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http://www.zoglo.net/blog/cuijunshan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문학 -> 발표된 작품 -> 수필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기행

밤길을 걷다
2015년 06월 08일 20시 05분  조회:6265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밤길을 걷다.
 
                                      최 균 선
 
   교통이 불편하기로 말이 아니던 그 시절을 겪어본 사람들치고 한번도 밤길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것이요 먼먼 밤길을 걸으면서 다리뼈가 맏아들이라는 속담의 뜻을 몸으로 터득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게다. 그러나 밤길에도 산속의 밤길, 가랑잎에 쪽잠도 그립도록 밤새워 밤길을 재우쳐본 경험은 참으로 각별할것이다. 칠십고래희를 바라보는 나도 멀고 험난한 밤길을 지치도록 걸어본 체험이 있다.
   스므살 잡던 그해였다. 초겨울, 목재소 두마리를 몰고 화집령을 넘고 고동하를 지나 목재판으로 들어갔다. 사흘째 되던날 고동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산판을 향해 길을 재우쳤다. 고동하 림장지휘소 서북쪽으로 뻗은 옛날 소철길을 따라 70리쯤 가면 우리 공사의 산판이 나진다고 해서 황소걸음을 채질하며 걸었지만 길은 축나지 않고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다. 몇십리나 걸었는지 가고가도 산판에 등불은 보이지 않고 어둠만이 천고의 밀림을 무겁게 휩싸고있었다.
   안내할 이도 없었고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가다가는 서고 주밋거리다가 다시 걷노라니 흐릿한 밤하늘인지라 남쪽도 알수 없고 북쪽도 알수 없고 몇리나 남았는지도 알수 없는 외가닥길만 숨박곡질하듯 어둠속에 숨어버리였다. 그냥 갈가? 그래도 한걸음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했다. 무시무시한 밀림의 밤, 그 고요와 적막함과 으스스 등곬을 파고내리는 공포의 전률은 나서 처음이였다.
   그런대로 힘센 둥글이만 믿고 불안한 걸음을 재촉하는데 멀리 수림사이로 한오리 불빛이 새여나와 내눈에 닿았다. 천만다행이라 안도의 한숨을 쥐여짜면서도 시름은 여전히 바장거리였다. 고요하면 두려움이 있고 두려움이 있으면 더구나 적막한 법이라. 조심스러운 움직임속에 고요가 뒤따라서고 어둠속에서 움직이며 움직이는것으로 희망의 등불을 부르며 허둥지둥 앞으로 걸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말라고 하였지만 누군가 걸어서 길이 생겼거늘 막다른 골목에야 이르랴싶었다. 길을 알지못하여 길이 헛갈렸지만 그런줄도 모르고 발길이 시키는대로 소궁둥이에 희망을 얹고 마음이 앞서달렸다. 절망하지 않으면 다른 골령에 들어섰더라도 다시 돌아나오면 될것이다. 마침내 무주공산에서 기진맥진해 쓰러지지 않고 목재군들의 장막이 웅기중기 들어선 개활지에 이르렀다. 숨이 활 풀리였다.
   그런데 이런 맹랑한 일이라구야. 그곳은 지신공사의 산판이였다. 십여리 골안을 헛탕친것이였다. 그러나 빈궁이 독판치는 그 시대였어도 인정은 푸근했다. 앳된 청년이 겁도없이 허둥댄것이 안쓰러웠던지 시래기국에 밥을 말아주던 식당아줌마가 그렇게 고마울수 없었고 새 날이 밝으면 가라고 극진하게 말리는 인부들의 풋풋한 인정도 가슴뜨겁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약정된 오늘 도착하지 못하여 공연히 야단칠 어른들의 얼굴들이 떠올라서 더 앉아뭉갤수가 없었다.
   골안을 빠져나가 서쪽골안으로 한 15리 들어가면 광신공사 목재판이 나진다고 하기에 용기를 내여 떠났다. 인제 방향이 서고 목적지가 정해져서 무서움도 멀찍이 물러섰다. 소고삐를 허리에 매고 련이어 말아문 담배불로 어둠을 쫓으며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산짐승도 잠든시간, 별빛을 빌어 걷는 길은 인생길이 어떠한가를 암시하는듯 싶었다. 산속의 길은 언제나 적막을 깔고 누워있다. 캄캄한 산속의 밤길도 외롭지 않을수 있었던것은 밭갈고 씨뿌리며 정들었던 체대가 덜썩 큰 검정소와 얼룩배기때문이였으리라. 그리고 두려움속에서 주저앉지 않고 내처 걸으면 귀속을 찾을수 있다는것을 밀림의 밤길이 일깨워준듯 싶었다
   마침내 허위단심 우리 우리공사의 산판에 이르렀을 때는 한밤중이였다. 흰자위가 커진 아바이들의 핀잔반 칭찬반을 들으며 잔뜩 얼어든 몸과 피곤을 난로가에 뉘였을 때 안도의 한숨도 침먹은 지네처럼 게나른해졌다. 극도로 지친 나그네에게는 한귀퉁이 잠자리가 행복의 보금자리였고 등걸잠을 잤지만 꿈도 곯아빠진 숙면이였다.
   기실 혼자걷기가 처음이였지 산속의 밤길은 걸은 경험이 두번이나 있었다. 첫번째는 열일곱살나던 해 8월, 삼도만림장에서 한달남아 풀베기를 하다가 앞당겨 나오는 일군들과 함께 밤길을 걸어 흥도자(현태양향소재지)이른것이고 두번째는 열여덟살나던  196 0년 7월 선발대로 고동하에 림장에 들어가서 이듬해 3월하순 귀가할 때이다, 눈석임물이 좔좔 흘러내려서 더 집재할수 없게되자 하산명령이 내렸다. 몇달이나 밀림속에 갇혀 고역을 치러야 했던 목재군들은 하산명령을 접하자마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아예 이 밤으로 떠나는게 좋다고 발설을 내였다.
   이튿날 70리를 걸어 고동하역에서 소철을 타고 팔가자에 나와서 화룡기차를 타도 될것을 성미급하고 집생각이 간절했던지라 모두 밤도와 떠난다고 설레발치는 바람에 나도 덩둘해서 이불짐을 메고 나섰다. 그도그럴것이. 산판에서 여덟달 넘게 쿠리로 살다보니 집에 계신 홀어머니 생각이 불붙듯 하였던 나이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걸었고 밤도와 가는 귀향길이여서 걸음도 힘찼다. 남산고개를 넘어 옛날 독립군들이 넘나들었다는 게굴라즈골안을 나와 다시 몇고개를 넘고 천수동을 빠져나와 와룡에서 대충 아침을 먹고 내처 걷고 걸어서 오후 두시차를 탈수 있도록 관지역까지의 걸음을 재우친 그 길은 참으로 고난의 행군이였다. 게다가 나를 따라 나선 명애라는 광신촌처녀가 기진맥진해서 그녀의 이불짐까지 덧얹어서 지고 걸었지만 마음이 앞서달리는 귀향길인지라 별로 힘든줄도 몰랐다.
   200리 먼길을, 그것도 제시간에 대여야 하는 길을 걸어본 사람은 대통도 짐이 된다는것을 체험했을것이다. 기실 먼길을 걸을 때 자신의 마음이 더 무거운 짐이다. 마음이 가벼우면 백근짐도 가벼운법이다. 그리고 졸리기는하고 길은 가야 할 때 앞사람의 등짐을 잡고 본능적으로 걸을수도 있다는것을 믿을것이다.
   그렇게 나는 청년시절에 세번이나 산속의 밤길을 걸어보았다. 그래서 가끔씩 내가 걸었던 그 산속의 험난한 밤길과 나의 인생길을 점철시켜놓고 반추해본다. 오래동안 돌아설수도 없는 역경에 처한 사람의 인생행로는 혼자 묵묵히 걷는 나그네의 밤길이다. 그러나 그는 휘적휘적 걷고 또 걷는다. 비록 남보다 제일 먼저 새벽을 맞기위한 지어먹은 행보가 아니다. 그러나 밤길을 걸어야 할 운명이라면 새벽은 그에게로 먼저 손짓하게 되여있다.
   이처럼 일단 인생길에 오르면 좋든궂든 내처 걷게 되여있는 삶의 도보요 주막은 멀어도 어디에든 기어이 닿고야 말겠다는 끈기를 지팽이로 삼고 걷지않으면 안되는 운명의 길이다. 남이야 지름길로 가든, 탄탄대로를 따라 노래를 부르며 가든 내앞에 놓인길만을 걸어야 한다. 되돌아설 리유가 없다. 돌아서도 동서남북 세상은 넓어도 내가 가야 할 그 어둠속에 뻗은 불가피면의 밤길이다.
   먼먼 밤길을 걷는것은 어스레한 외눈박이 가로등아래에 소풍처럼 그렇게 기분이 들리는 발걸음이 아니다. 먼길에는 동반자가 있으면 길이 꽤 줄수 있다. 그런데 함께 가다가 곰을 만나서 아무말도 없이 먼저 나무에 올라간 친구같은 그런 동반자라면 홀로걷기만 못하다. 이미 나진길이라도 낯선곳에서 혼자걷는 길이라면 초행길이요 더구나 어두은 밤을 헤치며 가야하는 산속의 길은 걸어본 사람만이 그 절실한 체험에 공감할것이다. 내가 걸은 길이 무섭고 힘들었노라고 옛말처럼 구수하게 말해주어도 잘믿기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먼먼 인생의 밤길을 걸어 오늘 인생의 황혼,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무도 나의 다리를 대신할수 없다. 숙명으로 이어진 나의 길이요 그길을 걷는 주체는 나이다. 안내자가없다. 나혼자 걷는다. 눈을싸맨 나귀가 석마돌을 돌리며 먼길을 떠난듯이 내처 걷는 길일지라도 그냥 걸어야 한다. 그러나 몸뚱이가 걷는게 아니다. 인간의 근본지표는 정신으로서 내육체안에 무엇이 있다. 그것은 정신만이 아니다. 나를 앞으로 떠미는 무엇이 있다. 보이지도 잡을수도 느낄수도 무게도 없는 그것이 무엇일가? 바로 삶에 대한 욕망이고 자존의 끈기이다. 인생길에는 그것이 요긴하다. 그래서 나는 황혼길도 바지런히 걷고걷는다.
 
                       1961년.11. 6 ㅡ 2009년 9 월 15 일   (2015년 장백산 3기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2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548 잊으라 ? 기억하라! 2015-09-03 0 4753
547 력사의 “화석”에 새긴 감회 2015-09-03 0 5029
546 그리고 또 다른것도 2015-09-03 0 4364
545 몇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야 할가? 2015-09-02 0 5165
544 가장 위대한 사랑 2015-08-28 0 4781
543 (진언씨수상록 90)“새도래”를 떠올리며 2015-08-26 0 6823
542 수자의 자탄 2015-08-25 1 4351
541 보물을 론하다 2015-08-25 0 4922
540 신성한 비애 2015-08-20 1 5196
539 세상보기 2015-08-20 1 5424
538 (교육에세이) 매질을 론함 2015-08-19 0 5184
537 문을 여닫으며 2015-08-16 0 5434
536 바람꽃은 피고지는가? 2015-08-16 0 4615
535 (진언씨수상록 89) 사과라니? 웬 말씀을… 2015-08-14 3 6053
534 [수필] 려행의 의미소 2015-08-14 0 5383
533 우리들이 만드는 굴레 2015-08-12 0 5205
532 “인생은 미완성작”을 내면서 2015-08-10 0 5326
531 (시조산책 100보) 71-100보 2015-08-04 0 5291
530 (시조산책100보) 51-70보 2015-07-29 0 6312
529 명상이중주 2015-07-29 0 4968
‹처음  이전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