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조선족녀성발전촉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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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2022년 12월 11일 19시 45분  조회:171  추천:5  작성자: 연변조선족녀성발전촉진회
'애심녀성컵' 제6회 생활수기 응모 수상 입선작품

비    석

김정애  

 

    내 결혼식을 열흘 앞두고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안고 울면서 시작한 결혼생활이였음에도 나는 친정부모 못지 않은 시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오고 있다.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보니 내 인생의 큰 버팀목이 되여주신 시부모님께 고마웠던 일들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은 바로 비석에 얽힌 이야기이다.
 
    친정아버지의 3년제까지 지내고 나는 “녀자는 시집 오면 시집 산소를 다니는 게 우선이여야 한다.”는 시아버님의 말씀 대로 10년간 시집 산소만 다니고 친정아버지 산소는 오빠와 올케가 돌보았다. 
    생전에 락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우리 곁을 떠난 아버지가 너무 마음 아프다면서 오빠는 해마다 청명과 추석이면 빠짐없이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군 했다. 언젠가 외지에 출장을 갔을 때에도 오빠는 일부러 짬을 내서 아버지 산소에 찾아오는 정성을 보였다. 
    그런데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그렇게 정성을 다 쏟던 오빠가 몇해전에 갑자기 지병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아버지 산소는 출가외인인 내가 돌보게 되였다.
    그 해 추석이여서 산소에 찾아갔는데 할아버지, 큰아버지 묘지와 나란히 있는 아버지의 묘지에만 비석이 세워지지 않은 걸 보고 나는 내심 서운해나서 사촌오빠한테 비석을 세울 의향을 비추었다. 그러자 그 날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촌올케가 나에게 다른 말을 꺼냈다.
    “옛날부터 녀자는 출가외인이라는 말도 있잖소? 시집 산소도 있는데 해마다 친정 산소를 다니면 시댁 눈치도 보일 텐데 차라리 아버지 묘지를 평으로 잡고 더 다니지 않는 게 어떨가 싶소. 다 정애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요.”
    올케가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 줄은 알겠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은 한없이 슬퍼졌다. 이렇게 아버지를 잊어야 한단 말인가? 소리없이 화장실에서 설음을 달래려 했으나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다. 내 마음속 거룩한 존재나 다름없는 친정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눈앞에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친정아버지는 17살에 참군하여 몇차례 전쟁에 참가하면서 갖은 고생을 다 겪었다. 10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부모님들은 이미 세상을 뜬 뒤였다. 하여 아버지는 한평생 부모님들의 마지막길을 지켜드리지 못한 설음을 안고 살았고 나중에 죽거든 부모님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였다.
    결혼하고 10년 동안 엄마는 불임으로 엄청 고생하였는데 가까운 친척들은 아버지한테 리혼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인생이다. 애를 못 낳는다고 갈라서는 법이 어디 있냐?”면서 오히려 친척들을 설득하였다고 한다.
제대후 아버지는 줄곧 공안부문에서 사업하였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훌륭한 형사경찰이였다. 
 
 
    1980년대초에 연변을 들썽한 총기살인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당시 범인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으셨던 아버지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범인을 나포하는 데 큰 역할을 하여 2등공을 기입받기도 했다. 지금처럼 통신설비가 편리하지 않을 때라 아버지가 며칠째 소식도 없이 집에 돌아오지 않아 식구들이 매일 조마조마하게 보냈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뒤늦게 자식을 본 아버지는 우리한테 매 한번 대지 않고 끔찍이 사랑해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시집 가는 것을 끝내 못 보고 돌아갔다. 그래서인지 살아오면서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늘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공부는 잘하는 애와 비기고 생활은 못한 애와 비겨야 한다.”던 아버지의 말씀은 지금도 내 귀가에 쟁쟁하다. 생활에서는 근검하고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던 아버지의 간곡한 가르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친정아버지의 산소문제가 거론되고나서 며칠후 남편이 조용히 나한테 얘기를 꺼냈다. 사실 내 고민을 진작에 알아차린 남편이 며칠전부터 시아버님과 함께 여기저기 비석을 파는 집들을 돌아보면서 내 마음에 들 것 같은 비석을 몇개 골라놓고 가격까지 흥정하고 왔다는 것이였다. 그러면서 내가 시간이 될 때 함께 가서 비석을 정하고 돌아오는 중양절에 비석을 세우면 무난하다고 하니 그 날로 잡는 게 어떠냐고 물어왔다.
     (이럴 수가…) 생각지도 못한 남편의 처사에 너무 고마워 목이 꺽 메는 것 같았다.
    다음날, 우리 부부는 시아버님과 함께 가서 내 마음에 쏙 드는 비석을 하나 골라놓고 중양절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연변의 10월은 쌀쌀한데 나는 그 날 비만 오지 말았으면 하고 속으로 바랐다. 그것도 그럴 것이 비가 오면 비석 세우는 일도 어렵거니와 더구나 행사에 참가한 분들이 추위로 고생하는 것이 미안해서였다.
   남편이 외지에서 사업하다보니 모든 준비는 시아버님이 자진하여 도맡았다. 세멘트, 벽돌, 모래 등 필요한 재료는 물론, 추운 날 마른 땅을 파기 힘들가 봐 곡괭이, 장갑까지 자상히 마련하였다. 
     더욱 감격스러운 건 비석을 세우는 날 세멘트가 완전히 굳지 않으면 제사상을 받는 례의절차를 밟기 어렵다고 미리 시고모부와 함께 추운 초겨울 날 밖에서 세멘트와 모래를 섞어서 얇은 비석받침대를 만들어놓았다는 점이다. 그리고는 세멘트가 제대로 굳어가는지 걱정되여 매일같이 살펴보았다. 허리를 구부정하고 비석받침대에 정성스레 물을 뿌리던 시아버님의 모습을 난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중양절 날, 우리의 바람 대로 간밤에 내린 보슬비 덕에 땅은 너무 메마르지 않았고 날씨는 해까지 쨍하게 날 정도로 유난히 개이여 걱정보다 춥지 않았다. 남편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하고 시아버님의 선두 지휘하에 시동생, 시고모부, 친정어머니와 녀동생 내외 그리고 사촌오빠와 언니 등 일행 10여명이 함께 했다. 그야말로 사돈이 함께 모인 장소였다.  

     오빠가 전에 가져다 놓은 150근 되는 돌 받침대를 그냥 두고 그 우에 시아버님이 직접 만든 돌받침대를 세멘트로 고정해놓고 맨우에 새 비석을 세웠다. 옆면은 전부 세멘트로 매질을 했지만 정면은 그냥 벽돌 사이사이에만 세멘트를 발랐다. 그렇게 세운 비석에 오빠의 정성, 시아버님의 정성 그리고 우리 딸, 사위들의 정성이 한눈에 다 보여졌다…

    나는 신생아중환자실 관리를 책임진 의사이다보니 이른아침에 출근하여 첫번째로 하는 일이 환자회진이다. 청명이나 추석날도 례외가 아니다. 제사상에 올릴 찹쌀기름떡과 두부구이는 집에서 직접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성의라 말씀하시는 시어머님은 세 아이를 키우면서 병원일에 바쁜 이 며느리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항상 내 몫까지 챙겨주군 한다.
    추석에 무성히 자란 옥수수밭길을 오르다 보면 눈에 안겨오는 9월의 풍경이 가슴 설레이도록 아름답다. 매번 경건한 마음으로 친정아버지 산소에 다녀올 때면 친정아버지를 추억하고, 시부모님들의 사랑을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된다.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우리 친정부모를 기리는 범상치 않은 중양절 행사가 올해도 우리를 기다린다. 돌아가신 두 사돈어르신들을 어떻게 합장하면 좋을가 하고 시아버님은 지금부터 여러모로 또 고민하고 계신다. 너무나 존경스러운 시아버님이시다.
    올해 '3.8'절 날, 시부모님의 결혼 50주년 기념 식사자리에서 시어머님은 “사람을 귀해하는 가문에 시집 가면 행복하다.” 던 친정부모님의 권고 대로 이 가문에 시집 와서 후회 없는 금혼을 맞이하게 되였다고 감개무량해하였다. 
    올해는 시부모님이 금혼을 맞는 해이자 우리 부부가 은혼을 맞는 특별한 해이다. 이 기회를 빌어 존경하는 시부모님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 
    앞으로 친정부모님 못지 않은 시부모님들을 더 잘 공경하리라 생각하면서 우리 부부도 이런 부모가 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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