 자가용은 별장동네를 벗어나 해변가 포장도로우로 미끄러 지듯 달리고있다. 해초내음과 소금기를 머금은 비릿한 바다바람 이 차창으로 밀려들어와 폭포같이 드리운 녀자의 머리칼을 희롱 한다. 《이 차가 마음에 드나? 독일에서 특별히 주문해온 벤츠꼬당 이야!》 《저를 주려구요? 아이 고마워라. 정말 그럴듯해요!》 《고맙긴. 함소는 나의 백설공주야. 당당히 타고 다닐 자격 이 있구말구. 그러나 함소는 나 하나에게만 속하겠다는걸 단단히 약속해야 해!》 《아이유! 절 몰라서 또 그 당부인가요? 령감님ㅡ 시름을 푹 놓으시라요. 당신은 저의 은인이구 둘도 없는 백마왕자인데요.》 《좋아. 허지만 사랑은 은혜에 대한 보답만이 아니지. 그리 구 자꾸 령감소릴 하지마. 녀자에겐 극품에 속하는 년령이라구. 알아듣겠나! 녀자들과의 정으로 말하면 20대 남자는 멋모르는 차품이구, 30대는 열광적이구 힘이 있으니 정품이라 할수 있지. 40대 남자는 바쁜중에도 아량있게 녀자를 다루니까 진품이라 하지. 헌데 50대야말루 지천명에 이르러 촌음을 아끼는 극품 인거야. 사랑에 늦은 지각생이니까. 또 섹스는 그저 뚝심으로 즐기는게 아니거든…》 버릇처럼 사랑세대론으로 세대차이에서 오는 육체적인 허수 함을 감싸고 도는 맹씨의 설교에 녀인은 종이장같은 엷은 미소로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 차는 좌석을 특제한거야. 제끼면 제법 침대가 되지. 밀월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서말야.》 《욕심이 굴뚝이시네. 주착도 없이…》 《상관없어. 우리 세상이니까.》 《그래두요. 그리구 어쩌면 힘도 그리 좋으실가?》 《넌 아직 다는 몰라. 성유희란 남녀간에 평생 끝내지 못할 인생숙제야. 끝냈나싶으면 새 숙제가 제기되구 내용도 바뀌구 말이야. 자 즐겨보자구. 응. 쾌속도우에 실린 향연의 극치일 테니까.》 50대중반이면 자연쇠퇴의 표징이 먼저 성에서 알리건만 보양이 잘되여있는 그는 녀색을 야하게 즐기는 기호가 있는데다 기력이 곰같았다. 그래서 해수욕장, 잔디밭, 수림속…어데서나 꺼리낌이 없이 육욕의 만찬을 베풀려들었다. 자연인의 원모습 대로 환원된다는것이였다. 돈도 많이 쌓아두었으니까 평생 녀자들과 즐기는것을 최고의 인생락으로 삼아온 이 해외사내는 벼라별 해괴한 짓거리들을 고안해내여서는 그녀를 닥달했다. 그런데 녀자는 기술적으로 잘 적응되지 못하고있을뿐만아니라 여직껏 심리상에서도 그냥 수동 적이다. 생각만해도 머리카락이 쭈볏해지는 루추한 곳에서 흑야 차같이 흉포한 사내에게 무참히 처녀를 짓밟히고 시달림받았던 그녀로서는 남자의 성기라면 그저 역겨움과 증오심부터 앞섰 던것이다. 돈 많은 신사풍의 남자였지만 침실에서는 완연히 딴 사람이 되였다. 문제는 그녀로선 이 사내의 시도때도 없는 성요구를 거 절할 처지가 못되는것이다. 오래동안 거친 비바람속에 일엽편주 로 떠돌던 녀자. 그녀에게는 이 사내가 가장 안전한 항만이였고 마음의 보금자리였다. 더구나 사내는 섹스에 이골이 튼 경험자로 서 어찌나 은근하고 기교를 피우는지 공포심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 단맛을 추구할 마음의 여유는 생기지 않는다. 《…헉…좋아. 각별해. 너도 감각을 찾아! 이런 일은 마음 으로 해야 해…》 두 사람의 체중이 실린데다 격렬한 운동까지 가해지니 침대에서 신음소리가 새여나온다. 아니였다. 그것은 형언할수 없는 육체가 내는 미묘한 음악이였다. 질주하는 자동차, 리드 하는 사내… 녀자는 난삽한 심정을 주체할수 없어 눈을 꼭 감아 버렸다… 운전수는 반사경을 돌려버리고 핸들만 꽉 잡고 속도를 내고있다… 함소는 오랑캐령너머 두만강변의 선녀동태생이였다. 함소의 어머니 분녀는 처녀시절 원근에 소문짜한 시골가인이였다. 스무살에 시집가서 밀월이 끝나기도전에 남편이 조선전장으로 나갔고 그렇게 떠난 남편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데 청상 과부로 15년 세월을 수절하던 그녀가 자기를 빼여닮은 귀동딸을 낳았다. 그때 마을에 조선특무, 집권파로 몰리여 로동개조하는 억철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몇해전 사회주의교육운동때 이 마을에 내려와 분녀네 집에 하숙을 정한 억철이는 돌아오지 못한 분녀의 남편과 생김이 너무나도 흡사했으며 또 분녀의 남편과는 생사고비를 함께 넘던 전우였다. 그 억철이가 녹쓴 자물쇠를 채워두었던 분녀의 심방에 뛰여들었던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분녀 홀로 사랑의 쪽대문을 열고 정을 끓인것이다. 그러나 억철이는 죽은 전우의 미망인에게 어떤 사심도 없었다. 과부집 문전에 넘치는 류언비어때문에 억철이는 선녀동사업을 후힘에게 맡기고 훌쩍 떠나버렸다. 인사도 없이 떠나는 사내를 말없이 바래며 고개턱 황철나무 아래에 쏟았던 동이눈물은 몇년이 지난후 마침내 사랑의 무지개 를 걸어주었다. 어느 여름밤, 별빛 소근대는 과수원 오두막에서 그녀는 참고 참았던 정염의 보따리를 마음껏 풀었다. 그러나 새 생명의 탄생으로 선량하고 후덥던 열혈의 사나이 를 빼앗겼다. 렬사의 안해를 점했다는 죄명을 쓰고 뭇매질당 하다가 비명 횡사한것이다. 사랑의 원혼ㅡ억철이가 함소의 아버 지였다. 꽃씨 야 누가 뿌렸던간에 산수 좋은 선녀동에서 사랑의 열매인 옥경 이(함소의 원명임)는 제2대의 가인으로 자라났다… 이런 특수한 출생경력을 가진 옥경이는 설음 많은 홀어 머니의 잔약한 손길아래 외로움과 빈궁과 애비없는 설음으로 동년의 꿈을 얼룩지워놓았다. 시골애들이 거개 그러하듯 돈과  물질적부가 가져다주는 만족감이  어떤것인지 상상도 못하면서 쓰디쓴 체험으로 잔뼈가 굳은 옥경이가 현성고중에 다닐 때 절감한 돈의 의미는 누구보다 각별했고 처절했다. 눈물겨운 숙사생활 3년끝에 옥경이는 대학입학통지서를 받아 쥐였다. 하지만 병약한 과부의 몸인 어머니는 외동딸을 금봉황 으로 나래쳐가게 할 힘이 없었다. 눈물로 몇밤을 패우다가 드디여 절망한 옥경이는 눈물에 절은 통지서를 두만강 흐린물에  띄워보내고  간다온다는 말없이 오랑캐령을 넘어섰던것이다. 그러나 설계도가 곧 건축물이 아니듯이 돈벌어 다시 공부 하겠다는 동경은 현실이 아니였다. 엉터리 잡지들에서 서술하고 있는 이야기중에서 가장 비참한 이야기들도 그녀가 겪은 경난에 비하면 거리가 멀어도 한참은 멀었다. 고향의 품을 떠난 녀자들중에서 많은 녀자들은 제가 원해서 육체교역에 나서기도 했겠지만 보다 많은 녀자들은 빼앗기고 강점당하고 그리고 차차 타락하게 된것이다. 이 세상 아름다운 것의 60프로를 차지한다는 생활의 꽃들을 남자들은 돈과 권력과 야성과 무치한 완력으로 소일거리삼아 깔아뭉개버린다. 유린당하고있는 꽃들은 절망과 자포자기속에서 피눈물을 쏟고있다. 그러나 남자들은 녀자들의 애원과 신음소리속에서 오히려 만족감을 느끼고있다. 이것은 인간악의 일종이다. 그런 인간악이 수천수만의 사회악의 꽃들을 키워내고있다. 옥경이가 바로 그런 꽃이였다. 인간의 뿌리깊은 악습과 도회문명의 제물로 충당된것이 옥경이 자신의 본의가 아니였던것은 사실이다. 흔들 리는 이 인생박투장의 우왕좌왕하는 수천수만의 농촌처녀들가운 데서 그녀의 조우가 제일 처참한것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숙명에 가까운것이였음은 명백하다.   2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잡아먹는 바다속처럼 험악한 바깥세상인줄을 옥경이가 전혀 모르고 집을 뛰쳐나온것은 아니였다. 청도에서 어느 한국기업에 취직하고있는 먼 친척을 태산같이 믿고 떠났는데 안될 놈은 가루 팔러 나서면 바람분다고 그 친척되는 사람은 벌써전에 청도를 떠나고 없었던것이다. 박우물 마시고 자라서 겉치레를 할줄 몰랐던 시골의 처녀는, 그 순결무구함으로 남을 제마음처럼 믿기만하는 햇내기 가인은 산설고 물설은 타향에서 전전긍긍하다가 한 한국기업가의 눈에 우연히 들게 되였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학교시절엔 미모가 녀자의 첫째가는 자본이라고 자긍했는데 이 사회에서는 그것이 무거운 보따리로 될줄을. 한달 못미처 거기서 나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녀자만 보면 설쳐대는 한국남자들이라는 소문이 헛말이 아니였다. 그치는 이 동포미인을 아예 대륙부인으로 만들려고 몹시도 치근거렸던것이다. 나오고보니 알맞고 안전한 직업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돈이 거덜났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림시 구급책으로 보모소개소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그 한발자국에서 그녀의 인생비극은 예고되였던것이다. 거기서 네한족처녀애들처럼 순진함과 단순함에 떠밀려 그만 악마의 봉고차에 운명을 싣게 되였다. 하루해가 꼴깍 지도록 내처 달리기만하던 봉고차가 들어선 곳은 청도에서 몇백리 떨어진 즉묵이라는 곳이였다. 그것도 교외의 으슥한 곳에 지은 《상아오락성》이라는 간판을 건 3층집 뒤뜨락이였다. 망아지같은 검둥개 두마리가 모골이 송연해지도록 컹컹 짖어대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들이 욱 모여들자 불길한 예감이 든 처녀들은 돌아가겠다고 야단쳤다. 그러나 대답 대신 무지한 발길질과 쌍욕이 쏟아졌다. 《야, 이 거지 같은 년들아, 올 때는 제발로 왔지만 나가 는건 마음대로가 아니야. 뭣들 하고 섰는거여. 저 뒤방에 빨리 몰아넣엇!》 옛날영화에서나 소설책에서 볼수 있던 그런 정경이 현실로 펼쳐졌다. 녀자애들은 도살장으로 끌려들어가는 새끼양들처럼 매매 울며 어둑시그레한 방에 갇혔다. 그 밤은 옥경이와 네 처녀 애들의 수난의 첫밤이였다. 거기서 옥경이와 호남처녀가 주인 무가에게 차례로 당했고 그 이튿날부터 매음에로 내몰렸다… 무가는 가근방에 소문난 악패였다. 법은 그자의 주먹보다 멀었다. 그녀들의 자유란 이리같은 개다리들의 독기어린 감시밑 에 뒤뜨락을 거닐거나 빨래를  널때뿐이였다. 사내놈도 악질이였 지만 녀편네년은 암펌이였다. 옥경이는 그녀앞에서 무릎 꿇고 애원도 하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암펌은 제사내를 홀린 요정이 라고 생트집을 부리며 앙갚음을 해댔다. 악몽같은 몇달이 지나갔다. 로임은커녕 오입쟁이들이 던지고 간 팁도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그야말로 인간지옥이였다. 더는 배겨낼수 없어 절망한 옥경이는 3층에서 뛰여내려 자살을 시 도했으나 마침 그밑에서 어슬렁거리던 개의 등허리에 떨어지는 바람에 중상만 입고 죽지는 못했다. 무가는 소문이 새여나갈가봐 병원치료를 못하게 했다. 인정 많은 자매들이 애걸복걸 빌기도 하고 단식투쟁도 하면서 소란을 피워서야 현성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물론 무가 녀편네와 개다리의 감시가 붙어섰다. 세상은 어두워도 착한 사람은 어디건 있는법이다. 몸이 회복되여갈 무렵, 옥경이는 호사에게 자기의 처경을 하소연하고 구원을 청했다. 호사는 동정을 하면서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무가놈이 두려워서였다. 못하는 짓이 없는 무뢰한인데 다가 큼직한 놈을 등에 업었는지라 지방공안국에서도 한눈을 감아주는 놈팽이였다. 그런데 죽을 고비에 살길이 나진다고 안해에게서 옥경이의 사정얘기를 들은 호사의 남편이 발벗고 나섰던것이다. 그는 산동땅의 유명한 고려인후손마을에 태생인 박씨였던것이다. 동족 이라는것이 그를 일떠세웠던 모양이다. 교묘하게 방법을 대여 병원에서 빼돌린후 멀리 떨어진 자기의 고향마을에 숨겨두고 몸이 완쾌될 때까지 보살펴주었다… 그후 남방의 여러 도시를 떠돌다가, 대륙에 상업망을 벌리고 한국과도 장사를 하는 싱가포르상인의 번역 겸 비서로 들어가게 되였다. 비록 엄청난 호색한이긴 하였지만 인정미도 돈독했던 이 남방사나이는 얼마 안지나 북방의 이족미인—옥경에게 각별한 감정을 가지게 되였다. 아직 대도회지의 풍류아가씨들에 비하면 채 성숙되지 못한 표정이였으나 천생려질의 자색은 가공된 현대미인들보다 실제 적이고 진실해서 첫눈에 홀딱 반했는지 모른다. 흔히 때이르게 터쳐버린 꽃망울들은 한번 시들면 그만이였건만 백두산의 정기를 타고난 탓인지 그야말로 백두산 비바람속에서 살아나는 만병초처 럼 뿌리깊은 활력소가 풍기는 싱싱함과 향그러움은 이 50대 사나이의 욕정을 새롭게 불태워주었다. 돈 잘버는 솜씨만큼 돈으로 녀색을 즐겨온 그는 저무는 인생길에서 만난 타민족미녀의 아름다운 육체에서 진해가는 욕정 과 허수해지는 마음을 한껏 보상받고싶었는지 모른다. 혈기방장하던 때는 녀자들을 수없이 탐닉하였었다. 아름 벌어지게 풍만한 서양녀인들도, 피부감각이 류다른 깜둥이계집도, 가살스러운 일본녀자도… 아마 줄을 세우면 다국부대 한개련쯤은 될것이다. 화류계에 싫증이 난 이때에 와서 손에 넣은 이 녀자는 비록 동정은 잃었지만 정신만은 순결했고 마음씨마저 비단결 이였다. 더구나 늘 수집은듯 절제하는 그 몸가짐과 은근한 례절 은 사나이로 하여금 제 나이의 진공력에 안성맞춤한 녀자라고 확신하게 하였다. 스스로 방종하는 사나이들도 자기 녀자만은 안전계수가 높기를 요구하는 법이다. 사내의 방탕한 마음을 사로잡은 옥경 이의 그 정숙함과 믿음성은 다른 어떤 녀자에게서 보아내지 못했던 미였다. 다른 젊은년들은 사내가 일단 곁을 비웠다 싶으면 젊은 놈들을 끌어들여 제 재미를 보고 돈 빨아낼 궁리에 빠져 악바리쓰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이 녀자는 돈을 더 후려 내려고 가살을 피우는 법도 없는, 가정적기분까지 안겨주는 녀자였다. 달라고 앙탈하는 년은 밉상이였지만 녀자가 얌전하게 나올수록 더 생각해주고싶은 사내의 마음이였다. 참으로 청순 함과 미모와 관용의 희한한 조합이 아닐수 없었다. 함께 있는 날이 길어질수록 사내는 이 산골처녀를 더욱 사랑했고 나중엔 대륙부인으로 들여앉혔다. 사내는 섹스의 전서 인 소녀경을 전수했을뿐만아니라 상업술과 인생살이,처세에 대한 많은것을 일일이 터득시켜 아주 세련되고 우아한 기품의 귀부 인으로 환골탈태시켰다. 본국에 돌아갈 때를 내놓고는 한시도 곁에서 떼놓지 않고 그림자처럼 달고 다녔다. 동업자들이 함소를 찬탄할 때 사내는 자기의 걸작에 어깨가 으쓱해있었다. 시골 녀자—옥경이는 땡잡은셈이랄가. 옥경이는 50대 중반의 이 능구렝이같은 사내가 그의 말처럼 극품이여서 극진하게 대하는것은 아니였다. 그 일에 들어가서 사내란 죄다 한통속이긴 하지만 이 늙은 남자에게는 적어도 안전 감이 있어 갈갈이 찢기던 아픔과 굴욕감과 수치심 같은 심리장벽 이 없다. 사내는 우선 정으로 얼어붙었던 그녀의 성랭담증을 녹여버렸고 거부감도  제거해버렸다. 그러나 옥경이—함소에게는 지금까지 그저 순종과 곰살가운 헌신만이 있을뿐이였다. 이 사내에게 한생을 기탁할 타산이 없다면 무리를 써가면 서라도 돈을 후무려야 하겠지만 그러고도 싶지 않았다. 엄마의 만년을 보장할만한 돈이 마련되였으니 이제 목숨걸고 시행해야 할 그 일에 수요되는 경비만 장만하면 되였다. 아무튼 잠시는 이 사내의 그늘을 떠날수 없으니 자기에게 차례진만큼 보상해주어야 한다는 그녀의 마음이기도 했다. 이제 무엇을 바랄수 있을것인가! 처녀의 아름다운 꿈은 이미 묵사발이 되였다. 자기 인생을 어떻게 새롭게 설계한다는 계획 같은게 더 있을수 없다. 령욕의 안팎을 꿰뚫어 본 이상 신비할 무엇도 없다. 사내가 싱가포르의 본부에 돌아가있을 때면 그녀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참혹했던 지난날을 두고 가슴치며 슬피 울었다. 일반 처녀들이 평온하고 꿈많던 그 시절의 장미색 순정과 첫 가슴띠와 처음 받은 꽃편지를 잊지 않고있다면 아름다운 추억 이란 별로 없는 그녀에게는 피맺힌 원한만이 처마끝의 더러운 고드름처럼 들쑹날쑹 맺히고 덧쳐가면서 무서운 악몽속에 서리발 장검이 되여 그녀를 괴롭혔다. 세월은 많은것을 색바래게 한다 지만 그 마음의 고드름들은 녹을 대신 복수의 칼날이 되여가기도 했다. 자신은 이미 마음 착한 시골처녀로 돌아갈수 없게 되고 독즙을 머금고 핀 악의 꽃이라고 자인할 때 검은 피가 더구나 거꾸로 흘렀다.   3   군자의 복수가 10년도 늦지 않다면 녀자의 복수는 한생을 두고 벼르는것이리라. 근 반년만에 령감이 돌아왔다. 《어이구 내 사랑둥이야, 널 보고싶어 환장할번 했어…》 함소를 얼싸안고 한식경이나 끓던 사내는 그제야 마누라가 심장병으로 죽었노라며 가볍게 한숨지었다. 마치 오래동안 입고 있던 낡은 외투를 잃어버린듯 대수롭지 않은 기분으로 내뱉는 말에 함소는 남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자신도 언젠가는 오래되고 낡아버린 옷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수 있으랴! 뭇처녀애들은 돈만 많다면 70고령의 령감한테도 얼싸 들어붙지만 그녀는 엄마를 두고는 극락에로 간다해도 생각이 없었다. 하긴 엄마가 여생을 먹고 살만큼의 돈은 이미 보냈지만 그녀에게는 돈이 문제가 아니였다. 령감은 그동안 녀자를 절제하였다며 신혼의 단맛을 본 젊은 애들처럼 열광에 빠졌다. 함소 자신도 겉보기엔 담담한듯했으나 내심으로 사내가 은근히 기다려졌던 모양, 사내가 하는 모든 짓 거리들이 싫기는커녕 좋았다. 육신이 비비꼬이는 강렬한 욕정 속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긴채 남자를 향수하기에 열중했다. 첫시작은 역시 순종하는 자세로 솜처럼 부드러운 몸태를 내주었다. 욕정을 폭포처럼 쏟아내려고 서두르는 남자의 푸들거 리는 근육의 따스한 접촉과 숨막힐듯한 애무속에서 아늑한 위안 과 확신을 몸 전체로 느꼈다. 매음녀들은 돈과 감각을 함께 얻는다고 하지만 성애란 어디 까지나 서로가 원하고 탐할 때 지적인것에 받들려 평등을 가지고 해야 자극적인거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긍정하고나니 오래동안 잠자던 화산이 이글거리는 용암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 용암은 대단한것이였다. 과거와 오늘과 래일을 마구 삼키고 불태워버 리는 거대한 반충력과 진동을 동반한 훼멸성적인것이였다. 누가 녀자들이 성에서는 영원히 피정복자라 했는가! 녀자도 일단 성에 애착을 가지면 남성을 삼켜버릴수 있는것이다. 사내의 따뜻하고 매끄러운 입술과 혀가 가장 보수적인 거기를 끝없이 파고들자 형언할길 없는 짜릿짜릿한 감각속에 혼신이 한껏 평화속에 잠겨버린다. 이제 사내의 잘 버려진 페니스가 기세차게 밀려들어오리라는 막연하고 몽롱한 기다림이 속살을 전률하도록 자극해온다. 사내를 받으며 허파에 바람이 든듯 입에서 가벼운 꽈리소리가 연신 터졌다. 《허, 이년이…》 사내는 노루를 덮친 호랑이마냥 으르렁거리며 태질했다. 순수의 원시적평화의 순간이 사라지고 오고야말 폭풍우가 들이닥쳐 땅과 천정이 요동쳤다. 괴성을 지르며 룡트림하는 사내가 처음으로 장해보였다. 그 격렬한 률동감도, 부르르 전률 하는 우습꽝스러운 동작도 모두가 사내가 할탓에 맡겨버린채 자기는 자신을 위해 더이상 어떻게 해볼수가 없었다. 다만 몸속 깊은 곳에서 참을수 없는 흥분과 진통과 적라라한 야성이 파괴의 쾌감으로 꿈틀거릴뿐이다. 드디여 향락의 절정에 아슬아슬하게 떠밀려올랐을 때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지고 사내의 하얀 등허리에 기다란 손톱이 밭고랑을 가득 지어놓았다… 이튿날, 해가 중천에 높이 떠서야 애욕의 피리가 찬양하던 밤의 활극이 남겨놓은 끔찍한 흔적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잠자던 악의 꽃은 그제야 눈을 떴다. 그녀는 라신그대로 침대를 내렸다. 침실 량켠에 걸린 벽거울속에 라체의 두 미인이 나섰다. 이제 더 꺼리낄것이 무엇이고 감출것이 무엇이랴. 그녀는 거울속의 자기를 얼없이 바라보았다. 실한오리 걸치 지 않은 녀자의 육체는 얼마나 연약하고 상하기 쉬운 조각품 같은가! 어찌보면 섬세한 인체미의 극치를 자랑하는 정교로운 예술품인것 같았지만 뒤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 또 미완성품 같기도 하다. 그녀는 숫처녀시절에도 자기의 육체미에 남다른 자호감을 가져보지 않았다. 지금은 더구나 철이 지난 꽃을 보는 애틋하고 처연한 감정이 온 몸을 휩싸면서 스스로가 가엾어졌다. 작은 물방울도 곧 튕겨나리만큼 한껏 살찌고 탄력있던 젖몽 우리가 어느새 속으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했고 하얀 평원에 침적 이 생기면서 잘룩했던 허리에 날씬한 멋이 확연치 않았다. 미끈 하게 뻗어내린 두 다리우에 보기좋게 솟은 두개의 눈봉우리 가 아직 육감적이긴 하나 흐물흐물 옆으로 퍼져간듯했다… 사내가 지칠줄 모르고 파고들지만 자기로서는 순결과 특색을 잃은 흰 도자기꽃병같다고 자인해야 했다. 사랑의 향그러운 꽃들이 채워져있을 대신 모멸과 원한과 증오심의 독기가 가득 채워져있는 위험한 조각품이였다. 녀자가 자기의 육체때문에 해를 입지 않고 죄악을 범하지 않는다면 행복한 녀자이다. 스스로 라체미를 의식하고 자긍하는 순간부터 녀자는 비참해지는것이 아닐가? 자기의 살찐 유방을 자랑하며 다니는 녀자는 실제상 《나를 정복해주세요.》하는 선언과 같다지않는가. 녀인이여! 녀인! 너는 어떤 의미에서는 아름답고 유순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지만 또다른 의미에서는 야비하고 경망하며 유혹적인 악의 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함소는 자기의 운명의 화근인 탐스러운 몸을 두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행복한 운명의 녀자들에게는 흔히 결핍한 그런 천부의 미를 아빠, 엄마가 주었다고 불공평한 운명의 신은 어이하여 그 타고난 아름다움이 행복의 보금터로 되게 하지 않고 한낱 사내들의 발설공구로, 비게덩이로 되게 만들어버렸는가? 그녀가 자연인으로서의 자신과 대화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찬란한 눈길이 그녀의 몸 어디라없이 감빨며 감탄표를 찍어가 고있었다. 분명 명화가의 붓끝에서 창조된 한폭의 라체미인도 였다. 귀염성스러운 턱에서 미끈한 목으로, 목에서 탄탄한 어깨 로, 어깨에서 다시 궁형을 그리며 유연하게 뻗어내린 상체의 절묘한 곡선미, 허리의 유연한 곡선은 탐스러운 엉뎅이를 휘영청 타고 돌아 비단실이 끌려내린것처럼 미끈한 종아리아래 외씨같은 발까지 흘러내렸다… 《천생려질이야. 천생려질! 늦게 만난게 한이로구나. 허지만 난 만년에 녀자복을 타고났구나. 좋아! 음— 좋아! 어디 가까이서 만져보자구 응?》 《아이 얌치없는 량반, 도둑괭이같이, 으응, 그럼 난 싫어, 이제 곧 싫증나겠는데 뭘.》 함소가 잠옷을 걸치며 애교를 피웠다. 《모르는 소리야. 난 함소를 만나기전엔 침대우의 녀자는 자주 바꾸는게 남자의 멋이라고 여겼지만 이제 나이까지 들고 또 알맞는 성정의 너를 얻고보니 마음속에 딱 자리잡을 녀자는 너뿐이라는걸 심심히 느끼고있어. 우리 결혼하자구. 그래 좋 지?》 《그—래—요? 정말 복이 넝쿨채 떨어지네.》 사내가 다시 자기를 가슴아래 눌러붙였을 때 이 검질긴 사내에게서 벗어날수 없다는 위구심에 감겨들면서 속으로 뇌까렸다. (그래,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마음껏 주물러대고 깔아 뭉개며 향락할거다. 누가 배기나보자! 이것도 남자에 대한 보복 인거야…) 그것은 악의 꽃이 실행하려는 가장 은밀하고 치명적인것 이였다.그날 이후부터 섹스의 주동권을 녀자가 쥐였다. 너무나도 야만적이게 고통을 겪은 섹스였기에 영원히 저주하리라고 뼈물렀지만 지금은 막혔던 물목이 터졌다. 녀자의 미묘한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변화는 사내를 젊은 시절로 환원시키면서 한없이 즐겁게 했다. 그것은 오산이였다. 극히 빈번한 자극은 그를 조금씩 두려움에 쌓이게 했다. 녀인이 찾는 감각은 지구적이였고 전률은 마치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려는듯 강렬한 욕망의 몸부림과 경련이였다. 함소의 육체의 구석구석에까지 확산되여 가는 숨길수 없는 흐느낌같은 전률은 사내를 아찔하게 만드는 순간마다 지진처럼 일어났고 그 여파 또한 훼멸성적이였다. 옥경이가 마치 치통을 앓는 미인이 짓는 그런 이그러진 웃음을 지으며 유혹해오고 선손을 써올 때 늘 상승장군으로, 무적의 정복자의 자세로 신심가득하던 호색한은 스스로 풀이 죽어가게 되였고 지칠줄 모르던 남자의 상규무기가 뿌리로부터 위축되여갔다. 남색을 즐기기로 작심한 젊고 정력적인 녀자의 감당하기 어려운 벅찬 호소와 흡인력이 자석처럼 끌어당길 때 남녀간의 정사에 자기마당의 법칙이 있음을 무섭게 자각했다. 더는 만용을 부릴수 없게 되였고 부담스러움과 더불어 심리평온 을 회복할수 없었다. 무서운 녀자다! 그제야 녀자에게 남자도 당한다는 말의 의미를 터득했다. 밤마다 거르지 않고 보채는 어린애같이 그의 남성과 육욕을 내심으로부터 끈질기게 꼬드겨내면서 끝없이 정기를 빨아내고 있어도 녀자의 타는듯한 큰 눈속에 활활 타번지는 정염의 불길에 감겨들며 몰래 자탄했다. 아, 아, 내가 그 많은 녀자들의 자궁속 에 마음껏 쏟아넣었던 그 부정한것에 대한 보복을 이 산골미인 에게서 당하고있지 않는가…이래서는 안되겠다고 리지는 소리 쳤지만 녀자는 그의 절정이 끝나버린후에도 페니스를 자기의 몸안에 머물러있게 하는 마술을 피워 얼마후엔 본의아니게 다시 팽창시켜버린다. 정신이 몽몽해지고 허탈상태에 빠져 어찌할바를 모를 때에야 달콤하게 속삭인다.《너무 너무 멋져요. 사랑하는이, 좋지요? 응?!》 그 소리가 마치 꿈속에서 들리는 사형선고같이 오싹해지 게 하는것은 무엇때문인지… 사내가 신비스러운 꿈속에서 안정을 바랄 때에도 녀자는 맹공격을 들이대였고 서슴없이 체위까지 바꾼다. 이 녀자가 무엇 을 느끼려하는지 무엇에 도달해야 성차할지 그는 도저히 알수 없었고 그럴 때마다 녀자가 그렇듯 생소하게 안겨왔다. 《넌…넌 기막힌 계집이구나. 늦바람이 곱새를 벗긴다더 니.》 《피—당신이 배워준게 아닌가요. 힘들어요? 녀자도 마찬가지 라구요. 마음가짐 단단히 하고 힘 부쩍 내시라요 응?》 《내가 너에게 이면에서 손들고말줄이야. 후유—나이가 원쑤 로구나.》 불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가 피운 불에 데기 마련이다. 사내는 차츰 혈색이 빠져버리더니 다리근육부터 홀쪽해지기 시작 했다. 그래도 《남보》요, 뭐요 하는 온갖 정력제를 사다가 복용 시키면서까지 녀자는 남자를 놓아주지 않고 송두리채 삼켜버릴듯 그냥 극성이였다. 그녀가 토해내는 거칠고도 숨넘어가는듯한 신음소리는 아지 랑이 언덕에서 갑자기 날아오르며 우짖는 종다리울음소리 같았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자기의 줄기찬 생명뿌리가 녀자의 속으로 솟구 쳐들어가면서 요동치는동안 자기 가슴밑에서 내는 피정복자의 신음소리를 즐거운 멜로디로 들었고 그 소리가 절절할수록 사내 로서의 용기가 백배되였지만 이제는 뱀처럼 칭칭 휘감고있다가 겨우 떨어져나갈 때 그는 참을수 없는 자포자기에 빠져들었다. 오, 향락에 빠지는것! 그것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사회병 환자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생동하는 엉뎅이의 적극적인 률동 을 멈추고 얼굴에 머리칼을 흐트러뜨린채 가슴우에서 빠끔히 내려다보는 모습은 탁상등의 불그레한 불빛속에 몸서리쳐지는 아름다움을 과시하고있다. 그것은 불가사이한 신비로운 공포감을 주는 마녀의 아름다움이였다. 대륙에서 눌러살겠노라던 맹씨는 석달이 못미처 싱가포르로 날아갔다. 떠나기 전날밤 그는 소중한 꽃병을 다루듯 함소를 껴 안고 어루더듬으며 한숨을 쉬였다. 그 처연한 한숨소리는 함소의 가슴에 사내가 가엾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내가 오지 못할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별장은 있고싶 은데까지 쓰고 벤츠차는 네꺼니까 마음대로 해. 그리구…》 《기다리겠어요. 이제 와서 난 당신이 더없이 좋아졌어요. 휴양 마치면 오세요.》 맹씨는 녀자의 등을 어루만질뿐이였다…   4   드디여 복수할 시기가 되였다. 며칠전에 사람을 띄워 무가의 행처도 알아왔고 《접대》할 안성맞춤한 곳까지 마련해놓았다. 몇해를 두고 몸서리치며 악몽 속에 쫓기던 즉묵땅에 들어섰다. 이튿날 옥경이는 사내들을 시켜 무가를 랍치해오게 했다. 《두 년놈을 쥐도새도 모르게 모셔오세요.》 《문제없을겁니다.》 《돈을 많이 주겠다고 하고 자원하는 사람들가운데서 우악스 럽고 건장한 청년로무일군 네댓을 불러오세요. 사연은 알고있 지요?》 일일이 지시를 내리고난 옥경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온몸에 살기가 쭉 뻗었다.   …그날밤, 쌍침대 하나와 외침대 하나가 댕그랗게 놓인 방에 갇힌 그들은 쌍침대우에 오구구 모여앉아 밤을 새웠다. 제 녀편 네와 함께 외침대에서 자던 무가가 소리쳤다. 《너 이리와, 이 어른께서 실습을 시켜줄테니. 냉큼 오지 못해!》 무가가 옷을 홀랑 벗고 옥경이를 덮쳤다. 녀자애들이 얼굴을 싸쥐며 기겁초풍했다. 악을 쓰며 발악하는 옥경이를 깔고앉으  며 무가가 꽥 고함질렀다. 《뭣하구 섰어. 이 계집애 팔을 눌러붙여!》 무가의 녀편네까지 거들고보니 옴짝 뛸데 없었다. 《아주머니, 살려주세요. 같은 녀자가 아니예요. 다른 일은 뭐나 시키는대로 할께요.》 그러거나 말거나 두 년놈은 옥경이를 발가숭이로 만들고 사내놈이 올라탔다. 죽기내기로 악을 쓰는 옥경이의 관자노리에 돌같은 주먹세례가 가해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모지름쓸 때는 이미 늦었다. 무엇인지 생각하기조차 무서운 엄청난것이 하신을 찢으며 무지막지하게 몸속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 죽음과 같은 절망속에 천장이 핑그르 돌더니 그대로 내려앉는것 같았다. 상상하기조차 난삽했던 남자의 그 짓에 육신이 뭉그러지고 오장이 벌컥 뒤집혔다. 족히 한시간이나 희닥질하던 무가는 옥경이가 죽은것처럼 늘어져버린후에야 떨어져나갔다. 새벽녘, 옥경이는 녀자의 죽어가는 비명소리에 소스라쳐 깨여났다. 한잠 자고난 무가가 이번엔 열일곱살이라는 깜찍하게 생긴 호남처녀를  깔아뭉개고있었다. 처녀애가 애처롭게 울어도 놈팽이는 발정난 황소처럼 련신 씩씩거렸다. 얼마나 지났는지 녀자애의 가냘픈 가슴우에 억대우같은 무가놈이 무너진채 코를 드렁드렁 골고있었다. 실로 현대악마의 향연이였다. 그후 남은 세 처녀도 무가에게 차례로 짓밟히고 개다리놈 들에게도 쩍하면 당하였다. 그리고 매음이 강요되였다. 워낙 외딴곳이고 감시가 어찌나 엄했던지 도망이란 어림도 없었다. 이곳엔 경찰도 없는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동안 옥경이는 항거도 많이 했고 매도 줄매를 맞았다. 무가놈은 손님 이 없는 밤이면 옥경이의 방에서 잤다. 그래서 무가 녀편네는 옥경이라면 색을 먹고 달려들었다. 그때 살아서 마귀굴을 벗어나 는 날이면 뼈를 갈아 팔아서라도 이 원쑤는 꼭 갚겠다고 평생 목표를 세웠던 옥경이였다. …철천지 원쑤 무가네 내외가 모셔졌다. 무가는 북극곰처럼 더 둔탁해졌고 녀편네는 더구나 앙칼져보였다. 마음 같아선 칼탕치고싶었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자를 의자에 개처럼 단단히 묶어놓고 저년은 침대에 비끄러매세요. 좀 있다가 신호하면 그 사내들을 들여보내세요.》 《무가야, 이년아! 어째 여기로 왔는지 알만하냐? 이 악마 들아!》 《넌 랍치죄를 범하고있다. 이걸 풀어라. 제밀 씨팔것.》 《개소리치지 말아. 네가 다섯처녀를 기편해 강간하고 매음에 내몬것은 무슨 죄냐? 이 악마야!》 옥경이가 어찌나 세차게 이발을 갈았던지 무가가 움씰 놀랐다. 《간단히 말해주마. 네놈이 여럿이 보는데서 두 처녀를 겁탈할 땐 인간이 아니였으니까 그 애들의 눈물이 어떤것인지 알수 없었겠지만 이제 제 녀편네가 백주에 여러 남자에게 당할 때 어떻게 좋아하는가를 보면 기쁘지는 않을게다.》 말을 마친 옥경이가 가위를 들고 침대에 다가가자 무가녀 편네는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옥경이는 아무말없이 녀자의 옷을 갈갈이 찢어발겼다. 벌거숭이 사내가 넷이 들어왔다. 《저 녀자를 마음껏 가지고 놀아도 돼요. 몇시간이고… 죽지 않게만 해요.》 《무가야, 똑똑히 보아두어라. 녀자의 치욕과 한이 무엇인지 네 녀편네가 보여줄게다.》 옥경이는 옆방에 건너가 유리창으로 현대야만극을 구경했다. 벌써부터 연장들을 곤두세우고있던 사내들이 이리처럼 달려들 었다. 무가의 녀편네가 몸부림치고 오장을 훑어내는듯 신음하며 바락바락 악을 쓰고있었다.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정경에 무가가 퉁방울눈을 휩뜨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한사내가 녀자의 팬티를 무가의 입에 틀어박았다. 한 사내에게 두세번씩 당하고 있는것을 본다는건 무가로서는 참을수 없었다. 그러나 고정의자 에 묶이운 그는 닭똥같은 눈물만 흘릴수밖에 없었다. 옥경이가 무슨 약을 넣은 주사기를 들고 들어왔다. 《무가야, 너같은 놈은 남자가 아니라 그저 수컷일뿐이다. 너따위들이 녀자를 점유하고 생육하며 산다는것은 녀자들의 치욕이다. 수많은 처녀들을 위해 너도 징벌 받아야 해.》 《누가 이 주사를 저놈의 그것에 놓겠어요? 천원 줄테니 까요.》 옥경이가 돌아서자 무가의 웅성이 훼멸되는 단말마적인 비명이 귀청을 때렸다… 옥경이의 하얗게 질린 얼굴에 두줄기 굵다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스스로도 더없이 악착한 마녀가 되여지고 복수가 너절한것이여서 가슴이 쓰라렸던것이다. …비내리는 축축한 밤하늘을 헤가르며 려객기가 서쪽으로 날고있다. 기창가에 그린듯 앉아 담배연기를 내뿜고있는 귀부인 차림의 요염한 녀자가 공중아가씨의 주목을 끌었다. 홀로 화술을 마시는 남자는 녀자를 수요하고있는것이라면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녀자는 남자들에게 지친것이라던가? 《어디 불편하신가요?》 공중아가씨가 묻는 말에 녀인은 눈을 감아버렸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것은 무엇인가? 사랑해줄 남자도, 사랑해주고싶은 남자도 없다. 사랑의 꽃송이—그녀 자신은 이미 영영 사라져버리 고 독기어린 악의 꽃만이 남았다. 그외의 모든것은 다 허무맹랑 한것들이다. 많은 돈도, 호화별장도, 벤츠자가용도… 사회가 낳고 기른 악의 꽃이 그 어디에서 다시 향그러운 꽃으로 피여날수 있을는지…그녀는 며칠전 령감에게 편지를 썼다. 그동안 고마웠노라고. 진정 남자를 알게 해주어 잊을수 없노라고. 자기의 귀숙은 둘이 함께 향불을 피워올렸던 무이산 절이라고 밝히면서 원하신다면 정성껏 섬기련다고 진심으로 알렸다. 기창에 대롱대롱 맺혀있는 굵다란 비방울을 덤덤히 바라보며 그녀는 또 한번 《흐흑…》하고 흐느꼈다 —     도라지 1999년6월
6    신음하는 령혼 댓글:  조회:3256  추천:30  2008-01-30
단편소설   신음하는 령혼   최 균 선   1   아침해가 하늘높이 떴다. 미옥이는 후렁후렁한 잠옷을 대충 걸치고 화장대앞에 사뿐 내려앉아 하루의 첫일과에 서두른다. 헝클어진 머리칼에 기름이 발리우고 바르고 문지르고 찍고 그린다. 그녀는 춤추듯 경쾌한 걸음걸이로 맞은켠 경리실로 건너가 큰 거울앞에 멈춰서 요리조리 제몸맵시를 비춰본다. 너무도 산뜻하고 호화로왔다. 그는 달콤하게 웃었다. 그녀는 카텐을 와락와락 열어제끼고 창문들을 활짝 열어놓았다. 꽃도시는 바야흐로 무르녹고있다. 그녀는 록음기단추를 잘칵 눌렀다. 무도곡이다. 무도홀에 나선 기분으로 빙그 르르 돌아본다. 날아가는 잠자리날개같이 포르르 날리는 옷자락에 따라 온 방안에 향수냄새가 파도쳐간다. 미옥이는 변했다. 빨리도 변했다. 그녀는 늦게 골라잡은 이 인생의 삽곡을 빠른 절주로 연주해가고있었다.   2   미옥이는 자기가 워낙부터 이러한 생활의 주인공이였던듯이 착각될 때마다 지난날의 교원생활이 더욱 신물나게 돌이켜졌다. 날마다 이른 아침에 학교에 나가고 저녁이면 밀린 빨래를 하고 늦도록 교수안 쓰느라 눈을 쥐여뜯고…채바퀴 돌듯 단조롭고 무미무색하던 생활, 그런 생활을 어떻게 영위해왔던지가 놀랍게 생각되였다. 그저 다정다감한 녀자였던 그가 곰같이 힘센 남편의 지칠줄 모르는 사랑에 고달픔을 묻고 자기를 속이며 살아왔던지도 모를 일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로임타는 날이면 기어이 터지고야마는 신경질에 자기가 몇년은 겉늙었는지도 모른다. 자기의 얄팍한 로임봉투를 거꾸로 쏟아놓고 남편의 부스럭돈까지 합해보고 쪼개보고 다시 힙해보아도 태반이나 부족이던 돈, 색날은 남편의 나들이옷에 신경을 쓰면 앞코가 터진 자기의 구두가 퀭하니 입벌리고 항의를 한다. 하지만 우선 쌀, 기름을 타고나면 소학교 다니는 딸애가 또 돈을 내라 지청 구다. 더구나 골머리 아프고 밸이 곤두서는 일은 집세다. 건축공사에 다니는 남편이 늘 짓는다는 집들에는 누가 다 들어사는지 심사가 꼬여 죽을 지경이다. 널직한 집이 좋기는 하나 거두기가 말째다며 배부른 타령을 하는 아낙네들을 보면 너무도 꼴사나 와서 쫓아가며 침을 뱉아주고싶다. 《여보세요, 좀 무슨 변통이 있어야잖아요? 매일 벽돌을 쌓고 문을 짜 달아주고 해도 헛간 한칸 차례없는 그깐 일을 그만 두든지…》 《아따, 바가지 좀 작작 긁소. 야장집에 식칼이 없단 말 못들었소?》 《야장집에 식칼 없는게 누구 탓이게요.》 《그럼 야장탓이던가?!》 거의 달마다 부르는 그 돈타령에 민수도 궁리가 틔였는지 단위에 적을 두고 나와 가구점을 꾸렸다. 낮에 밤을 이어 켜고 깎고 대패질하여 구슬땀을 흘리니 돈도 좀 들어오고 살림펴일 싹수도 좀 보이는듯싶더니 관내에서 목수들이 쓸어들고 무슨 종합식가구요 하는것이 판을 치는데다 목재값까지 꼭뒤에 올라가 붙는바람에 그만 제쪽지에 물러나고말았다. 그래서 발벗은 김에 참외장사, 수박장사, 목재장사… 될듯싶다는 장사는 돌아가며 다 해보았지만 수걱수걱 땀흘리며 일해먹을 팔자였는지 그냥 밑지기만 한다. 게다가 몇번 봉창에 녹다보니 거꾸로의 만원호로 되고말았다. 그저 그만치 살라는 팔자인걸 공연히 철밥통까지 차던지게 했다고 민수는 쩍하면 고주망태가 되여 성풀이가 일쑤이다. 교수준비도 채못하고 학교에 나간 일이 몇번이 였는지 모른다. 그래도 둘이 출근할 때는 그럭저럭 살아갔으나 남편이 빈둥거리자 정말 살아갈길이 묘연했다. 게다가 빚군이 문턱에 걸터앉아 성화를 할때면 그만 콱 죽어버리고싶은 마음이였다. 바로 그런 때에 행운이 찾아들었다. 민수의 옛친구 마도남이 불쑥 찾아왔다. 철창에서 놓여나온지 3년이 된단다. 그동안 무슨 일을 해왔는지 배도 나오고 목덜미 도 두둑하였는데 가죽잠바에 금테안경까지 척 걸고 제법 풍채를 뽐내고있다. 《흥, 옷을 입었다고 원숭이가 아닐가.》 마도남의 똥집까지 다 알고있는 미옥은 보기만 해도 역겹고 무서워서 잘 응대 해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주칸에서 교안쓰는 그의 귀만은 저도 모르게 사이문께로 동냥을 가는것이 별일 이였다. 《허허, 자네 잘 지내나보군그래.》 《세월을 잘 만나서 한몫 단단히 보게 되였지뭐야.》 《?!》 《장사란 별거 아니야. 등치고 앞배 후벼내고 얼리고 닥치고 하면 되는거니까. 어쨌든 지금은 모험가의 천당일세.》 《하긴 그렇지만.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지 않나?》 《암, 산이 커야 그림자도 크다구. 거 우리 외삼촌 미국에 있다 하지 않았나. 대재벌이라나. 나에게 나래를 달아주었지!》 《!!》 《헌데 나혼자의 힘으로는 너무 벅찬 활동무대여서…》 《됐네그려. 날 써주게. 난 지금 엉망진창이네. 자, 한잔 쭉 내라구.》 《그렇지 않아두 자네 좀 궁하게 보낸다는걸 알구 왔네. 그러나 자넨 안돼. 뭐 장사판이 채석장인줄 아나?》 《?!》 《자네 그러지 말고 처복이나 입게.》 《처복이라니?》 《자네 처는 한어 잘하고 글씨 잘 쓰고 지식도 있지 않나, 또…아무튼 자네 처를 난 비서감으로 점찍어놓고 왔네.》 《뭐, 비서라구? 그건 안되네. 천하 없어도…녀편네 등쳐먹고 무슨놈의 처복인가?》 《글쎄 싫으면말라구. 이거 페많이 끼쳤네. 예약금5천장쯤 줄수 있으니 생각해보라구. 생각있으면 려관에 와서 날 찾게.》 미옥은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그녀는 짝을 이룰수 없는 빈궁과 요염을 두고 속을 태웠다. 잘 살고싶었던것이다. 그러나 황금은 눈앞에 있어도 통하지 못할 그 길이였다. 미옥이는 마도남을 잘 알고있었다. 민수, 도남이, 미옥이는 한 집체호에서 몇년동안 코를 맞대고있던 처지였다. 미옥이는 지금도 그날 밤의 일이 몸서리치게 떠올라 남편의 가슴을 파고들 지경이다. 연줄좋은 애들은 다 도시로 올라가고 뚝쟁이 민수와 아버지때문에 앉은석동을 하는 순애, 그리고 농촌에 한평생 뿌리박는다고 고아대던 도남이와 자기만이 남았다. 대대마을에서 영화를 돌리던 날 밤이였다. 민수가 채석장에 가다보니 도남이와 순애만이 영화보러 갔다. 미옥이는 된감기에 걸려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밤은 어느때나 되였는지 영화구경을 마치고 온 순애가 미옥이를 흔들어 깨웠다. 《얘, 너 열이 몹시 나누구나.》 순애는 미옥이를 아래목에 눕히고 자기는 미옥이가 누웠던 사이문쪽에 누웠다. 뜨뜻한 아래목에서 혼곤히 잠들었던 미옥이는 고막을 찢는 새된 소리에 화닥닥 놀라 잠을 깨였다. 귀때기를 쳐도 모를만큼 방안은 캄캄하였다. 《미옥이! 내다, 도남이야. 잠자쿠 있어. 버둥거리면 죽여치울테다.》 미옥이는 무슨 영문인지 알았지만 소리도 나가지 않고 덜덜 떨리기만 했다. 《너 순애두 거기 가만있어.》 아래목에서 인기척이 나자 엄포를 놓는판이다. 순애를 자기인줄로 알고 마도남 이가 덮쳐든게 분명했다. 그 소리에 정신이 펄쩍 든 미옥이는 천방지축 문을 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 순애의 비명소리가 뒤통수를 쳤다. 미옥이는 누구를 소리쳐 부를념도 못하고 삽짝문밖에서 떨고만 있었다. 《아니, 이게 미옥이 아니요?! 이 추운 밤에 어찌된 일이요? 신도 신지 않고…》 미옥에게는 언제나 정을 폭폭 담아주는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미옥의 지각은 깨여났다. 《웅걸오빠!》 미옥이는 웅걸에게 꽉 매달려《와—》하고 울음을 터뜨리 였 다. 《순…순애가 저기…》 《무슨 일이요? 엉?》 《마도남이, 지금…순애를…》 《도남이가? …》 웅걸이는 뇌리를 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도남이의 사람됨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색을 하지 않고 태연스레 말했다. 《마침 대대민병회의에 갔다가…함께 들어가기요.》 그는 앞에서 성큼성큼 뜰안에 들어서더니 《도남이, 도남이!》하고 큰소리로 불렀다. 이윽해서 도남이의 방에 불이 켜졌다. 《누구요? 이 밤중에?!》 잠내를 잔뜩 피우는 도남이의 소리였다. 《나, 웅걸이야. 문 좀 열라구.》 《무슨 일이야. 야밤중에 제길! 단잠을 깨우면서…》 《미옥이, 도남이가 왜 제방에서 자는구만?》 《아니예요, 방금…》 《음, 내 알겠소. 빨리 들어가 자오.》 미옥이는 집안에 들어갔다. 순애는 말그대로 불성모양이 되여있었다. 슬피슬피 울고있는 순애를 보는 미옥이의 마음은 찢기였다. 심한 자책과 수치감에 순애를 와락 부둥켜안고 울었다. 미옥이는 보호산을 찾아야 했다. 그 적임자가 웅걸이였다. 마침 웅걸이도 미옥이 를 남몰래 사랑하고있던차라 그들은 대번에 그림자처럼 붙어다니게 되였다. 도남이도 호랑이같은 웅걸이앞에서 더는 어쩌지 못하였다. 인물체격이 칠칠하고 맘씨 무던한 웅걸이가 농촌총각이 아니였던들 미옥이의 운명은 달리 발전하였을것이다. 생각이 웅걸에게 미치자 미옥이는 더는 돌이켜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마도남, 네 심보를 내가 모를라구, 흥!》 미옥이는 분해서 콩팥칠팥했다. 이튿날 아침, 민수는 밤새 궁냥이 돌았던지 미옥이가 응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참, 당신은 정말 단순하군요. 그래 녀편네를 깨진 질그릇 만들 작정이예요!》 《예약금 5천원이면 바쁜 목이나…》 《걷어치워요! 가라면 아예 리혼하고 가지요.》 미옥이가 리혼소리를 하는바람에 민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였다. 그러나 미옥이 의 마음이 흔들림을 받지 않는건 아니였다. 마도남의 비서가 욕심나서가 아니였다. 그건 돈에 대한 유혹 앞에서의 흔들림이였다. 그녀는 마침내 자기의 운명투전장을 상품경제의 격류속에 던져놓고 재신과 겨루어보기로 작심했다. 미옥이는 천장사에 미립이 튼 웃집아주머니를 따라 천장사에 나섰다. 학교에는 장기휴양진단서를 들여놓았다.   3   일년이 지나갔다. 처음엔 담도 없고 자금도 적어서 작은 도시로만 다니다가 차츰 상해, 광주, 심수에까지 발길이 뻗었다. 눈도 떠졌고 세상 물정도 알게 되였고 《지기》들도 많이 생겼다. 세번째 광주행차는 미옥의 운명의 전절점이 되였다. 미옥이는 렬차에서 홍삼 장사를 떠났다는 한 어리무던한 중년사나이를 알게 되였다. 그들은 재빨리 의사 소통이 잘되였다. 《난 광주가 처음이여서…》 《걱정말아요. 내가 홍삼을 얼마든지 처리해줄수 있어요. 수고비는요?》 《일만 잘되면야. 광주에 도착해서 예약금 2천원을 먼저 주지요.》 미옥이는 이 일로 뛰여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일은 미옥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비록 광주에《지기》들이 더러 있긴하였지만 모두가 바라는것이 있었다. 미옥이는 속수무책이였다. 려비도 거덜이 났다. 그 어리숙한 사나이가 어찌나 지궂게 붙어다니는지 몸을 뺄수도 없었다. 미옥이 는 광주에 온 이튿날 이미 예약금 2천원을 받아 집에 부쳐보냈던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 사내가 홍삼을 저절로 다 처리했으니 돈을 도로 내지 않으면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땅땅 을러메였다. 미옥이는 뛸데없이 되였다. 결판이 나야 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미옥이는 하는수없이 분세수에 향수냄새를 풍기며 마도남의 앞에 나서지 않을수 없었다. 《아니, 이거 미옥씨가 어떻게? 반갑소! 반갑소! 자, 어서 앉으시오.》 《도남오빠, 아니, 저 마경리!》 미옥이는 제 맘을 속인다는걸 느꼈을 때 얼굴이 뜨거워났다. 《자, 어서 앉소, 앉소.》 미옥이는 두눈이 화등잔이 되였다. 이렇게 으리으리하고 호 화로운 경리사무실은 난생처음 보았던것이다. 《참, 민수군은 잘 있겠지? 헌데 미옥씬 무슨 꽃바람이 불어서…》 미옥이는 두루 둘러맞추다가 돈을 좀 꾸어달라는 말을 겨우 꺼냈다. 《아, 그런 일이군요. 까짓것, 되구말구요.》 가슴을 툭툭 치며 강개하게 나오는 도남이를 바라보는 미옥이의 눈이 반짝 빛난다. 이 마도남이 워낙 인정이 넘치는 사나이가 아니였던가싶어지고 어데선지 존경의 마음 비슷한것까지 생기는것이 그녀로서도 이상스러웠다. 《너무 별스럽게 생각할건 없소. 조건으로 미옥씨가 나와 합작해서 한번 큰 사업을 해보자는것뿐이요.》 《비서질을 하라는거겠죠? 얼마를 줄수 있어요?》 《만약 기꺼이 손을 잡는다면 까짓 2, 3백원으로 청할줄 아오?》 지난해까지만도 뱀을 본듯이 싫어하던 마도남이였고 청소공질하면 했지 도남이의 비서질은 안한다던 미옥이였다. 하건만 오늘 미옥의 감정은 미묘한 변화를 일으켰다. 따져놓고보면 결코 그 2천원때문만이 아니였다. 잠자던 일만가지 욕망이 머리를 들고 눈부시게 현란한 이 세계를 바라볼 때 미옥의 눈에서는 이 마도남이란 사나이가 새롭게 현상되여 나타났다. 리성은 아직도 망서리고있을 때 욕망은 벌써 입을 통해 보수부터 따지고있었다. 《만약 내킨다면 래일부터 출근하오. 주숙은 따로 배치할테니깐.》 미옥의 얼굴을 넌지시 바라보며 마도남은 드팀이 없다는듯 말하였다. 《그럼, 우리 오래간만인데 식사하러 갑시다…》   4   미옥이가 집에 편지 한장 띄우지 않고 마도남의《다도해》무역공사에 남아 비서질한지도 두어달 되였다. 어느날 조용한 점심때였다. 《그동안 당신 수고가 많았소. 교제화의 역할도 출중하게 놀았구요.》 언제부터인지 도남이는 미옥이를 당신이라고 스스럼없이 불렀다. 또 그런대로 개의치않고 들어두는 미옥이였다. 《이건 첫번째 로임이요. 받소. 그리구 먼저 선대한 그 돈은 내가 방조해준것 이니까 계산에 넣지 않겠소.》 미옥이는 천원도 잘될 돈뭉치앞에서 가슴이 뻐근해졌다. 이름할수 없는 어떤 위력앞에서 감격하고 말았다. 《이건 내가 사려금으로 따로 주는거요. 당신의 신분에 맞게 단장해야 할게 아니요?》 《!!》 미옥이는 또 한번 놀랐다. 《그리구 미옥이가 좀 노여워하겠는지…나 민수군에게 편지했소. 돈도 5천원 부쳤소. 빚갚으라구.》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가요?》 《아니, 은혜란 서로 사이뜬 사람들에게서만 오가는 말이요.》 《그래두요, 전 어쩐지 당신의…》 《참, 며칠전 외삼촌께서 또 편지가 왔구만. 아예 그쪽에 건너와서 유산을 상속받을 준비도 하라면서…생각있으면 한번 읽어보구려.》 미옥이는 뉘정신에 편지를 받아 읽었는지도 몰랐다. 《허지만 난 정말이지 여기를 훌쩍 떠날수 없구만. 소중한 무엇이 자꾸 걸려서…》 이렇게 뒤말을 삼키는 도남이의 눈길도 그럴듯했거니와 말로 미옥의 꿈이 피여나는 가슴을 일렁거려주기에는 너무나 훌륭하였다. 마도남을 살짝 훔쳐보는 미옥이는 자기가 지금 이 사나이를 사랑하고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엄청난 발견이였다. 도남이가 갑자기 미옥이가 앉은 긴쏘파에 건너와 엎어졌다. 미옥이도 얼결에 그를 부등켜안았다. 《미옥이, 나와 결혼하기요. 난 고독하오. 난 내내 미옥이를 사랑해왔소!》 마도남은 미옥이가 더 말할틈도 주지 않고 그 큰 입으로 미옥의 입술을 덮었다. 그녀는 몽혼약이나 먹은것처럼 정신이 아찔해났다. 그녀의 눈앞에 문득 남편 민수의 초췌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얼굴을 옆으로 돌려버렸다. 두줄기 눈물이 도랑을 파며 흘러내렸다. 리성이 깨여나 채찍을 들었던것 이다. 미옥이는 민수와 결혼하던 화촉동방의 첫밤에도 웅걸이의 모습이 별스럽게 떠올랐었다. 그처럼 달디달게 무르익혀오던 시골의 사랑을, 그 좋은 사나이를 마침내 는 울려놓고 도시에 온 민수와 결혼한 미옥이였다. 민수의 품에서 웅걸이를 생각하던 미옥이가 오늘은 마도남의 품에 안겨 민수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을 내버리듯 또 한번 신음했다. 《미옥이, 왜 그러오?》 미옥이는 도남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늦바람이 곱새를 벗긴다고 서른다섯나이의 미옥이는 내친 걸음을 멈추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서로 자석처럼 붙어 돌아갔다. 배도 잘 맞았고 손도 잘 맞았다. 어느날, 미옥이는 도남이의 구레나룻을 쓰다듬으며 생글거렸다. 《외삼촌이 언제쯤 비행기표를 보낼가요?》 《허, 급하긴. 가기전에 우린 더 많은 일을 해야겠소. 당신도 민수와 리혼해 야지.》 《그럼, 당신의 순애는요? 이 몇년을 내내 당신을 기다렸다면서요?》 미옥이는 순애가 측은하게 여겨졌다. 《흥, 다 파먹은 김치독인걸. 까짓 촌계집을! 한 5천원 줴주고 관계를 끊었소.》 마도남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당신 정말 량심없구려.》 미옥이는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5   고급호텔 쏘파우에 손님 서넛이 앉아있다. 이슥해서야 샤와욕을 한 미옥이가 물기어린 머리를 폭포처럼 드리우고 들어섰다. 삽시에 코를 찌르는 화장품냄새가 방안을 휩쌌다. 미옥이는 또 둔갑하였다. 그녀는 암거래소의 유명짜한 《교제화》가 되였다. 그의 신통력은 마도남에게서 배운것이라 하지만 지금은 마도남마저 입을 딱 벌릴지경이였다. 그녀는 편지마다 돌아오라고 애걸하는 남편의 입에 돈뭉치를 밀어넣으며 얼렁뚱땅 살아갔다. 얼마전, 미옥이는 도남이와 함께 연변에 다녀왔다. 딸이 보고싶어서였다. 귀부인 같은 어마어마한 차림새에 큼직한 가죽트렁크를 들고 집에 들어서는 그녀의 행차에 온 마을이 혀를 홰홰 내둘렀다. 그러나 민수는 그 많은 물건들과 돈보다도 안해가 돌아온것이 더 반가왔다. 진종일 엄마목에 매달려있다싶이 하던 딸애가 잠들자 민수는 안해를 슬며시 끄당겼다. 《여보, 보고싶었소. 고생이 많았겠구먼. 정말이지 이렇게 한자리에 누우니 첫날 밤같구려, 허허…》 그러나 미옥이는 그저 귀찮기만 했다. 그래서 짜증스레 몸을 뒤챘다. 《당신…어딘가 변한것 같구려.》 《아직도 든 정보다 돈이 더 필요해요.》 《난 돈도 싫소. 인젠 왔으니 구차한대로 살기오. 다신 못갈줄 아오.》 《왜 못가요? 그 잘나게 일처리를 해놓구두…인젠 다 쓴죽이야요.》 《뭐요? 당신이?! 흥, 바람이 어지간히 난게 아니로군!》 민수도 화가 나서 안해를 활 밀었다. 《싫으면 아예 리혼하자요.》 《리혼? 이제 보니 네가 도남에게 영 붙은 모양이구나. 너 몸 팔았지?》 《흥!》 《에익, 갈보! 돈만 있으면 개도 사람이더냐. 가져가, 더러운 돈!》 뚝밸을 쓸라치면 미친 황소같은 민수였다. 두들겨패기의 이틀 낮과 밤이 지나갔다.《뽕뽕》하는 자동차경적이 울리자 미옥이는 기다렸다는듯 총알처럼 집을 뛰쳐나갔다. 《여보, 미옥이! 개같은… 리혼이다!》 하이야에 앉아 어둠속에 사라지는 도남이와 미옥이를 뒤쫓다말고 끈떨어진 뒤웅박같이 댕그랗게 남아서 울어대는 딸애를 바라보는 민수의 눈에 불이 황황 일었 다. 《개같은년놈들! 쫓아갈테다. 찾아낼테다! 못살게 굴테다! 죽여버릴테다!》 두발 구르며 종주먹을 휘두르는 남편의 험악해진 얼굴을 미옥이는 돌아다보지도 않았다. 울며불며 따라서는 딸애도 못본척하였다. 《운전수, 빨리 몰아요!》 이렇게 재촉하는 미옥의 꼭 다문 입가에 이슬같은것이 두방울이 맺혀있었다. 그후로 미옥이는 남편이 뒤쫓아와서 도남이와 동거하는걸 보 면 더 큰일 날것 같아서 개체호 고급려관에 자리잡았다. 그래서 그곳이 암거래소가 되였다. 물론 마도남을 등에 업고서였다. 인젠 그런지도 몇달 잘되였다. 《미옥이!》 파마머리의 청년이 일어났다. 어느 술담배공사의 구입원이라는 그와의 교역은 홀가분하게 끝났다. 그 청년은 미옥의 《충신》으로 자처하면서 견마지용을 다하고 있는터였는데 종이에 싼 《물건》을 기꺼이 《잊고》 일어서는것이였다. 미옥이는 악수할 때 그의 손바닥을 간지르는것으로 최상의 보답을 암시했다. 파마머리는 가장 값가는 정보나 얻은듯 헤벌쭉해서 나갔다. 맨 마지막으로 쉰살쯤됨직한 사나이가 접견을 바랬다. 미옥이는 매혹적인 미소를 던져주었다. 《로띵, 사업비 3천원만 더 내야 해요.》 《아이야, 미옥아가씨, 이미 돈까지 다 물었는데 또 무슨…》 《됐어요. 좋을대로 하세요.》 미옥이는 더 듣고싶지 않다는듯 사나이의 말을 중둥무이 하고는 선풍기단추를 잘칵 눌렀다. 사나이는 자기들의 이야기가 이미 절정에 이르렀다는것을 느끼고 그만 일어서고말았다. 그러는 사나이꼴을 미옥이는 깨고소하게 돌아다보았다. 《좋소. 미옥이 나도 밤낮 빈방아만 찧지 않을걸. 사기군 같으니라구. 난 법에 고소할테요!》 미옥이는 그 말에 덴겁하였다. 그것은 미옥이가 제일 듣기 두려워하는 말이였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도 잠간 동안이였을뿐이다. 그녀는 태연한체하며 젊은이가 《잊고》간 물건을 헤쳐보았다. 돈, 돈이였다! 그녀의 얼굴엔 다시 느긋한 미소가 괴여 올랐다. 그녀는 자기의 미모로 치마자락에 매달리는 사내들을 실컷 주무르고 비웃어줄수 있다는것을 믿고있었다. 돈뭉치를 금고에 넣는 그녀의 마음은 또다시 놓쳐버린 고무풍선처럼 둥실둥실 떠가기만 했다. 그는 택시를 불러타고 도남이한테로 갔다. 붐비는 거리를 시틋하게 내다보던 미옥이는 등받이에 기대여 사르르 눈을 감았다. 하이야가 갑자기 하늘중천에 아득히 날아간다. 도남이의 외삼촌이 오면 도남이와 결혼하고 그곳으로 날아가야 한다. 백만장자 조카부인이 된다면 더 바랄것이 무엇 이랴! 세계 어느 곳이나 가고싶은 곳이면 다 가볼수 있다… 미옥이는 흥이 날 때마다 자기 귀가에 불어넣던 마도남의 말을 늘 복음처럼 되새겨보군 하는터였다. 비행기 타고 멀리 날아가버리면 민수인들 어찌랴. 그저 딸애에 대한 생각이 가슴 짜릿하게 갈마들뿐이였다. 미옥이가 도남이의 경리실에 들어가보니 사람은 간곳없고 금방 던져버린듯한 담배꽁초가 연기를 몰몰 피우고있었다. 웬일인지 새로 데려온 출납원 영애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감이 들었다. 미옥이는 살금살금 밀실문께로 다가갔다. 안에서 과연 말소리가 새여나왔다. 《아이, 이러지 말아요.》 《영애…》 《아이, 난 몰라… 미옥아주머니가 알면…》 《까짓걸, 다 파먹은 김치독이야. 이젠 향항늙다리한테나 붙어서 재미를 보라지, 흥!》 미옥이는 정신이 아찔했다. 꽃무늬천장이 빙그르르 돌았다. 《아, 내가!…》 배반의 쓰디쓴 고통이 뼈속까지 스미면서 마음속에서 무엇이 와그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문을 세차게 발로 차고는 그만 졸도해버렸다.   6   이른새벽이다. 똑딱, 똑딱! 어김없고 단조로운 시계소리는 생활의 순환과 생명의 운동을 알려나주듯 쉬임이 없다.미옥이가 태를 끊고 이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던 그때에도, 사랑의 첫 열매를 토하던 그 때에도 시계는 이렇게 가차없이 돌아갔다. 그때는 그래도 희망을 재촉하고 행복을 축복하며 돌아갔다. 그러나 이 새벽 시계소리는 인간성을 말아먹는 탐욕을 질책하는듯 가슴을 두드려준다. 숨막히던 빚도 벗고 돈도 조금 모았지만 미옥이는 녀인으로서 안해로서 어머니 로서 지지말아야 할 마음의 빚을 한껏 짊어지게 되였다. 영영 벗을수 없는 빚이였다. 이제 남은것은 무엇이고 바랄것은 무엇인가? 마도남을 따라 비행기를 타고 락원의 세계로 가려던 꿈도 일장춘몽이 되고말았다. 그녀는 때늦게나마 성실한 두 사나이를 배반한 자기가 마도남에게 기편롱락을 당한것은 마땅한 인과보응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이 새벽, 미옥이는 그런 고통속에서 잠못들고있다. 똑딱, 똑딱… 시계소리는 공포와 절망의 문을 노크하듯 귀에 파고들었다. 참회와 수치감, 고통속에서 흘린 눈물은 베개를 푹 적시였다. (미옥이, 돌아오오, 어서! 한인간으로서 존엄보다 더 귀중 한게 있소? 여기에 우리의 딸 헤영의 편지도 함께 보내오…) 마지막으로 받은 편지에서 절절하게 울리던 남편의 목소리가 다시금 귀청을 때린다. 사랑하는 딸애가 부르는 소리는 더욱 가슴을 찢는다. 《…엄마, 돌아와요. 응! 아버진 오늘아침에도 밥하며 울었어. 모두 엄마가 나쁜탓이래. 엄마, 빨리 집으로 와요. 난 다시는 돈달라 안할게. 엄만 돈이 그리도 좋나? 난 돈이 미워… 오늘부터 내 마중갈게. 엄마! 응!…》 미옥이는 가슴을 뜯었다. 《아—아, 난 미친년이다. 천하 몹쓸 에미다! 돈미치광이다!》 이렇게 길게 부르짖는 미옥의 입술에서 빨간 피가 맺혀 나왔다. 흑흑! 하는 흐느낌뒤에 뒤따르는 신음소리가 뼈짬에 스민다. 안식을 잃고 낭떠러지에서 통곡하는 령혼의 신음이였다. 《똑, 똑, 똑…》 갑자기 노크소리가 되알지게 울린다. 미옥이는 몸을 옹송그렸다. 《똑, 똑, 똑…》 망망대해에 외로이 뜬 쪽배가 부서지는 소리처럼 소름이 쭉— 끼치는 소리였다. 《똑, 똑, 똑…》   천지 1990년3월호
5    아름다운 비밀 댓글:  조회:2761  추천:38  2008-01-30
아름다운 비밀   최 균 선   이야기꼭지          먼 옛날, 천제의 아들 환웅이 《아들 낳고 딸 낳으며 인륜지락을 누리게 해줍 시사.》하고 간절히 비는 웅녀의 소청에 그만 잔정을 못이겨 가연을 맺고 어찌구저찌 구 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내 이야기는 그런 케케 묵은것이 아니고 무둑이 깔린 세월 의 락엽속에 내내 묻혀있던것을 오늘 비로소 펴내보이는 진실한 비밀얘기이다.        하긴 그래서 은사권 침해로 경치지나 않을가 걱정은 되면서도 인간의 그 자발적 인 행위동기에 대한 심리적인 해부가 되고 또 그런 행동이 나오게 된 신비로운 원인 에 대한 설명이라도 될듯싶어서 그냥 조심조심 엮어보려는건데 독자들이 읽고나서 생 판 꾸며낸 엉터리소설이라고 피씩 웃어버릴런지…각별한 기대심리도 얹어두는바이다.        1.       《선녀동의 가인》   칠백리 두만강 푸른  물결따라 처처 내리노라면 문전옥답에 고고청산을 병풍같이 두르고 오붓이 모여앉은 한 마을이 나지는데 물농사 짓고 도목나무 때는 세외도원 이라 지명은 선녀동이다.        예로부터 술있는 강산에 걸사가 많고 산수 좋은 곳에 미인이 나듯이 이 마을에서 확실히 가인이 드믄히 난다고들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쁜녀도 이 선녀동 태생인데 원래는 이름이 리분녀인것을 아이적부터 어찌나 이쁘고 참했던지 동네어른들이 아예 이쁜녀라고 부른것이 그냥 굳 어져서 지금도 이쁜녀로 알려지고있다. 이쁜녀는 아닌게아니라 얼굴이 동탕하고 몸매 또한 단아하여 그림의 선녀같은데다가 마음씨마저 비단결이여서 원근에 소문난 가인 이였다.        녀자에게는 미모가 말없는 추천장이라는데 이쁜녀는 정들이 시골에서 아들 낳고 딸 낳으며 깨쏟아지게 살겠다며 스므살 잡던해에 끼끗하고 착실한 뒤집총가에게 시집 을 갔다. 그런데 단꿈이면 쉽게 깨여지는 법인지 잔치하여 열흘만에 새신랑이 붉은 띠에 붉은 꽃을 달고 조선전쟁에 나가게 되였다.        찰떡같고 꿀떡같던 밀월이 반도 여물기전에 독실한 남편을 사지판으로 보냈으니 구곡간장에 서리고 맺히는 아쉽고 쓰리고 그리운 정이야 더 이를데 있었으랴! 그러나 내 나라, 내 고향, 내 부모형제 지킨다며 첫사람으로 나서던 열혈의 용사, 리별의 눈물겨운 시각에도 믿음과 축복의 웃음꽃을 피워질줄 알던 의젓한 랑군을 말없이 고이 보내드린 이쁜녀였다.        남편이 전선에서 싸울 때, 이쁜녀는 홀로 난 시아버님 모시고 집안살림 물이 못 나게 하여 모범며느리로, 밭일도 장정처럼 해제끼며 전선원호사업에도 열성다하는 전 사의 안해로 , 지는 해 솟는 달에 마음 상하여도 님 기다려 일편단심 순정을 지켜가 는 시골의 《동정녀》로 살아갔다.        기다림이 기다림을 낳고 그리움이 그리움을 마중하는 허구한 나날 남편 장수는 서울해방기념이라며 사진한장, 락동강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편지 한장 보내오고는 그후 일자무소식이였다. 독수공방 외로운 베개가에서 손톱여물 쏠며 이제나 저제나 할 때에 마침내 그 몹쓸놈의 전쟁도 끝나고 덕삼이랑 후에 떠난 순금오빠랑 다 돌아 왔다. 한건만 눈물젖은 옷고름 입에 물고 동구밖에서 일구월심 기다리고 섰는 이쁜녀 의 사랑하는 장수는 돌아올줄 몰랐다.     참으로 녀인들이 기다림에 지칠줄 모르는것은 기다림끝에 오색찬란한 희망의 무 지개가 서고 그 무지개너머 못견디게 끄는 유혹이 있기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님 이 돌아오면 오롱조롱 아들딸 키우며 떡호박속같이 달착지근하게 백년을 살고질 시골 《동정녀》의 꿈은 어이 그리 묘연한지…     별 총총 숨박곡질 하는 밤이나 달빛 푸르러 유정한 밤이나 외로워, 너무 서러워 눈물로 베개를 절이면서도 밝는 날이면 고운 웃음 피워야 하는 그녀였고 기약없이 수 절하는 며느리의 청승맞은 꼴이 눈에 지겨워 빈대통만 돌아앉아 뻐끔뻐끔…속썩은 한 숨만 태우는 그녀의 시아버지였다.     그때마다 그때마다 이쁜녀는 순정의 망울을 터치던 선녀바위 로송아래에서 절명 의 치마고름 매듭져보았고 수집음 타며 랑군의 등허리 밀어주던 두만강 백사장에 외 신짝 벗어놓고 떠도는 비구름에 피울움도 실었다. 울다가 흐느끼다가도 남편 장수가 벌씬 웃으며 집에 들어선것만 같아서 천방지축 집으로 달려가기 몇번이였는지 모른다.     《며늘아가, 용타! 우리 장수놈 죽을놈 아니지, 우리 기다려보자구, 응? 죽지 말고…으흐흐…》하고 락루하시는 시아버님 봐서라도 차마 목숨을 버리지 못하는 현 실인데 살자니 불없는 화로에 속절없는 청춘을 말려야 하는 그녀의 인생이였다.     두만강에 성에장 떠내려 겨울이 가고 백바위 도래굽에 진달래 붉어 봄은 또 오고 랑군님이 심은 과일나무에 능금은 익어서 가을을 전하는 새에 어언 긴긴 십여년이 훌 쩍 가벼렸다. 무정세월 약류파라.     그녀의 생홀에서 유일한 의탁이라면 일 하나뿐이였다. 호조조라, 인민공사라, 대 약진의 불바람속에 청춘도 사랑도 뜨거운 피도 묻어버리자고 실로 많은 일을 해왔고 또 억차게 해왔었다. 절반 하늘을 떠인 산골의 무쇠녀인이라고 이름나고 여예 들썽할 때 녀자의 잔정도 스러지는가싶더니 그것이 오히려 무형의 사슬이 되여짐을 소스라치 게 깨달았을 때 터지는 울음은 더구나 피맺혔다. 현실은 너무나도 불공평하였다.     유혹도 난당이였고 류언비어도 끔찍스럽던 청상과부의 10여년을 철옹성으로 지키던 정조의 쪽문이 바시시 열리며 탄성을 잃었던 정감의 건반우에 마침내 인생의 변주곡이 울리게 되였으니 녀인의 사랑이란 마음밭에 예고없이 작열하는 갈망의 숯불 이였던가! 아니면 또 한번 장난치는 운명의 혹독한 조롱이던가?…   2.     봄날의 밀사   긴 재등에 아지랑이 타고온 새봄이 실없이 해롱거리며 부푸는 그녀의 가슴을 간 지르던 어느 날, 생산대 정치대장이며 대대부서기인 허일이가 웬 간부옷차림의 사나 이를 데리고 분녀네 삽작문에 들어섰다. 《저, 분녀동무, 시아버지 집에 계시오? 이분은 사회주의교육공작대로 현에서 내려온 동무인데 이 집에서 먼저 식사시켜야겠소. 분녀가 작식도 잘하구, 또…좌우간 수고해줘야겠소.》 허일이 노상 그러하듯 정나미 떨어지는 웃음을 물고 구구히 소개하건만 이쁜녀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얼이 쑥 빠저나가는듯이 머리가 어질어질 해나고 가슴이 후두두 뛰였던것이다.  《이쁜녀! 내 왔다구, 내가 장수란말이요!》이렇게 웨치며 사나이가 덥썩 껴안 아줄듯한 환각에 빠질 때 그녀는 한걸음 훌쩍 나서며 두눈을 꼭 감았다. 《아! 장수씨, 왜 인제야 와요? 네? 어데가 있다가 인제 와요? 흑…》하고 울부 짖으며 그립던 그 품에 와락 안기려는 순간, 그녀는 다시 두눈을 번쩍 떴다. 갱핏하면서도 힘덩어리로 째워진 끼끗한 체구, 인자한 그속에 굳센 빛도 담고 심 장을 꿰뚫어보는듯 형형한 눈길, 닿이면 금시 녹여버릴듯 정열적인 선명한 입술, 정이 폭 고이는 다복수염터…모든것이, 그 모든것이 천백번도 꿈에 보고 눈물로 적셔 보던 그 모습, 순간도 못잊던 남편, 장수의 그것이였다. 눈에 좀 설다면 시골사나이 의 흙냄새와 후더운 기품대신 활달하면서도 서생티나는 너무도 현혹하는 미남아의 풍 채였다. 《아, 어쩌면 세상에…10년도 넘었으니 저렇게 변할수도…이게 꿈인가?…》 방문을 열고 나오던 장령감도 두눈을 슴벅거리며 말뚝처럼 굳어져버렸다. 《아니? 이 사람, 자네가!?…》 분녀와 그의 시아버지의 반상적인 거동에 허일이도 그 사나이도 어정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촉기빠른게 허일이였다. 《아, 저어 이 분은 리억철동무인데 현조직부에 령도동지요!》 허일은 일부러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하였다. 그제야 억철이라는 사나이도 얼굴을 살짝 붉히며 인사를 올리였다. 《저, 로인님! 그리구 아주머니, 아마도 신세를 좀 져야하겠습니다.》 억철이라는 허일의 소리에 착각에서 벗어나려던 분녀는 또 한번 움찔 놀랐다. 눈 만 감으면 눈에 삼삼한 주인공의 그 웅글지고 정차던 목소리가 다시 가슴에 메아리쳐 오는듯했던것이다. (오, 아니였구나. 그런데 어쩌면 목소리마저…호) 드디어 그녀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실망에 찢긴 가슴을 꼭 누르며 곱삭 인사를 했다. 《아, 네에, 참 무슨 말씀임둥, 저어 어서 방으로 들어가십소.》 《어험, 이 사람 며늘아기야, 내 눈이 잘못된가보이. 이거 참 미안허웨다. 그만 후유ㅡ》 억철이는 수수께끼 같은 장면에서 처음엔 좀 별스러운감이 들었지만 뒤미처 깨닫고 보니 사람 좋아보이는 이 집 고부에게 대뜸 인정이 푹 쏠리였다. 그는 마루에 성큼 올라서며 로인을 부축해주었다. 《웬 말씀입니까? 그럴수도 있지요. 제가 공연히 두분을 놀래우신것 같군요…》 분녀는 오도가도 못하고 놀란 가슴 부둥킨채 얼없이 섰다가 허일의 열기띤 눈길 이 얼굴 근지럽게 핥아대는 바람에 정주칸으로 쫓겨들어갔다.     그날 저녁 분녀는 뉘정신에 밥을 지었는, 또 어떻게 설겆이를 마쳤는지도 몰랐 다. 시아버지와 사나이가 구면이 여의한듯 한담을 펴낼 때 그녀는 뒤뜨락 살구나무아 래에서 슬피슬피 울었다.     어찌 울지 않으랴! 그녀의 사랑은 미래에로 뻗어있다기보다 과거전체로부터 우러 나오는 그런 사랑이였거늘 그립고 그립던 첫사랑을 꿈같이 현연시켜준 멋지고 름름한 젊은 사나이에게서 안겨진 충격파에 오래동안 잠자던 녀자의 특성이 태동하기시작했 던것이다. (서른 대여섯 되였을가? 그이와 동갑일지도…아아, 내가 무슨 엉뚱한…)     그녀는 제풀에 얼굴 붉히며 한창 몽글기 시작한 꽃송이들을 애꿎게 잡아뜯었다. (그인 정말 살아나 계신지?…피덩이 하나 남기지 못하고 가셨구나. 야속한 사람, 복 없는 사람…) 그녀는 자기가 녀자구실 한번 못해보고 늙어온것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 이 찢기였고 인생에 망연자실했었다.     (아들 하나 낳았더라도 이렇게는 외롭지 않으련만, 내 팔자가 사납기도 하지…) 이렇게 생각할수록 가신 님이 불쌍했고 또 밉기도 했다. 느끼고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몸을 바치는, 이 세상 모든 녀자들이 가지고있고 향수하는 그 본성을 나는 어찌하여 잃어야 하느가? 누구때문에?…이렇게 방황하는 외로운 넋이 창막한 밤하늘에 날아오 를 때 둥근 달도 오열에 떠는 시골의 《동정녀》를 측은히 굽어보며 황금의 그네줄을 길게 늘이여 애달픈 그 마음을 고요히, 조용히 흔들어주고있었다…     3.     사랑의 칠현금   꿈도 고달픈 봄밤을 그녀는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녀는 헤여나올길 없는  자기의 슬픔에 매달려 속을 앓으면서 전쟁이 파놓은 구뎅이 밑바닥까지 내려가 그 깊이를 재이며 애탄과 눈물로 그 구뎅이를 메우려 애썼건만 끝내 메우지 못하고 날을 밝 혔다. 아침을 지으면서도 그녀의 마음과 생각이 말을 주고받을 때 밖에서 장작을 패는 도끼질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다심한 시아버지가 또 망녕인가싶어 부엌문 을 펄쩍 열다가 그만 홀린듯 서버렸다. 런닝그바람으로 도끼를 휘두르는 장골사 내의 팔과 가슴에서 건강미를 자랑하듯 근육들이 푸들거리고있었다. 그녀의 가슴도 공연히 푸들푸들 뛰놀았다. 도끼질을 할 때마다 이마우에서 춤추는 앞머리가 눈뿌리를 뺏다. (그이도 저렇게 채좋은 곱슬머리였지…호ㅡ)      《허허, 젊은이 거 팔로군작풍을 발양하는가 원, 어서 관두고 이리 들어오 게나.》 방문이 열리며 울리는 시아버지 말소리에 분녀는 제꺽 문을 닫고 돌아섰다. 시아 버지의 말소리가 다시 정주칸으로 옮겨왔다.  《이 사람, 애기네. 아침 다되였겠지비?》 《네에ㅡ 곧 챙겨드려갔꾸마.》 제꺽 대답을 올리느라 그런지 그녀의 목소리는 몹시 갈리고 떨려있었다. 억철이는 분녀가 떠주는 랭수에 시원스레 세수를 하고 구속없이 밥상에 마주앉아 걸탐스레 아침밥을 우겨댔다. 그것을 훔쳐보는 분녀는 몰래 웃음을 삼켰다… 스믈한살, 숯총각으로 조선전장에 나가서 줄창 전선부대에서 싸워온 그는 군인의 호방하고 대바르고 소탈하면서도 돈후한 기품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인정많은 사내였던 억철이는 분녀와 차차 친숙해짐에 따라 그녀의 사람됨에 깊은 애착을 느끼게 되였고 말보다 행동하는 자기 성미 그대로 진정 살뜰한 정으로 그녀를 아껴주고 생각해주었다. 그러는 자신에 대해 때로 이상야릇하게 변한다고 꾸짖어도 보았지만 처음에 볼때의 인상이 각별해서인지 아니면 시골가인의 미모에 혹해서인지 아무튼 무더기로 그냥 쏟아지는 인정을 그로서는 알수 없었고 말려낼수도 없었다. 그러나 애정의 샘터라는 동정심 그것만이 아니라 한 불행한 녀인을 뜨겁게 포옹하는 전사의 품, 그것이기도 하였다. 랭상모판을 만들때였다. 뼈소까지 쩌릿해나는 차디찬 물속에서 입술을 사려물고 그 누구보다 먼저 들어서고 한번 논둑에 올라 랭기를 말림도 없이 끈질기게 일손만을 다그치는 분녀의 모습을 마음의 눈으로 지켜보던 억철이는 현성에 갔다오던 길에 목 긴 장화를 사다가 부엌에 슬며시 놓아주었다. 이튿날, 촉기빠른 아낙네들의 시새운 눈총이 분녀를 쩔쩔 매게 했을 때 그도 공연히 멋적은 짓을 했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렇다고 그것때문에 구애되고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기회만 있으면 분녀의 일손을 두손 걷고 해주었다. 장작도 패주고 터밭도 갈아 남새도 함께 심고 울바자랑  손질해주었다. 결코 농촌사회주의공작대대장의 신분으로서 지어낸 공작이 아니였다. 남자들은 생각하고 녀자들은 느낀다. 분녀는 빈 구석없이 각근하게 생각해주는 억철에게 감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억철이의 웅숭깊은 마음속에서 설설 끓는 그것이 그녀가 느끼고 더 없이 느껴보고싶은 그런것이 아니였음을 언녕 알았다면 그 녀의 고통과 번뇌는 사랑으로 여물어가지 않았을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저러나 여느 아낙네들의 걸직한 입담에는 곧잘 응수하는 억철이가 오직 분녀에게만은 아슬한 절벽같이 쳐다보였는지? 거리감이 그녀에게 더욱 불붙는 련정을 가지게 했는지 모른 다. 이제 남성을 진정 알고 받아들일수 있는 한창 나이 서른한살이였으니… 억철이의 정나미도는 모습이 시각마다 눈에 비껴들고 호방한 웃음소리가 귀맛좋 게 들릴 때는 진종일 힘드는줄 모르고 일하다가도 그가 일단 회의에나 가고 없는 날 엔 손맥이 절로 풀어지고 신들린 사람처럼 텅빈 마음에 늙음이 대번에 덮쳐드는듯싶 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녀는 숫처녀의 풋사랑같은 자기의 련정에 스스로 민망 스러워져 달뜬 제 마음을 열백번도 넘게 꼬집어가면서 질책도 해보았고 또 반발심 비 슷한것이 울컥 솟아서 (내가 얼없지, 처자가 있는 남자인데…사나이속은 우렁이속같 이 모두 엉큼하다는데 우정 틀거지를 피우는지 누가 알게?…)하고 억지도 써보고 제 쪾에서 저만치 거리도 놓아보고 했지만 나중엔 그저 또 막연한 기다림과 그리움만 가 득 남을뿐이였다. 그런데 제마 빌어 남의 마음을 떠본다고 능갈친 허일이가 언녕 분녀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는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하긴 일배치마다 꼭꼮 억철이와 자기를 붙여놓고 제가 둘러리를 서는것이 좀 이상은 했지만도. 어제 긴재등에 조이홰지도 억 철이와 분녀, 허일이 셋이서 한조가 되여서 했다. 탑을 잡은 허일이가 밭머리를 돌 때 그 멀끔한 얼굴에 야멸찬 웃음이 얼핏 스치는것을 본듯도싶은 분녀였지만 원체 상 대도 하고싶지 않은 허일이였던지라 눈결에 흘려보내고 그저 반공중에 높이 떠서 울 어예는 종다리소리에 마음의 선률을 고르며 봄날의 서정에 함뿍 취해 일손만 놀리였 다. 손은 절주있게 대뚜베를 두드렸지만 정감은 마음밭에 벌써 파랗게 움터 꿈꾸는 련정의 새싹에 단비를 뿌리고있었다. 아침에 허일이가 분녀를 불러내였다. 《저, 한가지 의논할게 있어서…억철동무로 말하면 현에서 온 지도동지인데 돌림 식사를 하는것이 너무 각박하지 않소? 동무가 고생이겠지만 오늘부터 주숙을 도맡소. 대무위원회에서도 토론이 있지 않았소? 그러니…물자는 생산대에서 책임질거요.》 허일은 그저 집행하라는듯이 그녀가 무엇을 해석할 새도 없이 훌쩍 가버리였다. 그리하여 억철이가 분년네 팔간집 한웃방에 이불짐을 내려놓고 조석으로 얼굴을 대하 다보니 그들은 자연히 더 친숙해지고 분녀에게는 마음의 기둥이 생긴셈이였다. 그녀 는 전에없이 집안에 화기가 도는듯싶어졌고 마음은 햇솜처럼 보송보송해 있었다. 빌어온 행복이라도 좋았다. 사랑은 녀인들을 아름답게 해준다더니 며칠새 젊음과 아름다움은 뭇눈길에 띄일만큼 이쁜녀에게 황홀한 후광을 씌워주었다.   4.     무르익는 서정   어는덧 풋나무를  할 철이 돌아왔다. 분녀는 여느해보다 일찍 서둘렀다. 혹 겨울 을 나겠는지…억철이가 든 한웃방까지 뜨뜻이 덥힐 생각을 앞세운것이다. 남정들이 있는 집에서는 겨울에 큰 도끼나무를 팡팡 해내리기에 별로 감심하지 않았지만 분녀 는 풋나무라도 많이 하면 고작이였다. 그런데 올해는 겨울을 때고도 봄나무걱정이 없 을만큼 다북이 해놓게 되여 어찌 좋은지 모르겠다. 남편없는 설음이 더구나 뼈저리게 사무치는 나무철이였던것이니 억철에 대한 고마움이 자연히 과부설음으로 번져져서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도말이다.     어느 날, 억철이가 공사로 회의하러 간다며 떠나자 생산대 소수레에 발구를 싣고 나무재골로 떠났다. 억철이가 알면 또 부득부득 앞설것이 걱정이여서 수레텀까지 혼자 끌어내리고 그다음 뉘 손을 빌 작정이였다.     점심때가 기울무렵, 네발구채 꽉 박아싣고 산을 내릴 때 두고 온 새끼생각이 났 던지 가파로운 내리막전부터 잰걸음을 치던 암소가 마침내는 광증이 난것처럼 네굽을 놓는데 섬약한 팔힘으로 아무리 고삐를 낚아채도 막무가내였다. 아예 활 놓아버리려 해도 외통길이라 비켜설 곳도 그럴 겨를도 없게 되였다. 넘어만지면 발구밑에 들어갈 판이였다.     끌리며 걸채이며 겨우겨우 지탱할 때 길옆 언덕배기로부터 억센 팔뚝이 불쑥 내 뻗치더니 소코뚜레를 꽉 틀어쥐고 콱 나꿔어채자 발구짐이 저쪽 언덕배기에 쿡 박히 더니 소도 무춤했다. 그 서슬에 충격받은 분녀가 앞으로 콱 꺼꾸러지려는 찰나에 억 세고 탐탁한 가슴팍이 그녀의 상체를 받아주었다. 얼결에 구원의 품에 몸을 맡기고 머리를 들어보니 억철이인지라 저도 모르게 마음껏 그 품에 실려들었다. 땀벌창에다 한껏 달아오른 그녀의 모습에 측연해진 억철이는 한동안 그린듯 지켜섰다가 그녀를 살며시 떼내여 길섶에 세워주었다.     《참 아슬아슬했소. 마침 달려왔으니 말이지. 이런 일도 녀자몸으로 해야 하니 에잇, 쯧쯧…》     처녀처럼 수태를 머금은 그녀는 그저 머쓱해하는 기색으로 억철이를 할끗 쳐다보 고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녀는 온몸이 포근해지던 그 한순간의 감각을 영원히 기억속에 새겨넣으며 가슴 가득 감미로움을 채우고 서있었다. 이윽해서 산을 내리니 억철이가 소수레까지 메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많은 나무를 녀자손에…그런데 생산대에서 이런 일은 생산대에서 도와주게 되여있잖소? 아침에 말이나 하든지…쯧쯧…》     억철이는 또한번 늙이처럼 혀를 끌끌 찼다.     《어찌 다 남의 손을 빌겠어요. 혼자 사노라면 이보다 더한 일…》     분녀는 뒤말을 가무려버리고 머리수건을 푹 내리썼다. 순간, 억철이는 입에서 《왜 재가를 하지 않습니까?》하는 말이 불쑥 튀여나올번 했다. 그러다가 문득 고태 의연하고 무의무탁한 그녀의 시아버지 장령감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저 한숨만 쉬고말 았다. 이 나라 수많은 전사의 안해들에게서 사랑과 행복과 의탁을 빼앗아간 전쟁을, 그 전쟁판을 벌린 원쑤들을 새삼스레 저주하면서 슬며시 분녀늘 쓸어보았다. 나무가 지에 긁히워 피터진 손을 옷섶에 감추는 분녀의 모양이 얼핏 실려왔다.     《아니, 그 손 좀보지, 자, 이리 내시오.》     억철이는 그녀의 손을 확신있게 잡아다가 하얀 손수건으로 살뜰히 싸매주었다. 그는 아직도 청초하고 아릿다운 그 얼굴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거칠고 마디진 분녀 의 손을 꼭 잡은채 철학자와 같은 근엄한 기색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전사의 안해들은 영광스럽다고들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러나 그 영광의 눈물속에 어린 불행 과 비극을 그 누가 가슴으로 느껴보았던가?…)     한편 억철에게 점도록 손을 잡히고 앉은 분녀의 가슴에서 일만 잔나비 널뛰듯하 면서 리성의 울타리를 마구 뒤흔들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밀물처럼 욱 들이닥치는 격정에 그녀는 억철이의 헤쳐진채 있는 가슴팍에 얼굴을 확 묻으며 열에 떠서 속삭였다.     《외로웠어요. 못견디겠어요…흑…전…》     억철이는 분녀의 고통스러운 내심의 모대김과 숨기다못해 드러나기 일쑤이던 색 다른 정을 언녕 느끼고있었지만 그녀의 이렇듯 갑작스러운 행동에는 어지간히 당황하 지 않을수 없었다. 흥분에 잔뜩 떨리는 분녀의 상체를 본능적으로 껴안은 그는 깃을 잃은 한마리 작은 새의 애처러운 울음소리에 마음이 여리어지듯 한껏 다잡아오던 마 음이 자기답지 않게 구멍이 펑 뚫리는것을 무섭게 자각했다.     《분녀!진정하오. 울음도 그치구, 자기를 잃어서야 안되지…》     비는듯 사나이 철석간장을 후벼대는 그녀의 울음소리…억철이는 정신이 아찔해났 다. 열정이 열정을 달구는 정화의 침묵은 그렇듯 무겁고 짧았지만 고패치는 사색은 그렇듯 깊고 무거웠다. 억철이는 어느 참호, 어느 돌격의 산비탈에 쓸어졌을 전우를 그려보았다. 그렇다. 억철이는 당원된 참된 자각과 인간성에서 결코 량심에 꺼리끼는 일을 영원한 자책의 저울판에 올려놓고싶지 않았다.그는 주저없이 자기의 위치로 돌 아왔다. 《분녀동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선뜻 헤여나온다는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요. 또 쉬운 일도 아니구, 하지만 나오구 보면 그보다 더 개운한 일은 없을거요. 이쁜녀, 이쁜녀는 참한 녀자가 아니요? 자, 이렇게…》 억철이는 자기 가슴에 부득부득 파고드는 그녀를 살며시 떼여놓고 자리에서 일어 섰다. 파아란 하늘에서 가을해가 재글재글 끓고있었다. 분년는 형언할길 없는 수치감과 비애에 모부림치며 다시 나무단우에 쓰러졌다.  《아, 하느님 맙시사, 전 어쩌라나요?…》 억철이가 나무수레를 몰고 동구밖에 이르렀을 때 허일이가 기다렸다는듯이 다가 왔다. 《아니, 이거 참,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우리 사업에 비구석이 많다보니…리과장을 수고시키는군요. 분녀동무두 참, 한마디 귀뜸이라도 했더면…》     허일은 이렇게 설레발치면서 야릇한 눈길로 분녀와 억철이를 한줄에 꿰고있었다. 억철이는 허일이가 순전히 겉발린 말을 하고 있다는것을 알면서도 역겨움에 완곡함을 얹었다.     《뭘요. 한 당원전사가 할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할뿐입니다. 이 역시 사회주의교 육이지요. 허허…》     하긴 입이 쓰거워 침이나 뱉어주고싶은 그이기도 했다. 피어린 싸움터에서 한목 숨 내대고 지켜온 그 모든 성스러운것에 버러지같이 너절한 작자들의 “락원”도 끼 여있다고 생각하니 울분과 환멸감이 욱 치밀었다. 억철이는 결김에 길가에서 거치장 스럽게 딩굴고있는 큼직한 조약돌을 힘껏 걷어차 개울창에 처넣었다…   5.     색정광의 암전   나무터에서 그 일이 있은후 분녀의 마음속에는 더구나 치렬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억철이는 예이제없이 그녀를 쌀뜰하게 대해주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 오는 애우하듯 부드러운 눈길은 그녀로 하여금 슬픈 방황에서 헤여나와 새 언덕 에 오르도록 힘과 용기를 주었다. 분녀는 하나의 고결한 넋이 안겨주는 더없이 귀중한 인간애의 감로수에 푹 젖어있을 때는 슬픔에 찢기는 가슴에 검질기게 갈마드는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 나기도 했다. (아서라. 그이는 처자가 있는 남자이다. 나느 귀속을 잃은 령혼을 끝까지 지켜야 할 녀자다…) 이렇게 자기를 찾기도 했지만 사랑의 힘은 지어먹은 마음을 사흘이 못넘게 쫓아버렸다. 이미 분출하기 시작한 정염의 불길은 무시로 그녀의 몸과 마음을 연소의 쾌감으로 휩쌌다. 이때마다 자기 인생과 운명의 궤도에서 뛰쳐나와 순박한 자기 성격과 다감한 심장이 시키는대로 갈망의 절정에로 치달아올랐다. 이쁜녀의 사랑은 풋내기 처녀애의 그런 시적인 련정보다 철학적사색을 거친 30대초의 성숙되고 분방한 정열로 옹근 정신세계를 백열화하고있었다. 이러한 사 랑은 위험천만한것이였다. 마치 다 큰 애에게 덮친 홍역과 같이 기어이 아무 흔적이나 남기고야 물러갈 그런것이였다. 억철이는 억철이대로 사회주의교육운동을 힘있게 벌려나가고있었다. 제방귀 에 놀란 노루처럼 황황해진것은 허일이였다. 그의 “소왕국”을 억철이가 깨뜨리려 하고있다. 자기 발밑에서 무너져내리는 그 모두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허일이 아 니였다. 잠간만, 그의 위인됨을 알아보자. 체대도 알맞춤 크고 이목구비도 번듯 한데다가 구변까지 좋은 40대의 사나이인데 젊어 한때는 어느 국영농장에서 권총 찬 보위간부로 무척 위세도 좋아하는 고질이 있어서 결국 어느 농촌에 쫓겨갔는 데 거기서 또 몇번 솜씨를 펴다가 겨우 출당을 면하고 여기 세외도원 같은 선녀 동에 락향거사로 묻혀살게 되였다. 범없는 골안에 슬기가 왕질한다고 이사와서 인차 당소장이 되고 대대부서기 까지 올리췄다. 권세가 있게 되자 동남풍을 빌게 되였다. 못된 버러지 장판방에 서 모로 기듯이 하고싶은 짓은 다하고도 제노라 활개짓하고 다니였다. 핑게핑게 막간에미처럼 발전대상이요 공작관계요 하면서 해반주그레한 녀자면 과부고 유부 녀고 홀락질해내는데 그에겐 외전도 많이 전해지고있다. 어느 버덕마을에 있을 때 일이란다. 사원들은 일밭으로 몰아내고 자기는 농가집부녀와 한창 희닥질하는데 마침 어리숙한 남편이 집에 들어오게 되여 경악 했을 때 도적이 매를 든다고《왜 함부로 허가없이 일터를 떠난거요? 냉큼 돌아 가오.》하고 녀자우에 누운채로 호령질했다는 기문도 있다. 또 한번은 《노루사건》이라는건데…어느 하루 얼모르고 마을에 내려왔다가 마을사람들이 떨쳐나서 투기는 바람에 급해맞은 노루란놈이 마침 열려져있는 한 과부네집 뒤문으로 뛰여들어 방문을 걷어차고 내뛰였다. 그런데 집안에서 멱따는 듯 비명이 터져나왔다. 하도 수상쩍어서 몰려가보니 실한오리 걸치지 않은 허일 이가 그 집 과부에게 엎어진채 넋을 잃고있었다…후에 어찌하여 퍼진 소문인지 그날 노루란놈이 마침 구들에서 과부를 뭉개고 있는 허일이를 타고 넘어 뛰다가 그만 골통을 뒤발로 걷어차는 바람에 추태가 드러났던것이다. 원래 허일이가 선녀동에 이사와서 첫눈독을 들인것은 분녀였다. 그런데 울타 리 든든하면 동네집 개가 얼씬하지 못한다고 분녀가 자기의 정조처럼 깨끗하고 성실한 첫사랑을 지켜 하도 매섭게 노는 바람에 지금껏 군침만 흘리며 냠냠거릴 뿐이였다. 억철이가 마을에 점을 잡자 뒤가 켱겨 쩔쩔 매던 허일은 되짜듯 말짜듯 “한”  을 품은 “미인계”를 짜냈는데 억철이와 분녀를 천방백계로 어울려놓으면 음양이 부딪칠터이니 억철이는 망신보따리만 지고 주자를 놓을것이요 꼬리잡힌 분녀가 순순히 안겨들것이라고. 그러나 허일은 오산해도 한참 오산했다. 억철이는 총망중에도 인정을 보듬을줄 아는 사나이면서도 명석한 두뇌와 자기 행위준칙을 가진 사업가였고 당원이였던것이다. 그의 도덕적관찰력은 매의 눈처럼 투철하면서도 그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독특한 감각은 허일로서는 도저 히 알수 없는 신비로운 깊이와 자유자재한 유난성도 가지고있어 그의 적수가 아니였던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공교롭게도 억철이가 공사회의에 갔다오다가 찬비를 맞아서 촉한에 걸려 눕게 되였다. 호시탐탐하던 허일이가 노루고기와 닭알꾸레미를 분녀에게 맡기며 너스레를 떨었다.     《리과장이 몸져누웠다기에 사람을 시켜 잡아온거요. 객지에 와서 고생이지… 분녀가 잘 호리해 주어야겠소. 곁을 떠나지 말고… 》     (흥, 부조도 말고 제상다리도 차지나마오.) 분년는 이렇게 속으로 코방귀를 뀌 면서도 물건은 받아두었다. 억철이가 몸을 춰세우는것도 문제였던것이다. 며칠뒤였다. 허일은 곡식자람새를 돌아보고 오는 장령감을 동구밖에서 은근히 불러세웠다.     《저, 긴히 여쭐 말이 있어서…오래 벼르던 말이긴 해도 어찌 들을지 몰라서…》     《난 그렇게 갑자르는게 질색이랑이, 할 말이 있으면 툭 털어놓고 말하시우다.》     워낙 성미가 콸콸한 장령감은 벌써 어떤 긴장감까지 가지고 재촉했다.     《하긴 해야 할 말이지만두, 내정문제여서…》     《아따 중이 자리근심하듯 좀자르긴 어서 말하시우.》     《다른게 아니라 댁에 며느리가…지금 마을에서 좋지 못한 소문이 도는데…혹시 정말 공작대와…》     허일이는 우정 서발너발 늘구어붙이면서 장령감의 기색을 훔쳐보았다.     《뭐이라구?? 어느 생벼락을 맞을 년눔들이우? 그게, 엉?!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어두 유분수지, 렬녀춘향이 같이 수절하는 내 며느리를…에익, 고현놈들…》     장령감은 뒤말은 삼키고 넌지시 지켜보는 허일을 무섭게 쏘아보면서 장죽을 홱 내저었다.     《하긴 노엽게 되였습니다. 우리 당소조에서두 연구해 보았지만…제발 그런 일이 없기만 바라지유. 분녀동문 명성도 있는 군소가정인데…》     장령감은 얼굴이 철색이 되여 부르르 떨고만 있었다.     《사실인가는 지내보면 알거지유. 드는 돌이 없이야 낯이 붉을수는 없는게구…》     《뭐, 지내보구 안지내보구 있소? 퉤, 나원, 더러워서…》     똥본오리처럼 주절대는 허일을 아랑곳없이 장령감은 힝하니 자리를 떴다.(어허, 세상두 허무한지구, 으흐흐…인젠 내 누굴 믿고 살아가누…) 가슴을 치며 넉두리하며 휘칠휘칠 걸어가는 장령감을 지켜보는 허일의 얼굴에 삵의 웃음이 넘치고있었다.     6.     청동의 기사   장령감은  그날부터 식미도 잃고 귀만 동냥을 가면서 밤잠도 멎었다. (후ㅡ유,늙  늙은게 세변부지였지…오는 비를 어이 막으며 자리를 뜨려고 우는 참새를 어찌 탓하 랴! 내가 욕심이 사나워서…)     장령감은 젊어서 한때 장사한답시고 떠돌다가 집에 들면 그리고 감창스럽게 감겨 들던 마누라가 생각되면서 며느리가 가긍하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어느 산귀신이 되 였을지도 모를 장수를 생각하면 또 분통이 터졌다.     《이눔들, 어데 두고보자. 아들없는 집이라구 없수임도 한심하구나. 뉘놈들때메 내 장수가 돌아못오는게여, 응!》     장령감은 무는 개보다 짖는 개가 더 밉다고 허일이가 그런 말을 넌지시 하던것을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또 열에 뜬 억철이의 잠꼬대에 증이 버럭 나는것도 어쩔수 없 었다. (오냐, 경주돌이라구 다 옥돌이라더냐? 허일이 같은 비단보에 개똥도 있을라니 공작대고 현간부고 허울만 벗어보일 때는 너 죽고 나 죽고 해보자!)     장령감은 며칠째 두만강가에 나앉아서 장수가 사냥에 쓰던 비수를 썩썩 갈며 공 연히 윽윽하였다. 그러다가는 또 꺼이꺼이 울었다…     어느 날 저녁, 밥상을 물리던 장령감이 며느리에게 일렀다.     《이 사람, 나 오늘 상칙난 집에 가서 밤을 새우게 될거네. 삽짝이랑 잘 닫게.》     령감은 의미있어 말하건만 분녀는 무심히 들었다. 밤이 깊어갔다. 가담가담 쿨 룩거리던 시아버지의 기침소리도 고독을 쫓는가싶더니 집안은 괴괴하기가 소름이 끼칠지경이였다. 너렁청한 정주칸 가마목에 댕그랗게 누웠노라니 오만가지 잡념이 숨 박꼭질한다. 그녀는 불현듯 억철이가 목이 마르면 어쩌나싶어지면서 한웃방 억철에게 로 들어가 보고싶은 마음이 불붙듯해졌다. 적막이 갈망을 낳았던것이다.     그녀는 꿀물을 진하게 풀어들고 퇴마루에서 머뭇거리다가 유령처럼 방에 들어섰 다. 사나이 체취가 가슴을 실없이 활랑거리게 한다. 분녀는 석유등잔에 불을 켜면서 문득 야릇한 감정이 솟구침을 느꼈다. 바로 이때 삽작문밖에 붙어섰던 그림자 하나가 마을쪽으로 들고뛰였다.     가물거리는 등잔불아래 고요히 잠든 억철이의 모습은 청동의 기사마냥 숙연해 보였다. 전선으로 떠나기 전날 밤, 다하지 못한 사랑에 지친듯 코를 골던 남편의 모습이 우렷이 재생되여 왔다. 분녀는 억철이의 반듯한 이마에 살짝 손을 얹어보았다. 열이 한결 내린것 같았다. 그는 또 억철이의 부드럽고 따스한 손우에 자기 손을 포개 여보았다. 그리다가 급기야는 자기가 환장했다는 수치감도 잊고 억철이의 손을 가슴 에 꼭 대였다.     부드럽고 민감한 젖무덤을 거쳐 짜릿하게 전해오는 이성의 전류에 온 몸이 차차 달아오르더니 학질이 온것처럼 덜덜 떨리였다. 그녀는 자석에라도 끌린듯이 사나이품 에 와락 뛰여들었다.     《…빌어요. 미칠것만 같아요. 한번만이라도 절 사랑해줘요. 네?!》     분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억철이의 얼굴에 볼을 대며 중얼거렸다. 죽은듯 혼곤히 잠들었던 억철이는 뜨끈뜨끈하고 팽팽히 헤기워져있는 분녀의 젖무덤이 가슴에 뭉클 안겨지자 소스라쳐 깨여났다. 순간, 야릇한 녀인의 체취가 허파에 스며들었다. 꿈이 아니라는것이 무섭게 확인되였다.     온 몸에 피줄이 소스라치며 일어서고 심장이 돌진을 재촉하였다. 그냥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귀뺨을 쳐서 내쫓을것인가? 그러나 그 어느것도 할수 없었다. 사선을 문턱넘듯이 나들며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그 생명의 궁극에서 표현되는 모든 욕 망의 내용도 체험한 억철이, 주어진 생활속에서 향수를 찾을줄 알았고 그 생활을 보다 의미롭게 꾸며나갈줄도 아는 다정다감한 사나이는 난생 처음 이런 곤경에 빠져 보았다.     기이하게 씌여지는 인생의 씨나리오에서 하나의 배역을 맡는가? 아니면 리성과 감정선을 교묘히 조합해 나가면서 생활의 론리를 구현해 나가는 랭철한 연출가가 될것인가? 피는 끓고 리지는 고함친다. 전사는 꿈속에서도 자기를 다스릴줄 알아야 한다고…억철이는 마구 돌진해오는 녀인의 타는 입술을 용케도 피하면서 태동하는 녀 인의 묵직한 상체를 간신히 떠받들어 올리며 일어나 앉았다. 땀이 쑥 빠졌다. 그러나 생사결단하고 품속으로, 품속으로 감돌아드는 리지를 상실한 녀인의 품에서 벗어난다 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소리없는 “육박전”이였다.     《분녀! 나도 분녀를 사랑하오. 이건 진정이요! 내 말을 먼저 듣고 그 다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려주오. 분녀, 정신 좀 챙기란말이우.》     《난 몰라요. 난 미친년이예요. 단 한번만이라도…못참겠어요. 당신 같이 훌륭한 분에게서…》     분녀는 더구나 응석부리듯이 억철이의 품에서 요동쳤다. 온 몸에 굽이굽이 감도 는 감동의 여울에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감각ㅡ그 하나만을 고집하는듯 싶었다.     《그럼 좋소!내 말을 들은 다음에도 늦지 않으니 약속하겠소? 음, 그저 이렇게 얌전하게 있으라구, 응?》     억철이는 이러한 장소에서 이러한 녀인에게 이야기가 격에 맞지 않는줄 알면서도 달리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한 전우의 이야기요. 듣고 나면 내 마음을 잘 알것이요…나는 후퇴당시 부상 을 입어 대오를 잃고 헤매다가 서울부근 산속에서 한 전우를 만났는데 역시 정찰병이 였고 나와 같은 연변내기였소. 나와 동갑이였고 성미도 비슷해서 우린 대번에 생사지 교가 되였소. 하긴 그와 나는 생김새도 비슷했지…3.8선을 넘어 어느 산등성이에서 우리는 기지맥진해 쓰러졌소. 내가 더 심했소. 그 전우는 산골짜기어귀에 외딴 집이 보이자 나에게 먹을것을 얻어준다며 혼자 산을 내려갔소. 조밥 한솥 잦힐쯤해서 갑자 기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려왔소. 나는 그 전우가 잘못 걸린줄 알고 무작정 마주 달려내려갔소. 마침 산기슭에서 우리는 만났소. “억철이!개놈들에게 걸렸소. 자, 금방 한 조밥이요. 받으라구, 그런데 빌어먹을 주인집년이 스파이였소…아차, 저놈들이 여기로 오네. 어서 뛰자구!”하고 그 전우는 사연을 대강 말해주고 나를 앞세웠소. 놈들은 총질하며 바싹 쫓아왔소. 그 전우가 나에게 말하더군, “억철이, 둘이 함께 뛰다간 다 붙잡히겠소. 저쪽으로 뛰라구! 난 이쪽 으로!산넘어 동굴에서 만나자구! 응?!” 그런데 놈들은 내가 있는 쪽으로 몰려왔소. 이때 저쪽에서 “개놈들아, 내 여기 있다!올테면 오너라!”하는 웨침소리와 함께 따발총소리가 울렸소. 그는 나를 위해 죽음과 위험을 자기쪽으로 당겨갔던거요…난 그날 밤, 이튿날 아침까지 기다렸지만 그는, 그처럼 훌륭한 사나이는 돌아 오지 않았소. 나는 눈물과 함께 그 조밥을 씹으며 북으로 향했소. 꼭 만나기를 믿으면서…》 억철이의 눈에서 뜨거운것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분녀는 꼼짝않고 듣고있었다. 《그는 고향집에 선녀처럼 고운 젊은 안해가 있다면서 늘 자랑처럼 외웠소. 생사 를 판가름하는 어려운 고비마다에서 초인간적인 힘을 내군했소. 어떻게나 승리하고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며, 자기 힘은 안해가 보내주는것이라고 했소. 전선으로 떠나올 때 공세우고 성한 몸으로 돌아온다고 꼭 기다리라구 약속했다오…》 억철이의 이야기는 끝났다. 침묵, 고요…비애가 두 심장의 고동을 갈앉히고있었 다. 그녀는 억철이의 품에서 스르르 미끄져내렸다. 포효하던 감정의 준마에서 떨어진 분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아아ㅡ》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여나갔다. 그때 방문뒤에 붙어섰던 웬 그림자도 《으으…헉ㅡ》하는 신음소리를 내였다. 분녀의 시아버지였다. 사연은 이러하였다. 장령감이 상가집에서 애꿎은 담배와 싱갱 이질 할 때 허일이가 찾아왔다. 밖에서 후망질하다가 분녀가 억철이 방으로 들어가고 불이 켜지자 《옳지!》하고 무릎을 탁 치고 장령감에게로 뛰여갔던것이다. 장령감은 사람같지 않은 허일이가 잔뜩 불어대는 소리를 반신반의하면서도 거의 로망에 가까운 격분을 안고 뛰여와서 방문뒤에서 엿듣고섰던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며느리의 말소리도 들리고 억철이의 말소리도 들리자 채수염을 떨면서 베개밑에 비수 를 생각하였다. 《잘한다! 이눔들, 이제 너부러져서 세상을 모를 때 어디 보자, 한칼에 그저 푹…》 하며 잔뜩 벼르고섰다가 그만 억철이의 이야기에 신음소리를 냈던것이다.   7.     마음속에 솟는 탑 이틑날 아침, 장령감은 손수 닭 두마리를 잡고 술까지 받아왔다. 분녀는 속내를 알길없는 시아 버지의 거동에 속이 조마조마해서 상을 챙겼다.     《이 사람, 억철이! 이리 내려오게, 이름 부른다구 허물말구, 자ㅡ 이리 다가 앉게나!》     장령감은 자기의 잔과 억철이의 잔에 술을 가득 부었다.     《그런데 웬 진수성찬을…다 같은 자식벌인데 그저 그렇게 여겨주십시오.》     평소에 그렇게 소탈하고 무랍없던 억철이였다.     《며늘아가야! 자네도 술잔을 가지고 이리 오게, 숭허물 없으니…》     분녀는 더구나 수삽해졌다. 시아버지도 시아버지려니와 억철이와 어찌 마주 앉나 싶어지며 푸주간에 끌려가는 양의 모양이 되였다.     《억철이, 먼저 그 잔 내구 식미를 돋구게나. 여간 속이 엷어졌겠나? 고생도 정말 많으이. 난 자네를 아들처럼 생각하겠네.》     억철이는 절에 간 색시격으로 시키는대로 할수밖에 없었다.     《자, 여게 한잔, 저 젊은이에게 한잔 붓게! 며느리에겐 내가 붓어줍세. 말이야 바른대루 우리 며늘아기 좋은 사람이지비…》     이렇게 말하는 장령감의 얼굴에 전에 없이 석연한 빛이 서렸다.     《자! 어서 그 잔두 들게, 난 젊은이처럼 직심이고 대바르구 후더운 사람은 처음 일세. 어쩌면 우리 장수눔과 그리 신통한지…며느리두 조금 들게. 어서!》     억철이는 술을 삼키는지 소태를 씹는지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령감은 정이 뚝뚝 흐르게 권하고있었다.     분녀는 왈칵 솟구치는 눈물과 면괴한 감을 금치 못하여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날 장령감은 해종일 문을 닫아걸고 붓을 날려 만장지서를 썼다. 그런후 손수 큼직한 봉투까지 만들고 날아갈듯한 초서체로 《××현당위원회 조직부 앞》이라고 써넣었다. 그가 무엇을 썼는지 어떻게 보냈는지 아무도 몰랐다.     며칠후, 억철이가 현으로 소환되여 가고 마을에 새 공작대가 오게 되였다. 억철 이가 떠나던 날, 장령감은 자기 집 퇴마루에 서서 마을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있는 억 철이의 뒤모습을 점도록 지켜보고있었다…     억철이는 긴재등에 올라서자 다시 한번 마을을 감명깊게 굽어보았다. 떠나올때까 지 분녀가 보이지 않는것이 못내 가슴에 걸려있는것이다. 어째서인지 가슴이 알알해 났다.     《여기서 기다렸어요. 억철동무!》     느닷없이 들리는 분녀의 애절한 목소리에 억철이는 어찌 반가운지 모르겠다.     《분녀! 여기 있었구만, 참 끝까지 앵돌아졌나 했지? 원…》     《이렇게 급히 돌아가실줄은…저를 용서해주시겠어요? 전 죄지은 나쁜 녀자예요. 동무에게…》     《분녀, 무슨 말이요, 내가 외려 죄가 많은 사람이요. 이쁜녀! 사랑의 고백은 신성한거요. 사랑이 실책으로 되는건 우리 인간의 영원한 비애일것이요. 나도 가슴이 무겁소. 한없이…》     억철이는 이불짐을 내려놓고 분녀를 불러 나란히 앉았다.     《떠나기전에 몇가지 알리려고 했는데…내가 이미 해당부문과 조선인민군총부에 편지를 띄웠소. 내가 산 증인이니까 문제가 어떻게든 락실될거요. 》     분녀는 말이 없었다. 무엇을 말한단 말인가?     《분녀! 행복은 분녀와 같은 녀인들에게 속해야 하오. 시아버지 만년의 생활은 내가 조직적으로 배치하겠소. 불행과 고통속에 주저앉아 통곡만 하는건 현실적이 못되니까. 분녀는 행복을 키워가야 하오. 꼭 행복이 있을거요…》     억철이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마음속에 씌여진 말은 더욱 많았다.     《자, 여기서 이만 작별합시다. 사노라면 우리 웃으며 만날 때가 있겠지? 서로 마주보는 청산은 만날 날이 없지만 사람은 인연이 있으면 만난다지 않소? 하하하…분녀! 부디 기쁘게 웃으며 살아가기를 바라오!》     억철이는 분녀의 손을 오래오래 뜨겁게 잡아주었다. 분녀는 억철이가 돌아서는 찰나에 령롱한 빛을 뿌리는 눈물이 어린것을 보았다.     《훌륭하신분! 부디 건강장수하세요!…》     분녀는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였다. 억철이는 손 한번 힘있게 저어보이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분녀는 억철이가 긴재등을 다 넘어갈때까지 그린듯  그 자리에 지켜섰다…     다시 올 기약이 없이 억철이는 갔다. 그런 이 시각, 이쁜녀의 마음속에 하나의 거룩한 탑이 높이 높이 솟고있었다.     시골의 가인, 이쁜녀는 그 영원의 탑을 부여안고 자기의 청춘의 눈물을 휘뿌렸다.     그 눈물은 깨끗한 심장의 성스러운 감동에서 우러나온 눈물이였으며 방우방울 땅우에 떨어져도 다시금 하늘로 솟아오를 눈물이였다…                                                1990 녀 3 월
4    바람의 귀속 댓글:  조회:3210  추천:33  2008-01-29
                                          바람의 귀속   시골 풍경               시골에는 봄뜻이 여전하다. 산에는 진달래꽃, 시내가 버들 숲에 황금꾀꼬리… 깊은 숲에 철늦은 뻐꾸기소리…엄혹한 현실은 그 어떤 아름다운 동화로도 대체할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산향은 어디라없이 찌들려있다. 거창하고 비상한 사변들이 거쳐간 골마을들은 소외된 넋들뿐이다.한때 세외도원이라던 마래곡(马来谷)에도 이른바 개방의 수레바퀴가 굴러들어와 옛질서와 인습을 여지없이 짓뭉개버렸다.     …마을이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덕이밭에서 콩씨를 박아나 가던 정혜는 호미와 콩씨주머니를 팽개치고 밭머리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흥건한 땀을 씻고나니 눈물이 얼굴을 적신다. 흐릿한 눈길속에 손채양하고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정혜는 슬며시 머리를 돌려 밭이랑을 헤다가 팔베개하고 누웠다.     넓고 푸른 하늘에서 흰구름산이 꽃궁궐을 짓다가 무너져 내리고 다시 들말같은 모양으로 변하여 토끼모양의 작은 구름덩이를 홀짝 삼켜버리고는 유유히 령을 넘어간다. 정혜의 머리속에는 문득 인간의 생활도 저 구름처럼 허황하고 변화다단하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아이, 이대로 영영 잠들어버렸으면…) 아닌게 아니라 눈까풀이 사르르 감겨진다. 온갖 환영들이 떠오른다.        …급급히 잡아탄 택시에서 돌아보니 퍼그나 가까이 쫓아오고있는 오토바이우에 험상궂은 얼굴,《어마나, 저 새끼들이… 아저씨, 빨리!…》 애원에 찬 재촉… 골목에 꺾어들자 굴러떨 어지듯이 차에서 내려 무작정 뛰여든 파마점, 황겁한 주인아줌마의 얼굴. 《아줌마 빨리 절 좀 숨겨줘요.》 《아니?! 웬 일이니? 응, 오냐, 어서 저 옷장안에 들어가라.》 옷장문에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와 거의 같이 문이 벌컥 열렸다. 《여기 어떤 녀자가 금방 들어왔지?》 목살갗을 떨게 하는 경칠의 목소리였다. 《녀자라니, 보면 모르겠소?》 《제길, 막다른 골목에서 숨어들 곳이 이집밖에 없어. 괜히 경치지 말구 내놓으시오.》 막되여먹은 삽살개다. 《야, 딸보, 저 옷장을 열어봐!》 경칠이 명령에 딸보가 다가오는 거친 숨소리. 《자물쇠 여시오.》 《이 사람들이, 국민당세상인가. 백주에 남의 영업집에 뛰여들어 무슨 행패요?》 뒤미처 파마점아줌마가 전화거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시오. 신흥파출소 형사과입니까? 예 나 유림이 엄만데 그 앨 좀…》 《아니 죽고싶은가. 누굴 어쩔테야.》 이웃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왜 무슨 일이우? 파출소를 부르며.》 《제길 시끄럽군. 야 저기 나가 기다리자. 제깟것이 안나오구 배기는가 보자. 흥!》 한풀 기가 꺾인 목소리들이 문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바들바들 떨고있는 정혜를 안방에 밀어넣은 아줌마도 겁에 질려있다. 이튿날 새벽, 파마점아줌마가 정혜를 택시에 앉혀주고 차비까지 들이밀었다. 《집에 들아가. 다신 그런델 들어가지 말구. 에그 세상두 별랗지 원…》 시내를 벗어나서 모아산길을 올라서서야 정혜는 한숨을《호—》 내쉬였다. 정혜는 지난해 연길에 들어갔다가 이런 봉변을 당했었다. 어머니가 장기간 몸져눕는 바람에 대학꿈이 깨여져 정혜는 집에 돌아와 한해 농사를 지었다. 처녀라고 생긴 계집애들은 다 날아가버리고 할일없이 휘파람만 불며 어슬렁거리는 로총각들의 눈총에 몸살이 날지경이였다. 이 산골에 더 있어야 할 리유가 없었다. 돈벌어 더 공부하고싶었다. 정안되면 연길 어디서 벼슬한다는 낯짝 한번 못본 아버지와 해내려고도 작심했다. 엄마와는 비밀이였다. 그래서 작년 겨울이 잡아들자 연길로 나갔던것이다 . 정혜는 헛다리 짚었다. 아버지란 사람은 벼슬자리를 내놓고 하해바람에 종적을 감추었던것이다. 여기저기 식당으로 굴러다니다가 돈을 많이 준다는《밤불고기집》에 들어갔다. 알고보니 밤마다 오입쟁이들을 끌어들이는 매음굴이였다. 그날밤, 주인의《새끼》들에게 등을  밀려 뒤고방에 들어가니 점잖아보이는 한 중년사내가 술상에 앉아있었다. 사내는 100원짜리 두장을 꺼내 손에 쥐여주며 구슬렸다. 정혜가 딱 거절해버리자 억지공사는 않는다며 내보내주었다. 그런데 《새끼》들이 지키고 섰다가 기어이 《장사》를 하란다. 몸부림치는 정혜에게 주먹벼락이 내려졌다. 《쌍! 촌닭이 젠체하는구나. 이런델 들어오긴 왜 들어왔니? 썩 들어가지 못하겠니?》 《아니, 이 사람들이?! 무슨 깡패행세요. 남이 싫다는데.》 중년사내가 마침 나섰기에 망정이지 정혜는 곤죽이 될번 하였다. 《여보시오. 혀 깨물소리 말라구요. 기껏 위해주니까 흥, 별꼴 다 보겠네. 제밀.》 개잡은 포수처럼 덤벼치는 딸보를 거들떠보지 않고 사내가 주인을 소리쳐 부른다. 《여, 석수 이리와!》 《예. 한국장님, 무슨…》 《시끄러워. 괜히 왔어. 해두… 좀 문명하게 하라구. 공연히 소문 더럽게 놓지말구. 정말 도깨비굴이라더니.》 《저 계집애 써비스 소홀했던가요?》 《그게 아니야. 농촌에서 왔다구 저 아가씨한테 망탕 굴지 말라구, 언제 또 올테니 명심해.》 《예. 예. 너들 왜 서뿔리 굴었어?》 석수가 《새끼》들에게 눈을 흘겼다. 이튿날 정혜는《새끼》들이 낮잠에 곯아떨어진 틈을 타서 줄행랑을 놓았다. 그 파마점아줌마가 하도 고마워 양어머니로 삼았다. 그때 얼마나 혼쌀이 났던지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 악몽이 갈마들군 했다. 《싫어요. 싫어…》 낮꿈속에서도 팔을 허우적거리는 정혜를 한식경이나 지켜보고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열기띤 눈이 반쯤 열려있는 정혜의 무둑한 가슴을 쓸고있었다. 이윽고 청년은 얼굴을 슬며시 돌리고 호미와 콩자루를 집어들었다. 좀만 더 서있는다면 무슨 일을 저지르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기계적으로 호미날을 박으며 콩씨를 두는 그의 헝클어진 마음밭에 추억의 이랑들이 번져갔다. 정혜는 워낙 그의 약혼녀와 다름없었다. 두집 부모들 사이에도 무언의 약속이 맺어져있었다. 정혜에게 있어서는 그가 미더운 오빠처럼 든든한 마음의 기둥이였고 그에게 있어서는 정혜가 옹근 삶의 꿈이였다. 소꿉동무이자 대학까지 함께 가서 행복을 꽃피우려던 사치스러운 랑만이 지금은 정혜의 배신으로 깨여졌지만 그녀 없이는 못살것같은 이 세상이였다. 정혜가 이렇다 할 리유도 없이 뿌리깊은 시골의 사랑을 찢어버리고 유혹의 세계에로 날아가버리자 그는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무지막지한 청년이였다면 정혜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것이다. 고중생이고 인정사정 아는 그인지라 시대의 조류에 몸맡기는 정혜를 잡아둘수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방금전에 눈뿌리가 아찔하도록 아름다운,  잠든 천사에게 본능의 발설을 기도해보기도 했지만 그는 자기를 이겨내고야 말았다. 점유로 곧 끝나버리는 사랑을 그는 원치 않았다. 시골의 사랑을 도회지사람들은 우습게 알고있지만 그에게도 인격이 있었고 사내의 기풍이 헌헌했다. (하긴 정혜는 농촌아낙네가 되기엔 너무 아까운 녀자야…) 그는 늘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원래 정혜때문에 대학도 포기했던것이다. 하건만 야속한 정혜는 날아가버렸다. 정혜가 없는 마을은 하나의 페허였다. 하여 대동골방목장에 들어가《도》를 닦고 부엉이 우는 한밤에 피리불며 토한 한숨인들 얼마였던가. 허약한 아버지만 아니래도 그는 산해관을 넘어 세상을 두루 편답했을것이다. 정혜가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서 몸은 왔지만 마음은 시내에 두고왔다는것을 슬프게 읽어냈다. 억지로는 도저히 이루지 못할 사랑이였다. …악몽에서 깨여난 정혜의 초점 잃은 눈에 콩을 박고있는 진국이의 커다란 허우대가 안겨왔다. 가까이 다가간 정혜는 난삽한 마음을 보듬으며 말을 걸었다. 《어쩜 또… 밭갈이 해준것만두 고마운데… 아이 내가 웬 낮잠을 깜박…》 《그래 퍽 고달팠던 모양이더라. 내가 끝내줄게 내려가봐. 늬 엄마에게 약을 달여드릴 때가 됐지 않니?》 《아니 내 할께, 미안해서…》 그러고 섰는 정혜를 진국이는 차디차게 일별했다. 시내에 들어가기전까지만 해도 고중다닐 때처럼 터놓고 반말하지 않았던가. 지금 와서 공연히 거리를 두고 말하는게 아니꼬왔다. 정혜가 사춘기때 진국에게 소녀의 야릇한 순정을 얹어본것도 사실이였고 고중을 다닐 때 얼굴이 하얀 남자애들의 지꿎은 추구를 물리치고 억세고 듬직한 진국이만을 마음에 둔것도 사실이였다. 그런데 정혜의 첫사랑의 고운 꿈은 호미날에 찍힌 풀처럼 시들해졌다. 진국이를 떠나있는 동안 늘 죄지은듯한 마음으로 용서를 빌었다. 우악진 그 주먹으로 피터지게 박고 강다짐을 할 진국이가 아니였기에 더구나 그랬다. 수걱수걱 호미질만 하는 진국 이의 떡판같은 등허리를 굽어보며 정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진국아, 진국아! 우린 왜 이 시골에 태줄을 묻었니?  네가 대학에만 갔더래도… 아니야. 그땐 또 내가 울거야. 아무래 도 우린 연분이 없는거야, 용서해.) 진국이가 기어이 호미를 넘겨주지 않는바람에 정혜는 먼저 산길을 내리였다.   사랑의 뿌리는 쓰다   《얘, 너 방목장에서 오는 길이냐? 아까 볼라니까 정혜가 혼자 그 넓은 밭에서 콩을 박더구나, 그 불쌍한것이…》 《예, 근심마세요. 싹 끝내주고 오는 길입니다.》 《음, 거 잘했구나. 인심이 천심이네라. 그래 걔가 영 안간다더냐? 늬들 일은 그렇게 흐지부지해서 쓰겠니? 말이라두 떼놓아야 할텐데.》 《참 당신두, 정혜가 진국이때메 돌아온줄 아나베. 무슨 딴 사정이 있을거래유. 지금 농촌처녀애들이 풀밭에 머리 틀어박자구한답데.》 《이건 되는 호박에 송곳질 아녀? 저리 비키라구. 사내들 일에 공연히.》 《엄마말이 맞습니다.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몰라요. 이 산골구석에선 홀애비 늙어죽은 귀신밖에 더 될게 있나유. 아버지, 저두 조만간에 세상구경 떠날가 합니다. 에익, 워낙 다시 시험쳐야 했던건데… 때되면 소를 몇마리 팔아주시오.》 《그래 애초에 대학못간건 네탓이구, 널 이 산골에 잡아두려구 한건 내 오산이였다. 이제 네가 나가서 무슨 일을 할수 있겠니?》 《다른 애들은 다 청도요, 위해요 하면서 뛰는데 내라구 누구보담 짝질줄 압니까? 아버지가 고집쓰기에 주저앉았을뿐인데요.》 《그래 알았다. 너가 이 골짜기에서 늙는걸 보지 않겠다. 후유…》 덕준이는 퇴마루에 걸터앉아 애꿎은 담배를 태우며 밭고랑처럼 홈이 패인 정혜네 지붕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추억이 얼기설기 엉켜돌았다. 진국이와 정혜의 가연은 끊어졌지만 원래 사랑의 쓴 뿌리는 덕준이의 가슴 깊은 곳에 박혀있었다. 시골의 숙명적인 사랑이라 할지, 덕준이도 한창때 정혜의 에미—혜월이를 뜨겁게 사랑했었다. 허나 그 사랑의 뿌리는 가지도 뻗지 못하고 삭아버렸다. 덕준이 가슴에 안길듯싶던 혜월이가 그때 집체호로 내려왔던 멀쑥하게 생긴 한정군의 여윈 가슴에 안겨든것이다. 참하고 곱게 생긴 혜월이여서 정군이도 첫눈에 반해버렸던것이다. 한창 비판투쟁받던 국장아버지때문에 늘 기가 죽어다니던 정군에게 있어서 혜월이의 품은 사랑의 오아시스였다. 다른 애들이 륙속 시내로 올라갈 때 정군이는 완전히 실망해버리고 이 산골에서 혜월이와 아들딸 줄느런히 낳고 한평생 살리라 마음먹었다. 그들이 한창 초련의 단꿈에 빠져있을 때 덕준이는 뒤집의 순녀에게 장가들어버렸다. 진국이가 나던해 정군이도 새살림을 차렸다. 이듬해 딸을 낳자 두사람의 사랑의 결실이라고 이름을 정혜라고 지었다. 그들은 덕준이가 시샘할만큼 아기자기하게 살았다. 그러나 덕준이는 정군이가 평생 이 마래곡의 귀신이 될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언녕 보아냈다. 다만 혜월이만 그점을 보아내지 못하였다. 아니나다를가 정혜가 돐을 잡던 그해 정군의 아버지가 해방받고 다시 국장이 되였다. 정군이도 대학추천 명단에 들었다. 그런데 결혼한것이 걸렸다. 정군의 장래를 위해 혜월은 협의리혼에 동의하였다. 정군이는 마래곡을 떠났다. 대학을 마치고 곧 혜월이를 데려간다고 눈물로 맹세하던 정군이는 시내에서 직장다니는 예쁜 처녀와 결혼하였다. 혜월이가 정혜를 업고가서 죽는다산다해도 워낙 독종이였던 한정군은 돌아서지 않았다. 혜월이의 고달픈 인생행로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두집 부모사이에 가슴 저린 사연이 있었건만 애들만은 잘도 어울려 자랐다. 혜월이 처녀때를 련상시키는 정혜를 볼 때마다 덕준이는 아버지같은 마음으로 귀여워했다. 이루지 못한 자기의 첫사랑의 슬픈 여운을 아들에게 얹어보려는 욕심도 굳어졌다. 자책감에서였던지 아니면 그동안 덕준이의 말없는 도움에 대한 감사의 정때문인지 혜월이도 그것을 은근히 기뻐했다. 그러나 세월은 또 한번 덕준이를 우롱했다. 가난때문에 혜월이를 잃었었지만 가난때문에 또 정혜까지 잃게 하고싶진 않았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살림을 윤택하게 꾸렸다. 첫호로 덩실한 벽돌기와집도 지어놓았고 신용사에 저금액도 부쩍 늘이였다. 그러나 진국의 보금자리에 정혜는 깃들려하지 않았다. 덕준이가 쓰디쓴 사랑의 뿌리를 어루더듬고있을 때 진국이도 밤이 깊도록 달빛 부서지는 두만강가에서 간장을 후벼대는 피리를 입술이 부르트도록 불고 또 불었다. 개혁바람은 이 산골사람들을 배부르게 먹고 살게 하였다. 그대신 처녀들을 싹 쓸어가버렸다. 피리소리는 열려진 정혜네 창문으로 지꿎게 새여들었다. 혜월이는 그 피리소리에 귀를 강구며 남모를 한숨을 지었다. 《엄마, 정말 아버지사진 한장도 없나요? 꼭 찾아내겠어요.》 《그따위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몇번이나 타일렀니? 사진같은 소릴 다 하구있구나. 태워버린지 석삼년이다.》 《엄마, 리해해요. 허지만 잎은 뿌리에 떨어진다지 않아요? 암튼 친아버지가 아닙니까?》 《에구, 언제 껍쩍 죽을란지… 네나 마땅한 배필을 뭇는걸 보구 죽어야 하는데…》 《엄만 왜 자꾸 그런 불길한 말만 하나요. 이제 제가 아들맞잡이로 엄말 복누리게 할테야.》 《이것아, 옛말같은 소리면 듣기나 좋지, 진국이같은 애나 사위 삼으면 팔자가 펴일지. 에그, 그 물건짝은 어디 가서 급살이나 맞지…》 혜월이의 마음에 배반의 쓰라림은 잔인한 복수의 칼날이 되여 늘 곤두서있었다. 특히 경제난으로 고중을 중도이페한 딸을 볼 때마다 눈에 불이 일었다. 정군이의 우롱을 겪은후 청상 과부로 늙어가는 혜월이는 성미가 까다로워졌고 그만큼 정혜에 대한 감시의 가시도 성해졌다. 헛웃음 한번 흘려도 큰일 날 일이다. 그러나 진국에게만은 각별했다. 그리고 늘 하는 말이 나귀가 나귀를 긁어준다는 속담이다. 《엄마, 나 암만해도 다시 시내에 들어가 출로를 찾아야 겠어요.》 《시내에서 네 출로를 열어놓구 있다더냐? 애두 너 정말 진국이와 그만두었니? 이 세상에 믿음직한건 그래도 박우물을 마시고 사는 골사람들이니라.》 딴청을 부리는 엄마에게 정혜는 신경이 탈렸다. 《엄마, 엄마속을 제가 모르는줄 아나요. 덕준아저씨에게 진 감정빚을 저더러 갚으라나요? 엄마두 그에게 시집갔더면 진국이가 아들이 됐을런지 아나요.》 《이년아,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니같은 촌계집애들이 시내에 들어간들 뾰족한 수가 있을듯싶으냐? 명앨 봐라, 기껏해 몸팔고 살지.》 《엄만 절 믿어요. 이제 보란듯 잘되지 않나봐요. 그때 엄말 시내로 모셔갈게 응.》 《야야, 바람 잦은데 흔들리지 않을 가지가 있더냐? 유리 그릇과 녀자는 나돌면 깨지는 법이여.》 《그럼 난 어째요? 흑—》 《에그 나두 모르겠다. 다 잘난 네 애비탓이지 뭐냐?》 혜월이는 구들장이 꺼지도록 한숨을 톺으며 돌아누웠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딸을 산골에 잡아두자니 자기처럼 될것이고 다른 집 계집애들처럼 굴레벗은 말을 만들자니 겁두 났다. 이리저리 생각해도 진국이가 미덥지만 딸년의 마음이 변해있다. 덕준이네가 살림이 오목하니 정혜가 들어가면 근심걱정없이 살것은 뻔한데 시대는 또 다르게 유혹한다. 이래저래 정군이가 이갈리게 미웠다. 딸년의 말이 옳기도 하다. 설음많은 과부살림 20여년, 덕준에게서 음으로 양으로 얼마나 많은 신세를 졌던가. 감정빚도 없는게 아니다. 때론 가만가만 가슴을 끓여도 보았다. 허나 이제는 고마움뿐이다. 정혜는 때이르게 마르기 시작한 엄마의 앙상한 등에 얼굴을 대고 소리없이 눈물을 삼켰다. 《엄마, 정혜가 심청이 되여줄게요…》   인격은 어둠속에 있었다   모든것이 흘러간다. 쏟아져내리는 별무리도, 흐릿한 달빛도 강가에 거꾸로 뛰여든 백바위도 물결따라 흘러만 간다. 산중턱 어느 곳에서 백년고독을 울고있는 부엉이울음소리도 바람따라 흘러간다. 진국이는 또 담배를 붙여물었다. 담배에 암을 초래하는 물질이 백가지가 있다해도 피워야만 하는 진국이다. 입안이 소태같이 쓰겁다. 굴뚝처럼 내뿜는 담배연기속에 다하지 못하는 사랑의 아픔이 재가 되여 날린다. 자갈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오자 진국이는 담배불을 껐다.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첫사랑에 달아오른 입술을 정혜의 말랑말랑한 입에 어줍게 대일 때처럼 격정과 도취속에 뛰던 그 심정은 아니였다.     《에익 망할것!》 진국이는 제손을 비틀었다. 《어머, 벌써 나왔네요. 왜 오늘은 피리를 불지 않나요?》 《내 피리소리 들어줄 사람은 이미 죽었다구.》 진국이의 부르튼 대답에 정혜는 가슴이 꿈틀거렸다. 침묵, 가만히 삼키는 한숨소리, 기슭을 치며 지졸지졸 굴러가는 물소리뿐, 진국이의 가슴이 거세게 부푼다. 어떤 내심의 발작에 미칠것 같았다. 《왜 왔어? 널 저 두만강에 처넣으면 어쩔테냐?》 《미안해. 미안하단 말 한마디로 넘겨버릴 일이 아닌줄 알아. 각오하고 왔어. 거기 싫어서가 아니야. 난 이 산골이 싫어. 이 어둠과 적막과 부엉이 울음소리도 싫어졌어. 우리 처녀애들이 다 갖게된 시대병일지 몰라. 내가 나쁜 녀자인줄 알구있어.》 《다 말했니?》 《…》 달이 구름속에 숨어버렸다. 이 한적한 강가에서 이제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겁나서 지레 숨어버리는건가. 어둠속에서 눈길과 눈길이 묻고 회피하고 애원하고 거부하고있었다. 그속에 얼마나 많은 낱말과 헝클어진 문법이 포함되여있는가는 그들만이 알노릇이다. 《오늘 많은것 각오하고 나왔어. 두들겨 맞을것두, 욕을 먹을것두, 그리구…그렇게라두 빚을 갚구싶어. 때려요. 분을 풀어요. 그리구 날 해방해줘. 그래야 내 마음도 평형을 찾을것 같아.》 정혜가 이렇게까지 나올줄 몰랐다. 진국이는 억이막혔다. 《뭐? 해방?! 하하하. 내 언제 너를 속박했니?》 《…》 《에익, 모두 콱 잘살아봐라. 망할것. 시내놈에겐 돈푼이나 받고 떡호박을 주물리우듯해도 좋아하면서 왜 한우물 마시고 자란 고향사내들에겐 그리두 린색한거니? 원통하다, 원통해!…》 《사랑이 어디 동정의 닭알에서 깨여나오는 병아리니? 처녀들을 나무랄것두 없어. 우리 다투어봤대야 해결될것은 없잖아?… 이제 돈을 벌면 신세두 꼭 갚을게, 엄마두 말했어.》 《갚는다구? 사랑을 값매길수 있어? 냉큼 사라져, 보기두 싫다.》 진국이의 눈에서 불이 뚝뚝 흘렀다. 주먹에서 으드득 소리가 났다. 《응, 죽여봐, 난 각오했으니까. 날 차지해봐. 이렇게라두 너의 용서를 받구 가볍게 떠나구싶어. 어서요. 그러면 원한도 풀릴게 아니야?》 바투 디미는 가시나의 높은 가슴이 가슴에 닿자 진국이는 아찔해났다. 정혜가 이렇게 모질게 비틀어져있을줄은 생각지 못했다. 《뭐라구? 날 어떻게 보는거야? 네가 언제 이렇게 야하게 변했니?》 《흐흑… 그럼 난 어쩌라구? 내가 처녀로서 이런 말까지 할 때 내 마음이 어떤지 몰라?》 정혜는 그냥 물러서지 않는다. 진국이의 푸들치는 팔이 정혜의 나긋한 허리를 뒤로 꺾었다. 이제 각을 뜯든 육장을 만들든 마음대로 하라는듯 탄성을 잃은 정혜의 몸이 풀밭에 축 늘어졌다. 가슴에 커다란 무덤이 불쑥 솟는다. 《가져요. 이 한번으로 모든것 깨끗이 청산해!》 그녀는 지금 자기가 무척 황당한 짓을 기다린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일만 잔나비가 그네를 뛰였다. 때아닌 서북풍이 불어치며 꽃잎과 먼지가 흩날린다. 이제 뜻하지 않게 처녀의 첫꽃이 이지러지고 망가져버릴것이다. 진국이의 각일각 거칠어지는 숨결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다. 언젠가는 그렇게 고이 지켜온 처녀를 이 남자에게 활짝 열어주고 사랑의 단꿀 마음껏 쏟아주며 오손도손 재미있게 살리라 수줍게 꿈꾸었던 정혜이기도 했다. 정혜의 꼭 감겨진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의 의미를 진국이는 피부로 느껴 알고있다. 그 눈물은 사랑에 겨워 흘러나오는 감정의 장식품도, 사랑의 씨앗을 움틔우려는 마음의 단비도 아니다. 그것은 여러가지 심기불편에서 오는 열물이였다. 불타는 정염에서가 아니라 지어먹은 마음을 취하는 자세다. 이러한 녀자의 몸에서 구경 얼마만한 환락과 신비를 맛볼수 있을것인가? 이밤, 손만 뻗치면 모든것을 내맡긴 녀자의 육체에서 주린 숫총각의 화산같은 욕정을 분출시킬수 있다. 무서운 불길이 발바닥에서부터 머리우까지 치솟는것도 사실이다. 젖빛안개속에 우렷이 솟는 한왕산처럼 신비하고 숭엄해보이던 그 젖무덤도, 비밀스러운 처녀림도 지척에 있다. 신체의 어느 부위가 뜨거워난다. 정혜의 입술우에 빨간 피방울이 떨어졌다.《아아! 아니다. 이것은 그렇게 바라던 사랑의 절경이 아니다. 이는 강간과 다를바없는 너절한 짓이다. 생명으로 사랑했던 정혜와 자기 자신에 대한 모독—그것이다.》 진국이의 입술에서 더 큰 피방울이 떨어졌다. 그렇게 한식경 미동도 않고있던 진국이는 조금은 세괃게, 그러면서도 부드러움 넘치게 정혜를 안아일으겼다. 《정혜야, 고맙다. 집에 돌아가. 얼른. 내 야성이 다시 광란하기전에. 다신 내앞에 나타나지마. 그땐 죽여치울거야…》 말은 흐느낌속에 삼켜졌다. 정혜는 무서운 그 순간이 이렇게 슴슴한 결과를 가져온데 대해 놀랐다.(아, 진국아, 진국아. 너는 진짜 바보스런 사내구나, 잊지 않을게…) 정혜는 천천히 자리를 떴다. 길옆에 사시나무의 여린잎이 바르르 떨고있다. 저 멀리 높이 솟은 한왕산이 달빛속에 묵묵히 천년한을 새기고있다. 미련때문에 뒤돌아선 리별의 이 순간, 진국이의 눈물고인 커다란 눈에 안겨드는것은 곡선미가 뚜렷한 정혜의 뒤모습뿐이다. 유치원때의 죽마고우, 10리 고개길을 넘어다니던 향소학교, 중학교 때의 다정하기도 했던 그림자, 고중시절, 성숙이 가져다준 점직한 그속에서 동경의 무지개를 서로의 가슴에 박던 그때에도 한번 흐트러질세라 아끼던 녀자, 참으로 정혜는 진국이의 마음의 뒤뜨락에 오랜 세월을 두고 뿌리내린 생명의 꽃나무였다. 그 꽃나무에 사랑의 단열매가 주렁질줄 알았던 그날이 이렇게 뼈아픈 추억으로만 굳어지게 되다니 통분하였다. 《매정한 정혜야, 무엇때문이냐? 무엇때문이냐? 하늘아, 산아, 두만강아 말해주렴.》   뒤골목 설음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북대촌골목길에 비틀거리는 두그림자, 서로 끌고 부축하며 힘겹게 움직이고있다. 《얘, 너 이렇게 흙이 되게 마실건 뭐니?》 《차라리 취해서 죽었으면 좋겠다. 오늘 류치장에서 풀려나 왔으니 맘껏 축하해야지. 개새끼같은것들.》 애릿한 녀자들의 목소리건만 술내가 확확 풍겼다. 《얘, 저기 어떤게 아까부터 따라온다. 무서워. 빨리 걸어라.》 《흥 무섭긴, 기껏해서 암내 맡은 덜렁수캐겠지. 난 겁나지 않아. 삽살개구 미친개구 황둥개구 재래종이구 다 홀려봤어. 별게 아니야. 훌 주고나면 한푼값도 안가는게야. 흘레하는 수캐들은 짖기는 해도 물어죽이진 않아.》 《야 듣기싫다. 낯도 뜨겁지 않니?》 두그림자는 마침내 어떤 낮다란 사랑채로 들어갔다. 불이 켜졌다. 《아이 더워.》 랭수를 벌컥벌컥 들이킨 명애는 알몸인채로 이불우에 네 활개를 뻗고 누웠다. 《아이그 망칙해.》 《야야, 이게 진짜 인간의 모습인걸. 엄마가 준 자연미구. 사내새끼들이 게침을 흘리게하는 내 밑천이구…》 꺼이꺼이 울던 명애는 잠들어버렸다. 명애에게 요를 가리워 주던 정혜는 명애의 라신에 눈이 굳어져버렸다. 두번째로 류치장 맛을 보름이나 보고 3천원을 벌금해서야 놓여나온 명애의 멍든 얼굴은 초췌하였다. 그러나 몸뚱아리는 같은 녀자로서도 탐낼만큼 성감적이다. 말간 우유빛을 발산하고 있는 고운 살결, 부풀어야 할곳은 보기 좋게 부풀고 패여들곳은 적당히 패여있다. 때이르게 시들해지고 뜸자리같은것들이 아프게 눈을 찌르는 젖무덤, 언젠가는 귀여운 아가에게 미소와 함께 물려주어야 할 꽃망울같은 젖꼭지 하나가 망가져있었다. 어떤 악착한 놈팽이가 백원 한장에 담배불로 지져놓는 지랄병을 하다가 광기가 치밀었던지 개처럼 젖꼭지를 물어뗐던것이다. 그래도 그 돈을 받아챙겼다는 명애가 도무지 리해되지 않는다. 명애의 가슴우에서 롱탕치며 킬킬대는 징글맞은 낯짝들이 환영처럼 스쳐지났다. 류치장에 갇힌 명애를 모르는체하고 으르딱딱거리더라는 경복의 중년사내며 무슨 과장이요 처장이요 하는 얼간이 쾌락주의자들, 낮이면 언제 그랬냐듯이 점잖을 빼며 다니고 텔레비죤화면에 나앉아 빈소리 탕탕 쳐대는 위군자나으리들… 정혜는 제풀에 왈칵 메스꺼움이 치밀었다. 명애는 그것을 일종의 보복이라고 말한다. 돈도 빨아내고 권세자들과 침대우의 평등을 누린단다. 그저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이다. 국고에서 후무려낸 돈이든 사기쳐서 번돈이든 관계할게 없다. 수컷과 암컷만인 뒤골목의 흘레에서 유일하게 진실로 남는건 돈이다. 피에 얼룩지고 땀에 더러워진 그 돈을 위해 제육신을 만신창이 되게 학대하는 가증하고 불쌍한 자기들이란다. 이제 돈을 벌면 집사놓고 정든 남편도 얻어 깨끗이 살겠단다. 녀자의 수치와 원한과 증오도 있지만 방법이 없다. 누가 가슴아프게 생각해주는가. 동물속에서는 동물로 뒹구는게 마음편하단다. 이 시내판엔 촌녀자애들을 그저 비게덩이로 안다. 아무 재간이 없으면 이 노릇을 하는게 그래도 수지가 맞는다. 어떤 땐 못된 버러지같은 새끼들이 녀자가 곯아떨어진 틈을 타서 제가 쥐여주었던 돈마저 톡톡 털어가지고 꺼져버린다. 가슴이 터질노릇이다. 아무튼 한번 내준뒤에는 별로 값가지도 않는 케케묵은 정조관념을 가지고는 이 살판치는 세상에 살기 바쁘다. 누구들의 입버릇마따나 관건은 관념을 갱신하고 사상을 크게 해방하는것이다. 꽁꽁 지켜온것들을 어느 땅벌레에게 바쳐봤대야 장래성 없는 새끼나 생기고 풀밭의 귀신이나 되고… 이것이 명애가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정혜에게 불어넣은 살아가는 술법이였다. 정혜는 정혜대로 《대세계나이트클럽》에 춤아가씨로 다니면서 알게 되고 제법 친해진 점잖은 중년사내에게 열중하고있었다. 그 사내로 말하면 우연적이였겠지만 정혜에게는 숙명같기도 한 만남이였다. 사흘이 멀다하게 찾아왔고 올 때마다 꼭꼭 정혜를 점찍는 그 남자는 한창 중년사내의 풍채를 내고있었다. 멋대가리없이 우쭐대는 코흘리개들보다 거동이 우아했고 팁도 잘 주고 얘기도 폭폭 엎어지도록 운치있고 유모아적이다. 요즈음 정혜는 사내의 속을 뽑아내고있는중이다. 정말 확신이 서면 일생을 기탁할 작정이다. 이 남자 저 남자의 어지러운 품에서 유격전을 하기보다 그쪽이 퍽 안전도가 높다고 단정했던것이다. 이제 그 남자가 요구해나서면 모든것을 내여줄 마음준비도 되여있다. 어느날, 사내는 정혜를 싣고 시골《오락성》으로 갔다. 취할만큼 맥주도 마셨는지라 그녀는 어떻게 알몸이 되여 침대에 누웠는지 몰랐다. 자기의 라신도 숨기고싶지 않았다. 조금 팽팽해진 긴장도 사내의 능란한 애무에 녹초가 되여졌다. 마침내 그녀의 신음소리에 박자나 맞추듯 든든한 쇠침대가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늘 도고해 다니던 돈많은 중년사내와 평등이 이루어지고있다. 탁상등이 켜졌다. 《이거 정말 기적인걸. 너 정말 동정녀였구나!》 사내는 다시 정혜를 삼켜버릴듯 끌어안는다. 명애를 경멸했던 그 자신이 오히려 열에 달뜨는것이 이상하다. 한없이 부드러운 진공과 압박속에 무겁게 가라앉는듯도 하고 몽롱한 구름에 실려가듯 동동 뜨는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게 치사하고 힘들어보이던 일이 이리도 쉽게 이루어지는것이 놀라울뿐이다.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진행되고있는 일을 두고 왜 죽는다 산다했던지 모르겠다. 그토록 복잡한 형식과 구실을 만들어 가지고 괜히 성스러운체하는 사람들이 우습지 않은가. 부부간에 하는 그짓도 이와 다를바가 없으련만 사람들은 왜 매음이요 음란이요 하면서 타매하는걸가. 그들은 밀월을 보내는 진짜부부처럼 날이 새가는줄 몰랐다. 사내는 제정신이 아니게 탐닉해왔다. 《제가 그렇게 좋나요? 삼켜버릴가봐 무서워. 나 이속에 쏙 들어가버렸으면.》 정혜는 정말 그러고싶었다.  아버지사랑이 어떤것인지 모르고 자란 정혜는 다른 애들이 아버지품에서 응석부리는것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녀자애들은 처음 아는 남자가 제 아버지이다. 정혜는 사내에게서 부애도 느꼈다. 제친구들이 중학을 마치고 유혹의 호화세계에 뛰여들어 녀자의 그 우세를 디밀고 인생의 도박을 놀 때 정혜는 어머니의 단속속에 들장미처럼 커왔다. 이 남자에게서 그녀는 아버지 사랑을, 남자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고싶었다. 뜨내기 사내애들에게서 도저히 느껴보지 못한 그런 왕성한 정력과 관용과 포옹력이 이 사내에게서 넘치고있었다. 사내도 정혜를 죽을판살판 모르고 안고 돌았다. 동정녀의 그 여린 촉감도 좋았지만 막되게 놀지 않아서 안심이 갔다. 《얘, 너 정말 제법이다. 훈련이나 받은것처럼말이다. 내가 이제 너에게 빠져죽을라나봐, 허허…》 《그런말 싫어! 으응— 첫남자니까 정성을 쏟는거 아녀요.》 만약 침대가 알고있는 그 모든것을 말한다면 그들도 얼굴이 뜨겁게 붉어지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절 버리면 안되요. 응? 아버지같고 큰오빠같고 남편같은 그런 사랑을 독차지하고싶어요.》 《그래 오냐. 너만 사랑해주지. 너도 내게만 충성하구.》 《저도 거기가 하늘만큼 좋아요. 나의 사장니임, 늘 기쁘게 해드릴께 응, 우리 결혼하자요.》 《정말이니? 내가 곧 늙어지면 어쩔래? 너 돈 탐내고 그러지?》 《아뇨. 내 영원한 보금자리는 여기에…》 정혜는 사내의 푸들진 가슴에 파고들며 캐득거렸다. 《너 고중 중퇴했다며? 좀더 무언가 배운후 청도에 가서 결혼하자. 어때?》 《아이 좋아. 내 꿈이 끝내 실현되였네요, 사랑해. 이렇게 울면서 사랑할테야. 나 아빠트 사주죠? 네?》 《음 사주구말구. 그대신 망탕 놀아댔다간 없어. 알겠니?》 《나 곧 사장님부인이 될텐데 또 누굴 넘보겠어요. 믿어요. 안심해요.》 《참 너 진짜 초향이니? 집은 어데구말이야. 자주 어데서 본 얼굴이야.》 《집은 오상이구 이름은 정말 초향이야요.》 《너 아버지가 알면 어쩌지?》 《울아버진 일찍 죽었어요. 집사면 나 엄마 모셔올테야. 응? 되지요?》 《그래 널 초향이라구 믿어두자. 근데 너네 엄마문제는 좀 두고보자.》 《당신 없을 때 외로와 죽을거야.》 《요것이 사람 싹 죽여주네!》 《사랑해. 나의 사장님. 절 이렇게 이렇게 품어줘요. 저 하늘끝까지 안고가요 응?》 《그래 눈물겨운 너의 사랑에 나두 청춘을 되찾은것 같구나. 하하하…》   그 남자였다   정혜는 유한마담이 되였다. 연집강기슭에 아빠트도 사놓았고 장식도 궁궐같이 해놓았다. 이제 엄마만 모셔오면 된다. 명애가 심술이 날만큼 정혜는 잘된셈이다. 명애가 자주 와서 밤동무해주었다. 《정혜, 얘, 기적이 나타났지뭐야. 내가 누굴 만났는지 아니?》 《또 돈많은 한국령감쟁이겠지?》 《틀렸어. 무덤에 들어갈 때도 못잊는다는 첫사랑, 너의 그 첫님을 만났단말이야. 아유 깜짝 놀랐지뭐니, 어쩜—》 《?!》 《어제 글쎄 진국일 봤지뭐야. 처음엔 몰라봤다야. 고급세비로에 넥타이까지 척 매구 촌때 쭉 벗었더라. 얼매나 의젓하다구. 홀딱 반했어. 히히… 온하루 그애와 춤을 췄지뭐니? 정말 멋졌어!》 《그가?!》 《청도 한국기업에서 잘있는 모양이더라. 이번에 회사일루 연변왔대. 그리구 누구의 부탁도 맡구왔대. 너 만나면 가슴이 쓰릴거다. 돈두 잘 번다는것 같더라.》 《난 이미 끝나버린 일에 마음 쓰고싶지 않아. 길은 이미 갈라졌어.》 《얘. 그만둬. 시골서 소몰던 그때 진국이가 아니더라구. 얘, 그앤 널 못잊어하더라. 눈물이 글썽해서 자꾸 네가 어데 있는가 캐여묻지 않겠나, 나 원 딱해서.》 《그래 말했니?》 《아니 그가 알면 기절하라구 말하겠니? 그가 그렇게 될줄 알았더면… 호—》 《잘했어. 넌 좋은 친구야. 난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 오늘 양엄마한테 가서 머리할가? 함께 안갈란?》 《음. 그래. 나도 곱게 화장하고 새신랑 나꿔봐야지. 호호…》 정혜가 화장대앞에서 바삐 돌고있는데 느닷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얘. 명애 내다보구 문열어. 공연히 나쁜놈이면 어째.》 《누구세요?》 《이집 초향이라는 아가씨댁 맞지요?》 귀익은 목소리에 명애가 혀를 홀랑 내밀었다. 《야, 진국이다. 어떻게 알구 왔을가? 참 바늘가는데 실이 간다더니.》 《괴상한데? 네가? … 문열어주지말구 사람없다구 해, 얼른.》 《집에 아무도 없어요. 무슨 용건인데 이렇게…》 《문을 열어주시오.중요한 부탁받고 왔으니까요. 안그러면 여기 그냥 두구 가렵니다. 어쩌겠습니까?》 정혜가 침실로 뛰여들며 눈짓했다. 《어머머— 귀신곡하겠네— 어찌 알구 곧장 찾아와?》 《야하, 이거 진짜 극적인데. 명애야 네가 초향이로 둔갑했니? 우리 그 한사장이 말하던?…》 《무슨 소리야? 난 난… 응 그래, 나의 친구가 초향이구 난 그저 놀러왔지뭐니.》 《그래? 뭐 강탈하러 온것두 아닌데 당황해하긴? 그래 주인아가씨는?》 《교회에 나갔어. 그래 무슨 부탁이니? 너 무슨 냄새맡구 온게 아니야?》 《무슨 싱거운 소리냐? 하느님의 착실한 신도이구먼그래. 이거 유감인걸. 한사장이 침마르게 칭찬하길래 초향아씨의 존안이나 한번 뵙구가려했는데…한끼 대접두 톡톡히 받구 말이야.》 《딱 만날래? 나 불러올가?》 명애는 갑자기 어떤 못된 장난이 생각났다. 또 한번 인생극을 보고싶었다. 《아니, 아니야. 여기 트렁크에 명패 옷이랑 돈이랑 들어있다더구나. 이번에 올려구 했는데 심수로 간다더구나. 전해줘. 그럼 난 간다.》 진국이가 텅텅거리며 층계를 내리자 명애는 한숨을 활 쉬였다. 《아이구 혼났다야. 인생은 정말 연극이구나. 아니?! 너 낯색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좀 점직해졌을뿐이야. 암튼 오늘 기분 안좋아.》 《그—래. 그럼 너혼자 가슴앓이나 해봐. 난 갈란다. 약속있으니까.》 그날밤, 정혜는 한잠도 자지 못했다. 그 사내가 동정녀라구 뛸뜻이 기뻐할 때 정혜는 자기의 처녀를 고스란히 남겨준 진국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마음이 어쩐지 안스러워졌다… 며칠후 정혜는 명애를 불렀다. 진국이를 또 만났다는 명애의 얘기를 중동무이해버리고 양어머니네 집에 함께 갔다. 점심을 거기서 먹고 앉았을 때 명애가 불쑥 생뚱같은 말을 꺼냈다. 《아줌만 지금도 새각시같네요. 한창때엔 정말 사람을 죽여주었겠어요.》 《뭐 볼데가 있다구. 안그러면 그 사람이…》 《양어머니 옛날 사진 좀 보여줘요. 무슨 비밀도 아닌데유.》 《옛날 일은 생각하기싫어 그래.》 정혜마저 조르는 바람에 정혜의 양어머니—경희는 마지못해 낡은 사진첩을 궤밑에서 꺼내주었다. 명애가 제꺽 받아펼쳤다. 《어마나. 정말 희한하군요. 흑백인데두. 그런데 왜 집에 그분의 사진은 한장두 없나유?》 《함께 찍은건 다 불살랐지. 보면 복통이 터져서 견디겠더냐?》 《아이 이건 결혼사진이군요. 왜 엎어끼웠나요?》 《없앨가하다가 일생기념이구해서 그냥 둔건데 애들두 별걸 다…》 《와아—대단한 미남이네요. 어—쩜, 무척 랑만적이였겠는데 왜 갈라졌나요?》 《할말은 아니다만 잘나구 믿음성이 있는 남자란 드물더라. 개방세월이 되자 어찌나 나도는지 입에 신물난다. 그런 바람둥인 처음 본다.》 《인물값 하나보지요. 아이 아까와라.》 《비단보에 개똥인걸 뭘 아까와? 글쎄 총각인줄 알구 시집갔더니 웬 녀자가 애기까지 업구와서 시악질하지 않겠니? 내 원 기막혀서…》 《그 녀자 누구게요?!》 《집체호에 있을 때 결혼한 안해였단다. 대학갈 때 리혼하구는 나와 잔치했지뭐냐 글쎄. 마래곡인지 하는 산골의 그 녀자 정말 안됐더라. 애두 귀엽던데…》 그때까지 얼굴만 하얗게 질려 머리만 떨구고 앉았던 정혜가 덴겁한 소리를 질렀다. 《마—래—곡—이라구요?!》 《아니. 너 그 사람 아니?》 경희의 당혹한 눈길에 정혜는 외면하더니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뒤미처《아악》하는 소리와 함께 정혜가 기절해버렸다. 《아니 정혜! 이 애가 어쩐일이니?》 사태를 짐작한 명애는 속이 바질바질 탔다. 《아, 아주머—니 요즈음 이 애가 그럴일 좀 생겼어요. 곧 괜찮을거예요.》 명애가 정혜의 인중를 꽉 눌렀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정혜는 깨여났다. 《명애 날 집에 데려다줘.》 그러고는 다시 까무라쳤다. 사유가 멈춰서고 모든 감각기관이 꽉 메였던것이다. 명애는 정혜가 불쌍해졌다. 불행은 비로소 따스한 인간애를 불러일으킨것이다. 집에 이르자 깨여난 정혜는 그제야 제머리칼을 잡아뜯으며 피터지게 울었다. 그 어떤 위안도 들어가지 않았다. 고통에는 위안이 있을지 모르나 부끄러움에는 위안이 없는법이다. 《정혜! 절대 나쁜 맘 먹어서는 안돼. 우리 영원한 비밀로 묻어두자. 너 양엄마와도 잘 말해둘게. 그리구 우리 아무도 모르는 남방으로 날아가버리자 응.》 《명애 넌 내 영원한 벗이다. 고마워. 지금은 혼자 있게 해줘. 제발 빈다.》 《아니야. 널 혼자 내버려둘수 없어. 나 여기서 며칠 자겠다.》 《안심해. 이미 망태기가 되였는데 죽은들 씻어버릴수 있겠 니? 난 살테다.》 《그래, 그래야지. 네가 죽을게 아니라 그 사람이 죽어야 해.》 《아냐. 다 내 잘못이다. 하느님께 정성껏 기도했더니… 아— 흐윽…》 새벽녘 명애는 잠들어버렸다. 정혜는 편지지를 꺼내였다. 눈물이 다 말라버린듯싶더니 엄마 얼굴을 떠올리자 또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엄마, 이 불효녀는 먼저 갑니다. 가지 않으면 안될 죄를 이 딸이 졌어요. 묻지 말아주세요. 저는 지옥에 떨어질거예요. 운명도 탓하지 않겠어요. 엄마말을 들었어야 했어요. 고생 많으신 엄마, 죄송합니다. 제가 그처럼 찾던것을 찾았을 때 오히려 제가 죽게 된것은 아깝지 않으나 엄마가 걱정되여요. 엄마, 부디 오래오래 사세요. 영별입니다. 엄마의 복을 빌겠습니다. 엄마, 엄마…》 불효녀 정혜   정혜는 남쪽 베란다의 창문을 열었다. 액화가스통을 열어 놓고 조용히 가고싶었으나 명애가 자고있다. 수면제를 먹자니 명애에게 구원될것이 뻔하다. 어느 깊은 산속에가 목메고도 싶었지만 가는 동안 결심이 흔들릴가 겁났다. 이 사무치는 고통과 수치와 죄책감에서 한시 바삐 벗어나야 했다. 날이 훤히 밝고있었다. 담장 가까이에 있는 종이함공장의 보이라실에서《쏴》하고 김을 빼고있었다. 앞이 몽롱해졌다. 두 눈을 꼭 감고 정혜는 날아떨어졌다.《아—악》하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새벽공기를 찢었다. 이웃들이 떨쳐나왔다. 불길한 예감속에서 깨여난 명애가 달려내려와 지각을 잃고 쓰러진 정혜를 부둥켜안고 울부짖었다. 《정혜야, 이 불쌍한것아, 너를 지켜내지 못했구나. 아이구 정혜야—》 누군가 구호차를 불러왔다. 급진실에서 의사가 바삐 돌아칠 때 명애는 진국이의 호텔방에 전화를 걸었다. 진국이가 천방지축 달려왔다. 《동무가 이 녀자의 남편이요?》 《예?! 아 네에 저어…》 《이게 뭐요? 멀쩡한 사람이. 제 안해가 층집에서 뛰여내리는것두 모르다니.》 《예예 잘못…그런데 어떻습니까? 그저 살려만 주십시오. 돈은 있습니다.》 《천명이요. 엉뎅이가 먼저 떨어진것 같소. 콩크리트바닥이였더면… 어서 입원수속을 하시오.》 《생명위험이야 없겠지요?》 《음 미추골을 상하구 하반신 신경이 잘못된것 같소. 차츰 관찰해봐야 알지.》 정혜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병원침대에 누워있었다. 지옥이 아니였다. 《얘 움직이지마. 석고를 해놓았어.》 명애의 뒤에 진국이의 어두운 얼굴이 보였다.《진국이가?!》정혜는 이불을 끄당겨 얼굴을 가리웠다. 가슴을 찢는듯한 흐느낌소리가 새여나왔다. 수치감과 자책감에서 끝없이 밀려나오 는 환멸, 절망의 눈물이였다. 명애는 진국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둘은 연집강제방뚝에 앉았다. 가물이 들고 오염된 강물이 흐르고있다. 저 멀리 깊은 산속에서 떠날때는 그리도 깨끗했으련만 도시문명권속에 뛰여들어 잔뜩 오염되여버린다. 물은 어떤한 강에서든지 변함없지만 강, 그 자체에는 세류가 있는가하면 급류도 있고 여울도 있다. 따스할 때도 있고 차디찬 얼음으로 굳어질 때도 있다. 인간도 이런 강물과 같지 않은가. 정혜도 마래곡 청계수같이 맑은 마음의 녀자애였다. 그러나 현대생활의 탁류속에 뛰여들어 한방울의 흐린물이 되였다.(진국아, 진국아 너는 무슨 강물이냐? 세류도 급류도 흐린 물도 차거운 물도 말없이 받아들여 려과하는 큰 강물인가? 대하같은 포옹력과 관용이 네게 있느냐?) 진국이는 어깨우에 내려앉은 백양나무잎을 잡았다. 병든 나무잎이였다. 그는 나무잎을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었다. 씁쓰레한 즙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진국오빠, 정혜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요? 저대로 집에 데려가면 그애 엄마가 받아내지 못할거예요.》 《건데 대체 무슨 일이 3층에서 뛰여내릴만큼 엄중했는가 말이요.》 《정혜의 마음은 순결해요. 한가지 묻자요. 정혜를 사랑했죠?》 《사랑했지.》 《지금은 잊었나요?》 《…》 《미워할것은 당연해요. 그러나 사람은 구해놓고 봐야지 않겠나요? 그애에겐 치료비도 없어요.》 《왜 잘보낸다더니?》 《다 지나간 일이예요. 지금 그애에게 구원자는 진국오빠뿐이예요. 알겠나요?》 《엥히 나두 모르겠다.》 《사랑할수 없다면 인간애로 말이예요. 그앤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언제건 또…》 진국이는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애가 병원에서 나오면 잠시 세집에 있게 하자. 잠시 거기서 내가…》 《정혜는 한평생 잊지 않을거예요. 그앤 진국오빠와 함께라면 새 삶을 살거예요.》 《역시 불쌍한 우리 시골의 넋들이 아니니. 나귀가 나귀를 긁어준다는데…》   인생은 갈지자이다   《초향이 내가 왔어… 아니?! 경희! 당신이 어떻게 여길 왔어?》 《물론 뜻밖이겠죠? 명애한테서 집을 알았고 정혜한테서 열쇠를 가졌지요. 전화를 내가 쳤구요.》 《명애? 정혜란 또 누구요?》 《정혜란 이름마저 다 잊었던가요? 당신이 안고찍은 이 애가 누구지요?》 경희는 손가방속에서 사진을 꺼내여 차탁우에 탁 놓았다. 《어?! 이 사진이 어떻게 당신손에 있소? 오. 이 앤 내 늦은 사랑이구 내 보배야. 지금 와서 무슨 상관이요?》 《당신은 야차야. 제 친딸두 몰라보구 흘레하는 미친 수캐야!》 《아니? 이 녀자가 왜 이래?!》 《왜 이러는가구? 당신 눈으로 봐요. 무슨 짓을 하고있는가.》 정혜의 유서를 읽는 정군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이건 연극이다. 당신이 꾸민 엉터리극이야.》 《내가 꾸민 극이 아니라 당신이 연출해낸 인생활극이야. 그앤 저 창문에서 뛰여내렸어요.》 《…?!》 《당신같은 사람은 이제 죽어야 해요. 우리 유림에겐 당신같은 아버지가 필요없어요.》 경희는 문을 《쾅》닫고 나가버렸다. 사진속에서 달콤하게 웃는 초향이, 아니 정혜의 모습을 퀭 하니 들여다보는 한정군의 머리속에 드디여 기억의 먼지속에 파묻혔던 옛날의 사연들이 언뜰언뜰 스쳐지났다. 혜월이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도, 이젠 그만 돌아서라고 애원하던 경희의 커다란 눈도… 다시 캐득거리는 초향이의 얼굴이 정혜의 죄꼬만 얼굴로 클로즈업되여 떠올랐다. 《아 —악》 한정군은 머리칼을 움켜쥐며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천장이 핑그르 돌아갔다. 피가 거꾸로 흐르더니 목줄기 어데서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듯싶었다. 그는 간신히 기여일어나 화식칸의 액화가스통의 여닫개를 한껏 풀어놓았다. 그리고는 쓰러지듯 차디찬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로부터 수개월후 시교의 발전촌 어느 허수룩한 세집에 부부같기도 하고 오랍누이같기도 한 청년남녀가 들었다. 하반신을 잘 못쓰는 젊은 녀자에게 각근하게 구는 청년을 두고 마을 아낙네들이 수군댔지만 따스한 봄이 되자 남자는 매일같이 녀자를 장애자차에 싣고 호젓한 강뚝길로 오르내렸다. 진국이와 정혜였다. 정혜는 진국이가 한시도 곁을 비울세라 지켜가면서 간호하는 바람에 꼼짝 못하고 기구한 목숨을 이어가고있었다. 긴긴 겨울밤, 그녀가 흘린 눈물은 아마 몇동이가 잘될것이다. 《왜 날 죽게 내버려두지 않아요. 난 살고싶지 않아요. 무슨 면목으로 이 세상을 산단말예요.》 《정혜, 난 아직도 왜 정혜가 죽어야 하는지 몰라. 알구싶지두 않구. 다만 정혜가 일어서야 하고 살아야 한다는것만은 명백해. 정혜가 걸을만하면 우리 함께 고향 가자. 거기서 소두 치구 피리도 불구 청신한 대기속에서 깨끗하게 살자구. 우리 둘만의 작은 세계를 꾸려가잔말이야. 좋지?》 정혜는 많고많은 말을 하고싶었다. 그러나 진국에게 무엇을 말한단말인가. 《진국오빠, 난 오빠의 진정을 받아들일 자격이 없어요. 난 나쁜 녀자야요.》 《얘, 인생은 갈지자야, 곧추 뻗은 길이 없어. 그리구 잊어버리는것과 새로 배우는게 인생이야. 어제는 어제대로 굳어져버리게 해두자구. 자, 우리 또 걸음이나 익혀볼가? 옳지. 나를 붙잡고 땅을 디뎌봐. 그래, 그렇게라두 걸어요.》 정혜의 해쓱한 얼굴에 비지땀이 흘렀다. 손수건을 꺼내 살뜰히 닦아주는 진국이의 담벽같은 가슴팍이 정혜의 시야를 가리웠다. 마치 온 세상이 진국이의 가슴으로 꽉 메워진것 같다. 정혜는 비칠거리다가 진국이의 뜨거운 가슴에 푹 안겨들었다. 《절 죽여주세요. 당신손에 죽고파.》 《또 머저리소리 한다. 자 내가 이렇게 억세게 껴안고있지 않아?》 일찍 까난 작은 나비한쌍이 머리우에서 날아예다가 사라져버린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흐느끼는 작은 가슴과 관용의 넓은 가슴이 밀착되여 세차게 고동치고있었다. 인생은 갈지자다. 어느 끝에서 시작하든 굽이가 있기마련이다. 진국이는 정혜를 부축하여 다시 걷기 시작했다. 5월의 따스한 해볕이 이 한쌍의 시골의 넋들을 보듬고있다…     도라지 1999년2월
3    번지없는 집 댓글:  조회:3423  추천:36  2008-01-29
단편소설   번지없는 집                                       최 균 선   ㄷ시주택건설성과에 대한 취재를 마치자바람으로 성필이는 옛친구가 사업하는 ㄷ중학교로 걸음을 날렸다. 귀밑머리 희슥하도록 산골학교에서 전전하던 친구가 ㄷ시에 전근되여 온후 편지마다 놀러오라고 열당부해왔던것이다. 그때 굳혀놓은 약속도 약속이려니와 시골샌님의 묵은 때를 쭉 벗고 그럴듯한 아빠트서재에서 흐뭇해 할 친구의 모습이 무척 보고싶었던것이다. 성필이의 마음같아선 곧추 집으로 찾아가는게 옳겠으나 데퉁한 친구가 집번지를 알리지 않아서 부득이 학교로 가는것이다. 그가 ㄷ중학교에 이르렀을 때는 한창 점심 시간이여서 운동장도 휑뎅그레 비여있었다. 숙직실을 들여다보니 마침 나이 지숙한 령감이 졸음을 청하고있었다. 《저 미안하지만 말씀 좀 물읍시다. 이 학교에 탁우군선생이 계시지요?》 《탁선생이요? 거시기 삼합서 왔다는…》 수직령감은 눈을 치뜨며 늘어지게 대답했다. 《네, 네. 옳습니다. 탁선생 퇴근했겠지요?》 《건 모르겠소만 체육실에 가보면 알수 있을거웨다.》 령감은 더 묻지 말라는듯 목침을 베고 누워버렸다. 《…이 친구가 그 나이에 체육교원은 할수 없겠는데… 혹시 산골수재가 도시학교 에 오더니 밀려난게나 아닌가? 원…》 이렇게 의문을 굴리며 현관층계를 오르던 성필이는 화단 저쪽에서 재깔거리는 두 녀학생의 말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잠간 귀를 강구었다. 《영실아, 난 그저 어문시간만 있었으면 좋겠어. 딴 애들두 어문시간만 고대하 는것 같더라. 넌?…》 《응. 네번째 시간에 어문선생님이 오츄멜로브흉내를 낼 때 난 우스워 혼났어. 아이, 막 배가 아프지 않겠니? 정말 챠플린이야. 호호…》 《넌 막 별명을 짓는구나. 언제 일러바치면 혼나지 않나봐. 호호…》 한참 찧고 까불어대더니 《까르르…》하고 짝자꿍을 놓았다. 빙그레 웃으며 섰던 성필이는 불쑥 친구를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닐가 하는 생각에 그들을 놀래울세라 슬그머니 다가갔다. 《학생동무들, 나 말 좀 물어볼가? 동무들은 몇학년생들이지?》 금방 저희들이 한 말이 켕기웠던지 녀자애들은 혀를 홀랑 내밀고는 《2학년입 니다.》 하고 혀아래소리를 했다. 《오, 그러니까 탁선생의 학생들이겠구만.》 성필이는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친구가 성공하고있는것이다.(아무렴, 그렇겠지. 공든탑이 무너질라구, 어떤 친구라구 남에게 짝지겠는가?) 교단에 처음 나섰던 한동안은 우군에게 웃음거리가 많았다. 한번은 밤마다 슬며시 어데론가 나가는 남편을 찾아서 동구 밖까지 뒤를 밟았던 우군의 안해는 그만 깜짝 놀랐다. 글쎄 멀쩡하던 사람이 두만강물을 마주하고 서서 손짓, 몸짓을 해가며 말하다가는 목소리를 높여 시를 읽기도 하고 혼자 연극을 놀기라도 하듯 흐느끼다 가도 《하하》 웃기도 하였다. 글싸귀가 있다더니 미쳐죽은 훈장귀신이나 매달렸나 해서 남편을 붙들고 살을 꼬집어 봤다는 우군안해의 말이 동네방네에 퍼져 골안의 특대 뉴스로 되였던것이다. 시골샌님이 인제는 당당한 도회지교탁을 차지하고있다고 생각한 성필이는 시름덜린 마음으로 체육실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노크소리가 끝나기 바쁘게 눈익은 상고머리가 나왔다. 《어이구, 이게 누군가?! 성필이!!! 오겠다더니 정말 왔네 그려.》 탁선생은 악수를 한다 어깨를 두드린다 하며 반가와 야단이다. 《그래, 친구 잘 있었나? 점심때도 잊고 열성인걸 보니 일재미가 무더기채 쏟아지는 모양이지. 어떤가? 시골샌님의 도시살림에 깨알이 막 쏟아지겠지?!》 《음, 음, 자 어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구.》 탁선생은 무작정 성필이의 팔을 잡아끈다. 《잠간, 이런 알량한 친구라구야. 난 체육실검사를 할 마음이 없네. 어서 집으로 안내하라구. 우리 쌍가매사모님두 뵙구 가야지.》 《미안하이. 자네 먼길을 다녀올 수고는 던것같네. 여기가 바로 내 집일세.》 《아니, 뭐? 자네 집이라구?!》 《뭐 그리 희한해할것두 없네. 아마 기자선생이 생활의 구석취재는 처음인게로군. 자, 어서!》 성필이는 문안에 들어서는 참으로 기자의 특유한 본성을 가지고 방안을 휘 둘러보았다. 워낙 맨 구석진곳이라서 볕도 잘 들지 않는데 습기까지 축축했다. 알뜰한 안주인의 솜씨가 보이긴 했으나 높다란 천정아래 찬장은 너무나 꾀죄죄해 보인데다가 테블과 나란히 놓여서 도무지 격에 맞지 않았다. 북향작 창밑에 외침대 두개를 맞대여놓고 맞은켠에 좀 사이뜨게 쌍침대가 놓였다. 이불장과 옷장, 책장으로 간막이를 했는데 그뒤엔 먼지투성이 체육기재들이 무드기 쌓여있어 자못 기분을 잡쳤다. 《여보게 탁군, 이런 판인걸 난 또 자네가 체육선생이라도 됐는가 했네그려.》 《음, 사정이 그렇게 되였네. 잠시 체육실주임으로 여겨주게.》 《흥, 그래도 어느 아빠트베란다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시상을 모으고 있는 탁선생을 그려봤더랬지.》 《아따, 이게 좀 좋은 아빠트인가? 나에겐 좀 과만하다고 할가, 부장어른도 이런 집을 못쓰고 살걸. 허허…》 걱정없는이마냥 너털웃음을 치는 친구의 주름많은 얼굴을 정시하는 성필의 눈에는 웃음속에 가리워진 마음의 빈구석이 빤히 보이는듯 했다. 《여보게, 괜히 미륵보살인체 말라구. 딱친구앞에서 딴전을 부리는건 우정을 말아먹는 가증한 재간이야!》 성필이는 공연히 역증이 났다. 《그런데 부인은 왜 보이지 않나? 애들은 공불 잘하겠지?》 《응, 애에미는 저 송도인지 하는 개체식당에서 일하네. 큰 놈은 지금 연길가서 중점고중에 다니는데 사오십원씩 대주기도 조련찮구만.》 《아무튼 림시라도 일자리 있으면 됐네. 하긴 너렁청한 시골집도 안팎에 기름이 돌도록 꾸려놓구 살던 우리 쌍가매가 부아통이 터지게 됐는걸. 응? 안그런가?》 《젠장, 두말이면 잔소리고 세마디면 숨이 차지. 아빠트욕심에 그만 긁쟁이 되여서 신경을 박박 긁어대고있다네. 얌전이가 그만 암펌이 됐네.》 성필이는 탁우군의 처 쌍가매를 잘 알고있었다. 마래골서 나서자란 죽마고우요 소꿉동무였다. 《암, 그야 당연하지. 그래 점심에는 못오겠군그래. 고향친구가 무척 보구싶기도 한데…》 《자네, 형수님께 정성이 갸륵하이. 헌데 유감스럽게도 밤중이 돼야 잠동무하러 오네.》 《허, 생각은 굴뚝같겠군. 저렇게 갈지자 한복판에 화촉동방을 꾸렸으니 갑산 지개비네 아이놈 없으면 다행일세…하하하…》 《그렇기도 하이. 사무실에서 그냥 새우잠을 잘 때가 드문하네. 마음은 아직두 기둥뿌리 뺄 지경인데두말이야. 허허허…》 우군도 넉살좋게 웃어제꼈다. 《자, 빈방아는 그만 찧구 강술이라두 한잔 주게.》 《아차, 이거 귀객 푸대접일세그려.》 두 고향친구는 우정이 찰찰 넘치는 술잔을 마주쳤다. 《자, 죽마고우의 상봉을 위하여!》 《자, 탁선생의 아빠트를 위해서!》 축배도 열렬했고 회포도 절절했다. 그러나 성필에게는 술맛이 별스럽게 씁쓸 했다. 《여보게, 우리 시에 와서 문필사업을 해볼 생각은 없나? 전번에 두번이나 편지 했는데 왜 묵묵부답인가?》 《념려해주어서 정말 고맙네. 허지만 저녁에 우리 긁쟁이 앞에선 그런 말 까땍 내지 말라구. 응?》 《어째 겁나나? 가위라도 눌린게로군, 쳇.》 《글쎄. 긁어댄들 뿌리까지 헤치지는 못할거네만 인젠 〈열전〈랭전〉에 넌덜 머리나네. 자네 편지를 보구 얼마나 콩팔칠팔했다구.》 갑자기 탁우군은 목소리를 죽이더니 이런 말을 했다. 《여보게 성필이, 나두 침대에 엎드려 교수안을 쓰다가두 아늑한 서재꿈을 꾸기도 하네. 또 뼈시린 겨울밤에 마래골언덕의 그 따스하던 집구들목두 새삼스레 그려보기두 하네. 하지만 생각해보게. 가령 집을 찾아 교단을 훌훌이 떠나버린다면 교원의 알찬 량심이란게 무엇이 되겠나? 응!》 한껏 베풀려는 친구의 진정을 량심따위에 꾸겨박기만 하는것이 저으기 고까와난 성필이는 쀼죽한 말쐐기를 골라 툭 박았다. 《그따위 직업애착병은 자네같은 고리샌님들이나 귀중히 여기는거야…》 《하긴 꿈은 한가지라도 해몽은 제나름이지.》 우군이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성필이는 입만 다시고 앉았다. 대학을 마치고 교단에 떨어지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여기고있는 그로서는 더 입씨름할 마음이 없었으나 기어이 한마디 하고야 시원할것 같았다. 《여보게 탁선생, 황소의 유촉은 너무 충직하지 말라는거네. 허지만 자네의 지조에 만세는 불러줍세.》 성필이는 비뚤어진 진정을 작별인사로 남기고는 일어섰다. 《허, 우리 기자선생이 알긴 아는군. 그럼 오리의 선언도 읽었겠네. 걷는 방법은 제각기 다른 법이라네.》 역시 탁우군다운 유모아다. 《챠, 이 친구 한술 더 뜨는데. 또 있는가?》 《있구말구. 돼지의 리상은 배부르게 먹고 늘어지게 자는거라나.》 탁선생은 두눈을 신비롭게 치뜨면서 껄껄거렸다. 《에끼, 이 친구! 아무튼 자넨 석마를 끝까지 찧지 말라는 나귀의 철학을 기억해두게.》 그들은 이렇게 혀로써 악수를 대신하고 작별했다. 거리에 나선 성필이는 저도 모르게 여기저기 기세좋게 일떠선 아빠트들에 신경을 쏟았다. 불현듯 자기의 아늑한 서재가 방금 본 친구의 《아빠트》와 대조적으로 떠올라 그만 측은해진 마음을 누를길 없다. ㄷ시에 올 때까지만도 ㄷ시 주택건설사업의 비약을 보여주는 멋진 기사를 쓰려고 윽벼르던 생각이 태반이나 풀어지는것이 락망이 아닐수 없다. (…탁우군이여, 탁우군! 무엇이 너를 그토록 교단을 못떠나게 하는거냐? 너야말로 영예의 계관에 눈이 시여 무정한 현실속에서 상아탑을 쌓고있는이로구나. 가련하고 위대한 친구여! )성필이는 다시 체머리를 흔들었다. 광음은 또 일년이란 세월을 밀어갔다. 그동안에도 성필이는 우군의 편지를 몇통 잘 받았으나 집이야기는 예이제 일언반구도 없었다. 물으나마나 번지없는 집 주인 으로 만족하고있음에 틀림없었다. 두번째로 ㄷ시에 출장오게 된 성필이는 이른아침차로 내리자 아예 친구의 체육실 로 찾아들었다. 그런데 이런 맹랑한 일이라구야. 체육실의 육중한 문에는 소발통같 은 자물쇠가 침묵을 지키고있었던것이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체육기재만 어수선했 다. 《아차, 이 친구가 이사하면서 또 집번지를 알리지 않았군.》 이렇게 혼자 풀풀거리던 성필이는 돌아나오다가 마침 첫사람으로 등교하는 녀학 생을 붙잡았다. 《학생동무, 여기 체육실 탁선생을 어떻게 하면 찾을수 있을가?》 《검은테안경을 건 어문선생님이죠? 알아요, 4층 음악실에 있어요.》 《뭐? 음악실?! 이 친구 정말 팔방미인인걸. 허, 어느새 또 음악선생이 되였 군.》 뚱싯거리며 허위허위 층계를 올라 음악실앞에 이르렀을 때다. 억눌린듯 짜내는 친구의 웅글진 목소리가 성필이의 발목을 잡았다. 《…아니, 그게 당신이 하는 말이요? 그래 호박넝쿨 뻗을적에 곧게 뻗는걸 보았소? 사람이 기다릴성이 있는게 아니라 그저 입만 벌리면 집타령이니 이거 원!》 침이라도 튕겨나올 말타툼에도 속담명구를 끼워서 말하는 탁우군이다. 성필이는 저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그럼 손자턱에 수염날 때까지 기다려보시구려. 먼저 뛰여다니며 좀 공작이나 했던들 그냥 이꼴이모양이겠어요?》 (에라, 그 남편에 걸맞는 아낙인걸.) 성필이는 또 한번 피씩 웃었다. 《저런, 코열고 답답이라구야. 그래 이 탁아무개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구 이 조건 저 조건 칭얼댄단말이요? 흥, 이만치도 복덕방인줄 알라구. 사람이 먹을수록 냠냠이라더니 젠장.》 《여봐요. 볶은콩도 골라먹습디다. 그래 어떤 사람은 층집이 오르내리기 싫다고 단층집에 담장까지 두르고 살고 어떤 사람은 등치고 간빼먹는식으로 국가집을 둘러 맞춰 돈가리를 늘이고. 그래 우리같이 못난 교원은 그냥 이렇게 살라는 법이 어데 있어요?》 우군의 안해도 말솜씨가 제법이다. 《여보,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릴 거두라우. 이밥이면 다 제밥인줄 알았소?》 《그리 잘 아는 량반이 왜 오라는 편지가 두세번 와도 그 잘난 분필통을 안고 맴도는거예요?》 우군의 안해가 점점 육박하는 소리다. 《뭐요? 그래 붙는 불에 키질할 작정이요? 내라고 생각없는 등신이던가? 왜 리해는 못할지언정 들볶아 못살게만 구는거요? 엉?!》 마침내 울분을 터치듯 우뢰치는 남편의 불호령에 우군의 안해는 잠시 꿀꺽인다. 녀자들이란 남편과 만사에 충돌하면서도 교묘하게 재간을 피우는 법이다. 부부간의 설전이 바야흐로 백열화될판이다. (허, 이거 암행어사 출도를 불러야 겠군.) 성필이는 헛기침 두번으로 《정전》을 암시하고 세번 노크로 《중립국개입》을 선포했다. 이윽해서 상고머리가 《무기》를 놓고 나왔다. 《오, 성필이 자네로군. 이건 매복습격인걸. 아무튼 반갑네.》 벙실거리는 탁우군이야말로 정서돌변의 능수였다. 친구의 표정예술에 성필이는 더구나 마음이 여리여진다. 《친구 잘 있었나? 정말 새집에서 손님을 맞는군그래. 허허허…》 《암, 여부가 있나? 자네 올줄 알고 이렇게 4층아빠트로 바꾸어놓았네. 허허허…》 호인다운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찰찰 흘리며 우군이가 넉살을 부리는데는 성필이도 그만 탄복이다. 집안에 들어선 성필이는 아닌보살하고 우군의 안해에게 인사를 했다. 《사모님, 별래무양하십니까?》 서양사람들처럼 모자를 높이 들었다놓는 모양이 어찌나 우습강스러웠던지 여직껏 구석에 쥐죽은듯하고있던 우군의 열살난 딸애가 캐드득거렸다. 《아이유, 철이 아버지군요. 기자선생이라 인사도 개방식인가요?》 우군의 안해도 흉허물없이 웃는 얼굴로 맞는다. 《어서 앉으세요. 내 얼른 아침차릴게요.》 한마을에서 무랍없이 지내온 그들인지라 오가는 말도 구김이 없었다. 성필이는 방안을 일별했다. 체육실보다는 한결 탐탁하고 아늑하게 꾸려졌었다. 《여보게, 단칸이여서 좀 말째지만 널직한게 쾌 살암직 하네그려. 아무튼 셈평이 좀 펴인셈일세.》 《음, 친구씨가 진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탁씨도 시름놓겠네. 간단한 문제라도 새롭게 신중히 제기될 때면 더는 간단한 문제로 되지 않는 법이네.》 탁우군답지 않게 자못 엄숙하게 말하는 그속에는 분명 지난해의 그런 호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장수엄지손가락만치 굵직하게 말아문 담배만 애꿎은 연기를 내고있다. 두툼한 입술새로 몰려나오는 연기는 동그란 원을 그리다가 점차 커다란 갈구리모양을 방안 가득히 띄워놓았다. 저으기 머쓱해진 성필이는 눈길이 침대머리에 무드기 쌓인 작문책에 박혔다. 간밤에도 늦게까지 수정한게 틀림없었다. 친구의 부석부석한 눈이 너무도 잘 말해 주고있었다. 작문책을 펼쳐보니 여러가지 수정부호들이 벌겋게 그려져있었고 찌르 는듯 띠끔하면서도 어루만지듯 부드러운 평어들이 깨알같이 씌여있었다. 성필이는 모범작문인듯 따로 놓인 작문책을 펼쳐보았다. 《내가 아는사람》 이라는 글제가 무척 인상적이여서 저도 모르는새에 한줄한줄 읽어내려갔다. 《밝음이 인생에서 사랑의 첫봉화라면 교원이야말로 인류문명의 새아침을 안아오 는 사랑의 천사이리라.…내가 아는 그 사람은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주는 그 사랑이야말로 평범하지 않다.…》 문장은 비록 잘 맞물리지 못한감이 나지만 중학생 글로 말하면 제법이였다. 실로 맹장수하에 졸병이 없다고 친구의 피타는 노력의 정화가 또렷이 안겨왔다. 《참, 아침 늦었어요. 철이 아버지, 스산한대로 많이 잡수세요. 지난해 든걸음 으로 보내신게 얼마나 미안한지…》 언제보나 열무우갓김치같이 사근사근하고 인절미같이 나긋나긋한 성품을 드러내는 친구의 안해다. 《허, 이거 고맙소. 쌍가매씨께서도 함께 드시지요.》 《어서 드세요. 아까 내전을 하는통에 식당이 그만 늦어진걸요. 점심에 애아버 지와 같이 식당에 오세요. 시원한 국수를 대접할게요.》 그러지 않아도 드러난 비밀을 다시 피려치는 안해가 밉강스러웠지만 눙쳐 생각 하고 하는 말이 또한 친구다왔다. 《인품은 열두폭치마 울산애기지. 자, 난 상학때메 안되겠네만 자넨 초다듬이로 서너잔 하라구.》 《감사하네만 어쩐지 이번도 술맛은 쓰네그려. 여보게, 권주가도 좋지만 살진 안주도 집는 현실적인간이 되라구, 응?》 《말뜻은 알만하네. 다음번엔 우리 취하도록 마시고 새 아빠트에서 <번지없는 주막>이나 함께 부르세나.》 《좋네. 그러자면 생활과 생존방식의 시대적변화에 꽤 민감해야 할걸세.》 《자기 로력의 보상에 대한 끈질기고 실속있는 추구야말로 현대가치관념의 정수 란말이겠지? 친구.》 《여보게 탁선생, 설교란 책에 씌여있는게라구. 생활은 우리 앞에 문제를 풀라고 펼쳐져있는거네. 알겠나?》 탁선생은 어깨만 으쓱했다. 《허지만 한걸음에 답안을 찾을수 있는건 아니지 않나?》 우군이로서는 명백한 무엇을 말하는듯싶었으나 성필에게는 그저 벙거지시욱 만지는 소리같이 애매하게만 들리였다. 《좋네. 일을 보아 저녁에 만나도록 합세. 하지만 딱 기다리진 말라구.》 그들은 이렇게 헤여졌다. 고고청산은 변함이 없어도 세월의 언덕에 물레방아계절은 돌고돌아 어언 세번째로 ㄷ시에 오기까지 일년하고도 수삭이 지났건만 성필이는 친구의 집번지를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저 음악실을 지키고있는게다. 그래서 성필이는 이번길엔 그 친구의 《아빠트》에 가고싶지 않았다. 아니, 번마다 친구를 난처하게 굴고싶지 않았다고 하는게 옳을게다. 그러나 20여년 정분이야 어이 저버리랴. 성필이의 발길 은 저도 모르게 친구에게로 쏠린다. 그가 무작정하고 음악실문을 두드렸더니 바라는 상고머리대신 현대파마머리가 나타났다. 《누굴 찾으시는지…》 《네. 저 고향친구를…》 성필이가 말끝을 맺기도전에 그녀의 약삭바른 대답이다. 《아! 네, 탁선생말씀이죠? 지금은 저 보이라실에…》 성필이는 실례라는것도 잊고 펄쩍 뛰였다. 《뭐요. 보이라실?!》 아연실색하는 성필이의 표정에 그 녀교원은 마치 제잘못이기라도 하듯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참, 이거 제가 실례했습니다.》 성필이는 그제야 사과하고는 맥없이 사색의 층계를 내리였다. 이럴수도 있단말 인가? 주택난이 어제오늘 제기되는 문제도 아니고 또 탁우군같은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님을 모르는바가 아니지만 아무튼 왼고개가 탈리는 일이다. 실로 고행하는 친구요, 고집불통 탁우군이다. 성필이는 제사 어깨가 처져가지고 학교건물을 돌아들었다. 웬 일인지 보이라실 널문이 짝 열려있고 마당에는 짐짝들이 널려있었다. 화부실의 열려진 창가에 친구의 펑퍼짐한 어깨가 보였는데 담배연기만 꾸역꾸역 밀려나오고있었다. 성필이는 얼없이 서버렸다. 친구의 사색을 깨고싶지 않다. 탁우군도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이다. 한 가정의 세대주면 누구나 바라는 그 모든 것—따스한 보금자리와 마련된 안정을 가지고싶어하는 한 녀인의 남편이요, 두 아이의 아버지다. 《어, 이거 기자선생의 왕림이로군. 어서 오시오. 성황리에 대환영이요.》 문뜩 몸을 돌리던 탁우군이 못박힌듯 서있는 성필이의 출현에 저으기 당황하여 너스레를 떨었다. 《잘 있었나? 친구. 그런데 대관절 올때마다 유격전인가 운동전인가? 원.》 《죄송하이, 하지만 우리네 상봉이야말로 얼마나 극적인가? 번마다 새 무대이니 말이야. 하하하…》 성필이는 어이없었다. 자기라면 웃음은커녕 고함을 질러도 시원치 않을것이다. (저 친구가 억눌린 위선이 항변을 토하는게나 아닌가? 이따위 <아빠트>에서도 밀려나는 신세에 뚱딴지같이 배심을 부리긴, 쳇.)성필이는 누구에게라없이 화가 났다. 《너무 격동하지 말라구. 오늘은 새집드는 날일세. 마침 잘 왔네.》 《어허! 그게 정말인가? 잘됐군 잘됐어. 그래 몇평방인가? 일층인가? 아니면 삼층?…객실도 달린거겠지? 좋아, 오늘 새집턱은 내가 담당하세.》 《노노, 너무 락관할건 못되네.》 《?!》 《집은 집이로되 세집이야. 자네 말마따나 번지없는 집이지.》 그야말로 딸이 온다기에 개물함지를 엎지르며 뛰여나갔다가 미운 시누이 오는걸 보고 시무룩해진격이다. 《뭐요? 일구월심 3년기도에 죽은태를 낳은셈이요? 쳇, 돈나무를 뿌리채 뽑아안았네그려. 당신 진짜 문간방샌님일세, 탁선생!》 탁우군은 허허… 웃었다. 유쾌한 웃음소리는 정신건강의 믿음직한 표지라고들 하지만 우리 탁선생의 웃음은 결코 그런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웃는다. 웃을수밖에 더 있겠는가? 운다는것은 더구나 어리석은짓이다. 《노노, 너무 실망할것두 없네.》 《그래 친구, 이 지경에도 〈광휘로운 직업〉의 꽃양산밑에서 꿈을 꾸려나?》 《진정 변함이 없을 때라야 곧 신념인줄 아네!》 성필이는 채타지 않은 담배대를 비벼끄려다가 깔고앉은 책궤구석에 던져진 원고뭉테기를 쥐여들었다. 문학작품도 있었고 교육론문도 여러편 있었다. 그 복새통에서도 친구는 제할일을 착착 해오고있었던것이다. 그야말로 거칠은 쑥박속에 핀 함박꽃을 보는듯 성필이에게는 류달리 희한스러웠다. 《여보게 친구, 이런 불경기상태에서도 대작을 했네그려. 자넨 정말 소힘줄이야. 허허…》 …성필이는 짐을 가득 실은 밀차를 끌고 붐비는 네거리에서 수굿이 걷고있는 친구를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점점 더 커보이기도 하고 또 보잘것없이 왜소해 보이기도 했다.     천지 1988년3월호
2    꽃돼지저금통 댓글:  조회:3559  추천:42  2007-10-08
                                꽃돼지저금통                                      최 균 필         고래희 70에 맞는 손녀의 돌생일은 내 인생에서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찍는것 인지도 모를 감탄표이다. 갓마흔에 첫버선처럼 뒤늦게 생긴 손녀의 생일잔치를 앞두고 나는 공연히 로심초사하였다. 아이의 첫생일상에 무엇을 놓아줄것인가를 두고 남모래 많은 생각을 굴렸던것이다. 관습대로 얼마간의 돈을 넣은 봉투를 올려놓지 못할것도 없지만 나는 나름대로의 타산을 굳히고있었다.     돐생일상앞에 손녀를 안아다 놓기바쁘게 외할아버지는 두툼한 돈봉투를 보란듯이 올려놓았지만 친할애비인 나는 남의 눈치가 보이건 말건 작정한대로 꽃돼지모양의 커다란 저금통을 달랑 올려놓았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해서 한 노릇인데 그만 말썽거리를 지지고 볶아댈줄은 미처 생각못했다. 나의 거동을 지켜보던 모든 친척 들과 손님들이 수근대는건 물론 로친네와 며느리마저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저금통 꽃돼지보다 더 삐여지게 입들이 쀼죽해졌던것이다.     그런데 작은 천사같은 내손녀가 생각밖에도 대뜸 고사리손을 쏙 내밀어 꽃돼지의 입이며 눈이며 축늘어진 두귀를 어루만지면서 해죽해죽 웃는것이 아니겠는가? 생일상 을 빙둘러싸고 무엇을 먼저 쥐나 눈길을 박고있던 사람들속에서 먹새쟁이가 되겠다느 니 욕심쟁이가 될게 틀림없다니 저팔계의 손녀라느니 악의없이 중구난방으로 입방아 를 찧었다. 제일 앞에 바로 놓인 연필이며 필통, 붓을 먼저 쥐였으면 하고 잔뜩 기대 를 걸고있었겠는데 하필이면 배불뚝이 새끼저팔계를 쥐였으니 그럴만도 하리라.     수백년을 내려온 전통습관대로 연필이나 공책을 쥐면 장차 공부를 잘하고 청운에 뜻을 펼것이라고 미래를 기탁하기가 관례인데 손녀가 무슨 용도를 가지고있는지도 모 르면서 괴상한것부터 쥐여서 여기저기서 객적은 소리까지 나오는지라 원래 보살상인 며느리의 얼굴색은 명랑하지 못했고 곱다랗게 폭폭 패이던 볼우물자리가 부어나고있 는것이 내눈를 속이지 못하고있었다.     하긴 리해가 안가는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소궁둥이를 두드린 농부들은 손군들이 공부를 잘해서 립신양명하기를 일구월심 고대하는 뿌리깊은 심성들이니 말이다. 그러 나 그것은 아름다운 희망사항일뿐이다. 세상에 자기의 돌생일에 있은 세절들을 기억 할 아이는 없는줄 안다. 있다고 한다면 그건 애비에미의 결혼잔치를 보았다는 얘기 만큼 웃기는 얘기니까. 그러나 나는 내 손녀가 돌생일에 남달리 선물한 꽃돼지저금 통을 기억하고 그것에 담긴 속사정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기대했다.     생일 이튿날 나는 며느리가 손자밥 떠먹고 천장을 쳐다보는 격이라고 고깝게 생각할수도 있을줄 짐작하면서도 아닌보살하고 생일부조돈을 손녀의 이름으로 저금 하라고 지시했다. 내 명령을 며느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 았다. 내 충심이 언젠가 밝혀지는 날이면 며느리도 취옹의 마음이 술에 있지 않음을 터득하리라고 믿었다. 고소비시대 내 손녀도 류행을 쫓는 소비원동원이 되지 말기를 기원하였기때문이기도 했다.     내 손녀만은 현시대 공주님이 되지 않고 고소비열풍에 말려들지 말아야 했다. 너무 서둘러 착수한 조기교육일수도 있겠으나 옛속담에 색시그루는 색동저고리때부 터 앉히라고 했듯이 돈이 어떻게 생기는것도 일찍 알게 하고 어떻게 아껴야 하는가를 인생의 새벽길부터 바르게 떠나도록 가르치려고 작심한 나이다. 내가 한창 잘나갈 때 하나 아들을 너무 곱게 키워서 서운한 점이 너무 많은 교훈이 내가 마음을 각박하게 먹게 했는지도 모른다.     내 념원속에 세월은 흘렀다. 손녀는 걸음발이 탄탄해지는것과 더불어 지력상수도 놀라만큼 빨리 높아졌다. 매번 거스름으로 받은 엽전이나 단돈을 손녀앞에서 꽃돼지 에게 먹이며 어른에게나 할만한 말도 많이 들려주었다. 이 꽃돼지가 배고프지 않게 잘 먹여야 고운 어린이라고 칭찬도 하면서 그 고사리 손으로 돈을 직접 꽃돼지입에 넣도록 가르쳐주었더니 아이앞에서는 거리떡도 사먹지 말랬다고 모방성이 강한 나이라서 그런지 손녀도 엽전잎이나 생기면 저절로 꽃돼지를 먹여주었다.      손녀도 차차 제절로 하려고 덤벼치는 나이가 되였다. 어느 날 저녁, 한 며느리 가 매일 저녁마다 따스한 물을 떠다가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세수시키고 발까지 씻어주는 장면을 보며 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놀라웁게도 그녀의 아들애가  저도 제에미의 발을 씻어준다고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오느라 덤벼치는 장면은 눈물이 찔끔 나게 감동적이였다. 제힘에 부치는 세수대야를 들고오느라 옷섶이 다 젖었건만 생글대는 그 장면은 광고중에도 제일 멋지고 인상적인 효도광고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슬그머니 손녀를 훔쳐보았다. 그 어린 마음에 어찌 어른같은 감동 이 있기를 기대하련만 화면속에 남자애만큼 크면 제에미 발을 씻는다고 씩씩거릴지도 모른다는 부푼 기대감을 가져보았다. 손녀는 에미의 발을 씻어주는 효도는 아니래도 내 기원대로 꽃돼에게만은 게으르지 않았다. 공든탑이 무너지랴 싶었다. 아이가 유치 원에 다니면서부터 꽃돼지를 먹이는 일은 도거리하였다. 물론 어른들이 의식적으로 그애게 잔돈이 생기게 연극을 놀긴했지만 자기 몫이 된 돈을 절약할줄 알았다.     그러다보니 제에미애비에게서 후려낸 돈이랑 내가 쥐여주는 소비돈이란 어떻게 써야할지 아는것 같았다. 먹일수로 무거워지는 꽃돼지를 보며 무슨 생각이 있었던지 얼음과자랑 무작정 사먹지 않고 남겼다가는 자랑스레 꽃돼지를 먹이고 또 먹였다. 그 렇게 세돐이 되던 해 꽃돼지의 배를 가르고 한무지나 되는 엽전, 지전을 세여보니 천 원이 넘었다. 시체소비에 락제생이 아니던 며느리는 제풀에 놀란 꽃사슴의 눈이 되여 서 생일날 부어있던 그  보조개자리에 함박꽃이 활짝 피여났다. 그리고 살짝 얼굴을 붉이고 있는 모습은 내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친할애비가 체면깎일 일을 해서 친척과 동네를 웃겼다며 두고두고 시설질하던 로친네도 작은 꽃돼지가 큰돼지 판돈을 게웠다며 입이 함지박이 되였다. 그러면서 《에구, 티끌모아 태산이라더니》하면서 문자까지 쓰는것을 잊지 않았다. 장하고 장하다는 칭찬바구니를 안은 손녀도 내 품에 와락 안기였다.     첫돐생일날 천원을 내놓아서 며느리가 어깨가 올라갔는지 몰라도 내가 현대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심어주기 가장 어려운 하나의 전통미덕을 심어주었다는것을 알게 된 며느리는 각박했던 이 시아버지의 고심을 늦게나마 읽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다시 한번 며느리의 얼굴에 핀 함박꽃을 슬며시 바라보며 버릇처럼 제생각에 잠겼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걱정공장의 지배인 되여 끝없는 걱정을 흐름식으로 생산해내 는 법이여서인가, 손녀가 대학가고 어른이 되여 사회에 진출한다음에도 이 할아버 지의 기원대로 첫돐의 선물인 꽃돼지를 그냥 살찌울 일념을 가지고 경제시대, 고소비 시대를 알차게 장식해갈런지…별로 크지 않은 이 꽃돼지가 3년에 한번씩 천원을 낳는다면 아이가 성인이 될때 얼마나 낳을가? 아니, 이런 돈은 수자로 계산하는게 아니다. 자초에 내가 남의 눈총을 받으며 꽃돼지저금통을 생일상에 올려놓은것은 닭알장사가 기와집 짓고 황소사고 밭을 살 돈낟가리를 쌓는 그런 허황한 계산법을 해서가 아니였다. 황금돼지해인 올해 우리 한가정에 웃음꽃이 더 싱그러운것도 꽃돼지가 공돈같은 천원을 낳아서만이 아니다. 집집마다 하나의 도련님, 공주님을 키우며 만금도 아끼지 않는 시대의 풍조에 비하면 나의 후대교양이 너무 보수적일지도 모른다만 나는 내방식으로 내 손녀를 반듯하게 최대의 미덕인 절약정신을 가진 소녀로, 미래의 알뜰한 가정주부로 키워가련다.    서로 뒤질세라 물밑경쟁을 벌리며 더 좋은것을, 더 많은것을 아름차게 안겨주려는 멋진 할아버지들을 뒤쫓느라 왼심도 쓰지 말아겠다. 무보수의 늙은 가정교사로 내손 녀의 오늘을 가르치며 먼 장래를 준비해야겠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고집쟁이 이 늙은《가정교사》가 참으로 훌륭했다는것을 새삼스레 느껴보는 내 손녀가 첫걸음부터  바르게 시작한 인생길에 곱게 걸린 무지개를 건너서 아침노을 같은 래일을 향해 흔들 림없이 걸어가리라 믿고싶은 마음이다.                                 2007 년 10 월 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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