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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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별곡
2015년 06월 15일 18시 50분  조회:5874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사향별곡
 
   사랑과 죽음이 문학의 영원한 주제라면 고향떠나 세월없이 떠도는 수많은 가슴들 에 피맺히도록 무시로 엉켜도는 향수는 인생극의 영원한 주제가 아닐지…
                  짐승은 모르나니 고향이나마
                  사람은 못잊을것 고향입니다.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하던것
                  잠들면 어느덧 고향입니다.
 
   가끔씪 혼자소리로 읊조려보면 가슴이 뭉클하도록 진한 감동이 묻어나오는 소월님의 명시이다. 그렇지 않으랴!타향천리 해저무는 차창가에 어스름이 스며들 때나 달이 휘영청 밝아서 잠못이루는 밤, 차거운 베개가에 꿈도 고달플 때 나그네의 가슴이 짜릿하도록 갈마드는 향수야말로 형언할길 없는것이여늘,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력대의 명시인들이 그처럼 많은 불후의 사향가를 우리에게 남겨주고 갔겠는가?
   이 지구촌에 사는 그 모든 종족들이 다 자기 향토에 대한 정이 지극하겠지만 현대 우리 배달민족만큼《나의 살던 고향》에 대한 집념이 강한 민족은 드물것이다. 실로 지난세기 10년대 간악한 일제놈들의 철제하에 망국노가 되여 나라잃은 설음을 짓씹으며 살길찾아 천애지각에 흩어져야 했던 우리 조상들의 향수의 정이야말로 력사적비극의 심각성을 띠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따라서 그 사향의 정에 고유한 비애는 민족우환의식을 강화하게 되였는바 말 그대로 수난민족의 비가였다.
    《…두만강을 건넜을 때 / 앞을 가린 눈물에도 / 반드시 / 내 나라를 / 찾겠다 맹세하였소.》이렇게 피터지게 입술을 깨물던 절치부심ㅡ그것이였다.
   남부녀대하고 피눈물을 휘뿌리며 두만강을 건너 살벌한 만주벌 거친 풀숲에 괴나리보짐을 풀어놓고 부대일구며 새 삶터를 개쳑해야 했던 수십만의 흰옷 입은 실향민, 그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나날, 꿈속에서도 고향이 그리워 죽어서라도 고향에 묻히고싶다는 소망으로 힘입어 끈질기기도 했던 우리 조상들, 하지만 대다수가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이 땅에 묻힌 불귀객이 되였으니 눈감고 황천 갈 때 그 망향이야말로 구곡간장에 한으로 서렸으리라.
   사람은 궁핍하게 되면 본원에로 환원하게 되고 처지가 가장 여의롭지 못할 때 향수도 가장 절절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의 사향은 그런 일반적인 생명개체 정서의 공리적추구와 분출같은 심리차원에 맴도는것이 아니였고 전통적리성의력사적 섬광만도 아니였다. 비참한 생활에서의 그 본원적인 공간지향ㅡ귀향의 숙망은 일종 심리우환을 덜어내는 경로로 충당된것도 아니였다. 그것은 바로 빼앗긴 내 나라, 내 고향을 찾아야 한다는 국국항쟁의 군체응집력이였다.
   그토록 향토의식이 골수에 박혔던 실향민의 후예들인 우리가 지난세기말에 이르러서 제2차인구대류동의 격류를 일으켰다. 제3,4세대들이 리향은 조상들의 실향과 결과적으로 같은것이라 할수 있으나 생활의 핍박과 자발적이라는 엄연히 다른 본질적 차이가 있다. 그때의 우리 조상들에게는 자기의 때묻은 고향을 지키느냐 내버리느냐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우리 현세대들에게는 자유적선택기제가 충분히 주어졌 기에 물은 낮은데로 흐르고 사람은 높은데로 향한다는 속담처럼 자기의 가치취향에 따라 서슴없이 정든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생존환경개척에 나섰다. 하여 근 한세기를 내려 줄기차게 땀으로 걸구어왔고 피흘려 지켜온 배달족의 마음이 흔들리고있다. 백년 뿌리내린 옹근 민족사회가 밑으로부터 뒤흔들리고있다.
   월강민의 후손들이 다시 리향민 지어는 월경민의 대오를 짓게 된 이런 사회현상을 력사발전의 불가피적인 추세라 한다면 아무도 가타부타 할수 없고 더구나 막아낼수는 없다. 그러나 정착의식의 가변운 포기는 락관할바 못되며 우리 민족발전행정의 경사는 더구나 아니다. 누군가는 조상들이 물려준 고향이 아무리 소중할지라도 실질적인 부(富)를 줄수 없을 때 주저없이 버려야 한다고 삶의 질적개변은 도시진출에 있으니《촌놈》의 모자를 팽겨치라고 선동하였지만 그게 다 소시민적, 근공리적인 타산에서부터 출발한 추구이지 민족군체리익을 도모하는 원견은 아니다.
   고향에서 쫓긴듯이 떠난 사정이라면 떠날 때 뒤한번 돌아보지 않고 다시는 발길을 안돌린다고 마음먹지만 가슴의 깊은 골방에서는 누구보다 향수가 끓으리라. 그리고 마음의 옹이 풀리고 풋풋한 여유가 생겼을 때 옛정은 봄풀처럼 파랗게 살아날것이다. 내사 자신이 속절없고 미워져서 스스로를 위안하려고 다시 소월님의 사향시를 되새겨 볼뿐이다.
                       
                        고향이 마음속에 있습니까?
                        내 마음속에 고향이 있습니다.                                              
                        제넋이 고향에 있습니까?
                        고향에도 제넋이 있습니다.
 
                            2001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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