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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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라 ? 기억하라!
2015년 09월 03일 19시 05분  조회:4727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잊으라 ? 기억하라!
 
   인생은 유감이다. 많은것이 기억되고 또 많은것이 잊혀지고…그래서 한스럽기도 한 우리네 삶이다. 찬란한 해빛과 령롱한 이슬보다는 궂은비 내리는 날이 더 많은 법이라 기억의 보따리에 마음 짓눌려 일어설수도 분발할수도 전진할수도 없는 경우가 많거니 그 시고 쓰고 매운것을 짓씹어야 하는 고충을 누구에게 하소연하랴.
   그럴때 망각제일주의자들이 설교한다. 망각술을 터득하라. 누군가 당신을 해쳤던 기억도 사람들의 비방도 벗의 배반도 잊으라. 언젠가 치솟은 분노도 증오도 치욕의 순간도 잊으라. 기억은 늘 추억의 꽃을 심어놓지만 망각의 언덕에 이르면 색바래고 시들기마련이다. 잊어야 할것은 빨리, 그리고 깨끗이 잊으라.
  “잔들어 수심을 달래려하니 수심은 더욱 깊어지고 칼을 들어 물을 베니 물은 더구나 줄기차더라”, 아픈 기억의 늪에서 헤여나지 못하면 약자이고 그보다 슬픈 일이 없으리. 긴긴 밤 가위에 눌리지 말고 힘껏 태질하라. 악몽에서 깨여나면 의연히 맑은 새 아침, 태양은 예이제 눈부시고 작은 풀잎에 진주이슬 아롱지리라. 굳어져버린 과거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오늘마저 잃어버릴수 있다.
   망각은 단순히 기억의 말살이 아니다. 망각은 일종의 떨침이고 어젯날 자신과의 겨룸이고 의지의 련마이기도 하다. 모든 고통을 잊는 령단묘약은 세월이라 하지만 기실 망각의 공로이다. 망각은 도전자만이 가질수 있는 기백이고 비장한 결의로서 인생고와 우수에 대한 오연한 무시이고 조소이다.
   그러면 생활의 주재자로 될것이요 더욱 자신있게 새롭게 도전할수 있을것이여니 망각술을 배우라. 기억이 지겨워지면 힘겨울뿐이다. 속절없는 기억의 노예에게는 오직 자학의 채찍뿐이다. 잊으라!침묵이 금이라지만 망각도 금이다. 그대 망각을 앞세우면 희망의 새 언덕에 훨훨 날아오를수 있다. 그리고 또……
   이렇듯 기억은 표상저장에 일심불란인데 망각은 늘“잊어보세타령”이다. 망각의 심연속에 묻혔던 표상들이 때로 회억의 덕에 재생되기도 하지만 보다 많은것이 일단 망각에 묻혀버리면 다시 불귀가 되고만다.
   망각이 정말 만사대길인가? 아니다. 지어먹은 망각이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에 속할뿐이다. 과거는 이미 우리들의 의식의 통제밖에 있는 세월의 언덕 저편에 굳어진 실재이다. 우리 능력으로 어찌해 볼수 없는것은 표상안의 과거이다. 세월의 류수가 기억의 언덕을 씻어내려 형성된 자연적망각의 퇴적은 가능하지만 이른바 기억의 청산(淸算)이란 심리조작이다. 과거로부터 형성된 우리가 과거의 기억을 임의대로 무찔러버린다는것은 자기모순이 아닐수 없다. 흔히 잊어버리고 싶다는것은 기실 잘 잊혀지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아픈 과거를 망각의 언덕에 파묻으려 할수록 봄싹처럼 돋아날수 있다.
   기억에는 력사적인것도 있고 은사권에 속한것도 있다. 력사적이고 공유된 기억은 인류문화보물고의 고지기다. 개체생명으로 말할 때 아무런 기억도 없는 대뇌는 텅빈 창고와 같다. 당신이 실로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의 이름마저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까맣게 잊고 있을것이다.
   이는 확실히 재미있는 심리숨박곡질이다. 만약 당신이 인류력사상의 그 파란만장했던 도경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미군들의 폭격에 무고한 팔루자시민들이 당한 참상도 레바논의 페허로 된 도시도 기억하지 못했을것이며 자유평화의“구세군 들”이 비인간적으로 포로를 학대하는 만행들도 기억하지 못했을것이다.
   망각에 자족하는 사람들의 사상은 샘물과 같아서 영원히 맑게 흐를것이요 해마다 올해가 더 의미있다고 느낄것이다. 한것은 본질상 대동소이한 지난해가 이미 그들의 대뇌에서 모호해졌기때문이다. 기억력이 차한 사람들은 생활은 영원히 의의롭다고 느낄것이며 밝아오는 새 아침처럼 청신하다고 말할것이다. 이것은 생활의 잠규칙인지 반드시 껴안아야 할 행복의 일종인지 모르겠다.
   환득환실이라는 인생유희규칙으로 볼때 기억과 망각에 들어맞으며 더 유익하다고 말할수 있겠다. 오지 않으면 가지 않을것이요 새겨두지 않으면 모호해질 일도 결코 없을것이다. 그러나 현대 우리 겨레들에게는 기억이 너무 생생한것이 문제가 아니라 집체무의식의 병페가 너무 홀가분하게 망각의 품에서 자족하는것이 문제이다.
   너무 멀리 간 기억을 불러올것도 없다. 36년간 일제의 군화에 짓밟힌 망국노의 원한도 세 강대국 수뇌자의 악랄한 롱간질로 빚어진 민족분단의 시말도 악명이 자자한 일제731부대의 생체해부 등 악마의 향연도 망각의 좀먹은 도포자락에 감싸여 영영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단말인가?
   력사에 대해 두가지 관점이 있을수 있다. 전자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력사로서 늘 상기해야 두뇌가 명석해지고 교훈을 섭취할수 있다고 한다. 후자는 이미 과거로 굳어져버린것으로서 잊어버려야 사상보따리를 벗어던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 기계를 잘 돌릴수 있다고 한다. 지금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람들은 피의 력사도 호랑이 담배피운던 얘기를 하듯 담소속에서 흘려버리려 한다.
   기실 이런 사람들도 오직 력사적기억을 고수해야만 력사비극이 재연되지 않을수 있다는것을 알고있다. 참으로 대중성실책과 사회성망각이 형성된다면 누가 장담할것인가? 력사에는 만약이란 단어가 용납되지 않는다. 력사는 그 누가 제구미에 어떻게 수식하든 그저 존재했던 그대로다. 
 프랑스의 첼스라는 녀기자가 제2차대전의 포화속에 침중한 재난을 입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중국의 남경을 탐방하고 대비적으로 쓴 기사가 있다. 
   히로시마: 원자탄의 세례속에 남은 고색창연한 페허를 고스란히 보존하고있다. 일본정부는 2040년까지 보존하려고 타산하고 있다고 외신이 전하고있다.
    남경: 당년의 피해흔적을 어데서나 찾아볼수 없이 멋지게 꾸며놓았다. 피해자는 36만 이상이지만 기념관《울음벽》에 새겨진 수난자 이름은 3000개뿐이였다.
  히로시마: 2001년 공포한데 의하면 원자탄에 죽은 사람이 221893명인데 빠진 사람이 하나 없이 준확하게 기록되여있었다. 
   남경: 남경대도살기념대회는 1985년부터 열었는데 1997년에 기적소리를 울렸고 대회참가자는 2천명좌우밖에 안되였으며 가장 많아서 만명이 안되는데 전시 인구의 1/2800내지 1/500이였다.
   히로시마: 대회참가자가 5만명도 넘는데 전시인구의 1/21였다. 가해자이기는 하지만 피해자이기도 한 일본과 중국사람들의 력사기억은 어찌하여 이렇듯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가? 그래 우리가 망각을 사절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의학상 건망증은 대뇌가 쇠망에로 나가는 징조이다. 인간의 생명운동에서 이보다 더 엄중한 문제가 있겠는가? 만약 민족군체에 건망증이 보편화된다면 그보다 더 큰 비애가 있을것인가? 도덕가는 은혜를 잊은 자는 배은망덕한자요 백성의 질고를 잊은 관리는 반역자라고 한다. 이보다 더한 수치스러운 타매가 있는가? 래세를 설교하는 불학자(佛学者)는 모든 근심과 기쁨을 도외시하는 자는 큰 자유를 얻는다고 말하지만 혁명자는 망국사와 민족수난사와 더불어 선혈로 쓴 항쟁사를 잊은 자들은 배반자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누구든 피로써 쓴 력사를 먹으로, 망각으로 지워버릴수 없다.
   물론 자기 영광의 발족사만을 기억하는자, 자기의 근심걱정만을 안고도는 자들의 용속한 기억을 찬미할 필요는 없다. 자기의 불행했던 기억에만 짓눌려 신음하고있는 사람들을  비겁한자로 락인찍을 때 성공한 기억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돋보이 는가? 망각의 역설은 개체생명의 일종 잔꾀일뿐이지 홍익인간의 비장한 심리자세가 아니다.
   자기 안일을 위한 망각은 현실도피자의 통행증이 될수 있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것을 잊음으로써 자기의 안위를 찾으려 한다면 아Q식 정신승리법에 불과한것이요 살아서 세우는 묘지명일뿐이다. 망각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고도 한다. 아니, 망각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망각도 어쩔수 없는것이 있다. 한 철학자는 자기가 지은 죄악적행각은 기억속에서 지울래야 지울수 없다고 하였다. 그것은 맑은 날에 길을 가면서 자기 그림자를 떼여버릴수 없는것과 같은 도리이다. 기억이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기때문이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그 무서운 기억의 징벌을 참을수 없어 그냥 덮어감추려고 하는것이지 관대한 중국《보살님》들처럼 잊어서가 아니다.
   망각주의자들은 기억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사품치며 흘러왔지만 곧 지평선밖으로 흘러가버릴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흘러오고 흘러가도 끝없이 흘러오는 도도한 강을 장하라고 부른다. 그 기억의 장하도 세월의 먼 흐름따라 증발한다. 그러나 그것 을 미봉하기 위해 력사기재가 시작되였고 문명시대에 와서는 박물관, 도서관, 기념비, 예술작품 등 “매체”로 다시 과거를 경험하고 재현시키면서 스러지려는 기억의 꽃에 자양분을 공급해준다.
   망각은 조물주가 선물한 절묘한 공능이고 “정신적신진대사”라는 일면에서는 중요하고 긍정적이다. 기억에 장기적기억과 단기적기억이 있는데 후자가 흔히 망각의 로획물이 된다. 그러나 기억에는 페허가 없지만 망각에는 필경 빈터가 있을수 있다.
   기억과 망각의 변증관계를 어떻게 대해야 할가? 우리가 흔히 잊었다고 하는것은 이미 기억했던 정보들이다. 그러므로 기억성찰을 앞세우고 기억공능의 영구적발전을 도모함으로써 력사적인것, 민족적인것, 그리고 모든 의로운 기억들을 망각의 백사장에 널어놓아 세월의 썰물에 훌훌 씻겨가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리하여 재연될수도 있는 력사의 우롱을 당하는 비극도 자초하지 말아야겠다.
   개인적으로도 관용의 대문을 두드리는 지팽이로 되는 일상의 잊음은 선호할지언정 말을 타면 소수레를 타던 일을 말짱 잊어버리는것 같은 주관건망증과 개구리 올챙이 때 생각을 못하는 그런 망본은 없어야겠다. 나는 기억만능주의를 선호한다.
 
 
                              2006년 8월 1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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