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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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수필) 좀 놀아도 됨까?
2014년 11월 21일 19시 36분  조회:7401  추천:2  작성자: 최균선
                            좀 놀아도 됨까?
 
                               최 균 선
 
   주말은 더 말할것 없고 평시에도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숙제부터 먼저 시작할 념은 없이 그냥 놀고싶어하는 손자가 “좀 놀아도 됨까?”라고 할때마다 저도모르게 별 도배도 안될 싱거운 생각에 젖어든다. 그저 손장난이라도 마냥 놀고싶어하는 마음이 오죽하랴 싶으며 갖잖게 교육가가 되여지는듯 생각이 외곬으로 흘러들어간다.
   로신의 유명한 말 “아이들을 구하라!”라는 말이 떠올려지며 “아이들을 놀게 하라!”는 구호를 만들어본다. “아이들의 놀권리”라는 말은 일가견이 아니라 UN아동권리 협약 31조에 기재되여있는 말이다. 한창 뛰놀아야 할 애들이기에 산으로, 강가로,들로 나가 광활한 천지에서 생명의 환희를 만끽하고 골목길에서 또래들끼리 짝짝꿍을 치며 동년의 매 한페지들을 알락달락하게 채워가야 하는데 그건 책에나 씌여있다.
   지금 아이들은 풍요속에서 “빈곤한 동년세계”를 살고있다. 왜? 겨울같은 때는 어두워 교문을 나서고도 곧장 이런저런 학원에로 종종걸음쳐야 하는 아이들이 그처럼 상식적인 “놀다”를 잊어야 하니 그래 불쌍하지 않단말인가? 자신들에게 당당히 놀권리가 있다는것을 아이들 본신은 물론 부모들조차 생소할것이다. 놀권리라는 말은 일찍 1922년에 사용하였으니 이미 100년도 넘었다.   
   1989년도에 UN아동권리협약에서는 이 협약을 비준한 여러국가들이 아동들에게 휴식하고 여가를 즐기고 그리고 년령에 맞는 놀이와 오락활동을 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세계아동헌장”에서 이미 모든 학교에서 놀이터를 갖추고 아동이 학교를 마치고 난 다음에 놀이터에서 놀이할것을 명시하고있다.
   상술한 협약들에서는 놀이라는것 자체는 교육받을 권리와 더불어 돈이라는 수준의 가치를 지닌다고 언급하고있다. 이는 단순히 지나가는 말로 한 권고차원이 아니다. 그런데 현대의 젊은학부모 자신들도 놀권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서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였기에 아이들은 놀게 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있다. 주말에도 집안에서도 놀지 못하는것은 물론 집밖 아빠트단지내에서도 왁자지껄하며 놀음에 탐한 아이들을 볼수 없고 방과후 야외놀이들은 아예 없는 실정이다.
   대신 현대문명의 혜택이라고 할가, 아니면 재난이라고 할가? 지금은 절대대부분 아이들이 미디어에 로출되여있다. 컴퓨터, 인터넷 이런 모든것을 망라해서 늦은시간까지 유희, 게임의 늪에 빠져서 허우저거리고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것을 논다고 하고있고 가장 재미있는 놀이라고 인식한다. 여가놀이, 오락 이런것들을 다 놀이의 범주로 포함시킬수 있는데 실제로 아이들이 하고있는 컴퓨터게임이라든가 SNS를 통한 어떤 오락활동들은 정해진 루트들을 따라가는 굉장히 구조화된 활동들을 하는것이기때문에 놀이의 본질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지성인들이 아이들의 일상생활에서 바깥놀이가 현저하게 줄어들고있는것에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있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본인들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되 바깥에서 놀이할수 있는 시간, 그리고 공간을 많이 확보해주어야 한다는 이한 문제를 가급적으로, 실효성있게 해결할 사람이 누구일가? 없다.
    옛날에는 상상할수 없을정도로 시대가 그저 발전정도가 아니라 비약하였지만 아이들의 생리적, 심리적인 본성에서 본다면 아이들이 제손으로 만든 원시적이고 조잡한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것이 바람직하고 보다는 흙장난도 하고 바깥에서 뛰여놀며 때때로 나무에도 기여오르고 산으로, 강으로, 들로 나가서 놀기도 하는것이 아이들의 원초적인 본성에 걸맞는다는 사실은 결코 시대성을 띠지 않는다.
   평생을 가르치려면 어릴 때 마음껏 놀게 하라는 유태인의 격언이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아이들의 삶자체가 자꾸 실내, 공간안으로 파고들게 되는 그런 생활구조를 만들어주고 있기때문에 아이들의 동년에서 친자연성이 근원적으로 두절될수밖에 없는것이다. 열명의 아이들중 예닐곱이 놀시간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라 아예 놀시간이 없다는것이다. 더구나 부모가 대부분 짜놓은 일정에 맞추어 학교에서 돌아와도 학원에 가느라고 과장해서 큰숨을 들이킬 틈을 내기가 어렵다.
   주어진 여건도 여건이려니와 실내든 실외든 아이들이 놀시간이 없게 만든 원흉은 학습부담과중이다. 과거에 비할바도 못되게 문명해진 현대학부모들이지만 잘놀고 또 놀줄아는 아이가 행복하고 또 공부도 잘한다는 도리를 리해하지 못하거나 당초에 믿으려고 하지 않으니 이건 문명개화의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이건 리해가 어려운 심오한 과학이 아니라 놀이가 아동의 현재 행복과 관계있는것으로 확인된 상식이다. 어릴때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일수록 창조력이 강하다는것을 믿지 않을수 있지만 사실 그렇다. 옛날 장난질을 하며 성장했지만 뛰여난 인재로 된 사람들이 많다. 조선족의 로일대 유명학자, 과학자들을 이어갈 후계자가 몇몇이 나오고 있는가?
   아이들은 뭇시선을 먹고자란다. 한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가족과 사회 모두의 시선이 필요하다. 특히는 또래들끼리 하는 여러가지 놀음에서 자기 이미지를 형성시키는데 시선ㅡ평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들의 어울림, 그것은 미래사회인의 어울림의 축도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성적인 부모들은 이런 도리를 잘 알고있다.
   그런데 어른들은 벼라별랗게 다 놀면서 자기 아이들이 노는 꼴을 못봐준다. 이건 확실히 유모아가 아니라 자아풍자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가능한껏 살아있는 일체의것 즉 동물이든 식물이든 대자연속에 살아있는는 생명체들을 관찰하고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것이 바로 심신상 건전하게 발육하게 하게 하는 생장소이다. 시내에서 자란 애들은 어쩌다 송아지를 보아도 환성을 지르고 양, 염소를 보아도 신기해 한다.
   아이들이 익숙하지 않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계단은 단지 학문을 닦는데만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 노는 가운데서 자신의 약함을 절감하고 새로운 적응력과 비전을 가져온다. 지금 아이들이 왜 보편적으로 신경질적인가?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내심의 스트레스때문이다. 어른도 그렇지만 아이들은 내심에 화가 들어차면 나머지 공간은 더구나 좁아지는법이다.
   지금 아이들은 육체적으로 겉만 쑥쑥 잘 커가고있지만 자기가 감당할 부분에 대한 적응력의 발달이 정비례되지 못하고있다. 말하자면 내심적인 성숙이 바람직하게 되지 못하고 있다는것이다. 장난질속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자기가 꼭 해야 할바를 찾게 하는것이 요긴하다. 기성지식을 암기하고 문제에 주어진 답을 쓰고 문제풀이를 하는게 인간교육의 최종목적이 아니며 더구나 전부의 내용일수는 없다.
    하건만 현대교육을 점수교육, 차례세우기교육이라고 개괄할수 있다. 환언한다면 아이들을 치렬한 경쟁과 다그침으로 나타날수 있는 타률적교육환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경쟁력은 점수경쟁에서 수련되는것이 아니며 장차 사회경쟁력은 단순히 학위경쟁이 아니라 능력경쟁이며 정감상수경쟁이다.
   바람직한 교육은 어떻게 되여야 하는가? 물론 이에 대하여 리론적으로 멋들어 지게 론술할수 있을것이다. 학교교육이 장차 살아가는데 필요한 각종 지식과 삶의 방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맞되 순수한 교육에 대한 개인의 열정과 취미, 호기심을 실천적으로 무시하는 획일적교육행태라는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로신선생이 “아이들을 구하라!” 라고 납함하였다면 현상황에서는 가히 “아이들 을 놀게 하라!”고 호소할수 있겠다.
 
                               2014년 10월 20일                                 2014년 11월 25일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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