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http://www.zoglo.net/blog/yingfen 블로그홈 | 로그인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문학 -> 발표된 작품 -> 수필

나의카테고리 : 수필

딸의 뺨을 친 늙은 남자
2019년 11월 05일 11시 02분  조회:1055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딸의 뺨을 친 늙은 남자
 
김영분
 
 
시간은 다시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른 즈음에 유치원 다니는 애 둘을 엄마한테 맡기고 남편과 회사 경영에 몰두하던 때였다.
경영 경자도 제대로 모르는 채로 덤벙거리며 시작한 회사는 바다 우에 돛 없이 떠다니는 배처럼 어려움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제조업이라 산동성의 각 지방에서 올라온 미싱사 백여 명을 데리고 봉제 일을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이팔청춘의 애된 녀자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은 다 아줌마가 되여 회사의 중견을 맡고 있지만 갓 일을 시작할 때는 정말 코흘리개와 진배가 없었다.

집이 그리워 청가도 없이 훌쩍 사라지는 애, 숙소에서 남의 옷견지를 훔쳐 입고는 오리발 내미는 애, 한 마을에 있는 애가 왜 자기보다 봉급이 10원 더 높으냐고 훌쩍이는 애, 불량품을 무더기로 만들어 내놓고는 훈계가 무서워 몰래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나 몰라라 하는 애들로 그야말로 눈이 열 개라도 다 살펴볼 길이 없었다. 그 와중에서도 똘똘하고 책임성이 강한 아이들은 반장, 과장 직을 맡고 주축이 되여 회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 때 서른을 좀 넘긴 나도 지금 생각해보면 새 색시의 아침상마냥 모든 게 너무 서툴렀다. 한국회사에서 몇 년 동안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경험으로 야무지게 관리하노라 했지만 짧은 옷처럼 들추기만 하면 팔꿈치가 보였다. 이거 하면 안 된다 저거 하면 벌금이다 이런 규장제도를 무조건 여러 사람이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고 소위 관리를 잘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 샐 틈 없이 관리하리라 다짐했던 야무진 꿈은 항상 조리로 모래 건지 듯 실실 새여버려서 맹랑했다. 화도 나고 애들이 밉기도 했다.
그 와중에 내가 위경련까지 일으키면서 싸운 일이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참 모질었었다.
백여 명의 직원들이 건물 두 층을 차지하고 숙소생활을 하고 있었던 지라 이러면 되고 저러면 안 된다는 식의 숙소규범제도를 방마다 잘 보이게 걸어놓았다. 열시반 전에는 무조건 외부 출입 금지였다. 공장이 으슥한 동네에 위치해 있어서 가로등도 없는 밤길을 다니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였다. 그때는 봉급날을 노려 불량배들이 직원들을 폭행하여 봉급을 갈취하거나 녀자 직원들을 겁탈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꼭 밤 늦게 돌아다니는 애들이 있었다. 늦게 들어오면 경비실에서 한참 싱갱이질을 벌려야 했는데 어떤 욱하는 남자 직원들은 경비실 창문을 돌로 부시기도 했다. 그러면 이틑날 영낙없이 현지 관리인인 과장한테 훈계를 받거나 짤렸다. 과장은 골치거리 직원들을 윽박지르기고 하고 혼내주기도 하면서 회사 질서 유지에 안깐힘을 썼다. 악질이라는 리유로 남은 봉급을 주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에 걸린 직원들이 감수해야 하는 불리익이 컸지만 요동치는 청춘들은 끊임없이 일탈을 감행했다.
열여덟 살 홍이도 그랬다. 예쁘장하게 생긴 홍이는 미끈한 체격에 갓 구워낸 두부처럼 야들야들한 피부를 가졌다. 시골에서 청정한 공기만 마셔서 그런지 두 눈은 호수처럼 그윽하고 청순했다.

한 마을에 사는 언니를 따라 우리 회사에 온지 반년 좀 넘었을가. 하루아침은 과장이 씩씩거리며 홍이를 짤라야겠다고 했다. 매일 밤 늦게 다녀서 경비 아저씨가 항의를 한다는 것이였다.
쉬쉬한 소문은 바람 탄 안개처럼 삽시간에 온 공장에 퍼졌다. 홍이는 며칠째 유흥주점에 야근하러 다니고 있었다. 그 때는 직원들 봉급이 6백원 좌우였던 거로 기억되는데 유흥업소에서 손님 옆에 앉아서 술만 마셔주면 팁이 백원이였다.  유흥업소에서 야근을 하고 낮에 공장 근무하려니 임무완성은 물거품이 되는 것은   뻔한 일이고 쉬쉬거리는 동료들 사이에서는 눈총 받을 일만 남았다. 홍이의 팀에서는 홍이 때문에 팀원들의 일당 량이 많아지자 불만이 경칩에 돌아다니는 두꺼비들처럼 툭툭 튀여나왔다. 과장이 여러번 훈계를 하고 벌금을 했지만 홍이는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빠른 팁 문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어느 날 끝내 무단결근을 하고야 말았다.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는 벌써 두 세명이 홍이를 따라 야근을 나가는 애들도 있었다. 직원들은 적은 봉급을 홍이의 야근비와 비교하면서 일에 대한 욕망을 잃어갔다. 오랜 시간 연마해온 기술공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자 나도 짜증이 났다. 어린 것이 겁도 없이 설친다고 비난했다. 인간적으로 도덕의 벽을 지키지 못하고 회사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용서가 안됐다.
그러는 와중에 과장을 더 격분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글쎄 홍이가 유흥업소의 건달들을 시켜 매일 회사 주위를 맴돌게 한 것이다. 과장한테 전화를 해서 자기 봉급을 계산해달란다. 계산해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회사숙소를 털게 할 거라고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밤마다 여러 사람을 시켜 과장에게 무차별 스팸전화를 해댔다. 과장은 현지인으로서 커쿨진 몸매에 배짱도 두둑하고 파출소 직원들과도 호형호제하는 사나이였는데 코딱지만한 시골 녀자아이한테 이런 릉욕을 당하자 분해서 길길이 날뛰였다.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당황하고 화가 났지만 무섭기도 했다. 공장 안의 백여 명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나는 큰 일은 작게, 작은 일은 없던 걸로 마무리하자고 생각하여 홍이의 봉급을 계산해주고 다시는 회사 앞에서 얼쩡거리지 못하게 못을 박았다. 이튿날부터 건달들이 철수했다.

안도의 숨을 잠시 내쉬고 다시 생산에 매달렸다.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며칠 후 홍이의 늙은 아버지가 회사를 찾아왔다. 달구지 같은 빵 차에 걸리는 삼촌 고모는 다 데려 온 듯 일 여덟 명이나 되였다. 초라한 행색에 아낙네들은 누르꾸레한 머플러를 뒤집어 쓰고 남자들은 밭고랑 같이 주름이 얼기설기 널린 얼굴에 검은 숯을 발랐는지 하나 같이 시커맸다.

머리 수는 어정쩡하게 많아도 간은 오히려 얼마나 작은지 사무실로 안내하자 하나 같이 누런 이발을 드러내 싱겁게 웃으며 잘못을 저지른 듯 손사래를 쳤다. 공장정원에 채소 밭을 가꾸고 있었는데 친근한 친구를 발견한 유치원생들처럼 채소밭 앞에 엉성하게 모여 섰다. 서있는 자세가 풍상고초에 시달려 쩍쩍 갈라지는 토담처럼 메마르고 헐거워 보여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았다.  하는 수없이 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쌀쌀맞은 표정을 하고 있는 홍이 아버지는 숙소에 있는 홍이의 짐을 가지러 왔노라고 했다. 홍이의 괴롭힘을 경험한 일이 있는 나는 빨리 가져가라고 했다. 촌티 나는 옷견지 몇 개가 대수겠는데 이렇게 호탕하게 흐지부지한 대부대를 거느리고 짐을 가지러 왔다니 헉 소리가 저도 모르게 새여나갔다.
과장이 보안을 위해 입술을 빨갛게 칠한 홍이를 데리고 숙소로 가더니 보따리 하나를 질질 끌고 내려왔다. 까만 머리 결이 혹은 노랗게 혹은 빨갛게 익은 홍이는 눈을 내리깔고 쌩 하며 아버지 곁을 지나쳤다.

이때다. 아버지가 철썩 하고 홍이 뺨을 쳤다.
“이놈 가시나. 몹쓸 가시나!”
늙은 아버지의 안타깝고 기갈이 난 목소리가 왜소한 몸체에서 광분하며 터져 나왔다. 너덜너덜한 신발을 벗더니 홍이의 등짝을 세차게 내리쳤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눈이 휘둥그래져 있는데 친척들이 헐레벌떡 달려들어서 아버지를 뜯어말렸다. 상심한 아버지는 아예 먼지가 나뒹구는 세멘트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힘없이 머리를 떨구고 홍이의 등짝을 내리치던 신발짝으로 땅을 퍽퍽 두드리며 엉엉하고 황소울음을 터뜨렸다.

친척들이 눈물범벅이 된 홍이를 부축하여 봉고차로 데려갔다. 과장은 여기서 이러지 말고 빨리 회사를 떠나라고 손을 훼이훼이 저었다. 과장의 짜증난 목소리에 홍이 아버지의 눈길은 분노로 들끓었다.
나도 한시 빨리 보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공장 안에서 무리싸움이 일어나  인명 피해라도 날가봐 걱정이였다.
헌데 홍이 아버지가 갑자기 비칠비칠 일어서더니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새된 소리를 지른다.
“보아하니 네가 사장이네. 네가 이러고도 사장이야. 어린 애를 맡겼으면 책임을 져야지 밤에 돌아다니게 놔둬. 무슨 회사가 이래. 이래도 되는 거야…….”
악에 받쳐 울부짖는 승냥이의 몸부림 같았다. 원망과 억울함이 교차하는 포효였다.
홍이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얼마인데 이제 와서 회사에 책임을 묻다니. 나도 약이 오르고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회사규정이 열시반 통금인데 번번히 홍이가 지키지 않는 걸 왜 회사 탓을 해요. 홍이가 보통 아이인가요. 그러는 아버지가 딸 관리를 잘 해보라고요. 여기서 시끄럽게 소란 피우지 말고, 짐도 찾았으니 빨리 가요. 110 부르기 전에.”
나도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얼굴표정은 깨진 유리파편처럼 날카로워졌다.
“그래도 홍이는 아이인데 회사에서 관리해줘야지흐흑…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게 말이 되? 우리 동네 다른 아이들은 다 관리해주면서 왜 우리 홍이만 흑흑.. . 홍이는 이제 어쩌라고. 나는 이제 동네를 어떻게 들어가냐고 엉엉.”
절규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논밭만을 열심히 전전했을 늙은 아버지의 남색 재킷이 꼬질꼬질한 앞섶을 헤치고 힘없이 바람에 나붓거렸다.

우르르 채소밭 앞에 모여 섰던 일행이 까칠까칠한 손을 내밀어 홍이 아버지를 부축하여 봉고차로 비틀거리며 데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르릉 발동이 힘겹게 걸리고 봉고차는 슬픈 울음소리를 싣고 떠나갔다.
나는 쇼크를 받았는지 갑자기 위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위가 포승줄 꼬이 듯 옥죄여 숨이 턱턱 막히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위경련이였다.

휑하니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를 쳐다보고 있으려니 힘없이 털썩 주저앉는 홍이 아버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 사건이 있은 지 10여 년이 지나고 그 사이 우리 아이들이 성장해서 각각 고중과 초중을 다니고 있다. 열다섯 살 난 딸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예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들은 생명의 전부나 마찬가지이다. 아이들과 앙앙불락 하던 시기를 수도 없이 겪으면서 부모의 마음을 다소나마 터득하게 되였다.

그 때 그 늙은 아버지의 절규가 새삼스레 자주 귀가에 들려온다. 내 딸 좀 지켜줬어야 했다는 그 질책이 시시때때로 가슴을 찌른다.  
개혁의 바람이 그 동네의 들판을 슬그머니 살 찌울 때 그의 딸도 동네 밖의 세상을 꿈꾸었으리라.
평생 외지고 구석진 시골에서 밭고랑과 싸워온 정직한 아버지, 딸이 잘못된 길을 가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착한 아버지, 동네의 고만고만한 녀자아이들처럼 소박하게 살기만을 바랬을 평범한 아버지, 여차여차하여 쉬쉬하는 동네아낙네들에게 주워들은 딸의 일탈에 혼겁을 했을 수치스럽고 억울했을 아버지.
그는 담력을 키우느라 삼촌 고모 할 것 없이 다 끌어 모아 어렵게 도회지의 으리으리해 보이는 회사로 용기 내여 찾아왔다.
 과연 딸의 몇 푼 안되는 짐을 찾으러 왔을가. 아니면 억울해서 어디라도 향해 화풀이라도 해야 살 거 같아서 왔을가. 여유도 없고 철딱서니도 없었던 사장은 열여덟 살 당신의 딸 홍이를 보듬어주지 못했다. 홍이가 부른 건달들의 괴롭힘에 넌덜머리가 났고 당신의 질책에 억울하다 못해 위경련까지 일으켰다.

서른 즈음 그 때 내가 좀 더 큰 아량을 지녔더라면, 미리 아이 키우는 련습이라도 해봤더라면 당신의 억울한 절규를 따뜻한 눈길로 받아주었을 텐데.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서운 세상을 저울 질 하는 홍이를 한번이라도 불러서 따끔하게 지적해주었을 텐데. 당신의 딸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고 털썩 주저 앉은 늙은 당신을 부축했을 텐데. 마음의 쪽문에 서리를 치고 모질게 경찰을 부르겠다고 악악대지 않았을 텐데.

미안합니다. 딸을 사랑한 죄 밖에 없는 당신이시여.
정말 미안합니다. 아무 곳에서도 위로 받지 못한 늙은 아버지시여.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전체 [ 2 ]

2   작성자 : 하얀 진주
날자:2020-01-10 16:15:20
징벡산 인터넷판 수필에 났던 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작성자 :
날자:2019-11-13 10:56:18
작가님 , 작품발표 출처를 밝혀주세요~
Total : 6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60 마음이 딴 짓을 하려고 할 때 2021-12-09 0 325
59 다육이의 머리카락 2021-12-09 0 318
58 흑토와의 재회 2021-10-26 0 386
57 방아쇠를 당기려거든 잠간 멈추어라 2021-09-22 0 375
56 라면의 기(气) 2021-09-22 0 349
55 회식의 재구성 2021-08-24 0 450
54 쿠다모노야 2021-08-24 0 338
53 어게인 2021-08-24 0 609
52 안부를 부탁해 2021-08-24 0 286
51 봄의 변덕 2021-08-24 0 289
50 마음의 병 2021-08-24 0 320
49 더치페이, 18세를 만나다 2021-08-24 0 392
48 뾰족한 수 2021-08-24 0 276
47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020-08-18 0 1039
46 엄마와 딸과 립스틱 2020-08-10 0 569
45 늙은이 쉽지 않다 2020-08-10 0 928
44 작은 새, 높이 날다 2020-07-31 1 622
43 생각의 오십견 2020-07-31 0 471
42 비 오는 날이 장날이다 2020-05-07 2 657
41 주차장 일화 2020-03-19 2 801
‹처음  이전 1 2 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