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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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길을 따라
2011년 07월 20일 14시 53분  조회:3962  추천:1  작성자: 김희관
리완빈(李完彬)은 “중국에서 네갈래 장정길을 완주한 제1인자”라는 영예의 타이틀을 지닌 멋진 사나이다. 특수부대 용사처럼 검은색 모자와 옷차림에 군화를 신었다. 그의 더부룩한 코수염과 왕성한 구레나룻은 너무나 힘있어보인다.
 
중국공산당 창건90돐을 맞아 연변라지오TV방송국의 로간부당지부 리성영서기의 발기하에 로세대방송일군들은 리완빈을 초청하여 그의 장정려정과 인생담을 청취했다.“장정길을 따라”보고회는 참으로 감탄과 감동의 도가니였다.
 
리완빈(50세,  조선족)은 연변대학 정치학부 국제무역88학번 졸업생이며 길림성방주대외무역회사의 회사원이다. 그는 회사 김형권리사장의 유력한 지지하에 부인 신향자(申香子, 49세, 왕청현병원 간호사)와 아들 리휘(李辉)를 이끌고2004년10월10일부터2009년10월25일까지5년 동안에 력사상 중국로농홍군 제1,2,4방면군과 홍군 제25군의 네갈래 장정길을 두발로 완주해13개 성,자치구를 통과함으로써 도합5만여리를 걸었다.
 
리완빈일가가 장정길을 걸은 초심은 과연 무엇이였을가?  2003년17세인 아들 리휘가 대학시험을 치르느냐 아니면 군대에 가느냐 하는 관두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국방의무의식을 심어주고 완강한 투지와 건강한 신체를 키워주기 위해 아들에게 “장정길을 걷고나서 군대를 가거라!”라고 제의했다. 아들이 흔쾌히 수락했다.
 
장면1: 2004년10월9일, 그들은 북경에서 찦차로 강서성 서금으로 질주했다. 그들의 장정길은 이렇게 신선놀음마냥 시작됐다. 그런데 북경--심수고속도로 하남성 안양시경내에서 찦차는 커다란 교통사고를 당해 운전수가 당장에서 사망하고 옆에 앉았던 친구는 중상을 입었으며 뒤에 앉았던 리완빈은 얼굴에 여덟바늘을 깁는 상처를 받았다. 다행히 아들은 무사했다. 이래도 장정길을 갈것이냐 말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아들이 물었다.“우리는 계속 가야 합니까?”아버지의 대답이다. “장정길에서는 전진만 있었고 후퇴는 없었다. 희생만 있었고 실패도 없었다.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장정길을 걸으면서 인생의 진가를 맛보아야 한다!”  2004년10월10일, 그들은 중국로농홍군 제1방면군의 장정출발지인 강서성 서금에 도착하여2만5천리 장정의 첫발을 내디디였다.
 
장면2: 아버지와 아들은 노트북과TV카메라, 사진기 그리고 식량, 텐트까지 지고 하루에 적어도12시간에60리 이상씩 걸었다. 그것도 모두 험산준령에 뻗은 오솔길였고 풍찬로숙이 일상이였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더러 장정길을 걸으면서도 공부를 하라고 “잔소리”를 해댄다. 그래서 부자간에는 갈등과 언쟁도 생겼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가 험산준령에서 지칠대로 지친 아들에게 담배를 권하고 담배불까지 붙여주면서 화해를 구하는 명장면을 연출하면서 아빠와 아들 사이라는 위계질서는 무너져버렸다. 참으로 기막힌 인간수업이였다.
 
장면3:  2005년4월4일, 리완빈은 홍군이 지나갔다는 귀주성 개양현의 남강대협곡을 지날 때, 아들은 다른 젊은이와 함께 산을 에돌아 평탄한 길을 걸어가게 하고 자신은 모험적으로 대협곡도전에 나섰다. 남강대협곡은 깊이350여메터나 되는 대협곡이다. 그가 절벽을 타고 악전고투하며250메터까지 내려갈 때 이미 희생을 뒤전으로 했다. 그런데 이제 남은100여메터는 다시 오를수도 내려갈수도 없는 험난한 절벽의 중턱이였다. 그는 노트북과 사진기를 담은 등짐을 절벽아래로 내동댕이치고 두손으로 절벽의 거치른 암석을 이악스럽게 훑다싶이 하면서 미끄러져내려갔는데 다행히 두발이 암반에 멈추어서게 되였다. 그렇게 극한의 사투로 또100여메터 절벽을 타고 내려 그는 드디여 강가에 도착했다. 국제태권도6단 보유자인 리완빈은 끝내 대협곡을 정복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찍은2만여장의 사진이 노트북과 함께 페물이 되여버렸다.  그는 명실공히 생과 사의 시공을 넘나드는 쓴맛을 보았다.
 
장면4: 리완빈은 절절하게 말한다. 부인과 함께 사천성 아바지구의 험산준령속에 뻗은 장정길을 톺아오르다보면 이제까지 같이 살아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는 좋은기회가 되였다고. 한번은 부부 단 둘이 근4000메터나 되는 산봉우리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지친 몸을 달래며 한담을 하는데, 친구들중에 누구는 돈을 꽤나 많이 벌었어도 결국은 돈때문에 망하고, 누구는 인생살이가 잘 안돼서 끝내는 리혼하거나 패가망신을 하고, 그러니 지금은 우리가 가장 행복한 부부가 아닌가!
 
장면5:   2005년10월19일, 아버지와 아들은 강서성 서금(江西省瑞金)으로부터374일을 걸어 홍군 제1방면군의2만5천리 장정 종착점인 섬서성 오기진(陕西省吴起镇)에 도착했다. 그해12월12일, 아들 리휘는 참군하여 영광스러운 중국인민해방군 전사가 됐고 이듬해에는 입당을 하고 우수전사가 되고3등공을 세우고 반장이 되였다.  2만5천리 장정이 그를 강철전사로 키웠다.
 
이러한 명장면외에도5년간 리완빈일가가 장정길에서 겪은 인생드라마는 많고도 많다. 장정길에서 영국력사학자 리애더 등 장정길을 걷는 사람들과 만나 동행하던 얘기, 사천성의 고산지대 장족동포들과 맺어진 깊고도 애절한 우정, 초지를 지나던 아슬아슬한 경과, 옛날에 홍군의 장정을 지원한 농민의 후예가 그들의 짐을 실은 말을 자기네 밀밭에 끌고 가서 푸른 밀풀을 뜯게 하는 정성. 하기에 리완빈은 아들을 억센 청년으로 키우려던 초심으로부터 시작하여 자기도 진정한 장정길의 사나이가 되려는 결의하에 걷고 또 걸었다. 그러한 정보는 그의 홈페이지(www.liwanbin.com)에서 생동하게 볼수 있었다.
 
올해4월말 중공연변주위 선전부 리흥국부장은 연변라지오TV방송국 미디어쎈터에서 기획한 “중국공산당 창건90돐 맞이 —리완빈 홍군장정 출발지점답사”  TV프로 취재팀을 바래면서 타이틀 “장절길을 따라(沿着长征路)>”를 써주었다.
 
리완빈일가처럼 “장정길을 따라”두발로 걸는 위대한 실천은 중국사람들이 “장정정신”을  대대손손 이어가겠다는 선언서이며 선전대이며 파종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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