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국에 되다가 채되지 못한 한 남자가 살았다. 이 남자는 가히 불세출의 존재로서 처세술이 남달랐다. 이를테면 건달배들에게 머리태를 잡히고 늘씬하게 두들겨맞고 나서도 “나는 자식에게 맞은셈치자. 요즘세상은 정말 개판이야…”하고 생각하고는 스스로 만족해 하며 의기양양해 하였으니 말이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기 뺨을 얼얼하게 때리고는 때린것이 자기라면 맞은것은 또 하나의 자기라고 생각했다. 잠시후에는 자기가 남을 때린것으로 간주했다. 착각이 아니라 지어먹은 자기긍정이였다. 맞는 “나”와 때린 “나”를 분리하니 분노와 굴욕감으로 가슴앓을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자기가 누군가에게 마음껏 폭력을 휘두를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함으로써 스스로 상승장군이 되였으니 패배란 있을수 없었다.
소위 “정신승리법’”이라 지칭되는 이 남자의 자위법은 금세 사람들에게 간파되여서 이 남자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마다 이를 악랄하게 리용했다. 분노도 굴욕도 패배도 느끼지 못한 이 남자는 성도, 이름도없이 조나으리네 집에 허드레일이나 해주고 날품팔이로 전전하며 집도없어 토지묘에서 살았지만 자존심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아Q라고 얕잡아 불렀지만 그가 만세유전의 명인이 될줄이야 당시에 그누가 알았으랴!
하기야 유명하게 되지 않을 리유가 없겠다. 얼굴한번 붉히지 않고 자신을 멋지게 기편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자신을 하찮고 비천하다고 여길줄도 알았고 그럼으로써 여간 지성적이 아니고는 아니되는 자조(自嘲)、자해(自解)도 할줄 알아서 굴욕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아량도 구비했으니 말이다. 비록 아이러니하지만 과대망상증이 심하여 늘 자고자대하고 자아도취속에서 유정무정한 세월을 제잘난멋으로 풍미하였다.
어찌생각하면 그로서는 오히려 실패와 굴욕앞에서 현실을 바로보지 않는게 최선의 처세이고 환상적인 승리감을 만끽하면서 자아위안을 하며 스스로에 자족하거나 치욕을 깡그리 잊어버리는게 상책이였으리라. 아큐씨가 생활한 그러한 인문환경에서 스스로 실질적인 심리평형의 묘리를 터득하지 못했다면 하루에 열두번씩 미쳐버리지 않으면 기번져죽었을것이다. 어째죽는지도 모르면서도 “20년후에 또 대장부로 태여 날것”이라고 호연지기를 뽐내던 사나이의 비장한 최후는 얼마나 눈물겨운가?
아큐씨가 죽어간지도 100년이 넘었으니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간에 그의 정신승리법은 생명력이 강하여 오늘날 현실생활에서도 널리, 그리고 생동하게 발현되고있다. 물론 총명한 현대인들은 그 정신을 별칭하여“심리부인반응(心理否认反应)”이라 한다. 이런 심리방위적반응은 언제, 어디서나 표현되는바 많은 불필요한 심리충돌과 압력을 회피할수도 있고 일정한 정도에서 심신건강에도 유리하니 가히 세세대대로 물려줄만한 법보라 할것이다.
돌이켜생각하면 우리도 아이적부터 이런 자기승리법을 조금 터득하고 있은것같다. 이왕지사이지만 아이들속에 이러루한 일이 많았다. 수탉싸움질에 코피터지고도 주먹을 부르쥐고 윽윽거리며“그새끼, 헤재비였어. 내가 흥, 실수해서 그랬지 쌈할줄도 모르는 새끼, 다음번에 덤벼들면 즉살메길거야 흥흥, 흐으윽…”이렇게 죽은 장비배를 걷어차는식의 호기를 피우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보았더랬다.
지금처럼 여러가지 멋진 놀음감을 꿈도 꾸지 못했던 그시절엔 생각나는게 있으면 제손으로 만들어가지고 놀았다. 흙이나 널쪼각으로 만든 자동차, 수수깽이안경, 물레방아, 참대가지에 종이를 발라 만든 비행기, 널판자돛배, 참대활, 콩알권총, 비지깨 (성냥)권총, 무철알화약총…아이들손으로 만든게 얼마나 방정하랴만 자기 걸작이라 무척 흔상되였다.
목수도구도 없이 거개 손칼로 깎아만든 비지깨권총을 가지고 나가 서로 자랑질 할때면 말썽도 많았다. “야, 네꺼 그게 무슨 꼴이니 내 발바닥으로 만들어도 그것보다 더 멋있게 만들수 있어, 힝 (그때는 지금처럼 조잡하다느니, 조악하다느니, 초보기술이라느니, 초딩수준이라니…하는 멋진 말을 쓸줄 몰랐다) ” 그렇게 놀려대면 성이 독같이올라 수탉처럼 푸닥거리기도 하였더랬다.
한번은 내가 만든 비지깨권총을 보고 한 친구가 비아냥거렸다. “야, 그게 터지기나하니? 터지더라두 멀리 못갈걸 가지구 재쌔기는 헝…”, “그래 한번 따끔한 맛을 볼래?”,“응, 어디 똥대있으면 쏴보래이,” 이렇게 태각태각하다가 그애를 저만치 세워 놓고 나의 미형권총을 겨누었다. “따닥”하는 소리가 성냥개비총알이 쌩 날아나가자 그 애가 “앗”하고 소리쳤다.
달려가보니 성냥개비가 그애의 왼눈안쪽에 살짝 꽂혔는데 본능적으로 눈을 꽉 감는바람에 눈알은 다치지 않고 아래위 누까풀사이에 끼운정도였다. 하마트면 펀펀한 아이의 생눈을 망칠번하였다. 그랬던 애가 세월이 지나서 연변의 수부도시에 제일 어른이 되여진후 어쩌다 만났을 때 동년의 이왕지사를 말하다가 서로 “허허”웃고말았지만 나는 그의 눈을 다시 쳐다보지 않을수 없었다.…
쓰잘것없는 얘기는 접어두고, 아큐씨의 정신승리법은 그야말로 격세유전이라 할것이다. 력사를 거슬러올라가 조선왕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실이다. 리조의 통치자들은 일본의 도요도미히데요시에게 패한것을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명조군의 도움으로 겨우 멸국당하지 않았으면서도 교훈을 섭취할 대신 일본을 오랑캐, 왜놈 등으로 경멸하고 얕잡아 보았다. 정신적으로는 일본에 패배하지 않았다고 자위하기에 이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자성과 비판이 나올리가 없었다. 하여 마침내 “을사늑약”을 맺고 나라마저 송두리채 들어맡겼고…
머나먼 로씨야땅의 작가 고리끼마저 울렸다는 아큐씨의 조우와 그의 걸출한 정신승리법을 후세사람들은 두고두고 풍자적의미로 새겨왔고 가끔 입버릇처럼 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투시하면 실로 자타를 눈물겹게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나는 아니다. 설마 내가?”하고 자위한다. 하긴 사회와 인간심리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는것은 쉽지 않다. 내게 득이 되는지의 여부만 따지고 남의 말을 귀가 벌쭉해서 듣고 그대로 휩쓸려들고 그것만이 진실인듯 생각하는 아Q와같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에는 없을가? 오히려 아큐씨를 뺨칠정도로 발전하여 천태만상이 되였다.
현실의 굴욕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정신승리법이라는 자기위안으로 살아가는 아Q가 로신이 그려낸 20세기 초기의 우매한 중국인의 모습이라면 로신도 그 시대 민중들의 실존을 제대로 바라볼수 없었던 지식인의 시선에만 머문것이다. 그 시대의 로신들, 강자들이 만든 사회에서 약자인 아Q와 또 다른 아Q들이 정신승리법에의 의뢰성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팔짱끼고 손짓발짓할수만은 없으렸다.
《아Q정전이 》국내외의 사람들에게서 늘 환기되는 리유는 무엇일가? 아Q가 아직도 생생 살아있기때문이다.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기보다는 핑계대기 좋아하고 자기반성보다는 합리화에 더밝고 그릇된 공권력에도 아부하는 속성이 아직도 중국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들속에도 활개치기때문이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는 꼼짝못하는, 그런 아Q같은 제씨들이 지금도 건너다 보인다. 대방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근거는 자기 감정의 호악에 있지 않다. 요즘 시야비야 하는 사건에서도 말끝마다 초딩수준이라고 깔보던데 그런“초딩 수준”에 당했으면 나는 과연 어느수준일가? 남을 깎느라가 결국 자기밑천을 드러내니 정신승리법인가? 자랑끝에 쉬쓿는다했고 재주를 쓰다가 메주를 쓸수도 있으니 변명같은 넉두리는 그저 안쓰러운 정도가 아니더라.
2014년 4월 1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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