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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래어는 외국어가 아니다
일단 한 가지 전제부터 짚고 넘어가자. 외래어는 외국어인가? 외국어가 우리말에 들어올 때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니다. 외래어란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말이 우리말처럼 쓰이는 말이다. 외래어는 외국어의 어휘를 부분적이나마 음이나 문법에 있어서 그 단어를 모국어 발음 양식에 적합하도록 차용하거나 변형하여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外來語는 外國語가 아니다. 외래어는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며 音韻이나 語形을 자국어의 법칙에 맞도록 하여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외래어표기법
각 나라마다 아마 외래어표기법이 있을 것이다. 언어 교류가 밀접해진 현대사회에서 외래어표기법을 규정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소모가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어의 외래어표기법을 살펴보자.
한국어 외래어는 종래로 표음주의를 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는 ‘1. 새 글자나 부호를 쓰지 않는다. 2. 표음주의를 취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 원칙이 구체화하여 1941년 1월에 「외래어표기법통일안」(어학회)이 발표되었고, 1957년 10월 「들온말 적은 법」(문교부)이 제정 발표되었으며, 1959년 10월에 「로마자의 한글화 표기법」(문교부)이 제정되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앞선 작업의 기초 상에서 1986년 문교부에서 제정한 「외래어 표기법」을 실행한다. 그 총칙을 살펴보면
제1항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 자모만으로 적는다.
제2항 외래어의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
제3항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다.
제4항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5항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
이 원칙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총칙의 제2항과 제3항은 표음주의를 취한다는 원칙의 재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제5항의 ‘이미 굳어진 외래어’에는 한자어가 포함이 된다. 즉 한자어는 이미 한국어로 거의 굳어진 귀화어의 성격을 띠고 있어 이들이 외래어라는 사실을 언중들은 직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관용을 존중한다’는 말은 ‘조조(曹操)’, ‘장판파(長坂坡)’와 같은 외래어는 ‘차오차오’, ‘창반보’처럼 지금의 외래어 표기법으로 적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원칙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그 이전은 한국어 한자음으로 표기하고, 그 이후는 중국어 발음대로 적는다. 그러나 이 같은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아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서구의 외래어를 표기할 때는 별 탈이 없지만, 현대 중국의 인명이나 지명을 적을 때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다. 언어에 규칙이 있음으로 하여 불필요한 분기를 일으키는 것을 막을 수는 있지만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규칙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3. 외래어의 번역
이것은 얼핏 보면 표기법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구별을 해야 한다고 보인다. 표기는 문자화 하는 것을 가리킨다면 번역이란 외국어를 어떤 방법으로 받아 들이냐는 문제이다.
외래어의 번역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音譯과 意譯이 그것이다. 음역은 발음이 비슷한 자국어로 외국어 어휘를 번역하는 것이고, 의역은 원문의 단어나 구절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리는 번역을 말한다. 즉 ‘television’을 ‘텔레비전’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음역이고, ‘電視’라고 번역하는 것은 의역이다. 통계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말은 외래어를 번역함에 있어서 음역을 많이 하는 것 같고, 중국어는 의역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두 언어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문자적 특성 때문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말은 表音文字이다. 즉 소리를 적는 문자라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글은 영어문자와 다를 게 없다. 단지 우리는 모아쓰기를 한다는 것이다.
한자는 表意文字이다. 중국어는 문자 하나하나가 모두 뜻을 가지고 있고 현재는 그 수가 수만 개에 달한다. 새로운 뜻을 가진 문자를 만들기는 쉽지만 그들에게 서로 다른 음을 준다는 것은 너무 방대한 일이다. 그래서 중국어는 글자가 많지만 같은 음을 가진 글자가 많다. 중국어는 성조를 제외한다면 약 400개의 음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말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말은 자음 19개, 모음 21개, 받침 29개이니 이론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음절은 11172개이다. 가능하지만 실제로 안 쓰이는 ‘갹, 귣, 뷁’ 같은 음절은 뺀다고 해도 그 수는 중국어 음절에 비해서 훨씬 많다. 각자 어떤 외래어 표기방법을 더 많이 쓰는가는 그 문자적인 특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 지명이나 인명을 번역하는 데에 있었다. 현행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소리 나는 대로 번역하는 원칙을 고수하지만 이전에 굳어진 한자어 지명이나 인명은 그대로 쓰기 때문에 같은 지명이나 인명에 대한 번역이 두 가지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음역은 어찌됐든 우리말이다. 소리 나는 대로 적었다 해서 그것이 외국어인 것이 아니다. ‘모택동’이나 ‘마오쩌둥’이나, ‘등소평’이나 ‘덩샤오핑’이나, ‘연변’이나 ‘옌볜’이나, ‘연길’이나 ‘옌지’나 다 한 사람 혹은 한 지방을 말하는 우리말이다. 단지 번역하는 방법이 다름에 따라서 표기상의 차이로 나타날 뿐이다.
4. 외래어표기법은 자국민을 위한 것이다.
각자 외래어표기법을 규정하는 것은 자국민의 언어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함이다. 한국교육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전에는 학교마다 한문을 필수로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의 지명이나 인명을 한자음으로 표기해도 별 무리가 없었지만 요즘은 한자를 필수로 가르치는 학교가 줄어듦에 따라 젊은 층들에게는 더 이상 한자음으로 표기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고 할 수 있다. 기성세대는 한자음으로 적는 것이 편하지만 젊은 세대는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해도 무방하다. 여기에서 마찰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지만, 한자음으로 적는 것이 맞는 건지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 맞는 건지는 논의할 것이 못된다. 두 가지 방법 중의 하나를 택한 것일 뿐이지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 논할 것이 아니다.
조선족들에게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라고 물으면 모르긴 몰라도 거의 전부가 펄쩍 뛰면서 분개(?)해 할 것이다. 그리고 당당히 ‘아닙니다. 저는 중국조선족입니다.’라고 밝힐 것이다. 이건 정체성 논란이라서 언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한국의 외래어표기법을 어떤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는지를 망각하지 말자는 뜻에서 적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외국인이다. 소제목에서 말했지만 외래어표기법은 자국민을 위한 것이지 결코 외국인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위해서 만든 법인데 우리가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글로에 한국어 외래어표기법에 관한 글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입장은 ‘延邊’을 ‘옌볜’으로, ‘龍井’을 ‘룽징’이라고 표기해서 기분 나쁘다고 한다. 그러나 왜 기분이 나쁜지, 왜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안 되는지를 표명한 글은 못 봤던 것 같다. 감정상 수용이 안 되는 것과 언어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즉 감성과 과학을 혼돈한 것이다. 그러니 무턱대고 나쁘다 혹은 틀렸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무에도 쓸데없다.
문장에 결론이 있어야 하는데 결론은 못 내리겠다. 잠시 보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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