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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연약+바보?
2014년 01월 06일 13시 04분  조회:8381  추천:3  작성자: 최균선
                                                       선량=연약+바보?
 
                                                              야 조
 
    사람들은 관습상 어질면 마음이 약하고 지어는 어리숙한것으로 인지하고있다. 그래서인지 생활의 모종 단면을 시사하는 드라마들에서도 극정을 이루는 모순충돌의 대립각에“어리숙한자”와“총명이 과인한”악인들을 내세우는데 그 대조가 극명하게 설정되는게 거의 모식처럼, 관례처럼 되고있다. 례하면“사랑했나봐”에서의 녀주인공, “오자룡이 간다”, “백년의 유산”, 요즘 “숙백향”,“내 손을 잡아라”등 많은 드라마들에 주인공들은 선량=연약+바보의 모식으로 인물형상이 부각되고있디.

    악인들은 하나같이 총명령리하고 과감하고 과단하고 그로써 득세하고 사활을 걸고 대갈이 터지게 음모와 궤계와 살인극까지 벌이며 쟁투를 벌리다가도 선량한자의 선량함으로 용서되고 살인죄마저 흐지부지해진다. 권선징악이라는 잠규칙도 배제되는가? 소위 경찰이나 검찰은 거개 강자의 리용물로 되여 애매한 사람을 잡아넣는데는 열정적이다가 모순해결의 절정에서는 불가사이하게 슬그머니 사라져버린다.

    한국은 선량한자는 늘 바보스럽게 그저 번번히 당하고 당해야만 하는 사회인가? 법치사회라고 자긍하는 한국사회의 실상인가? 맹자의“人之初 性本善”에도 반문하게 된다. 물론 한국드라마에서 현실성이 사라진지 오래니 생활의 진실같은것을 찾으려하는 생각이 우둔하지만 시청자들이 그저 재미로 보며 뒤에 올(카타르시스?)를 기대하는 리유로 선호한다는 사실조차 사이비하고 오도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 답답함을 아무리 참을만큼의 재미로 풀어간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리해가 되지 않는 주인공들의 행동은 그들의 매력을 현저히 저하시키고 드라마의 내용마저 공감할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물론 경제효익을 목적으로 제작되는 드라마에서 흡인력이 우선이겠지만 재미를 위해 주인공의 성격을 희생양으로 삼는것은 결코 기발한 착상이 못된다. 주인공들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점점 리해할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고 그것이 드라마의 예술적감화력에 치명적영향을 미치는것은 둘째치고 사람들의 가치취향과 가치기준을 오도할수 있기때문이다.

    “오자룡이 간다”에서 오자룡의 순진함과 선량함은 착한것과 바보스러움을 자주 혼동하고있기때문이다. 선악의 대결도 력량이 어상반해야 구경이 된다. 성품이 착한게 아니라 선천적으로 멍청한게 아닌가 하는 답답함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욕하게 되는 주요한 리유가 된다. 갈등을 극대화기 위해 100회가 넘는 분량중 95% 이상을 악인이 승승장구하다 결국 5%도 안되는 분량안에서 급작스런 해결로 귀결되는데는 그야말로 한국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처럼“말도 안돼”가 절로 새여나오게 한다. 시청률은 고고행진이라도 주인공을 놓친 드라마는 필연코 실패작이다.

    “백년의 유산”에서 민채원도 선량함의 본질을 외곡, 오도하여 시어미를 비정상의 악인으로 극대화하다보니 설들력을 잃고만다. 악행도 무작정은 아닌것이다. 한국에서 잘 쓰는 말인 탈상식이다.“내 손을 잡아라”에서 녀주인공은 생모의 시체에 지문이 있다는 리유로 살인혐의자로 되는데 조작가능성마저 추단못하니 한국의 경찰은 권력자, 악행의 공모자역할뿐인가? 물론 그런 답답한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하지만 예술적지향으로는 역설적이지도 않다. 주인공들은“천사”가 아니라 오히려 바보시녀도 안되기때문이다. 재미만 있으면 끌리는 흔상심리라고해도 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최소한의 리해불능인 드라마는 감정유희로 곧 잊혀지고만다. “두 녀자의 방”에서도 악녀는 매일 필승불패이다. 정의와 진실을 신장하려는 민경채는 그냥 헛똑똑이로 나온다. 진실이 너무 지각하고 있고 정의가 결석하지 않아도 절름발이 정의로 뒤우뚱거린다.

    하긴 사람들의 관념만이 아니라 실제 이 세상는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 모두가 나약성이라는 보따리를 걸머지고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선량함과 나약함이라는 자체가 딱부러지게 구별되는 품성이 아니기때문이다. 력사현실이 실증하디시피 선량함뒤에 감추어진 나약함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의 비극이 끝도없이 재연되였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한국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선량한 사람들은 무던하고 우직하고 눈치코치 모르는 미련퉁이고 속창이 뒤번져질만큼 그렇게 못생긴 새끼오리들인가?

    선량에도 리념적으로 량면성이 있다. 우선 도량이 넓고 포용력이 있으며 동정심이 풍부한만큼 강의함도 있고 또 있어야 한다. 선량함에도 원칙성이 관통되여 있는바 무원칙적선량은 곧 연약무력으로 체현된다. 사람은 우매할수도 있고 못날수도 있지만 선량함만은 아니가질수 없다. 선량한 사람들은 겉보건대“머절스러울수”있지만 멋대로 릉멸할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 농촌에서는 누른한 쇠 뜬다, “업씨부한데서” 왕불이 걸린다는 말로 어진사람을 막대하지 말라고 경계하기도 하였다.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선량한 영웅호걸들이 부지기수로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 기억할것이다. 용기는 천당으로 통하는 길이고 유약함은 지옥의 문을 두드리는것이란 잠언이 있는데 최대한의 인내와 겸양은 풍도이고 관용이지만 무원칙한 참을성은 연약무능력의 표현이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 사나이다운 사나이라면 그저 착하기만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아무튼 사람은 사람이기에 인성에도 선악이 교차되고 점철될것은 당연하다. 천성적으로 착한사람이 있다면 악한사람은 후천적이기만 할가? 악인도“위대한” 사람으로 거듭났고 선량한 사람도 천추에 기릴 명인으로 되였다. 만약 우리가 성패론으로 영웅을 론하지 말아야 한다는 력사시각으로 본다고 말할 때 그많은 “연약한”사람들이야말로 곧 진정 용감하고 견강한 사람들이라고 칭송할수 있다.
    그리고 다시 사람을 흥량하는 시각에서 본다면 시대가 바뀌면 일계렬의 규칙도 바뀌는 법임을 깨닫게 된다. 만약 온 사회의 도덕수준이 높은 차원에서 운행된다고 할 때 그 결과를 거꾸로 걸어서는 안될것이다. 선량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처에서 코가 깨지고 나중에 연약무력하게 무너진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있다. 물욕이 횡행하고 리기가 극도에 이른 이 시대에 선량한 사람은 그리많지 않다. 악인들은 이런 선량한 사람들은 바보스럽고 연약하다고 볼수 있겠지만 결코 그런것만도 아니다.

    착함!착하다는 리유로 연약해서는 안되며 더구나 무력해서도 안될 일이다. 진정한 착함은 몽떼 그리스도백작같은 사람의 기본품성으로 되여야 할것이다. 다른 사람을 악으로 괴롭히지 말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기시하고 릉멸한다면 응수하여야 사람이다. 선량함은 나약함이 아니기때문이다. 그 어떤 경우에서든 착함에는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면 간능하고 악착한 인간들의 자사자리에 리용되는것뿐이다.

    연약한 사람의 등을 밟고 기여오르려는 야바위군들도 선량한자의 강인함에는 뒤걸음질도 잘친다. 두번 참는것은 넓은 흉금이지만 그 이상 참으면 대방에게 기시와 학대의 채찍을 쥐여주는격이다. 악에 대한 묵인은 역시 범죄이다. 상대성은 여기서도 적용된다.“良心大大地坏”인 자들은 “得寸进尺”하면서 참아줄수록 기염이 솟구친다. 착한사람은 늘 손해보고 늘 기시당한다는 관념은 뿌리깊지만 그것이 착한 사람의 대명사로 되여서는 안된다.

    인간은 인성과 야성ㅡ늑대(남자)와 여우(여자)의 짐승의 본성을 갖고있다, 채찍으로 때려야 움직이는 당나귀가 되지 말아야 하거니와 사정없이 때려도“와앙ㅡ”하고 울부짓지도 못하는 황소가 되여서도 안된다. 착함은 굴종이 아니며 더구나 효험이 있는“화해약(和谐药”도 아니다. “선량한자의 묘지명은 선량” 이라고 말할 때 릉멸과 기시에 시달리는 모든“선량한 바보”들은 “약한 자여, 너의 이름은 녀자니라.” 라고 한 햄리트의 말의 의미를 짓씹어 보아야 할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들 생각하는지 몰라도 그냥 동종의“선량한 바보”들을 낳지말기를 바란다.  

                                                                 2013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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