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식
http://www.zoglo.net/blog/xudongzhi 블로그홈 | 로그인

※ 댓글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허동식《잡담》

[잡담31] 연변내기와 남도치 그리고 한국인
2008년 04월 01일 14시 22분  조회:4238  추천:111  작성자: 허동식

연변내기와 남도치 그리고 한국인


허동식


<내기>든지 <치>든지 꼬리말로서 야유의 의미를 내비친다.

 연변내기 하면 연변깍쟁이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여왔고 연변말로는 연변좁쌀로 표현된다. 연변사람이 남도치들로부터 이런 평판을 받아온것은 연변사람의 생존환경과 생활물질래원의 부족 그리고 생활소비구조의 특점과 집체화시대의 연변특징에서 인기된다. 연변은 송화강류역과 료하류역과는 달리 산이 많고 평원이 적어 인구에 비해서는 경작지가 적은 농경지역이다.따라서 농업생산도 생활도 조금은 精細적이다.옛날 설명절 같은 때면 안쪽의 남도치들은 돼지를 한마리 반마리 잡아놓고 한달 반달 먹지만 연변은 욕심뿐이지 그렇게 흥정망정할 능력을 지니지 못했었다.촌에서는 생산대를 단원으로 돼지를 잡고 돼지고기를 인구당으로 분배를 하면 근과 냥으로 세분했으니 남도치들은 연변사람들의 그러한 고초를 잘 모르고 연변사람을 연변깍쟁이 연변내기로 불렀다.

또 연변사람들은 다 같은 유농족이기는 했지만은 안쪽사람들에 비해서는 정착성이 뚜렷하여 만날 이사하는 현상이 적었고 제한된 수입을 세분하여 입은 풀칠하지만은 주거에는 무난히도 신경을 쏟았다.그래서 안쪽사람들이 연변에 오면 잘 먹을수있는 대접은 못받았지만 촌락이 정연하고 깨끗함을 부러워 했던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연변이 나라의 말을  잘 듣는 붉은 지역이였고 그것이 연변사람들의 생활방식에 작용한것도 사실이다. 공량이란 경작지면적과 소출과 그리고 인구를 감안하여 定量하여야만 도리에 맞겠지만  집체화시대에 연변지역은 배를 곯으면서도 공량경색을 했으니 연변사람들 쌀독상황은 얼마나 막심했을가?
 
이러저런 연고로 연변인들은 연변내기로 연변깍쟁이로 불리울수밖에. 또 연변의 시골사람들 발길은 대부분이 연길구경이나 했을가 말았을가 하는 정도였고 화룡 룡정지역은 거의가 중국말이야 죽어라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정도로서 중국이면 연변이고 연변이면 중국인가 하는 공간인식수준을 내비치었으니 장춘 길림 할빈 심양 대도시도 둘러볼수 있었던 지역적우세를 지닌 안쪽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촌사람으로 보였던것이다.

나의 외삼촌과 이모는 연변출신이지만 흑룡강 길림 그리고 료녕을 줄곧 이사를 하면서 살어왔다. 좀 늦기는 했지만 대학 다닐 때, 외삼촌과 이모네 동네로 가본적도 있고 또 길림지역의 조선족촌락을 둘러보았고 동창생들중에 남도치들이 많아서 안쪽사람들의 생활상을 얼마 정도는 알고 있다 생각한다. 남도치들은 상대적으로  풍족한 지역에 살다보니 씀씀이가 대범하다.연변은 흉년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들은 흉년에 대한 개념이 빈약했고 먹는데는 거의 돈을 아끼지 않았었다. 반면에 자칫하면 이사를 하는 습성 때문이여선지( 이사를 하면 집은 이전할수 없다.)

주거개선에 대한 투입이 적었었다. 연변사람들은 상술한 생활상을 보이는 안쪽사람들을 보면 촌락이 어지럽다 먹을줄밖에 모른다는 평판을 하였음도 자연스러운 일이다.또 랭전시기여서 북한만을 정통으로 생각한 연변사람들은 안쪽사람들의 남쪽말씨의 진미를 잘 모르면서도 또 중국말을 많이 섞어 사용하는 언어습관을 받아들일수가 없었기에 아빠야 밥 먹으라이 하는식을 비웃기도 했으며 그들을 남도치라고 불렀던것이다.

연변내기와 남도치, 연변사람들과 안쪽사람들이 서로 대방의 내실을 알고 살어간다면, 모두가 어느 정도의 풍족상을 지니는 날을 맞을수가 있다면 <내기>와 <치>는 재미있는 추억으로 될것이다. 

한국에 가면 연변내기가 남도치보다도 좀 빼돌림을 받는다고 한다.연변사람이 좀 약고 신용성이 결여되고 의리가 약하다는 원인도 있겠지만도 연변내기들이 북조선과 비슷한 말씨를 쓰고 문화적으로도(특히는 음식문화) 북쪽에 치우고  또 6.25동란이 한국인들의 심성에 큰 상처를 남긴 사실과도 관련이 된다.

중국조선족은 보가위국이라는 중국당국의 호소만이 아니라 반도땅을 침략한 미국군을 조선반도로부터 몰아내기 위해서 지원군에 참가했다는 실상을 잘 아는 한국인이 별로 많지는않다. 6.25동란뒤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을 포함하여 반공책의 영향을 많이 받었기에 한국인들은 중국조선족도 6.25동란의 책임을 분담하여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헌데 우리는 언제 한번 정식적으로 사과를 한적도 없으니, 또 오늘날에도 핵이요 미싸일이요 뒤숭숭하니 북조선인에 대한 생각과 북조선과 문화적으로 조금 동일성을 보이는 연변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편차가 없을수가 없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1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결과가 없습니다.
‹처음  이전 3 4 5 6 7 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