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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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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8. 범, 불선과 사악을 증오하는 산신령 댓글:  조회:289  추천:0  2020-09-15
11    7.사슴, 하늘 땅을 이어놓는 신비한 정령(精灵) 댓글:  조회:274  추천:0  2020-09-10
10    6.물, 인류와 만물 창조의 영구한 생령 댓글:  조회:244  추천:0  2020-08-24
9    5.흙,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어머니 댓글:  조회:298  추천:0  2020-08-24
8    4.백학(흰 두루미) , 백의민족의 혼 댓글:  조회:255  추천:0  2020-08-24
7    3.신단수,조선민족의 세계수 댓글:  조회:279  추천:0  2020-08-24
  그 박달나무는 저 멀리 지중해연안으로부터 이란문화권을 거치고 인도를 포괄하면서 아세아대륙의 북부를 총망라하다시피 하면서 솟아오르던 우주의 나무 즉 세계수 중의 한그루였다. 고대인들은 우주의 질서가 천계와 지계 그리고 지하계로 이루어졌다고 여겼고 이러한 우주구조의 수직관념에 따라 하늘과 대지와 지하세계를 하나로 얽매여 련결시킬 수 있는 매개물이  즉 우주의 축이 수요되였다. 그런 매개물로 나무이상이 없다고 여긴 선조들은 어떤 한그루의 나무를 선택하여 그것을 우주의 나무 즉 세계수로 삼았던 것이다. 이처럼 세계수는 인간의 의지가 심고 가꾼 나무였다. 그런 나무들은 뿌리로 지하의 샘을 빨아올리고 초리로는 하늘의 샘을 자아내리기에 영원한 생명의 원천과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 하늘과 땅을 비티고 있는 기둥으로 되고 있었다. 씨비리야 각 민족의 세계수가 한그루의 봇나무나 락엽송 혹은 참나무였다면 우리 민족의 세계수는 박달나무였다. 하늘에 닿은 그 신기한 박달나무를 통해 천신 환웅이 내려서 그 아래에다 신시를 열고 인간세상을 다스리자 곰과 범이 사람이 될 소원을 신단수에게 빈다. 결국 금기를 지켜낸 곰만이 성공하여 웅녀로 된다. 웅녀가 자식소원을 신단수에 빌자 환웅이 잠시 사람의 형체를 빌어 웅녀와 더불어 아들을 보았으니 그가 바로 조선민족의 시조 단군 임금이였다. 여기서 주목할 바는 사실 신단수가 단군의 부친토템이 된다는 점이다. 신단수는 천신 환웅이 깃든 나무이기에 환웅과 동심일체를 이룬다. 게다가 단군의 단(檀)자는 신단수의 단(檀)자이다. 이것은 단군(檀君)이 사실상에서는 신단수의 아들임을 증명한다. 즉 단군은 왕검의 호이며 그의 탄생표지이다. 중국의 에 단군 (壇君)왕검(王俭)이 고조선을 세운 사실이 나오는데 거기의 단군은 제단이라는 뜻의 단(壇)자로 표기되였다. 그러나 등 사서에는 단군의 "단"자를 박달나무 단(檀)자로 표기하였다. 대륙에서는 고조선건국력사에 중점을 두었고 반도에서는 민족시조탄생을 관심한 리유가 아닐가 하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단군신화는 한폭의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민족서사시라고들 한다. 왜냐하면 단군신화는 천신 환웅과 신단수, 곰의 관계를 통해 우리에게 선조들의 우주관과 민족의 시조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신단수"에서 웅위롭고 호방하며 장엄한 신단수의 형상을 다음과 같은 시구로 묘사하고 있다. 창천을 쪼각쪼각 떠받들고 (중략) 딸의 물 빨아올리며 소탈하고 영특한 웅신으로 변신하여 (중략) 화애로운 락원 일떠세웠네. 시인은 신단수의 형상묘사를 통하여 영구불멸의 생명력과 하늘에 닿는 기개, 굽힘없는 굳센 의지와  천지개벽의 기백과 슬기를 지닌 민족의 상징인 신단수의 토템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6    2.곰, 우리 민족의 시조모 댓글:  조회:191  추천:0  2020-08-24
  [현춘산] 남영전토템시로 본 토템문화   2.곰, 우리 민족의 시조모     그는 인간들처럼 두발로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앞발로 적수와 싸우고 로획물을 거머쥐기도 하는 동물이였다. 그는 인간들과 육체적 동질성외에 생리상의 동질성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포유동물이였고 암컷의 생식기나 자웅의 교배방식이 인간의 그것과 흡사했다. 그는 인류에게서 아바이나 할배로 불리우는 존재였다. 인간들이 그가 듣는 데서 경칭으로 부르면 화를 자아낼 수도 있다고 우려할 만큼 그는 경외의 대상이였다. 고대에 그의 분포망은 지구의 북반구 대다수의 지역이였다. 미국의 인류학자 호로웰의 조사에 의하면 동유럽과 서유럽의 일부, 러시아내륙, 동아시아일대, 에스키모 및 북아메리카 인디언에 이르기까지 그의 서식처였고 그를 위한 인류의 제의(의례)가 치러지던 그의 문화대였다. 그는 추운 겨울 내내 인간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가 눈이 녹고 얼음이 풀리고 나무잎이 파랗게 돋아나는 따뜻한 봄이 오면 엉기적 엉기적 나타났다. 죽음을 극복하고 영구한 삶을 꿈꾸는 고대인들의 관념세계에서 그는 달처럼 죽음과 부활의 원리를 지닌 신비한 동물이였고 영생불멸의 신령 그 자체였다. 시인 남영전은 토템시 "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쓰고 떫은 쑥맛 볼대로 보았고 별을 눈으로 이슬을 피로 삼아 이 세상 정령의 시조모 되였더라 육체나 생리상에서 동질성을 가진 동물들이 서로 전화하는 것은 원시적 신화가 즐겨 표현하는 모티프였다. 단군신화에 그는 범과 한굴에 살았고 범과 함께 인간으로의 전환을 시도했다는데 왜 범은 실패하고 그만 성공했을가? 그의 성공비결은 끈질긴 인내성에도 있겠지만 그와 인간들과의 동질성이 범보다 우월한 조건이였으리라. 그가 사람이 되는 조건은 인간과의 그런 동질성외에도   신기한 쑥과 마늘을 먹고 백날동안 금기를 지키는 것이였다. 말하자면 그가  인간으로 변하려면 꼭 어떤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성인식같은 그런 것이였다. 인류가 유구한 모계씨족사회를 경과하던 고대에 성인식은 녀인들에게 많이 치러졌다. 소녀가 녀성으로서의 첫 성숙징조(초경)를 나타내면 일정기간 외계와의 접촉을 끊고 독특한 금기와 단련기간을 보내며 피를 정화시켜야 했다. 쑥과 마늘은 바로 피를 정화하는 식물이다. 그가 하필이면 녀인으로 태여난 리유가 바로 인간들이 녀인에게 행하는 것과 흡사한 독특한 금기와 단련이라는 의례를  통과했기 때문이였다고 생각된다. 금기를 지켜낸 그는 마침내 아름다운 용모와 이슬과 같은 맑은 피를 지닌 녀인으로 변신한다. 녀인이 된 그는 모성을 지니고 아기를 가지려는 소원까지를 성취한다. 그가 천신과 결합하여 낳은 아들이 바로 조선민족의 시조 단군 왕검(檀君王俭)이다. 달과 같은 죽음과 재생의 원리를 지닌 그에게 달이 지닌 녀인의 생산적 이미지가 적용되여  민족의 시조모(始祖母)로 된 것이다. 이것은 고대인의 신화적사고로 보면 자연적이고 합리적이였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더운 피와 열물 젖삼아 마셨기에 억센 의지와 의력은 근골이 되고 애탄이 무어랴 길 아닌 길을 거쳐 ....... 태고의 전설 속에 엉기적 요원한 미래속에 엉기적 곰의 형상은 그 산악처럼 우람한 그림자에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주요하게 그의 내재적 성격에서 표현되고 있다. 억센 의지와 의력, 애탄과 구걸을 모르고 난관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왕매진하는 그 랑만성이 곰의 내재적 성격이다.
5    1.달, 영구한 생명력의 상징 댓글:  조회:178  추천:0  2020-08-24
4    말없는 약속□ 현춘산 댓글:  조회:311  추천:0  2020-05-18
복도에 또 쓰레기주머니 두개가 놓여있었다. 빈 음료수병과 파지따위가 담긴 주머니와 음식물찌꺼기가 담긴 주머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며칠 전까지도 여러 가지 색상으로 울긋불긋한 쓰레기주머니들이 복도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지정된 구석에 놓인 커다란 통에 담겨있었고 청소부들이 수시로 날라갔다. 그렇게 몇해가 지난 뒤, 바로 며칠 전에 주택관리처에서 이제부터 쓰레기를 바깥에 내다 지정된 쓰레기통에 넣으라는 통고를 내려보냈다. 그것도 네가지로 분류해서 넣으라는 것. 첫째 음식물쓰레기, 둘째 재활용쓰레기, 셋째 유해물질쓰레기, 넷째 기타쓰레기였다. 소문에 따르면 상해 등 대도시들에서는 진작 이렇게 했다고 한다. 쓰레기가 도시를 삼킬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란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도시의 쓰레기처리는 내가 보기에도 심각한 문제였다. 특히 도시의 음식물쓰레기는 환경보호부문의 두통거리로 하마 십년전부터 대두하고 있었다. 주민들의 식생활수준의 부단한 제고와 함께 음식물쓰레기도 부단히 늘어갔다. 게다가 음식물쓰레기를 담은 비닐주머니들 자체가 유해물질이였다. 그것들을 태워버릴 때 연기가 여러 가지 암을 불러온다는 소름 끼치는 소문도 있었다. 도시의 쓰레기처리 문제는 주민들의 생활환경과 생명안전을 위협하는, 엄격하게 말해서 국계민생에 직결되는 문제였다. 주택관리처의 공고가 주민들에게 발송된 후 시끄럽게 된건 사실이였다. 생활용쓰레기를 네가지 부류로 나누어 내간다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였다. 분류를 하지 않고 버리다가 발각되면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지정된 곳이 아닌 데다 함부로 버리면 더 과중한 벌금을 부과한다고 했다. 설전까지 쓰레기 분류작업 교육을 마치라는 문구도 공고에 덧붙여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명춘각 2층 복도의 한구석에는 벌써 사흘째나 지저분한 음식물쓰레기주머니 하나와 빈 음료수병과 배달용 비닐밥곽 따위가 담긴 주머니 두어개가 보란듯이 떳떳하게 놓여있었다. 첫날은 아침부터 점심나절이 되여도 그대로 놓여있는게 눈꼴사납고 기분이 뒤틀려서 내가 나가는 김에 내다버렸다. 그랬더니 이튿날 아침에도 또 쓰레기주머니 두개가 눈에 밟혔다. 점심 나절에 청소부 리씨가 와서 그것들을 거두어갔다. “밤낮없이 수고하는 청소부들을 위해서라도 저러지 말아야 하는데…” 그와 류사한 쓰레기주머니들이 오늘 아침에도 내눈을 자극했다. 이번엔 건드리지 않았다. 그것을 대신 내간다는 것은 나쁜 버릇을 길러주고 범죄를 조장하는것처럼 부정당한 행위라는데까지 생각이 미친 것이였다. 그런데 오후가 되도록 그 쓰레기주머니 둘은 까딱하지 않고 그 자리에 박혀있었다. 구멍이 생겼는지 음식물찌꺼기의 비닐주머니에서 흘러나온 시뻘건 물이 바닥에 흥건했고 거기서 풍기는 냄새에 구토가 날 정도였다. 설도 가까워오는데 이게 뭐란 말인가. “밤낮이 따로 없이 바삐 일하고 있는 청소부들을 다소라도 동정하는 사람들이라면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량심없는 사람들...” 우리 이 명춘각 2층에 사는 주민은 모두해야 다섯집, 한집은 이태째 비여있으니 네집 뿐이다. 이 네집 가운데서 나를 제외하면 다른 세집이 의심 대상이다. 그 세집 중의 어느 한집이겠는데 증거가 없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따져 묻고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누구도 승인하지 않을것이 뻔했다. 나는 주저하다 못해 주택관리처를 찾아갔다. 재수없게도 내가 미워하는 턱짧은 녀자가 혼자 있었다. 내가 그녀를 미워하는 리유는 턱이 짧게 생겼다는 데서 생긴 것은 절대 아니였다. 솔직이 말해서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내 안해를 내놓고는 녀자들의 얼굴을 품 놓고 흔상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리고 녀자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결함에 그리 신경을 쓴 적도 없다. 관리처의 그 녀자가 턱이 짧게 생겼다고 느낀것은 그녀가 내게 잘못 보였기 때문이였다. 한번은 엘리베이트 두개중 하나가 고장난 것을 일주일이나 그대로 두는 것이 꼴사나와 관리처를 찾아갔더니 그 녀자가 주임을 제쳐놓고 앞에 나서서 고아댔다. 주민들 리익을 위해 봉사하는 우리가 왜 수리하려고 않겠는가. 수리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너무 낡아서 새것으로 바꿔야 한단다, 그래서 공장에 주문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그런걸 어찌하라는가, 왜 다른 사람들은 참고 사는데 당신 혼자만 못참는가 하고 련주포를 쏘아댔다. 너무 괘씸해서 물끄러미 쳐다본즉 턱이 너무 짧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무슨 일이죠?" 슬며시 돌아서려는 내 발목을 반갑지도 않는 그녀가 잡았다. "우리 2층 복도에 사흘동안이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소." "누가 그랬어요?" "모르오." 턱짧은 녀자가 짧은 턱을 간신히 쳐들고 또 물었다. "그래 그 쓰레기가 사흘 동안 그대로 있었다는 말이예요?" "첫날은 보다못해 내가 내갔구 이튿날은 청소부가 내가는 걸 봤소." 턱 짧은 녀자의 얼굴에 비웃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 봐요. 선생님이나 청소부나 부질없는 짓을 하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그냥 복도에 버리지요. 대신 치워주는 사람이 있는데 하고 말이예요. 첫날에 찾아와서 알릴 걸 그랬어요. 일이 더 커진 담에 알리는건 옳지 않아요. 그건 잘못을 키워주는 행위지 뭐예요?" 나는 문제를 반영하러 갔다가 뿌옇게 닦이우고 말았다. 그렇게 뿌옇게 닦이우고 돌아온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청소부 리씨 아줌마와 마주쳤다. 중경에서 온 리아줌마네는 아이가 넷이여서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처리해야 할 낡은 책이나 종이상자들을 모았다가 그녀에게 주군 했다. 그래서 그녀는 나와 익숙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그녀는 무거워보이는 커다란 주머니를 질질 끌고 있었다. "복도에서 주은 쓰레기들이죠?" 나의 탁한 물음에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요. 그런데 대부분은 쓸만한 물건들이예요. 선생님처럼 고마운 분들이 저를 동정해서 돈이 될만한 빈병사리나 빈 밥곽이나 파지나 낡은 책들을 문앞에 내다놓군 해요. 요즘은 세밑이어서 입을만한 옷들까지 정리해서 내놓는데 애기 옷들은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더라구요.."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새삼스럽게 뇌리를 스치는 무엇이 있었다.   청소부아줌마와 게으르고 자각성없는 주민들 지간의 무언의 약속! 그것은 그러니까 명문으로 규정되지 않은 약속이였다. 그 명문으로 규정되지 않은 말없는 약속앞에서 문명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명문으로 내건 쓰레기처리규정이 무참하게 빛을 잃고 짓밟히고 있음을 주민들의 리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주택관리처의 그 턱짧은 녀자나 환경보호를 부르짖는 모든 사람들이 어쩌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변일보 
3    [70년대 련애편지2] 현춘산 동무에게 댓글:  조회:445  추천:0  2020-05-18
[70년대 련애편지2]    가운데 총을 메고 유표하게 돋보이는 최옥선 동무(1974.6.29)"동무가 공사의 기간민병련대의 녀성반 반장으로서 사격솜씨가 좋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지구상에서 미제국주의와 쏘련수정주의,사회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항상 격강성을 높히고 멸적의 기능을 고심히 련마해야 합니다."-현춘산 "미혼처에게 보낸 첫 편지"에서.   (회답편지)   현춘산 동무에게   최옥선   현춘산 동무   잘 지내세요?   동무의 편지를 보름만에야 받았습니다.   아직도 공사장에 있습니까?마을과 그렇게 멀리 떨어진 추운 강변에서 온돌이 아닌 천막의 널쪽침상에서 어떻게 지내시며 눈보라 사나운 현장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상상하기도 무섭습니다.   편지가 온날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몹시 근심스럽습니다.   반찬이라고는 동무가 반가와하지 않는 두부찌개뿐이겠으니 식생활 또한 어려울줄 알겠습니다.가까운 곳이라면 동무가 좋아하는 감자장이며 고추떡이며 갖춰가지고 찾아갈수 있겠지만 천여리 떨어진 이 곳에서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편지가 오기전에 책들을 받았습니다.마침 대대에서 저더러 리론보도원을 맡으라기에 근심하던중 면바로 동무가 책을 부쳤군요.림표와 공자를 비판하는 혁명적대비판운동에서 저도 새시대의 청년답게,공청단원답게 역할을 할수 있어서 아주 기쁘고 동무의 세심한 배려에 가슴이 뜨겁습니다.     "동무의 세심한 배려에 가슴이 뜨겁다"는 최옥선,앞줄 가운데 치렁치렁 외태머리 녀성동무(1972.4.20)   동무는 혁명적감정이 깊은 청년입니다.우리 집에 왔을 때 경애하는 주총리께서 자주 앓으시고 그러면서도 당과 인민을 위해 밤낮 일하시는 총리의 얼굴이 사진에서 보니 몹시 초췌하다면서 가만히 눈물을 흘리는 동무를 보면서 저도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동무가 바로 제가 흠모하는 그런 청년입니다.립장이 선명하고 감정이 풍부하고 혁명열의가 높은 새시대의 청년입니다.   우리가 혁명적동지로 일생을 함께 할수 있게 되여 항상 가슴이 설레입니다.저는 동무를 받들어 사회주의 새농촌건설에 일생을 바칠 각오가 되여있으며 동무의 제의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공사장일이 끝나면 한번 오시기 바랍니다.가목사에 아주버님될 분이 계시니 모시고 와서 결혼에 대해 의논하실수 있지 않습니까.저의 부모님은 저를 지지하시니 별문제 없을 것입니다.   그럼 고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동무를 그리는 옥선으로부터   1974년 2월 18일 새벽 올림 조글로계정   
2    현춘산 프로필 댓글:  조회:380  추천:0  2020-05-18
현춘산 1950년 흑룡강성 수화시출생.연변대학통신학부 조문전업졸업.흑룡강작가협회,연변작가협회,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주요저서로는 장편소설"호란강반의 비가",수필집"고향련정","주고받는 마음","오늘 밤은 달이 밝아라"가 있음.정년퇴직교사로 지금 광동성 광주시에 거주.
1    [70년대 련애편지1] 미혼처에게 댓글:  조회:310  추천:0  2020-05-18
  [70년대 련애편지1]  미혼처에게   현춘산   주: 60-70년대는 붉은 년대였습니다.머리로부터 발끝까지 붉었지요.그때는 련애편지도 붉었습니다.젊은 벗들의 요구에 의해 쑥스러운 대로 1974년 1월에 미혼처에게 보냈던 저의 첫 편지를 공개합니다. 저자     최옥선 동무 안녕하십니까!   소개인을 통하여 동무를 만날수 있어서 아주 기뻤습니다.동무와 함께 지내 던 일주일 아주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서로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였습니다.   동무가 공사의 기간민병련대의 녀성반 반장으로서 사격솜씨가 좋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지구상에서 미제국주의와 쏘련수정주의,사회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항상 격강성을 높히고 멸적의 기능을 고심히 련마해야 합니다.단총지서기인 나는 우리 민병련의 부지도원으로서 항상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무네 집에서 중문으로 된 "섬의 녀민병"을 보았습니다.그 책 나도 읽었는데 좋은 책입니다.동무도 그 책의 주인공처럼 조국의 안녕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초소를 굳게 지키리라 믿습니다.   정치학습도 틀어쥐기 바랍니다.며칠전  "붉은 통신원"몇권을 부쳤습니다.거기에 림표와 공자를 비판하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동무는 내가 문학을 애호한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습니다.나의 리상은 작가가 아니라 고향건설입니다.   내가 나서 자란 북성벌은 가난하기로 원근에 소문났습니다.해마다 벼 무당산량이 600근도 채 되지 않아 장강을 뛰여넘지 못합니다.내가 대대간부들의 회의에서 모농사를 주장해오지만 다들 동의하지 않습니다.나는 결심을 내렸습니다.하여 전번에 갔을 때 동무네 성화대대의 당지부서기 리재근동지를 방문하고 산량이 높고 무상기가 짧은 합강 19호 벼종자 열근을 요구했습니다.   리서기는 대뜸 동의하면서 그것을 우리의 결혼선물로 하겠다고 하셨습니다.전국로동모범으로서 위대한 령수 모주석을 몇번이나 만나뵌 리재근동지를 나는 존경합니다.   최옥선 동무 우리 봄에 결혼합시다.그리고 합강19호를 가져다가 실험전을 꾸립시다.모농사에 경험이 있는 동무가 나와 함께 우리 고향의 락후한 모습을 개변합시다.우리의 실험전이 성공하고 무당산량 천근만 넘긴다면 모든 사람들이 탄복할 것입니다.모농사가 보급되고 우량종이 생산된다면 우리 고향도 가난의 모자를 벗어던지고 풍족하게 될것입니다.   지금 나는 청장년로력을 인솔하여 보막이공사장에 나와있습니다.이 편지는 래일 아침 두부바꾸러 가는 취사원아바이를 시켜 이 곳의 공소판매부에 설치되여있는 우체통에 넣겠습니다.   집과 50리나 떨어져 있는 허허벌판,호란강반의 강바람이 눈보라를 몰아옵니다.천막지휘부의 도람통난로곁에 앉았으나 새벽의 추위가 온몸을 엄습하는군요.하지만 마음은 훈훈합니다.위대한 령수 모주석의 령도가 있고 위대한 중국공산당의 영명한 령도가 있기에,더구나 아름답고 건전하며 활기찬 동무가 인생의 반려가 되여주기로 했기에 온몸에 힘이 솟구칩니다!   우리 같이 손잡고 사회주의농촌의 당당한 건설자로 싸워갑시다.   조금 지나면 날이 밝을것 같습니다.잠간이라도 눈을 붙여야겠습니다.   동무를 사랑하는 현춘산  눈보라 아우성치는 호란강반의 새벽에   1974년 1월 21일   최옥선과 현춘산 1974.4.8 조글로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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