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르의 생애와 작품
신금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독일의 랑만주의 문학가이며 민중시인인 하이네와 그의 시작품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우리 동양에서 제일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인도시인-타고르에 대해서 살펴보려합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 시인님을 마이크 앞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림금산—안녕하세요?
신금철: 타고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명성높은 시인입니다. 동양의 시성이며 나아가서는 세계적 시성으로 눈부신 빛을 발하다 간 시인이지요. 특히 동양시인으로서 처음으로 노별문학상을 수상했다는것이 더욱 주목을 끌고있지않는가 생각합니다. 먼저 타고르의 생평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지요.
림금산— 타고르(1861~1941)는14남매 중 막내아들로 인도의 도시 칼캐타에서 태어났다.
타고르의 집안은 대대로 인도의 전통과 격조 높은 교양을 엄수하면서도 사상적 예술적 향취가 짙은 가정으로 인도의 귀족계급에 속해 있었다. 말하자면 타고르는 이러한 존귀한 가정의 영향 속에서 일찍부터 예술과 사상에 눈뜰 예지를 부여받은 셈이었다.
한편 타고르가정은 계급적 귀족인 동시에 정신적 귀족성에 있어서도 드문 가계를 갖고 있었다.
생전에‘프린스’(哲人)라는 존칭으로 불리던 타고르의 조부는 매우 명랑하고 풍부한 성격으로 인생을 당당하게 향수하며 마쳤고, 그의 생애와 대조적으로 타고르의 부친인 데벤드라나드는 종교적 명상에 정신을 집중하는 성격이었다. 그리하여 만년에는‘大賢’이라 부름 받을 정도로 종교정신에 투철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부친은 로이의 친우였다. 람 모한 로이는 인도의‘브라흐마 사마지’ 교단의 창시자였다. 로이의 사망 후 이 교단은 타고르의 부친에 의해 이끌어졌다.
따라서 타고르의 소년시대에 그의 가정을 지배하고 있던 종교감은 ‘무형의 神과 이성에의 존경’이란 특징을 몹시 강한 영향으로 오랫동안 남게 했다.
훨씬 뒤에 타고르는 시인이 되어 람 모한 로이(1772~ 1833)에 대하여 이렇게 말을 한 일이 있었다.
“그는 정신 가운데 힌두교와 회교와 또 기독교적 교양을 진정으로 합일시키려는 마음의 넓이를 지닌 우리 시대의 위대한 선구자였다. 배타주의가 아니고 완전한 이해에 기본을 둔 진리에 충실하게 사는 인도의 대표자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사실상 일부 우리 동포들에게 거부당했다고 했을지라도 나는 그를 모범으로 삼으려 한다”
이상과 같이 타고르가 그의 청년시대에 받은 위대한 감화는 바로 람 모한 로이었다.
신금철—타고르의 형제중에 예술가들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이같은 가정배경이 타고르에게 미친 영향도 크지 않았겠는가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림금산—네 타고르의 형제들은 음악가, 철학자, 관사들이었다. 가정의 분위기 자체가 예술적이요, 철학적인 속에서 그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 하여금 하나의 위대한 시인, 철인, 사상가에로 이르게 할 수 있었던 가정적 은혜로움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타고르는 그들 선구자에 이어서 막 타오르는 새 아침의 태양처럼 나타나 국민들에게 커다란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의 천재성은 이미 어려서부터 경이의 대상이었다. 그는 정규학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동년배의 소년들과의 친교도 수업시간도 이 민감한 영혼의 소지자에게는 참기 어려운 폭력으로마저 느껴졌다. 그의 부친은 끝내 이러한 어린 문제아 타고르에게 정규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철저한 가정교사교육으로 충분한 지능의 개발에 힘썼다.
신금철-영국에 유학 간적도 있었다면서요? 영국에 가서 주로 어떤 학문을 배웠습니까? 이시기가 그의 인생에 준 영향도 컸으리라 생각하는데요.
림금철—네 1878년, 列國의 인도에의 진출이 한창일 때, 타고르는 거꾸로 그의 형을 따라 영국에 유학했다. 아버지는 그가 유익한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다. 그도 그렇게 하려 했다. 그러나 타고르가 영국에 머무는 동안 런던대학에서 영문학 강의를 듣고19세기의 쉘리나 워즈워드, 브라우닝의 시연구에 몰두했고 시창작에도 힘썼다.
후일 타고르는 그의 저서‘시인의 종교’, ‘미의 정수의 찬가’에 대한 커다란 찬탄을 쉘리에게 보냈고‘인격론’에는 월트 휫트먼에 대한 존경의 念이 들어있기도 하다.
일년간의 런던유학은 짧았지만 타고르의 예술형식에 퍽 많은 도움을 주었다. 캘커타로 돌아온 후의 세월을 타고르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독서와 시작에 몰두했다. 여기서 그는 시형의 인습적인 형식을 부수고 자유로운 유동의 힘을 표출함으로써 타고르 시의 특징을 드러냈다. 당시에 써 모은 시는1878년 그의 첫 시집<저녁의 노래>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서는 막연한 이유 없는 어떤 슬픔이 전체를 흐르고 있다. 그러나 이때부터 서서히 눈뜨기 시작한 삶은 깊숙한 의미와 함께 유년시대와 소년시대를 결별하고 꿈으로부터 현실에 닿는 청년시대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뭔가 아직 명확치는 않으나 커다란 동경도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신금철—타고르의 시는 동서방문화의 조화를 이루는데 큰 공헌을 했다면서요?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어떤 작품입니까?
림금산: 그의 시혼은 수천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인도의 지혜로 만들어지는 한편 영국을 중심으로 하여 근대 구라파 정신도 깊이 흡수하여, 타고르의 시는 동양과 서양이 신비한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고 명확한 시정신의 정점을 이루었다.
그가‘기딴쟈리’의 영역시집을 들고 나와 조용하고 엄숙한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1913)을 수상하게 되고 동방의 시성으로 받들어지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노벨상을 탄 시는 시집 “기탄쟐리”(헌시)이다 여기에는 그의 시130여수가 있다. 영역시집이다.
신금철—한때 인도 간디와도 서로 교제했다면서요? 서로 어떤 관계고 또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까?
림금산—네 한때 간디와 손잡고 직접 반영운동(영국반대운동)을 하다가 간디의 양해하에 그는 문화운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간디의 교육정신은 타고르에게서 오고 타고르의 평화이념은 간디의 철학과 이어진다. 타고르는1941년80세를 이승의 고비로 숭고한 이상이 무모한 전쟁과 유혈속에서 무참히 허물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눈을 감았다.
신금철—타고르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면서요?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들을 남겼습니까?
림금산: 타고르는 시뿐만 아니라 음악과 회화, 또 소설 그리고 연극에 이르는 많은 예술적 창작활동을 하게 된다. 1883년12월9일,
Bhavatarani와 결혼 이후, 그가 예술분야 또는 현실의 직접적이고도 적극적인 방법의 활동에서 돌연 은거자의 형태로 돌아가 버린 만년의 생활 즉 산띠니께딴의 명상생활에 돌입하기까지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후기의 시집으로는 ‘신월’ ‘과실따기’ ‘건널목’, 소설로는 ‘고라’ ‘난파’ ‘고향’ 등, 희곡으로는 ‘찟뜨라’ ‘봄의 윤회’ ‘우체국’ ‘암실의 왕’ 등, 논평으로는 그의 사상의 근저를 말한 아름다운‘사다아나’(1952) '창조적 통일‘(1922) '내쇼날리즘’ 등의 출간물이 있다.
특히 타고르는 깊은 명상과 범우주적인 관찰력과 신비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많은 작품들로 완전히 온 세계를 매혹하여 버림과 동시에, 미와 혼의 평화와 정신의 고귀를 설하고 간소하고 순수한 통일된 조화적 인간성의 실현을 바라고 또 그것을 훌륭하게 실천한 희유의 인격으로서 문자 그대로 시성으로서 일세의 경애를 받은 것이다. 또 앞으로도 영원한 경애를 받을 것이다.
신금철—네 타고르의 생평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아보았는데요. 아래에 그의 시작품을 감상하면서 림금산선생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먼저 시 “당신곁에”입니다.
당신곁에
타고르
하던 일 뒤로 미루고
잠시 당신 곁에 앉아 있고 싶습니다
잠시라도 당신을 못 보면
내 마음 안식을 잃고
고뇌의 바다에서 내 하는 일
모두 끝없는 번민이 되고 맙니다
불만스러운 낮 여름이 한숨 쉬며
오늘 창가에 와 머물고 있습니다
꽃핀 나뭇가지 사이사이에서
꿀벌들이 잉잉 노래하고 있습니다
임이여, 어서 당신과 마주앉아
목숨 바칠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신비로운 침묵 흐르는
이 한가로운 시간 속에서
신금철:
네 타고르의 시<당신곁에>였는데요. 이 시에 대해서 좀 해설해주시지요.
림금산—참 아름다운 시입니다. 번역상 원문의 묘미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당신과 마주앉아 목숨바칠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등의 시구들은 놀라웁고 대단한 상상의 깊이가 아닐수 없습니다.[출처]당신곁에/ 타고르(인도)
타고르의 많은 작품가운데서도 특히 신앙의 차원에까지 높여 구슬처럼 영롱하게 빛을 더하는 것은 물론 시다. 그의 시는 인도의 거대한 전통과 장엄한 자연이 합성되어 이룩된 인도문화의 집약도라고 할 수 있으며 또 이러한 문화전통이 그 불길 같은 천재성에 의하여 연소되었기 때문에 그 빛은 온 인류의 영혼 속에 숭고하고 따뜻하며 아름다운 음악을 낳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타고르의 시는 국경을 초월하고 인종과 빈부와 시대를 뛰어넘어 온 세계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다. 아마도 그렇게까지 세계를 뒤흔든 시인이 일찍이 있었던 가 할 정도의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인류가 언어라는 매개를 통하여 사색과 전통을 버리지 않는 한 타고르의 시는 끝없는 영혼의 벗이 되어줄 것이다.
타고르의 시는 심오한 철학과 엄밀한 신비성을 지녔다. 아름다운 음악이 용해되어 있고 격조 높은 삶의 관찰이 드리워져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시인의 경우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시의 이상적 극치를 엿보이고 있다.
타고르의 시는 일상용어이며 극히 단순하다. 그러나 거기에도 엄밀성은 편재하고 있다. 말하자면 시작에 있어 기교의 완벽성 때문이다. 이 기교의 완벽성 때문에 사실상 타고르의 시는 기교에 대한 훈련이 없는 독자라도 쉽게 가까이 갈 수 있다. 이것은 타고르 시의 단순의 정직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시에서 어떤 결론을 유추해낸다면 ‘타고르의 시는 단순한 정직성의 완벽한 신비’라고 하겠다.
신금철—네 그럼 계속하여 다음 시입니다. 타고르의 “바다가에서”라는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고 림금산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바닷가에
타고르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가없는 하늘 그림같이 고요한데,
물결은 쉴 새 없이 남실거립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소리치며 뜀뛰며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모래성 쌓는 아이,
조개 껍데기 줍는 아이,
마른 나뭇잎으로 배를 접어
웃으면서 한 바다로 보내는 아이,
모두 바닷가에서 재미나게 놉니다.
그들은 모릅니다.
헤엄칠 줄도, 고기잡이할 줄도,
진주를 캐는 이는 진주 캐러 물로 들고
상인들은 돛 벌려 오가는데,
아이들은 조약돌을 모으고 또 던집니다.
그들은 남모르는 보물도 바라잖고,
그물 던져 고기잡이할 줄도 모릅니다.
바다는 깔깔거리고 소스라쳐 바서지고,
기슭은 흰 이를 드러내어 웃습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길 없는 하늘에 바람이 일고
흔적 없는 물 위에 배는 엎어져
죽음이 배 위에 있고 아이들은 놉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는 아이들의 큰 놀이텁니다.
신: 이 시에 대해서도 해설 해주시지요.
림금산—15세에 발표된 “바다가에”, ‘들의 꽃’에 이어‘저녁의 노래’, ‘아침의 노래’가 초기서정시의 정점을 이룬다.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정취가 소년기 시의 전체적 주제를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동경, 행복에 대한 꿈, 생의 은은하고 깊숙한 거룩함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 등이 이 시기의 어느 시편에서도 숨김없이 그냥 들어나 있다.
이 시기의 시는 인간의 영혼 속에 깃들어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정서를 발굴하려는 의지적인 소년의 노력이 詩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 있다.
신금철—다음은 타고르의 시 “나는 바다가 되리라”를 함께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바다가 되리라
타고르
자아는 살아가기 위하여
끊임없이 변화하고 상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삶과 죽음은 서로 평행을 이루어 동시에 계속적으로 진행된다.
우리가 자아에게 어떤 고정불변의 형태를 주고자 할 때,
자아가 스스로 자라나려는 충동을 느끼지 않을 때
또 한계를 정해놓고 그에 따라 행동할 때
그 때에도 죽음을 부르는 것이다.
아침 햇빛이 퍼지게 되어 등불을 끄는 것과 같을 뿐,
결코 빛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내면 속에 있는 가장
진실한 욕망에 눈을 뜨고 그것을 실행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림금산—해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섬광처럼 반짝이는 예지들로 꽉 차있으며, 인도의 동화나 사랑의 얘기가 소재로 많이 쓰여졌다.
짧은 영국여행이었지만 천재 타고르는 타고르 자신이 몸담아 있는 이 지구상의 구조적 움직임에 대하여 민감하게 눈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시는 강한 구조주의 철학의 성격과 아울러 사랑이 주제를 이룬다. 물론 타고르의 전 생애의 시 가운데서 종교나 철학의 짙은 성격이 깊숙이 깔려있지 않은 작품은 없으나,
이 시기에는 거의 병적이라고 할 만큼 결백한 도덕성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애정을 바탕으로 한 사랑, 말하자면 형제애 또는 우정 등의 광범위한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이 이 시기를 특징짓는다.
다시 말하면 이 시기는 도덕과 종교와 철학의 시대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때로는 깊은 명상을 추구하며 생활했으니 이 시기는 그가 출판한 잡지 ‘사다아나('명상’1913)’의 이름을 따서 사다아나의 시기라고도 하며, 시집‘金舟’ ‘찟뜨라(1892)’ 희곡의‘祭物犧牲’ 등은 이 시대의 대표작품이다.
1901년‘벵갈평론’을 냄으로써 그는 종래의 고전적 양식에서 탈피하고 수구파와도 결별, 문체를 일신하여 새로운 리듬으로 열렬한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영국의 식민지정책에 반대하는 민족적 자각을 위해 실제 일선에 나서는가 하면 낡은 교육을 지양하고 인도를 위해 인도인의 새로운 교육을 부르짖었다. 간디의 무저항주의에 의한 인도독립운동과 때를 맞추어 타고르의 목소리는 인도 국민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에 그는 새로운 인도의 사상적 움직임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고오라(1924)'와 힌두교도의 가정생활을 비판한'難破( 1921)' 를, 시집으로는‘건널목’ 등을 내놓았다.
한때 간디와 손잡고 직접 반영운동을 하다가 간디의 양해하에 그는 문화운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간디의 교육정신은 타고르에게서 오고 타고르의 평화이념은 간디의 철학과 이어진다. 타고르는1941년80세를 이승의 고비로 숭고한 이상이 무모한 전쟁과 유혈속에서 무참히 허물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눈을 감았다.
신—만년에는 또 은거생활을 햇다면서요? 그러면서 명상의 시기를 보냈다면서요?
림—네 타고르는 자신의 개인적 능력에 우선하여 여러 가지 예술분야에 손을 댔으나, 그런 활동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가 영원한 시인으로 표상되기를 원한다. 그는 만년에 이르러 모든 정치적 사회적 활동에 종지부를 찍고 그가 태어난 캘커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산띠니께딴 숲속에서 은거생활의 막을 열었다.
이시기를 명상의 시기로 부르는 것은 그가 이 시기에 극도의 내면적 갈구를 위해 영혼을 불살랐기 때문에도 그러하지만, 그는 이 시기에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시의 엄밀성을 말하는 침묵의 시수업을 했으리라는 결정적인 생각에서 더욱 이 시기를 중요시 하는 것이다.
외면적으로 이 시기는 애국애족주의적 편협에서 탈피하여 영혼을 보편의 세계로 넓히려는 성자적 생활의 시기이기도 하다. 삶의 다양함속에서 영원히 하나가 되는 변화의 불멸법칙이 바로 만년에 타고르가 추구했던‘예술정신’이었다. 그리하여 경건한 종교시인이 되고 사랑과 평화와 국제주의에 입각한 교육자로서 헌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마하트마 간디(1866~1948)에 대하여 깊은 존경을 드렸지만, 그의 비협동과 인도 자치정신의 편협한 애국주의를 비판할 만큼 철저한 넓은 사랑의 시야와 세계정신의 소유자였다.
그의 사후에 발표된 유고가운데서 귀중한 빛을 보인 작품들이 근자에 독자들에게도 소개된 바 있다. 말하자면 이 시편들은 모두 열다섯 편의 작품으로 그의 인생의 정리에 해당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신비로운 언어의 마법들이 보여진다.
타고르를 슬프게 했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는 열광적으로 이 동방의 시성을 찾아 그의 시와 사상가운데서 새로운 복음을 들으려 했다. 오늘에 이르는 詩聖 타고르의 시와 그 안에 깊이 깔린 인도철학사상은 미래에도 또한 세계를 향하여 찬란한 빛을 비칠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신—타고르는 한국에 대해서도 시를 남겼다면서요? 어떤 일로 시를 남기게 되였는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시입니까?
림금산—네 “동방의 등불”입니다. 일본에 왔다가 한국기자를 만나서 써주었음.
동방의 등불
타고르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롭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잠을 깨소서
신금철—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시인인 한룡운시인님도 타고르의 시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답니다. 또 그래서 시까지 써서 그 감동을 읊었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 함께 한용운님의 그 시를 감상해보면서 타고르의 시적 경지를 다시 느껴봅시다.
타고르의 시(詩)를 읽고
한용운
벗이여, 나의 벗이여.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처럼 나를 울리는 벗이여.
작은 새의 자취도 없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벗이여.
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白骨)의 향기입니다.
그대는 화환을 만들려고 떨어진 꽃을 줍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주운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벗이여, 깨어진 사랑에 우는 벗이여.
눈물의 능히 떨어진 꽃을 옛 가지에 도로 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셔요.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그러나,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는 것을
봄바람은 말합니다.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님을 떠나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까닭입니다.
신금철—네 오늘 작가초대석시간에는 림금산선생님을 모시고 인도의 타고르시인과 그의 부분적 작품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상세한 소개로 타고르를 재인식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많았습니다.
림금산—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금철—그럼 마지막으로 노래한수 드르시하면서 오늘 프로 여기서 마칩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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