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사랑 속에서 핀다
류영자
올해 1월의 어느날, 아빠트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던 나는 어느 구석에서 누가 방치한 화분 두개를 발견했다. 화분주인은 키울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라는 식으로 곱다라니 놓아두었다.
먼지를 살짝 뒤집어 쓴 화분은 수분이 부족해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꽃줄기를 만져보니 아직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꽃에 대한 욕심보다 스러져가는 생명에 대한 애착이 나를 충동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화분 두개를 껴안았다.
버려진 화분은 그렇게 우리집에 오게 되였다. 잎이 마르기 시작한 화분에 물을 듬뿍 준후 조심스레 그늘진 곳에 놓았다.
그 때 전화가 걸려왔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바로 나한테 전화오는 연변성주체육구락부(이하 “성주구락부”로 략칭함)의 설화였다. 성주구락부는 우리 민족체육 운동을 올림픽수준으로 올리기 위하여 세워진 민영기업단체이며 2012년부터 해마다 30여명 고아들을 양육하고 60여명의 특수곤난학생들을 면비로 훈련시키고 있다.
나는 우리 집에 꽃화분을 가져온 이야기를 설화한테 상세히 들려주었다. 설화도 불쌍한 꽃이 보고 싶다며 반색했다. 살 가망이 없어보이던 꽃을 정성스레 가꾸었더니 사흘째 되는 날부터 시들었던 줄기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다른 여러 가지 화분들과 어울려 힘찬 생명을 과시했다. 나는 매일같이 싱싱하게 살아나는 꽃의 모습을 폰으로 찍어 설화한테 보냈다. 설화도 기분이 좋아 화분의 이야기를 성주구락부 동학들에게 돌아가며 이야기했다. 그 후로 꽃의 안부를 물어보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우연하게 주어온 화분 두개가 나와 성주구락부 애들의 공동관심사로 되여 우리들의 마음을 뭉치게 했다. 비록 마음에 상처를 받고 어렵게 성장하고 있는 애들이지만 사랑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강했다. 이제 따스한 봄이 오면 이 두개의 화분을 그애들한테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 애들은 이젠 내 생활의 한 부분이 되였고 나와 희로애락을 함께 한지도 어언 6년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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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수십년 동안 나는 내가 맡은 사업에만 열중하고 몰입했다. 그러다 보니 직장밖에 눈길을 돌릴 사이가 없었다. 그렇게 “다람쥐 채 바퀴 돌리듯”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제한된 삶을 살다가 2016년부터 여가를 타서 사회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벌이는 애심공익활동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2년전에 설화를 만난 것도 성주구락부 아이들을 위해 조직한 가을철 애심공익활동에서였다.
그 날, 우리는 성주구락부의 20여명 아이들을 버스에 태우고 야외에 나가 들놀이를 했다. 신나게 뛰노는 애들속에서 한 녀자아이의 그늘 진 얼굴이 문득 내 눈에 잡혔다. 다들 즐겁게 노는데 그애만은 홀로 한쪽 구석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발끝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간혹 고개를 들어 하늘의 흰 구름을 쳐다보면서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군 했다. 그런 소녀에게 말 못할 무슨 사연이 있는 같아 나는 관심을 가지게 되였다. 조용히 그애한테 다가가 일부러 이름과 집 사정같은 것들을 물어보면서 말을 걸었다.
그 애이름은 설화(가명)였다. 엄마는 병으로 하늘나라에 갔고 밤낮 술로 세월을 보내던 아빠는 설화를 고모집에 맡기고 남방에 돈벌러 간후 여직 감감무소식이였다. 아빠의 말을 하는 설화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갈쌍갈쌍 고였다. 어린 나이에 고모네 집에 얹혀 살면서 돌아가신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고 소식이 없는 아빠가 얼마나 그리울가? 나는 그애의 작은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의외로 설화의 손은 차가웠다.
성주구락부에는 설화처럼 불우한 아이들이 많았다. 태여나자부터 부모의 버림을 받은 아이, 사고로 부모를 잃은 아이, 한 쪽 부모 먼저 돌아가는 바람에 어렵게 자란 아이,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다가 할머니가 양로원에 가면서 마지못해 오게 된 어린 친구들도 있었다. 들 놀이가 신나서 모두들 웃고 떠들면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것 같지만 애들 가슴 한 구석에는 각자 이름할수 없는 상처가 자리잡고 있었다.
오후 활동이 끝나자 아이들은 다시 버스에 앉아 성주구락부에 돌아가게 되였다. 아이들은 모두 아쉬운 표정을 지었고 그새 정들었는지 설화는 떨어지기 싫어 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런 설화와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무겁고 쓸쓸해졌다. 물론 성주구락부에서 어려운 재정곤난을 극복하면서 아이들을 맡아 키우고 있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사회 여러 분야의 더욱 많은 사랑의 손길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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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가 집체활동에 잘 참가하고는 있는지?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지? 설화를 만난후 나의 눈앞에는 슬픔에 잠긴 설화의 눈빛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하였다. 보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사랑과 나눔” 의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원래 계획을 앞당겨 아이들의 선물을 가지고 성주구락부에 찾아 갔다. 물론 제일 보고 싶은 애는 설화였다.
성주구락부 리설봉관장님은 대문밖에 까지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는 차에서 선물꾸러미들을 내린후 훈련장으로 향했다. 20여 명의 아이들이 흰 운동복을 입고 교련원의 엄격한 지도하에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었다.
설화의 모습이 인츰 눈에 안겨왔다. 키가 제일 작은 설화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유도련습을 하고 있었는데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여 있었다. 우리들의 눈길이 모두 어린 설화에게 쏠리자 리관장님은 설화는 의지가 아주 강한 아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설화가 성주구락부에 오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리관장님이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파지를 줏고 있는 설화를 발견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그날 차를 몰고 시가지에 가서 채소를 사오다가 길가의 쓰레기통안에서 뭔가 언뜰언뜰 하는것을 발견했다. 그는 하도 이상해 차를 세우고 쓰레기통으로 다가갔다. 그때 쓰레기통안에 들어가 파지를 찾던 설화는 인기척에 놀라 아주 날렵하게 밖으로 훌쩍 뛰여 나왔다. 리관장님은 직업적 본능으로 설화의 날렵한 동작에서 남다른 운동기질을 발견하였다.
학교갈 나이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에게 말못할 사연이 있을 줄 알고 리관장님은 설화의 신상을 알아 보았다. 설화는 한창 학교 다닐 나이에 공부를 못하고 파지나 페품을 주어 팔아 고모네 생활에 보태고 있었다. 리관장님은 그런 사연을 알고 차마 그냥 스쳐지날 수 없었다. 운영경비와 각종 경색의 훈련비용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면서도 그 즉시로 설화고모와 련계를 취한후 설화를 성주구락부에 무료로 입학시켰다. 설화는 이렇게 성주구락부의 꼬맹이 운동선수로 되였던 것이다.
설화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리관장님은 운동하느라 숨을 할딱거리는 설화를 대견스럽게 바라보면서 아쉬운 어조로 말했다。
“설화는 어린 나이에 때이르게 마음에 아픈 상처를 받아서 아이들과 어울리기 힘들어 하고 주눅이 들때가 많습니다. 그 원인으로 지금 설화는 제대로 운동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리관장님의 하신 말을 거듭 되새겨 보았다. 설화를 비롯한 성주구락부 아이들에게는 더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이 수요되였다. 나는 아이들 립장에 서서 문제를 생각하면서 부모같은 마음으로 그 애들 마음 깊숙한 곳에 은페되여 있는 남 모르는 아픔을 조금씩 치유해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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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봄에 퇴직한 나는 성주구락부 아이들의 여름방학과외보도를 맡게 되였다. 자원봉사하러 온 대학생들과 함께 여름방학기간 아이들의 숙제를 검사하고 앞으로 배울 내용들을 예습시켰다. 성주구락부의 아이들은 대부분 사회나 ,부모, 친인으로부터 소외받은 아이들이기에 공부에 대해 자신감이 약하고 평소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걸고 있어 관리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였다. 나는 아이들과 많이 소통하면서 사랑으로 그들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주기로 하였다.
봉사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사 먹이면 간편하고 좋았지만 이러면 애들의 마음을 여는데 도움이 안되였다. 30도 넘는 무더운 삼복철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직접 점심밥을 새로 지어 먹였다. 그리고 매일 아침시장에 가서 신선한 과일들을 사서 중간 휴식시간에 나누어주군 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집밥 같은 따뜻한 밥과 반찬을 먹으면서 아이들은 우리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며 고맙다는 인사말도 건네기 시작했다.
자원봉사가 지속되던 어느날 아침, 교실에 들어선 설화가 살그머니 나의 손에 복숭아 여러 개를 쥐여 주었다. 저녁에 성주구락부에서 간식으로 나누어준 과일을 먹지 않고 보관하였다가 나한테 갖고 온 것이란다. 평소에 말이 적고 무뚝뚝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설화의 가슴에도 봄날과 같은 따스함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설화의 책가방 안에서 책과 부대끼여 몹시 상한 복숭아를 맛나게 몽땅 먹었다. 설화의 정성을 생각해서였다. 자기가 준 복숭아를 맛나게 먹는 내 모습을 보면서 설화는 행복하게 웃었다. 한알 한알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나의 마음도 사랑을 받는 행복으로 달콤하였다. 우리는 누구를 사랑하고 또 누구에게서 사랑받 을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그래서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 고 하지 않았던가!
설화와 아이들과 서로 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자 나와 거리감을 두던 아이들도 내 곁에서 맴돌기 시작하면서 생활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선생님을 도와 앞다투어 교실청소도 하고 작은 음식도 나누어 먹으면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기 시작하였다. 바로 사랑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애들이 앞으로 사회생활에 잘 적응할수 있고 사람들과 정을 나눌수 있는 기초로 되는 것이였다.
세상에 마음을 바로잡는 일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아이들이 옳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긍정적인 행동을 할수 있고 자비감에서 벗어날수 있는것이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여나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애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일을 나의 애심공정의 중요한 일환으로 하기로 하였다.
스포츠 꿈나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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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동안 설화와 성주구락부의 아이들과 접촉하면서 나는 그애들에게 아무리 사랑을 주고 또 주어도 모자라는 것 같았다. 사랑이란 원래 샘처럼 퍼내면 퍼낸만큼 다시 고이는 것이여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많은 것을 주고도 미처 주지 못한 하나 때문에 안타까웠고 다음에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주고만 싶어졌다.
새해를 맞아, 우리 “사랑과 나눔” 의 동아리 회원들은 물만두와 김치 등 푸짐한 음식과 애들이 입을 옷가지들을 차에 싣고 부푼 마음 안고 성주구락부로 찾아갔다. 제일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역시 아이들이 훈련하고 있는 훈련장이였다.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는 아이들 속에서 왜소한 설화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설화는 훈련에 집중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훈련장에 들어 온것도 몰랐다. 자기보다 한 뼘이나 더 큰 남자아이를 상대로 훈련하고 있었다. 한창 기회를 엿보던 설화는 용감히 정면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남자 아이는 슬쩍 몸을 피하면서 중심을 잃은 설화를 쓸어뜨렸다. 설화는 다시 일어나 덤벼들었다. 이번에도 남자아이에게 뒤치기로 제압당하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련속 두번이나 지게 된 설화는 상대를 이기지 못한 안타까움에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한달음에 훈련장으로 달려가 설화를 일으켜 세웠다.
“설화야 , 괜찮아? 참으로 대단해! 넌 소학교부고 상대는 한급 높은 초중부야.”
“이제 요령을 더 많이 장악하고 열심히 훈련하면 다음에 선생님이 설화를 보러 올 때는 꼭 이길 수 있을 거야! 설화는 해낼수 있어! ”
문뜩 앞에 나타난 나를 쳐다보던 설화는 나의 팔을 붙잡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평소에 말수가 적은 설화는 성격이 강하지만 이처럼 자제력을 잃고 눈물을 흘리면서 정서적 파동이 심하였다.
설화 뿐만 아니라 성주구락부의 다른 아이들도 훈련장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평소 생활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판이했다.금방까지만 하여도 얌전하게 눈을 내리 깔고 우물쭈물 하던 아이들이 훈련장에서는 사자와 같은 용맹을 보이는가 하면 또 어떤 아이는 평소 훈련장에서는 성적이 우수하지만 정식 경기에 참가하면 주눅이 들어 꼼짝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애심활동을 단순히 고운 옷이나 맛있는 음식을 갖다주는 것으로 끝내는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억누르는 고독과 외로움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운명의 그늘에서 애들을 완전히 해탈시킬수 있는 것은 물론 사랑과 관심이였다. 허나 더욱 중요한 것은 남들과 똑 같은 대바른 인격을 세워주는 것이였다. 나에게는 애심공정의 새로운 목표가 생기였다.
연변조선족녀성발전촉진회와 함께 애심릴레이 활동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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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음력설이 지나 신종코로나가 예고없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연길도 정태관리에 들어가게 되였다. 설화와 아이들을 못 본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여갔다.음력설이 지나서 보러오마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너무나 안타까웠다. 아이들한테 갖다주려고 했던 화분은 우리 집 창가에서 봄을 맞이하여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 귀여운 꽃망울은 마치도 설화의 발가우리한 얼굴 같았다. 설화를 생각하니 성주구락부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무척 걱정스러워졌다.
리관장님과 통화를 해보니 아이들은 비좁은 숙소에 격리되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많이 불안해 하고 인터넷 온라인 수업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대로 계속 방치해 두면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잃고 학습성적이 많이 떨어질게 불보듯 뻔했다. 그보다도 정서저락으로 아이들의 운동열정도 식어질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달려갈수 없는 상황에서 고민 끝에 그들과 온라인으로 만나 교류하기로 했다. 리관장님은 대뜸 찬성하였다.
우리는 첫 단계로 위챗그룹방 (微信群)을 다. 잠간사이에 22명의 성주구락부 아이들을 위주로 한 위챗방이 꾸려졌다. 하나 하나 위챗방에 가입해 들어오는 익숙한 아이들의 이름을 보는 나의 가슴에는 기쁨의 물결이 일렁이였다.
나는 위챗방 이름을 “해피 독서클럽” (이하 ‘독서 클럽’ 으로 략칭함)이라고 짓고 아이들에게 독서클럽의 취지를 설명하고 아이들한테 이제부터 나를 “서경선생님”이라고 부르라 했다. “서경”(书敬)은 한어로 책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의미라고, 우리도 앞으로 책을 사랑하고 독서를 많이 하자고 약속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너도 나도 독서클럽에 이쁜 이모티콘을 올리면서 기쁜 마음을 전하였다. 고중을 다닐 때 인민교사로 되는 것이 꿈이였는데 나는 드디여 위챗방 독서클럽에서 아이들로부터 “서경선생님” 이라 불리우게 되였다.
위챗방 독서클럽을 세운후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글을 올려야 하고 어떤 글을 읽어주면 좋을가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20여 명 되는 아이들은 년령대가 서로 달랐다. 소학생도 있고 초중생도 있었다. 학년 별로 어울리는 글을 편집해서 올려야 했다. 정태관리를 하는 동안 서점에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우선 집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가운데서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책들을 골랐다. 나는 고르고 고른끝에《채근담》,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세계명언집》,《사랑의 시간들》... 등 여라문권의 책을 손에 쥐였다. 나는 본격적으로 날마다 소학교와 초중부를 나누어 마음의 힐링이 되는 좋은 글들을 검색하고 타자하고 편집하여 독서클럽에 올렸다.
아이들은 그룹방규칙을 엄격히 지키면서 조용한 분위기에서 열심히 올린 글들을 읽었다. 간혹가다 지정된 시간에 글을 올리지 않으면 “띵똥”하고 이모티콘 표정을 올려 나의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하였다. 아이들의 독서열정이 올라간 것이다. 사랑을 희구하는 아이들에게 길 도우미마냥 올바른 길을 가리켜 주고 그 여린 마음들을 보듬어 주는 것이 오래 전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였다. 더우기 정태관리를 받는 아이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해줄 수 있고 힘이 되여줄 수 있다는 기쁨으로 글을 올릴 때마다 나의 마음은 마치 사춘기 소녀로 되돌아간 듯 뿌듯하였다.
독서클럽 윗채방이 설립된후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갑갑한 생활속에서 마음속에 자리잡았던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많이 활달해졌다. 그리고 자비감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학습성적도 점차 제고되기 시작하였다. 비뚤어진 생각을 옳바른 생각으로 고쳐나가는 일이야말로 가장 보람있는 일이다. 독서클럽은 드디여 아이들 모두가 마음의 힐링을 얻는 아늑한 보금자리로, 쉼터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해피독서클럽' 학생들에게 휴대폰 촬영기술을 가르치는 연변병원 정대식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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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봄바람 따라 2022년 4월 10일부터 연길시의 정태관리가 완전히 해제되고 사회 각 계층이 전면복직되였다. 그동안 신종코로나로 몸은 묶여 있었지만 성주구락부애들을 위한 나의 애심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여러개 민간애심단체에서 나와 손을 잡았다. 나는 새로 만난 민간애심단체와 함께 독서클럽 아이들을 보러 성주구락부를 찾았다. 차에는 아이들한테 줄 선물들로 그득하였다. 그 중에는 나와 아이들의 공동 관심사로 되였던 화분 두개도 들어있었다.
아이들이 한창 운동련습하는 시간이라 우리 일행은 리관장님의 인도하에 곧바로 훈련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가 들어섰을 때 훈련장에는 정식 체육경기장처럼 전에 없던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우렁찬 구령속에서 운동훈련에 열정을 보이는 아이들은 예전보다 더 침착해 보였고 동작이 더욱 날파로워 보였다. 아이들은 올해 하반년에 열리게 될 길림성18기운동경기, 길림성소수민족운동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하여 여러 가지 운동항목에 도전하고 있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리관장님이 제정한 운동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 그것은 감동 그 자체였다. 아이들의 완강한 운동정신에서 성주구락부의 아름다운 미래가 보였다.
설화도 제일 중심위치에서 열심히 유도훈련을 하고 있었다. 몇달사이에 키가 한뼘이나 더 컸고 강인한 눈빛에서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허리를 약간 굽히고 상대를 노려보면서 “모로 돌리기” 기술전략으로 대방을 제압하고도 하나 흐트러짐이 없이 방어자세로 재 공격을 시도하였다. 운동실력과 요령에 능숙한 설화앞에서 설화를 련속 두번이나 이겼던 상대는 이미 기가 많이 꺾이였다. 선생님의 짤막한 책망에 눈물을 흘리고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던 설화가 아니였다.
패기와 용감성으로 넘치는 설화를 보면서 리관장님은 “설화는 승벽심이 강한데다가 인젠 참고 견디는 인내심도 많이 제고되였습니다. 장차 훌륭한 유도선수로 성장할수 있는 싹수가 보입니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운동훈련이 끝난 후, 우리는 휴식시간을 리용하여 제 자리에 앉아서 간단한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에서 아이들은 서경선생님께서 독서클럽에 올리는 내용들은 참신하고 배울점이 많으며 읽을수록 자신감이 생긴다고 하였다. 서경선생님의 랑송을 더 많이 올렸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출하였다.
얼굴이 상기되여 앞다투어 발언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학습이나 랑송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고 계속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나는 날마다 향상하는 아이들앞에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의 멋진 모습으로 나서고 싶었다.
'해피독서클럽' 학생들과의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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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깊은 책임의식을 느꼈다. 아이들이 매일 강도가 높은 체육훈련을 견지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학습태도와 생활태도, 정서안정 그리고 리상을 향한 확고한 신념을 올바르게 해야 하였다. 한그루의 나무가 숲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사막에서는 생명의 오아시스같은 존재로 된다. 나는 독서클럽이 아이들의 마음의 안식처이자 성장의 오아시스로 만들기 위하여 더욱 정성을 깃들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설화도 시간을 짜내서 열심히 나를 도와주었다. 독서활동에도 제일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토론에도 맨 앞장에 섰다. 학습성적도 눈에 띄게 올라갔다.
어느 날, 설화가 갑자기 나한테 문자를 보내왔다.
“서경선생님, 저도 앞으로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될래요!”
“내가 어떤 사람이지?”
“아는 것이 많고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보내주는 천사 같은 분이지요!”
설화는 문자와 함께 행복하게 웃는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그 걸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 나면서 저도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말 그렇지 않을까?! 우리 모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설화와 같은 불우한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고 곡진한 사랑을 준다면 그 애들도 장차 이 사회를 따뜻함으로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여나 사랑의 빛과 열을 전해주지 않겠는가!
약동하는 푸름의 계절과 함께 요지음은 매일 기쁜소식들이 들려온다. 여러 애심단체에서 성주구락부 아이들한테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였다는 소식이다. “ 시내물이 모여 강을 이루고 강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이 사랑의 나눔과 섬김들이 모여 조화롭고 평화로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가 심은 작은 꽃 씨앗들이 사랑 속에서 싹이 돋고 꽃망울이 터지며 환한 미소로 세상만방에 어여쁘게 피여날 것이다.
애심단체들과 함께 아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애심공익활동에 참가한지도 어언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사회를 밝게 만드는 선의의 행동은 나의 삶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퇴직하여 직장을 떠나면서 인생이 끝나는 것 같아 많이 허무하고 서운했었다. 그런데 설화와 같은 불우한 애들을 도와주면서 작은 베품과 사랑의 나눔 속에서 잔잔한 행복을 누리며 나의 두번째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 열렸다.
퇴직 후에 내가 만난 세상은 참으로 넓고 할일도 많고 마음먹기에 따라 새로운 삶이 시작될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나는 애심공익활동 그 공동체속에서 바른 인성을 배웠고 자아가치를 실현하며 행복을 느꼈다.
“좋은 사람의 삶은 사소하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거나 잊혀진 친절과 사랑의 행동들로 대부분 채워진다” 는 선인들의 말씀이 있다. 내가 성주구락부 아이들한테 쏟은 미약한 사랑은 자랑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해온 그 일들이 또 다른 사랑의 꽃씨가 되여 아직 눈이 녹지 못한 음지에서 새롭게 피여나기를 바랄 뿐이다.
리설봉 관장과 작품을 토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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