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산 락화류수 흐르는 물에 계절의 물레방아 돌고돌아…한껏 뜨거워진 여름이 뒹굴던 자리에 어느새 선들바람 앞세우고 가을이 들어선다. 불볕만 쏟아내던 하늘이 훌쩍 높아지고 튕기면 쟁그랑소리가 날듯이 여물어버린 가을해가 축복의 황금해살을 쏟아낸다.
(아, 황금계절이 알뜰히도 그려가는 절대풍경이여 ! ) 격정많고 다정다감한 시인 들은 감탄성을 터칠만도 하리라. 그러나 진정 가을의 의미를 읽으려면 밭두렁에 쭈크 리고 앉아 마라초 말아물고 타산을 굴리는 농부의 얼굴에서 읽어야 하리니.
봄은 움트는 꿈으로, 여름은 무성함으로, 가을은 풍성한 결실로, 겨울은 그 랭정함으로 일년사계절을 생동하게 다채롭게 장식하고있다. 가을의 미는 성숙이다. 하지만 봄날처럼 수줍지 않고 여름처럼 드러내지도 않고 겨울처럼 내향적이 아니다. 가을의 미는 리지적이다. 그러나 봄날처럼 화사하지 않고 여름처럼 재글대지 않으며 겨울처럼 함축적이 못된다. 이렇듯 봄, 가을, 여름, 겨울은 제나름의 특색을 갖지만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 가을을 더 좋아할수도 있다.
옷차림에 신경쓰는 도회지사람들도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지만 사계절의 주인공인 농부들은 그 누구보다 가을의 색채와 무게에 왼심을 쓴다. 가을도 어거리풍작을 고대하는 그 마음들을 헤아려 향촌에 먼저 찾아든다. 가을은 구성진 풍년가로만 엮어지는게 아니다. 당신은 가을의 소리를 마음의 귀로 들어본적이 있는가? 가을은 농부들의 구슬땀을 마시며 성숙을 당겨왔고 황금빛도 푸르던 그 시절부터 땀에젖은 정으로 익혀온것이다. 그래서 가을은 역시 땀으로 대화를 한다.
가을은 아픔도 미소로써 영글게 한다. 농부들의 기억마다 즐거운 사연으로 넘치는것은 가을이 그저 풍성해서만이 아니다. 심은대로 거두겠다는 그 마음들이 겨우내 비였던 땅의 가슴을 끈질긴 사랑으로 채워주었기때문이다. 그러나《모내길세, 모내길 세 성수나는 모내길세...》 라는 노래는 분명 등허리가 휘도록 모내기를 해보지 못한 사람이 성수날 리유가 없는 일을 성수내여 합시사하고 책상앞에서 지어낸 선동이다.
한껏 농익은 산향의 시월은 말그대로 한폭의 수채화이다. 봉마다 골짜기마다 가을빛으로 흥건하게 물들어가면 잎이 작고 얇은 나무들로부터 색갈이를 하는듯 싶다가도 잎이 크고 두꺼운 나무들까지 뒤질세라 가을로 치장한다. 분홍색, 주홍색, 빨강, 노랑나무에 따라 그 색갈은 가지가지로 물들어 산봉을 통채로 불태운다.
겉으로 보는 가을은 울긋불긋한 색채로 말하는듯싶다. 땀동이 쏟으며 살뜰히도 익혀온것이기에 노랗게 익은 가을인듯싶다. 봄날의 파아란 입김으로, 여름의 뜨거운 입김으로 익혔기에 가을은 색채속에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아지랑이 꿈길처럼 마실오는 산향의 정취야 누군들 마다하랴만 농부의 마음에는 분주히 가을이 심어지고 가을이 가꾸어지기에 봄에 흥철거릴 흥심이 없다.
가을은 단풍구경에 신명난이들의 눈에 즐거움만을 선물하는게 아니다. 어슬렁 팔월이면 호미도 헛간벽에 걸리지만 풍성한 하늘의 호흡속에 계절의 걸음은 빨라진다. 그만큼 삶에 쫓기는 생명들에게는 가을이 그냥 분주한 계절이다.
9월에 접어들면 가을은 논벌에서부터 차차 농익어가다가 미구에 재등에 오른다. 알알이 통통 배부른 콩꼬투리에 금빛을 올려주고 과원의 주렁진 사과배에도 단즙을 불어넣고…그래서 향촌의 가을은 둥글어지는 임신부의 몸매처럼 탐탁하다.
가을의 의미를 진정 읽을줄아는 사람들은 향촌에 있다. 분주한 꿀벌이 매미의 한가함을 모르듯이, 그들은 이 가을에 땀을 흘릴 필요성과 드바쁜 일손의 까닭은 알아도 단풍고운 계절의 풍경에 찬탄할 여유가 없다. 한가한 사람들은 할일이 없어 산에 오르지만 산에서 잔뼈굳은 산사람들은 일이 없이는 가을산에 오르지 않는다. 시골사람들에게는 산은 풍경으로가 아니라 실용으로 존재할뿐이기때문이다. 소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가을서정이요 명상이요 하면서 설레발을 놓을뿐이다.
가을은 보이는것만큼 풍성함으로만 안겨질것이다. 저물어가는 이 한계절에 진정 자랑으로 무거운것은 알찬 열매뿐이다. 어느 골짜기에선 가래토시 익어터지는 소리에 깜짞 놀란 까투리가 저장없는 처지에 시린 한숨을 토하지만 다람쥐들은 쓰디쓰고 보잘것없는 도토리의 꿈을 열심히 해몽한다.
매미의 찢어진 울음소리와 풀벌레의 시들해진 울음도 사라지면 한기가 흐르는 청계천에 뻐꾸기가 봄내 흘려버린 속절없음이 락엽에 실려내린다…기러기는 남쪽으로 날아가고 개구리도 모래언덕에 동면을 파건만 잠자리만이 그 가냘픈 날개짓으로 물러가는 영화의 계절을 막아보려고 파닥거린다. 그것들은 만리길 나서야만 하는 철새의 처량한 울음을 읽을줄 모른다.
가을은 미구에 골골마다에 집집마다에 서리지의 명함장을 띄운다. 가을은 삶의 조락을 락엽으로 알린다. 성숙은 왜 조락을 달고 와야하는가? 산꽃들이 씨앗을 잉태 한것은 정녕 태양의 키스자국인가? 락조는 새 아침의 기다림에 얼굴이 붉었지만 가을에는 왜 애수에 젖은 한숨을 날려야 하는가?
고독도 황드는 가을, 만물의 조락에 눈물겨운데 멋내며 찬미시를 읊조릴 사람은 누구일가? 땀에 절어드는 성숙의 계절, 여름찬미시는 왜 드믈가? 죽정이도 여문체 고개를 나불대는 가을의 이률배반을 당신은 어떻게 절감하고있는가? 생각많은 가을과 아롱다롱한 가을을 맞고 보내는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읊어야 진실다울것이냐?
가벼운 미소로
우리들을 만나
되알지게 뇌까리는 소리
해빛이 차분한 음성으로 속삭이는 말
락엽은 색채로가 아니라
그 마음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락엽은 락과하는 지혜로
우리에게 긴 철학을 알려준다…
락엽지는 가을의 숲속에서 한숨처럼 새여나오는 철리시를 읋어보면 가을의 애수가 달래질가? 가을의 진실한 의미는 농토에서 구슬땀 흘린 사람의 가슴에 씌여진다. 가을중의 시주바가지 같다는 덕담같은 속담에 흐믓해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얼룩덜룩하고 해묵은 풍월로 고달픈 마음들을 보듬기에는 향촌길이 아직도 울퉁불퉁하다.
농토에 묻혀 맞고 보낸 15여성상, 나는 끝끝내 가을의 서정을 느껴보지 못하였다. 누렇게 무르익어 흐드러진 풍년벌을 바라보면 배가 부른듯 싶다가도 량식분배의 산수식을 풀어보면 금새 시무룩해지고 남는 정서는 바삐 돌아쳐야 한다는 고달픔이다. 허리아프게 벼가을하고 묶억질이 끝나면 꼭두새벽 안개속에서 콩걷이하고 다시 싣걱질하고 탈곡하고 밤을 새워 공량수레 몰고다니고…
농사일 끝나 눈바람 불어치는 겨울이 오면 다시 새해의 농사차비로 봄을 앞당 기고 다시 드바쁜 농망기가 돌아온다. 다람쥐 채바퀴돌듯 한 농부의 무한(无闲)한 일생, 봄의 서정이 어데서 새여나오며 풍요로움에 감탄이 어데서 절로 나올수 있었던가? 내가 사상이 락후해서인지 모르겠다. 원래 산향의 봄과 가을은 무한히 좋았건만 즐김이란 생활의 여유, 마음의 여유에서 운운할수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가을이란 보는 가을이 따로 있고 체험하는 가을이 따로 있고 느끼는 가을이 따로 있는법이다. 해마다 산촌에 가을은 풍성함을 안고왔지만 나의 메마른 마음밭에는 곱게 물드는 모아산의 단풍이 생략되고 조락과 서글픔만 남았더이다. 오늘 가을이 어쩌구하는 여유로움도 소풍삼아 나선 강둑에서의 여유로움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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