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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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갱신의 길에서 몸부림치는 시인 최룡관
2009년 11월 09일 21시 22분  조회:1412  추천:51  작성자: 김룡운

시 갱신의 길에서 몸부림치는 시인 최룡관


김몽


1.
최룡관 시인의 문집이 세상에 나왔다. 이는  비단 최룡관 시인의 영광일뿐만 아니라 우리 시단의 일대 희사이기도  하다. 이 자리를 빌어 오늘 잔치의 주인공인 최룡관 시인에게 뜨거운 축하를 드리고  그리고 그를 경하하러 온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최시인은 지난 40연간 특히 90년대초부터 득도의 길을 걷는 고행승처럼 치령한 시정신을 가지고 몸부림치면서 살아왔다. 그의 시정신의 특징은 리론으로 창작을 이끌고 창작으로 창작으로 리론을 충실히 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 와중에 그는 자신을 충실히 했을뿐만 아니라 제자양성에도 힘을 기울였고 우리 시단의 새로운 시분위기 형성에도 커다란 공헌을 하였는바 이 면에서 최룡관 시인은 충분한 긍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 조선족 시단에서 시 혁신에 앞장선  이들로는 60대에서 한춘, 김파, 남영전을 들수 있겠다. 40대에서는 일찍 김혁이 신오감도를 갱신을 시도한바 있고 조광명이 불교시로 새로운  시령역을 개척한바 있다. 한춘과 김파와 최룡관과 남영전은 문학에 대한 지대한 사명감을 안고 현대시의 창작과 보급과 선양에서 모두 마멸할수 없는 업적을 쌓은 공신들이다. 남영전은 현대파시는 아닐지라도 토템시라는 새로은 기치를 세워 우리 조선족시단 뿐만 아니라 전반 중국시단에다도 강렬한 반향을 일이켰다.
이네들의 시혁신은 개혁개방후인  80년대 중기와 90년대 초기로부터 시작된다. 더 가까이에서 말하면 서구현대파문학사조의 접근과 함께 발걸음을 떼게 된다. 당시 한춘은 중국문단을 통해 서구문학사조를 접하였고 김파와 최룡관은 한국이이라는 통로를 통해 접하게 되였다. 이들은 현유의 시질서에 회의와 반감을  가지고 혁신을 시도하였다. 즉 부정을 전제로 한것이다. 요컨대 부정은 혁명의 근본요인이다. 1561년 콜롬보스가 지부랄타르해협을 건널 때 거기에서 [세상은 여기서 끝난다]는 패쪽을 보았다. 콜롬보스는 그 패쪽을 떼여버리고 대신 [세상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는 패쪽을 세웠다.
최룡관을 포함해서  우에서 말한 혁신파들이 여지껏 단일하고 무미건조한 현실주의시 혹은 가짜 현실주의에 물젖고  얽매여있다가 갑자기 아주 낯선 문학사조와 부딛쳤을 때 그 신비감과 황홀감과 경이로움은 비할데 없이 컸을 것이다. 이들이 모더니즘의 금자탑인 엘리엣의 [황무지]와 신비평의 경전인 [성스러운 숲]을 만났을 때, 해체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창시자 데리다를 배알하고 이미지즘의 창시자 파운드를 접견하고 구조주의 창시자 소쉬르, 상징주의 사부 보들레르와 통성명하고 과학적 언어는 일차적이고 예술의 언어는 다치적이라고 주장하는 리성주의자 렌셈을 알게 되고 그리고 라캉,랭보, 말라메르, 도르카, 준자로부 등 명인들을 알게 되였을 때 을 때, 이들은 마치 광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듯 콜롬보스가 신대륙을 발견한듯 신비와 경이로움을 금할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감동의 폭이  가장 크고 넓은것이 최룡관시인이였다고 생각된다.
이네들은 그때에야 비로소 은유와 상징의 본질, 그로부터 언어의 변형과 파괴의 참뜻을 알게 되였다. 이들이 시혁신의 기치를 추켜들었던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반기를 들고 이단자로 몰았다. 어찌보면 집단무의식의 결과라고도 볼수 있다. 물론 지금은 우리의 시가 화해와 공존의 마당에 들어서고는 있지만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이나 쉐르알리즘에 대한 반감은 일부 사람들중에서 지금도 계속되고있다.
최룡관 시인을 비롯해서 시혁신파들의 각성은 시란 도대체 무엇인가? 시어란 대관절 무엇인가  하는데로부터 시작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어는 왜서 일상어와 달라야 하는가 ? 일상어와 시어의 구별점은 구경 무엇인가? 왜서 시어는 변형되지 않으면 아니되고 다의성 내지 난해성, 모호성을 띠지 않으면 아니되는가에 대한 해답을 하려는데서부터 발단하고 발전한다.
최룡관시인의 경우 오래동안 사실주의 시를 써 오다가 서구현대파문학사조를 접한후 크게 깨닫고 참회와 각성으로 누벼진 피나는 고백의 시를 쓰는데 이른다. 그는 나의 도솔천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도솔천]은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고 수련과 고행을 통해 다달은 정화된 부활의 보금자라라고도 볼수 있겠다)
《나의 청춘에 나의 머리가 없었다. 남의 머리를 나의 어깨우에 붙히고 다녔다. 나는 남의 말을 받아하는 앵무새였고 살풍경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는 소경이였다. 다리는 나를 업고 남으 꽁무니만 따라다녔다….먼 후날 내 머리가 아님을 알았을 때 람루한 청춘이 환히 보여 미칠것만 같았다. …찾은 다음에는 내문에서 피가 나왔다. 새빨간 피를 흘리고 나서 세상을 보았을 때 세상은 한가지 색갈이 아니고 무지개처럼 현란한 여러가지 색갈이였다.》
 이 시는 뼈저린 각성과 참회라고 볼수 있는데 인간적인 참회와  시적인 참회 모두를 포괄하는것 같다. 그 다음 시인은 참회와 각성을 통해 깨도의 대문에 들어섰음을 증명하고자 시어를 마음대로 변형시키변서 스스로 시의 향연에 도취한다.
 《하늘을 먹는다.하늘은 먹을수록 맛있다 임으로도 먹고 코로도 먹고 손으로도 먹고 …제일 고소한것은 심장으로 먹는거다 심장으로 먹는것은 내가 하늘을 먹는지 하늘이 나릉 먹는지 모른다 실컷 먹고나면 하늘이 나인지 내가 하늘인지 모른다 하늘이 모여와 내가 되고 내가 흩어져  하늘이 되는 일은 누구나 다 꿈꾸어볼 일이다》
 초현실주의 자동기술법으로 씌여진 이 시는 사앙곡 ㅏ상징의 무한한 힘과 나아와 자연이 하나가 되는 사이비한 신비경을 읊조리고있다.
 문학의 갱신에  있어서 특히 시에 갱신에서 사유의 갱신 다음으로  중요한것이 언어의 갱신이다. 다 아다실히 요컨대 언어는 언어는 문학의 시작이고 경과이고  결과이고 모든것이다. 시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도 궁극적으로는 .시어란 무엇인가에 귀결되며 모든 쟁론거리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시어란 구경 무엇인가. 이 문제에 답하려면 우선 시란 무엇인가로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시에 대한 해석이 천차만별이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간단한 것이 [신과의 대화]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구절 인용해보기로 한다.
말씀이 (言)이 관청에 바쳐지면 시(诗)가 되고 나(吾)에 바쳐지면 말(语) 즉 일상언어가 된다. 관청이란 천자가 있는 곳이다. 하느님의 아들이 있는 곳이다.중국적인 개념으로는 신전(神殿)이다. 이 말은 말씀은 신을 위해 쓰게 되면 시가 되고 나를 위해 쓰게 되면 언어가 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신과의 대화]는 시(诗)이며 [사람과의 대화]는 언어(言语)가 되는것이다.여기서 말씀은 곧 마음이므로 사람의 마음이 신과 교감하면 시가 되고 사람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과 의사소통을 하게 되면 일상언어가 된다는 말이다. 그리스에서도 시는 신탁이락 해서 신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했고 공자도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해서 그냥 뜻을 받들어 전할뿐자기가 짓지 않는다고 했고 구약에서도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뿐 자신의 생각을 말할수 없었다. 그러니깐 시(诗)는  言=神 의 자리 곧 사람의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이 같이 자리한 곳인것이다. 그래서 서정시를 [신과의 대화]라고 일컬은다.
 오늘에 와서 신이나 주재자나 하느님은 원뜻을 벗어나 거룩한것, 위대한것, 성스러운것을  뜻하며 또 창조와 통한다.
이렇게 보면 시의 혁신은 결국은 사유의 혁신이고 언어의 혁신이다. 우리가 우래동안 통치를 받아왔던 시어는 많이는 시어가 아닌 일상언어였다. 우리들은 긴 세월 과학의 옷을 입은 일상어를 시어라고 착가하며 살아왔고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착가에서 깨여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최룡관은 불만이 있는것이다. 그래서 시혁신을 시도한것이다. 일상어로부터 시오로 비약핮면 부득불 은유가 있어야 되고 싱징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은유와  상징은 또 불가피적으로 언어의 변형을 주문하게 된다. 진정한 시인은 가장 합당한 변형과 파괴에서 무상의 묘미를 감지한다. 하기에 쵸페탕 포도로프같은 학자는 《문학은 언어로 하여금 스스로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살상도구와 같다 》고 까지 말한바 있다. 최시인의 <언어>라는 시 한수를 보기로 하자.

내가 부르면 상상의 나무가지에
파랗게 날아와 앉는  파랑새무리
새들의 노래에 괜히 신들리는 나
아야 어여 가갸 거겨 구기
한낮이면 구름이 되고
한밤이면 별이 되는
너희들 내몸에서 방울방울 흐르는 피여
손가락끝에서 피빛만 보아도
아하, 온 몸에 전률이 이는것을

-<언어>
최시인의 시각에서 시어란 바로 무궁한 상상의 힘을 지닌 존재로서 내 몸에서 흐르는 피로서의 존재이며 신 들리게 하는 존재이며 전률하게 하는 존재이다.
2.
최시인은 시종여일 게으름없이 끈질기게 시리론을 탐구하면서 시창작에 매진해왔다. 리론선도를 전제로 시창작을 하고있다는데서 최시인의 시혁신은 남다른 외모를 보인다. 최시인의 혁신에는 인식과정이 있었다. 즉 현대시를 발견하고 인식하고 감동하는 필수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간단하 살펴보고자 한다.
 오래동안 단일하고 앙상한 가짜사실주의 시에 얽매여 살아던 시인이 시는 [신과의 대화]라는 엄청남 발견을 하고는 미칠듯이 기뻐한다. 이 발견에는 언어,이미지, 상상, 상징 상관물 등이 속한다. 시인은 이러한 발견을 공허한 부르짖음으로 설교하는것이 아니라 시적행위,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웨치고 있는데 그것이 귀중하다. 우선 시인이 현대시를 어떻게 리해하고있는가를 보기로 하자.

혼돈혼돈 신기신기 은유의 숲 상징의 숲 빙글빙길 돌아돌아돌아 사람은 하늘을 밟고 뒤여다니고 해는 개미가 뚱 차올리고 그름은 뜰에 내려와 열두발 상모로 하늘으 휘휘 젓는다  감는다 감는다 감는다어제 어제 어제 뜬다 뜬다 뜬다 래일 래일 래일 어디 갔냐 갔냐 갔냐 오늘오늘오늘 자식 현대시 정말정말정말 무무무 시시하다
-<현대시>전문
시인은 은유와 상징으로 현란하고 신묘하고 무궁무진한 세상을 만들어놓고 미칠듯이 포옹하고있다. 시는 은유와 상징을 떠나서는 존재할수 없음을 시사하면서 은유와 상징의 중요성을 시화하고있다.
상상의 발견에 대해서는 이렇게 노래부른다.

나는 평생
너의 푸른 마차에 앉아
너의 채찍을 맞으며
무딘 칼을 갈아야 할
우스운 남자
-<너의 채찍을 맞으며>
자유자재라는 여기에 상상의 속성이 있고 영원이라는 여기에  상상의 생명력이 있다. 시인은 이 두가지 의미를 포착했기에 <푸른 마차>라는 상관물을 만들어낸다.
 상징에 대한 시인의 해답을 보기로 하자.

울긋불굿 웃고있는 꽃들의 향기향기
새들의 날개짓에 오르내리는
신비경
기이경
끝은 어디

-<상징1>

하이얀 저 하늘 끝에 깜장별 하나 나는 그 별을 따고싶어 목이 마른다 ..드디어 깜장별을 잡았다 홀제 껍질이 벗겨지면서 별이 황홀을 드러내다 나는 빛에 화뜰 놀라서  잡았던 손을 푼다 천야만야 떨어지면서 나는 한점의 연기로 사라진다 푸른 하늘에  별 하나
-<상징2>
시인은 상징을 [울긋불긋 웃고있는 꽃들의 향기>로 <저 하늘 끝에 걸린 깜장별 하나>라고 의식하면서  그속에서 무한한 신비경을 발견한다. 시인은 묘한 후각이미지, 시각이미지로 상징에 대응하는 <꽃>이미지와 <별>이미지를 창출하고잇다.
시인은 상관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괴짜괴짜괴짜
보들레르 몸에다 랭보 옷을 입고
말라르메 안경에다 발레의 지팽이를 짚은
로르카 장갑에다 준자브로 신을 신고
뚜거덕뚜거덕…
산파산파산파
물속에 들어가 멧새를 낳는
바위속에 들어가 망아지를 낳는
풀잎속에 들어가 궁궐을 지어내는
으하하 미쳐서 미쳐서 미쳐 사는 꽃이야
-<상관물>
시인은 모든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시키는 상관물의 요지경같은 신비를 미친 < 꽃>에 견주고는 미친듯이 기뻐하고있다.
하다면 이미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있는가
넌 내 손 잡고 어디로 가니
조물주야
말짱 첨보는 것들이구나
진달랜가 하면 진달래가 아니고
바윈가 하면 바위가 아니고
강아진가 하면 강아지가 아니고
죄다 이생 저생에도 없는것들
물과 불의 살놀이로 태여난 이쁨들아
-,이미지>

최시인은 이미지가 불조화속에서, 역동속에서 모순속에서 이질속에서 즉 아니러니적인 구조속에서 탄생하고있음을 인지하고있다. 그 전형적인 시구가 <물과 불의 살놀이>이다.
 은유, 상상,상징 ,상관물, 이미지 등 현대시에 대한 시인의 발견과  인식이 두터운 발판이 되여 최시인은 본격적으로 이미지시를 쓰게 되도 쉐르알리즘시를 쓰게 되고 인체시 <누드의 언어>를 쓰게 되며 또 풍만한 실천을 바탕으로 <이미지시론>도 쓰게 된다.
 아래에 최시인의 인체시, 이미지시,쉬르알리즘시에 대해 간략하게 다루어보려고 한다.
ㄱ) 인체의 언어시
최룡관 시인은 시혁신의 한 실험형식으로 인간의 몸을 가지고 <누드의 언어>라는  시를 썼다. 결국 <누드의 언어>도 이미지시지만 그 형식이 너무나 파격적이고 신선하기에 별도로 론의하게 된다. 한국에서 시백의  한 사람으로 불리우는 문덕수 선생은 최룡관의<누드의 언어>에 대해 인체의 언어를 썼다고 찬양한바있거니와 최룡관 시인에 의해 인체의 모든 부위가 시어로 둔갑해 시어의 영예를 지니게 된다. 잠간 살펴보면

따끈한 다리미는
다 구겨진 옷주름을
깔끔하게 펴놓는다

한번 다림이질 하려면
 숯불을 마련해야 한다
숯불을 마련하자면
검둥이로 되여야 한다

따끔한 다림이는 누구나 요구되지만
검둥이로 되기는 누구나 놓아하는것이 아니다

-<손1.>
<손>이  <다림이>라는 엉뚱한 사물로 변모하면서 사색을 요구한다. 시인은 다림름이의 이미지를 통해 철학적으로 희생정신을 도출해내고있다. 작자는 <손>을 가지고  7편의 각기 다른 내용의 시들을 쓰고있는데 시각에 따라 손이 어떤 때는 악기로 되고 어떤 때는  요술주머니가 되고 어떤 때는 돌이 되고 칼이 되고 가위가 되고 마치가 되기도 한다.

그냥
하늘을 가위질한다

한 자락도
베여내지 못하면서

추운 하늘도
더운 하늘도
사락사락

-<다리2>
두 다리를 형태의 상사성에 비기여 가위로 형상화한것이 돋보인다.
하나는 해
하나는 달
해가 가면
다도 가고
달이 가면
해도 간다
낮에도 해와 달
밤에도 해와 달
시간을 살리기도 하고
시긴을 죽이기도 한다

한 쌍둥이
먼먼 인생길에 고달파
-,무릎>1
두개의 슬개골을 해와 달, 나아가서 쌍둥이 이미지로 설정한것이 돋보인다.
<발5>가 아주 기발하게 씌여진것 같다
외씨같단 의미를
인젠 점알것 같다

외씨속에는
파란 잎이 있고
자라는 넌출이 있고
노란 꽃이 있다
꽃속에는 벌들이 먹는 꿀이 있고
꽃 밑에는
고토리만한 외가 외친다
따지 말아요 가시로 찌르겠어요

외씨같단 말의 의미를
인제는 좀 알것 같다

-<발5>
작자는 평범한것 같은 발 외씨속에서 하나의 세계를 본다. 살아 숨쉬는 생명의  푸른 세계를 본다.  아름다운 녀인을 본다. 발이 외씨같다고 할 때 일반적으로 녀인의 발을 두고 하는 소리다. 작자는 멋있게도 외씨속에서 고토리까지 발견하므로써 시를 극치에로 이르게 한다.
ㄴ)이미지시
 최시인의 시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것이 그리고 가장 성공을 거두고 있는것이 이미지시인줄로 안다. 일일이 건드릴수 없으므로 몇수만 살핌의 대상으로 삼는다.

가슴에 총총총
돌별이 떴다

시의 오리에
별들을 뀌여
찬연한 목걸이 만들었다
목걸이를 거는 순간
나도 그대로 돌이 되노라
-<종시>
최룡관 시인은 <돌>이라는 표제로 31수의 시를 썼는데 인용한 시는 그 마지막에 놓인 종결시다. 도대체 돌이 무엇일가. 필자의  나름대로  풀거니와 시인의 마음속에 둥지틀고있는 그 어떤 숭고한 우러름의 대상이나  우상의 상징일수도 있고 민족얼의 다른 이름일수도 있다. 아무튼 참된 무엇인것만은 의심할바없다. 문제는 하나의 <돌>이 어떻게 형상화 되여 우리 감각에 와 닿는가에 있다. 이 짧은 시에서 <돌>은 하늘에 떠있는 별로도 되고 아주 진귀한 목걸이로도 되고 시인 자신으로도 되여 다양한 모습을 지니면서 사고의 넓이와 깊이를 주문한다.
<시2호>를 보자
꽃잎이 혀끝 내미는 순간
바늘귀 떨어져도 우뢰소리
잎은 두손을 받쳐들고
구름은 숨을 죽이였다
드디어 꽃잎들 종소리
잔잔한 물구름처럼 퍼져갔다
산도 땅속으로 잦아들었다가
다시 머리를 든다
-<시2호>
아름다운것의 탄생의 신비성 내지 무한한 마력을 느슨함과 긴장함의 조화로 묶어내고있다. 아름다운것의 탄생은 신기루같은 황홀경을 동반한다. 여기서 시도 례외일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것이 시니깐. [꽃잎이 혀끝을 내밀때] 즉 아름답고 신성한것이 태여날 때 그 경이로움에 놀라 우뢰가 울고 꽃잎이 두손을 받쳐들고 구름도 숨을 죽인다. 시의 힘이 신의 말씀처럼 종소리로 울리고 산도 감격하여 잦아들었다가 다시 머리를 든다. 이  시는 고요함과 긴장감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것의 탄생을 노래부르고있다.
[별]도 격절탄상할만한  이미지시로 되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늘에 송송 구멍 뚫렸나
벌집같은 구멍마다에서
등잔불이 가물거린다.
누굴 기다려
등불은 장밤을
바르르 떨고있는가
-<별>
이 시는 표제를 그리움이라고 달아도 될듯 싶다. 시인의  상상력은 아주 기발하여 하늘엣서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벌집으로 둔갑시키고 또 벌집을 무수한 등불로 만든다. <누굴 기다려 장밤 떨고있는가>에 이르러 시가 전반 시가 콱 익어간다. 그  물음이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킨다. <등불>의 의미에 대해 읽는자는 자기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순간의 즐거움을 누릴수 있다.
이미지시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것이 <꽃병의 동화>이다.

꽃병이 온 몸으로 간다
누런 잎들이 이즈러진 초행길
가면서 배암처럼 껍질을 벗는다
껍질을 벗어서 갈길을 줄인다
…시인이 꽃병을 직관하는 사이
꽃병이 쪼르르르 껍질을 벗겨서
시인을 도르르 감느다
어느새 시인도 꽃병이 된다
두 꽃병이 어깨 나란히
향기로운 껍질을 벗어놓는다
-,꽃병의 동화>

찬란한 동화 드라마가 펼쳐진다. 주인공은 꽃병과 시인이다. 드라마의 진행에 따라  꽃병과 시인이  동일 이미지로 겹쳐진다. 아름다운 시가 아름다운 시인을 만들고 아름다운 시인이 아름다운 시를 만든다. 이 시는 간단없는 자아부정속에서의  거듭남의 기쁨을 노래부른것 같다.
ㄴ) 초현실주의시
최룡관시인의 시에서 초현실주의  시도 적지 않다. 하긴 많은 면에서 리상의 <오감도>를 본보기로 한 흔적이 력력하지만 아무튼 그 실험정신만은 고귀하고 거둔 성과도   충분히 긍정할바이다. 최룡관 시인은 모두 16수의 현대오감도를 창작하였다. 일찍 1990년대 초에 김혁이 <신오감도>를 창작하여 혁신을 꾀한바있고  일정한 파문도 일으킨바 있다.
최룡관 시인의 쉐르알리즘의 시들은 주로 현대사회의 비리에 대한 야유거나 조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듯 싶다.

현대오감도3
가가 문을 열고 달아난다
나가 바가지를 들고달아난다
다가 사발을 들고달아난다
라가 옷을 벗겨가지고달아난다
마가 농짝을 들추어가지고달아난다
바가거미줄을 쓸어가지고 달아난다
사가 쌀마대를 둘러메고 달아난다
빈집 컴컴한 빈집 괴괴한 빈집
홀제 부엉부엉부엉 부엉이 울음성
우르르  꽝꽝 하늘의 박수성

이 시는 세상의 무질서와 혼란 그런 무질서와 혼란에 대한 조소와 풍자로 읽혀진다.

현대오감도 7
1번이 도적을 잡으라 외친다
2번이도적을 잡으라 외친다
3번이도적을 잡으라 외친다
4번이 도적을 잡으라 외친다

9번도 도적을 잡으라 외친다
처음 외침보다 두번째 외침이 더 높다
두번째 외침보다 세번째 외침이 더 높다
세번째 외침보다 네번째 외침이 더 높다
… …
아홉번째 외침이 여덟번째 외침보다 더 높다

수량을 따지면 9번이 1번보다 많아 좋고
등수를 따지면 1번보다 9번이 영예가 더 많다

한마디로 이 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이 세상에는 절대적이 진리가 없다는것을 말하고자 하는것 같다.
이상으로 최룡관 시인의 시들을 서투르게 살펴보았다.
 최시인은 이번 문집에 말짱 현대시만 수록했다고는 하지만 현실주의 시들의 얼굴도  일부 보여 약간 손상을 주는것 같았다. 최시인은 필경은 현실주의시로부터 발자국을 뗀 사람이라 은연중에 찾아오는 현실주의 옛 그림자를 몽땅 털어버릴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례하면 <고향의 축객령>,<양>, <창문>, <소가 주인을 어떻게 볼가요><정판룡 령전에> 등등이다. 이런 시들은 근근히 1차적 비유 내지 직유에 머무르고 말아 은유와 상징으로서의 현대시의  특점을 나타내지 못하고있는것 같다.  한두수만 보기로 하자

위창문
아래창문
두 창문이 있다
위창문으로 혼탁한 공기가
나감은
아래창문으로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기때문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나 위 창문만 칭찬하고
아래 창문을 들볶는다
-<창문>


시인이 어떤 현상을 비판하려는가는 명백하지만 직설적이여서 시로서는 약하다. 그리고 어딘가 동시같은 맛도 없지는 않다.

내 무슨 죄를 지었기로
이 나무에 달리여
찍소리 한번 치지 못하고
백정의 칼을 받아야 하나요

내 무슨 죄를 지었기로
가죽을 발리고
피를 흘리고
꼬치꼬치 굽혀애 하나요
내 무슨 죄를 지었기로
죽어서도 북이 되여
둥-  둥둥둥- 둥둥
슬프게 울어야 하나요
내발로 다니며
이슬 풀을 뜯어먹은 것도 죄던가요
내발로 다니며
흘러가는 내물을 마신것도 죄던가여
-<양>
이 시도 사실을 그대로 렬거하여 씹을 맛이 없다.
 그러나 이런 시들은 최룡관의 시들에서 극 소수에 불과하다.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한마디로 최룡관 시인은 리론으로 시창작을 끌고 시창작으로 시리론을 풍부히 하면서 현대시창작에서 풍만한 성과를  올린 시인이며 우리 시단에 현대시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시인이며 후대들의 육성에서도  공이 많은 시인이다.
 최룡관 시인의 문집의 출간에  다시 한번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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