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련애편지1]
미혼처에게
현춘산
주: 60-70년대는 붉은 년대였습니다.머리로부터 발끝까지 붉었지요.그때는 련애편지도 붉었습니다.젊은 벗들의 요구에 의해 쑥스러운 대로 1974년 1월에 미혼처에게 보냈던 저의 첫 편지를 공개합니다. 저자
최옥선 동무
안녕하십니까!
소개인을 통하여 동무를 만날수 있어서 아주 기뻤습니다.동무와 함께 지내 던 일주일 아주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서로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였습니다.
동무가 공사의 기간민병련대의 녀성반 반장으로서 사격솜씨가 좋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지구상에서 미제국주의와 쏘련수정주의,사회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항상 격강성을 높히고 멸적의 기능을 고심히 련마해야 합니다.단총지서기인 나는 우리 민병련의 부지도원으로서 항상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무네 집에서 중문으로 된 "섬의 녀민병"을 보았습니다.그 책 나도 읽었는데 좋은 책입니다.동무도 그 책의 주인공처럼 조국의 안녕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초소를 굳게 지키리라 믿습니다.
정치학습도 틀어쥐기 바랍니다.며칠전 "붉은 통신원"몇권을 부쳤습니다.거기에 림표와 공자를 비판하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동무는 내가 문학을 애호한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습니다.나의 리상은 작가가 아니라 고향건설입니다.
내가 나서 자란 북성벌은 가난하기로 원근에 소문났습니다.해마다 벼 무당산량이 600근도 채 되지 않아 장강을 뛰여넘지 못합니다.내가 대대간부들의 회의에서 모농사를 주장해오지만 다들 동의하지 않습니다.나는 결심을 내렸습니다.하여 전번에 갔을 때 동무네 성화대대의 당지부서기 리재근동지를 방문하고 산량이 높고 무상기가 짧은 합강 19호 벼종자 열근을 요구했습니다.
리서기는 대뜸 동의하면서 그것을 우리의 결혼선물로 하겠다고 하셨습니다.전국로동모범으로서 위대한 령수 모주석을 몇번이나 만나뵌 리재근동지를 나는 존경합니다.
최옥선 동무
우리 봄에 결혼합시다.그리고 합강19호를 가져다가 실험전을 꾸립시다.모농사에 경험이 있는 동무가 나와 함께 우리 고향의 락후한 모습을 개변합시다.우리의 실험전이 성공하고 무당산량 천근만 넘긴다면 모든 사람들이 탄복할 것입니다.모농사가 보급되고 우량종이 생산된다면 우리 고향도 가난의 모자를 벗어던지고 풍족하게 될것입니다.
지금 나는 청장년로력을 인솔하여 보막이공사장에 나와있습니다.이 편지는 래일 아침 두부바꾸러 가는 취사원아바이를 시켜 이 곳의 공소판매부에 설치되여있는 우체통에 넣겠습니다.
집과 50리나 떨어져 있는 허허벌판,호란강반의 강바람이 눈보라를 몰아옵니다.천막지휘부의 도람통난로곁에 앉았으나 새벽의 추위가 온몸을 엄습하는군요.하지만 마음은 훈훈합니다.위대한 령수 모주석의 령도가 있고 위대한 중국공산당의 영명한 령도가 있기에,더구나 아름답고 건전하며 활기찬 동무가 인생의 반려가 되여주기로 했기에 온몸에 힘이 솟구칩니다!
우리 같이 손잡고 사회주의농촌의 당당한 건설자로 싸워갑시다.
조금 지나면 날이 밝을것 같습니다.잠간이라도 눈을 붙여야겠습니다.
동무를 사랑하는 현춘산
눈보라 아우성치는 호란강반의 새벽에
1974년 1월 21일
최옥선과 현춘산 1974.4.8
조글로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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