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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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 시의 양상고찰
2011년 06월 22일 16시 21분  조회:1406  추천:7  작성자: 김룡운

조명희 시의   양상고찰

김룡운

조명희는 한국문학사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는 시인으로 “프로문학의 선구자, 분단의 장벽으로 매몰된 작가, 문학사에서 실종된 작가 등으로 단순하게 정의할수 없는 다양한 의미망을 가진 작가이다.”1)(민병기, <포석 조명희의 생애와 문학> <포석 조명희 전집> 447쪽 동양일보 출판국)

조명희는 운이 나쁘게 한국문학사에서는 근 반세기동안 파묻혀 있었지만 조선문학사에서는 20년대 카프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으로 높이 추대되여 홍명희, 리기영, 최서해 강경애 등과 더불어 큰 비중으로 다루어져왔다. 단지 1938년도에 쓰딸린 정권에 의해 일본간첩죄로 총살당했다는 사실만은 숨겨왔다. 조명희의 대표작 <락동강>은 광복후 줄곧 조선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올랐고 중국조선족고중학교 교과서에서도 <락동강>이 올라 조선과 중국조선족에게는 조명희가 결코 낯선 존재가 아니였다. 그러나 조명희의 시와 희곡, 수필 등에 대해서는 자상히 소개된 것이 없다. 다행히도 한국에서 해금문학 조치가 이루어져 포석회가 생기고 <조명희전집>이 나오면서부터 중국조선족문학권에서도 조명희의 옹근 문학을 접촉할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였다.

선행연구자들이 이미 조명희의 문학에 대해  값에 해당하는 귀중한 가치평가를 하였다. 하지만 조명희의 시를 전면적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에서 어느정도 미흡한 점이 있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 그  보완의 일환으로 동경에서 쓴 초기시  <노수애음>부와 <혈면오음>부, 조선에 와서 쓴 중기시중에서 <봄잔디 위에서>부, 쏘련에 가서 쓴 말기시들을   가지고 조명희 시를 조명해 보려고 한다.

 

1.     방황과 반항- <노수애음>과 <혈면오음>

조명희의 초기시들은 내용상 거개가 방황, 고민 고독, 저항의 양상을 보인다. 그 까닭은 주로 성장환경과 사회제도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 조명희의 간력을 보면 그 가정이 원래는 대단한 권력가이고 대부자였지만 한일합명 이후 몰락하였고 네살에 부친을 잃었고 우국지사였던 큰형 조공희가 지리산에 칩거한다. 한마디로 가정의 몰락과 주권의 상실 ,부친이 사망과  큰형의 칩거 등이 어린 조명희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히고 후에 그가 무산계급의 작가로  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다음 동경에 간후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와중에 엄혹한 현실앞에서 <로동인가? 문학인가?>를 두고 심한 허탈과 모순에서 허덕인다.

이상이 성장환경으로부터 돋아난 방황과  반항이라면 다음은 사회제도에 대한 불만에서 야기된 방황과 반항이다. 일본에 간후  사회제도에 대해 불만을 품고 학생운동에 뛰여든다. 하지만 명확한 판단을 할수 없어 결국 환멸을 느낀다. 그 시기를 조명희는 이렇게 회상하고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환멸이 닥쳤다. 동지에 대한 환멸이다.  인간에 대한 불신임이다. 유심론자들이 으레 하는 말마따나 사회개조보다도 인심개조가 더 급하다고 나는  부르짖었다. 2)([생활기록의 단편] [조명희전집] 331쪽)

이리하여 조명희가 택한 길은 반항이다. “그리하여 나는 반항의 길을 걷게 되였다. 사람이라면 욕하고 저주만 하려 하였다. 그  다음에는 자기 차례다. 자기의 추악면을 들여다 볼 때, 남에게 하던 욕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허무다, 절망이다, 말기 자연주의 문학사상이 가져오는 과학적숙명이다.…때카니즘을 잡을까? 종교적신비주의를 잡을 까 ? 더 한걸음 반항이다. 현실도피다. 신비의 문을 두드리라. 알수 없는 어떤 엄숙한 님앞에, 신앞에 엎드리라. 빌자.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수 없다. 자기의 힘으로 도저히 자기를 구원해 낼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3)(동상)

이상의 고백은 초기시들, <노수애음>부와 <어둠의 춤>부의 시들을 해석하는데서 필수적인 열쇠로 된다. 이 시기의 시들은 완전한 사실주의시들이 아니고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사이에서 심하게 고민하면서 해탈과 허무, 회의 등을 반항으로 뿜어내는 강렬한 스트레스이다. 하기에 이 시기의  시들을 줄잡아 사실주의시로  보는 어떤 평자들의 견해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듯 보인다.     초기의   시들은 <노수애음>( 蘆水哀音) 부와 <어둠의 춤>부로 나뉘여있다. 우선 <노수애음>이라는 표제부터 눈박아볼 필요가 있다. 조명희의 호가 노적(蘆笛)임을 감안하면 < 蘆水哀音)>을 “갈대(내)가 물가(이 세상에서)에서 슬피 우는 소리”로 풀이할수 있다. 이것은 생활난에 모대기고 사상적으로  고민하고 방황하면서 실의에 빠졌던 당시의 작가의 흔들리던 심리와도 잘 어울린다.  이런 까닭으로 <노수애음>부의 시들은 차겁고 회색적이고 많이는 소멸의 미학에 기대고있다..

 

성근 낙목형해(落木形骸) 사이

등불은 냉막(冷寞)으로 꿈으로 비쳐

너의 언 가슴속으로 쉬어나오는 한숨같이

지면을 스쳐가는 바람에 구르는 잎

사르르 굴러 또 사르르

스러져가는 세상 외로운 자의 넋인가

아아 황금의 면영(面影)은 자취도 없다

지금은 가을이다 찬밤이다

바이올린이 떠는 소리도 굴러온 이 마음은

시들은 풀속 벌레의 꿈같다

바람이 부닥치는 외잎 소리에도

혼이 사라지랴든다

 

-<떨어지는 가을>

시적분위기가 아주 우울하고 차겁다. 입 떨어진 <나무해골 > 사이로 한숨을 타고 나뭇잎 하나가 굴러가면서 스러져가는 세상, 외로운 자의 넋으로 흐느낀다. 원래는 황금의 면영으로 되여야 제대로 된 세상이고 제대로 된 가을인데 지금의 세상은  앙상한 낙목형해의 음산한 몰골이다. 하여 시인의 마음은 “시들은 풀속 벌레의  꿈같이 / 바람이 부는 외잎 소리에도 혼이 사라지랴든다”

<고독의 가을>은 고독과 방황의 정서가 더 적라라하게 더 명료하고 더 구체적으 표출되고있는 장시다.

……..

나의 주가( 住家)ㅡ 고독의 세계

그곳은

‛황량(荒凉)과 묘막(渺漠) 여기가

너의 방황 임종의 세계다, 하는 사막

그러나 거기에

알수 없는 신비의 금자탑이

흰 구름 위에 높이 솟아

가없는 회색 안개 속에 감추어 있어

그 꼭대기 위에 요염의 애인이

초록색 고운 면사를 가리고

나의 어린 영혼 돌아보며 손짓하다

……..

오오 사라져가거라 아로새긴 환영아

사막에 곤두박질던 꿈아

대밭에 피투성이 하던 기억아

사라져 가거라 제발 사라져

다만 나는 노래하리라

또 노래 하리라

-<고독의 가을 > 일부

시적 주인공은 자기가 살 집을 찾아 헤매인다. 찾고본즉 아득한 사막 한가운데 자리잡은 <고독>이란 집인데 < 荒凉과 渺漠 여기가 너의 방황 임종의 세계다> 하는 <문패>가 걸려있다. 그 집 위에는 신비의 금자탑이 솟아있고 그 탑 위에서 면사포를 가린 요염한 애인이 <나의 어린 령혼을 돌아보며 손짓한다>.  세상을 개조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려고   하나 합당한 방도와 진로를 찾지 못해 헤매이는 당시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고있다. <금자탑>이나 <애인>은 바로 시인이 찾고자 하는 유토아피아, 그것에 다름아니다. 시인은 금자탑을 찾아, 애인을 찾아 광막한 사막을 필사적으로  헤매이나 끝내는 찾지 못하고 광막한 사막에 쓰려져 슬피 운다. 급기야 시인은 이제껏 자기가 바라던 아름다은 꿈ㅡ <금자탑>이나 <애인>이 한낱 허무의 그림자라는 것을 깨닫고 세상을 한탄하며 자기를 저주하며 구슬피  노래부른다

 

오오 사라져 가거라 아로새긴 환영아

사막에 곤두박질하던 꿈아

대밭에 피투성이 하던 기억아

사라져 가거라 제발 사라져

다만 나는 노래하리라

또 노래 하리라.

-<고독의 가을>

시인은 <제발 사라져 가라고>고 하면서도 <또 노래하리라>고 웨친다. 이 역설적인 울림에서 비록 실패하였지만 계속 멈추지 않고 리상세계를 찾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꿋꿋이 일어서고있다.

<고독자>에서도 실패자, 외로운자, 방황자로서의 모습이 력력히 엿보인다.

 

밤중달이 그의 그림자를 조상(吊丧)함에

그는 가슴을 안고 시들은 풀위에 쓰러지다

바람이 마른 수풀에 울어지날제

낙엽의 넋을 좇아 혼을 끊도다

-<고독자> 일부

시적화자는 세상으로부터 언녕 버려진  존재, 죽은 존재로 되고 화자와 세계가 완전히 단절의 상태에 이른다.

이 시기에 창작된 시들 <노수애음>부와 <어둠춤>부의 시들에는 <낙엽>, <사라지다>,<쓰러지다>,<죽음> ,<떠나가다>등 시어들이 자주 등장하면서 소멸의 미학에 기대게 힌다.

<어둠의 춤>부의 시들은 고독, 방황, 반항 등에서 <노수애음>부와 많은  상사성을 보이나 리듬이 더 굵고 격정이 더 세차다. 그리고 다듬지 않아보이는 그곳에 오히려 더 진실한 감정이 흘러나오는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둠의 춤>부의 시들중에서 수작중의 하나가 <혈면오음>(血面嗚音)인데 제목부터가 <노수애음>에 비해 더 격렬하고 처절하고 선뜻한 감을 준다. <노수애음>이 잔잔한 물처럼 흐르는 서글픈 노래라면 <혈면오음>은 피투성이 얼굴의 사나이가 웨치는 피맺힌 통곡소리라고 할수 잆다.

 

……..

아아 나는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

현실이란 잿더미를 디디고 서서

허무한 나락에 혼을 굴리어

주려 죽은 갈가마귀의 넋을 길들일

곳이 있지

썩은 외가지의 그늘조차 부딪칠데 없어라

 

우주란 영원의 미(迷)의 명부(冥府)

인세란 영구(永久)의 고(苦)의 환권(环圈)

진리란 허황한 미지의 음부(阴府)

시인이 감지하고있는 일제치하의 현실은 잿더미이고 나락이다. 이런 세상이기에 시인은 모든 것을 거부하고 부정한다. 우주란것도 한낱 명부(冥府:염라대왕이 사는곳)에 지나지 않고 인세란것도 인간들을 몰아넣은  고통의 울타리에 자나지 않고 진리란것도 한낱 지옥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문학사상 20년대 초기에 쓴시들 중 세상을 이와 같이 철저하게, 용감하게 부정한 시는 아마 없는줄로 안다. 시인은 이러한 세상을 뒤엎기 위해 싸울것을 맹세한다.  “눈먼 광승(狂僧)의 피 흘린 발자취를 따르리라 ” 그러나 투쟁결심은 굳으나 아직까지 방황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순 없다.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눈먼 광승>이라는 구절이다. 。“눈먼 광승(狂僧)의 피 흘린 발자취를 따르리라 ”는 이런 사상이 훗날 조명희가 무산계급작가로 되는 뿌리가 되였을것이다.

보다싶이 동경류학시 쓴 초기시들은 내용상 방황과 고독, 반항이 많으며 미학적으로는 소멸의 미학이 특징적이다. 그리고 이 시기의 시들에는 <신>, <기도> 등의 시어들도 적지 않게 등장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오리무중에서 길을 찾는 방법중의 하나였을것이다.  총적으로 볼 때 이 시기의 시들은 완전하 자아를 찾지 못한, 그리하여 부득불 방황과 고독과 반항이 어우러지지 않으면 아니될 그런 복합적인 모습의 시들이라 하겠다. 이런 분석은 이  시기에 대한  조명희의 회상ㅡ  인간의 힘, 자기의 힘으로는 구원해낼수 없어 반항은 하면서도 현실도피도 하려 했고 신비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고 신 앞에 엎드려 빌기도 했다는 시인의 고백과도 사개가 맞물린다.

2.     생명례찬과  신랑만주의경향- <봄잔디 위에서>부

 

동경에서 조선에 돌아와 쓴 시들은 시풍이 많은 정도로 바뀐다. 동경시기의 시들이 암울함과 차거움, 반항적정서가 주류인데 반해 조선에 와 쓴 시 <범잔디위에>부의 대부분의   시들이 잔잔하고 신비하고  따스하고 밝고 명랑하다. 이전에 세상을 랭혹하게 보던 날카로운 눈초리가 온화하고 정다운 눈길로 바뀐다. 물론 귀국하여 쓴 시들중 <봄잔디위에>부를 제외하고는 고민 ,현실비판, 방황, 반항 등을 다룬 시들이 여전히 많지만 이러한 시들의 성격이 동경에서 쓴 <노수애음>부와 <혈면오음>부의 시풍격과 상사한데가 많으므로 함께 다루지 않고 이 부분에서는 다만 새로운 시풍으로 눈길을 끄는 <봄잔디위에> 부에 실린 시들만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조선에 와서 쓴 초기시들의 시풍이 변한 까닭을 작자의 고백에서 찾아볼수 있다. “자기의 생각의 걸음은 점점 더 회색 안개속으로 들어만 가고있다. 절대 고독의 세계로 혼자 들어가자. 그 광막한 고독의 세계에서 무릎 꿇고 눈 감고 앉아 명상하자. 가슴속에서 물 밀려나온는 고독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기도하자. 그 기도의  노래를  읊자.”4)([생활기록의 단편] 조명희 전집 328쪽)

   그 기도의 노래의 결과가 바로 조선에 돌아와서 쓴 시들

   <봄잔디위에서>부에 실린 시들이다. 조선에 돌아온 후 시인은 지난 날을 점검하면서 경건한 구도자의 자세로 <수련>에 몰입한다. 수련을 통해 생명과 인간과 우주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며 따라서 인간과 우주를 보다 맑고 밝은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이 시기 조명희   시창작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 타골의 시 <기탄젤리>이다. 여기서 조명희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자비와 사랑, 우주에 대한  경건함을  배운다. 그러나 이런 시기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한다. 극심한 생활고에 모대기자  “이때까지 쌓아왔던 관념의 성이 무너지기 시작 ” “해  타골류의  신랑만주의냐, 그렇지 않으며 고리끼류사실주의냐? ”5)(동상)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사실주의다, 현실에 부닺치자, 뚫고 나가자”는 쪽으로 인생의 키를 돌린다. 특히 주위 사람들로부터 <부르죠아관념병>에 걸렸다는 조소ㅡ가능하게 타골의 영향을 받은 조명희의 시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비난일것이다ㅡ를 받자 결심이 더욱 굳어진다. “현실을 비판하고 체험하며 지식위에 사상의 기초를 쌓자”6)(동상 333쪽)

  가난한 자에게 가장 유혹적인 것이 사회주의다. 당시 일제치하의 조선은 너무나 암담하여 인구의 80%되는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였다. 이런 현실에서 <착취계급을 타도하고 모두가 골고루 잘 살자>는 사회주의 구호가 사람들에게 먹혀들어가지 않을리 없었다. 그리고 식민지여서 항일과 사회주의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개념으로 간주되였다. 조명희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고 할수 있다.

 <현실을 해부하고 비판하자>고 결심을 내린 후 조명희는 조선에 돌아와 쓰기 시작했던 타골식의 신랑만주의를 팽개치고  날카로운 현실반항시ㅡ <내 령혼의 한쪽 기행>을 쓴다.

 

굴종이냐-방랑이냐 그 무엇이냐

박암(薄暗)의 창공이 새로 열리며

방랑! 방랑! 쇠북소리 같이 울려오다

옳다! 방랑이다 내 령(灵)은 여기서 길봇짐 싸다

 

-<내 령혼의 한쪽 기행>

 이 시에서의 방랑은 동경시절의 방향없던 그런 방랑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준비된, 쏘련에로의 망명과 이어진 방랑이다. 그래서 <길봇짐 싸다>를 읽을 때 눈물겨웁다. 어찌보면 그는 쓰딸린한테 가 죽으려고 길봇짐을 쌌던것이다. 그리고 조선에서의 마지막 시 <무제>를 남긴다.

 

어둠에 사는 인간일수록

밝음이 더 그리웁다 자연이 더 그리웁다

산 생명이 펄펄 뛰노는 생활이 몹시 그리웁다

그러나 우리는 한마디 말을 더 하여두자

“어둠에 사는 자는 희미한 빛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 큰 광명이 아니면

차리리 큰 어둠을 바란다

어둠을 지쳐가자 어둠을 지쳐가

그리운 햇빛을 보기 위하여, 그리운 그를 만나기 위하여

이 기나긴 어둠을  전사같이 지쳐 나가자

 

-<무제>일부

  <햇빛>과 <그>는 조명희가 동경하여 마지않던, 착취 없고 살기 좋은 리상세계, 구체적으로는 당시의 쏘련일것이다. <무제>를 국내에서의 마지막 시로 매듭짓고 <전사>임을 선언한 후 소설창작으로 전격 방향을 바꾸었고 결과 처녀작 <땅속으로>를 기점으로 당시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락동강”을 창작한다.

   조명희가 타골류의 신랑만주의를 팽개친 것은 어찌보면 비극이다. 조명희는 시집 <봄잔디위에>를 출간한후 시를 전혀 쓰지 않고 소설창작에만   전념하다가 쏘련에 가서 다시 시창작을 하지만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는바 <봄잔디위에>를 시작과 끝으로 하여 조명희의 진정한 시문학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고 말할수 있다.

 <성숙의 축복>은 하찮은 생물에다 생명의 의의를 부여함으로써 불교적사랑의 경지를 구축한다. <노수애음>이나 < 어둠의 춤>에서 가을이 조락과 사멸의 이미지로 많이 이어지지만 <성숙의 축복>이 와서는 생명례찬으로 된다.

 

 모든 이삭들은 고개를 숙여

‛땅의 어머니여!

우리는 다시 그대에게로 돌아가노라

 

 동무여 고개 숙여 기도하자

저 모든 이삭들과 한가지로…

-<성숙의 축복>

  땅에서 태여나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륜회의식, 어머니는 땅이면서 이 세상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산출하는 거룩한 절대자로 상징된다.

   <경이>(惊异)는 조명희의 시작품중에서 가장 우수한 시라고 볼수 있다.

 

 어머니 좀 들어주서요

 저 황혼(黄昏)의 이야기를

 개천 물소리도 더 한층 가늘어졌나이다

 숲 사이에 어둠이 엿보아 들고

 나무 나무들도 다 기도(祈祷) 드릴 때입니다

 

 어머니 좀 들어주서요

 손잡고 귀 기울여 주서요

저 담 아래 밤나무에

아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뚝” 하고 땅으로 떨어집니다

우주(宇宙)가 새 아들 낳았다고 기별합니다

등(灯)불을 켜 가지고 오서요

새 손님 맞으러 공손히 걸어가십시다

 

-<경이>전문

첫련은 새 생명이 태여나기 직전의 분위기인데 아주 고요하고 조용하여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마음이 사뭇 경건해진다. 새 생명의 탄생은 신비와 거룩함을  동반한다. 하기에 어둠도 가만히 엿보고 개천물도 소리 죽여 조심조심 흐른다. 그리고 모든 나무들이 탄생을 고대하며 엄숙하게 기도를 드린다. 둘째련은 탄생과 영접을 노래한다. 엄숙하고 경건한 기도가 끝나자 아람 하나가, 새 생명 하나가 <뚝>하고 땅에 떨어지며  우주의 새 아들이 고고성을 알린다. 그 신비하고 황홀한 정경을 보고 시적주인공은 <등불을 켜 가지고>, < 새 손님 맞으러 공손히 걸어가십시다>며 어머니에게 권고한다. 땅우에 떨어진 밤 한톨에서 위대한 생명의 탄생을 보아내는 시인의 심경이 대견스럽고 미쁘다. 이 시에는 불교의 화업사상의 후광과 생명찬미의 사상이 잔잔히 흐르고있다. 이 시에서 어머니는 여러가지 복합적의미를 안고있다.  이에 대해 민병기 교수가 <어머니의 이미지는 종교의 의미와 모성애적의미, 우주적의미, 대지적의미, 천상적의미, 생명에 대한  근원적의미가 포함되여있다.> 5)( [포석 조명희의 생애와 문학] [포석 조명희전집]447쪽)고 했는데 아주 적중하여  그 이상의 해석이 필요없다.

<봄잔디위에>도 생명의 환희와 신비가 흘러나오는 시다.

 

 내가 이 잔디밭 위에 뛰노닐 적에

우리 어머니가 이 모양을 보아주실 수 없을가

 

어린 아기가 어머니 젖가슴에 안겨 어리광함같이

내가 이 잔디밭 위에 짓뒹굴 적에

우리 어머니가 이 모양을  참으로 보아주실 수 없을까

 

미칠듯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엄마!엄마!” 소리를 내였더니

땅이“우애!”하고 하늘이“우애!” 하옴에

어느것이 나의 어머니인지 알수 없어라

 

-<봄잔디위에>전문

드넓고 따스한 동화적세계에서 생의 감동이 마음껏 뛰여다니고있다.  잔디밭은 이 세상이기도 하고 어머니의 품이기도 하다. 잔디밭 위에서 마음껏 뛰놀수 있다는것에 생명의 환희를 느끼고 감격에 목메여 <엄마!엄마!> 웨치니 땅과 하늘이 “우애!”, “우애!” 하며 그 소리에 화답한다. 땅과 하늘 모두가 화답하니 시적 주인공은 도대체 누가 자기 의 어머니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가슴 뭉클한 아름다운 감동이다. 이 우주 전체가 어머니인것이다. 이 세상을 <잿더미>로 <천길나락>으로 흘겨보면서 <혈면오음>으로 <어둠의 검>을 뽑아들고 <어둠의 춤>을 추던 시인이 <봄잔디위에>와 같은 시를 쓴 것이 참으로 놀랍다. 이 시에서도 어머니는 우에서 말했듯이 우주적의미, 천상적의미, 대지적의미,종교적의미, 모성적의미 등의 의미를  함께 안고있다.

<봄>도 맑은 향내가 풍기는 시다. <어린 풀싹>과 <작은 새>가 커다란 봄, 우주를 만들고있으며 창조의 신으로 칭송되고있다. (례문은 략함)

<감격의 회상>은 절대적권위자 앞에 드리는 절절한 고백이나 경건한 기도문 같은 시로서 신비와 거룩함이 공존한다.

 

아아 그때 나는 비로소

이 우주덩이를 보았나이다

처음으로 님을 만났었나이다

 

때는 이미 오래더이다

지금 다시 그대를 마음 가운데 그려보며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기도를 드리나이다

아아 영원히 잊지 못할

나의 책상 위에 놓았던 한낱의 도토리!

 

<인간초상찬>은 불교적시각으로 인간의 화해와 사랑을 읊조린 시다. 조명희가 도대체 불교에  어느만큼 심취했고 어느만큼 신봉했는지는 불확실하나 타골의 영향을 많이 받은것만은 분명하다.

 

태양은 곳곳에 미소를 뿌리고

바람과 물결도 가사(袈裟)의 춤을 추거든…

사람에게 만일 선악(善恶)의 눈이 없었던들

서로서로 절하고 기도하올 것을…

 

-<인간초상찬>(人间肖像赞) 마지막 련

 

 시는 시인의 심목중의 가장 위대한 어떤 인물, 신의 모델로서의 인간을 칭송함과 아울러 범애주의, 인간화해, 인간리해 등을 다루고있다.

 이상의 살핌을 통해 <봄잔디위에>부의 시들이 이왕의 암울하고 처절하고 반항적이던 시풍과는 달리 생명찬미에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으며 전에없이 맑고 따스하고 신비하다는 것을 보아냈다. 독단이려니와 가령 조명희가 계속 이런 방향으로 나아갔더라면 가능하게 한반도에서 시인으로서   굴지의 자리에 오를수도  있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1928년 쏘련으로 망명해간 후부터 조명희의 시는 철저하게 고리끼식의 사회주의사실주의시에 경도되며 볼쉐비크정권을 수호하고 찬미하는 시들을 쓰게 된다. 그러나 찬미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대신  1938년, 일본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한다.

 

3.   망명시기의 시문학ㅡ사회주의현실주의시

1928년 조명희는 <락동강> 의 녀주인공 로사가 택했던 길을 따라 쏘련으로 망명하여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의 품에 안기며 그때로부터 시풍이 완전히 바뀌여 사회주의현실주의에 경도한다.

사회주의현실주의는 쏘련에서 산생한 문학사조로서 한시기 사회주의국가의 문학을 통솔하였다. 이 사조의 정초자는 막씸 고리끼다. 1928년부터  쏘련문학계가 쏘련문학의 성질을 새롭게 확정하기 위해 토론을 전개하였고 1932년 5월 쏘련의 <문학보>가 처음으로 사회주의현실주의를 쏘련문학의 성질로 규정하였다. 그해 10월 쓰딸린이 작가들과의 좌담회의에서 이<주의>를 긍정, 1933년 9월 제1차 전쏘작가대표대회에서 <장정>으로 통과, “사회주의사실주의가 쏘련의 문학창작과 문학비평의 기본방침”이라고 명문으로 규정하였다. 그 핵심은 현실의 혁명발전중에서 진실하게 구체적으로 현실을 묘사하며 사회주의 혁명정신으로 광대한 로동인민을 개조하고 교육하는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사회주의현실주의는 쏘베트정권을 가송하고 수령을 칭송하는 문학도구로 전락되고말았다..

 조명희는 쏘련에 간후 첫 작품으로 <짓밟힌 고려>를 창작하고 이어 9수의 시와 8수의 동요를 쓰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그중에서 문학적재부로 인정할만한 것이 <짓밟힌 고려>이다. 이 산문시에서  시인은 고국의 참담한 현실을 가슴 아파하면서 일제의 만행을 폭로규탄하고 일제를 타도하자고 호소한다. 

첫련에서는 구조적측면에서 일제의 감옥으로 된 고려의  참담한 모습과 일제의 죄장을 개괄적으로 폭로하고있으며 2련에서는 그 감옥 같은 세계에서 개개인이 겪고있는 노예 같은 삶을 펼쳐보이며 3련에선 힘을 합쳐 원수 일제를 뒤엎자고 부르짓는다. 이 시는 일제의 죄장을 단죄하는 론고장으로, 뜨거운 애국시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기교적인데서는 미흡하다. 시인은 이 시에서 고려의 광명한 미래를 확신하고있다.

 

저 ㅡ동쪽 하늘에서 붉은 피로 물들인 태양을 떠받치어 올릴것을 거룩한 프롤레타르의 새날이 올것을 굳게 믿고 나아간다!

-<짓밟힌 고려> 일부

 

<10월의  노래>는 쏘베트공화국을 찬양한 시다.

 

 북방에 높이 솟은 새 히말라야산ㅡ소비에트 공화국!

그 앞에 낡은 제도는 골짜기 같이 무너졌다

온 세계는 바다같이 끓는다.

오, 우리의 모국 소비에트공화국의 거룩한 탄생이여!

 

-<10월의 노래> 일부

 솟구치는 격정으로는 족하나 시로서는 별로 할말이 없는 시다. 이 시기의 조명희의 시가 다 이러한데 그렇다고 시인을 나무랄 처지도 못된다. 쏘베트정권하에서 이런 시가 아니면 발표할수 없었기때문이다.

이외 <볼쉐비크의 봄>,<녀자돌격대>,<맹세하고 나가자> 등 기타 시들도 엄격히 말해서 정치구호나 선동문이지 참다운 시는 아니다.

 쏘련에 망명한 후 조명희는 창작성과는 미미했지만 쏘련에다 망명문학의 뿌리를 내리게 했다는 점에서는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쏘련망명시기의 시들과 평론들을 보면  조명희는 진정으로 쏘베트정권을 옹호하고 찬양하였고 프롤레타리아문학을 위해 일체를 다하였다. 그러나 아이니컬하게도 바로 자기가 충성했던 그 정권에 의해 조명희는 일본간첩죄로 처형당한다.

포석 조명희는 시와 소설, 희곡으로 1920년대의 한국문학을 화려하게 장식한 사람으로, 쏘련에다 한국문학권을 구축한 사람으로 그 방명이 한국문학사에 길이길이 남아있을것이다.

 

2011년 6월 13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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