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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과 약품광고 (강룡운10)
2007년 05월 24일 16시 53분  조회:2962  추천:123  작성자: 강룡운

전단과 약품광고
                                        
강룡운

 
나처럼 나이 지긋한 사람들에게 전단(传单)이라고 말하면 먼저 뇌리에 떠오르는것이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선전삐라나 비밀유인물들이다. 이를테면 고리끼의 장편소설 <<어머니>>에서 빠벨의 어머니가 혁명에 투신한 아들이 짜리경찰들에게 붙잡혀가자 아들을 대신하여 공장으로 가져가던 그 선전삐라, 그리고 한일합방후 항일투사들이 일제침략자들의 삼엄한 경계망을 피해가면서 도처에 내붙이던 <<타도!제국주의>>와 같은 그런 비밀유인물 말이다.

중한수교가 이루어져 한국나들이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전단이란것이 꼭 정치투쟁의 수단으로만 쓰이는것이 아니고 상품마케팅수단으로도 쓰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였다.

지하철입구를 지날라치면 손에 인쇄물을 들고있는 할머니와 아줌마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눠주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는데 하루 스케쥴을 마치고 호텔방에 돌아와 낮에 받아서 보관했던 전단들을 펼쳐보면 대개는 은행대출광고나 중소기업들의 신제품광고같은것들이 많았다. 잠간 공무로 한국에 체류하다가 곧 중국으로 돌아갈 나에게 그런 전단들은 아무런 소용도 없는 무용지물들이라 그냥 휴지통에 넣어버리기가 일쑤였다.

상품경제는 아마 광고마케팅과 함께 동반성장하는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연길시의 길거리에도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였고 해마다 그 대오가 늘어나는 추세다.

작년 음력설에 프랑스에서 석사공부를 하고있는 둘째아들놈이 2년만에 집에 놀러와서, 그애랑 함께 시내로 나갔다가 하남시장앞에서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과 맞띄우게 되였다. 그들이 내게도 손을 내밀었다. 나는 시끄러워 되도록이면 그들을 피하가려고 애썼다. 그런데 아들놈은 그 전단들을 하나하나 받아쥐더니 집에 돌아와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아버지, 후에라도 사람들이 전단을 나눠주면 받아주세요. 아버지 둘째아들도 프랑스에서 그런 일을 해봤습니다. 전단을 나눠주는데 그걸 받아주지 않으면 얼마나 기분이 상하는지 아세요?!>>

그애가 프랑스로 건너간 이듬해 여름방학이였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자리를 얻으려고 빠리시내를 헤매고 다니면서 돈 한푼 더 벌기 위해 전단을 배포하는 일을 해보았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류학하는데 1년에 대략 6000유로(인민페로 약 6만원)가 수요되는데 평생 월급쟁이로만 살아온 나로서는 기껏해야 2000유로밖에 보내주지 못하는 형편이다보니 나머지는 스스로 벌어야만 힘겹게나마 공부를 계속할수 있는 상황이였던것이다.

집에 있을 땐 고생이라곤 전혀 해보지 못한 녀석이지만 이역만리 타국땅에서 방학마다 이런 저런 고생들을 해보면서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릴줄 알게 되었고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의 아픔마저 배려할줄 알게 된 모양이였다.

사실 길거리에서 전단을 배포하는 사람들중에는 농촌에서 올라와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도 있을것이고 도시의 실직자도 있을것이며 나의 아들놈처럼 아르바이트 하는 대학생들도 있을것이고 아이들의 공부뒤바라지를 해주기 위해 얼마 안되는 푼돈벌이에 나선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내가 알고있는 한 친구도 이런 대오에 있는 사람이다. “문화대혁명”때 장춘공업학교를 졸업한 그는 회사가 합자기업으로 넘어가면서 직원들을 많이 줄이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였는데 타의에 의해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한달에 400원이 되나마나한 생활비를 받으며 정년을 많이 앞둔채 퇴직하게 되였다. 그 돈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하고 자식을 공부시키기 어려웠던 그 친구는 60고개를 바라보는 나이에 하는수 없이 길가에 나와 전단광고나 벼룩신문을 배포하는 일에 나서게 되였다.

얼마전에 알게 된 소식이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페암에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엄창난 치료비용을 감당할수 없는 상황인지라 아예 치료를 포기한채 집에 앉아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죽기만을 기다리고있다는것이였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수 없다.

길가에 나와 전단을 배포하는 사람들이 큰돈을 벌수 없다는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여름엔 삼복더위에 비지땀을 벌벌 흘리고 겨울엔 엄동의 혹한속에서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하여 마지못해 이런 일거리라도 찾아나선 사람들일것이다.

아들놈이 다녀간후 나는 광명거리와 인민로가 교차하는 네거리길목에서 신약대약방 “청혈팔미캡슐(清血八味胶囊)” 전단을 나눠주는 한 아즘마에게 하루에 이런 전단을 얼마나 배포하며 그 대가로 돈은 또 얼마나 받느냐고 물어본적 있다.

<<1000장을 나눠주면 20원을 받는데 하루종일 서있어도 한 1200장이 나가나마나 합니다. 2000장이 나간 날은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 연길시의 길거리에서 배포되고있는 전단들에는 약품광고가 유난히 많다. 가짜 약품광고가 하도 많아 나를 포함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약품광고에 거부감을 가지고 전단을 나눠줘도 받아쥐기를 꺼려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가짜 약품광고가 밉더라도 그런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을 미워할 일은 아니다. 그들은 사회의 약자군체들이며 그저 호구지책으로 그런 일에 종사할뿐이다. 그들은 가짜약품과  그 광고내용과는 무관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뒤에는 광고주들이 있다. 큰돈을 벌어도 그들이 벌고 망해도 그들이 망한다.

약품광고내용들이 아무리 허황하고 가짜라 할지라도 길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은 탓하지 말자. 그들은 그저 입에 풀칠하기 위해 그런 전단을 배포할뿐이다. 한장이라도 더 많이 배포하면 그들은 적은 일당이나마 받아 푼돈이나마 손에 쥐게 될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전단을 나눠주면 나처럼 피해 다니지 말고 사회의 약자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흔쾌히 받아주자. 받아쥐고 돌아서서 가짜광고로 치부하고 아예 들여다보지 않아도 좋다. 그냥 휴지통에 집어넣어도 좋다. 거창하게 사랑의 손길을 웨치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어려운 사람이 내미는 손을 잡는 심정으로 나눠주는 전단을 받아주면 되는것이다.

둘째아들놈이 정중히 나에게 권고하던 그 말 한마디를 다시 한번 되뇌여본다.
<<전단을 나눠주면 받아주세요!>>


2007년 4월 24일 길림신문(A3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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